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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자국 – 108화


이루릴이 애타게 말했습니다.

“…제발………… 시에프리너. 코볼드들은 다 바깥에서 싸우고 있어요. 우리마저 여기에 갇혀 있게 되면 누가 당신을 도와주죠?”

“아무도 필요 없어!”

아일페사스가 서늘하게 웃었습니다. 그녀는 그 대답이 정말 웃긴다고 생각했죠.

“그러면 누군가가 나타나겠지?”

혼잣말을 중얼거렸던 아일페사스는 이루릴과 왕지네의 의아한 눈길을 보았습니다. 잠시 후 아일페사스는 거울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녀도 자신에게 그런 눈길을 보내고 싶어졌거든요.

“펫시? 무슨 말이에요?”

아일페사스는 더듬거렸어요.

“어, 그러니까, 아무도 필요 없다고 말하는 건, 정말 아무도 필요 없는 자는 그런 말을 하지도 않지.”

무턱대고 한 말이 꽤 성찰력 있는 말이 되자 아일페사스는 놀랐습니다. 이루릴은 더 놀랐죠. 그녀는 아일페사스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녀 의 얼굴에 각오가 떠올랐습니다.

이루릴은 주위를 회전시키며 한쪽 무릎을 꿇었습니다.

시에프리너는 이루릴을 보자 벼락을 뿜어냈습니다. 하지만 그녀에겐 찰나의 주저가 있었지요. 또 이루릴의 손놀림은 마법처럼 신속했습니다. 그 덕 분에 시에프리너의 벼락은 이루릴이 한쪽 무릎을 꿇으며 바닥에 꽂았던 장검의 칼자루에 떨어졌습니다. 이루릴이 손을 놓은 직후에.

알의 안위를 걱정했기에 시에프리너는 최대한 약화시킨 벼락을 뿜었지만 충격을 견디지 못한 칼은 튕겨져 올랐습니다. 이루릴은 눈앞에서 칼이 튀 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빛의 정령을 불러냈습니다. 다시 벼락을 뿜으려던 시에프리너는 눈앞이 하얗게 변하는 것을 느끼곤 급히 벼락을 멈췄습 니다. 그녀는 분노에 차서 외쳤습니다.

“세레니얼!”

이루릴은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드래곤의 영리함에는 익숙했으니까요. 이루릴은 엘프의 걸음걸이로 발소리까지 지운 채 재빨리 이동했습니다. 그런 데 그녀가 아닌 다른 무엇이 소리를 냈지요. 바퀴 소리였습니다.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린 이루릴은 벽에서 굴러나오는 유모차를 보았어요. 설명할 수 없는 상황에 놀란 이성 대신 감성이 그녀를 이끌었습니다. 이루 릴은 무의식적으로 그 손잡이를 잡아 유모차를 안전하게 멈춰 세웠습니다. 그녀는 유모차 안을 살폈어요. 그곳엔 곧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얼굴을 일 그러뜨리고 있는 아기가 들어 있었습니다. 이루릴은 아기를 달랠 틈도 없이 유모차가 굴러온 방향을 보았습니다. 그곳엔 그림자 지우개를 든, 상당히 혼란스러워 보이는 왕비가 서 있었습니다.

“……?”

이루릴의 말에 왕비는 정신을 차린 것 같았어요. 왕비는 유모차와 이루릴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고개를 더 들어 시에프리너를 보았습니다. 시에프리 너는 그때까지도 빛 때문에 앞을 보지 못한 채 머리를 이리저리 황급히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왕비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어요. 이루릴이 외쳤습니 다.

“안 돼요!”

왕비는 주저없이 그림자 지우개를 들어올렸습니다. 그림자 지우개의 덮개가 열리며 그 초에 불이 붙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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