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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자국 – 133~137화


비명을 지르며 달려온 왕지네는 무릎이 부서지도록 세게 땅에 엎드렸습니다. 그러고는 바닥의 시체를 끌어안았습니다.

“안 돼요!”

왕비는 흐르는 피로 대답을 대신했습니다. 왕지네는 그 머리를 가슴으로 끌어당기며 몇 번이나 갑시는 소리를 냈지요. 그러다가 마침내 둔한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갑자기 나타난 왕비가 미처 말릴 겨를도 없이 자살한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던 이루릴은 흐느끼는 왕지네의 모습에 오히려 안정감을 되찾았습니다. 그건 아마도 슬퍼하거나 좌절하는 이를 보면 도와주기 위해 자신부터 안정시켜 왔던 오래된 습관 때문일 거예요.

“왕지네? 당신 벽타기꾼 왕지네죠? 여기엔 어떻게………… 왕비가 왜 여기에 온 거죠?”

왕지네는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루릴은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어요.

“미안해요. 마음껏 슬퍼할 시간을 줄 수 없군요. 빨리 밖으로 나가야 해요. 왕이 죽기 전에 시에프리너의 알을 깼어요. 그 때문에 시에프리너가 극도 로 분노하고 있어요. 여기 있다간 언제 굴이 무너져 죽을지 몰라요. 펫시. 펫시!”

아일페사스는 아직도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시에프리너를 돕기 위해 이곳까지 날아온 그녀에게 알이 깨지는 모습은 너무도 가혹 한 것이었지요.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건지 아일페사스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왕이 라이플을 들어올리는 모습을 보았을 때 그녀는 웃 음을 터뜨릴 뻔했지요. 대포도 아닌 그 따위 라이플이 드래곤에 피해를 줄 수 있을 리 없으니까요. 하지만 왕이 노린 것은 알이었습니다. 당연히 예상 했어야 하는 일이라는 말로 그녀나 시에프리너를 비판하긴 어려울 거예요. 어머니의 면전에서 자식 흉을 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그 어머니가 드래곤이고 흉을 보는 것이 아니라 총을 쏘는 것이라면, 게다가 그런 짓을 한 것이 한 나라의 왕이라면 그건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지요. 아 일페사스는 왕을 증오하기보다 오히려 왕을 이해하고 싶었어요.

‘어떻게 그럴 수 있었지?”

“펫시! 나가야 해요! 왕자를 들어요!”

아일페사스는 그 말에 약간 멍한 기분으로 왕자를 보았어요. 그녀는 왕이 왕자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했던 말을 떠올랐어요. 알을 향해 방아쇠를 당 기기 전에 왕은 그렇게 말했죠.

‘대신 왕자를 주겠다.’

그 말을 들었을 때조차 아일페사스는 왕이 왕자를 제물로 바치고 바이서스의 안녕을 구한다 믿고는 혐오감과 동정심을 느꼈지요. 왕이 거래를 말한 다고는 생각도 못했지요. 하지만 왕은 그렇게 말한 다음 차분하게 알을 쐈지요. 그 모습을 본 시에프리너는 알의 대가로 냉정히 왕자의 목숨을 취하 는 대신 미쳐버렸습니다. 그녀는 발광했고 충격 때문에 떨어진 돌이 왕을 즉사시켰어요. 시에프리너는 그대로 밖으로… ‘밖’

아일페사스는 정신을 차렸습니다. 시에프리너가 밖으로 나갔어요. 빨리 그녀를 만류하지 못한다면 그녀는 세상에,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끔찍한 피 해를 입히게 될 겁니다. 드래곤 레이디는 황급히 왕자를 들어올리고는 이루릴에게 달려갔습니다. 이루릴은 울다가 탈진한 왕지네를 힘겹게 부축하고 있었지요. 아일페사스가 말했습니다.

“잡아.”

이루릴은 쓰러진 왕과 왕비의 시신을 보다가 애써 눈을 돌려 드래곤 레이디의 옷자락을 붙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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