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자국 – 148화
품 안에 왕자를 안은 채 왕지네는 모든 드래곤의 후원자를, 레어를 필요로 하지 않는 드래곤을, 그리고 자식을 잃은 드래곤을 번갈아 쳐다보았어요. 당연히 그 시선의 각도는 산이나 구름을 살피는 것과 비슷했습니다. 왕지네는 왕자를 안은 팔에 힘이 들어가려는 것을 애써 억눌렀습니다. “어떤 드래곤이 있었어. 당신들의 가족이나 친구, 혹은 적수가 될 수도 있었던 드래곤이. 이젠 영영 태어나지 못하게 되었지만.”
아일페사스는 긴장했습니다. 왕지네가 다시 입을 열기까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지요.
“그래서 당신들은 피를, 눈물을, 보석을 떨어트렸어.”
왕지네는 숨을 몇 번 몰아쉬고는 다시 말을 이었습니다.
“그렇잖아?”
아일페사스는 한숨을 쉬고 싶었어요. 왕지네는 자신의 속에 담겨 있는 것들을 제대로 내놓지 못해 애먹고 있었습니다. 프로타이스가 턱을 바닥에 댄 채 중얼거렸어요.
“그래서?”
“몰라. 모르겠어. 그러지 말라고 윽박지르는 것도, 대신 찾아가서 울린 녀석들 때려주는 것도 괜찮긴 한데, 그것뿐이야? 당신들은 드래곤이잖아. 바 보 아니잖아.”
“그녀도.”
“응?”
프로타이스는 여전히 땅에 엎드린 채 형형한 눈만 움직여 시에프리너를 쳐다보았습니다. 시에프리너는 똑바로 앉아 왕지네를 보고 있었어요. 프로 타이스가 말했어요.
“그녀도 드래곤이야.”
시에프리너가 몸을 움직였습니다. 아일페사스는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의아함을 읽을 수 있었어요. 동시에 그 몸짓에는 간절함도 담겨 있었지요. 왕 지네는 뒤로 물러날 듯 허리를 당기다가 멈췄어요. 그녀는 다가오는 시에프리너를 똑바로 쳐다보았습니다. 시에프리너가 머리를 낮추었어요.
“내 아들이 죽었어.”
아일페사스는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동시에 커다란 놀라움에 눈을 치떴죠.
프로타이스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아일페사스가 기다렸던 것은, 그리고 짐승의 언어로 외치는 시에프리너를 보며 포기했던 것은 그것이었습니다. 듣 는 것은 고귀한 활동이지요. 하지만 그건 자체만으로는 완벽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말을 해야만 들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아일페사스가 이곳까지 쉬 지도 않고 날아온 것은 그녀의 말을 듣기 위해서였어요. 하지만 시에프리너는 벼락과 포효를 뿜어낼 뿐 말은 하지 않았죠. 그 때문에 아일페사스는 포기한 상태였습니다.
그 포기는 성급한 것이었어요. 프로타이스의 지적처럼 그녀도 드래곤이니까요. 아일페사스가 보기에 시에프리너의 입에서 나온 것은 그날 바이서스 를 때렸던 그 어떤 벼락보다 뜨겁고 강력한 말이었지요. 시에프리너가 그런 것을 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지요. 그녀가 선택한 상대 가 왕지네라는 사실에 불안을 느끼며 아일페사스는 왕지네를 주시했습니다. 왕지네가 말했어요.
“이름이 뭐야?”
“아이 아빠가 잠에서 깨어나면 의논해서 정할 생각이었어. 생각해 둔 건 있는데…
아일페사스는 안도감에 머리가 약간 멍해졌습니다. 그런 기분을 느꼈을 때 아일페사스는 항상 공유하는 상대가 있었지요. 그녀는 이루릴을 쳐다보 았습니다.
아일페사스는 놀랐어요. 이루릴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지요. 거대한 충격이 그녀를 붙잡고 있는 것이 분명했어요. 아일페사스는 급히 시선으 로 그녀를 두드렸습니다. 오랜 친구의 마음이 다가오는 것을 느낀 이루릴이 그녀를 돌아보았어요.
아일페사스도 커다란 경악을 느꼈어요. 역시 그녀들은 오랜 친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