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자국 – 150화


시에프리너는 슬퍼하고 괴로워했습니다. 왕지네는 조용히 듣고 때론 위로했어요. 그 모습을 보며 이루릴은 시에프리너의 슬픔이라는 강이 왕지네라 는 호수로 흘러들어가는 듯하다고 생각했어요.

시에프리너가 슬픔을 이겨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요. 백 년도 채 살지 못하는 인간이라 해도 그런 일을 겪는다면 몇 년 동안, 심지어 평생 동안 폐 인이 될 수도 있어요. 짧은 인생을 언제까지나 슬퍼하며 보낼 수는 없음을 스스로 깨닫는 이들은 행운아입니다. 반면 시에프리너는 인간이 보기엔 영 원처럼 느껴지는 시간 동안 슬퍼할 수 있지요. 그리고 틀림없이 그럴 겁니다. 하지만 그녀는 이제 슬픔 외에 다른 것도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 다. 해가 뜨고 지고 바람은 불겠지요. 내일을 향해 달려가던 이들이 죽을 테고 그 자리를 어제가 없는 이들이 메우겠지요. 그녀의 아들이 결코 살아볼 수 없었던 그 세상을, 그녀는 살아갈 겁니다.

이루릴은 이제 시에프리너에게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걸 제공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지요.

그것은 완전히 예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찾아왔습니다. 시에프리너가 끌어온 구름이 흩어지고 천둥소리가 잦아들던 무렵, 이루릴이 앞으로 수백 년 이 지나도 여전히 놀라워할 거라 확신한 일이 일어났어요.

발단은 평범하면서도 약간 당혹스러웠습니다. 왕자가 울음을 터뜨렸죠. 그건 아기에겐 당연한 일이지만 그날 밤 바이서스 임펠 교외에서는 상당히 위화감 느껴지는 것이었습니다. 같은 종족이었기에 그나마 권위자라 할 수 있는 왕지네는 아기가 배가 고픈 것 같다는, 스스로도 확신하지 못하는 판 단을 내렸어요. 하루에 몇 번이라도 먹어야 하는 아기가 그제야 배고파한다는 것은 사실 꽤 기이한 일이었어요. 해결 방법은 급히 바이서스 임펠로 가는 것이었지요. 하지만 왕지네는 시에프리너를 거기 놔두고 가는 것이 내키지 않았어요.

한편 아기가 계속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은 다른 의미에서 좋지 않았어요. 어쨌든 왕자는 명목상으론 시에프리너의 알을 쏜 자의 아들이었으니 까요. 시에프리너의 신경을 건드릴 위험이 있었지요. 그때 프로타이스가 여자가 넷이나 있는데 배고픈 아기 하나 해결 못하냐는 데퉁스러운 소리를 지껄였습니다. 왕지네와 비슷한 고민을 하던 아일페사스가 그만 화를 냈죠.

“이 인간이 자식을 낳았냐! 그래야 젖이 나올 거 아냐!”

“여기엔 자식 낳은 여자도 있잖습니까.”

무슨 소린가 이해를 못했던 아일페사스는 다음 순간 턱이 빠진 채 프로타이스를 쳐다보았어요. 프로타이스는 당신 소매에 뭐 묻었다고 말하듯이 태 평하게 말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게 궁금했습니다. 드래곤은 젖먹이 동물이 아니지요. 하지만 변신하면 젖먹이 동물이 하는 짓도 대부분 다 할 수 있지요. 산란한 드 래곤이 인간으로 변신하면 젖이 나올까요?”

시에프리너는 격분할 수조차 없었습니다. 너무도 기가 막혀서요. 그녀가 가까스로 화를 낼 수 있게 된 건 아일페사스가 생각에 잠긴 얼굴로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기 시작할 때였어요.

“드래곤 레이디!”

“절대 안 돼?”

“절대 안 돼요!”

“안 나오면 주고 싶어도 못주겠네. 인간으로 변신해 봐. 젖이 안 난다는 것 보여줘.”

“어디서 삼류 사기꾼이나 쓸 수법을 쓰세요?”

“좀 그렇지?”

“설령 나온다 해도 어떻게 그런 짓을 한 인간의 아들에게!”

아일페사스가 기다리던 말이었어요.

“이 아이는 왕의 아들이 아니야.”

시에프리너는 깜짝 놀랐어요. 아일페사스는 지체 없이 왕지네에게 들었던 말을 들려주었죠. 왕이 왜 그렇게 자기 파멸적인 양태를 보이게 된 것인 지, 왕자를 주겠다는 그의 마지막 말이 무슨 뜻인지에 대한 자신의 해석도 덧붙여서. 아일페사스가 느꼈던 것과 비슷한 동정심을 느끼며 시에프리너 는 혼란에 빠졌습니다. 그런 시에프리너에게 아일페사스는 마지막 타격을 날렸습니다.

“어쩌면 이 아이는 드래곤 라자인지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