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자국 – 151화


프로타이스가 놀란 얼굴로 드래곤 레이디를 보았습니다. 물론 그의 경악은 시에프리너의 경악에는 비교할 수도 없었지만.

“뭐라고요? 거짓말이에요!”

“여기서 그 옛날의 드래곤 라자를 직접 본 건 나와 루리뿐이야. 나나 루리가 틀렸을지도 모르지만 그걸 너에게 확인받는 건 사양하겠어. 만약 이 아 이가 드래곤 라자가 맞다면 드래곤도 이 아이에게 관심을 두어야 해. 그러려면 이 아이가 제대로 자라긴 해야지. 지금 바이서스 임펠에 가서 젖동냥 을 하는 건 어려워. 겁에 질려 정신 나간 것들에게 총이나 맞지 않으면 다행이겠지. 그렇게 되면 이 아기가 위험해. 나는 쉬운 길 놔두고 멀리 돌아가 진 않겠어. 변신해. 이건 모든 드래곤의 조언자이자 후원자인 나 드래곤 레이디가 드래곤 라자일지도 모르는 자를 대신해서 하는 요구야.”

더 참을 수 없었던 시에프리너는 도망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러자마자 시에프리너는 경악스러운 광경을 보게 되었어요. 마치 그녀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프로타이스와 아일페사스가 동시에 그녀의 앞뒤를 가로막았습니다. 완전히 노골적이지는 않았지만 의미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 을 정도의 거리를 두고.

그건 드래곤의 기준에서도, 아니, 신들의 기준을 잠시 빌린다 해도 실로 엄청난 장애물이었지요. 시에프리너는 어떤 저항도 무의미하리라는 것을 직 감적으로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절망과 분노로 고함을 질렀어요. 그녀는 항의하고 저주하고 위협했어요.

그러다가 그녀는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이루릴은 박수라도 치고 싶었습니다.

시에프리너는 울면서 절대로 그럴 수 없다고 반복해서 외쳤습니다. 왕지네도 그녀의 편을 들어 그런 무리한 요구를 하지 말라고 화를 냈죠. 하지만 아일페사스와 프로타이스는 시에프리너의 공격 본능을 자극하지 않을 거리를 참을성 있게 유지한 채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시에프리너는 계속해 서 울다가 마침내 침묵해 버렸어요. 그 동안에도 왕자는 간헐적으로 계속 울었습니다.

시에프리너가 인간이었다면 이루릴을 완전히 경악시킨 사건은 벌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프로타이스의 말처럼 드래곤은 젖먹이 동물이 아니지요. 제 아무리 지혜로운 드래곤이지만 체험하지 않은 일에 대한 감각적 반응을 예상하긴 쉽지 않습니다. 한 마디로 시에프리너는 젖을 먹인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알지 못하는 일에 대해선 감각적 거부감을 느끼기도 어려웠지요. 시에프리너가 계속 표시해 온 거부감은 사변적인 것이었 지요. 그런 것은 본능적, 무의식적 거부감 같은 것과 달리 의식적으로 극복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쉽지요. (그걸 자기 합리화라고 하죠.) 다시 말하지만, 시 에프리너가 인간 여자였다면 아일페사스는 고문이나 살해 협박, 심지어 마법으로도 요구를 관철시키기 어려웠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시에프리너는 젖을 먹이는 일이 뭔지 모르는 드래곤이었지요.

왕자가 다시 거센 울음을 토했을 때 시에프리너가 아무런 예고도 없이 변신했습니다.

그녀를 본 드래곤과 인간, 엘프는 놀랐지만 정작 가장 놀란 것은 시에프리너 자신이었습니다. 그녀는 두려움 섞인 눈으로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어 요. 한편 이루릴은 자신이 깨달은 사실을 내색하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인간으로 변한 시에프리너의 모습은 왕비와 비슷했어요. 닮았다고는 할 수 없 지만 인상이 비슷했어요. 그녀는 왕자가 선호할 모습을 무의식적으로 선택한 것일까요?

“시에프리너.”

왕지네가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눈으로 시에프리너를 보았습니다. 그녀가 마주보자 왕지네는 희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그것보 단 더 적극적인 반대의 의사를 표시하고 싶었지만 왕지네는 거의 하루에 걸쳐 안고 있던 아기의 체온을 무시하기도 힘들었지요.

시에프리너는 원망스러운 눈으로 아일페사스와 프로타이스를 올려다보았습니다. 둘 다 시선을 회피하진 않았어요. 아일페사스는 권위를 담아, 그리 고 프로타이스는 반항심을 담아 그녀를 마주볼 뿐이었지요. 다시 아기가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기운이 빠진 쇠약한 울음이었지요.

너무도 길게 느껴져서 몇 개의 계절로 나눠볼 수도 있을 것 같은 순간이 흐른 후 시에프리너는 비틀비틀 걸었습니다.

그녀와 왕지네 모두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 얼굴로 왕자를 건네받고 건네주었습니다. 시에프리너가 왕자를 안은 모습은 가관이었습니다. 짐보따리 를 안은 것 같았지요. 시에프리너는 그대로 왕자를 가슴에 대고 눌렀습니다. 옷 위였지요. 왕지네가 신경질적인 웃음소리를 내더니 다시 울상이 되었 습니다. 그녀가 손을 뻗어 시에프리너의 옷을 풀어헤쳤어요. 시에프리너는 ‘아, 그렇구나.’ 하듯이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녀의 맨가슴에 왕자의 얼굴이 닿았지요. 시에프리너가 전율했어요. 그녀는 거칠지는 않았지만 마구잡이에 가까운 방식으로 왕자의 얼굴을 가슴에 대고 문질렀어요. 다행히 왕자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잘 알고 있었지요. 그런 비협조적인 환경에서도 왕자는 드래곤의 젖꼭지를 정확히 물었습니다. 무너지려는 시에프리너를 재빨리 부축한 건 이루릴이었어요. 시에프리너는 고개를 돌려 이루릴을 보며 헐떡였습니다. 이루릴은 차분히 그녀를 부축 하여 바닥에 앉게 해주었어요. 시에프리너는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왕자의 볼은 꿈틀거렸습니다. 시에프리너가 폐에서 말을 긁어내듯이 말했어요.

“이건……”

그리고 시에프리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