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자국 – 153화


“최근 너희들은 누가 말했는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예언을 떠받들어 시에프리너를 공격했다. 그런 일을 하기 전에 먹이를 주지도 않으니 가축보다 못한 취급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 공격의 결과로 시에프리너는 알을 잃었다. 모든 드래곤의 조언자이자 후원자 로서 나는 이 결과를 순순히 수용할 수 없다.”

사람들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습니다. 어딘가에선 오줌 냄새도 나는 것 같았어요.

“나는 너희들이 기대할 자격도 없으면서 제멋대로 기대하는 관대한 적 같은 것은 아니다. 너희들은 적이 약할 땐 그들이 악하길 바라고 적이 강할 땐 그들이 관대하길 바란다. 유치하다. 전망에 대한 고찰 없이 드래곤에게 감행한 너희들의 공격에 대한 내 대답은 이것이다. 바이서스는 인육에 값 이 매겨질 때까지 식량 생산을 통제당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후에야 통제를 거둬달라는 요청을 할 권리가 주어질 것이다. 바이서스 인이 있는 곳이 라면 어디든 그러할 것이다.”

공포에 빠지면 판단력이 빨라지는 부류의 사람들은 드래곤 레이디의 말이 다른 나라에 보내는 경고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지요. 바이서스의 유민 을 받아들이면 똑같은 취급을 받게 될 거라는 뜻이니까요. 결과적으로 그들은 바이서스에 갇힌 채 굶주려야 할 겁니다. 영유아와 고령자가 받을 타격 은 상상하기도 끔찍할 테지요.

잘 알려져 있지만 비명을 지르는 건 상당히 담력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그곳에는 비명을 질러서 드래곤 레이디의 주의를 끌 만큼 용감한 이는 없 었습니다. 어쩌면 모두들 정신적으로 사망 상태였기 때문에 비명을 지를 수 없었던 것인지도 모르지요. 고요 속에서 드래곤 레이디가 계속 말했습니 다.

“너희들에게 주어진 그 하나의 권리를 행사하고 싶다면 너희들의 지배자가 될 저 왕자를 잘 보호해야 할 것이다. 나는 너희들의 왕자가 드래곤 라자 일 가능성이 높다고 믿는다. 바이서스 인에게 드래곤 라자가 무엇인지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 왕자를 통하지 않고서는 너희들은 애원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시민들은 얼빠진 눈으로 경호실장에게 안겨 있는 왕자를 쳐다보았습니다. 덕분에 경호실장은 진짜 마법사가 된 듯한 기분을 잠깐 느꼈지요. 이성의 대부분은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공포에 마비된 상태였지만.

갑자기 아일페사스의 음색이 바뀌었어요. 그건 선고가 아니라 토로 같았지요.

“드래곤이…………… 알을 잃었다.”

그 음색에 담겨 있는 슬픔과 분노감에 사람들은 정신을 잃을 것 같았습니다. 예, 그들은 드래곤 레이디의 상실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훗날 어떤 이들은 그곳에 드래곤 라자가 있었기에 바이서스 임펠 시민들이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지요.

“그리고 너희들은 역사에 기록될 최악의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이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두렵지는 않지만 달갑지도 않다. 그래서 나는 너 희들에게 왕자를 반환한다. 이제 너희들의 선택이 남았다. 왕자를 무엇으로 만들 것인가? 복수의 기치로 삼을 것인가, 대화의 탁자로 삼을 것인가? 둘 다 가능하다. 왕자가 왕의 아들이며 드래곤 라자라면, 선택하고, 책임을 져라. 드래곤은 기다릴 것이다.”

말을 끝낸 아일페사스가 위로 훌쩍 솟아올랐습니다. 황금빛의 거대한 드래곤이 사람들의 머리 위에 나타났지요. 사람들은 그제야 비명을 지르며 주 저앉거나 땅에 엎드렸습니다. 드래곤 레이디는 바람을 모질게 때리며 솟아올랐어요. 삽시간에 까마득히 날아오른 드래곤 레이디는 바이서스 임펠의 하늘을 두어 번 선회하고는 그대로 북쪽을 향해 날아갔습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경호실장이 용기를 내어 권총을 뽑아들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녀에게 감히 다가올 엄두도 내지 못했어요. 그 고요 속에서 갑자기 왕자가 울음을 터뜨렸을 때 그곳에 있던 이들은 모두 가슴이 철렁하는 기분을 느꼈죠. 경호실장은 황망히 왕자를 내려다보았습니다.

왕자는 북쪽 하늘을 향해 울고 있었어요. 드래곤 레이디가 떠나는 것이 싫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