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자국 – 159화
그녀는 예언자의 모습을 감추기 시작하는 자신의 눈꺼풀을 멈추려 애썼어요. 소용이 없었지요. 손발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것처럼 눈꺼풀도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건 위로 치솟는 그림자 지우개의 덮개도 마찬가지였지요. 왕지네는 반쯤 열린 그림자 지우개의 덮개 뒤로 초의 밑동을 볼 수 있었습니다. 조금만 있으면 초의 윗부분을, 그리고 심지를 볼 수도 있을 것 같았어요. 눈꺼풀이 내려오지 않는다면 말이에요. 눈꺼풀이 움직이 는 속도를 가늠해 본 왕지네는 자신이 덮개가 완전히 열리는 순간을 볼 수 없으리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살갗들 중 가장 빠르게 움직이는 살갗이 배 반의 살갗을 기습적으로 응징한 셈이로군요.
예언자도 왕지네의 눈꺼풀이 내려오는 것을 보았어요. 곧 그녀의 시야에서 그의 모습이 사라지겠지요.
‘무서워. 너무도 무서워. 곧 나는 없어질 거야. 원래부터 없었던 것이 될 거야. 이렇게 될 것을 알고 있었어. 몇 번이나 지금의 이 광경을 보았어. 그 러면서 마음의 준비도 해봤어. 하지만 당신이 눈을 감으리라는 것은 알지 못했어. 이렇게 시간이. 잔인하게 늘어날 줄은 몰랐어. 눈을 깜빡일 거 라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했어. 눈을 감지 말아줘………… 제발. 당신 눈을 보면서, 당신 눈 속의 나를 보면서……………
‘어떻게 할 수 없는 거야? 어떻게도 할 수 없는 거냐고! 그래. 그림자 지우개가 부서지지 않고 사라지면 되는 거지? 응? 내가 프로타이스를 막으면 되는 거지?”
‘어떻게 그녀가 눈을 감아………… 어떻게………’
너무하잖아! 이 개자식들아!’
‘프로타이스를 막으면 되는 거지!’
‘프로타이스……………. 그래. 부탁. 빌어먹을 부탁.’
‘아프나이델은 천 년이나 걸려서 그걸 없애려고 했어. 그렇게 해주면 되잖아.’
‘당신. 프로타이스에게 물어봐야 해. 그가 알고 있어.’
‘싫어. 부탁 안 들었어. 안 들었다고.’
예언자가 부탁의 내용을 말하는 동안에도 왕지네의 눈꺼풀은 계속 내려왔습니다. 이제 왕지네는 그림자 지우개도 볼 수 없었어요. 그리고 예언자의 가슴 윗부분도 경계가 거친 어둠 속으로 사라졌지요. 왕지네는 남아 있는 시야 속의 예언자를 애타게 바라보았어요. 예언자의 너무도 작은 부분이었 지요. 그리고 그마저도 가차없이 사라져가고 있었습니다.
‘당신 눈 속의 내가 사라지는군.’
‘안 돼.’
‘작별 인사는 하지 않아도 되겠지. 기억할 수 없을 테니까.’
‘기억할 거야.’
‘신들도 나를 기억할 수는 없어. 원래부터 없는 것을 기억할 수는 없으니까.’
‘기억할 거야!’
‘고마워. 왕지네. 고마워.’
‘왜!’
눈꺼풀이 완전히 감겼습니다. 왕지네는 그것이 다시 벌어지기를 초조하게 기다렸어요. 말 그대로 눈 깜빡할 사이였지만, 그건 너무 길었죠. 마침내 그것이 다시 벌어지기 시작했을 때 왕지네는 기진맥진할 것 같았어요. 빛이 새어 들어왔어요. 왕지네는 아직 그림자 지우개의 덮개가 완전히 열리지 않았기를, 그가 그녀의 눈 안으로 들어올 수 있기를 바라며 눈꺼풀을 들어올렸습니다. 찰나라도, 조금만, 조금만 더……………
그녀의 눈꺼풀이 열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