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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자국 – 95화


토벌군의 군영에 있던 병사들은 태양이 하나 더 떠오른 것 같은 기분을 느꼈습니다.

그들이 알고 있는 태양은 동쪽 지평선 위에 어제와 같은 모습으로 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좌상단 쪽, 그러니까 북동쪽 하늘엔 별처럼 보이지만 도 저히 별이라고 여길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반짝이는 황금빛 점이 있었습니다. 태양을 사과에 비교한다면 그것은 사과 씨 정도로 보였지요. 동그랗지는 않았어요. 뭔가 뾰족뾰족한 부분이 있는 복잡한 형태의 물체였지요. 하지만 태양을 마주하고 있는 병사들은 눈을 찌푸리고 있었기에 그 형태를 똑똑 히 볼 수 없었죠. 손으로 태양을 가리고 보아도 그 물체가 뿜어내는 황금빛 반사광 때문에 형태를 식별하기 어려운 것은 여전했어요.

잠시 후 그것이 좀 속 시원할 정도로 커졌습니다. 병사들은 오금이 저렸어요. 독수리 같은 것이 그 정도로 커졌다면 그건 이미 머리 위에 도착한 후 였겠지요. 하지만 그것은 제법 커진 후에도 여전히 먼 하늘에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맑은 날 해안에서 거대한 배가 다가오는 것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은 ‘꽤 커졌는데 여전히 멀게 보이는’ 그 느낌을 알겠지요.

조금 후 그것은 황금빛의 드래곤이라는 것을 확실히 식별할 수 있을 정도로 커졌습니다. 병사들은 덜덜 떨었습니다. 그 중엔 바지를 적시고도 깨닫 지 못하는 이들도 있었지요. 그렇게 커졌는데도 그 드래곤은 여전히 먼 하늘에 있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그렇다면 그것이 머리 위까지 왔을 땐 도대 체 얼마나 크게 보일까요?

드래곤 레이디는 하늘을 뒤덮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습니다. 토벌군의 상공을 지나쳤을 때 아일페사스의 높이는 화살을 쏴도 닿기 힘든 높이였지 만 군영 내 대부분의 병사들이 부딪힐 것 같은 느낌에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엎드렸어요. 그대로 화염이라도 뿜었다면 끔찍한 피해를 줄 수 있었겠지 만 아일페사스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군영 상공을 통과한 아일페사스는 그대로 상승했지요. 그러고는 고함을 질렀습니다.

“드래곤 레이디가 경고한다. 살고 싶으면 즉시 물러가라!”

그녀에게 작위를 하사한 간 큰 지배자는 한 명도 없었지만 공격에 앞서 항복할 기회를 주는 그녀는 기사도를 아는 드래곤이 분명했습니다. 실로 고 대의 위엄이 살아있다고 해야겠군요. 하지만 그에 대한 바이서스의 대답은 지극히 현대적인 것이었습니다.

고공을 선회하던 아일페사스의 눈에 기묘한 것들이 들어왔습니다.

그녀가 이전엔 하늘에서 본 적이 없는 것들이 남쪽의 낮은 하늘에서 천천히 날아오고 있었어요. 가장 큰 그리핀보다 더 컸지만 절대로 생물은 아니 었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기계였습니다. 물론 아일페사스에 비하면 독수리와 풍뎅이만큼의 차이가 있었지만 그렇게 큰 기계가 하늘을 나는 광경이 몹시 낯설었기에 생각도 해 본 적이 없다고 해야겠지요.―아일페사스는 당혹감을 느꼈습니다. 드래곤의 눈으로 그것을 면밀히 관찰해 본 아일페사 스는 깜짝 놀랐습니다. 새를 형편없이 도식화시킨 듯한 그 물건에는 인간이 타고 있었어요. 아일페사스는 이루릴에게 지나가는 말로 들었던 이름을 떠올렸습니다.

‘하늘을 나는 기계… 비행기? 저걸로 나와 하늘에서 싸워보겠다는 건가?”

분노와 호기심을 동시에 느끼며 아일페사스는 그것에 다가가 그 주위를 날아보았습니다. 잠시 후 분노는 사라졌습니다. 아일페사스는 어이가 없었 지요. 저런 물건이 비장의 수단이라는 걸까요? 그것의 날개는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 때문인지 그것의 비행 모습도 새의 그것을 형편없이 도식화한 것 같았어요. 그것은 떨어지지 않기 위해 어느 정도 이상의 속력을 계속 유지해야 하고 그 때문에 커다란 원을 그리는 방법으로만 방향을 바꿀 수 있었어요. 아일페사스는 가소로움을 느꼈지요.

비행기에 탄 조종사들이 드디어 공격을 시작하자 아일페사스는 더 이상 가소로움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안쓰러움을 느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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