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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1부 – 1화


“으..흐-응~~~!”
잠결이지만 분명히 내 입에서 괴상한 소리가 흘러나온 것 같다. 그 이유를 깨닫는 순간!

“응..! 으응~?”
나는 거의 발작하듯 눈을 뜨고 침대에서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그 순간 내 오른쪽 볼에 부드러운 물체가 부딪혔다.

“꺄악!”
크진 않지만 뚜렷한 비명이었다.
오른쪽 볼에 약간의 통증을 느끼며 돌아보니, 예쁜 소녀가 침상 옆에 주저앉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죄, 죄송.. 용서를..”
소녀는 겁먹은 얼굴로 말을 더듬거리며 변명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나는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에 다급하게 외쳤다.

“그만둬!”
내가 빠르게 외친 이 말이 소녀에게는 다행이었다.

“빌어먹을… 이-썅! 죽이지 마!”
이어지는 내 말에 대꾸는 없었다. 그러나 저 소녀가 아직 숨쉬고 있는 걸 보면, 살벌한 놈은 분명 들었을 것이다.
내 침상 옆에서 어린 강아지처럼 떨고 있는 소녀를 힐끗 본 나는 고개를 들어 천장에 대고 다시 외쳤다.

“죽이지 마… 그래, 내가 ‘죽여라!’ 하고 분명히 말하기 전엔 아무도 죽이지 마. 알았지? 썅~!”

왜 욕이 자꾸 나오는 걸까?

“..야! 이리와 봐..!”

이런 상황이 오버스럽고,

졸린 내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소녀는 침대 옆으로 기어와 엎드렸다.

“조, 존명!”

발음이 애매해 욕처럼 들린다.

“…이, 있잖아..거..”

무지막지하게 예쁜 소녀의 두려운 눈을 보니, 할 말을 잊었다.

“에이- 썅! 졸나 피곤하니까, 나 깨우지마!”

이불을 끌어안고 누워 생각이 복잡해졌다.

극악서생이라니, 이런 미친 상황이라니…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게 되다니, 짜증난다.

아름다운 소녀가 귓가에 뜨거운 숨을 불어넣다니…

결국 잠은 다시 오지 않았고, 방안을 살폈다.

그 소녀는 여전히 방 중앙 탁자에 앉아 있었다.

내 시선을 느낀 그녀가 흠칫하며 일어났다.

“야, 너..”

“조, 존명..!”

소녀가 침상 옆으로 날아왔다.

“너… 전에 나하고.. 그러니까.. 잔 적 있니?”

‘몽몽’이 어떻게 해석했는지 모르겠지만, 비슷하게 전달된 것 같았다.

“..소, 소녀는 곡에서 살면서.. 아직 곡주님의 은혜를 입지 못했나이다…”

눈물 쏟을 듯한 목소리였다.

이 소녀가 못났다니, 믿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봐, 그런 뜻이 아니라, 난 그냥…”

문득 한숨이 나왔다.

이런 상황은 상상도 못했을 텐데…

그저 평범한 청년이었으니, 가슴 두근거리는 게 전부였다.

나는 떠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내가 그걸 왜 물어 봤느냐면 말이지.. 그냥.. 니가 하도 예쁘고 착해 보여서.. 만약.. 그 빌어먹을 놈.. 아니, 아니.. 내가.. 널 어떻게 했다면.. 그러면 사과하려고…”

내 말에 놀라고 당혹스러워 하던 소녀는 이내 울상이 되어 넙죽 바닥에 엎드렸다.

“곡주님! 소녀를 용서해 주세요. 전 제 잘못도 모르는 아둔한 것입니다. 제발 용서해 주세요. 제발.. 제발 저 하나만 죽여주세요..”

소녀보다 한 발짝 늦게 나는 떠올렸다.

지금 다들 나라고 여기고 있는 그 빌어먹을 놈은… 희노애락이 비정상적으로 자주 바뀌는 미친놈으로써, 특히 반어법(反語法)을 즐겨 썼다고 한다.

즉, 누군가를 칭찬하거나 그에게 자기가 잘못했다고 사과를 하고는 얼마 후 스윽- 해치워 버리는 것이다.

때때로.. 기분에 따라 그 사람의 부모형제까지 몰살시킨 일도 있다고 했다.

그래서 붙은 명호가 극악서생…

“흑..! 흑..!”

참으려고 한 손으로 자신의 입을 막으려 애쓰며 우는 소리가 더 사람 애간장을 마르게 한다.

으…

“이, 이봐 난… ..우씨! 울지마!”

“예… 흑!”

뒤끝이 조금 있었지만 그래도 금방 소녀는 울음을 그쳤다.

그 동안 나름대로 익힌 ‘요령’이었다.

이들에게는 긴말이 필요 없었다.

그냥 명령하면 되는 것이다.

“너, 이름이 뭐지?”

“대교라고 합니다. 곡주님…”

“그럼 동생 이름은 소교?”

“그러합니다. 곡주님.”

흔한 이름 조합이군.

“동생들.. 이라고 했지, 방금?”

“예, 소교 아래로 소령과 미령.. 두 동생이 더 있습니다. 모두 저보다 곱고 귀여운 아이들입니다. 곡주님…”

“너… 몇 살이야? 동생들은?”

“열흘 후면 열일곱이 되옵니다. 저희 어미는 저를 나은 후 매년 동생들을 생산했습니다.”

미치겠군…

17, 16, 15, 14살짜리 아이들이란 말이지? 그 아이들을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문득, 눈앞의 소녀에게 불쾌감이 들기 시작했다.

노예 근성이 몸에 배어있기 때문인가?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더 어린 자기 동생들을 추천(?)하다니…

“너, 내가 니 동생들을 손대도 좋아? 그게 언니로서 할 말이라고 생각해?”

“…소녀와 소녀의 동생들은 모두 곡주님의 소유이옵니다. 저희들의 천한 목숨조차 곡주님의 것입니다. 어찌…”

망설였지만 대교의 뒷말은 뻔하다.

‘뭘 그런 걸 묻고 그러냐…’ 정도일 것이다.

하긴, 내가… 아니, 내가 지금 뒤집어 쓰고 있는 이 몸의 원래 주인 놈이 나쁜 놈이지.

이 불쌍한 소녀가 무슨 잘못이랴.

언제 어느 때 돌변하여 자신과 가족까지 몰살시킬지 모르는 놈에게 매인 몸으로 살아남으려면 그보다 더 비굴한 짓도 해야 할 것이다.

이 대교라는 소녀는 그렇게 길들여져 있는 것이다.

난 자신이 뭘 잘못해서 이 작자의 심기를 건드린 걸까…하는 표정인 대교에게 명령했다.

“가서… 총관 오라고 그래…”

대교가 이젠 정말 죽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지, 약간 다리를 후들거리며 밖으로 나간 후, 나는 자리에 서 일어나 앉았다.

대교가 나 일어나면 마시라고 준비해 둔 차를 마시는 사이, 총관… ‘혈마..’ 어쩌구 하는 살벌한 명호를 가지고 있는 놈이 방에 들어섰다.

“총관 지천공이 인사 올립니다. 평안히 주무셨는지요…”

중년의 나이에 얼핏 점잖은 서생 같은 느낌을 주지만, 음침한 목소리가 적잖이 살벌하다.

이 놈도 한 살인 한다지 아마?

“뭐, 별로… 저 애 때문에 말이야…”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총관의 서늘한 안광이 번득이기 시작했다.

“네 이년… 미천한 것이 감히 곡주님의 심기를 어지럽히다니…”

대교는 그대로 무너져 주저앉았다.

에구, 이 놈의 집구석은 농담도 못한다니까.

“죽이지 마!”

“예…?”

“전에도 얘기했지? 내가 확실하게 ‘죽여라!’ 하기 전에는 아무도 죽이지 말라고…”

“존명! 대교, 넌 곡주님의 하혜 같은 자비심 덕분에 살아난 것이다. 넌 앞으로 3일간 형벌 방에서…”

벌써 대교는 정신없이 내 발 밑에 엎드려 감사하고 있었다.

제기… 넌 잘못한 거 없다니까…

“잠깐! 이 애 말인데… 무술은 좀 해…?”

“본 방의 시비들은 모두 강호의 일류 고수 못지않습니다. 음… 비취각 소속의 시비들은 실전 경험이 없는 것이 좀 문제지만…”

“그래…? 좋아. 그럼 오늘부터 자네가 직접 이 애를 가르켜.”

두 사람의 눈이 모두 휘둥그래진다.

흐… 이 맛에 ‘말의 반전’을 즐기는 나다.

“뭐, 제자 두는 것까지 간섭하긴 좀 그렇지만… 내가 보기에는 얘 재능이 쓸만한 거 같아서 말이야. 얘하고 그 동생들 모두 가르켜서 내 전용 호위로 쓰고 싶어.

기간은 어느 정도 걸릴 것 같아?”

“그, 그건…”

“빠를수록 좋으니까, 어느 정도 수준이 될 때까지 내 방 당번은 동생들하고 번갈아 시켜. 아… 그렇다고 너무 심하게 다루지는 말고…

일단은 말이야, 열흘 후 동생들 세 명하고 모두 데려와 줘.

음… 어제 내가 술 마신 데, ‘비취각’의 ‘진하루’로 말이야…”

“…존명!”

약간 떨떠름한 표정이지만, 그는 즉시 대답했다.

나는 멍하니 날 올려다보는 대교에게 싱긋 웃어 보였다.

“널 곁에 두면 폼 날 것 같아서 그래. 후후… 너도 동생들하고 같이 있고 싶지?”

대교의 큰 눈에서 주르르 눈물이 흘러내렸다.

죽다 살아난 건 물론이고, 뜻하지 않은 지위 격상에 감격한 모양이다.

흐흐… 영화나 만화에서 보던 미소녀 군단의 호위… 솔직히 부러웠다.

까짓 거… 기왕 왕 변태, 반 미치광이 역할을 해야 할 상황인데, 한 번 즐겨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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