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1부 – 58화
내가 얼핏 보아도 확실히 무공은 무공인 것 같다.
드러난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도 엄청난 위력의 무공들인데, 그런 장소에 어렵게 숨겨 놓은 무공이라면 당연히 더 쓸만한 무공이겠지..?
음.. 근데 무협지 같은 데 봐도 그렇고, 실제로도 좀 잘나간다 싶은 자들이 자기 무공을 이렇게 짱 박아 놓고 죽는 심보는 뭔지 모르겠다. 몽몽에게 지질 분석시켜보니 적어도 수백 년 동안 건드려지지 않은 것 같다는 데, 말이 기연이지… 제자고 후손이고 나발이고 그냥 운 좋은 놈이 임자라는 건가?
어쨌든 새로 발견된 무공에 대한 호기심과, 대교 역시 적극적으로 원해서 다시 대교가 입수구로 들어갔고, 몇 번에 걸친 작업 끝에 수로 안의 무공은 모두 연못 밖으로 들어내졌다.
어디 보자~ 처음 나타난 거니 몽몽도 내용을 알아볼 리 없고, 어디에 무공명이 써있을 텐데?
대교와 나는 바닥에 주욱 늘어진 돌판을 기웃거리며 들여다보았다.
“아, 여기 있네요. 공공보법(空空步法)..?”
메시지가 안 뜨는 거 보니 무공명조차 몽몽의 데이터에 없는 모양이다.
“그쪽은 보법이니? 여긴 도법(刀法)인걸? 어..? 이거… 내 정글도의 전 주인인 패도광협이란 고수의 생사금마도결(生死金魔刀訣)!”
“아~! 이 공공보법은 창안한 사람이 패도광협의 연인이었다는 청명신니(淸明神尼)로 되어 있어요. 알려지지 않은 보법인 것으로 보아 아마도 그분이 돌아가시기 전에 새로 창안하신 모양이네요.”
“청명신니..?”
“예, 곡주께서도 아시겠지만, 본래 아미파(峨嵋派)의 제자였는데 패도광협님과 사랑에 빠져 사문을 저버렸다는 이유로 20여 년이나 동문사제들에게 쫓겨 다녀야 했던 비운의 여인… 아, 소녀가 어렸을 적에 두 분의 사랑 이야기를 어머니께 듣는 것이 낙이었는데, 그런데 오늘 이렇게 두 분의 무공을 만나다니…”
전설적인 고수들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라…
대교가 비밀 무기고에서 어째서 그 검을 고르고, 당장에 청명이란 이름을 붙였는지 이제 알 것 같다.
며칠 알아 본 바로는 실은 이 광협이 그 광협이 맞다. 즉, 내 정글도와 청명검은 연인이었던 남녀의 분신들… 훗! 대교 녀석, 자신과 나를 어렸을 때 들었던 아름다운 러브스토리의 등장인물과 대비시켜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았던 건가? 이럴 때 사춘기 소녀 티를 내는군 그래.
“패도광협 유운일 대협은 본시 정사마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던 분, 그분이 청명신니와 함께 은거하셨을 때 함께 사라진 무공이 저희 비화곡의 성지에 있을 줄 이야… 후우, 앞으로 우리 비화곡의 위상이 더더욱 높아지는 계기가 되겠군요.”
그건 그럴지도… 아니 확실히 그렇다.
청명신니와의 러브스토리까지는 몰랐지만 며칠 전에 패도광협이란 이름이 언급이 되어서 그 사람에 대해서는 조금 알아 본 것이 있다.
패도광협이란 이 남자. 몽몽은 활동 당시 무공 서열 5위 이내였다고 했지만, 실제로 나이 많은 장로들에게 물어 본 결과 장로들은 하나같이 그를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으로 꼽고 있었다. 그리고 생사금마도결이란 그의 독문절기가 실전 된 것을 엄청나게 아쉬워하고 있었다. 현재 대장로인 천마(天魔) 사문학 노인은 젊은 시절부터 생사금마도결이 펼쳐졌다는 전설의 자리마다 탐문하고 다니며 그 흔적을 찾아보았던… 말하자면 패도광협의 광적인 팬이라고도 했다.
가만… 혹시 이 패도광협의 무공이 감추어져 있어서 더욱 이곳이 철저한 금지 구역이 된 건 아닐까? 음… 그것도 좀 알아봐야겠는걸?
…근데, 무기 고르고 무공 얻은 과정은 극적인 기연의 전형적 패턴이긴 했다만 문제는 정작 이 원판의 몸은 정글도 들고 날뛸 체질이 못된다는 거다.
안됐지만 대교 니가 청명신니의 후예가 된다 해도 난 패도광협이 될 수는 없다. 지금의 ‘극악…’만 해도 유지하기 벅찬데 패도는 무슨 패도겠냐.
후우… 그러고 보면 원판 녀석이 왜 그렇게 자신의 체질 개선(?)을 위해 악착같았는지 알 것도 같다.
이 생사금마도결까지는 몰랐어도 성지 가득 누구나 탐내는 무공서들이 쌓여있는데도 정작 익힐 수는 없었으니 얼마나 억울한 생각이 들었을까..?
“곡주님! 곡주께서 비록 아직 천형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계시나, 아직 젊으시니 반드시 방법을 찾을 때가 올 것입니다. 실전 된 지 오래였던 패도광협 유대협의 독문절기를 오늘 곡주께서 얻으신 것도 틀림없이 그런 천명을 나타내는…”
“뭔 소리야, 발견한 건 너야. 이건 네 거라구.”
“그, 그럴 수는 없습니다. 더구나 생사금마도결은 도법이니 저와 맞지 않을 것입니다.”
아참, 이건 도법이었지?
“음… 그럼 일단 청명신니의 공공보법이라도 가져. 생사금마도결은 음, 그것도 일단 잘 봐둬. 천마 대장로까지 극찬하는 무공이니 반드시 도움이 될 거야.”
“소, 소녀는 더 이상 감당할 수가…”
“짜식, 니가 발견한 거 니가 가지는 건데 뭘 그래. 사실 안 그래도 너에게 보법을 전해 주려고 오행미종보니 잠종보 같은 거 연구하고 있었는데, 잘 됐다.”
연구..? 안 그래도 요 며칠 기초적인 공부하는 것만 해도 머리에 쥐날 지경이었는데 정말 다행이다.
공부는 좀 쉬엄쉬엄 하기로 하고… 우선 ‘공공보법’인가로 떼우자(?).
그건 그렇고… 얼결에 무지 좋은 무공들을 주운 건 기쁜 일이지만 정작 비밀 통로가 발견 안 되면 말짱 도루묵인데 이를 어쩐다?
“일단 오늘은 이 정도로 하자. 배수구 쪽은 다시 생각해 보기로 하고.”
“예, 곡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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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전까지 대교가 발가벗은 채 물 속에 드나드는 것을 보다가 생각이 났는데, 연상 과정은 좀 이상해도 하여간 그제야 나는 이 곳에 몸을 보호해주는 의복이나 장비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협지에 보면 천잠… 뭐라는 강력한 철사인지 실인지 하는 것도 나오고 또 무슨 이상한 짐승 때려잡아 만들었다는 보호복도 나오고 그러던 데, 왜 그 생각을 못했는지 모르겠다.
톡! 톡! 톡!
‘비화곡 성지 보유 보호장비 목록.
천잠의(天蠶衣). 설산에 사는 영물인 천잠이 설련실과 빙매실을 먹이로 성장한 후 토해 내는 일종의 비단 실. 천잠이란 생물체의 실존 여부는 불분명하나 천잠사로 지은 이 보호복의 강도는 금속 병기계통의 방어에도 충분한 것으로 추정됨.
교룡피(蛟龍皮). 종의 파악이 어려운 생물체에서 얻어진 가죽. 강도는 천잠의의 2.8배로 추정.
백원피(白猿皮) 원숭이과의…
장비 위치, 세 번째 석실인 비화보고(秘花寶庫).’
내 이럴 줄 알았다. 그렇게 잔뜩 있는데도 말 안 해줬다 이거지? 하여간 예뻤다, 얄미웠다 헷갈리는 몽몽이라니까.
나는 세 번째 석실에 들어가 천잠사로 만들었다는 보호복과 교룡과 백원 등 몇 가지 종류의 가죽을 챙겼다.
보호복은 생각 외로 탄력이 있는 재질이라 사이즈 관계없이 그대로 쓸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다른 것들은 아직 가공도 안된 그냥 가죽 상태였다. 그래서 가공용 도구로 보이는 조각도 같은 것과 바느질 세트까지 함께 챙겼다.
본래 대한민국 군바리는 바느질도 좀 한다. 3년 동안 군복이나 양말 떨어지면 자기가 스스로 땜빵해서 써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음, 이거 장난이 아닌데? 무슨 가죽이 칼날이 안 먹어? 하긴 그러니까 갑옷이나 그런 용도로 쓰이는 거겠지만…
내가 하는 꼴이 영 어설퍼 보였는지 대교가 자신이 내가 만들려는 장갑이며 신발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흠, 흠..! 그래, 이런 거야 본래 여자애가 하는 것이 어울리니까 양보하기로 하자.
…짜식, 손재주도 좋지. 순식간에 척척 자르고 꼬매고 하더니 한 시간도 안 되어 자신의 몸에 맞는 장갑과 가죽 신발을 만들어 낸다.
좋아, 내일은 이런 것들로 단단히 무장시켜 들여보내야겠다.
다음날, 몽몽 산소 마스크는 얼굴에 장착, 몸엔 천잠의 입고, 손에는 교룡 장갑, 발에는 백원 가죽 신발 신어 완전무장한 후 야명주 후렛쉬(?) 두 개와 청명검을 소지한 대교를 배수구 탐색에 보낸 후 나는 하릴없이 연못가를 서성이며 그녀를 기다렸다.
어제와 달리 상당한 준비를 한 셈이고 또 특별히 위험이 닥치면 몽몽의 도움이 있을 것이라고 위안을 해봤지만, 가끔은 공연히 피투성이의 대교 모습이 떠오르는 둥 불안하여 가만히 앉아서 기다릴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아직 어린 소녀를 저 어둡고 길고 긴 수로 속에 혼자 보냈다는 사실이 고통스러웠다. 말을 안 해 그렇지, 그냥 굴속도 아니고 뭐가 튀어나올지 알 수 없는 수로 속을 더듬어 간다는 것이 보통 일이겠냐?
다 큰 어른 남자도 두려워서 꺼릴 일을 난 어린 소녀에게 시키고 있으니 으으~ 내가 직접 할 능력만 있었어도….
그리고 뭐랄까, 갈수록 원판의 육체가 마음에 안 들 때가 많아지면서 그럴수록 한편으로 원판 녀석에게 동정심이랄까, 그런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어쩌면 원판 녀석도 이런 자기 몸이 마음에 안 들어 비정상적인 성격이 된 것일지도 모른다. 초고수들이 들끓는 비화곡을 무공조차 못하는 몸으로 이끌어 나가려면 부담도 많았을 것이고… 그래서 점차 가학적인 성격이 된 건 아닐까?
그리고 혹시 이런 상황, 누군가를 직접 지켜 주고 싶은데 그럴 능력이 안 되었을 때 원판의 심정이 지금의 나와 같지 않았을까?
흔한 표현으로 어딘가에 머리 박고 죽고 싶은… 어디에다가라도 쏟아 붓지 않고서는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치밀어 오르는 자기 혐오와 분노!
자신의 영혼을 다른 신체(아마도 무공 체질이었을)에 이식하려는 시도를 했던 그 녀석의 심정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물론, 결국 실패하여 녀석의 영혼은 행방불명(?), 엉뚱하게도 내 영혼이 대신 원판의 육체로 들어오는 돌발 사태가 발생하긴 했지만….
후~ 그 당시 생각하면 또 미래 여자 ‘진’에게 먼저 화가 난다. 진은 도대체가 말로만 생색을 냈지, 내 신변의 안전에는 별로 관심도 없었던 것이 틀림없다.
최소한 도착한 장소에 당장 위험한 요소가 있는지 정도는 알아봐 주고 갔어야 할 것이 아닌가 말이다.
당시, 진이 대책 없이 사라진 후, 나는 팔목에 장착한 몽몽에 익숙해질 틈도 없이 녀석의 ‘경고’를 들어야 했다.
‘같은 동굴 내에 인간으로 여겨지는 생명 반응이 있습니다.’
긴장한 나는 전투화 끈 고쳐 메고 조심스럽게 몽몽이 알려주는 방향으로 이동했었다.
어느 정도 거리까지 가까워져 비로소 불빛을 발견한 나는, 본래 10분이 채 안 걸릴 정도의 거리를 한 시간이 넘게 초저속으로 이동하기 시작했었다.
나도 작전 때 방어 부대에게 잘 안 걸리게 한 침투하는 몸이다. 물론 지금 생각해 보면 원판 녀석이 무공을 익힌 몸이었거나 무공을 익힌 자가 함께 있었다면 들켰을지 모르지만….
하여간 간신히 불빛이 어른대는 공간의 주변까지 접근하는데 성공해서 정황을 살펴보았다.
내가 몸을 숨긴 곳이 상당히 높은 위치여서 보이긴 전부 잘 보였지만 처음엔 도무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짐작을 하기가 어려웠다.
일단 분위기로 보아 옛날 중국옷을 입은 희어멀건한 얼굴의 젊은 놈(원판 극악..)이 무슨 사이비 종교의 제사장쯤 되어서 피의 제사를 지내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닌 듯 했다.
동굴 안이 다소 춥다는 생각이 들더니만, 신기하게도 놈이 서 있는 공터 한복판이 움푹 패여 그곳에 투명한 얼음 구덩이가 있었다. 그 속에서 꺼낸 것처럼 보이는 남자의 시체 한 구가 동굴 바닥에 눕혀져 있었고…
자세히 보니 그 시체 주변은 물론이고 젊고 어딘가 섬뜩한 인상의 원판 녀석의 주변 바닥에도 빈틈없이 알 수 없는 문장과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나마 조금 낯익은 태극패도 보였고, 절이나 사당에 가보면 있을 것 같은 명왕 상 비슷한 동상들도 몇 개 있었고….
사이비 종교 제사인지, 귀타귀 등의 강시 영화처럼 주술로 시체를 되살리려는 건지, 아니면 그냥 변태 바보가 시체 가지고 헛짓거리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어 한 10여 분은 숨죽인 채 녀석이 하는 양을 내려다보았다.
결국 가장 확실한 ‘정보’, 영화에서나 보던 복장하며 중얼거리는 주문이 중국말인 거 보니 ‘진’ 말대로 이곳은 정말 옛날 중국인가 보다, 라는 생각을 하며 나는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잘 모르는 장소에 와서는 어떤 일도 관여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자리를 뜨려고 했던 건데, 원판 놈이 갑자기 허공에 무슨 부적 같은 것을 마구 날리며 주문을 외쳐대기 시작하는 바람에 조금 놀라 발을 헛디디고 말았다.
비틀, 하는 순간 몸을 낮추며 나는 아예 비스듬히 바닥에 누워버렸다. 발을 헛디디는 순간 넘어지지 않으려고 버둥대면 오히려 더 크게 넘어지기 쉽다는 것을 알고 오랫동안 나름대로의 훈련으로 익숙해진 동작이었다.
그러나 사태는 그 정도로 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원판 놈의 광기 어린 주문 소리에 커져 가면서 신기하게도 동굴 안에는 갑자기 돌풍이 몰아치기 시작했고, 돌풍이 어찌나 거센지 나는 당장에 날려갈 것만 같은 몸을 더욱 바위에 바싹 붙이고 엎드려야 했다.
갈수록 거세어지며 동굴 안을 몰아치는 무서운 돌풍과 허공의 섬광들… 지금 생각해도 섬뜩한 광경이었다.
내가 판단 미스를 한 것은 그때였다. 그냥 거기에 계속 짱 박혀 있었어야 하는 걸, 허공과 내 주변 바위에까지 섬광이 튀는 상황에 질린 나는 자리를 피해야겠다는 판단으로 다시 몸을 일으키고 말았던 것이다.
그야말로 한순간이었다. 몸을 일으키는 순간 돌풍에 휘말린 것인지 발을 디딘 바위가 일부 부서진 것인지 아니면 둘 다였는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내 몸은 그대로 허공에 던져지고 말았다.
‘낙법을 시도해-? 아님 그냥 전신의 힘을 빼고 치명상이나 면해 봐-?’
그 짧은 순간 정말 별의별 생각을 다했지만, 이어 전신을 강타한 격렬한 통증에 정신이 아득해지고 말았다.
‘죽을 정도의 높이는 아닐 거라는 판단이 틀린 것인가? 이런 무서운 충격이라면 나, 난…’
‘제기랄-! 이건 말도 안 돼! 제대하자마자 이게 무슨 날벼락의 연속이란 말이냐. 말도 안 돼! 이렇게 죽는다는 건 말도 안 돼! 인정 못해!’
속으로만 외쳤는지 실제로 외쳤는지 몰라도, 너무나 억울했던 나는 악착같이 그렇게 상황을 거부하고 있었다.
지금도 확실하게 기억이 나진 않지만… 그때는 순간적으로 내가 알 수 없는 어떤 어두운 공간 속에 내팽개쳐진 느낌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어디인가로 끌려가는 듯한… 가라앉고 있다는… 죽는다는 느낌…
‘제기랄! 뺑이 치다 제대한 사람 약 올리냐, 하필 오늘? 인정 못해! 난 절대 인정 못해!’
그러던 어느 한 순간, 나는 어둠 속에서 희미한 어떤 ‘빛’ 같은 것을 보았다. 그걸 잡아야 한다는 강렬한 욕구로 나는 버둥거렸다. 가위를 스스로 풀려고 들 때의 그 엄청난 무기력감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해서 빛을 향해 나가려고 애를 썼다.
그렇게 애를 쓰다가… 쓰다가~ 문득, 눈을 떴다.
비로소 살았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하도 황당하고 엄청난 일들을 연속으로 겪어서 그런지 나는 무기력하게 꽤 오랜 시간을 그렇게 누워있었다.
‘높은 데서 떨어져서 그런가? 내 몸이 어째 내 몸 같지 않은… 뭐 그런 생각을 하며 몸을 일으켜보니 이런 제기! 진짜로… 내 몸이 아니었다.’
나는 이미 난장판이 되어 간간이 부적 조각들만이 굴러다니고 있는 동굴 바닥에서 어렵지 않게 내 진짜 육체를 찾아냈다.
그때의 어처구니없고 더러운 기분이라니…!
“매우 드문 확률의 사고가 발생했군요. 인간의 영혼에 대한 연구는 저희 시대에도 미지의 영역으로 남겨진 부분이 많아 확실한 데이터를 제공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몇몇 고대 주술은 매우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으며, 실제 영혼 교체 실험 사례가 2000년 중반까지도 있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때 몽몽은 자기 본체에서 직접 소리를 울려왔었다.
어쨌거나 영혼 교체..? 그럼 내 몸에는 이 재수 없는 놈의 영혼이..? 당연히 그런 의심이 들었지만 어찌 된 건지 내 진짜 몸에는 녀석이 들어가지 않은, 아니 못한 모양이었다.
“현재 진유준님의 육체에는 인간의 영체일 가능성 95.3%의 mess1 – 12 계열의 어떤 에너지 반응도 없습니다. 현재 진유준님의 영체가 들어간 육체의 본래 영체의 정확한 행방을 알 수 없습니다만, 6분 24초 전 현 장소에서 약 30초간 사후 세계로 추정되는 다차원 공간 발생 현상이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실시된 주술 자체에 오류가 있었거나 진유준님의 등장이 주술 체계에 변화를 주었기 때문에 발생한 돌발 사태로 보여집니다.”
내 몸에 다른 놈의 영혼이 들어가지 않았다는 건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내 영혼이 다른 놈 몸에 들어가서 다른 놈 눈으로 내 진짜 몸을 내려다보게 되다니…
어지간한 일에는 별로 놀란 티도 안내는 나지만, 그때는 정말이지 오랜 시간 동안 정신을 수습할 수가 없었다.
“이대로라면 진유준님의 육체는 23분 후 완전 사망 상태가 됩니다. 육체를 생존 상태로 보존하시려면 제 지시에 따라 주십시오.”
몽몽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든 나는 익숙하지도 않은 몸을 억지로 움직여 장애인 비슷한 동작으로 간신히 녀석의 지시대로 행동하기 시작했었다.
몽몽이 컨트롤해 가사 상태로 만든 내 진짜 몸을 내 손(?)으로 얼음 구덩이 속에 파묻는 데… 눈물이 나는 걸 간신히 참았었다.
일단 내 몸을 냉동 인간 상태로 보존했다가 자신의 본래 주인인 ‘진’이 돌아오면 본래 몸으로 돌아갈 방법이 있을 거라는 몽몽의 장담에 그때부터 지금까지 유일한 희망을 걸고 지내는 것이다.
제기…
그러고 보니 그 이후 상황도 결코 그날 하루 못지 않게 비정상적인 일 투성이였던 셈이다.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본능 하나로 어기적거리고 더블백 찾아 메고 동굴 바깥으로 나왔을 때, 웬 시커먼 괴한들이 떼거지로 나타나 날 ‘곡주님’이라 부를 때부터 심상치가 않더니만, 세상에 이 몸이 강호 최강 조폭의 짱이었을 줄이야…
음… 대교 기다리다가 잠시 회상에 빠져 있었군.
근데 잠시..? 빌어먹을, 몽몽이 없으니까 시간 개념도 잘 안 잡힌다. 도대체 몇 분이나 지난 거지?
대교는 어째서 아직도… 으- 미치겠다. 숨쉬는 거야 몽몽이 있으니까 상관없다지만, 혹시 무슨 사고라도 났으면… 으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