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4부 – 160화 : 로미오와 줄리엣 (3)

극악서생 4부 – 160화 : 로미오와 줄리엣 (3)


10. 로미오와 줄리엣. (3)

-요몽. 신디의 전화기, 계속 체크 중이지?

「예, 근데요, 주인님. 아까 보낸 주인님 메시지를 수신 한 거까진 확인되었는데요, 그 외의 정보 수집은 저언혀 되지 않고 있네요.」

그 외의 정보 수집 불가라, 신디의 스마트폰을 해킹해서 카메라며 스피커 기능을 장악했는데도 아무런 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도 않고 있다는 얘기지? 뭐, 신디의 ‘살짝쿵 배신'(?)이 들킨 시점에서 그녀가 지닌 장비도 의심받고 관리되는 것은 당연하겠지.

현재까지의 상황으로 추정되는 매퍼 가문의 힘은, 도널드 놈이 이끌 때의 웨인가보다 강해. 무엇보다 두목인 드웨인 매퍼라는 자는, 아직 직접 만나보지 못했는데도 도널드 따위보다 몇 배로 위험한 향기가 풍기는 자인 거 같아. 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병력을 보강하긴 좀 그렇고, 일단 현재의 병력을 재비치하는 것부터 시작해야겠지?

-장인어른.

-뭔가, 유준.

역시 장인어른. 불쑥 전음을 보내도 겉으로는 전혀 티를 내지 않고 대꾸해 오는군.

-새벽에 프리제타와 사사키, 두 명을 더 캔들 리 경호에 합류시켜 두었습니다. 보고 받으셨죠?

-음, 그래. 그들도 나타샤양처럼 프리메이슨에서 손꼽히는 초능력자들 이라면서?

-예. 그리고 상황 봐서 언제든 더 보강할 병력을 대기시킬 생각입니다.

비로소 사영의 안색이 보일 듯 말 듯 굳어지고 있었다.

-물론, 만일을 위해서입니다. 가급적 캔들리 쪽에는 싸움의 여파가 미치지 않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가급적, 노력?

사영은, 슬쩍 못마땅한 기색을 내비치기 시작했으나, 나로서는 무조건 확답을 할 수가 없어서 쓴웃음으로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고, 마침 대교가 수하들과 함께 차를 내오기 시작해서, 어영부영 장인어른이자 캔들 리 경호팀의 팀장님께 드리는 1차 보고를 마칠 수 있었다.

“소교! 미안하지만 네가, 저 아이들의 간식을 좀 챙겨주겠어? 데릭이 주방에 준비해 두었을 거야.”

“아, 그럴게요, 형부.”

소교는 얌전히 자리에서 일어섰고, 그녀에게 부탁한 것은 소냐와 가야, 비에이, 세 명의 CR들이었다.

난 저 ‘투명 소녀, 소냐’를 ‘백인판 소교’라고 느낀 적도 있었는데, 이번에 드디어 얌전 나라 공주님들 끼리 만나게 된 셈이군. 뭐, 그거야 어쨌든. “길모르! 당신은 현재의 상황을 얼마나 알고 있소?”

이 자리에서 가장 상황을 모르고 있을 길모르에게 먼저 물었고, 그는 차 한 모금을 맛본 후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웨인가와의 일은 어제 모두 마무리 된 것으로 알고 있소. 그런데 도널드란 자를 돕기 위해서 온 자들이 뒤늦게 나타나서 시비를 걸어왔다고, 그렇게 들었소.”

“뭐, 일단 그렇게 되긴 한거요. 문제는 그 매퍼 가문이 뒤늦게라도 시비를 걸어 온 이유와 놈들의 전력인데…………”

나는 길모르에게 말해주는 형식으로 모두에게 전체적인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상황을 띄엄띄엄 알고 있던 이들 모두가 이제야 전체 개요를 알게 되어 고개를 끄덕이는 분위기였으나, 정작 가장 놀라서 동요하고 있는 것은 이번 싸움의 핵심인 인호 일행이었다.

“그, 그게 사실인가요? 그 날 이후, 정말, 그동안, 항상 저희 주변에서 저희들을 감시해 왔다는 건가요?”

먼저 입을 열어 믿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인 것은 소희였다. 녀석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옆자리에 놓여져 있는 요괴 활 묵정을 돌아보며 묵정에게도 뭔가 묻는 기색이었다.

“소희야. 내 생각에는 신디의 요물 ‘오스카’도 그 친구, 묵정까지 속이고 너에게 가까이 올 수는 없었을 거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매퍼 가문의 감시도, 소희 네가 묵정을 얻기 전까지였을 거야. 그래서 신디도 감시를 포기하고 미국에 돌아와 있었던 거고 말야.”

소희는 자신의 요괴 묵정에 대한 새삼스런 믿음으로 약간의 미소를 떠올렸으나, 그런 감정은 당연히 잠시였다. 소희는 오랜 세월 암중에 감시받으며 살아왔었다는 사실에 소름끼쳐하는 한편, 그것이 자신들의 원수 가문에 의한 일이었다는 사실에 새삼 분노하는 것 같았다.

정훈도 비슷한 감정을 드러내고 있는 거 같고, 유인호 역시, 아니, 이번에도 이 친구는 아닌가?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여전히 무심 청년일세. 

“유준 형님.”

인호도 입을 열긴 했으나, 그의 음성은 지극히 차분했다.

“언제부터인가, 알 수 없는 시선을 느낀 일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희들 주변에는 본래, ‘어둠속에서 지켜보는 존재’들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아서, 구별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하긴, 퇴마사 생활을 하는 이들로서는 소위 ‘알 수 없는 시선’을 감지할 때가 너무 많아서 피곤한 일상이긴 할 거야. 으음. 그렇다곤 해도, 인호의

지금 말에는 어쩐지 ‘아주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라는 뉘앙스가 있는 듯 하지?

“가끔, 바라기는 했습니다. 나를 지켜보는 시선 중에, 그들이 섞여있기를 말입니다.”

그런 걸 바랐다고? 아니, 이 친구는 막연하게 바란 것이 아니고, 진즉부터 신디와 오스카의 시선을 감 잡고 있었던 거 같은데? 그러면서도 참고 또 참아온 거야. 자신이 직접 매퍼 가문을 추적할 수가 없으니, 그들이 직접 찾아오길 말이야. 이 무심한 척하면서 무서운 친구 같으니!

“그런데, 유준 형님.”

아주 살짝 피어오르던 인호의 살기가 다시 문득 사라졌다.

“제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이 일에 얽히게 되신 것 같습니다.”

인호는 사영과 천우신쪽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유준 형님의 호의는 정말 감사하나, 더 이상 다른 분들께 폐를 끼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이쯤에서 저희들이 따로 움직여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럴까봐 사영에게는 전음으로 보고했던 건데, 인호도 이미 사영과 천우신의 상황을 누군가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던 모양이군. 하지만 이대로 ‘그럼 니들끼리 가라고 할 수는 없지?

“그게 말이야, 인호.”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실은, 매퍼 놈들이 나에게도 볼일이 있는 거 같아. 인호 너와의 일이 아니라도 말이지.”

그래. 자인 매퍼, 그 놈은 분명히 나도 문제의 이상한 책을 알고 있는 것처럼 말했지. 그리고 싸움의 끝 무렵에는 ‘그가 당신에게 가보라고 한 이유를 알겠어’라는 말도 했었어. 여기서 ‘그’란, ‘드웨인 매퍼’를 말하는 것이 아닌 거 같았고 말이지.

다시 말해, 내가 모르는 누군가가 매퍼 형제들에게, ‘네크로노미콘을 능가하는 마계 최고 꿀잼 만화책? 그걸 진유준이란 놈팽이가 몰래 꼬불쳐 뒀을지도?같은 가짜 뉴스를 흘린 것으로 봐야했다. 가짜 뉴스를 만들어 낸 놈이 누군지와 이유는 아직 알 수 없으나, 어쨌든 간에 당장은 나 역시 매퍼 가문의 표적이 된 것은 사실인 셈이었다. 내가 이런 점을 알려주자, 좌중에는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고, 먼저 사영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역시 그랬군.”

사영은 내 옆으로 오더니, 내 어깨에 한손을 올리며 말을 이었다.

“이번에도 또 잘난 사윗감 때문에 골치 아프기는 싫으니, 자네가 잘 알아서 하리라 믿겠네.”

“여, 여부가 있겠습니까, 장인어른.”

으흑! 이 양반, 손아귀에 대체 몇 성의 공력을 실은 거야? 호신강기를 운용하는데도 아파 죽겄네. 으, 응? 천우신 이 친구는 또 왜 따라 일어서 나에게, 웃! 이 친구까지 내 어깨에 손을 얹다니, 설마 이 친구까지?

“유준. 역시 자네는 항상 흉사를 몰고 다니는 친구로군. 당분간 술자리고 뭐고, 연락을 삼가주게.”

으허억! 천우신 이 친구는 말의 비수로 나의 여린 가슴을 난도질하는구나!

“한국에서 온 젊은 친구들, 특히 자네, 유인호라고 했던가?”

사영은 인호에게 빙긋이 매우 맘에 들어 하는 웃음을 보이며 인사를 건넸다.

“나도 큰일이 있어서 돕지는 못하나, 자네라면 나 같은 퇴물의 도움 없이도 사부의 혈채를 반드시 받아낼 수 있을 것 같군.”

사영은 나름의 덕담을 남기고 러브하우스 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고, 천우신 역시 인호 일행에게 포권으로 인사를 했다.

“저도 도움이 되지 못하여 죄송합니다. 부디 무운을 빌겠습니다.”

인호 일행은 자리에서 일어나 사영과 천우신을 배웅하며 감사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이 길모르에게 향하자, 길모르는 빙긋이 웃으며

한손을 들었다.

“캡틴의 명령 이전에, 내가 먼저 참전에 지원하겠소. 난 호기심이 많아서 그 네크로노미콘과 또 다른 책, 매퍼 가문, 모두에게 큰 흥미가

생겨버렸소.”

“훗. 맘대로 하시구려.”

내가 길모르의 참전을 선선히 받아들이자, 리치몬드도 냉큼 손을 들었다.

“네크로노미콘을 봉인하는 것은, 본래 모든 마법사들의 책무야. 그러니까, 유준! 날 빼놓으려고 하지마.”

“어, 네가 굳이 하고 싶다면야, 나야 뭐.”

나는 다소 어색한 태도로 리치몬드의 참전까지 승낙했으나, 소희는 진심으로 모두에게 감사하고 있는 것 같았다. 

“유준 오빠. 고마워요.”

“응? 내가 뭘? 다들 자발적으로 나서는 건데 뭐. 아, 말 나온 김에, 자룡대주!”

“예, 천주!”

“다들 정신 차리는 대로 상황을 알려주고, 어디까지나 자발적인, 그런 지원자들을 선별해줘. 어디까지나 자발적! 알지?”

“후후, 복명!”

으음. 내가 너무 티나게 명령했나? 그,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유준 형님.”

인호는 나를 부르고, 더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했으나 결국 조용히 고개만을 숙여 무언의 감사를 표했다. 그건 소희와 정훈도 마찬가지였고, 나는 공연히 멋쩍어져서 조금 과장되게 목소리를 높였다.

“아참참! 천음마군은 무조건 합류야! 알지?”

나는 자룡대주에게 한 말이었으나, 소희가 먼저 아~ 하는 소리를 냈다.

“사막에 함께 갔었던, 그 홍콩 조직 오빠 말씀이시죠? 그 오빠가 ‘론 매퍼’와 싸운 적이 있었다고 들었어요.”

“훗. 맞아. 그 조직 오빠, 천음마군은 론과 싸우다가 큰 중상을 입긴 했는데, 그래도 졌다고 보긴 어렵지. 암튼, 그날 이후로 항상 설욕전을 별러 왔으니, 론과의 승부는 가급적 그에게 양보해 주었으면 좋겠는데, 어때, 인호?”

“저에게 뭘 양보하고 말 권리가 있지는 않겠지만, 기억해 두겠습니다.”

흠. 역시 인호의 원한은 일의 원흉인 드웨인 매퍼와 그의 요마인 안젤리카에게 집중되어있는 거 같지? ‘웬수 집안의 풀 한포기 남겨두지 않겠다’식의 무차별 복수심을 가진 성격이 아니라서 신디에게도 아직 기회가 있다고 봐도, 그래도 좋으려나?

「저기, 근데요, 주인님.」

요몽은 왠지 난처해하는 기색으로 나섰다.

「저도 론 중령과 천음마군의 리턴매치를 기대했었기는 한데요. 지금의 론 중령, 아니, 론 매퍼는, 자기 가문 특유의 오컬트 파워는 물론이고, 네크로노미콘의 흉악한 힘까지 더해서, 무지막지 왕창 업그레이드되었을 거 같은데, 어설프게 상처 회복력이 조금 좋아진 정도의 천음마군이 과연 이길 수가 있을까요?」

-그게, 이기는 건 고사하고, 뼈나 추릴 수 있을지 모르겠긴 하다.

「엑! 그렇게 생각하시면서 싸우게 하실 거예요?」

-나도 첨부터 말리고 싶었다만, 그 인간이 말린다고 들을 인간이냐? 그럼 애초에 이곳으로 부르지를 말지, 왜 불렀냐고? 그건, 그 인간이 언제고 혼자 론에게 시비를 걸다가 메롱 될 거 같아서 그래. 차라리 내 앞에서 싸우게 한 다음에 구해주는 게 나을 거 같지 않냐?

「아~ 그것도 그러네요. 우후, 방식은 좀 그래도, 주인님 나름대로 천음마군을 챙기시는 거 였네요.」

-그렇기는 한데, 솔직히 나도 막연한 욕심도 있기는 하다. 우리의 천음마군이 절대적인 열세를 딛고 ‘만화 속 주인공이 되어 주기를 말이야.

「헤에~ 저도 기왕이면 그랬으면 좋겠네요. 천음마군은 소냐와 CR아이들에게 ‘너희들을 멸시하는 론 중령을 혼내주겠다’고 약속한 적도 있으니

말이예염.」

흠. 요몽도 그 일을 잊지 않았군. 아, 천음마군과 CR들의 약속 장면을 영상화 했던 것이 요몽이었으니, 당연한 건가? 여하간, ‘어린 소년 소녀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능력의 한계를 초월하여 악당을 물리치는 남자’! 만의 하나 천음마군이 어떻게든 ‘초업그레이드 론’을 물리칠 수만 있다면, 그런 소년만화 주인공이 되는 건데 말이지.

「으으음. 천음마군의 그런 미션 임파서블을 위해서는, 아무래도 특단의 조치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네요.」

-응? 뭔 특단의 조치?

「우리측에는 지금 천음마군의 업그레이드를 위한 자원이 풍부한 상태잖아요. 일단은 늑대 인간들을 동원해서 천음마군을 한입씩 물어보게 하는 거예요. 그래도 끝내 늑대 인간의 힘이 생기지 않으면, 그때는 호크씨나 S씨에게 부탁해서 천음마군을………….」

-요몽. 됐거든?

「에이~ 왜 그러세염! 이미 다들 웨어 울프나 뱀파이어에게 익숙해져 버린 상태인데, 천음마군이 둘 중 하나가 된다고 해도 딱히 이상해할 사람이 없을 거 같은데요?」

이, 이런, 나름 설득력이 있, 아, 안 돼! 수하의 전투력 향상을 위해서 비인간적인 방법을 쓰면 나도 원판 되는 거야!

「아, 맞다! 우리에겐 ‘마계의 왕자, 라프’도 있었죠? 라프더러 천음마군을 물어! 라고 해보면 어떨지 실험을

이, 이것도 나름 유혹적인 실험, 아, 안 된대두, 진유준!

-야! 진짜 됐거든? 너야말로 전투 알고리즘으로 가득 찬, ‘최종병기 그 요정’으로 만들어 주리?

「아, 아니에요! 전 지금의 제가 좋아요! 취소! 제가 드린 말씀, 전부 취소할께염!」

짜식이, 지는 다른 존재가 되는 게 싫으면서, 어디서 유혹질이야?

-저어, 오라버니.

-으, 응? 왜, 대교?

나는 요몽 녀석의 악마적인 충동질로 메롱된 분위기를 추스르며 대교를 돌아보았다.

-죄송하지만, 시간이 얼추 되어 가는데도 오라버니께서 무아지경에 빠져 계신 거 같아서, 일단 제가 먼저 신디 양의 방문을 알렸어요.

-아, 그랬어?

다시 인호 일행쪽으로 돌아보자, 소희와 정훈은 물론이고 인호까지 안색을 굳힌 상태였다.

“유준 오빠! 정말 지금 바로 신디 매퍼가 오는 건가요?”

“어, 맞아. 자인이란 놈의 요괴, 에리카가 약속을 지킨다면 말이지.”

나는 인호의 표정을 새삼 살피며 말을 이었다.

“인호! 과거, 신디는 드웨인의 명령에 따라 인호를 공격하기도 했는데, 그리 적극적이지는 않았다고 했지? 실은, 신디는 지금도 자기 오빠들과는 달라. 아니, 오히려 그때보다 더욱 인호와 싸우기 싫어하고 있어. 그건…….”

「쥔님! 쥔님! 왔어요! 신디가 왔다구요!」

끄음. 안 그래도 인호에 대한 신디의 애정을 막 폭로하기도 뭐했는데, 마침 잘 되었군.

「장소는 주인님과 처음 만났던 숲! 신디 혼자 왔다는데요?」

“신디가 온 모양이네. 일단 가보자.”

나는 연락이 온 몽드폰을 들어 보이며 앞장서서 움직이기 시작했고, 인호가 누구보다 먼저 내 옆으로 따라붙고 있었다.


잠시 후.

이틀 전에 신디를 만났었던 숲 속에 도착하니, 신디가 자신의 요물 오스카와 함께 서 있었다. 그녀는 우리 일행이 다가가는 것을 보다가 인호와 눈이 마주쳤는지, 고개를 떨구고는 좀처럼 다시 들어 올리지를 못하는 모습이었다.

이런, 이런. 이건 또 뭐야. 인호 앞에서의 태도는 그렇다 쳐도, 복장이 뜻밖이네. 내가 ‘레이디 가가’를 연상했을 만큼 파격적인 날라리(?) 복장이었던 것에 비해, 지금의 ‘한복’ 차림은 훨씬 보기가 좋은 것이 사실이지만, 그게, 현재의 상황과 분위기에는 너무나 뜬금없고 생뚱맞아 보일뿐이란 것이 문제로군.

“신디!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네?”

내가 조금 어색하게 웃으며 묻자, 신디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 저, 그냥, 이쪽에서 다들, 이렇게 입은 모습을 보니까, 저도 한번………….”

하아~ 그 어떤 상황에서도 인호에게는 최대한 예뻐 보이고 싶었다는 건가? 이 줄리엣 + 춘양 아가씨를 어쩌면 좋을꼬.

“신디!”

내가 망설이는 사이, 인호가 성큼 앞으로 나서고 있었다.

“오랜만이군.”

“아, 네. 인호,씨.”

인호의 담담한(과연?) 인사에 겨우 답한 신디는 잠시 입술을 깨물고만 있었고, 인호도 얼마간 그런 그녀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지켜보고 있는 우리 모두가 조마조마한 가운데, 인호가 먼저 침묵을 깼다.

“신디. 드웨인 매퍼, 그는 지금 어디에 있지?”

쯧. 더 다정한 인사가 오고갈 것이라고 생각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단도직입적인 거 아닌가 모르겠네.

“아, 저, 드웨인 오빠는.”

신디는 자신도 모르게 어딘가를 향해 시선을 던졌고, 인호의 날카로운 시선도 그 방향으로 번득였다. 하지만 나를 비롯한 누구의 눈에도 드웨인 매퍼의 모습이 들어오지는 않았다.

“저, 드웨인 오빠는 오늘 오지 않겠다고, 그랬어요. 조만간, 그러니까, 드웨인 오빠가 원하는 것을 인호씨가………….”

“신디!”

인호는 차갑게 신디의 말을 막더니, 짧게 한 호흡을 삼키고는 이글거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나는 당장 그를 만나게 될 거야. 지금 여기서 너를, 죽여서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