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4부 – 164화 : 위험한 남자, 유인호. (1)

극악서생 4부 – 164화 : 위험한 남자, 유인호. (1)


2. 위험한 남자, 유인호. (1)

매퍼 가문과의 결전이 본격화되기 직전에 확인된, 공포의(?) 4각 관계!

이런 우라질! 마신일, 이 인간! 결전 전에 껄끄러운 요소들을 잘 정리해주는 것 같아서 없던 정을 붙여 볼까 했더니, 결국에는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치다니, 내가 이 인간을 너무 13579로 봤나?

우리 측의 움직임을 약간 늦게 알려주는 정도의 어설픈 작전만 생각하다가 제대로 역공을 당한 셈이었다. 나는, 원판 녀석에서 시작되어

마신일까지도 이어질 수 있는 음흉계의 사발통문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는 점을 뼈저리게(?) 반성하면서 대기실로 나와야했다. 인호와 소희는 내가 마신일과 통화한 것을 눈치채고 약간 조마조마한 기분으로 기다리고 있는 듯 했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다. 어떤 것부터 들을래?”

애매하게 웃으며 묻자, 소희도 애매하게 마주 웃으며 대답했다.

“지금 마비서 아저씨와 통화하신 거 맞죠? 음~ 좋은 소식부터요.”

“어, 그게, 사실 좋은 소식도 나한테는 나쁜 소식이었어. 뭐냐하면, 너희들이 이번 일로 재단에서 짤릴 위험이 거의 없어진 거 같다는 소식이지.” 재단에서도 매퍼 가문을 ‘정화 대상’으로 바꿔 설정했다는 사실과 그 정화 업무에 자신들이 어영부영 반쯤(?) 정식으로 배정되었다는 얘기까지 듣게 된 소희는, 그야말로 뛸 듯이 기뻐했다.

“와아아~ 정말 다행이에요! 전 정말 많이 걱정했는데!”

소희는 즉시 마신일에게 감사 메시지를 날리는 것 같았고, 인호도 나름 안도하는 기색을 보이기는 했다. 그러나 소희에 비해서는 거의 무덤덤한 모습에 가까웠고, 소희는 그런 인호를 보며 입술을 삐죽였다.

“으이구~ 울 오빤 이럴 줄 알았어. 오빠! 오빤, 재단에서 징계 먹고 감봉 처리된다거나, 그런 건 별로 신경 쓰지도 않았지?”

“아, 나도 조금은.”

“조금? 조금으음? 지난달에도 오빠 때문에 감봉된 게 얼마였는지 알아? 오빤 풀때기만 먹고 살아도 괜찮은 사람인지 몰라도, 나는 아직 성장기야! 고기가 필요하다구, 꼬기!”

소희의 매우 현실적인 비난성 타박이 이어지자, 인호는 슬며시 딴청을 피우며 소희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소희는 그동안 인호 때문에 직장인 재단에서 징계 먹고 월급 깎인 것에 나름 한이 맺혔었는지, 인호의 지난 과오(?) 몇 가지를 늘어놓기도 했고, 나는 덕분에 인호의 성향을 조금 더 알게 되었다.

으음. 그러니까, 길에서 여자를 폭행하던 남자를 반 죽여 놓았다던가, 후미진 공원 구석의 불량 청소년들을 훈훈하게 선도하여 응급실로

보냈다던가, 소위 정의의 용자 스타일의 일탈 행동을 했었구먼. 그 정도야 나도 즐기는(?) 행동이지만, 나는 그걸 경찰에 들키지 않고 행하는데 비해, 이 친구는 그렇지가 못한 것이 문제인 모양이야.

“크흠! 인호가 잘못하긴 했구먼. 정의의 용자도 다 먹고 살면서 해야 하는 법이거늘!”

“그, 그쵸?”

소희는, 내가 편을 들어주는 것이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이 너무 발랄한(?) 모습을 보인 것이 민망했는지, 재빨리 표정을 수습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매우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느 정도 절제된 언행을 보이던 소희가 내 앞에서 이렇게 스스럼없는 모습을 보인 거 자체에 기분이 좋았던 것이다.

“아참! 그런데 유준 오빠.”

소희는, 잠깐 놓치고 있던 것을 기억해 내고는, 내게 물었다.

”마비서 아저씨가 저희들 일을 잘 처리해 주는 것이, 오빠께는 왜 나쁜 일이 되는 거죠?”

“어, 그게 실은, 너희들이 재단에서 짤리면, 내가 우리 지하무림으로 스카웃 해버릴 생각이었거든.”

“어머? 정말요? 그럼 연봉은 얼마나 제시하실 건데요?”

“음~ 네가 맨날 맨날, 이밥에 고깃국 먹을 수 있을 정도?”

“아하하~ 그거 진짜 매력적인 제안이네요!”

끄음. 연봉은 그렇다치고, 스카웃하고 싶은 마음은 진심인데, 이 녀석은 농담으로만 생각하는 것 같군. “그런데 유준 형님.”

인호 역시 나의 진지한(?) 스카웃 제의는 전혀 귀담아 듣지 않은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다른 소식도 있다고 하셨는데, 혹시 지연씨에 관한 얘깁니까?”

흠. 인호는 마신일이 지연양을 배제하고 일을 진행하라고 했을까봐 걱정하는 눈치로군.

“아니, 그것도 암묵적으로 허가된 거나 마찬가지야. 나와 마신일은 서로 모른 체하고 통화했지만, 슬며시 추가 파견 사원을 지연양 집으로 보낸 모양이야.”

“예? 추가 파견 사원이요? 그게 누군데요?”

소희가 먼저 물었고, 나는 씁쓸한 표정으로 ‘주혜원’의 등장을 알렸다.

“어머? 주혜 언니를요? 그럼 엄청나게 든든한 전력인데, 그게 왜 나쁜 소식이라고… 아?”

소희는 조금 늦게 문제를 깨달았는지, 애매하게 말을 멈추고 인호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작 문어발(?) 인호는 내게 송구스런 표정을 보이며 핀트가 어긋난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랬었군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유준 형님. 주혜가 형님께 무례하지 않도록, 제가 좀 더 주의를 주겠습니다.”

“응?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아, 물론, 주혜도 이번 일이 끝날 때까지는 형님의 명령에 따르도록, 그러한 점도 충분히 주지시키겠습니다.”

주혜원이 마신일의 말은 몰라도, 인호의 말은 잘 듣는 거 같으니까 그 점은 안심해도 되겠는 게 문제가 아니라! 젠장, 나도 헷갈렸네. 인호 이 친구, 진짜 문제가 뭔지를 전혀 모르고 있는 건가?

나는 계속 쓴웃음을 지울 수가 없었고, 소희가 슬며시 전자 전음을 보내왔다.

「’유준 오빠. 뭘 걱정하시는지 알겠어요. 주혜 언니가 오빠와 지연 언니 사이를 오해하기라도 하면, 그럼 정말 큰일이 날지도 모르겠어요.」 으음. 역시 소희는 감이 빠르구먼.

-그래. 소희, 네가 보기에도 인호가 지연양을 생각하는 마음이, 그러니까, 좀 남다른 거 같긴 하지?

「‘그게, 저도 우리 오빠의 깊은 속내까지는 모르겠지만, 오빠 입장에서는 할아버지의 유지를 이어받는다는 의미에서라도 지연 언니를 끝까지 보호해주고 싶은 마음일 거예요. 사실, 오해받기 딱 좋은 모습이기도하죠.」

소희도 나 못지않게 난감해하는 쓴웃음을 짓고 있었으나, 인호는 여전히 별다른 기색 없이 입을 열어, 지연 모녀와의 약속 시간을 알려왔다. 그리 멀지않은 동네이긴 했으나, 약속 시간에 맞추려면 약간 서둘러야 할 타이밍이었다.

-산드라!

생피 주스 한잔 마시면서 기다리고 있던 산드라가 재빨리 우리쪽으로 다가왔고, 곧이어 팟! 단거리 워프를 시켜주었다. 워프 된 곳은 근처의 아파트 주차장에서 대기중이던 ‘이동형 윈드 게이트 1호’ 차량의 내부였다.

「은사도객 8호! 손님들을 목적지까지 신속하고 안락하게 모시세용! 오라잇~!」

요몽의 장난기 섞인 외침대로, 이동형 게이트 1호는 매우 안정적인 엔진음과 함께 우리를 목적지로 이송해 주기 시작했다. 소희는 차가 달리는 중인지도 잘 모르겠다며 작은 차창 너머를 확인하기 바빴지만, 나는 첫 시승하게 된 1호차의 승차감을 즐길 여유를 가지기 어려웠다.

주혜원, 아니, 본명은 ‘주혜’. 그 불안정하고 과격한 아가씨도 인호 앞에서는 얌전한 고양이가 되긴 하지. 평소라면 나도 얼추 다룰 수 있을 정도로 순진한 구석도 많은 아가씨야. 하지만 그녀가 폭주하기라도 하면? 그것도 다름 아닌 인호 때문에 그렇게 된다면, 그때는 인호도 진정시키기 어려울 것이고, 나 역시 감당할 자신이 별로 없어. 그녀의 발화 능력이 어지간해야 말이지.

「주인니임. 지금 막, 코드명 주혜, 그녀가 소희님께 메시지 연락을 해왔네요.」

요몽의 알림 직후, 소희가 내게 자신의 전화기를 내밀어 화면을 보여주었다.

“먼저 도착한 모양이군. 밖에서 따로 만나자고 하는 것이 좋겠다. 아, 그런데 주혜양도 지연 양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는 건 아니지?”

“예. 제가 얘기해 준 적이 있는데, 그때 주혜 언니는…………….”

그 사건에서 인호와 소희가 다친 것을 안타까워 하다가, 그러다가 끝에는 이렇게 물었다고?

‘그런데, 그 여자, 예뻐?”

끄으음. 역시 위험한 전조가 있었군. 지연 양은 뜬금없이 마계의 악령보다도 무서운 화염 악녀(?)를 만나게 될지도 모르고, 매퍼 가문의 ‘줄리엣 신디’도 진짜 줄리엣보다도 암담한 처지가 되어 버리는 거 아닌지 모르겄네. 마신일 그 인간, 왜 하필 이런 시국에 주혜를

「어? 주인님! 이것 좀 보세욧!」

요몽은 또 무슨 일로… 응? 뭐야?

요몽의 영상창은 아까처럼 지하철의 CCTV로 지연양을 비추고 있었는데, 상황이 뭔가 이상했다. 지연양은 물론이고, 다른 승객들까지도 놀라고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 하는 분위기였던 것이다.

「전철이 갑자기 멈춰버렸어요! 역에 도착하기 직전에 말예요!」

이, 이런! 설마 매퍼 가문 놈들이 나타난 건가? 난 매퍼 놈들이 지연양의 영상을 보여준 것은 일종의 뻥카이고, 놈들은 아직 한국에 와있지도 않다고 판단했어. 그래서 이렇게 어느 정도 여유있게 움직이고 있던 건데, 내 판단이 틀렸던 건가?

-요몽! 우리 현재 위치는?

「해당 전철역과 2킬로 정도 밖에 안되요. 근데 차가 지금 막 신호에 걸려서리!」

-8호! 뒷문 열어!

운전석의 은사도객 8호에게 전음을 보내면서 일어섰고, 그건 인호 남매도 마찬가지였다. 요몽이 소희의 스마트폰에도 같은 영상을 보내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호! 잠깐 내 말부터.”

쯧. 그냥 막 혼자 튀어 나가버리는군.

“소희야. 넌 천천히 따라와도 될 거야! 주혜양한테도 상황 알리고, 그쪽도 만일을 대비하라고 해!”

나는 소희에게 지시를 내리는 한편, 차안에 비치되어있던 무언가를 챙긴 다음에야 차에서 뛰어 내렸다. 곧바로 경공을 발동했기에, 빵빵대는 차들의

경적이 빠르게 멀어져갔다. 도로를 벗어나자마자 꽤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인도를 달려야 했지만, 나의 경공 속도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와우. 그동안 틈틈이 ‘도심 장애물(?) 경주’를 연습하시더니, 실제로도 완벽하게, 아, 아니, 울 주인님은 본래 실전에 더 강하시니까 당연한 건가요?」

우쒸! 요몽 녀석 때문에 정신 산란해서 실수할 뻔, 아, 암튼, 여긴가?

낯익은 지하철역의 입구에서 쏟아져 나오는 인파까지 뚫을 틈은 없어서 도약, 그들의 머리 위를 날아서 지하도 안으로 착지하자마자, 다시 질주! 얼핏 보인 역 이름은 ‘선X역’, 여긴 평범한 인간일 때 자주 왔던 역이라 그런지, 이런 식으로 오니까 더 기분이 묘하네. 그거야 어쨌든, 이쯤에서 잠시 멈추자!

나는 역사 안의 후미진 기둥 뒤에서 신형을 멈추었고, 나의 초고속 이동 때문에 상대적으로 거의 멈춘 것처럼 느껴졌던 사람들과 풍경이 다시 정상적인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은신술 모드를 발동하며 슬며시 기둥 그늘을 벗어나보니, 사람들이 웅성대며 내가 가려고 했던 방향으로 몰려들고 있는 중이었다.

「에고, 구경꾼들이 더 몰려들기 전에 가셔야하는 거 아닌가요? 인호님이 먼저 현장에 도착하셨지만, 아직 전철 안까지 진입하지는 못한

상황이에요.」

-됐고, 그보다, 매퍼 가문 놈들이 나타나서 일을 벌인 건 아니지?

「아, 예. 확실하진 않지만, 그런 거 같긴해요.」

그래. 처음 이상 발생 보고를 접했을 때는 순간적으로 매퍼 가문의 등장을 떠올렸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의 앞선 판단, ‘매퍼 놈들은 현재 한국에 없다’가 맞을 것 같았지. 그래서 인호만큼 서두르지는 않고 왔던 거고, 인호가 이미 현장 가까이 근접해있는 상태이니, 나는 전체적인 상황을 좀 체크해 봐야겠어.

-요몽. 내 예감이랄지, 직관력이랄지, 하여간 이번에도 우연한 사건을 겹치게 해서 날 피곤하게 하려는 타임씨의 농간이었을 거 같은데, 어떠냐? 「그게요, 타임씨 장난인지는 몰라도, 주인님과 별로 상관없는 사건이긴 했나봐요. 저기 저,이상한 사람 보이시죠? 저 사람이… 아, 또 시작이네!

정말 나빠!」

요몽이 가리키는 쪽을 보니, 웬 건장한 남자 한 명이 딱 봐도 술 취한 모습으로 입에 걸레를 물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 앞에는 안전 요원으로 보이는 남자들이 몇 명 있었으나, 다들 이를 악물고 분을 참으면서 그를 에워싸고 있을 뿐, 적극적으로 제압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저 미친, 이상한 남자가 행패를 부리다가 안전 요원 한 명을 떠밀어서, 그 분이 철로로 떨어지기까지 했어요! 웬일인지 전철이 저렇게 멈춰서 다행이었지만, 으익! 그러고도 또 저렇게 정신을 못 차리고 계속… 아, 역시!」

나는 챙겨왔던 ‘각시탈’을 간만에 얼굴에 쓰면서 술 취한 멍멍이 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고, 요몽은 신나게 외쳤다.

「경찰 분들은 7분후 도착 예정! 제가 교란 작전을 펴면 도착을 늦출 수 있는데!」

-해라, 교란 작전.

때마침, 술 취한 멍멍이는 안전 요원들을 뿌리치고 달아나기 시작했으며, 또 마침, 내 쪽이었다.


10여분 정도 후.

“저, 저기, 각시탈 선생님. 그만 진정하시죠.”

보다 못한 안전요원들 중에서 가장 고참인듯한 남자가 나를 말리며 그렇게 말했고, 나는 그제야 술 취한 멍멍이 밟기를 멈추었다.

“저희가 경찰을 불렀으니, 자리를 피하시는 편이.”

“아, 그럴까요? 저도 좀 바빠서 가 보긴 해야겠습니다.”

“각시탈 소문은 들었는데, 진짜 일 줄은 몰랐습니다. 사회 정의구현에 애 많이 쓰십니다 그려.”

“별말씀을.”

으음. 내가 최근에 각시탈 쓰고 ‘칼시탈 혹은 군시탈’ 활동을 몇 번 하긴 했지만, 벌써 오프라인에서도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을 줄은 몰랐네. 「쥔님! 쥔님! 나서신 김에, 여기 이 파렴치범도 처리해 주세염!」

요몽은 구경꾼들 중에서 매우 멀끔한 신사 한 명을 가리켰고, 나는 대뜸 그의 멱살과 혈도를 동시에 잡아서 무릎을 꿇렸다.

“저기, 이 남자도 경찰에 넘기고, 스마트폰을 조사해 보라고 해주세요. 아마 많은 여자분들 사진이 나올 겁니다.”

나는 안전요원들에게 말한 거지만, 주변의 구경꾼들이 모두 듣고 여자들이 몸서리치며 물러섰다. 그러나 그녀들의 손에 들린 스마트폰은 그 와중에도 부지런히 ‘몰카 촬영범’의 얼굴을 찍고 있는 것 같았다.

「주인님! 저런 이상한 사람들, 꽤 많아요. 앞으로는 주인님께서 가끔 지하철 순례를 하면서 혼내주세요!」

-그려. 시간나는 대로 그래야겠다,가, 아니라! 난 정의의 사도가 아니래두!

「에이~ 누가 봐도 빤한데, 괜히 아닌 척 발뺌하시기는!」

-오늘은, 그냥 여기 온 김에, 하여간, 이젠 정말 무지 심심할 때만 각시탈 쓸거야!

나는 일단 화장실 쪽으로 달렸고,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다시 경공과 은신술을 발동하여 사람들의 관심권에서 탈출해 버렸다. 지연양쪽 상황이 궁금하긴 했으나, 아무래도 나까지 지원해줘야 할 상황은 아니다 싶어서 그냥 역 바깥까지 나가서 근처의 건물 안으로 짱박혀 버렸다. 

「쥔님! 인호님쪽 영상, 다시 나갑니당!」

술 취한 멍멍이에 의한 돌발 상황, 이걸 타임씨가 나를 직접 노리고 장난쳤다고 하기에는 뭔가 애매하지? 이건 아무래도・・・ 음, 그래. 인호와 지연양을 위한 이벤트였었던 모양이군. 저거, 저거 봐. 아주 영화를(?) 찍고 있잖아?

전철은 역에 거의 다 도착해서 멈춘 것이었고, 맨 앞칸의 일부만이 역으로 들어와 있는 상태였다. 역 안으로 단하나 열려져있는 출입문으로는 당연히 수많은 승객들이 꾸역꾸역 밀려 나오고 있었으며, 인호는 물밀 듯 밀려나오는 대피 군중을 용케도 뚫고 나아가더니, 사람들에게 떠밀려 힘들어하는 지연양을 만나는데 성공하고 있었다.

-요몽. 배경 음악 좀 깔아봐라. 뭔가 애절하면서도 극적인 걸로.

「넵!」

내가 주문한, 애절하면서도 극적인 음악이다 싶은 배경음 속에서, 인호는 지연양을 온몸으로 보호하며 인파를 헤쳐 나오기 시작했다. 인호는 대피에 올인한 군중의 압박을 온몸으로 막아내는 한편, 사방 어딘가에 숨어있을지도 모를 적의 습격까지 경계하느라 정신이 없는 모습이었으나, 지연양의 시선은 그런 인호에게만 고정되어있는 것처럼 보였다.

「오오~ 수백 수천의 무리 속에서 어린 새처럼 떨고만 있던 그녀가, 드디어 재회한 왕자님의 품에 보호받으며 그녀만의 평화로움과 무한한 애정이 차올라 어찌할 바 모르고 수줍은 눈동자에 왕자님의 얼굴만을 담고 있는……………」

-요몽! ‘데릭’스럽게 오버하지마라. 음~ 그게, 지연양이 인호를 낯선 남자로 보지 않는 거 같긴 하다만.

-헤에. 그쵸? 극적인 상황에서 만났었던 사이라서, 이렇게 나름 극적인 상황에서 기억이 되살아난 거 아닐까염?」

하아~ 정말 그런 건지도 모르지. 하필, 주혜가, 그 무지막지 위험한 연적(?)께서 두 눈 시퍼렇게 뜨고 기다리는 시점에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