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4부 – 81화 : 블랙이 남긴 것. (2)
4. 블랙이 남긴 것. (2)
길모르의 과거를 전혀 모르고 있다가 놀란 것은, 우리뿐 아니라 같은 에레보스 멤버들도 마찬가지 인 것 같았다. 「팩트 체크! 닥터 제이에게 확인할게요!」
대화를 지켜보던 요몽이 나름 발 빠르게 나섰고, 나는 결과 보고를 기다리지 못하고 신의 전차 본인에게 물었다.
“그게 사실이오? 그렇다면 당신은 대체 왜 그런 몸이… 아, 하여간 어찌 된 거요?”
실험체를 비하하는 듯한 표현을 자제하려자니, 말이 좀 꼬였지만 나와 다른 모든 이들의 궁금증을 표현하기에는 충분하지 싶었다.
“별다른 건 없소. 나와 그 아이들의 차이는, 실험체가 되는 시기만 달랐을 뿐이오.”
「주인님! 닥터 제이로부터의 답신 메시지예요!」
신의 전차 길모르는 비교적 담담하게 말하고 있었지만, 나와 모두의 시선은 그로부터 쉽게 거두어질 수 없었다.
SF영화 같은데 나오는 악역, 미친 과학자든 그 미친 과학자를 지배하는 두목이든, 최종적으로는 자기 자신의 몸에도 실험을 하여, 스스로 최강의 괴물이 되려는 시도를 하지. 그러나 이 남자 길모르는 아무래도 그런 성격이 아닌 것 같아. 그렇다면……하다
「주인님! 닥터 제이로부터 통화 요청이예요!」
-연결해
「“유준군? 길모르, 길모르 에스테반스. 그 친구가 아직 살아있던가?”」
-아, 예. 역시 아는 사람이 맞는 모양이군요.
「“그래. 내가 인정하는 최고의 과학자였다고 할까? 프리메이슨 같은 곳에 두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친구여서, 내가 없는 사이에 실험 중 사고로 사망했다고 했을 때는, 나도 정말 오래도록 우울했었지.”」
닥터제이가 인정하는 ‘최고의 과학자라? 이거야 원. 이건 은근두뇌파 정도가 아니잖아?
「“보아하니, 길모르가 살아있었던 건 물론이고, 에레보스의 일원이라도 되었었던 모양이군.”」
따로 설명할 필요 없어서 좋군요. 지금 면담중이니까, 이따 다시 통화하기로 하죠.
「“알겠네. 하핫. 난 그 친구와의 재회를, 여기 이 인천미녀와 축하하며 기다리고 있겠네.”」
뭐야, 이 양반. 그런 축하를 왜 우리 은사도객 13호와 한다는 건데?
나는, 내 이모부이기도 한 닥터 제이의 바람기(?)가 심하게 거슬렸지만, 지금은 그걸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나는 길모르에게 몽드폰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방금 닥터 제이와 통화했는데, 당신을 무척 보고 싶어 하네요. 함께 가실랍니까?”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고개를 끄덕여주는군. 하긴, 첨부터 그럴 생각이었으니까, 자기가 먼저 닥터 제이를 언급했겠지?
이제 순서상, 내가 직접 싸워보지 못한 세 번째 멤버, 부식의 인어와 면담할 차례였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돌아보았더니, 인어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살포시 웃기부터 했다. 나는 마주 싱겁게 웃어주기는 했으나, 왠지 힘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미안하지만, 댁과의 면담은 조금 미룹시다.”
“네에~ 상관~ 없어요오~”
제, 젠장. 저 귀신 목소리를 나오게 하는 항균 마스크부터 다른 걸로 교체하라고 해야겠다.
나는 절로 떠오르는 쓴웃음을 애써 지우며, 모두를 돌아보았다.
“난 여러분들과 하고 싶은 얘기가 꽤 많아. 그건 여러분들도 마찬가지 일거라고 생각하지만, 아무래도 시간이 좀 늦은 거 같네. 그러니까, 일단은 우리 모두 저기로 가서…….”
나는 엄지손가락을 세워, 내 어깨 너머 등 뒤의 바다를 가리켰고, 그 바다에는 우리 흑해1호가 가까이 정박해 있었다.
“밥 먹고 합시다.”
얼마 후.
우리의 흑해1호는, 나와 에레보스의 결전이 있었던 섬들을 떠나 중국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대교와 함께 선미 쪽 갑판에 나와 있었으며, 우리 앞의 뱃전에는 부식의 인어가 서있었다.
“미안하지만, 당신을 위한 선실은 조금 더 기다려 줘야 할 거 같네.”
“후후. 걱정하지 마세요. 전 이곳이 더 좋으니까요.”
여긴 배의 선미 쪽이라 바람이 인어의 병균들을 배 바깥으로 밀어낼 수 있는 장소였다. 그래서 항균 마스크를 벗은 상태로 말하고 있는 부식의 인어 목소리는 이제 귀신같지 않았고, 오히려 듣는 이를 설레게 할 정도로 매력적인 울림이 있었다.
으으음. 이 인어 아가씨, 아까 바다 속에 있을 때 정도는 아닌데, 그래도 여전히 꽤나 위협적인 매혹의 기운을 발산하고 있군. 기본 미모는 둘째치고, 이건 아무래도, 뱀파이어 귀부인 카라의 마력처럼 초자연적인 기운인 거 같아.
「오우~ 역시 짱! 성별을 알 수 없다는 점이, 오히려 더 신비로운 매력을 증폭시키는 거 같아요!」
요몽 녀석. 상대의 성별이 판단 불가임이 드러났는데도 오히려 더 열광하는군. 그러나 나 같은 경우는, 겨울의 여왕 나타샤가 ‘부식의 인어도 남자’라고 했던 기억 때문에 얼마간 흔들리기는 했어도, 결국에는 자연스럽게 여자라고 인식이 되어버려. 그래서 아까 요몽이 부식의 인어를
꽃돌이로 인식하고 감탄할 때, 나는 ‘긍정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던 거고 말야.
「주인님! 그런데 이 부식의 인어씨는 정말 남자인건가요, 여자인건가요?」
-글쎄? 몽몽의 스캔으로도 알 수가 없다니, 난들 알겠냐.
「우웅~ 저야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그래도 궁금하긴 하네요.」
인어의 성별과 정체에 대한 단서가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 단서들로 의심할 수 있는 두 가지의 가능성이 상당히 난감했다.
난 서울에서 이 부식의 인어를 처음 만났을 때, ‘죽은 시체 같은 섬뜩함을 느꼈었지. 그런데 오늘 보니까, 저 인어가 그런 상태였던 건 고향인 바다를 멀리하고 지내온 시간 때문이었던 것 같아. 그 증거로, 인어는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날 기다리는 동안에 시체 같은 모습이 사라지고 요몽이 열광할 정도의 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지. 그리고 처키 때문에 아예 바다로 들어가게 된 후에는 더욱 꽃처럼 피어나면서 처음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른 사람, 아니 다른 존재가 되어버린 상태야.
“코드명 부식의 인어. 당신의 이름은?”
“갈라테아(Galatea). 하지만 연구소 사람들이 지어준 이름이에요, 본명은 저도 기억하지 못해요.”
연구소?
“좋아요, 갈라테아. 당신은 그 부식 능력, 그걸 가지게 되기 전에도 다른 능력을 가진… 그러니까, 우리 아쿠아린 형제나 세이렌 자매처럼 수중형 돌연변이체였던 거요?”
“아니요. 역시 전 기억 못하지만, 연구소 사람들은, 자신들이 절 만든 건 아니라고 했어요.”
“그, 렇 다면, 당신 혹시, 진짜 인어?”
“아마도요.”
하아아~ 이거야 원. 최근 몇 년 동안 내가 겪어야했던, 그 수많은 황당무침, 썰렁무쌍의 경험들 때문에, ‘이제 인어 정도야, 뭐 그런 기분이 들기도 하네. 그렇지만, 프리메이슨에 의해 양식(?)된 것이 아닌, ‘자연산(?) 인어’라니까 왠지 느낌이 남다르달까?
“전 프리메이슨 연구소 중의 한곳에서 깨어나기 전까지의 기억이 없어요. 그래서 제가 정말 바다에서 태어난 인어인지도 알 수 없지요. 그래도 항상 바다를 그리워하면서 울곤 했어요. 연구소 사람들이 계속 제 몸을 조사하고 뭔가 실험하는 것도 끔찍하게 싫었고요. 그러다가…….”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고백하는 인어 아가씨의 눈에서, 언제부터인가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입으로는 과거 얘기를 계속 하면서도 애잔하게 흐르는 눈물은 멈추지가 않아서, 나와 대교는 더 이상 듣고 있기가 어려워져갔다.
우띠! 내가 뭘 어떤 것도 아닌데, 공연히 꿀꿀해져서 안 되겠네.
“처키! 좀 나와 봐라!”
내가 소리쳐 부르자, 처음부터 선실로 통하는 문 뒤에 숨어있던 처키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냈다.
“아하핫. 제가 온 거, 알고 계셨네요?”
“처키, 너에게는 당분간 저 인어 누님을 위로해주는 임무를 맡기마.”
“헤에. 알겠습니다, 왕대장.”
난 장난스럽게 경례를 붙이는 처키에게 답례를 해준 다음에, 대교와 함께 선내로 들어와 버렸다.
「호오~ 주인님께선 벌써 ‘인키 커플’ 인정이신가요오?」
-됐거든? 요몽. 넌 저녁 먹으러 안 가냐?
「아, 가긴 가야죠. 다른 이들의 개별 면담은 식사 후에 계속 하실 건가요?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이탈자를 막기 위해서, 식신의 요리를 대접하는 사악한 전술을…..
-몽몽. 자꾸 천기를 누설하는 요몽의 입을, 밥으로 막아라.
결국 요몽은 다시 체포되어 사라졌고, 나와 대교는 우리의 선실로 향했다. 우리의 도착에 맞춰 차려지는 식신의 요리 덕분에, 약간 심란해졌던 마음을 빠르게 추스를 수가 있었다.
“대교, 있잖아.”
나는 몇 번째인가의 요리 접시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인어 갈라테아, 그 친구는 아무래도 빼는 것이 낫겠지?”
“예, 제 생각도 그래요. 우리의 싸움에 참여시키기에는, 너무나 여린 심성을 가진 사람인 듯해요.”
“그치? 그 문제의 부식 능력도, 이젠 많이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니까, 이젠 정말 고향인 바다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 옳겠지.”
인어의 부식 능력. 살아있는 생명체는 물론이고, 플라스틱까지 분해해 버리는 그 무서운 능력은, 사실 프리메이슨에서도 일부러 그런 걸 개발해서 인어에게 부여한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본래 끝없이 넓은 바다 속에서, 자유롭게 살던 인어의 본질 때문일까? 인어 아가씨는 대략 1년 정도의 연구소 수족관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 충동을 일으키기 시작했다지? 세세한 과정을 들을 수는 없었지만, 저 마력에 가까운 매혹 능력을 이용해서 남자 연구원 하나를 꼬드겼고, 수족관에서 나오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었던 모양이야. 하지만 프리메이슨 보안이, 그렇게 쉽게 외부 탈출까지 허용할 정도로 허술하진 않았겠지.
그런 현실을 깨닫고 말고 할 것도 없이, 그때의 인어는 탈출할 생각도 없었다고 했다. 그녀는 수족관 채 여기저기 옮겨 다닐 때, 봐놓았던 어떤 장소, 다들 ‘저주받은 연못’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자살해 버릴 생각이었다고 한다.
인어의 진술만으로는 확실하지 않지만, 그 저주받은 연못이라는 곳은, 연구소의 다른 연구시설에서 파생된 폐기물을 모아서 처리하는 장소였던 모양이야. 거기까지 어찌어찌 간 인어는 그대로 주저 없이 퐁당~ 해버렸다나? ‘무엇이든 순식간에 분해되어 사라질 것’이라는 연구소 사람들의 말을 믿고 그랬다는 건데, 우찌된 것이 인어는 죽기는커녕, 그 엄청난 미생물들과 바이러스 대군이 그녀의 신체와 공생공존 상태가 되어 버렸다나? “전 정말 슬펐어요. 바다로 돌아 갈 수 없다면,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저는 죽지 않고, 계속 다른 사람들의 죽음만 지켜봐야 했죠.” 인어는 그렇게 말했다. 그럴만했다. 자살 실패로 낙심한 그녀가 다시 저주받은 연못에서 나왔을 때, 그녀는 프리메이슨에서 연구 중이던 미생물들과 바이러스의 집합체가 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제발 저 좀 죽여주세요.’라며 돌아다니는 그녀 때문에 순식간에 부식되어 무너지기 시작하는 연구소 시설들, 썩고 병들어 메롱되는 연구소
인간들…! 어이없는 웃음이 나오기도 하지만, 너무나 무섭고 슬프기도 한 상황이었다고 할까? 웃프? 웃공? 공프? 에고, 무르겠다. 여하튼, 그 연구소는 우리의 자살 지망생 인어 양에 의해 초토화되고, 인어 아가씨는 아가씨대로, 다른 프리메이슨 조직에 포획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자유를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아니, 그나마 다행이랄까요? 누군가 그녀에게 부식 능력을 쓰지 않고도,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방법을 일러 주었으니 말예요. 그래서 그녀가 아직까지 슬픈 마음을 안고서도 살아 올 수 있었나 봐요.”
대교가 지금 언급한 부식 능력을 쓰지 않고도, 남을 제압하는 방법’이란, 발경까지 포함한 무공을 뜻한다.
“그거, 누가 그랬는지는 뻔하지 뭐.”
“예?”
나는 몽드폰을 들고, 닥터 제이를 호출했다.
“아, 유준군?”
“닥터 제이! 부식의 인어 아시죠?”
“부식의 인어? 에레보스의? 글쎄? 난 기억이 잘…….”
“태극권 비슷한 동작으로 발경까지 쓰는 인어 아가씨!”
“응? 인어가 발경을? 어, 그러고 보니, 지금처럼 한 잔 마신 상태에서, 낯선 인어를 만난일이 있었던 거 같기도…….”
“네에. 알겠습니다아.”
난 닥터 제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냥 전화를 툭 끊어 버렸고, 대교는 잠시 어이없어 하다가 결국 쿡쿡 웃었다. “뭐, 인어 아가씨 체크는, 이 정도면 되겠지? 이제 다른 멤버들을…….”
“아, 잠시만요, 오라버니.”
응?
“처키요. 처키는 어쩌지요?”
“아, 처키? 그을세? 걔네들이 서로 첫눈에 뻑… 아니, 하여간. 오늘 처음 만난 녀석들치곤, 뭔가 좋은 분위기인 건 알겠어.”
“후훗. 그렇지요? 운명적인 만남에는, 만남의 횟수나 기간은 중요치 않는 경우도 많잖아요.”
이런 대교도 요몽처럼, 처키와 인어 아가씨 사이의 묘한 기류를, 연애질로 판단한 건가? 그렇지만, 나는 어째 두 녀석의 관계를 그런 식으로는 받아들이기가 좀…….
“저기, 대교. 어쩌니저쩌니 해도, 걔들은 오늘 처음으로 만났을 뿐이잖아. 각자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도 많고, 암튼 우리가 너무 앞서서 신경 쓸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아.”
“그럴까요?”
훗. 내 말에 더 토를 달고 싶지 않아서 입을 다무는 것뿐, 꽤 아쉬워하는 눈치로군. 나도 종종 아줌마군황 모드가 되곤 하지만, 진짜 여자분의 ‘남들 연애사에 대한 관심도는 따라잡지 못하는 건가?
「주인니임! 저 왔어요오!」
-어, 요몽. 밥은 잘 먹었고?
「그럼요. 그리고 조금 전에 대부분의 에레보스 멤버들도 식사를 다 마쳤어요. 이제 다시 면담 진행하실래요?」
-글쎄? 밥 먹고 하자고 한건 나였지만, 사실 내가 급하게 면담하고 싶었던 건, 오늘 내가 직접 싸워보지 못한 세 명뿐이었어. 이젠 그냥 그들이 먼저 요청하는 순서대로 하는 게 좋겠다.
「오홋. 배부르시니, 귀차니즘이 발동하셨군요. 하긴, 현재 에레보스 멤버들은 돌아갈 곳도 없고, 주인님과 블랙씨의 물밑 밀약의, 거미줄에 걸린
신세들이니, 천천히 포섭해도 괜찮기는 할 거 같네요.」
-요몽! 몽몽 부를까?
「아, 아뇨. 헤헤. 죄송.」
-됐고, 그보다 궁금하긴 하네. 다들 지금 뭐하냐?
내가 묻자, 요몽은 즉시 모니터 몇 개를 동시에 띄워 주었다.
보자보자~ 우리 초롱이는, 흠. 다행히 새로운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있는 모양이군. 저긴 CR들이 전부 모여 있는 거대 창고형 선실이고, 전체적으로 아직 식사가 끝나지 않은 상황이야. 초롱이가 또래의 친구들과 어울려 즐거워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문가에 서있는 커플은 시그마와 산드라 커플. 어째, 초보 학부모가 처음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흐뭇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는 장면 같군, 그래.
또 다른 모니터는 선미 쪽 갑판을 비추고 있었으며, 예상대로 꽃사탄 처키와 인어 아가씨가 다정하게 나란히 앉아 뭔가를 함께 먹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인 것은 그들 앞에 또 다른 소녀 두 명이 가깝게 앉아있다는 점이었다.
그렇군. 저 녀석들이라면 인어 아가씨 가까이 접근해도 문제없겠어. 내게는 낯선 얼굴이고 체형도 각성 전보다 상당히 작아져서 처키 비슷해 보이기는 하지만, 저 간호사 복장만 봐도 누군지 쉽게 알겠어. 강력한 ‘치유와 악화’ 능력을 가진 ‘나이팅게일 자매’. 지들 마음에 든 천음마군만 사탕화하여 치료해주고, 동료들조차 치유 혜택을 잘 안준다는 까칠자매들인데, 인어 아가씨는 자신들과 같은 계열로 느껴지는 걸까? 어…? 그러고 보니 주변에 또 다른 녀석들도 있잖아?
그들로부터 약간 떨어진 위치이긴 해도, 같은 선미의 난간에 아슬아슬하게 걸터앉아있는 녀석들도 함께 어울리고 싶어 하는 기색이 보이고 있었다. 저들이야말로 인어 아가씨의 진짜 동족이라고 할 수 있는 ‘양식 인어(?)’, 아쿠아린 형제와 세이렌 자매들이었다.
인어 아가씨가 생각보다 인기가 좋군. 아, 그러고 보니, 이런 가능성도 있겠구나. 닥터 제이한테 또 전화해보자. 「“유준군? 이번엔 또 무슨…….”」
-CR들 중에서 바다에서 노는 아이들 있죠? 걔들 만들 때 혹시 진짜 인어의 유전자가 쓰였던 거 아닙니까?
「“그건, 그렇기는 한데…….”」
-넵! 알겠습니다!
이번에도 닥터 제이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툭 끊어버렸다.
「오호~ 음흉꾸러기 닥터 제이에게, 주인님 나름의 반격을 시작하신 건가요?」
-이정도 가지고 반격은 무슨.
난 가볍게 대꾸해 주며, 마지막 세 번째 모니터로 시선을 옮겼다. 남은 다섯 명의 에레보스 멤버들이, 신의 전차 길 반장을 중심으로 뭔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확인되고 있었다. 그런데 난 왠지 그들에게 집중이 되지 않았다.
뭐…지? 왜 문득, 이상한, 허전한 기분이 들기 시작하는 거지? 지금 나에게 에레보스들을 신경 쓰는 것보다 중요한, 뭔가 그런 게 있는데 잊고 있는… 그런 거 같은 기분이 드는데… 뭐, 지? 그게… 아, 가만? 내가 왜 이걸 잊고 있었지?
나는 비로소 뭔가 생각해내고, 전투복 바지의 건빵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잠시 후 나온 내 손에는 아까 블랙에게 받았던 작열탄이 들려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