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1권 – 33화 : 사제 재회(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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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왕전생 1권 – 33화 : 사제 재회(5)


사제 재회(5)

재료가 다 준비되자 그는 본격적인 요리에 들 어갔다. 고추잡채는 고추와 쇠고기, 버섯 등에 밑간을 하고 한차례 볶은 뒤에, 간장을 넣어 간 을 맞췄다.

설우진은 재료들을 다 볶아 낸 뒤, 그 안에 간 장과 더불어 특수한 한 가지 향신료를 첨가했 다. 오랜만에 재회한 사부를 위해 준비한 선물 이었다.

“여기 안주 나왔습니다.”

“이건 고추잡채 아니냐? 가려는 못 만드는 음식인데.”

“제자가 솜씨를 좀 발휘해 봤습니다.”

“호오, 요리도 할 줄 알았던 게냐? 정말 팔방 미인이 따로 없구나.”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주천기가 설우진을 반갑게 맞이했다. 그는 한껏 제자 자랑을 늘어 놓은 뒤, 고추잡채를 듬뿍 집어 올렸다.

그런데, 입으로 가져가려는 순간 거짓말처럼 고추잡채가 사라졌다. 범인은 맞은편에 심통맞 은 표정으로 앉아 있던 팽천호였다.

“좋은 음식이 나왔으면 손님부터 권하는 게 예의지.”

팽천호가 당당하게 고추잡채를 입으로 가져 갔다. 그리고 그 맛을 음미하듯 천천히 씹었다.

사실, 고추잡채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요리였 다.

그래서 식당을 정할 때도 고추잡채가 되는 곳 부터 우선적으로 찾았다.

“음, 간이 꽤 잘 배어들었군. 게다가 고기의 질감도 아주 훌륭해. 조리 시간이 조금만 길어 져도 쇠고기는 질겨지기 마련인데, 이건 아주 부드러워.”

“입맛에 맞으신다니 다행입니다. 넉넉히 조리 했으니 양껏 드십시오.”

“고놈 참, 보면 볼수록 맘에 드네. 언제라도 맘이 바뀌면 얘기해라. 제자로 삼아 줄 테니.”

‘농담이라도 그런 말씀 마십시오. 감각도를 익히기 위해 보냈던 수많은 시간들. 아직도 제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아 닌 말로 제 감각도가 사부의 것보다 더 나은데 뭘 배웁니까!’

설우진은 속내를 감춘 채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회귀 전, 그의 감각도는 완성형에 가깝게 성장했다.

팽천호가 전수해 준 뼈대에 수많은 실전을 통해살을 더한 것이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낭왕 의 대표절기, 야수감각도다.

그런 사정도 모른 채 팽천호는 계속 제자가 되라고 요구하며 고추잡채를 집어 먹었다. 그 의 입맛에 딱 맞게 조리한 것이라 팽천호의 입 은 쉴 새가 없었다.

어느새, 접시 가득 쌓여 있던 고추잡채가 바 닥을 드러냈다.


푸드득 푸드득.

이른 새벽.

화장실 안에서 요란한 소리와 함께 코를 찌르 는 악취가 밖으로 새어 나왔다. 근처에서 꿀잠 을 자고 있던 고양이가 놀라 도망칠 정도였다.

“대, 대체 이놈의 장이 왜 이러지? 상한 음식 을 먹은 것도 없는데.”

팽천호가 눈에 띄게 초췌해진 얼굴로 아랫배 를 움켜쥐었다.

그는 자시를 넘겨 잠자리에 들었다. 기분 좋 게 취한 터라 눈을 감기 무섭게 잠이 들었다. 그런데 묘시 무렵부터 갑자기 배 속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화장실이 급하다는 신호였다. 처음 엔 그냥 무시하려 했다. 방에서 화장실까지 꽤 거리가 있어서였다.

한데, 갈수록 신호가 강해졌다.

정신력으로 참아 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기 에 바지를 부여잡고 화장실로 달렸다. 다행히 대형 사고가 터지기 전에 화장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이후였다.

제대로 탈이 났는지 볼일을 보고 일어서기 무 섭게 다시 배에서 신호가 왔다. 덕분에 그는 거 의 반 시진에 가까운 시간을 화장실에서 쪼그 려 앉아 보내야 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입이 바짝바짝 탔다.

의뢰를 수행하다 옆구리에 칼을 맞았을 때보 다 더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웠다.

‘천기 놈하고 똑같이 마시고 먹었는데, 대체 왜 나만 이러는 거야. 혹시 그 자식, 내 술에만 몰래 약 탄 거 아니야?’

팽천호는 주천기를 의심했다.

비싼 설삼주를 훔쳐 먹은 데 대한 보복이라고 생각하면 앞뒤가 딱딱 들어맞았다.


아침 식사 자리.

주호장의 식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집주인인 주천기와 주가려가 식탁 왼편에 앉 고, 그 맞은편에 설우진과 팽천호가 앉았다. 

“쯧쯧, 널 보고 있으면 확실히 나이는 못 속이 는 모양이다. 어제 얼마나 마셨다고 얼굴이 반 쪽이 됐냐!”

주천기가 혀를 차며 팽천호를 놀려 댔다.

“너, 너 이 자식!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냐?

내가 이렇게 된 게 다 누구 탓인데.”

“그럼 네가 그 꼴이 된 게 내 탓이라고?”

“발뺌할 생각 마라. 네가 어제 약 탄 술을 주 는 바람에 이 꼴이 됐잖아.”

팽천호가 사납게 눈을 치켜뜨고 새벽녘에 있 던 대참사를 추궁했다.

“무슨 말 같지 않은 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왜 네 술에 약을 타?”

“너, 내가 설삼주 훔쳐 먹었다고 열 받아 있었 잖아. 그거면 충분한 동기가 된다고 보는데.” 

아침부터 둘 사이에 팽팽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자주 봐서인지 주가려는 태연한 얼굴로 식사에 열중했고 오히려 손님인 설우진이 안절부절못하고 두 사람의 눈치를 봤 다.

‘밤새 약발이 제대로 먹혔나 보네. 사부, 만수 무강을 바라는 옛 제자의 마음입니다. 새벽에 볼일 보느라 고생 좀 하셨겠지만, 며칠 지나면 오히려 몸이 가뿐해지는 걸 느끼실 겁니다.’ 설우진이 지난밤에 고추잡채에 첨가한 특별 한 향신료는 비차였다. 비차는 향이 강하지 않 아 널리 쓰이지는 않지만, 배변 활동에 큰 도움 을 줘 변비로 고생하는 여성들이 즐겨 먹었다. 그런데 문제는 비차를 한꺼번에 많이 먹었을 때 발생한다. 비차가 장을 과도하게 자극해 설 사를 동반한 배탈이 나는 것이다.

팽천호의 경우가 딱 그 안 좋은 예였다.

팽천호는 지난밤에 비차가 잔뜩 들어간 고추 잡채를 거의 혼자 들이부었다. 주천기도 몇 점 집어먹기는 했지만 그에 비하면 아주 극소량이 었다.

“인마, 내가 가려 다음으로 아끼는 게 요 술이다. 근데 미쳤다고 너 하나 잡자고 그 안에 약 따윌 타겠냐!”

계속되는 팽천호의 추궁에 주천기가 눈앞에 놓인 술병을 집어 들며 반박했다.

그 말에 팽천호는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가려 다음으로 술을 사랑한다는 친구의 말은 결코 거짓이 아니었다. 그건 아침 댓바람부터 술병을 끼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 었다.

‘그럼, 대체 누구지? 어젯밤 술자리에 있었던 건 천기 부녀랑 나 그리고 저 녀석뿐인데.’ 

주천기에 대한 의심을 푼 팽천호가 설우진 쪽 으로 고개를 돌렸다.

“너 혹시, 고추잡채에 이상한 거 넣었냐?” 

“이상한 거라뇨, 전 그저 어머니께 배운 대로 조리했을 뿐인데요.”

설우진은 기습적인 팽천호의 물음에도 얼굴 색 하나 변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말을 지어냈 다.

“이제 하다하다 내 제자까지 의심하냐? 천호 야, 나잇값 좀 해라. 애들 보기 창피하지도 않 냐.”

반대편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주천기가 대놓고 핀잔을 줬다. 때마침 주가려도 식사 를 끝마치고 팽천호를 쳐다보고 있었다.

“의, 의심이 아니라 그 자리에 있었으니까… …”

적잖게 당황한 얼굴로, 팽천호가 말꼬리를 흐 렸다.

그 모습에 설우진은 속으로 통쾌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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