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2권 – 13화 : 황룡승무연 (1)

랜덤 이미지

낭왕전생 2권 – 13화 : 황룡승무연 (1)


황룡승무연 (1)

펑펑펑.

요란한 폭죽 소리와 함께 황룡승무 연의 시작을 알리는 거리 행진이 시 작됐다.

황룡승무연에 참여하는 지 자 조와 인 자조의 관도들은 저마다 스스로 를 알릴 수 있는 깃발을 들고 서안 의 심장부인 곤룡대로를 가로질렀 다.

이맘때 황룡승무연이 열린다는 걸 알고 있었던 서안의 시민들은 집 밖으로 나와 그 행렬을 관심 있게 지 켜봤다.

‘쪽팔리게 이런 짓은 왜 하는 거 야.’

행렬의 후미 불만스러운 표정의 설 우진이 보였다. 그도 다른 동기들처 럼 경연을 상징하는 깃발을 들고 있 었는데 특이하게도 창파오를 입은 여인의 모습이 한가운데 수놓여 있 었다.

“우진아, 이대로 경연을 진행해도 되는 거야? 무대에 설 애들도 없는데.”

옆에서 조인창이 불안한 마음을 드 러냈다.

설우진이 이끄는 경연조는 어제 마지막으로 사전 준비를 위한 모임을 진행했었다.

그런데 마지막 날에도 기존 다섯 명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은 코빼기 도 비치지 않았다.

“그 계집들은 반드시 나타날 테니 까 걱정 마. 바보가 아닌 이상 추가 점수를 받기 위해서라도 분명 움직 일 거야.”

설우진은 창파오의 힘을 믿었다. 반 시진여 동안 진행된 행렬은 정 오를 앞둔 시점에 끝이 났다. 경연 참가자들은 조별로 뭉쳐 자신들에게 배정된 자리로 돌아갔다.

설우진과 그 조원들이 향한 곳은 연무장 구석 자리였다.

일부러 찾아가지 않고서는 눈에 잘 띄지도 않는, 경연 장소로는 그야말 로 최악의 위치였다.

“이거 너무한 거 아니야? 아무리 너한테 개인적인 감정이 있다고 해 도 이런 식으로 복수를 하는 건 정 말 치졸하잖아.”

자스민이 초라한 무대를 보고 앙칼 지게 성을 냈다. 그 대상은 중천회 주 백무영이었다. 입관 환영연 이후 그는 설우진이 하는 일마다 노골적 으로 훼방을 놨다.

이번 일만 해도 그랬다.

설우진은 애초에 경연 신청을 할 때 학관 입구 쪽에 무대를 내 달라 고 요청했었다.

사실 학관 입구는 경연 장소로는 그리 적합하지 않았다.

일단 공간이 협소한 데다 사람들이 오가는 길목이라 시선을 오랫동안 붙잡고 있기가 힘들어서다.

그런데 그 안 좋은 자리마저도 백 무영에 의해 빼앗겨 버렸다. 더 어 이가 없는 건 그렇게 빼앗긴 자리에 아무도 배정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 이다.

“너무 열 낼 것 없어. 어차피 우리 경연은 장소에 크게 구애를 받지 않 아. 일단 한 명의 눈에라도 띄면 그 걸로 승부는 끝이야.”

“대체 뭘 믿고 그렇게 호언장담하 는 거지?”

남궁벽이 답답했는지 그 속내를 물 었다.

이에 설우진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한곳을 가리켰다. 그의 손가 락을 따라 향한 곳, 그곳은 여관도 들이 단체로 머무는 기숙사였다. 저벅저벅.

넉넉한 품의 장포를 둘러쓴 여관도 들이 조심스럽게 무대를 향해 걸어 왔다. 안에 입은 옷이 어색한지 자 꾸만 주변의 눈을 의식했다.

잠시 후 그녀들이 경연장에 도착했 다.

“왜 이제야 온 거야? 너희들 기다 리느라 코가 빠지는 줄 알았잖아.” 

자스민이 여관도들을 보며 푸념 섞인 잔소리를 해 댔다.

“미안, 처음 입어 보는 옷이라 시 간이 좀 걸렸어. 근데 아무리 봐도 너무 야하지 않아? 가슴도 너무 도 드라지고 걸을 때마다 허벅지 안쪽 이 훤히 비치잖아.”

수수한 외모의 여관도가 장포를 살 짝 걷어 그 안에 입고 있던 창파오 를 자스민에게 보였다. 양쪽으로 절 개된 치마 사이로 늘씬하게 쭉 뻗은 다리가 뇌쇄적인 자태를 뽐냈다. 그녀는 모용세가의 막내인 모용미 였다.

내성적인 성격 탓에 학관 생활에 잘 어울리지 못했었는데 적극적인 성격의 자스민이 먼저 다가서면서 조금씩 변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 었다.

창파오를 입은 건 그 변화의 확실 한 증거였다.

“미야, 넌 다리가 정말 예뻐. 이런 다리를 가리고 다니는 것 자체가 죄 악이라고. 자, 주변을 둘러봐. 다들 네 다리 보느라 정신이………….”

자스민이 당황한 얼굴로 말꼬리를 흐렸다.

주변의 시선이 네 다리에 쏠려 있 을 거란 말을 하려고 했는데 공교롭 게도 그 주변에 서 있는 네 명의 사내들 모두 딴 데 신경을 쓰고 있 었다.

‘우진이는 기껏 애들을 데려다 놨더니 어디다 신경을 쓰고 있는 거야? 이러다 미가 도망가 버릴지도 모르는데.’

자스민은 불안한 눈빛으로 모용미 의 눈치를 살폈다. 다행히 자신의 말을 그리 귀 기울여 듣지는 않았는 지 크게 실망한 눈치는 아니었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쪽에서 발생했 다.

“이, 이걸 지금 나보고 입으라는 거냐?”

남궁벽이 자신의 손에 쥐인 천쪼 가리를 가리키며 사납게 소리쳤다. 

“왜, 마음에 안 들어?”

“옷이 옷 같아야 입어 주지. 이걸 입었다간 속이 훤히 다 드러날 거다.”

전에 없이 흥분된 얼굴로 남궁벽이 언성을 높였다.

그의 심정은 솔직히 이해가 가고도 남았다.

설우진이 가져온 옷은 뒷골목 비렁 뱅이나 입을 법한 형상을 하고 있었 다.

위 단추가 떨어져 나간 건 둘째 치고 일부러 낸 것처럼 옷 사이사이 가 찢겨 있었다.

“처음에만 어색하지 한번 입어 보 면 금방 적응될 거야. 특히 너처럼 몸 좋은 녀석은 옷으로 몸을 가리는 것 자체가 죄악이라고.”

설우진은 자스민과 똑같은 소리를 해댔다.

남궁벽은 이에 대꾸할 시간도 아깝 다는 듯 옷을 내던지고 발길을 돌렸 다. 어차피 최상위권 성적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는 그에겐 황룡승무연에 서 얻을 수 있는 추가 점수 따위,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이대로 돌아가면 후회할 텐데?”

“그 옷을 입느니 백번 천번 후회하 는 게 낫다.”

“좋아, 네 뜻이 정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대신 앞으로 대련한답시고 찾아오지 마. 너 같은 하수 봐주면 서 상대하는 거 정말 짜증 나고 귀 찮거든.”

설우진은 남궁벽의 등에 대고 거침없이 독설을 쏟아 냈다.

순간 남궁벽이 우뚝 걸음을 멈춰 세웠다.

지난 삼 개월 동안 그는 오래도록 정체되어 있던 자신의 몸이 성장하 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이유가 설우진과의 대련에 있음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갈 거면 어서 가. 지금이라도 너 를 대신할 사람을 구해야 하니까.” 

설우진이 얄밉게 이죽거렸다. 남궁벽은 두 귀를 틀어막고 당장에 라도 숙소로 날아가고 싶었지만 어 찌 된 일인지 두 다리가 바닥에 붙 어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번 한 번뿐이다.”

결국 남궁벽은 경연 무대로 돌아왔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져 있던 옷을 조용히 챙겨 무대 뒤로 걸어갔다.

‘자식이 할 거면서 빼기는. 이걸로 무대 준비는 끝났고 이제 경연이 시 작되기만 기다리면 되는 건가.’

설우진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 며 정문 쪽을 바라봤다. 앞으로 반 시진 정도 후면 저곳을 통해 수많은 이들이 쏟아져 들어오리라.


“자 자, 모두 이쪽으로 오십시오. 길에서는 좀체 볼 수 없는 진짜 무 사들의 싸움이 시작됩니다.”

“저희는 개인전뿐 아니라 단체전의 묘미까지 안겨 드립니다. 한 명씩 싸우는 시시한 무대 대신 열명이 어우러져 싸우는 저희 무대로 구경 오세요.”

황룡승무연의 시작을 알리는 우렁 찬징 소리와 함께 굳게 닫혀 있던 정문이 열렸다. 밖에서 문이 열리기 만 기다리고 있던 서안 시민들은 앞 다퉈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때부터 관도들 간의 열띤 호객 전쟁이 벌어졌다. 단 한 명이라도 자신들의 무대에 더 많이 끌어들이 기 위해 그들은 보다 자극적이고 과 장된 문구들을 뱉어 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조금씩 인기 무대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역시 돈을 많이 쓴 쪽과 실력 좋 은 관도들을 많이 확보한 쪽이 사람 들의 시선을 끌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무대는 공휘 찬이 마련한 오관육참이었다. 오관 육참은 위나라에 몸을 의탁하고 있 던 관우가 유비의 생존 소식을 듣고 자신을 막아서는 다섯 개의 관문을 돌파한 사건을 일컫는데 공휘찬은 전설 속의 관우로 분해 실제와 흡사 하게 만들어진 관문 앞에서 적장들 과 맞서 싸우는 장면을 실감나게 재 현해 냈다.

‘이번 경연만큼은 서천회도 남천회 도 우리의 상대가 될 수 없다. 싸움밖에 모르는 네놈들 머리로는 우리 의 참신한 무대를 당해 내지 못한 다.’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려 있는 오관 육참 무대를 보면서 백무영은 흐뭇 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그는 황룡승무연을 앞두고 전문가 들을 초빙해 어떤 무대를 꾸밀지 자 문을 구했다. 그리고 사흘 밤낮 이 어진 회의 끝에 무공과 이야기를 함 께 풀어낼 수 있는 삼국지연의의 오 관육참이 최종적으로 선정됐다.

무대 주제가 정해지자 백무영은 자 신이 가진 금력을 십분 활용해 삼국 지연의에 그려진 오호관문과 그곳을 지키던 장수들을 최대한 사실에 가깝게 표현해 냈다.


“이거 백무영한테 한 방 제대로 먹 었는데. 설마 저런 대단한 무대를 꾸밀 줄이야.”

오관육참의 무대 옆.

남천회가 지원하는 비무 대회가 진 행되고 있었다. 그들은 단순 무식하 게 밀고 나가는 사파의 성향을 드러 내듯 무대에서 원초적인 싸움을 벌 였다.

일체 내공을 사용하지 않는 맨손 격투.

그만큼 과격하고 격렬했다.

주먹이 나갈 때마다 피가 튀어 오 르고 상대를 윽박지르는 욕설이 이어졌다.

한마디로 광기 어린 무대였다. 이 무대에 대한 반응은 남자와 여 자들 사이에서 극명하게 갈렸다. 남 자들은 열광적인 환호를 보내는 데 반해 여자들은 못 볼 것을 봤다는 표정으로 다급히 그 자리를 피했다. 

“이제라도 판을 바꿔 볼까요?” 

고운 아미를 가볍게 찡그리는 소예 상을 보며 그녀의 우장 격인 백경호 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됐어. 이번 일로 중천회가 추가 점수를 가져간다고 해도 놈들의 수 준을 감안하면 큰 의미는 없다고 봐 야 해. 저쪽은 그만 신경 끄고 서천 회쪽이나 잘 살펴.”

소예상의 시선이 오른편을 향했다. 그곳에는 서천회의 지원을 받고 있 는 당고명이 자신의 조원들과 함께 비무 시연을 펼쳐 보이고 있었다. 비무 시연은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짜인 동선에 따라 약속된 초식을 전개하니 톱니바퀴가 맞물리는 것처 럼 유연하게 비무가 이어졌다. 하지 만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비무 시연 에는 긴장감이 결여돼 있었다.

이 때문인지 몰라도 서천회의 무대 주변엔 남자들의 숫자가 눈에 띄게 적었다.

“저대로 둬도 괜찮을까요?”

서천회의 간부들이 모여 있는 곳. 제갈균이 염려스러운 얼굴로 중천회의 무대를 가리켰다. 하지만 당세 기의 반응도 소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백무영 저놈이 아무리 발악한들 결과는 바뀌지 않아. 그것보다 그 자식은 어쩌고 있지?”

당세기가 설우진의 근황을 물었다. 

“백무영의 견제로 경연을 펼치기에 가장 최악인 장소를 배정받았습니 다. 그런데 의아한 건 녀석의 경연 에 일부 여관도들이 합류했다는 점 입니다.”

“대체 뭘 하려는 거지? 여관도들을 활용해 발정 난 사내놈들의 눈길이 라도 끌어 볼 속셈인가?”

“저도 그쪽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걱정 마십시오. 어 지간한 미모로는 저곳에 몰려 있는 사내들의 시선을 끌지 못할 겁니 다.”

제갈균의 목소리는 확신에 차 있었 다.

그도 그럴 게 서안은 길 가다 걸 려 넘어지는 돌부리만큼 미인들이 흔했다. 그들 대부분은 타지에서 돈 을 벌기 위해 상경했는데, 이들로 인해 서안 남자들의 눈높이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 있었다.

‘한껏 물오른 미녀들을 보다가 아 직 덜 여문 미녀를 보면 아무래도 감흥이 떨어질 테지. 그럼 처음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사그라들 테고.’

제갈균은 서안 남자들의 눈을 믿었다. 그사이 호기심에 몇몇 사내들이 설우진 조가 만든 경연장으로 다가 왔다.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