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2권 – 4화 : 황룡 입성 (1)
황룡 입성 (1)
한 달여의 긴 여정 끝에 설우진은 마침내 서안에 발을 내디뎠다.
지난 한 달 동안 그는 광룡가의 산적들을 거칠게 조련했다. 사람을 만들어 보겠다는 선의가 아닌 최대 한 편하게 가고자 하는 이기심의 발 로였다. 하지만 그 이유야 어찌 됐 든 그는 광룡가의 산적들 덕분에 편 하게 서안까지 올 수 있었다.
“호오, 저게 그 유명한 황룡 학관인가?”
설우진의 시선이 정면에 웅장하게 서 있는 대문에 고정됐다. 대문 한 복판에는 두 마리의 황룡이 각기 검 과 붓을 쥐고 서로를 마주하고 있었 다.
그리고 대문을 중심으로 높은 담이 좌우 양옆으로 길게 뻗어 있었는데 그 너머로 높은 전각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일단 배부터 채우고 들어갈까? 정 식 입관일은 내일이니.’
설우진은 주변의 번화가를 휘둘러 봤다.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곳이라 그런 지 곳곳에 개성적인 이름을 내건 식당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설우진은 그중 거리상으로 가장 가 까운 용성각을 택해 들어갔다. 깔끔 한 외관만큼이나 식당 안은 잘 정돈 돼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상적 인건 식탁에 생화가 꽂힌 화병이 놓여 있었다. 그 모습이 꽤 고급져 보였다.
잠시 안쪽을 둘러보던 설우진은 창 가 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창밖 으로 오가는 이들을 구경하고 있으 니 예의 점소이가 식탁으로 다가왔 다.
‘이 향긋한 내음은 뭐지?’
발소리와 함께 달콤한 향기가 코끝 을 간질였다.
의아한 마음에 고개를 돌려 보니 놀랍게도 남자가 아닌 여자 점소이가 환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모든 유행의 시작은 서안에서부터 라고 하더니 틀린 말이 아니었네.’
설우진은 여점소이를 보고 서안이 시대를 앞서가는 도시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서안은 중원과 서역을 잇는 관문도 시로 동서양의 문물이 자유롭게 어 우러졌다. 그 과정에서 전에는 존재 하지 않았던 새로운 유행들이 만들 어졌는데 여점소이 문화도 그중 하 나였다.
그가 여점소이를 처음 본 건 스물 한 살 호남 장사에서였다. 당시 힘 든 의뢰를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번화가도 아닌 곳에 남자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가게가 하나 눈에 띄었다.
마침 식사 전이라 그곳으로 자연스 럽게 발걸음이 향하게 되었는데 문 을 열고 들어가니 놀라운 광경이 펼 쳐져 있었다. 남자 점소이 대신 곱 게 옷을 차려입은 여인들이 음식과 술을 나르고 있었던 것이다.
“손님, 뭘 주문하시겠어요?”
여점소이의 고운 목소리가 상념을 깨웠다.
설우진의 시선이 절로 그녀의 얼굴 로 향했다.
백설처럼 흰 피부에 사슴의 눈망울 처럼 커다란 눈, 귀여우면서도 청순한 미녀였다.
하지만 얼굴보다 그의 시선을 끄는 게 있었다.
바로 옷깃 사이로 살짝 드러낸 가 슴골이었다.
‘호오, 청순해 뵈는 얼굴과는 전혀 딴판인데. 사내들이 이곳에 몰리는 이유를 알겠어.’
설우진은 가녀린 체구와 대비되는 풍만한 가슴에 한껏 시선을 빼앗겼 다. 이런 일이 꽤나 잦은 듯 여점소 이는 기분 나빠하는 기색 없이 오히 려 입가에 진한 미소를 떠올리며 말 을 이어 갔다.
“저희 식당은 서안에서도 손꼽히는 맛집이랍니다. 대표 요리로는 서안의 명물 측천교자가 있는데 당나라 측천무후가 즐겨 먹던 만두입니다.”
여점소이가 자신 있게 측천교자를 추천했다.
그녀는 눈앞의 남자도 자신의 가슴 에 홀렸다 확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전혀 뜻밖의 주문이 들어왔다.
“소면 한 접시.”
그녀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경직됐다.
이곳에서 일한 뒤로 처음 겪어 보 는 상황이었기에 당황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저어기, 그런 평범한 요리보다는 제가 추천하는 측천교자를 드시는 게………….”
“호의는 고맙지만 됐어요. 점심 한 끼에 은자 한냥을 쓸 만큼 여유가 있지는 않거든요. 근데 확실히 대도 시라 그런지 다들 주머니 사정이 넉 넉한가 봐요. 비싼 측천교자를 저리 많이 시킨 걸 보면.”
설우진이 미소 띤 얼굴로 주변을 슬쩍 둘러봤다.
그의 말대로 식당을 찾은 대다수의 남자 손님들이 측천교자를 먹고 있 었다. 그들은 설우진과 눈이 마주치 자 얼굴을 붉히며 황급히 고개를 숙 였다.
그가 여점소이의 유혹에 걸려들지 않은 건 회귀 전의 아픈 경험이 있 어서다.
한창 강호에 여점소이들이 유행처 럼 번져 갈 무렵.
그는 자신의 이상형에 가까운 여점 소이를 발견했다. 그녀는 한 떨기 목련처럼 희고 고왔다. 그리고 풍성 한 옷이 도드라져 보일 만큼 가슴에 탄력이 넘쳤다. 대개 큰 가슴은 그 무게에 눌려 아래로 처지기 마련인 데 그녀는 따로 운동이라도 하는지 가슴 선이 유려하게 이어졌다.
의뢰를 끝마치고 그녀가 일하는 객 잔을 찾았다.
그녀는 예의 청순한 미소로 반갑게 맞아 줬고 몇 가지 요리를 추천해 줬다.
그녀의 향내에 취해 무슨 요리인지도 모르고 시켰다. 한참 뒤 식탁 다리가 휘청일 정도로 많은 요리가 한 꺼번에 올라왔다.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조 심스럽게 가격을 물었다. 그녀는 환 하게 웃으며 손가락 다섯 개를 펼쳐 보였다.
그날 설우진의 전낭은 먼지 한 톨 안 남기고 탈탈 털렸다.
“조, 조금만 기다리세요.”
여점소이가 붉어진 얼굴로 황급히 자리를 떴다.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그의 말뜻을 못 알아들을 리 없었 다. 설우진은 종종걸음으로 사라지 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이내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근처에 황룡 학관이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유독 젊은이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특히 황룡학관의 관도로 짐작되는 이들이 무리 지어 움직였 는데 그들의 가슴팍에는 앞발로 검 과 붓을 쥐고 있는 독특한 모습의 황룡이 수놓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