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2권 – 5화 : 황룡 입성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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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왕전생 2권 – 5화 : 황룡 입성 (2)


황룡 입성 (2)

“너 혹시 그 소문 들었어? 이번에 들어오는 신입 관도들 중에 검귀가 있다는 거.”

“듣기는 들었는데 난 솔직히 믿음 이 안 가. 이미 우리 또래에서는 적 수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평가를 받 고 있는데 굳이 우리 학관에 들어올 이유가 없잖아.”

“뭔가 사정이 있겠지. 암튼 검귀 눈 밖에 나지 않게 조심해. 우리가 나이는 많아도 상대는 남궁가의 핏줄이야. 괜히 건드렸다가 피 볼 수 있으니 내 말 명심해.”

“야, 나도 그 정도 눈치는 있어. 그리고 신입 관도가 한두 명 들어오 는 것도 아닌데 갖고 놀 녀석 하나 없겠냐?”

멀끔하게 생긴 두 명의 청년 마용 소와 언기문이 담소를 나누며 용성 각으로 향했다.

그들은 황룡 학관인 자조 소속 으로 올해로 삼 년 차를 맞이했다. 삼년 차인데 아직도 인 자 조라는 건 그들이 학관 내에서 열등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황룡학관은 매년 초에 승급 시험 을 실시하는데 천자 조를 제외한 지자 조와 인자 조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했다. 난이도가 높은 건 둘째 치고 상대평가를 통해 전체 인 원의 일 할만을 승급자로 선발하기 에 그 경쟁은 전쟁을 방불케 할 정 도로 치열하게 전개됐다.

그럼 승급 시험에 떨어진 이들은 어떻게 될까?

그들은 본래 속해 있던 조에서 다 시 수업을 받게 된다. 당사자에겐 가혹한 일이지만 황룡 학관은 그런 방식으로 쭉정이들을 걷어 냈다. 잠시 후 마용소와 언기문이 용성각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사위를 둘 러보며 빈자리를 찾았다. 하지만 아 무리 둘러봐도 빈자리는 보이지 않았다.

“여긴 오늘도 만원이네.”

“네가 늑장을 부려서 그렇잖아. 어디 합석할 만한 곳이 있는지 봐 보 자.”

마용소가 언기문을 힐책하며 혼자 앉아 있는 사람들을 쭉 눈으로 훑었다.

그리고 잠시 후 두 사람의 발걸음 이 창가로 향했다.

“소저, 자리가 없어서 그러는데 실 례가 안 된다면 합석을 해도 되겠 소?”

마용소가 잘생긴 얼굴을 앞세워 정 중히 자리를 청했다. 하지만 면사를 쓴 여인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묵묵히 눈앞의 음식에만 집중했다. 무시를 당했다고 생각했는지 마용 소가 눈가를 씰룩이며 다시 입을 열 었다.

“소저, 지금 내 말을 무시하는 게 요?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 확실 히 의사 표명을 해야 할 것 아니 오.”

마용소의 언성이 높아졌다.

이에 면사 여인이 드디어 고개를 들었다. 그녀가 쓰고 있는 면사는 콧잔등 위쪽이 훤히 드러나 있어 일 반적인 면사와 다르게 두 눈이 그대 로 비쳤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녀의 눈은 신비 스러운 비췻빛을 품고 있었다.

“중원 사내들의 무례함은 정말 한 결같군요. 바로 옆자리에 혼자 밥을 먹는 사내가 있음에도 굳이 여인인 내게 자리를 청하다니. 혹시 당신들 도 전에 만났던 파락호들처럼 날 어 떻게 해 보려는 심산인가요?”

그녀가 짜증 섞인 말투로 반문했 다.

이에 마용소는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정확히 속내를 간파당한 것 이다.

-야, 어떻게 좀 해 봐. 사람들이 우리만 쳐다보잖아. 이러다 학관에 소문이라도 퍼지면 어떡해?

언기문이 마용소의 옆구리를 찌르 며 다급히 전음을 전했다. 이에 마용소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궁색 한 변명거리를 지어냈다.

“소, 소저, 그건 오해요. 우린 단지 저 친구와 사이가 좋지 않아 부득이 하게 소저에게 자리를 청했던 것이 오.”

마용소가 가만있는 설우진을 끌어 들였다. 설우진은 그 말에 속으로 발끈했지만 입관 전부터 소란을 일 으키기 싫어 애써 무시했다.

그런데 그 속내도 몰라주고 면사 여인이 그에게 말을 걸어왔다. 

“지금 저 사람이 한 말, 사실인가 요?”

설우진은 귀찮은 마음에 그냥 고개 를 끄덕이려 했다. 그런데 고개를 끄덕이려는 찰나 머릿속으로 날카로운 전음이 흘러들어 왔다.

-야, 말 잘해라. 허튼소리 지껄이 면 그 주둥이 꿰매 버린다.

‘하아, 서안에서는 좀 얌전히 지내 보려고 했더니. 애새끼들이 좀체 도 움을 안 주네.’

설우진의 눈썹이 역팔자로 꺾였다. 인내심이 한계에 달했다는 증거였 다. 잠시 후 설우진이 면사 여인과 눈을 맞추며 굳게 다문 입을 열었 다.

“소저, 이 자리에서 분명히 얘기하 는데 난 저기 발정난 수컷들과 하 등의 관계도 없소.”

“역시 제 예상이 맞았네요. 솔직하게 얘기해 줘서 고마워요.”

면사 여인이 가는 미소를 입가에 그리며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당황 한 기색이 역력한 마용소와 언기문 은 행여 그녀와 눈이 마주칠까 황급 히 시선을 피했다. 이에 그녀가 먼 저 말을 걸었다.

“두 분, 언제까지 제 앞에서 그 역 겨운 면상을 들이대고 계실 거죠? 제가 비위가 약해서 두 분을 앞에 두고는 밥을 못 먹을 것 같은데………… 좀 꺼져 주시죠.”

“소, 소저, 말이 너무 심한 것 아 니오?”

“뭐가 심하다는 거죠? 전 그저 느 낀 그대로의 감정을 얘기했을 뿐인데.”

“그래도 최소한의 예의라는 것이 있지 않소. 초면에 꺼지라는 말을 서슴없이 뱉다니. 그 천한 오랑캐 핏줄이 어디 가지 않는 모양이오.” 

그녀의 독설에 기분이 상했는지 마 용소가 민감한 문제를 건드렸다. 비췻빛 눈을 가진 이들, 그러니까 색목인들은 중원인들 사이에서 서역 의 오랑캐로 불렸다. 한족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중화사상이 빚어낸 씁쓸 한 단면이었다.

‘용서 못 해.’

면사 여인의 주먹이 파르르 떨렸 다. 뺨이라도 한 대 갈길 기세였다. 그런데 그녀가 행동에 나서기도 전에 누군가 그녀를 앞질러 나아갔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설우진이었다. 짝!

마용소의 입이 시원하게 옆으로 돌 아갔다. 설우진의 오른 손바닥이 냅 다 그의 입을 후려갈긴 것이다.

“이 새끼야, 그 주둥이는 사람 말 을 하라고 있는 것이지 개소리를 하 라고 있는 게 아니야. 우리와 생김 새가 다르다고 해서 천하다 여기는 건대체 누구한테 배운 가르침이 냐!”

설우진이 거칠게 소리 질렀다.

그가 이토록 열을 내는 데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생긴 것도, 출신 성분도 다양한 낭인 세계에서는 심심찮게 색목국 출신도 찾아볼 수 있었다.

색목국 출신은 대개 남자보다는 여 자인 경우가 많았는데 싸미라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싸미라는 아픈 아이를 둔 미망인이 었다. 남편이 의뢰 도중에 비명횡사 를 하면서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됐는 데 여인치고는 그 실력이 제법 뛰어 났다.

설우진은 그런 그녀를 누님이라 부 르며 따랐다.

그런데 어느 날.

그녀가 차가운 시체로 발견됐다. 옷은 다 벗겨 있고 회음 주변에는 사내들이 남겨 놓은 욕정의 흔적들이 그득했다.

관부에서 수사가 들어가고 얼마 후 범인들이 밝혀졌다. 정도 계파로 분 류되는 백협문의 사형제들이었다. 설우진은 그들이 큰 처벌을 받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관부 에 잡혀간 지 이틀 만에 풀려났다. 싸미라가 먼저 자신들을 유혹했다는 말도 안 되는 발언들이 재판 과정에 서 인정을 받은 것이다.

그는 그 사실을 납득할 수 없어 백협문의 사형제들을 찾아갔다. 그 런데 그들은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마용소처럼 싸미라를 오랑캐의 천한 계집이라 치부하며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했다.

“너, 너! 이 가슴에 새겨진 문양이 안 보이는 거냐? 감히 황룡 학관의 관도에게 손을 대다니.”

언기문이 마용소를 부축하며 고래 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제 주변의 이목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 다.

“니미럴, 그 문양을 보니까 더 화 가 치미는 거야. 내가 앞으로 다닐 학관에 너희 같은 놈들이 있다는

게.”

“설마 신입 관도?”

“그래. 올해 입학 예정이지.”

“시, 신입 관도가 감히 하늘 같은 선배를 건드리고도 무사할 것 같으냐?”

“선배가 선배 같아야 대접을 해 주 지. 그리고 이 시간에 어슬렁대고 돌아다니는 걸 보면 필시 인 자 조 일 텐데 같은 인자 조끼리 선후배 가르는 거 우습다고 생각하지 않아?”

설우진의 신랄한 독설에 언기문은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다. 그의 말 대로 황룡 학관 내에선 먼저 들어왔 다고 해도 그 실력이 받쳐 주지 않 으면 선배 대접을 받기 힘들었다. 특히 인 자조의 경우에는 실력 좋 은 신입들도 많이 포함되어 있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이 새끼, 죽여 버리겠어.”

바로 그때.

입술이 터져 엉망이 된 얼굴로 마용소가 설우진에게 달려들었다. 그 의 두 눈은 이미 분노로 반쯤 뒤집 혀 있었다.

쉭.

마용소의 주먹이 매섭게 짓쳐 들었다.

무과에 속해 있는 자답게 그 몸놀 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하지만 상대가 나빴다. 설우진은 기습적으로 날아드는 주먹을 가볍게 받아 내더니 이내 오른쪽으로 거칠 게 비틀었다.

그 악력이 어찌나 센지 손목이 비 틀림과 동시에 마용소의 몸까지 한 바퀴 뺑 돌았다.

“아악!”

마용소가 뒤틀린 손목을 부여잡고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아까의 기세는 온데간데없었다.

“빨리 의원한테 데려가는 게 좋을 거야. 바로 뼈를 맞추지 않으면 평 생 그 오른손 못 쓰게 될지도 모르거든.”

설우진이 태연한 얼굴로 언기문에 게 마용소의 상태를 전했다. 그 말 을 듣고 사색이 된 언기문은 황급히 친구를 부축해 부리나케 식당을 나 섰다.

‘이거 조용히 밥 먹기는 글렀네.’ 

설우진은 등 뒤에서 꽂히는 뜨거운 시선들에 황급히 제자리로 돌아왔다. 때마침 주문했던 소면이 나오고 그는 허겁지겁 배를 채웠다. 그런데 가격에 비해 소면의 양이 턱없이 적 었다. 서안의 물가가 살인적이라고 하더니 그 말이 사실이었던 모양이 다.

설우진은 채워지지 않는 허기에 다 시 주문을 할까 고민했다. 솔직히 돈은 넘쳐 났다. 집에서 받은 돈도 있고 광룡가 산적들에게 갈취한 돈 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낭인으로 어렵게 지낸 세월 이 있어서 그런지 선뜻 돈을 쓸 수 가 없었다. 무한에 있을 때부터 이 를 고쳐 보려 갖은 노력을 기울여 봤지만 삼십 년 가까이 몸에 밴 습관은 쉽게 나아지질 않았다.

“저기, 실례가 안 된다면 제가 식사를 대접해도 될까요? 아까 도와주 신 보답도 할 겸.”

면사 여인이 설우진에게 합석을 제 안했다.

그로선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고 앉 았다. 설우진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난 설우진이오. 아까 들어서 알고 있겠지만 무한에서 황룡 학관을 다 니기 위해 유학을 왔소.”

“전 자스민이라고 해요. 서역에 자 리한 누란국 출신이죠. 그리고 이곳 에 온 건 당신이랑 같은 이유예요.” 

“그럼 소저도 신입 관도?”

“네, 문과 지원이에요. 공자는 당연 히 무과 지원이겠죠?”

면사 여인은 그가 무과일 것이라 확신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설우진은 고개를 가로저으 며 자신도 문과를 지원했다 답했다. 

“왜 무과가 아닌 문과를 선택한 거 죠? 황룡 학관은 문무겸전의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한다고 알려져 있지 만, 실상은 다들 무과 졸업을 노리 고 들어오잖아요.”

자스민은 이해가 안 된다는 반응을 보였다.

황룡학관은 학관이라는 이름에 걸 맞지 않게 무과 지원생이 문과 지원 생보다 훨씬 그 숫자가 많았다. 십을 기준으로 했을 때 무과생이 구에 해당할 정도였다.

왜 이렇게 무과생이 많은 걸까?

그 이유는 바로 황룡 학관을 만든 곳이 쌍룡맹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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