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9권 – 22화 : 개전, 피로 물드는 중원 (1)
개전, 피로 물드는 중원 (1)
흑옥고는 윤허준이 홀로 개발 중인 약이다.
아직은 개념 자체만 잡혀 있는 상 태였기에 흑옥고의 존재를 아는 건 오로지 그 한 명뿐이었다.
그런데 오늘 처음 본 사내에게서 흑옥고란 이름이 튀어나왔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한 번도 남들에게 흑옥고에 대해서 얘기한 적이 없는데…….?’
윤허준은 커져 가는 의구심에 설우진의 얼굴을 다시 한 번 찬찬히 뜯 어봤다. 하지만 아무리 기억을 되짚 어 봐도 이전에 그를 만난 적은 없 었다.
“흑옥고를 쓰면 다시 무공을 쓸 수 있겠지?”
“……이론적으론 가능하다. 하나, 흑옥고는 이 머릿속에만 존재할 뿐 실제로 만들어 본 적은 없다. 네가 그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 모르 겠지만 흑옥고에 대한 기대는 일찌 감치 접어라. 만들고 싶어도 가장 중요한 재료가 없다.”
윤허준은 불과 일 년 전에 흑옥고 에 대한 이론을 정립했다. 수백, 수 천 가지의 약초를 배합하면서 만들어 낸 이론이었다.
그런데 흑옥고의 핵심이 되는 재료 를 구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 재료는 산이 아닌 바 다에서 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년금구의 뼈, 그것만 있으면 흑 옥고를 완성할 수 있는데…………. 하지 만 그걸 무슨 수로 구하겠어.’
윤허준을 체념케 한 재료는 만년금 구의 뼈다.
만년금구는 바다거북의 한 종류다. 온몸이 금을 바른 것처럼 노란 빛 깔을 띠고 있는데 그 수명이 일반 거북이에 비해 수십 배 이상 길다. 긴 세월을 사는 영물인 만큼 만념 금구는 온몸이 보물이다. 등껍질부터 그 안의 내장, 뼈까지 어느 하나 버릴 것이 없다. 특히 내단은 강호 인들이 눈에 불을 켜고 찾을 정도로 엄청난 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만년금구는 천운이 닿아야 만 만날 수 있다고 할 정도로 사람 들의 눈에 띄질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만년금구는 깊은 바닷속에 서식한다. 경험 많은 뱃사 람들의 얘기론 폭풍우가 몰아칠 때 한 번씩 모습을 드러낸다고 하는데 그 사실은 아직 입증된 바가 없다.
“그 재료만 있다면 바로 만들 수 있겠지?”
“다른 재료들은 이곳에 다 있으니 가능할 것이다.”
“그럼 받아라.”
설우진이 바지 주머니에서 천으로 감싼 물건을 내밀었다.
“설마, 그게 만년금구의…………?”
“그래. 네가 짐작하는 게 맞다.”
천을 풀어내니 금빛이 은은하게 감도는 뼈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이걸 어떻게・・・・・・?”
“마침, 만년금구를 갖고 있던 자를 알고 있었다.”
설우진은 남궁벽을 구하러 가기 전 에 잠시 쌍룡맹에 들러 황유하를 만 났다.
만년금구의 뼈를 구하기 위해서였 다.
그는 전생에 쌍룡맹의 장로 중 하나가 마천과의 전쟁 중에 오른팔 근맥이 잘리는 부상을 입었다가 만년 금구의 뼈로 치료했다는 소문을 들 은 적이 있다.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 소문이었 기에 믿고 찾아갔다. 그리고 다행히 정말 만년금구의 뼈가 있었다.
사정을 설명하자 황유하는 흔쾌히 뼈를 내줬다. 내단이었다면 노리는 자들이 많아 쉽지 않았겠지만 뼈는 내단에 비해 양이 많은 편이라 하나 정도는 충분히 맹주의 권한으로 빼 낼 수 있었다.
원하는 재료를 손에 넣은 윤허준은 곧바로 흑옥고 제작에 들어갔다. 그사이 설우진은 밖으로 나와 주변의 동태를 살폈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여러 차례 동 선을 꼬기는 했지만 놈들이라면 분 명 곧 이곳까지 들이닥칠 거야, 벽 이 녀석의 몸에 추종향이 묻어 있으 니까’
설우진은 만리추종향의 존재를 알 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면서도 그는 추종향을 지우지 않았다. 시간이 없 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였지만 그보 다는 다른 복안이 있었다.
“마천은 나 혼자 상대하기엔 그 크 기가 너무 비대해. 지난번 전위대의 전력을 상당 부분 소진시키기는 했 지만 그 정도로 마천을 무너뜨릴 순 없어.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철저히 돌려 깎는 것뿐이지.”
설우진은 마을로 들어서는 길목으 로 향했다.
그는 천신동에서 많은 생각을 했 다, 앞으로 마천을 어찌 상대해야 할지.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단순했다. 한 번에 부술 수 없다면 조금씩 갉아먹자.
오늘이 바로 그 첫 번째 행보의 시작이다.
타다닥.
검은색 물결이 수풀 위로 넘실거렸 다. 그 물결의 정체는 설우진을 잡기 위해 나선 백랑대였다.
“곧 놈과 조우한다. 전에 겪어 봐 서 알겠지만 소수로는 놈을 제압할 수 없다. 하니 놈을 발견해도 섣불 리 공격하지 말고 즉시 세 조씩 순 차적으로 진을 짜 놈을 압박한다. 놈이 아무리 대단한 무공을 지녔다 한들 체력에는 분명 한계가 있을 터. 조바심이 나더라도 끈질기게 매 달려라.”
사실 요굉은 이번 일에 개입할 생 각이 없었다.
지난번 일로 백랑대에 결원이 생기 기도 했고 굳이 나서서 사마중달과 척지기도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오는 길에 귀가 번쩍 뜨이는 얘기를 들었다. 사자관에 매복해 있던 철마들의 시신에 벼락을 맞은 듯한 상흔이 남 아 있었다는 것이다.
그 얘길 듣는 순간 그는 직감했다, 사자관에 숨어든 쥐새끼가 지난번에 자신들을 함정으로 몰아넣었던 그 빌어먹을 놈이라는 것을.
‘지난번에는 용케 도망쳤지만 이번 엔 결코 내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 할 것이다. 기다려라.’
요굉의 두 눈에 진한 살의가 번졌다.
잠시 후, 윤덕촌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백랑대가 멈춰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