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9권 – 26화 : 결자해지 (2)
결자해지 (2)
“하면……?”
“놈들의 계획을 역으로 이용하는 것이오. 우리에게도 어찌 됐든 마천 주는 부담스러운 상대요. 놈이 살아 있는 한 우리는 계속해서 기다릴 수 밖에 없소.”
“그러니까 놈들을 은밀히 도와주는 척하다 마천주가 쓰러지면 놈들의 뒤를 치자 이 말이오?”
승호민이 직설적으로 물었다.
이에 위성웅이 비릿한 미소를 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쳇, 인정하긴 싫지만 저놈 말대로 움직인다면 본 회는 작은 투자로 큰 것을 얻을 수 있어. 저자의 힘이 커 지는 건 원치 않지만 지금은 내부의 분란에 신경 쓰기보다 외부의 적들 부터 처리하는 게 낫겠지.’
승호민은 머릿속으로 빠르게 계산 을 마쳤다.
“좋소. 그게 본회를 위하는 길이라 면 따르겠소.”
“하하하! 잘 생각하셨소. 혹시 다 른 의견이 있소?”
위성웅이 재차 물었다.
하지만 그건 형식적인 질문에 불과 했다. 역천회를 이끄는 세 기둥 중 둘이 의견을 한데 모았는데 거기에 반할 수 있는 간 큰 이는 이 자리 에 없었다.
이후 회의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위성웅은 거사일에 주작문의 전체 전력의 삼분의 이를 투입하기로 했 고 나머지 세력들도 그와 비슷한 수 준에서 의견의 합치를 봤다.
“맹주님! 정말 황룡 학관으로 가실 생각이십니까?”
“그렇소. 지금도 마천의 세는 꾸준 히 늘고 있는 상황이오. 이대로 의 미 없는 대치를 이어 가는 것보다는 승부를 걸어 보는 게 낫다는 판단이 오.”
“맹주님의 고견도 일리는 있으나 상대는 마천입니다. 넓은 땅에서 전 면전을 펼친다면 모를까 적진 한복 판으로 쳐들어가는 것은 너무 무모 합니다.”
회의장이 시끌벅적해졌다. 그리고 대다수가 황유하의 의견에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그 모습에 황유하 는 속에서 구역질이 났다.
강호의 안녕에는 관심도 없고 제 살길만 찾는 그들의 행태에 너무도 속이 상한 것이다.
하지만 그 속내를 밖으로 드러내지 는 않았다.
“여러분들이 뭘 염려하는지 잘 알 고 있소. 해서 이번 거사에는 역천회가 함께하기로 했소.”
“그게 정말입니까?”
황보철용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황유하를 바라봤다.
그간 역천회는 소극적인 움직임을 보여 왔다. 힘을 합치겠다고 손을 내밀기는 했지만 뭔가 직접적인 행 동을 보여 준 것은 없었다.
이 때문에 맹 내의 간부들 사이에 선 역천회와의 연계가 실효성이 있 냐는 의구심이 번지고 있었다.
“여기 통천문주와 만나서 작성한 문서가 있소.”
황유하가 품 안에서 봉서를 꺼내 앞으로 내밀었다. 황보철용이 대표 로 나와 봉서를 받아들고는 그 안의 내용을 살폈다. 봉서 안에는 역천회 와 쌍룡맹이 함께한다는 내용의 합 의서가 들어 있었다.
‘이 직인은 통천문주의 것이 분명 한데, 정말로 역천회도 이번 일에 나서는 것인가?”
황보철용은 직인을 보면서도 확신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미 합의 서가 있는 상황에서 마냥 반대하는 것도 모양새가 좋지 못했다.
-다들 어찌하면 좋겠나?
황보철용이 북리진과 남궁대현, 모 용리에게 의사를 물었다.
-역천회가 함께한다면 충분히 승 부를 볼 수 있지 않겠나? 난 찬성 일세.
북리진이 가장 먼저 동의의 뜻을 내비쳤다. 그 뒤를 이어 모용리도 비슷한 의견을 냈다. 남은 건 이제 남궁대현뿐이었다.
-난 자네들의 뜻과 상관없이 마천과 끝장을 볼 것이네.
-그게 무슨 뜻인가?
-본가의 전력을 투입할 것이란 뜻 일세.
남궁대현의 두 눈에 기광이 번뜩였다.
그는 남궁벽이 마천에 납치된 뒤 단 하루도 잠을 편히 이룬 적이 없 었다.
자신의 피를 이은 아들이 생사를 알 수 없는 지경에 놓여 있는데 어찌 잠을 이룰 수 있었겠는가.
그 많은 날을 뜬눈으로 지새우며 마음속으로 검을 갈았다. 그리고 그 검은 지금 그의 가슴속에서 잔뜩 독 이 올라 있었다.
‘후후, 남궁가가 전력을 투입해 준 다면야 우리로선 나쁠 게 없지. 남 궁가가 전면에 나서 준다면 본 가의 피해도 줄이고 차후에 공을 논할 때 우리 몫을 더 가져갈 수 있을 테 지.’
황보철용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남궁세가는 그에게 있어 부담스러 운 존재다.
자신들의 의견에 따르기는 하나 적 극적이지 않고 보유하고 있는 힘 또한 천중오가 중에서 가장 뛰어났기 때문이다.
한데 제 발로 적진에 뛰어들겠다니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다.
전음으로 의견을 모은 뒤 황보철용 은 황유하에게 그 내용을 그대로 전 했다.
“강호를 위하는 맹주님의 그 마음 에 저희도 팔을 걷어붙이고 돕겠습 “니다.”
“고맙소. 내 가주들의 공은 절대 잊지 않을 것이오.”
쌍룡맹의 출진이 결정됐다.
본 단에 대기 중인 오천의 무사들 중 삼천이 나서기로 했다. 그리고 각 천중오가에서도 개별적으로 병력을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쌍룡맹에는 감돌기 시작한 전운.
과연 강호의 패권은 누구의 손에 쥐이게 될까?
“천주님, 군사로서 마지막으로 간 언을 드리겠습니다! 지금이라도 병 력을 모두 움직여 쌍룡맹을 병탄하 십시오. 그 불한당 같은 놈이 또 무 슨 수작을 부릴지 모릅니다.”
늦은 밤, 서진용이 사마중달을 찾았다.
사마중달은 그를 보자마자 쌍룡맹 을 병탄하라 간언했다.
한데 서진용은 전혀 사마중달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사마중달! 너의 거듭된 실책으로 인해 백랑대가 전멸했다. 중원과의 중요한 싸움을 앞두고 그들이 사라 졌단 말이다!”
서진용의 두 눈에 진한 광기가 어 렸다.
설우진을 잡기 위해 나섰던 백랑대 가 며칠째 돌아오지 않자 서진용은 무사들을 풀어 백랑대의 흔적을 쫓 게 했다.
그리고 사흘 만에 조사를 나섰던 이들이 돌아왔다, 싸늘한 시체로 변 해 있는 요굉을 데리고.
“이 모든 게 네놈으로부터 비롯됐 다. 애당초 역천회 따위와 손잡을 필요 없이 바로 모든 병력을 동원해 중원을 쳤어야 했다.”
서진용이 분노를 토해 냈다.
천산에서 세웠던 모든 계획이 이곳 에 와서 완전히 틀어졌다. 처음 몇 번은 기다려 줄 여유가 있었기에 참 았지만 지금은 아니다.
황룡학관에 도사리고 있는 마천은 총체적 난국에 빠져 있었다. 오대 전위대 중 절반 이상이 망가졌고 천 산에서 쉴 틈 없이 유입되던 병력도 며칠 전부터 뚝 끊겼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서진용은 하루 하루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처, 천주님, 진정하십시오. 위기의 순간일수록 침착하게 대처하셔야 반 전의 기회를 잡을 수 있습니다.”
“살고 싶어서 발악을 하는구나. 하나, 이미 넌 선을 넘어 버렸다.”
서진용이 벼락처럼 사마중달의 목 덜미를 잡아챘다. 단전이 막혀 있는 상태라 눈으로 그걸 보고서도 피할 수가 없었다.
“이제부터는 내가 모든 것을 주도 해서 움직일 것이다. 넌 저승에 가 서 이 서진용이 천하를 일통하는 모 습을 지켜보도록 해라.”
“처, 천주님, 이, 이성을 찾으셔야 합니다.”
“닥쳐라. 난 지금 누구보다 멀쩡하 다. 하니 더는 구차하게 굴지 말고 죽어라.”
뚜드득.
서진용의 오른손이 사마중달의 목 덜미를 강하게 짓눌렀다. 그 가공할 악력에 목뼈는 그대로 으스러졌다. 사마중달은 뜻을 이루지 못한 원통 함에 두 눈을 부릅뜬 채 차가운 방 바닥으로 쓰러졌다.
한때 천하를 풍미했던 거인의 초라 한 최후였다.
“결정이 났다.”
“표정을 보니 원하는 대로 됐나 보 군요?”
“그래. 역천회와 쌍룡맹 양쪽 모두 거사 일에 맞춰 병력을 움직이는 것 으로 결론이 났다고 하는구나.”
“그럴 줄 알았습니다, 양쪽 다 욕심이라면 뒤지지 않으니.”
“이제 어쩔 셈이냐?”
“달리 고민할 게 있습니까? 거사 일에 맞춰 마천으로 달려가 천주의 목을 베면 우리의 할 일은 끝나는 겁니다.”
“누가 그걸 몰라서 묻느냐? 마천주 는 주변의 호위 병력 없이도 충분히 강한 사내다!”
“쫄리십니까?”
“쫄리기는, 그냥 네 녀석이 걱정돼 서 묻는 거다!”
적사호가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그는 냉정하게 마천주의 힘을 가늠 해 봤다.
소문에 의하면 마천주는 탈마지경의 초고수다.
탈마지경은 마공의 한계를 뛰어넘 은 경지로 극강의 마기를 사용하고 도 이성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
“싸움이란 건 직접 붙어 보지 않고 선 그 결과를 알 수 없는 법입니다. 그리고 마천주도 그 본질은 인간일 진대 이 칼로 쑤시면 죽지 않고 배 기겠습니까!”
설우진이 천뢰도를 툭툭 치며 강한 자신감을 내보였다.
“그리 쉽게 볼 일이 아니다. 현 마 천주인 서진용은 오로지 힘만으로 그 자리에 오른 자다. 그만큼 자신 을 따르는 세력은 부족할지언정 그 개인이 지니고 있는 힘은 역대 천주들과 비교했을 때 상위에 든다고 할 수 있다.”
“이미 싸우기로 결정이 났습니다. 한데 굳이 그걸 따져서 뭐합니까?”
“넌 이 말을 듣고도 겁이 나지 않 는 것이냐? 정말 개죽음을 당할 수 도 있다.”
“어차피 사람이라면 한 번은 죽습 니다. 그리고 이왕 죽을 거면 두고 두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큰 무 대가 낫지 않겠습니까.”
“너란 놈은 정말・・・・・・.”
적사호는 패기 넘치는 설우진의 모 습에 할 말을 잃었다.
그는 마천주와 싸우기로 마음을 먹 은 뒤 단 하루도 편히 잠을 이루지못했다.
왜? 솔직히 겁이 났다.
그만큼 마천주는 압도적인 강함을 지닌 존재다.
“얼굴 좀 펴십시오. 누가 보면 정 말 죽으러 가는 줄 알겠습니다.”
“크흠, 네 녀석이야말로 정신 똑바 로 차려라. 계획대로 일이 진행돼 마천주와 독대하면 좋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일이 틀어질 경우 사방에 서 달려드는 마졸들을 상대해야 할 지도 모른다.”
“후훗, 뭐가 걱정입니까, 든든하게 뒤를 맡길 이가 바로 제 앞에 있는데.”
설우진이 적사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었다.
순간 적사호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 올랐다.
거사일이 밝았다.
설우진과 적사호는 황룡 학관에서 반 식경 거리인 적성루에 대기하고 있었다.
적성루는 서안의 중심부가 훤히 내 려다보이는 곳에 위치한 누각으로 전체 판세를 읽는 데 유용한 전략적 요충지다.
“오셨습니까?”
천뢰도를 매만지고 있던 설우진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가 맞이한 이 는 쌍룡맹주 황유하였다.
“싸울 준비는 다 됐는가?”
“네.”
“미안하네,마천주를 상대하는 일 은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이 늙은 이가 맡았어야 했는데.”
“그런 말씀 마십시오. 이 싸움에서 맹주님의 역할은 결코 가볍지 않습 “니다.”
괜히 겸양 삼아 내뱉는 말이 아니 었다. 실제로 이번 싸움에서 맡게 될 황유하의 역할은 무척 중요했다. 그는 균형추로서 마천과 역천회를 자연스럽게 맞물리게 해야 했다, 서 로 제 살을 깎아 먹을 수 있도록.
이 싸움의 가장 이상적인 결과는 동패구상이다.
마천도 역천회도 승자가 되어선 안 된다.
그럼 혹자는 쌍룡맹만 어부지리를 챙기는 것이 아니냐고 지적할지 모 른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쌍룡맹이 이 싸움의 최종 승자가 되더라도 얻 을 수 있는 건 없다.
왜냐면 쌍룡맹은 이미 중원의 패자 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균형추로서의 역할을 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희생은 불가피 했다.
천중오가의 수장들은 그 피해를 최 소화하고자 노력하겠지만 난전 중에 어디 그게 마음대로 되겠는가?
“날 그리 믿어 주니 절로 힘이 나 는구먼. 그래, 언제쯤 움직일 텐가?”
“아무래도 난전을 유도하려면 대낮 보다는 시야가 좁아지는 밤이 좋겠지요.”
설우진은 거사 시점을 해시로 두고 있었다.
그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읊조리듯 답했다.
앞으로 있을 싸움을 예고라도 하듯 짙은 먹구름을 머금은 하늘은 금방 이라도 비를 쏟아 낼 듯 칙칙한 민 낯을 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