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9권 – 27화 : 결자해지 (3)

낭왕전생 9권 – 27화 : 결자해지 (3)


결자해지 (3)

관주실 앞쪽에 세 명의 사내가 무 거운 표정으로 굳게 닫힌 문을 바라 보고 서 있었다. 그들은 요굉과 육 지환을 제외한 나머지 전위대의 수 장들이었다.

“천주님은 오늘도 술이시냐?”

마랑대주 장거한이 불만스러운 표 정으로 고금추에게 물었다.

“말도 마십시오. 해가 뜨기 무섭게 시녀를 불러 술을 들이라 하셨습니 다.”

“허어, 지금이 어느 때인데………….” 

장거한은 땅이 꺼질 듯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이끄는 마랑대는 다 섯 전위대 중에서 가장 늦게 이곳에 합류했다. 본격적인 싸움에 앞서 힘 을 극대화하라는 서진용의 밀명 때 문이었다.

한데, 힘겹게 그 밀명을 수행하고 돌아와 보니 본진의 상황은 엉망이 었다.

오대 전위대 중 둘은 수장을 잃고 거의 해체 수준이었고 천주는 아예 자신의 인사조차 받으려 하지 않았 다.

“이게 다 사마중달 그자 때문입니 다. 그자가 괜히 책략을 쓴답시고 시간을 끌지만 않았어도………… 천주님의 압도적인 힘 앞에 중원무림은 진 즉 무릎을 꿇었을 겁니다.”

고금추가 화살을 죽은 사마중달에 게 돌렸다.

무거운 얘기가 오가는 가운데 침묵 을 지키고 있던 적랑대주 사류하가 입을 뗐다.

“이대로 계속 지켜만 보실 겁니까? 최근 쌍룡맹과 역천회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천 주님께서 마음을 다잡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 역할은 지금 마 랑대주님밖에 하실 수 없습니다.”

사류하가 장거한을 쳐다보며 간곡히 청했다.

장거한은 서진용이 천주의 자리에 오르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공신이 다.

사마중달이 머리로서 서진용을 도 왔다면 그는 칼로서 힘을 보탰다. 그만큼 둘 사이엔 신임이 두터웠다.

“천주님께서 내 말을 들으려 하시 겠느냐?”

“지금으로서는 대주님 말고 다른 대안이 없습니다.”

“흐음, 알았다. 하나, 큰 기대는 말거라.”

사류하의 거듭된 설득에 장거한이 굳게 닫힌 관주실의 문을 열고 안으 로 들어갔다.

관주실 안은 빈 술병이 어지럽게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서진용은 그 끝자락에 머리 칼을 지저분하게 헝클어트리고 앉아 있었다.

“천주님, 마랑대주 거한입니다!”

“……”

“이제 그만 정신 차리십시오. 중달 이 그리된 것은 천주님의 탓이 아니 라 군사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크큭,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못하 던 시절에 내게 충성을 맹세했던 놈 이다. 한데 난 녀석을 끝까지 믿지 못하고 이 손으로 목을 꺾어 버렸 다.”

서진용의 눈빛이 상처 입은 맹수의 그것처럼 사납게 번들거렸다.

사마중달을 찾아갔을 당시 그는 지 나치게 흥분해 있었다. 백랑대가 전 멸했다는 믿기 힘든 보고에 한순간 이성을 잃어버린 것이다.

뒤늦게 정신을 차렸을 때 사마중달 은 이미 차가운 시체가 되어 발치에 쓰러져 있었다.

“너무 자책하지 마십시오. 이런 모 습은 중달이 그 녀석도 결코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장거한은 서진용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서진용은 말없이 술병만 입으로 가져갔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갑자기 고요하던 황룡 학관에 요란한 종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세 번 연속으로 울리는 종.

그것이 뜻하는 것은 하나, 적습이었다.

“잠시 밖에 다녀오겠습니다.”

장거한이 굳은 표정으로 방을 나섰 다. 문 밖에는 사류하 혼자 그를 기 다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

“아무래도 쌍룡맹이 움직인 듯합니 다. 고 대주가 알아보러 갔으니 곧 소식을 전해 올 것입니다.”

“이놈들, 아주 간이 제대로 부었군, 천주님이 머물고 계신 이 땅에 허락 없이 발을 내딛다니.”

장거한의 전신에서 폭발적인 마기가 용솟음쳤다. 그 기세는 천주인 서진용 못지않았다.

그가 익힌 마공은 마천 내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마룡기공이 다. 그 움직임과 세기가 용과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한 번 기운을 뿜어내면 그 단단하다는 만년한철조 차도 버텨 내질 못했다.

“직접 움직이실 겁니까?”

사류하가 힘겹게 마룡기공에 버티 며 물었다.

“그래. 내가 직접 마랑대를 움직여 놈들을 칠 것이다.”

“그럼 적랑대도 데려가십시오. 마 랑대의 힘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놈 들이 역천회와 손을 잡았다면 쉽게 승부가 나지 않을 것입니다.”

사류하는 적랑대를 내놓는 과감한 판단을 했다. 이에 장거한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그의 의견 을 받아들였다.


카카캉캉캉!

싸움은 황룡 학관의 입구에서부터 치열하게 전개됐다.

그 중심에는 설우진과 적사호가 있었다.

둘은 사방에서 달려드는 마천의 무 사들을 상대로 맹공을 펼쳤다.

양 떼에 뛰어든 늑대처럼 그들의 한 수, 한 수는 적들의 숨통을 끊어 놨다.

-이제 슬슬 판을 만들어 볼까요?

설우진이 적사호에게 눈짓을 보냈다.

이에 적사호가 품 안에서 뭔가를 꺼내 머리 위로 던졌다. 그리고 잠 시 후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밝은 빛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야광탄이다.

타다닥.

야광탄이 빛을 뿌리고 난 뒤 담벼 락을 넘어 다수의 무리가 안으로 뛰 어들었다.

그들의 가슴에는 통천문의 상징인 天 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이었다. 한데 그들이 끝이 아니었다. 통천 문의 뒤를 이어 그보다 수십 배이상 많은 인원이 학관 안으로 들이닥 쳤다.

황유하가 이끄는 쌍룡맹의 본진 병 력이었다.

선두에는 황유하와 천중오가의 수 장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오늘 이 싸움으로 마천의 숨통을 끊어야 하오. 하니, 다들 최선을 다 해 주시오.”

황유하가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세 가주들에게 적극적으로 싸워 줄 것 을 청했다.

“맹주님, 걱정 마십시오. 마천의 졸 자들이 아무리 힘을 쓴다 한들 본 맹의 의기는 당해 내지 못할 것입니 다.”

“맞습니다. 이곳은 저희에게 맡겨 두시고 맹주님께선 마천주를 찾아보 십시오. 그자의 목을 베지 않는 한 이 싸움은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황보철용과 북리진이 황유하를 자 연스럽게 안쪽으로 떠밀었다. 명분 은 그럴싸했지만 그 속내는 맹주로 하여금 마천주의 힘을 깎고자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속내를 뻔히 알면서도 황유하는 호위대를 이끌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가주들만 믿겠다는 말을 남기면서. 

“후훗, 의협심으로 똘똘 뭉친 자답 군. 제 발로 사지로 걸어 들어가다 니.”

황보철용이 비웃듯 말을 뱉었다. 그 말에 북리진이 쿵짝을 맞췄다. 

“황보 가주, 원래부터 화산문하들 은 의협심이 뛰어나기로 유명하지 않았소. 우리 마음속으로나마 응원 합시다, 맹주가 승리하기를.”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환하게 미소 지었다.

“역시, 구역질 나는 작자들이야.” 

그들의 작태에 멀지 않은 곳에서 숨을 고르고 있던 적사호가 사납게 눈살을 찌푸렸다.

“적 학사님! 어차피 저 웃음은 오 래 가지 못할 겁니다, 조만간 열이 오를 대로 오른 마천의 정예들이 이 곳으로 들이닥칠 테니.”

“저들이 너무 일찍 당해도 곤란한 일 아니냐? 근처에서 역천회 놈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을 텐데.”

적사호가 담벼락 너머를 가리키며 물었다.

역천회의 무사들이 이곳으로 향했 다는 소식은 공격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전해 들었다.

아마도 지금쯤이면 학관 근처에 도 착했을 터. 적사호의 걱정이 괜한 기우는 아니었다.

한데 설우진의 태도는 태평하기 그 지없었다.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눈치였다.

“뭐냐?”

“녀석들이라면 너무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뒤를 치고 싶어도 그럴 여유 따위 없을 테니.”

설우진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 가 번졌다.


역천회는 황룡 학관 근처에 은밀히 매복하고 있었다. 그 숫자는 대략 오백 남짓. 건물 곳곳에 흩어져 있 기에 육안으로는 확인이 쉽지 않았 다.

“쌍룡맹 놈들이 아주 작정을 한 모 양이오. 세간에 잘 알려진 맹의 무 력대부터 천중오가가 감춰 두고 있 던 숨은 패까지 모두 동원됐소.”

황룡학관과 마주하고 있는 객잔 이 층에 낯익은 얼굴들이 보였다.

바로 현무문주 위성웅을 위시한 역 천회의 실질적인 수장들이었다.

위성웅은 황룡 학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남의 일인 양 태연하게 다른 가주들에게 술을 권했다.

“회주, 우리는 언제 움직이는 것이 오?”

주작문주 승호민이 술잔을 깔끔하 며 비우며 물었다.

“일단은 한쪽의 균형이 무너져야 하지 않겠소. 지금으로선 어느 쪽이 승기를 잡았다 확신할 수 없으니 조 용히 지켜봅시다.”

“흠, 통천문주가 우리를 그냥 놔두 겠소? 지금쯤이면 그자도 우리가 이쪽으로 움직였다는 사실을 알았을 터인데.”

“승 문주! 이제 와 그걸 알았다 한 들 뭐가 달라지겠소. 그 놈은 지금 전장의 한복판에 서 있소! 우리에게 신경 쓸 여력 따위는 없을 것이오!” 

위성웅은 승호민의 걱정을 가볍게 일축하며 계속 술잔을 돌렸다.

한데 못했다.

그 여유는 그리 오래 가지 정면에서 달려오고 있는 일단의 무리 때문이다.

‘저놈들은 뭐지?”

위성웅이 두 눈을 부릅뜨고 그들의 행색을 살폈다. 입고 있는 무복은 평범했고 별다른 표식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 뒤로 엄청난 숫자의 무사들이 따라오고 있다는 점이다.

“무슨 일이오?”

그의 심각해진 얼굴에 승호민이 인상을 구기며 물었다.

“아무래도 우리가 놈에게 당한 것 같소.”

“그게 무슨……?”

“저기 저놈들 일부러 우리 쪽으로 마천의 병력을 유인하고 있소. 곧 있으면 마천의 무사들이 이곳으로 들이닥칠 것이오.”

“대체 어떻게….?”

“적사호 그놈이 우릴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간자를 역으로 이용한 게 분명하오.”

위성웅이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그럼 이제 어찌해야 하오?”

“싸움을 피하기는 이미 늦었소.”

“하면……?”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위성웅의 입으로 집중됐다. 이에 위성웅은 의 자 옆에 걸쳐 놨던 검을 집는 것으 로 그 답을 대신했다.


“크윽, 이러다 우리 다 죽는 거 아 닙니까?”

“걱정 마, 저곳까지만 가면 살 길 이 열릴 테니. 그리고 뭣보다 너희들 천잠보의 못지않은 갑옷을 몸에 걸쳤잖아.”

설우진이 은밀히 준비한 패는 비검 대였다.

비검대는 설우진에게 밀명을 받고 정문이 아닌 담을 넘어 학관에 은밀 히 침투했다.

그리고 정문이 뚫리면서 소란해진 틈을 이용해 일부러 숙소에 불을 지 르는 등의 소란을 일으켰다.

당연히 그들을 잡기 위해 마천의 무사들이 나섰다.

그 숫자는 물경 이백에 달했다.

꼬리에 따라붙은 그들을 보면서 비검대는 전력으로 도망쳤다. 이미 도주로는 짜인 상태였다.

등 뒤에서 사나운 공격들이 들이쳤 다. 달리는 데 온 심력을 쏟고 있기 에 그대로 등에 공격을 허용할 수밖 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맹렬한 공세에도 비 검대는 단 한 명의 희생자도 내지 않았다. 모두 설우진이 내어 준 내 기무의 덕이었다.

“다들 조금만 더 힘을 내라. 고지 가 코앞이다.”

차건웅이 힘에 부쳐 하는 대원들을 독려하며 두 발에 남은 진력을 실었 다.

그런데 객잔에 닿기도 전에 그 안 에서 일단의 무리가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안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역천회의 정예였다.

그들은 씹어 먹을 듯한 눈빛으로 비검대를 노려보며 일제히 병장기를 뽑아 들었다. 그 기세는 마천의 무 사들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못하지 않았다.

-이, 이거 양쪽에서 싸 먹히는 구 도 아닙니까?

비검대원들의 얼굴에 두려움이 떠 올랐다.

그들의 실력이 뛰어나다 한들 앞뒤 가 막힌 상황에서는 당해 낼 재간이 없었다.

-모두 동요하지 마라. 어차피 이 정도 위기 상황은 이미 예상하고 있 었다.

-그럼 대비책이 있는 것입니까? 

-다들 이곳에 오기 전에 내게 물 건을 하나 받았을 것이다. 정면에 있는 놈들이 공세를 취해 오면 지체 말고 그걸 앞으로 내던져라.

차건웅이 변화된 상황에 즉각적으 로 다음 명을 하달했다. 이에 비검 대원들은 품 안에 손을 넣어 둥그런 물체를 끄집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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