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9권 – 6화 : 흉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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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왕전생 9권 – 6화 : 흉사 (3)


홍사 (3)

순순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잠시 후 요마들이 건물 안으로 들 이닥쳤다.

설무백은 문 안쪽에 바짝 몸을 붙 인 채 조심스럽게 단도를 뽑아 들었 다.

저벅저벅.

들려오는 발소리는 점점 문과 가까 워지고 있었고 덩달아 설무백의 심장도 미친 듯이 요동쳤다.

드르륵.

긴장감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미 닫이문이 열렸다.

안쪽으로 드리우는 불길한 그림자. 설무백은 두 눈을 질끈 감고 그림 자를 향해 단도를 내리찍었다.

푹.

섬뜩한 파륙음과 함께 핏물이 튀어 올랐다.

하지만 단도는 생각보다 깊게 박히 지 않았다.

칼을 다뤄 본 경험이 없다 보니 칼끝에 제대로 힘을 싣지 못한 것이 다.

불시의 일격을 당한 요마는 단숨에 설무백의 손목을 잡아채 아래로 꺾었다.

찢어지는 비명이 이어졌다.

“어이, 칼질도 제대로 못하면서 남 의 몸에 흉을 내면 쓰나. 칼이란 건 말이지 이렇게 사용하는 거야.”

나철휘의 오른팔 마달환이 비릿한 미소를 그리며 가슴에 박힌 단도를 뽑아 그대로 설무백의 허벅지에 내 리꽂았다.

이에 설무백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생살이 찢어지는 고통에 설무백은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마달환은 광기 어린 눈빛으로 다시 한 번 단도를 뽑아 이번엔 왼쪽 허 벅지를 겨냥했다.

“너무 걱정하진 마. 두 다리를 못쓰게 돼도 살아가는 덴 아무 지장 없을 테니까.”

마달환의 손이 서서히 아래로 내려 갔다. 그러나 설무백으로서는 멍하 니 그 모습을 바라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마달환의 뒤통 수로 매서운 살기가 들이쳤다. 설무백을 구하기 위해 달려온 궁악 비가 급한 마음에 혈부를 내던진 것 이다.

마달환은 다급히 설무백을 밀쳐 내 고 손으로 허리를 훑었다. 그의 손 끝에서 연검이 딸려 나왔다.

요마들이 익힌 광혼마검은 괴이 신랄한 움직임으로 악명을 떨쳤다.

특히 연검으로 전개할 경우 방어하 기가 까다로웠다. 연검의 낭창한 검 신이 그 변화를 더욱 심화시키기 때 문이다.

차르릉, 탕.

마달환의 연검이 혈부를 휘감아 되 돌렸다.

궁악비는 자신에게 돌아오는 혈부 를 보며 당황하는 눈치였지만 이내 과감하게 손을 뻗었다.

다행히 혈부는 무사히 그의 손에 돌아왔다.

“늙은이, 솜씨가 제법인데.”

“니미럴, 눈깔도 정상이 아닌 놈이 누굴 평가하는 거야! 헛소리나 지껄이는 그놈의 주둥이부터 갈기갈기 찢어 주마.”

궁악비의 시선이 마달환 너머에 있 는 설무백에게 닿았다.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모습을 보자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이윽고 두 사람이 복도에서 맞닥뜨 렸다.

신력을 바탕으로 하는 혈부와 예측 불가능한 움직임으로 승부하는 연검 의 대결.

초반의 기세는 마달환이 가져갔다. 그는 잘 휘어지는 연검의 특성을 십분 활용해 강한 힘이 실려 있는 혈부를 연신 옆으로 흘려보냈다.

그때마다 궁악비의 자세는 흐트러졌고 그 빈틈을 파고든 마달환의 연 검이 상흔을 냈다.

‘빌어먹을, 뭔 놈의 움직임이 이렇 게 요상한 거야? 마치 실체가 없는 귀신을 상대하고 있는 느낌이잖아.’ 싸움이 거듭될수록 궁악비의 마음 은 초조해졌다.

눈앞의 놈을 쓰러뜨리고 얼른 장주 를 구해야 하는데 마음먹는 것처럼 공격이 이어지질 않았다.

그의 특기는 힘으로 상대로 찍어 누르는 것이다.

한데 마달환은 그와 정반대의 유형으로 모든 공격을 흘려 버렸다. 한마디로 상성이 최악이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간 놈을 잡기는 커녕 되레 내가 지쳐서 쓰러지겠어. 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궁악비는 머리를 쥐어짰다.

그리고 그간 자신이 치른 수많은 싸움들을 머릿속에서 되뇌고 또 되 뇌었다.

‘그래. 화사 그 계집을 잡을 때처 럼 하는 게 좋겠어.’

궁악비는 주마등처럼 스쳐 가던 기 억들 중에서 하나를 콕 집어냈다. 화사 용예린은 그가 젊은 시절에 어렵게 잡은 채화음적이다.

당시 그녀는 아흔 살의 나이였지만 겉은 열여덟 꽃다운 처자의 모습이 었다.

채양보음술로 젊음을 유지한 것이다.

때문에 그녀의 목에는 엄청난 현상 금이 걸려 있었다.

궁악비는 그 현상금을 타기 위해 마음이 맞는 동료들과 함께 그녀를 찾아 나섰다. 주변에선 무모한 짓이 라며 말렸지만 그때는 젊은 패기에 눈에 뵈는 게 없었다.

한데 무모한 패기는 끔찍한 결과를 낳았다. 함께 출발했던 열 명의 동 료들 중 그를 제외한 나머지가 모두 그녀에게 죽임을 당한 것이다.

화사는 아름다운 얼굴만큼이나 사나운 가시를 품고 있었다.

특히 그녀가 휘두르는 철편은 부드러우면서도 날카로웠다.

‘놈을 잡으려면 그 계집을 죽일 때처럼 몸을 내던지는 수밖에 없어.’ 

궁악비가 숨을 고르며 자세를 살짝 앞으로 숙였다.

그러고는 축이 되는 왼발에 강하게 힘을 실으며 순간적으로 앞으로 치 고 나갔다.

“그렇게 무식하게 덤벼서는 내상 대가 못 된다니까.”

황소처럼 달려 나오는 궁악비를 보 며 마달환은 다시금 광혼마검을 전 개했다.

파르르 몸을 떨며 앞으로 나아가던 연검이 일순간에 수십 개로 나뉘었 다.

광혼마검의 삼초식, 환혼이었다.

무엇을 쳐 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궁악비는 손에 쥐고 있던 혈부 를 정면으로 내던졌다.

“소용없다니까.”

마달환이 연검을 휘저어 가슴으로 들이치는 혈부를 옆으로 튕겨 냈다.

‘씨발놈아, 그걸 노리고 있었다.’ 마달환의 시선이 잠깐 혈부 쪽으로 옮겨간 사이 궁악비는 그의 허리를 낚아챘다.

애당초 혈부는 미끼였다.

쾅.

허리를 붙잡힌 마달환이 벽에 부딪쳤다.

충격이 상당한지 미소로 그득하던 얼굴은 사납게 구겨졌다.

하지만 싸움은 끝난 게 아니었다.

마달환은 여전히 손에 연검을 쥐고 있었고 그는 궁악비의 등판을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등 뒤에서 밀려드는 살기에 궁악비는 이를 악물고 허리를 조였다.

뚜두둑, 뚝.

집중된 힘에 척추뼈가 그대로 으스러졌다.

순간 마달환의 움직임이 멎었다. 척추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뼈들 중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곳이다. 통각을 제거해 고통을 느끼지 못하 는 요마라도 척추뼈가 부서진 이상 제 의지대로 몸을 움직일 수는 없었 다.

“대체 내게 무슨 짓을 한 것이냐?” 

마달환은 당황한 얼굴로 팔다리를 움직여 보려 안간힘을 썼다.

“괜히 용쓰지 마라, 넌 이제 살아 도 산 몸이 아니니까.”

궁악비가 싸늘한 표정으로 그를 일별하며 문에 힘겹게 등을 기대고 있 던 설무백에게 다가갔다.

“장주, 몸은 괜찮은 거요?”

“하아, 조금 어지럽기는 하지만 견 딜 만합니다.”

‘저 지경이 돼서도 의연함을 잃지 않는군. 역시 용의 아비라는 건가.’ 

궁악비는 설무백을 보면서 자연스 레 설우진을 떠올렸다.

하지만 상념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복도 너머에서 발소리가 들려 온 것이다.

궁악비는 설무백을 등에 업고 혈부 를 다시 허리에 끼워 넣었다.

‘화린을 피웠으니 분명 노도채 놈 들이 포구로 마중을 나올 거야. 천 호 아우가 걱정되기는 하지만 지금 은 설 장주를 무사히 배에 태우는 게 더 중요해.’

궁악비가 창밖으로 몸을 날렸다. 그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포구 쪽으로 내달렸다.


‘형님이 제 역할을 해 준 모양이 군, 저놈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 른 걸 보니.’

팽천호의 얼굴에는 피로가 덕지덕 지 붙어 있었다.

홀로 파륜진을 상대하는 건 무척이 나 힘든 일이었다.

특히나 그는 지닌 무위에 비해 내 공의 양이 빈약한 수준이라 아무래 도 싸움이 길어지면 더 지칠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그의 몸은 여기저기 생채기 가 나 있었다.

내력이 고갈되면서 움직임이 둔탁 해지자 궁여지책으로 빗겨 맞는 방 법을 택한 것이다.

“철령, 저놈은 네게 맡기마! 내가 돌아오기 전까지 확실하게 처리토록 해라.”

나철휘는 설무백을 놓쳤다는 보고 에 길길이 날뛰며 후원 으로 향했 다. 그리고 그 뒤를 나머지 요마들 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마주도 너무하지, 차포 다 떨어진 놈을 나보고 상대하라니. 이 정도는 밑의 애들한테 맡겨도 되잖아.” 

묵철령이 불만 가득한 얼굴로 거칠 게 숨을 몰아쉬고 있는 팽천호를 바 라봤다.

그의 눈에 비친 팽천호는 상대할 맛도 안 나는 쉰내 나는 먹이였다. 해서 그는 단박에 팽천호의 목을 베 고 나철휘의 뒤를 쫓으려 했다.

그런데 팽천호는 그리 만만한 인간 이 아니었다.

특급 낭인으로 명성을 날렸던 그다. 오늘과 같은 위기는 질릴 정도 로 많이 겪었다는 의미다.

목덜미로 파고드는 묵철령의 검을 팽천호가 오른손으로 틀어쥐었다. 자칫 잘못하면 손가락이 날아갈 수 도 있는 위험한 한 수였다.

하지만 팽천호의 눈빛은 담담하다 못해 호기가 넘쳤다.

묵철령에게 한 방을 먹일 수 있다 면 이까짓 손 하나쯤은 포기할 수 있다는 의지가 전해졌다.

“죽어도 나 혼자는 안 죽는다.”

팽천호가 검을 쥔 채 앞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난전에서 자주 쓰이는 박치기였다.

퍽.

묵철령의 얼굴 한복판에 팽천호의 이마가 꽂혔다.

두개골을 뒤흔드는 충격에 묵철령 의 몸이 크게 휘청였다. 하지만 팽 천호의 공격은 그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는 기회가 왔을 때 끝을 보겠다는 듯 계속해서 이마를 들이 밀었다.

‘이런 개 같은……!’

묵철령은 눈앞이 어른거렸다.

고통이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이대 로 가다간 정말 얼굴이, 머리가 부 서질 것 같았다.

결국 그는 손에서 검병을 놓고 빠 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팽천호와의 거리를 벌리기 위함이었다.

그의 승부수는 통했다.

팽천호는 멀어지는 묵철령을 보고 도 그 뒤를 쫓지 못했다. 박치기를 하면서 마지막 남은 기력까지 모두 쏟았기 때문이다.

“젠장, 조금만 더 하면 끝낼 수 있 었는데.”

팽천호는 아쉽다는 듯 입가에 미소 를 그렸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으니 이제 죽더라도 미련은 없었다. 단지 제자 녀석을 다시 볼 수 없다는 게 아쉬 울 뿐.

“네놈, 각오해라. 사지를 하나씩 잘 라 고통 속에서 죽음을 맞게 해 주마.”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은 묵철 령이 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검을 다 시 쥐었다.

박치기의 여파가 남아 있기는 했지 만 그래도 멈춰 있는 상대를 베는 것은 전혀 문제 될 게 없었다. 묵철령이 검을 들었다.

노리는 곳은 피로 얼룩진 오른쪽 손목이었다. 자신을 이리 만든 원흉 부터 징벌코자 한 것이다.

쉬익.

검이 매서운 바람을 일으키며 손목 으로 떨어졌다. 팽천호는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이어질 고통에 대비했 다.

그런데 바로 그때 이변이 일어났다.

묵철령의 뒤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 우더니 그의 목덜미에 대고 검을 후 려친 것이다.

묵철령이 정상적인 상태였다면 절 대 당할 리 없는 공격이었지만 지금 그는 머리에 지속적인 충격이 가해 진 탓에 지각 능력이 현저히 떨어져 있었다.

검이 묵철령의 목덜미를 반절 가까 이 베고 들어갔다.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붉은 선혈. 묵철령은 자신의 죽음이 믿기지 않 는다든 듯 두 눈을 부릅뜬 채 앞으 로 쓰러졌다.

“괜찮으십니까?”

쓰러진 묵철령의 뒤로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철사자회의 변고를 알리기 위해 달려온 조인창이었다.

“넌 누구냐?”

“철사자회의 조인창이라 합니다.” 

“흠, 아무 이유 없이 이곳까지 달 려오지는 않았을 터. 혹여 그곳에도 변고가 생긴 것이냐?”

팽천호는 단박에 조인창이 달려온 이유를 짐작해 냈다.

이에 조인창이 굳은 얼굴로 자신이 철사자회를 빠져나오기 직전의 상황 을 상세히 설명했다.

둘 사이에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날 업을 수 있겠느냐?”

팽천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에 조인창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등을 갖다 댔다.

“어디로 모실까요?”

“정문을 나서서 쭉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야선루라는 허름한 가게가 보일 게다.”

“그곳에 가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건가요?”

조인창은 막연한 기대감을 품고 물 었지만 팽천호는 고개를 가로저었 다.

“야선루는 접선책으로 존재하는 안 가일 뿐이다. 그곳에 간다 한들 실 질적인 도움을 얻지는 못할 것이다.”

“하면 그곳엔 왜………?”

“받은 게 있으면 그만큼 돌려줘야 하지 않겠느냐. 미력한 힘으로나마 놈들에게 되갚아 줄 것이다.”

팽천호의 눈가에 짙은 살의가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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