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 라자 7권 – 제14부 : 정답이 없는 선택 2화

드래곤 라자 7권 – 제14부 : 정답이 없는 선택 2화

2

일행들이 제각기 방으로 돌아가고 나자 식당 안에는 늦게 나타난 나와 네리아, 레니 외에 샌슨과 엑셀핸드, 그리고 바일하프와 칼이 남게 되었다. 샌 슨과 엑셀핸드는 서로 상대의 입 안에 든 것만 빼놓고는(확신할 수는 없지만) 모조리 빼앗아 먹으려 들고 있어서 시간을 지체하고 있었고 칼은 지도를 바라보며 머리가 아프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바일하프는 그 모든 사람들로부터 조금 떨어진 위치에서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파이프를 피 우고 있었다.

히터라. 그럼 조금 둘러보면 혹시 드워프들의 쿨러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너의 머리를 식혀주마!’ 내가 왜 이럴까?

“바일하프 씨?”

바일하프는 파이프를 손에 들더니 내 쪽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대답했다.

“왜 불렀는지는 모르지만 저 굉장한 구경거리에서 자네에게 고개를 돌려야 될 정도의 이유가 있어야 될 거야.”

“인간과 드워프의 음식 쟁탈전이 굉장해 보이는 것은 차라리 슬픈 일이에요. 바일하프 씨. 질문이 있는데요?”

“자네가 질문을 가지고 있다면 난 아마도 대답을 가지고 있겠지. 뭔가?”

“저, 히터가 무슨 의미인지 묻는 것은 불쾌한 일인가요?”

“응? 아냐. 그렇진 않네. 히터? 말 그대로지. 난 덥히는 드워프야.”

“주로 어떤 것들을 덥히는데요?”

히터 바일하프 크루겐은 싱긋 웃더니 말했다.

“생활.”

“생활?”

“그러니까, 저 망령 난 엑셀핸드 녀석은 노커지? 저놈은 우리 드워프들 모두의 정신적인 문제를 책임지지. 자네들 인간식으로 말하자면 정치적인 문 제라고 해도 좋겠고.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되는가. 이 행동은 어떻게 올바르고 저 행동은 어떻게 잘못되었는가 등을 결정하는 녀석이야. 저 망령 난 녀석이 노커라는 드워프들의 비극에 대해 잠시 묵념을.”

바일하프는 묵념하는 대신 날아온 맥주잔을 유연하게 피하더니 계속 말했다.

“그리고 난 여기 갈색 산맥의 대광산의 생활을 책임지지. 겨울 식량은 충분히 준비되어 있는가, 손님 맞을 방은 치워져 있는가, 어느 드워프에게 뭐 가 부족하고 그건 어떻게 마련해 주는가. 뭐 그런 문제를 책임진다네. 드워프들의 행운에 대해 잠시 함께 기뻐하세나.”

“네놈이 갈색 산맥의 히터라는 것은 갈색 산맥이 생겨난 이래 최대의 비극이다! 푸하하하!”

엑셀핸드는 자신의 말이 재치있었다고 생각하고는 득의양양해했다(물론 그 행동의 결과로 샌슨에게 마지막 시드 케이크를 빼앗기는 뼈아픈 결과를 맞이하고 말았 다.). 대답을 잘 해주는 드워프를 만난 김에 평소에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던 것이나 좀 물어봐야겠군.

“노커…………, 히터…………. 음. 저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 많네요. 그런데 혹시 라자는 없어요?”

“뭐?”

칼이 지도에서 고개를 들며 턱을 고인 채 우리 쪽을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바일하프는 굵은 눈썹을 찌푸리며 날 쳐다보았다.

“라자, 드래곤 라자요. 난 그게 좀 궁금했거든요.”

난 테이블 위에 놓인 컵과 그릇을 옆으로 치웠다. 그러고는 그 빈 자리에 팔을 괴고 몸을 앞으로 숙여 바일하프를 바라보았다. 바일하프의 얼굴은 담 배 연기에 가려 어렴풋하게 보였다.

“드워프분들에게 드래곤 라자가 있었다면 크라드메서가 깨어난다고 해서 엑셀핸드가 수도까지 라자를 찾으러 오지는 않았을 테니까, 아마 드래곤 라자는 없을 거라고 생각되기는 하는데. 라자가 있다면 여기 드워프들과 크라드메서가 바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죠?”

바일하프는 불분명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겠지.”

“그렇다면 라자가 없다는 말이군요?”

바일하프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렇지. 자네들에게는 초장이라는 것이 있지?”

힉! 딸꾹질이 나올 뻔했다.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바일하프는 말했다.

“그렇다면 엘프에게도 초장이가 있을까?”

“예? 어, 글쎄요? 엘프는…… 엘프는 밤눈이 좋으니까, 초는 필요없겠죠?”

“그래. 음. 밤눈이 좋다라. 사실 이렇게 말해야 되겠지. 엘프들은 촛불이 필요해지는, 그러니까 주위와 부조화를 이루는 일이 없다고. 정령을 한 놈 불러버리면 되겠지? 그 친구들은 아마 그렇게 조화를 이루어내겠지.”

아, 그래. 몇 번 보았어. 이루릴이 윌로위스프를 불러내어 마법책을 읽는 것. 바일하프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자네들에게 초장이가 있다고 해서 엘프에게도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자네들에게 라자가 있다고 해서 다른 모든 종족들에게 라자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네.”

“그게 그런가요? 하지만 초는 없어도 되는 이유가 있는데, 라자는 무슨 이유죠?”

“자네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제일 좋아하지 않나? 하하하!”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해?

난 고개를 돌렸고, 재미있다는 식의 미소를 짓는 칼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 갑자기 칼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엘프가 숲을 걸으면 그는 나무가 된다. 인간이 숲을 걸으면 오솔길이 생긴다. 엘프가 별을 바라보면 그는 별빛이 된다. 인간이 별을 바라보면 별자리가 만들어진다.

한 마디 추가해 볼까. 엘프는 빛의 정령을 불러내고, 인간은 초를 만든다.

아아. 그거군.

갑자기 베란다 쪽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와서 레니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무슨 소리지?

“이랴아, 하아!”

길시언의 목소리잖아? 난 샌슨이 잠시 베란다 쪽에 정신을 판 사이에 재빨리 그의 앞에 놓여 있던 병을 낚아채 들고는 베란다쪽으로 걸어갔다. 아래 가 멋지게 조망되는 장소였다. 난 베란다의 난간에 엉덩이를 올려놓고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길시언이 선더라이더를 달리고 있었다.

그는 마을 앞에 펼쳐진 넓은 분지를 달려가고 있었다. 왜 저러지? 그러나 순식간에 분지 저편으로 달려가던 길시언이 커다란 원을 그리며 방향을 바 꾸는 것을 보고는 그저 몸을 푸는 정도의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긴장감을 가라앉히는 방법으로 식탐을 보여주는 사람들도 있는데, 참 모범적인 전사의 긴장 해소법을 보여주고 있군 그래. 샌슨. 이리 와서 좀 보고 배우라구. 그러나 샌슨은 엑셀핸드와 날카로운 눈길을 교환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관두지.

선더라이더는 은빛 갈기를 휘날리며 검은 화살이 되어 땅 위를 날아갔다. 그 뒤로 은가루가 떨어져내린다 해도 전혀 이상할게 없어보이는데, 길시언 은 한 손에 든 프림 블레이드를 옆으로 늘어뜨리고 고삐를 느슨하게 쥔 채 달려갔다. 프림 블레이드는 오후의 햇살을 받아 분지 전체를 비출 듯 굉장 한 빛을 뿜었다. 어느 각도에선 길시언이 말이 아니라 빛을 타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칼이 아니라 빛을 들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느새 내 곁으로 다가온 바일하프가 난간에 팔을 올려놓고는 나와 함께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굉장한 검이군. 마법검인가?”

“에고 소드예요.”

“그래? 내가 말에 대해 아는 척하면 우습겠지만, 저 말도 상당해 보이는데.”

“선더라이더. ‘북부 대로의 황제’라는 별명이 있다던데요.”

“핫하. 황제라구? 그렇단 말이지? 마법검에 명마라. 저 길시언은 드래곤 슬레이어가 될 만한 자질이 있어 보이는데. 누군가 드래곤 슬레이어가 되겠 다고 말했을 때 상대를 웃기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을 꼽아보라면 저 친구는 들어가겠어. 혹시 저 친구 그런 야망으로 여기 온 것 아닌가?”

바일하프는 정말 크라드메서를 때려잡고 싶어하는 건가? 난 샌슨에게서 획득한 술병 내용물의 냄새를 조금 맡다가 대답했다.

“그의 속셈이야 모르지만 지금껏 겪어봤던 것으로 보아 그런 야망은 없는 것 같은데요. 그리고 그건 우리들의 의뢰주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기도 하고.”

바일하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네들의 의뢰주?”

“아, 우리는 에델브로이의 총본산인 그랜드스톰의 의뢰를 받아 레니를 크라드메서의 라자가 되도록 하는 거예요.”

“뭐야? 엑셀핸드의 의뢰가 아니라?”

“하하. 아녜요. ……우와! 이거 뭔데 이렇게 독하죠?”

이거 앞이 핑 돌 정도인데? 샌슨이나 엑셀핸드가 벌컥벌컥 마시기에 아무 생각 없이 마셨다가 큰일 날 뻔했다. 난 머리를 심하게 가로젓고는 술병에 서 관심을 돌려 다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질주, 흙먼지가 흩날리고, 도약, 대지로부터 자유롭다. 선회, 물처럼 유연하지만, 가속, 밤하늘을 찢어내는 은빛 번개. 저게 정말 여섯 시간 동안 산 길을 걸어온 말이냐고 누가 나에게 물어온다면 난 대답할 말이 없어 곤혹스러워지겠는걸. 겨울 산의 맑고 시린 공기에 노출된 나무들은 회색의 돌처 럼 보였다. 그리고 수십 큐빗 높이로 자라난 침엽수들은 상상의 지평을 넘어서는 웅장함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로 길시언은 말을 달리고 있는 것이다.

“이랴아! 하아, 하!”

침엽수들 사이로 부는 가장 강인한 바람이로군. 카하! 아무리 독해도 한 모금 마셔줘야 되겠는데. 길시언, 등을 보여주는 나의 왕을 위해.

크라드메서라는 것이 위험스러울 정도로 구체화되기 시작하는군.

오늘은 11월 28일. 정확히 한 달하고도 하루 전인 10월 27일, 우리는 그랜드 스톰의 장엄한 후원에 모여앉아 크라드메서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때의 크라드메서는 그냥 크라드메서였다. 이그누스 드래곤, 라자를 잃고 발광했으며, 미드 그레이드를 쑥대밭으로 만들었고, 현재 라자가 없는 상 태에서 수면기에 들어가 있지만, 곧 깨어날 드래곤. 단어들은 아주 충분했다. 하지만 감정은 없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난 지금, 우리는 크라드메서를 지척에 두고 그를 만나기 위해 먼저 자신을 가다듬고 있는 것이다. 이제 단어들은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고 감정들만 뭉게뭉게 일어난다. 뭐라 표현할 말이 없다. 크라드메서, 크라드메서만이 남아 있었다. 이제 그는 기나긴 수면기를 끝내었고, 우리는 한 달을 보내었다. 그와 우리들 사이에는 거리도 사라지고 시간도 사라졌다. 이제 그와 우리들만이 남았다.

머리가 뜨거워지는데.

“야호!”

무턱대고 아래를 향해 고함을 질러보았다. 길시언은 선더라이더를 멈춰 세우더니 위쪽을 돌아보았다. 그의 손이 올라오더니 쾌활한 동작을 취했다. 프림 블레이드가 번쩍였고, 그는 다시 선더라이더를 달리게 했다. 그의 뒤로 가으내 쌓여 있던 낙엽들이 평화를 잃고 날아올랐다. 그 낙엽들의 폭풍 속으로 길시언은 사라져갔다.

“재미있어 보이는데. 어이, 샌슨? 우리도 저런 거 해볼까?”

“읍, 읍! 켈록. 뭐라구?”

“대무 말이야, 대무! 몸 좀 풀어두자구.”

샌슨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하러? 소화하러?”

“칵! 그게 아니고 내일은 어쩌면 멋진 싸움판이 될지도 모르잖아?”

“난 『드래곤 퇴치법」 제4장 이그누스 드래곤에 관하여’, 뭐 이런 책은 읽은 기억이 없는데.”

“그래서? 다 포기하고 입만 즐거우면 그만이다?”

샌슨은 피식 웃더니 다시 엑셀핸드의 눈치를 살피며 슬금슬금 파이 접시를 자기 앞쪽으로 끌어당기면서 말했다.

“내일이 지나고 나면 다시는 입을 즐겁게 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르잖아?”

갑자기 레니가 포크를 씹고는 신음을 흘리며 입을 가렸다. 아이고, 저 웬수! 샌슨은 당황한 표정으로 레니를 바라보았고 네리아는 눈길로 샌슨을 마 구 꾸짖어대었다. 샌슨은 네리아의 눈길에 두드려맞으며 말했다.

“어, 어, 레니, 그냥 해본 소리라구. 나랑 후치는 원래 서로 짖어대는 거지 말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지 않았어?”

짖어대다니. 으윽. 난 그런 기억 없어. 레니는 입에서 포크를 천천히 꺼내어 테이블에 내려놓더니 역시 침착한 동작으로 입가를 닦고서는 샌슨을 바 라보았다.

“저도 알아요. 샌슨 오빠. 위험한 거죠? 드래곤을 만나러 가는 건데 안전하다면 그게 더 이상하겠죠.”

지도를 바라보던 칼이 고개를 슬그머니 돌렸다. 샌슨은 칼을 돌아보며 애타는 눈길을 보내었지만 칼은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기만 했다. 결국 샌슨은 다시 레니를 바라보았다. 그는 헛기침을 몇 번 하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안전하다고 말할 수야 없지.”

레니는 샌슨에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녀는 갑자기 고개를 가슴에 파묻었다. 그녀는 한참 동안 그렇게 고개를 떨구고 앉아 있었 고 네리아는 이제 샌슨을 겨냥해서 나이프를 집어던질 자세였다. 네리아는 입을 벌렸지만 소리는 나지 않게 외쳐대었다. ‘이 미련이야! 다 큰 어른 이 꼬마 겁주냐? 오히려 꼬마가 겁먹지 않도록 해줘야 되는 게 당연하잖아!’ 샌슨은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그때 고개를 숙인 레니에게서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겁나요. 많이.”

샌슨은 입술을 조금 내밀더니 말했다.

“나도 그래.”

“예?”

“나도 그렇다구. 드래곤을 찾아가는 것은 이번이, 에. 세 번째인가? 처음엔 아무르타트고, 그 다음은 드래곤 로드. 그리고 크라드메서야. 와하! 나도 꽤나 경험이 많군 그래. 어쨌든 이번이 세 번째이지만 나도 좀 겁이 난다구. 그러니까 너도 겁나는 거 당연해.”

레니는 샌슨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도망치고 싶어지는 것은 어쩌면 좋죠?”

“도망치면 되잖아?”

네리아, 지금이에요! 던져요! 그 나이프를 샌슨에게 던지라구! 젠장, 저걸 지금 위로라고 하는 거야? 레니는 눈이 동그래져서 샌슨을 바라보았지만 샌슨은 목전에 도래한 위기도 깨닫지 못한 채 빙긋 웃었다.

“도망쳐요?”

“응. 그런데 도망에는 두 가지가 있어. 앞으로 도망치는 것과, 뒤로 도망치는 것. 그러니까 레니는 앞으로 도망치면 돼.”

레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뒤로 도망치는 것은 알겠는데 앞으로 도망치는 것은 뭐예요?”

샌슨은 지금 레니에게 일일이 대답해 주면서 과연 행복할까? 샌슨이 레니와 말을 나누는 사이에 빠른 속도로 테이블 위의 음식들이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난 이런 의문을 떠올렸다. 엑셀핸드, 그만해요! 샌슨은 슬픈 눈으로 테이블을 바라보더니 들고 있던 포크를 위로 들어올리며 말했다.

“음. 레니는 잘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말이야, 이건 군대 같은 데서 간혹 들을 수 있는 농담이야. 신병들이 처음으로 전투에 배치될 때 말이지, 녀석 들은 전쟁에 질려버려 돌격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무기고 뭐고 집어던지고 달아나는 경우가 왕왕 있거든? 그때는 명령이고 뭐고 아무런 소용이 없어. 그래서 고참병들은 신병들에게 이런 말을 들려주지. 도망치려면 앞으로 도망치라고.”

“왜지요?”

샌슨은 포크를 지휘봉 삼아 가상의 부대를 지휘하는 시늉을 해보였다.

“그래야 도망을 쳐도 아군 안에 있게 되니까. 보라구. 아군은 앞으로 달려가는데 혼자 뒤로 도망치면 어떻게 되지? 낙오되잖아. 그럼 시선을 끌게 되 고 화살 맞기도 쉬워. 하지만 앞으로 도망치면 계속해서 아군 안에 있게 돼. 그래야 자기 맞을 화살을 다른 아군이 맞아줄 수도 있고 말이지. 알겠 “지?”

레니는 샌슨의 설명을 들으면서 배시시 웃더니 미덥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헤에? 그 말이 통해요?”

“믿긴 어렵겠지만 그거 낙오병이나 탈주병 줄이는 데는 썩 효과가 있는 말이야. 우리는 몰려다니는 성질이 있는 종족이거든? 와하하!”

“응……,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도망치고 싶다 해도 나 혼자서는 도망도 못 치니까, 차라리 친구들 옆에 남아 있는 것이 낫다는 말이죠?”

“냉정하게 말하면 그렇고.”

“헤에. 퍽도 안심되네요. ………샌슨 오빠는 날 지켜줄 거죠?”

샌슨은 손에 든 포크를 가슴 앞에 세워보이며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후치보다 더 열심히 지켜줄 거야.”

“잠깐! 거기서 내가 왜 등장하는 거지? 비교할 걸 비교하라구! 레니. 사람들이 하는 말이라는 것 중에는 말이야, 듣는 순간 ‘찡!’ 하면서 ‘아, 쓸데없 는 말을 들었구나.’ 하는 느낌이 드는 말이 있거든? 조금 전에 샌슨이 말할 때 ‘찡!’ 하는 느낌이 오지 않았어?”

레니는 방그레 웃더니 맑은 얼굴로 날 바라보며 말했다.

“찡!”

윽. 쓸데없는 말을 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바일하프는 입을 과격하게 벌리고 웃어대기 시작했고 칼도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재미도 있으시겠어들.

“보라! 서풍이 나를 부른다! 하늘 아래 외길. 테페리는 갈림길이지만 테페리는 갈림길이 아니다. 재 속에서 태어나 영원으로 회귀하는 불사조의 비 행처럼 나는 다시 앞으로 걸어간다. 우리 시대의 전설이자 우리 시대의 악몽 크라드메서를 향해!”

옆에서 걷고 있던 아프나이델은 제레인트의 말을 들으며 미소를 지었다. 난 어깨를 늘어뜨리며 말했다.

·그래서요?”

“어떠냐고?”

“정말 자서전에 그걸 쓰실 생각이세요?”

제레인트는 히죽 웃더니 말했다.

“몰라. 자서전은 앞으로 삼사십 년 후에나 쓸 생각이니까 그 동안 마음이 바뀔지도 모르지. 그런데 어떠냐고?”

““테페리는 갈림길이지만 테페리는 갈림길이 아니다……………’라는 게 무슨 말이에요?”

“응? 아, 그거? 테페리는 갈림길의 신이지만 갈림길은 영원히 갈림길로 남을 수 없다는 뜻이야. 시간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어려워요.”

“뭐가 어렵냐? 네가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까지 걸어가는 동안 갈림길을 수십, 수백 개를 만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네가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서 네 가 출발해 온 곳에서 목적지까지의 여정을 지도에 좌악! 그린다고 생각해 봐. 그건 하나의 선이 되겠지? 좀 구불구불할지는 모르지만 말이야.”

“어……, 그렇겠네요?”

“그렇지. 갈림길은 양쪽 다 가볼 수 없다는 뜻이야. 결국 갈림길이 아니게 되지. 그게 테페리의 딜레마야. 그랑엘베르도 그 점에선 마찬가지. 영원히

순결한 것은 결국 아무것도 남길 수 없어. 순결한 여자는 아이를 못 낳고 순결한 대지는 곡물을 못 낳지. 시간 앞에 모든 것의 가치는 소멸하는 법. 아 아, 이건 네게 좀 어렵겠구나. 하하하! 그런데 어땠어?”

“좋다고 생각돼요.”

“그런데 표정이 영 아니다?”

제레인트는 의심스러운 얼굴로 날 바라보았고 난 한숨을 푹푹 쉬었다. 제레인트는 이제 아프나이델을 바라보았고 아프나이델은 고개를 끄덕였다.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제레인트는 벌쭉 웃었다. 그때 내가 질문했다.

“겁나지는 않아요?”

제레인트는 발 아래의 돌멩이를 툭 걷어찼다. 돌멩이는 기다란 풀들 사이로 사라졌다가 잠시 후 저편 어딘가에서 풀들에 가려진 바위에 맞았는지 ‘탱!’ 하는 소리를 울렸다. 제레인트는 두 팔을 들어올려 뒤통수를 받친 자세로 날 바라보았다.

“겁나냐고? 왜?”

“……당신은 테페리의 프리스트니까 자기가 걷는 길에 아무런 공포가 없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난 테페리의 은총을 받은 몸이 아니라서 좀 겁이 나 는데요.”

“네가 오고 싶어서 온 길이잖아? 왜 겁이 난다는 거지?”

난 가슴 앞에 있는 바스타드의 소드 벨트를 조금 만지작거리다가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긴장감은 어쩔 수 없어요. 크라드메서를 만나잖아요. 물론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알고 있어요. 쳇! 크라드메서가 아무리 잘 나봤자 날 죽이기밖에 더하겠냐는 것도 알고 있고요. 하지만 무섭고 긴장되는걸요.”

제레인트는 이제 손을 내리더니 이마를 벅벅 긁었다.

“이봐, 이보라구. 무서워하는 것까진 좋아.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감정을 가지고 뭐라고 할 수도 없어. 그런데 말이야, 넌 그 공포나 긴장감 때문에 아무 일도 못할 지경이야?”

“예? 아뇨. 그렇진 않아요.”

“그래. 내 보기에도 넌 현재 태연해 뵈는데. 이봐요, 아프나이델. 당신은 지금 어떻지요?”

갑자기 질문을 받자 아프나이델은 당황한 웃음을 지었다. 그는 로브 자락 아래로 팔을 모으더니 고개를 조금 숙이며 말했다.

“긴장됩니다. 아무 일도 못할 지경은 아니지만.”

“그래요? 그럼 상관없잖아요. 긴장이 되든 말든, 평소 하던 대로 행동할 수 있다면 그거 아무 문제가 없는 셈이네요? 아프나이델 당신도 그렇고 후 치도 그렇고. 그건 감정을 조절할 수 있다는 말이잖습니까?”

제레인트는 왠지 나와 다른 나라 사람처럼 느껴지게 말하는데. 아, 참. 제레인트는 나와 다른 나라 사람이었지. 일스의 국민이니까. 하지만 그건 땅 에 대충 그어놓은 선의 이쪽에 사느냐 저쪽에 사느냐의 문제고, 제레인트는 왜 저렇게 아무 걱정도 불안도 없는 거지? 골치 아프군. 난 고개를 들어 길시언이 어디쯤 있는지 찾아보았다.

길시언은 이제 산등성이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힘도 좋아, 말도 기수도. 둘은 지금 일체가 되어 분지 주변을 둘러싼 산을 짓쳐 올라갔다가 돌격하듯 이 내리닫고 있었다.

투다닥, 투다닥! 검은 선더라이더가 은빛 갈기를 휘날리며 점점 거대해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우리는 제자리에 멈춰 섰다. 제레인트는 눈물이라도 줄 줄 흘릴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루트에리노 가문에서 300년이 사라진 것 같아!”

아프나이델은 싱긋 웃었다. 정말 보기 괜찮은 광경이긴 한데 아쉽지만 여기까지 온 목적이 있는지라 아프나이델은 손을 들어올렸다. 길시언은 우리 모습을 보자 곧 고삐를 잡아당겼다.

힝힝힝! 선더라이더는 거창하게 투레질을 하더니 멈춰 섰다. 길시언은 말에서 뛰어내리더니 선더라이더의 목을 쓸어주었다. 그 역시 땀에 젖어 머리 카락은 이마에 달라붙어 있었고 턱 아래로는 땀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길시언은 한 손으론 선더라이더의 고삐를 쥐고 다른 손으론 얼굴을 닦 으면서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휴우. 더운데요. 무슨 일입니까?”

아프나이델은 자기는 춥다는 듯이 어깨를 움츠려보이고는 말했다.

“아, 바일하프 님의 전갈입니다. 그렇게 말을 달리는 것은 긴장감 푸는 데도 좋고 몸 푸는 데도 좋겠지만 분지라서 말굽 소리가 너무 울리니까 적당 히 해주었으면 좋겠다는군요. 땅 아래에서 일하는 드워프들이 깜짝깜짝 놀란답니다. 드워프들이야 귀가 밝고, 게다가 선더라이더의 말발굽 소리는 다른 말에 비해 유별나게 크지 않습니까.”

길시언은 자기 이마를 탁 치더니 말했다.

“아. 그래요? 그렇군요. 그 생각을 못했어요. 그렇잖아도 그만 달릴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항문에 와닿는 충격을 점점 감당하기 힘들어……………, 죄송 합니다. 야아앗! 에, 말 달리는 것도 지루해지던 참이었거든요. 대무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순간 아프나이델과 제레인트의 눈이 모두 나에게 돌아왔다. 뭐야? 이 눈길로써 말하고 싶은 바가 뭐냐고? 길시언은 빙긋 웃더니 말했다. “한 판 뛸까, 후치?”

길시언과 대무라고? 날 죽여라, 죽여!

“정중히 사양하겠어요.”

“왜 그래. 나쁠 거 없잖아. 운동도 되고.”

“운동이라면 여기까지 올라오면서 충분히 했다고 봐요. 고마운 말씀이지만 사양하겠어요.”

“흐음. 네가 사양하면 남는 것은 샌슨과 운차이뿐인가. 샌슨은 지금 뭐하고 있지?”

“잡아먹다가 잡아먹혀 버리고 말았죠.”

“취했단 말이군. 운차이는?”

“모르겠는데요.”

“그럼, 운차이나 찾아볼까?”

우리 네 명은 건물로 돌아왔다. 길시언은 선더라이더를 다시 마구간에 넣어두고는 건물 안으로 들어와 운차이의 방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운차이는 방 안에 없었다. 이 사람이 어디로 간 거지?

“혹시 욕탕으로 수도꼭지를 떼러 갔나?”

내 의문에 길시언이 진심으로 우려의 표정을 지은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음. 그러나 운차이는 다행히도 욕탕에 없었다. 방들을 돌아다니며 운차이의 모습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길시언은 점점 근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설마 이 간첩이 여행의 마지막 단계에서 우리들을 버리고 도망가 버렸나? 그러나 운차이의 방 안엔 그의 짐이 그대로 남아 있어 그런 의문은 가능성 이 희박해 보였다. 마구간에 앰뷸런트 제일도 그대로 묶여 있었다. 그렇다면 어디로 달아난 것은 아닌데.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니 이 산을 내려가 는 데 앰뷸런트 제일은 별로 필요가 없다. 산을 다 내려가면 필요해지겠지만 그 동안에는 버거운 짐일 뿐이다.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보면 그의 짐도 하 산하는 데 필요한 것은 아니다. 짐이 없다면 훨씬 빨리 내려갈 수 있겠지?

어쩌면…… 생각하기 싫은 가설이긴 하지만, 어쩌면 운차이는 크라드메서와 만나기 싫어서 달아났을 수도 있다. 꼭 그런 것이 아니라도 여기서 운 차이가 달아나면 우리들은 그의 뒤를 쫓지 못한다. 산을 도로 내려가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고 게다가 크라드메서를 찾아가는 일이 급하기 때문에 그에게 주의를 돌릴 수도 없다.

나와 길시언, 제레인트, 아프나이델이 모두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런 생각을 떠올리고 어두운 표정을 지은 채 운차이의 방문을 노려보고 서 있었을 때였다.

“운차이야! 응? 여기서 뭣들 해요?”

통로 저편에서 나타난 것은 네리아였다. 제레인트가 대답했다.

“운차이 씨가 보이지 않는군요.”

“없어요? 어디 갔나?”

“여기저기 찾아봤지만 보이지 않는데요.”

네리아는 그런가보다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이상한 느낌을 받은 모양이었다. 그녀는 우리들의 얼굴을 주욱 둘러보더니 갑자기 얼 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어디에도 안 보인다고요?”

“예.”

“설마? 짐은 그대로 있어요?”

“그대로 있습니다.”

“무기는요?”

응? 무기라구? 우리는 다시 운차이의 방에 들어갔다. 그의 롱소드는 없었다.

“무기야…………, 허리에 차고 있을 테니까 그와 함께 있겠죠.”

아프나이델이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리아는 주먹으로 입을 틀어막더니 갑자기 몸을 돌려 달려가 버렸다. 우리들은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서로를 힐끔 쳐다보고는 말없이 흩어졌다. 모두들 네리아처럼 한 번 더 샅샅이 운차이를 찾아보기 위해 흩어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운차이!’ 하는 식으로 고함을 지르지는 않았다. 불렀을 때 대답이 없으면 기분이 어떨까.

조용하지만 열렬한 수색이 계속되었다. 한 시간 후에 나는 그 괴상망측한 건물들 사이에서 아프나이델의 모습을 보게 되었고 아프나이델은 말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른 사람들도 못 봤다는데요.”

내 대답에 아프나이델은 침울한 얼굴이 되었다. 우리들은 그대로 다시 헤어져 수색을 계속했다. 그로부터 30분 후, 태양이 분지 서쪽의 봉우리를 쓰

다듬기 시작할 때 난 우리들이 있던 건물의 넓은 마당에서 칼에게 붙잡혔다.

붉은색으로 물든 마당의 한가운데서 칼은 검붉은 모습으로 꼿꼿이 선 채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이상하군, 네드발 군. 모두 푹 쉴 줄 알았는데 자네와 몇몇 사람들이 매우 바쁘게 움직이고 있어. 그런데 아무도 말은 하지 않는걸. 도대체 무슨 일 “인가?”

“운차이가 안 보여요.”

“뭐라구?”

난 짜증난 목소리로 대답했다.

“운차이가 안 보인다구요, 젠장. 아무리 돌아다녀도 운차이가 보이지 않아요.”

다리도 아프고 머리도 아파서 마당 끝으로 걸어갔다. 마당이라지만 다른 건물의 옥상이라 그 끝은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고 난 그 끝에 주저앉아 다 리를 아래로 내렸다. 한 시간 반이 넘도록 웃기게 쌓여 있는 건물들 사이를 뛰어다니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했더니 맥이 쭉 빠진다. 제기랄! 정말 엉망진창으로 쌓아둔 건물들이다. 칼이 등 뒤로 걸어오더니 말했다.

“혹시 그의 짐이나 말이 없어졌단 말인가?”

“짐하고 말은 그대로 있어요. 무기는 없고. 그런데 이 산을 내려가는 데 그 짐이나 말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응? 응……, 하긴 그렇군. 말은 어차피 탈 수가 없고 짐은 몸을 무겁게 할 테니까.”

등 뒤에서 들려오는 칼의 목소리는 낮았다. 난 발 아래 희한하게 쌓여 있는 건물들을 내려다보았다. 드워프들의 저 걸작 건축들이 석양을 받아 붉은 색으로 물들어 간다. 불이라도 난 것처럼 보이는데.

“운차이는, 어차피 길시언에게 복속된 몸일 뿐이죠?”

“그런 셈이지.”

“그러니까, 우리들처럼 그랜드스톰에서 의뢰를 받은 것도 아니고, 제레인트처럼 즐거울 것 같아서 동참한 것도 아니고, 그냥 마지못해 끌려온 거죠? 그렇죠?”

“그렇다고도 볼 수 있겠는걸.”

“맞아요. 그렇지요. 그런데 난 지금까지 그런 식으로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다구요.”

“운차이 씨는 과묵한 편이니까.”

“맞아요. 입이 무거워요. 하루에 몇 마디 꺼내놓지도 않는 말들엔 독기가 묻어 있고요. 제길, 그래도 달아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구요.” 칼은 갑자기 등 뒤에서 앞으로 걸어나오더니 내 옆에 섰다. 그는 하늘을 보며 말했다.

“왜 그렇게 생각했나, 네드발 군. 자네는 그를 잘 아는가?”

“예? 글쎄요. 내가 그를 잘 아느냐고요?”

“그래.”

“……잘 몰라요.”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언젠가, 이라무스 시였던 것 같군. 세레니얼 양이 운차이 씨에게 질문한 적이 있다네. 달아날 거냐고. 그때 운차이 씨는 뭐라고 대답했지?”

이라무스 시에서? 어, 그래. 운차이에게 채울 족쇄나 수갑을 구하려고 했을 때, 운차이는 뭐라고 대답했지?

“기회만 오면 달아날 거라고…”

“그래. 그는 스스로의 의사를 분명히 밝혔네. 기회만 오면 달아날 거라고 말했지.”

“하지만 그때하고 지금은 상황이 다르잖아요!”

“뭐가 다르지?”

칼은 그대로 붉어지는 하늘만 바라보며 말했다. 난 칼의 옆얼굴을 올려다보다가 다시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때는…………… 우리와 그가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그가 전향하지도 않았던 때잖아요. 하지만 그는 이제 바이서스로 전향했잖아요. 달아날 필요가 없는데요.”

“자네 마음 속에 있는 말을 하게나.”

마음 속에 있는 말? 마음 속에 있는 말이라고.

“이제는………… 그와 우리는 친구잖아요.”

“운차이 씨가 그렇게 말한 적이 있는가? 우리가 동료라고 말한 적이 있다는 말인가?”

칼은 놀랍게도 잔혹한 사실만을 말했다. 난 고개를 더욱 숙였다.

“그렇게 말한 적은 없어요.”

“그럼 자네 멋대로 그렇게 생각한 것 아닌가.”

“예. 멋대로 그렇게 생각했어요. 하지만 내가 오해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제길, 그럼 나와 칼은 동료예요? 썅!”

칼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멀거니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거 꼭 말해야 알아요? 말하지 않아도 아는 거 아니에요? 공증인 세워서 계약서 만들고 도장이라도 찍어놔야 서로 친구고 서로 동료예요? 그렇 지 않잖아요!”

“부부도 결혼 선서는 한다네.”

“맙소사, 카아알!”

“농담이라고 생각되는가?”

갑자기 칼은 고개를 아래로 내려 날 바라보았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그와 우리 사이에 우정이 있는지 없는지도 아직은 확실하지 않네. 하지만 그 우정이라는 것이 있다고 볼 때, 그게 서로를 구속할 권리까지 있다는 의미인가? 운차이 씨가 우리와 함께 있어 행복하지 못하고 떠나고 싶다면, 우리는 존재하는지조차도 의심스러운 우정의 이름으로 그를 붙잡아야 하 는가?”

뭐라구?

“우리가 그의 주인이라도 된단 말인가? 왜 그렇게 화난 거지, 네드발 군? 운차이 씨가 달아났다면, 그게 어쨌다는 말인가? 그는 간첩이었고 전향해 서 고국에도 돌아가지 못해. 그리고 우리는 그의 과거를 잘 아는 사람이야. 그가 고국을 버린 것처럼 우리들도 버리고, 어딘가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 서 새롭게 살고 싶다고 생각할 수 없다는 말인가? 왜 그가 우리와 저 위험스러울지도 모르는 크라드메서 방문을 함께해야 된다고 말하는 거지? 우정 의 이름으로?”

말이 턱 막힌다. 난 칼의 무표정한 얼굴을 올려다보며 질려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 나는 무의식중에 말하고 있었다.

“그의 속에 있는 나의 이름으로.”

칼은 여전히 무표정하게 내려다보았다. 난 말했다.

“그래요. 운차이 속에 있는 나의 이름으로 우리와 함께하길 요구하겠어요. 우리는 제멋대로 살아가는 멧토끼 같은 생물이 아니잖아요. 운차이가 그 렇게 하고 싶다고 해도 허락하지 않겠어요! 그리고 같은 맥락에서, 운차이는 내 속에 있는 그의 이름으로 나에게 요구할 수 있을 거예요. 무슨 일이든 지! 우정이 왜 구속이 아니라는 거예요. 사랑이 왜 구속이 아니라고! 마치 자유롭게 팽개칠 수 있는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난 입술을 적셨다. 칼의 딱딱한 얼굴은 이제 핏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핸드레이크를 보세요! 다레니안에 대한 사랑이 그의 족쇄였고 그의 수갑이었어요. 그가 그 사랑을 후회했을까요?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난 운차이를 친구로 생각했고, 따라서 마음대로 달아났다는 점에 대해서 화를 내겠어요! 당연하게! 한점 의혹도 없이!”

가슴이 크게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젠장, 엿 같은 기분이군. 다리는 피로하고 머리는 터져나갈 것 같은 기분이다. 끝내주는데. 그때 갑자기 칼은 고개를 돌렸다. 그는 앞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드발 군.”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현자는 어떤 사람이지?”

뭐야? 이게 무슨 말이지? 그러나 칼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몸을 돌렸다. 그는 그대로 걸어가 버렸고 난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현자가 어떤 사람이냐 고? 그때 등 뒤에서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느껴왔던 거지만, 칼은 좀 음흉스러운 데가 있는걸.”

케엑! 앞으로 떨어질 뻔했다. 간신히 중심을 잡아 몸을 돌렸다.

“운차이?”

운차이가 등 뒤에 서 있었다! 그는 손에 롱소드를 쥔 채 땀에 젖은 모습으로 서 있었는데 차가운 얼굴엔 왠지 미소 비슷한 것이 떠올라 있었다. 엄청 난 반가움에도 불구하고 내 목에서 아주 평온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어디 갔었어요?”

“분지 끝에.”

“예? 아니, 거긴 왜……………?”

“고지대의 풍경에 익숙해지려고. 지금껏 바라보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너와 칼이 보이더군.”

아이고, 맙소사! 잠깐, 그럼?

“그럼, 그럼 언제부터 등 뒤에 서 있었던 거예요?”

“너와 칼이 이야기를 시작할 때부터.”

뭐야? 그럼 처음부터 다 들었단 말이야? 잠깐, 현자가 어떤 사람이냐고? 현자는………… 앞을 보지만 뒤를 생각한다! 이런 젠장! 칼은 처음부터 우리 등

뒤에 운차이가 서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군! 운차이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에게 말하는 척했지만, 아무래도 칼은 나에게 말한 것 같군. 음흉한 사내야.”

이런…………. 다음 순간 나는 저돌적인 자세로 건물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카아아아알! 바지 속에 있는 꼬리 좀 확인해 봐야겠어요!”

“네, 네, 네드발 군?”

엑셀핸드와 운차이는 마당 끝에 나란히 앉아서 파이프를 피워물고 있었다. 네리아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히죽 웃었다. 석양을 마주보고 있었기 때 문에 그들은 두 개의 길고 땅딸막한 그림자로 보였다. 그리고 그들의 뒤로 역시 긴 그림자와 훨씬 더 긴 그림자가 늘어졌다.

엑셀핸드는 바닥에 앉아서는 굵직한 왼팔로 짤막한 상체를 받친 채 오른손으로 파이프를 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선 체격이 날렵한 운차이가 미 끈한 왼팔로 엑셀핸드에 비해 볼 때만 약간 말라 보이는 상체를 받친 채 역시 오른손으로 파이프를 들고 있었다. 석양을 바라보는 그 그림자들은 참 행복해 보였고 동시에 웃겼다.

창틀에 팔을 기대고 그 모습을 보던 네리아가 허리를 일으켰다.

“저 둘, 희한하게 어울린다. 그지?”

“똑같이 파이프 애용자니까.”

“아니아니. 그런 점도 있지만 저 모습을 보라구. 왠지 형제처럼 보이잖아.”

“앞에서 보면 할아버지와 손자로 보일 거예요. 그렇지만 동시에 할아버지와 손자의 키가 바뀌었다고도 느껴질 거라구요.”

“에에에! 그런데 길시언이랑 샌슨은 어딜 갔지?”

“바일하프와 함께 무기를 구경하러 갔어요. 제레인트도 따라갔고.”

“무기?”

“드워프제 무기. 아무래도 두 사람은 손에 들 수 있는 한 무기를 들고 갈 생각인가 봐요.”

네리아는 내가 앉아 있는 테이블로 다가오더니 의자에 앉았다. 테이블 위에 놓인 촛대가 옆으로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흐으응. 제아무리 무기를 들고 가봐야 크라드메서가 ‘후욱!’ 해버리면 다 타버릴 텐데.”

석양 때문에 주황색 페이지로 된 책을 넘기고 있던 아프나이델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네리아 양을 안심시켜 드릴 수 있을진 모르겠습니다만, 전 각오를 단단히 하고 있답니다.” “각오라구요?”

아프나이델은 테이블 위의 두 손을 깍지 끼더니 말했다.

“예. 전 내일 아침에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고의 스펠들을 기주할 생각입니다. 물론 크라드메서는 드래곤이고 저 같은 풋내기 마법사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강대한 마력을 가졌을 테니 공격 마법은 별로 외우지 않을 생각입니다. 전 내일 일행들을 보호할 스펠들을 기주할 생각입니다.”

“크라드메서가 ‘후욱!’ 해도 막을 수 있어요?”

“한두 번은………… 어떻게 가능할 거라고 믿습니다. 네리아 양까지 믿어주실진 모르겠습니다만.”

“아프나이델이 막을 수 있다고 말하면 난 믿을래요.”

“감사합니다.”

아프나이델이 보던 책을 보던(그래, 본 것이다. 읽을 수는 없었다.) 내가 말했다.

“마법은 원래 드래곤의 것이라죠?”

“응? 아, 그래. 후치. 그러니 내가 마법으로 드래곤을 공격한다는 것은 까마득한 사조에게 덤비는 꼬락서니지. 막기나 잘 막을 수 있다면 좋겠구나.” 타이번이랑 똑같은 말을 하네. 네리아는 대거를 꺼내어들더니 촛대에 꽂혀 있던 초에 불을 붙였다. 아직은 주황색 빛이 많이 남아 있었지만 산지의 밤은 빨리 찾아오겠지. 아프나이델은 말했다.

“아직 밝은데 왜 초를 켜십니까?”

“책 보기 어렵지 않아요? 밝은 데서 봐야죠.”

“하, 이런. 감사합니다.”

네리아는 테이블 위에 팔을 고이더니 나처럼 아프나이델의 책을 보기 시작했다. 아프나이델은 멋쩍은 표정을 지었지만 네리아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우…………와. 이게 도대체 글이에요, 그림이에요? 이게 뭔데요?”

“스펠들입니다. 제가 사용하는 스펠들을 적어둔 것이죠. 그리고 제가 써둔 주석들도 있고. 그런데 말입니다, 원래 마법사의 스펠북은 보면 안 되는 것인데요?”

“어, 그래요? 미안해요.”

“하하하. 아뇨. 괜찮습니다. 그건 다른 마법사들에게 해당하는 말입니다. 주문을 훔쳐가지 못하게 하려고 그러는 거죠. 그러니 마법사가 아니라면 봐도 아무 소용이 없으니까 상관없습니다. 혹시 마법사가 될 생각 있으십니까?”

“아, 아. 그런 생각은 없어요. 머리도 나쁘고…………. 그런데 사용할 줄 아는 스펠이라면서 그렇게 꼭 적어둬야 되는 거예요?”

“네?”

“응응. 그러니까 말이죠. 어떤 도둑이 소매치기를 한다고 해요. 그 도둑은 소매치기 하는 법을 적어두고 틈날 때마다 읽으면서 소매치기를 하지는 않아요. 자기가 할 줄 아는 것을 왜 그렇게 적어둬야 되는 거지요?”

“하하. 그게 그렇습니다. 보통의 기술과 마법은 성질이 다릅니다. 그러니까 마법이죠.”

난 빛이 없이 타오르는 초를 보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아프나이델은 몸에 스펠을 새길 수 없어요? 아, 물론 미관상 좋지 않겠지만 중요한 거 몇 개만 보이지 않는 곳에 새겨두면 편리할 거라고…………….

“뭐야?”

아프나이델은 당혹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 왜 이러는 거지? 아프나이델은 동그래진 눈으로 날 바라보며 말했다.

“어, 몸에 새기다니?”

“몸에 스펠을 문신으로 새기는 것 말이에요.”

“무녀들의 문신 주문술 말이냐?”

“예?”

“그건 헤게모니아의 무녀의 마을의 무녀들이 사용하는…………, 그러니까 대단히 진귀한 방법인데 네가 그걸 어떻게 아는 거지?”

“예? 아, 저, 그렇게 하고 다니는 마법사를 본 적이 있어요.”

“그래? 마법사가 아니라 무녀겠지.”

“마법사인데요?”

아프나이델은 이제 눈살을 찌푸리기 시작했다.

“후치. 그 수법은 무녀의 마을에서만 전해지는 거고 무녀 이외의 다른 사람들에겐 시술해 주지 않아. 그런데 마법사라니. 무녀겠지? 여자 아니었 “어?”

“남자인데요?”

아프나이델은 다시 눈을 커다랗게 떴다. 그는 팔짱을 끼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리가…………… 남자 무녀인가? 자, 잠깐 남자 무녀라니. 그게 말이 되나?”

“무녀가 아니라니까요. 마법사고, 남자예요. 간단히 말하면 남자 마법사라고 할 수 있고 더 쉽게 말하면 마법 쓰는 남자죠.”

“그럼 무녀들의 문신 주문술이 마법사에게 시술되었단 말이야? 그건 말도 안 돼!”

“말은 안 될지 몰라도 기억은 남아 있는데요.”

“그것 참 신기하군. 아, 그래! 후치. 속은 걸 거야. 그냥 몸에 아무 문신이나 새겨두고 그렇게 말한 것일 뿐일 거야.”

“주문을 외울 때 문신이 번쩍번쩍 빛을 내던데요? 아, 그리고 어차피 그 마법사는 장님이라서 마법책을 볼 수도 없어요. 그래서 몸에 새겨둔 문신으 로 마법을 쓴다던데요?”

아프나이델은 이제 관자놀이를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자, 자, 장님 마법사라구? 농담이 심하구나. 차라리 장님 전사라면 믿어도 장님 마법사라니?”

“역시 쉽게 말하자면 눈이 보이지 않으면서 마법을 쓰는 남자라고……”

“이봐요, 후치! 장님은 오브젝트를 설정하지 못해. 마나는 넌인텔릭이고 마법은 의지를 따르는 법이야. 그리고 의지가 오브젝트를 결정하는 것이고. 파이널 차크라에서 알파 급수는 오브젝트 설정을 기본으로 한단 말이야. 이것은 어디까지나 임메터리얼 문제야. 오브젝트가 설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는 알파 급수 전체가 무의미해지는 것이고 인카운터 아웃이 된단 말이야.”

“아, 미안해요. 지금이에요?”

“응?”

“지금 박수 치면 돼요?”

네리아는 두 손을 올리더니 거창하게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짝짝짝. 나와 아프나이델이 동시에 그녀를 바라보자 네리아는 동그란 눈으로 우리를 바 라보더니 검지손가락을 빨면서 말했다.

“지금이 아닌가 보네?”

아프나이델은 피식피식 웃더니 곧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그는 팔짱을 끼더니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 그러곤 나직한 목소리로 우리들을 괴롭

히기 시작했다.

“목표 감지에서 차지하는 시각의 중요성을 차치하면 개념 배반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겠지만 모호성에 근거한 대상 설정임은 틀림이 없다고 보는 것 이 지배적 관점인 현대의 마학에서 공감각적인 대상 설정이 이단적 접근 방식으로 취급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겠지만 공감각적인 대상 설정으로도 개념 배반을 피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면 그것은 현대 마학의 패러독스에서 하나의 탈출구가 될지도 모른다는 언명이 주창된 지 어언 34년이 지났 건만 아직도 대상 설정 방식은 접근 난이도에 관한 문제에 기인한 것이 틀림없는 나태함에 의해서 시각적 목표 감지를 포기하지 못하고 있음이 작금 의 현실이므로 이때의 감각 부조화가 야기하는 심각한 문제는…….”

“네리아. 내 의뢰 받아들이겠어요?”

“무슨 의뢰야?”

“어디 가서 마침표 좀 훔쳐와요.”

“성실한 나이트호크는 그런 거 안 훔쳐.”

그때 돌발적인 웃음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면 우리는 아프나이델이 무한대로 뱉어내는 말의 홍수에 휩싸여 익사해 버렸을 것이다. 엑셀핸드가 분지 전체가 울릴 정도의 웃음을 터뜨린 것이다. 나와 네리아는 아프나이델에게서 도망치는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마당으로 나왔다(물론 아프나 이델은 우리에게 신경도 쓰지 않은 채 계속 중얼거리고 있었다.).

마당으로 걸어가니 엑셀핸드와 운차이 커플의 시커먼 그림자가 더욱 진하게 보였다. 엑셀핸드는 어깨를 들썩이며 웃고 있었고 운차이도 피식거렸 다. 무슨 일이지? 그들의 뒤로 다가가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오오오…………, 제레인트!”

제레인트는 우리 쪽을 올려다보더니 곧 네리아에게 외쳤다.

“하하하! 트라이던트의 제레인트라고 불러줘요!”

네리아는 헤죽헤죽 웃으며 거의 혼절할 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제레인트는 드워프제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커다란 밀리터리 포크를 가져와서 네 리아처럼 자세를 잡고는 트라이던트라고 우기고 있었다. 세상에, 흉측하기도 해라. 성직자가 저런 끔찍한 무기를 들고서 자랑스럽게 웃고 있으니 눈 뜨고 못 봐주겠다. 네리아는 참담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걸 가지고 크라드메서를 어떻게 해줄 작정인데요?”

“겨드랑이까지는 안 올라갈 테고, 발바닥을 간지럽힐까요?”

난 고개를 가로젓고는 그 옆에 있던 샌슨과 길시언을 바라보았다. 길시언은 원래 가지고 있던 무장 이외에 커다란 크로스 보와 쿼럴 통, 그리고 스피 어 몇 개를 들고 오고 있었다. 그리고 샌슨도 커다란 핼버드 하나를 어깨에 메고 스피어 몇 개를 묶어서 등에 지고 있었다. 두 사람은 아무래도 내일 크라드메서와의 회견 자리에서 회담이 만족스럽지 못할 경우 크라드메서에게 빗발 같은 창질을 해댄다는 계획을 세운 모양이다.

응?

어…………, 그렇군. 레니가 라자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라면, 정말 바일하프 씨의 말대로 크라드메서의 드래곤 슬레이어가 되는 것도 고려해 봐야 되는 문제로군? 라자가 없는 상태에서 미친 드래곤이 활동기에 접어든다라. 그렇다면 활동기에 들어가기 전에 없애버려야 되는 것이군. 길시언과 샌 슨은 그럴 각오를 했나 보군. 레니가 받아들여지지 않고, 그 어떤 수단으로서도 크라드메서를 진정시킬 수 없는 것이 확실해지면, 그를 죽인다. 그게 가능하냐가 문제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