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 라자 8권 – 제14부 : 정답이 없는 선택 12화

드래곤 라자 8권 – 제14부 : 정답이 없는 선택 12화

12

“콰르르르르!”

하늘을 미끄러지던 크라드메서는 갑자기 수직으로 솟구쳐오르기 시작했다. 하늘로 똑바로 쏘아올려진 화살처럼 크라드메서의 모습이 구름을 뚫고 사라졌다. 그러자 지골레이드는 이제 땅 위를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저러다 부딪히겠어!”

지골레이드는 배에 풀이 닿을 듯이 분지 위를 미끄러졌다. 지골레이드의 비행에 휘말린 풀들이 뿌리째 뽑히며 그 뒤를 따라 떠올랐다. 제레인트가 펄쩍 뛸 듯이 외쳤다.

“크라드메서의 장기, 아니, 이그누스 드래곤의 장기인 급강하 공격을 피하려는 겁니다! 이그누스 드래곤의 공격 방식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벼락처 럼 내려꽂히며 공격하는 것! 우와, 미치겠어!”

아프나이델이 허연 얼굴을 끄덕이며 말했다.

“맞습니다. 이그누스 드래곤은 가장 높이 나는 드래곤이니까요. 게다가 구름 때문에 크라드메서를 볼 수 없지요. 그래서 공격 못하도록 저공 비행하 는 것이군요.”

그래? 야, 이거 인간들끼리 칼 들고 싸우는 것은 싸움 축에도 못 끼겠군. 대왕께서는 도대체 어떻게 저런 생물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이지? 운차이가 느닷없이 외쳤다.

“내려온다!”

그 순간 구름이 인정사정 없이 찢어지며 크라드메서가 다시 나타났다. 크라드메서는 지골레이드의 뒤쪽에서 나타나 그대로 지골레이드를 향해 쏘아 져 내려갔다. 저러다 둘 다 땅에 부딪히겠어! 그러나 크라드메서는 내려꽂히면서 브레스를 뿜었다. 저 영리한 놈! 칼은 졸도하고픈 표정으로 말했다. “화염의 창!”

크라드메서에 의해 던져진 길이 수천 큐빗짜리 불의 창이 땅을 향해 비스듬히 내려꽂혔다. 지골레이드는 피하기 위해 몸을 틀었으나 워낙 낮게 날고 있던 터라 움직일 공간이 마땅치 않았다.

“캬아아아앗!”

크라드메서가 뿜어낸 화염의 창은 지골레이드의 날개를 완전히 관통했다. 지골레이드가 땅에 닿기 직전, 그의 목 뒤에서 검은 점이 위로 뛰어올랐 다. 그리고 지골레이드는 화염에 휩싸이며 그대로 땅에 추락했다. 격렬한 화염이 불타고 있던 분지 위로 지골레이드의 푸른 몸이 나뒹굴었다.

“케에에엑!”

웬만한 성채만한 불덩어리가 산에 부딪혔다. 불타는 지골레이드를 받아들이며 갈색 산맥 전체가 진저리를 치며 신음을 흘렸다. 산에 부딪힌 지골레 이드는 굴러가는 것을 멈추었으나 그 위로 절벽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콰………… 콰릉, 콰르릉!

“안 돼!”

“캬, 캬아악!”

지골레이드는 날개를 퍼덕이며 일어나려고 애썼으나 그 위로 무너지는 바위는 엄청났다. 잠시 후 지골레이드는 불에 타고 바위에 짓이겨진 처참한 모습으로 나동그라졌다. 크라드메서는 브레스를 뿜고 나서 땅에 부딪히지 않기 위해 다시 날개를 떨치며 치솟아오르고 있었다.

지골레이드의 목 뒤에서 뛰쳐나온 검은 점은 그대로 분지 위의 하늘을 날았다. 그것은 잠시 멈춰 지골레이드의 모습을 바라보는 듯하더니 곧 우리 쪽으로 날아오기 시작했다. 폐허라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파괴된 분지 위로 한 마리 제비처럼 날아온 검은 점은 이윽고 이루릴의 모습으로 커졌다.

“이루릴!”

이루릴은 분지 위에 살짝 내려섰다. 우리가 숨어 있는 절벽 틈의 입구에 해당하는 위치에 선 그녀는 땅에 닿자마자 우리들을 주욱 둘러보더니 모든 사람들을 향해 굉장히 빠르게 인사했다.

“여러분들을 많이 그리워했습니다. 지금, 충족된 그리움 속에서 저는 기쁩니다.”

백 마디 말이 필요없었다. 나는 도무지 무슨 말로 대답해야 할지 모른 채 멍하니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찰랑거리는 검은 머리, 그리고 깊은 눈매를 보자 목이 콱 막혀왔다. 다른 사람들도 그런 모양이지? 칼이 간신히 벅찬 목소리로 말했다.

“세레니얼 양! 돌아왔군요!”

이루릴은 고개를 살짝 숙였다.

“예. 약속했던 대로…………. 리치몬드는 핸드레이크가 아니었습니다.”

“잘 왔네! 정말 반갑구먼!”

엑셀핸드도 수염을 부르르 떨면서 반갑게 인사했다. 곧 이루릴은 수많은 인사에 일일이 대답하느라 곤욕을 치러야 했다. 네리아는 이루릴을 껴안고 팔짝팔짝 뛰었고 샌슨은 혼자서 팔짝팔짝 뛰었다. 하지만 쓰러진 지골레이드와 하늘을 돌고 있는 크라드메서 때문에 우리들의 재회 인사는 상당히 빨리 끝났다. 이루릴은 한참 후에야 쿨럭거리고 있던 길시언과 인사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길시언? 상처를 입으신 건가요?”

길시언은 미소를 지으려 애쓰면서 말했다.

“아니. 쿨럭! 독입니다. 하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으니 괜찮습니다. 콜록. 그런데 선더라이더의 저주가 풀렸습니다만, 으큼, 리치몬드는?”

“네. 리치몬드는 죽었습니다. 지골레이드가 그를 살해했습니다.”

으윽! 이루릴은 어떻게 저렇게도 예쁘게 살해가 어쩌니 할 수 있단 말이야! 우리의 이루릴이 돌아왔다는 것이 이제야 확실히 실감나는군. 이루릴은 하늘을 흘긋 바라보더니 이번엔 레니를 바라보았다.

레니는 우리 모두와 떨어진 위치에 홀로 앉아 있었다. 그녀는 망연한 얼굴로 바위에 앉아 크라드메서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루릴은 그 모습을 보 더니 빠르게 질문을 시작했다.

“크라드메서의 행동은 라자가 있는 드래곤의 행동으로 보기는 어렵군요. 그렇다면 크라드메서의 저 행동은 계약의 실패에 관련된 것입니까?”

어, 어? 이걸 어떻게 설명하지? 그러나 우리들 중엔 이루릴만큼이나 함축성 있게 사정을 설명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 있었다.

“우리와 할슈타일 후작의 대립을 틈타 크라드메서의 라자가 된 넥슨이 시오네에 의해 살해당했소.”

“왜죠?”

아이고…………, 이루릴이 맞군! 칼은 빠르게 대답했다.

“직접 설명을 들은 바는 없지만 아마도 크라드메서를 미치게 만들기 위해서라고 생각하오. 그래서 21년 전의 비극을 다시 부활시키려는 것일 게 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한 일이군요.”

“그런데 지골레이드는?”

이루릴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대답했다.

“네? 보시는 바와 같이 몹시 다쳤습니다만.”

으윽. 엑셀핸드는 자신의 이마를 짚으며 끙 하는 신음을 흘렸고 아프나이델은 엑셀핸드의 어깨를 짚었다. 칼은 이 급박한 와중에서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게 아니라 지골레이드가 여기 왜 왔는가를 물은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어떻게 그를 타고 온 것인지도.”

“그렇습니까? 그는 후작에게 받을 빚이 있어 오던 도중이었습니다. 전 그에게 편승했죠.”

“빚? 어떤 빚입니까?”

이루릴은 대답하려다가 흠칫하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크라드메서는 하늘을 가로질러 다시 땅으로 내려꽂히고 있었으며 그 앞에는 쓰러진 지골레이 드가 있었다. 지골레이드는 몸부림을 치며 일어나려고 했으나 무너진 바위 덩어리들은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리고 크라드메서는 거침없이 날아들 었다.

이루릴은 황급히 운차이 쪽을 쳐다보았다. 운차이는 절벽 반대쪽을 조사하고 있었다. 반대쪽에 혹시 길이라도 있을까? 하지만 반대쪽엔 까마득한 산봉우리가 보일 뿐인데. 이루릴은 손을 반쯤 들어올리다가 내게 고개를 돌렸다.

“후치? 크라드메서에게 멈추라고 말해 달라고 운차이 씨에게 전해 주겠어요?”

큭! 나와 샌슨은 곧 입을 틀어막으며 바람 새는 소리를 냈다. 그리고 운차이는 고개를 휙 돌리더니 퉁명스럽게 말했다.

“날더러 미친 드래곤을 저지하라고 하는 거요?”

이루릴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운차이를 바라보았다.

“당신은…………, 예전에 제가 알던 운차이가 아니군요?”

운차이는 이루릴의 말에 쓴 표정을 지을 뿐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다. 갑자기 운차이는 표표히 분지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는 분지 쪽으로 걸 어가면서 말했다.

“미친 드래곤이 인간의 말을 들을진 모르겠지만, 뭔가 생각이 있는 것이겠지. 그렇잖소?”

운차이는 절벽 틈의 입구에 가까이 가서 멈춰 서더니 곧장 숨을 들이켰다. 우리들은 모두 귀를 틀어막았다.

“크라드메서어! 멈춰라아앗!”

절벽을 울리게 만드는 운차이의 고함소리였지만 폭발음을 계속 듣다보니 운차이의 고함소리도 별로 크게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크라드메서는 멈추 지 않았다. 크라드메서는 운차이의 말을 깨끗이 무시해 버리면서 쓰러진 지골레이드에게 날아들었다. 퍼더덕, 퍼덕! 크라드메서는 날개를 거세게 휘 저으며 곧장 지골레이드의 위로 다가들었다.

그 순간 이루릴은 두 손을 앞으로 내뻗었다.

“그 숨결에 생명을 담고 모든 것을 바라보며, 종속될 수 없는 운명을 가진 자여, 자신의 적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령이여, 무한의 형태로써 종속되 어 마침내 종속을 벗어나는 형태 없는 형태여! 그릇된 진실과 참된 거짓의 이름을 부여한다!”

이루릴의 낭랑한 읊조림이 끝나자 곧 비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비는 보통 내린다고 표현하지. 하지만 지금 우리 눈앞에서 비는 올라가고 있었다. 아직도 이글거리며 불타고 있는 분지에서 하늘로 물방울들이 떠오 르기 시작했다. 어떻게? 분지를 적셨던 빗물은 조금 전의 폭발과 불 때문에 모두 증발해 버렸을 텐데? 그러나 분지 전체에서 똑같은 속도로 떠오르고 있는 것은 분명 물방울이었다. 어떻게 저 화염 속에서 물방울들이?

“크라라라라!”

순간 전혀 엉뚱한 곳에서 들려온 포효소리에 등골이 쭈뼛해졌다. 분지 저쪽에서 또 다른 드래곤이 나타났다. 거대한 붉은 몸에 검은 줄무늬, 그리고 목놓아 울부짖는 강맹한 모습, 크라드메서잖아?

“크라라라라!”

이크? 또? 다시 고개를 돌리자 분지를 둘러싼 절벽 위에서 고개를 내미는 크라드메서의 모습이 보였다. 지골레이드를 공격하려던 크라드메서는 새 로이 나타난 ‘자신’을 보면서 동작을 멈췄다. 그는 굳어버린 채 분지를 주욱 둘러보았다.

“크라라라라!”

“콰르르르르!”

곳곳에서 크라드메서가 나타났다. 크라드메서는 본격적으로 긴장하며 머리를 낮추었다. 그는 이리저리 머리를 휙휙 돌려대었다. 그 장중한 체구에 도 불구하고 크라드메서는 마치 사냥꾼에게 쫓기는 맹수처럼 보였다. 제레인트는 숨 넘어갈 듯 웃어대기 시작했다.

“우헷헤헤헤! 이그누스 드래곤의 프라임 미팅이다!”

엑셀핸드는 관자놀이에 지렁이 같은 혈관을 드러내며 제레인트를 바라보았다.

“웃냐? 웃어?”

“그럼 저런 광경을 본 최초의 인간으로서 울까요? 크핫하하하!”

“최초의 드워프는 울고 싶단 말이다!”

제레인트는 저 광경을 보고 종단의 모든 성직자들이 모이는 프라임 미팅을 연상하는 모양이군. 나도 저런 여유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건 내 머리로 상상할 수 없는 장면이라구. 그런데 눈앞에 이런 모습이 펼쳐진단 말이야. 샌슨은 눈을 소같이 뜨면서 웅얼거렸다.

“열하나? 열하나군.”

대상물의 덩치나 위압감과 숫자를 빨리 세는 샌슨의 능력 사이에는 별 상관이 없는 모양이군. 분지를 가득 메운 열한 마리의 이그누스 드래곤이라 니! 아프나이델은 이루릴의 멱살을 잡을 듯한 얼굴로 말했다.

“저건 캐스팅할 수 없어요! 저런 크기론 도저히 마나 억제가 안 돼! 시전자의 의지가, 아니, 아무리 당신이 엘프라도 저런 사이즈로 마나 억제를 할 순 없어요! 저건, 저건 환영이 아니죠?”

“죄송합니다. 환영입니다.”

이루릴은 정말 미안한 듯이 말했고 그러자 아프나이델은 기세가 등등해져서 마치 채권자나 된 것처럼 이루릴을 윽박질렀다.

“어떻게 저게 환영입니까!”

“보세요. 실프가 언딘의 거울을 하늘에 띄워올려요. 그리고 윌로위스프는 자신이 그러모은 빛을 그 거울에 던져요. 마나가 아니라 정령들의 힘이랍 “니다.”

“아……!”

아프나이델은 복잡한 표정으로 이루릴을 바라보더니 다시 분지를 바라보았다. 그는 고개를 격하게 가로저었다. 나는 그의 중얼거림을 들을 수 있었 다. “마법사 관두겠어…………. 정령사가 더 전망 있겠는데?”

아프나이델이 그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한 전망을 타진하고 있는 동안에도 크라드메서는 새로이 나타난 자신을, 그것도 열 개나 되는 자신을 바라보 며 긴장하고 있었다. 만일 그에게 털이 있었다면 지금 이 순간 그 털은 모두 꼿꼿이 곤두서 있을 거야.

이루릴은 가만히 서서 분지를 바라보며 혼잣말하듯 말했다.

“영원의 숲에서 느꼈던 것입니다. 인간 여러분들은 ‘자신’의 모습에 공포를 느끼시더군요.”

칼은 뭔가 말할 듯한 얼굴로 이루릴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그는 아무 말 없이 이루릴의 말을 기다렸다.

“그래서 드래곤에게도 혹시 그런 경향이 있지 않을까 추측했습니다. 이건 저에겐 독특한 경험이군요. 엘프에게 반신반의라는 감정은 낯설어요. 하 지만 전 반신반의하면서 시도했습니다. 효과가 있군요. 드래곤과 인간을 잇는 유피넬의 저울대는 가장 길기에…………….”

“드래곤이…………, 인간의 반대쪽 극단이라는 말씀입니까?”

칼의 질문에 이루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대답하기도 전에 에델린이 말했다.

“라자는 드래곤과 인간을 관계짓지 않습니까.”

모두가 에델린을 돌아보았다. 에델린은 우울한 얼굴로 분지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하나로 존재할 수 없는 인간…, 하나로 존재하는 드래곤…………. 유피넬과 헬카네스의 관심을 동시에 받는 인간…………, 아무런 신도 가지지 않는 드래 곤…………. 아버지께서는 왜 그랬을까요………….”

아버지? 에델린이 아버지라고 부르면, 어, 그건 핸드레이크잖아? 갑자기 그 양반 이름이 왜 나오는 거지? 칼은 이마에 세로주름을 만들면서 에델린 을 쏘아보았다.

“무슨 뜻입니까?”

“아버지는 왜 드래곤 라자를 만들어내셨을까요.”

크라드메서가 포효했다.

“크라라라라!”

포효의 여운이 사라지기도 전에 크라드메서는 돌진했다. 발 소리는 없었다. 크라드메서는 날개를 떨치며 앞으로 휘익 날듯이 뛰었다. 그 앞에는 이 루릴이 만들어낸 또 다른 크라드메서가 있었다. 가짜 크라드메서는 맹렬하게 울부짖으면서 달려오는 크라드메서를 피했다. 그리고 곧 다른 가짜 크 라드메서들이 일제히 크라드메서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충돌과 포효, 그리고 날개가 퍼덕이는 소리, 땅은 단숨에 파헤쳐져 솟아오르는 흙덩어리들이 폭풍을 일으켰다. 열한 마리의 이그누스 드래곤이 일제 히 난투를 벌이는 것이었다. 그 광경엔 보는 사람의 심장까지 얼어붙게 만드는 공포가 어려 있었다. 제레인트는 헐떡이며 말했다.

“열두 드래곤과 핸드레이크의 이야기가 있잖아요? 그런데 지금 이 분지엔 드래곤이 열둘이란 말입니다! 지골레이드까지 치면!”

“그럼…………. 핸드레이크는 저런 것을 상대했단 말이로군요.”

아프나이델의 신음은 드래곤들의 포효에 휩싸여 알아듣기 어려웠다. 이루릴은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

“그 역시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군요. 당신들과는 다른 이유에서겠지만.”

“세레니얼 양?”

이루릴은 고개를 돌려 잠시 칼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녀의 머리카락이 다시 물결치며 이루릴은 지골레이드를 바라보았다.

“…..지골레이드를 구해 내도록 하지요.”

이루릴은 갑자기 눈을 감더니 조용히 말했다.

“지골레이드? 당신을 옮기겠어요. 지금 당신의 모습 그대론 제가 옮길 수 없으니 폴리모프하세요. 바위가 무너질 테니 셋을 셀 때… 셋.”

하나, 둘,

잠시 후 지골레이드의 모습이 사라지며 바위 더미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크라드메서들이 벌이고 있던 난투의 격렬한 소음 속에서 바위 더미 가 무너지는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이루릴의 앞쪽에 한 남자가 나타났다. 남자는 나타나자마자 신음을 토하며 무릎을 꿇었다.

“허억!”

왠지 마법사처럼 보이는 모습이었다. 푸른 로브를 걸치고 있었고 손엔 지팡이까지 들고 있었다. 날카롭게 생긴 눈매가 지금은 고통 때문에 일그러져 있었다. 그의 양쪽 팔에서는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는 무릎을 꿇은 채 지팡이에 의지해 간신히 쓰러지지 않고 있었다. 제레인트는 황급히 그의 곁에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지골레이드이십니까?”

지골레이드는 파리한 얼굴을 돌려 제레인트를 사납게 바라보았다. 제레인트는 찔끔하면서 무의식중에 뒤로 조금 물러났다. 지골레이드는 사나운 목 소리로 말했다.

“멍청한 질문이군. 성직자.”

“아, 하하. 그렇군요. 어디 치료를…………’

“네가? 나를? 머리를 박살내어 죽일 놈 같으니라구!”

지골레이드는 그야말로 잡아먹을 듯한 눈으로 제레인트를 바라보았다. 호의를 베풀려던 제레인트는 뜻밖의 반응에 어이없는 얼굴로 지골레이드를 마주보았다.

“그는 라자가 없는 드래곤이니까요…….”

지금껏 고요히 앉아서 크라드메서를 바라보던 레니의 입에서 희미한 말소리가 새어나왔다. 우리 모두는 레니를 바라보았지만 레니는 아무런 표정도 없이 크라드메서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그렇게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말했다.

“그가 왜 인간의 호의나 사랑을 받아야 할까요. 지골레이드는 라자가 없는데. 그는 아무런 관계도 받아들일 수 없고, 받아들여서도 안 되고, 받아들 여지지도 않죠.”

“그, 그런가?”

제레인트는 당황한 목소리로 혼잣말하듯이 말했다. 그때 이루릴이 말했다.

“레니 양. 지골레이드의 라자가 되지 않겠어요?”

뭐야? 레니가 지골레이드의? 지골레이드는 흠칫하면서 이루릴을 올려다보았다. 레니는 여전히 크라드메서만을 바라보고 있어서 그녀가 이루릴의 말을 듣기나 한 것인지도 의심스러웠다. 이루릴은 계속 말했다.

“당신이 그의 라자가 된다면 지골레이드께서는 여러분들과 관계를 맺으실 수 있겠죠. 여러분들의 호의와 관심 속에서 그의 상처를 치유하실 수 있 겠죠. 육체적인 상처도, 그리고 정신적인 상처도.”

정신적인 상처? 아, 웜링을 잃은 것 말인가? 그러나 지골레이드는 무서운 얼굴로 말했다.

“내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는 약은 한 가지뿐이다. 할슈타일 후작의 죽음!”

뭐라구? 할슈타일 후작의 죽음? 어, 그게 무슨 말이지? 우리 모두는 이루릴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지골레이드보다야 이루릴에게 대답을 요구하는 것이 안심스러웠으니까. 이루릴은 말했다.

“리치몬드는 살해되기 전 모든 것을 말했습니다. 그는 할슈타일 후작의 명령에 따라 행동하는 자였습니다. 졸개라고 표현할까요. 어쨌든 그는 후작 의 명령에 따라 지골레이드의 웜링을 살해한 것입니다.”

“예? 아니, 왜……?”

“지골레이드께서는 웜링 때문에 인간을 떠나려 하셨으니까요. 후작은 웜링이 없어지면 지골레이드께서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맙소사!”

머리가 어지럽다. 할슈타일 후작, 할슈타일 후작! 도대체 당신이 할 수 없는 일이 무엇인가? 이루릴은 씁쓸하게 말을 계속했다.

“아마도 크라드메서와의 계약이 실패할 경우를 염두에 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준비성이 철저한 인간입니다. 레니 양을 찾아 크라드메서와 계약하 려는 것이 그의 첫 번째 계획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것은 여러분들의 방해로 제대로 시행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칼이 기막힌 얼굴로 그 말을 이었다.

“그래서…………, 후작은 지골레이드의 라자였던 돌맨을 빼내었군요? 하지만 돌맨도 실패했을 경우, 지골레이드를 다시 되찾겠다는 것이군요? 그래서 지골레이드를 떠나게 만들었던 원인인 웜링을…”

지골레이드가 음산한 목소리로 칼의 말을 잘랐다.

“그만. 입들 닥쳐.”

칼은 찔끔하면서 입을 닫았다. 지골레이드는 지팡이에 기대며 힘들게 일어났다. 그는 일어서며 크라드메서의 싸움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격렬 한 충격 속에서 아득히 잊었던 굉음과 포효소리가 갑작스럽게 더 크게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보자, 나는 그 상상할 수도 없는 크기의 폭력과 파괴를 바라보며 말을 잊었다.

분지의 싸움은 무자비하고도 흉흉했다. 모든 크라드메서들이 노리며 공격하는 것을 보면서 어느 것이 진짜 크라드메서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짓쳐 오르는 흙덩어리와 불길 속에서 크라드메서는 지옥을 펼쳐내고 있었다. 그 자신과 똑같은 모습임에도 한 치의 주저도 없이, 오히려 냉정하다고까지 표현할 수 있는 동작으로 크라드메서는 환영을 공격하고 있었다. 넓고 기다란 날개는 그대로 두 개의 검처럼 움직이며 환영을 후려치고 있었고 그 장 대한 목은 화살처럼 날아가 환영의 목을 물어뜯었다. 환영의 드래곤들은 찢어지는 비명을 토하며 쓰러져갔다. 그들은 쓰러지면서 곧장 안개처럼 바 뀌어 사라져갔다. 남는 것은 반짝이는 물방울들뿐. 그 물방울들은 짧은 순간 반짝이다가 곧 불길에 휘말려 사라져갔다.

이루릴은 구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언딘의 거울은 그의 모습은 비출 수 있어도 그의 광기는 비출 수 없군요.”

지골레이드는 지팡이에 기대선 채 몸을 떨면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환영들은 필사적으로 크라드메서를 공격했지만 크라드메서는 자신의 상 처를 돌보지 않았다. 아니, 상처를 입으면 입을수록 더욱 난폭해지고 강력해지는 것 같았다. 분지 주위의 산들과 절벽은 이미 상당 부분 파괴되어 무 너지고 있었고 불길은 더욱 거세어졌다.

지골레이드는 짓씹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레니, 내 라자가 되겠는가?”

레니는 그때까지도 멍한 얼굴로 크라드메서의 싸움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골레이드는 힘들게 말했다.

“내 라자가 되어라. 그럼 난 이 상처를 치료하고 그와 맞서 싸울 수 있다. 지금의 그는 무수한 상처를 입은 몸, 나로서도 감당해 볼 만하다.”

레니는 입 외에 다른 부분을 전혀 움직이지 않은 채 말했다.

“왜………… 우리를 도와주시려는 거죠?”

지골레이드는 쓰게 웃었다.

“미친 드래곤은 너희들만의 공포는 아니다. 크라드메서는 공평한 자. 너희들만이 그의 파괴의 대상이 될 거라고 믿는가? 인간 본위라는 말이 사용되 면 적절할 듯하군.”

“그런가요. 그는 만물의 공포인가요. 시오네는 왜 저런 걸 만들어내었을까요………….”

레니는 그대로 굳어버린 조각처럼 보였다. 지골레이드는 초조하게 말했다.

“레니, 시간이 없다. 대답해라. 내 라자가 되겠는가?”

레니가 지골레이드의 라자가 된다고? 어, 잠깐. 길시언을 바라보자 과연 그는 바짝 긴장한 얼굴로 레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칼이 입을 열었다. “레니 양.”

모든 사람들이 칼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레니는 돌아보지 않았다. 그녀가 과연 크라드메서를 보고 있는가도 의심스러웠다. 크라드메서는 격렬하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그녀의 시선은 움직일 줄을 몰랐으니까.

“레니 양. …………괜찮은 거요?”

레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정말 걱정되는데. 레니는 왜 저렇게 꼼짝도 하지 않는 거지?

“레니 양. 뭐, 레니 양의 자유 의사지만 말이오. 난 하라고 권하고 싶은데.”

“왜죠, 칼 아저씨?”

레니의 대답은 툭 떨어뜨리는 듯한 것이었다. 칼은 잠시 당황해서 레니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말했다.

“레니 양도 봤겠지만, 넥슨은 성공하면서 동시에 좌절했고 그의 목숨을 잃었소. 할슈타일 후작은 라자의 운명을 피하면서 라자의 힘만을 얻으려고 했소. 그들은 모두 라자의 힘을 원했고, 하나는 진실을 몰랐다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진실을 알고 있었다는 차이뿐이오. 그런데 말입니다. 그 진 실은 뭐지요?”

“드래곤 라자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것.”

“그래요. 그겁니다. 그런데 레니 양은 무엇을 원하지요?”

“무엇? 제가 원하는 것이오?”

“그래.”

레니의 눈에서 눈물 방울이 또르르 흘렀다. 그녀는 코를 훌쩍이고는 말했다.

“아빠……………, 보고 싶어요.”

“그래요. 어, 레니 양은 아무것도 원하지 않아요. 레니 양은 넥슨과도 다르고 할슈타일 후작과도 다르지요. 레니 양은 아무것도 원하지 않으니까, 에, 그러니까 레니 양은 라자의 진실로부터 자유로워요. 하지만 주위의 사람들을 볼까요. 레니 양이 지골레이드의 드래곤 라자가 된다면, 지골레이드 께서는 지금 당장 치료를 받으실 수 있소. 그리고 길시언께서는, 항상 이 나라를 걱정하시는 길시언께서는 지골레이드가 돌아오심으로써 안심하실 수 있을 거요.”

하아. 칼은 교묘하게 지골레이드를 끌어들이는구먼. 지골레이드는 길시언을 흘긋 바라보았다. 길시언은 잔기침을 하면서도 지골레이드의 시선에서 눈을 돌리지 않았다. 지골레이드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보였다. 길시언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 광경을 보다가 난 다시 레니를 돌아보았다. 레니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앉아 있었다. 이건 잔인하기 짝이 없어. 난 이걸 이해할 수 있단 말이 야. 그런데도 계속 말해야 되나? 제레인트가 애타는 목소리로 말했다.

“레니 양, 레니 양. 레니 양이 지골레이드의 드래곤 라자가 되면 크라드메서도 물리칠 수 있잖아. 그러면 레니 양은 대륙을 구하는 거라구. 알겠어 요? 레니 양이 이 땅을 구한단 말입니다.”

네리아는 레니가 앉은 바위에 나란히 앉으면서 그녀의 손을 붙잡고 말했다.

“그래. 레니야. 그리고 우리들도 모두 살아나는 거야. 응?”

“그만 하죠.”

사방의 시선이 나에게 돌아왔다. 또렷한 목소리로 말하고 싶었지만 목이 자꾸 쉬어온다. 침이라도 확 뱉어버렸으면.

“그만들 하죠. 레니는 드래곤 라자잖아요. 그러니 그만 하자구요. 레니도 이해하니까.”

“네드발 군?”

“레니는 드래곤 라자라구요…………. 젠장! 난 잘 비유를 못하겠는데 말이죠, 어떤 부모에게 두 명의 아들이 있다고 쳐요. 그중 한 아들은 완전히 미쳤다 고 치고. 그런데 이웃에서 정상적인 아들을 시켜 미친 아들을 죽이라고 권한다면, 그 부모 마음이 어떻겠어요? 어, 비유 치곤 조악하지만, 이해는 되 시겠죠?”

칼은 입을 쩍 벌리고 날 바라보았으며 아프나이델은 반대로 입술을 깨물면서 바라보았다. 다채로운 시선들 속에서 지골레이드의 시선이 독특했다. 그는 입술 끝을 조금 들어올리며 말했다.

“언젠가 내 공격을 맨몸으로 막아내려고 들었던 그 소년이 그대로 살아 있군.”

이루릴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왜일까? 난 우울한 시선으로 그 시선을 마주 본 다음 레니를 바라보았다.

레니는 여전히 무표정했다. 그 눈에서 줄줄 흘러내리는 눈물 외에는 호흡조차도 없는 무생물처럼 보였다.

“레니. 잔인한 말들이지만, 어쨌든 그래. 드래곤 라자의 진실이니 뭐니 하는 말로 치장해 봐야 소용없어. 쳇. 내가 넥슨이 된 것 같군. 넥슨 녀석이 나한테 씌었나? 그 작자의 죽음에는 애도객도 없군. 어쨌든, 아무도 말하지 않으니 내가 말하겠는데………….”

코 한 번 들이켜고, 자. 레니, 이건 헬턴트 마을의 초장이 후보에게는 너무 힘든 말이란 말이야. 책임질 수 없는 말이고 권위도 있을 수 없는 말이지. 하지만 말하겠어.

“미안해. 이런 아픔으로 널 데려와서.”

•으흑!”

레니는 고개를 숙이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네리아는 당황하며 그녀의 어깨를 그러안았지만 레니는 몸부림치며 네리아의 손길을 밀어내었다. 난 참담한 기분을 곱씹으며 그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휘몰아치는 바람소리와 포효소리. 그리고 폭발음과 파열음들이 사정없이 서로를 찢어발기고 있었건만, 분지의 싸움은 이제 극도의 잔인함을 넘어서 차라리 무감동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크라드메서는 자신을 죽여가면서도 전혀 슬퍼하거나 분노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루릴. 당신 행동은 맞아 들어갔지만 그 의미는 당신 말대로 전 혀 달라요. 우리는 자신 밖에 있는 자신을 무서워하죠. 왜냐하면 그것은 완전해 보이니까.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불완전하다는 것을 아니까, 그래서 완전한 것처럼 보이는 ‘자신’을 만나게 되면 곧 스스로가 가짜가 아닌가 싶은 생각에 빠져들어요. 하지만 드래곤은 자신 밖에 있는 자신을 귀찮아하 죠. 그건 존재할 수 없는 거니까. 그건 너무 더울 때 입는 털옷 같은 것이고 낡아버려서 집착도 모두 증발된 옛 감정 같은 거겠죠.

비록 상상의 한계를 비웃으며 진행되는 저 거대한 폭력의 크기에도 불구하고, 그 본질은 그 정도뿐이겠지.

크라드메서, 당신은 청소할 때 너무 시끄러운걸.

“레니 할 수 없어.”

내 목소리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껄끄러운 목소리가 목에서 흘러나왔다.

“결과가 잔인하다는 이유로 선택을 미룰 순 없을 거야. 아픔만 길어지고 깊어질 거야. 지금 크라드메서의 환영도 거의 사라져가. 정말 최강의 이그 누스 드래곤이군. 열 개나 되는, 자신과 똑같은 드래곤을 저렇게 물리치다니.”

“……아름답지?”

“응? 아. 응.”

레니는 눈물을 닦으며 다시 크라드메서를 바라보았다.

“너무 아름답지? 저 아름다운 자가 왜 죽어야 될까? 인간 때문에…

“뱀파이어 때문이야. 레니.”

“인간 핸드레이크 때문이야.”

“……미안해.”

“인간이 다 죽는 것이 낫지 않을까. 세계는 저 아름다운 자들을 위해 준비된 것이 아닐까?”

지골레이드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틀린 말이다. 소녀. 크라드메서는 세계를 파괴할 것이다. 넌 드래곤 라자로서 드래곤의 아름다움에 매혹되고 있지만, 크라드메서는 지금 드래곤도 아니다.”

“그래요?”

“그래. …………더 이상 선택을 미루지 마라, 레니. 테페리의 성직자가 들려줄 말이 있을 것이다.”

제레인트는 기겁하면서 지골레이드를 바라보았다.

“예?”

지골레이드는 눈살을 찌푸리며 제레인트를 바라보았다. 제레인트는 자기 이마를 딱 쳤다.

“아, 그래. 레니 양. 어, 흠. 자신의 선택이 잘못된 것이 아닐까, 뭐 그런 생각이 있는 것 같아요. 그렇죠? 하지만 말이야. 모든 선택은 원래 정답이 없 는 선택이야.”

테페리의 신전, 두 개가 모두 열리던 그 문이 생각난다. 레니는 물끄러미 제레인트를 바라보았다.

“마음 가는 대로 선택해요. 레니 양. 크라드메서를 위해 세계를 포기할 수도 있어요. 좀 끔찍스럽지만, 우리가 그에게 저지른 죄의 대가로 우리가 파 멸되는 거니까. 레니 양은 그렇게 생각하는 거죠?”

레니는 아무 대답 없이 제레인트를 바라보았다. 제레인트는 헛기침을 하고서 다시 말했다.

“반대로 세계를 위해 크라드메서를 포기할 수도 있고. 크라드메서의 비극은 그 혼자서 안고 파멸해 버리라는 거지. 어떻게 하겠어요?”

레니는 입을 열었다.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