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1권 14화 – 살육전
살육전
묵향은 소연이에게 내공을 주로 가르치고 검술이나 권술 등은 일부러 조금만 가르쳤다. 그는 소연이가 무림에 들어가지 않고 그냥 쓸 만한 남자를 만나 아들딸 낳 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랐던 것이다. 이렇게 평화스러운 나날이 계속되던 어느 날 갑작스럽게 방 대인이 그를 호출했다.
“큰일 났네.”
“무슨 일입니까?”
“황량산 쪽에서 오던 표물이 산적에게 강탈당했어. 이번의 표물은 군자금을 수송하는 것이라서 본교의 고수를 다섯 명이나 넣었는데…….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 나? 자그마치 은자 10만 냥(은 3,125킬로그램)이라구.”
“누가 손을 댔는지는 알고 계십니까?”
“군자금을 건드릴 정도로 간 큰 도적들은 그렇게 많지 않네. 자네는 온 지 오래되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산적에게 표물을 털렸을 때는 국주가 직접 충분한 예물 을 가지고 가서 사정하면 표물을 돌려주는 게 원칙이지. 돌려주지 않는 집단이 있으면 모든 표국의 공동 적이 되어 멸망하기 때문이야. 그런데 이번의 적은 쉽게 돌 려주지 않을 것 같아서 문제일세. 보통 산적은 표사들을 잘 죽이지 않아. 아니, 표사는 죽인다 하더라도 짐꾼을 죽이지는 않는다네. 그런데 이번에는 모두 다 죽었 어. 호위 무사 열 명과 짐꾼 서른 명까지 몽땅 다 죽였다고. 이걸 보면 아마 적은 완전히 증거를 없애 모든 짐을 꿀꺽할 심산인 모양이야. 이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 다 보니 자네를 불렀네.”
“우선 조사를 하십시오. 상대가 누군지 알아보고 저에게 통보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본교의 고수 스무 명 정도를 이끌고 예물을 가지고 가서 한번 접촉을 해 보 고 안 되면 모두 다 없애 버린 후 물건을 찾아오면 됩니다. 그것도 귀찮으시면 통보 없이 다 없애 버리죠.”
한 달 후 방 대인은 도적들의 거처를 알아냈다. 황량산에서 좀 떨어진 대설산에 똬리를 틀고 있는 산적들의 소행이었다.
“대설산 산적들의 짓임이 밝혀졌네.”
“흠…, 아무리 하급이라 해도 본교의 무사 다섯 명이 함께 갔는데 겨우 산적들에게 모두 피살되었다는 건 이상하군요.”
“대설산의 산채는 이 부근에서는 제법 큰 규모로 2백 명 정도의 도적들이 있지. 관군이 토벌 작전을 벌인다 하더라도 쉽게 전멸시키기는 어려울 정도의 규모야. 거 기다가 외부에서 고수 몇 명을 영입하여 같이 해치운 것 같네.”
“그렇다면 그 고수들은 어디 있습니까?”
“조사한 바에 따르면 세 명은 아직 산채에 남아 있고, 세 명은 자신의 몫을 챙겨 떠났네.”
“그렇다면 총타에 통보하여 그 세 녀석을 추적하여 없애 버리라고 하십시오. 저는 스무 명 정도 데리고 산채의 녀석들을 저세상으로 보내 주고 오겠습니다. 본교 의 고수들 중에 대설산의 지리를 알고 있는 자를 한두 명 포함시켜 주십시오.”
“알겠네.”
“준비가 되는 대로 떠나겠습니다.”
“예물을 가지고 가겠는가?”
“아뇨, 그냥 기습을 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그러는 게 피해가 적을 것 같군요.”
“알겠네, 부탁하네.”
묵향은 스무 명의 고수를 데리고 길을 떠났다. 일행은 길을 나선 지 12일 만에 대설산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묵향은 대설산 가까운 마을의 객잔에 말들을 매어 놓고 도보로 대설산에 접근해 갔다. 산을 올라가자 과연 산채가 있었다. 그의 수하들은 모두 쓸 만한 고수들이었기에 묵향은 길을 따라가지 않고 수풀을 헤치며 올라갔 다. 그 때문에 산적들에게 발각되지 않고 산채 가까운 곳까지 접근할 수 있었다. 그는 산채에서 4백 장(약 1.2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까지 접근하여 수하들에게 말했다.
“모두 건량(乾糧)을 먹고 좀 쉬어라. 기습은 묘시(卯時 : 새벽 5시) 초에 하기로 하지.”
“존명!”
지시를 내린 후 묵향은 건포(乾脯)를 뜯으며 요기를 하고 휴식을 취했다. 드디어 묘시 초가 되자 그는 수하들과 함께 산채에 바싹 접근한 후 지시했다.
“내가 들어가서 공격을 시작하면 도망치는 놈들이 생길 거다. 너희들은 사방에 잠복해 있다가 도망가는 놈들은 한 놈도 남기지 말고 없애 버려라.”
“존명.”
그는 묵혼을 빼 들고 산채로 뛰어들었다. 묵향은 처음부터 인정사정없이 공격을 전개했다. 묵혼을 휘두를 때마다 산적의 몸뚱이가 토막이 나며 떨어져 나갔다. 그 가 순식간에 40여 명을 해치웠을 때 통나무집 안에서 네 명이 뛰어 나왔다. 그들은 모두 상당한 고수였지만 가죽을 기워서 만든 옷을 입은 자의 무공이 제일 떨어졌 다. 아마 그가 이 산채의 주인인 듯했다. 그 두목이 외쳤다.
“너는 웬 놈이냐?”
“………”
하지만 묵향은 그의 말은 들은 척도 안 하고 근처에 모여드는 산적들을 토막 내고 있었다. 그걸 본 두목은 옆의 세 명에게 말했다.
“형님들, 빨리 저 녀석을 없애 주시오.”
“알겠네.”
그 세 명이 묵향 근처로 뛰어드는 순간 묵향은 강기를 일으켰다. 순간적으로 2장 내에 있던 공력이 약한산적 몇 명이 강기의 회오리에 휩쓸리면서 몸 앞부분의 옷 가지와 함께 피부가 찢어지는 것이 보였다. 모진 기합 소리와 함께 묵향 부근에 모여 있던 산적들과 세 명의 무림인들이 토막이 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그렇게 급 한 일도 없었기에, 묵향은 무기를 몸통과 함께 베지 않고 놔둔 상태에서 상대의 몸에만 구멍을 내거나 잘라 나갔다. 적에게 입은 피해가 큰 이상 이 녀석들의 무기를 팔아서라도 약간은 보충을 할 작정이었다.
내부에서 난리가 나자 망루 위에 있던 녀석들이 묵향을 향해 화살을 퍼부었다. 묵향은 경공술과 신법을 사용해서 빠른 속도로 움직이며 산적들을 베고 있었으므로 묵향 쪽으로 날아온 화살은 거의 없었다. 설혹 날아온다 하더라도 그가 먼저 눈치를 채고 칼로 막았다. 그러던 중 우연히 화살 한 대가 묵향의 등에 맞았으나 묵향의 호신강기에 막혀 헛되이 옷에나 구멍을 뚫을까 피부를 뚫고 들어가지 못했다. 시간이 좀 지나자 산채 밖에서 대기 중이던 부하들이 암기를 날려 망루에 있던 산적들 을 모두 해치웠다.
1각(15분)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산채 안에는 살아 있는 자들은 한 명도 없었다. 묵향의 손에 죽은 인원만 140여 명이 넘었다. 그리고 나머지 묵향의 악마 같은 살 겁을 보고 반쯤 정신이 나가서 비명을 지르며 탈출을 시도한 60여 명도 모두 밖에서 대기하던 부하들에게 살해되었다. 살인의 축제가 끝난 후 묵향은 산채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부하들에게 말했다.
“혹시 살아 있는 놈이 있으면 확실히 숨통을 끊어라. 한 놈도 살아 나가서는 안 된다. 시체 밑에 숨은 녀석도 있을 것이다. 하나하나 확인해라. 밖에서부터 하나하 나 확실히 처치해라. 죽었다 하더라도 몸뚱이가 두 토막이 나지 않은 시체는 확실히 두 토막을 내 버려라.”
“존명.”
밖에서 부하들이 산적의 시체들을 토막치고 있는 동안 묵향은 오두막 안으로 들어갔다. 이곳 산채에는 열두 채의 통나무집이 있었다. 묵향은 한 채 한 채 확실히 뒤져갔다. 다섯 번째 통나무집에 들어갔을 때 침대 위에는 벌거벗은 계집이 이불로 몸을 감싸고 앉아 있었다. 묵향은 천천히 다가가서 여자의 몸을 두 토막 내어 버 렸다. 침대 밑까지 착실하게 뒤져서 살아남은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묵향은 다음 통나무집으로 들어갔다. 통나무집 안에는 열네 명이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 다. 반은 벌거벗다시피 한 열세 명의 계집들과 산적 두목이었다. 두목은 칼을 계집들에게 겨누고 발악했다.
“더 이상 가까이 다가오면 이년들을 없애 버리겠다.”
그 모양을 보고 묵향의 얼굴에는 짙은 살기를 띤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천천히 다가서며 말했다.
“안 그래도 죽여 버릴 계집들이니 마음대로 하시게나.”
인질을 잡고 위협하는데도 상대가 아무런 반응이 없자 두목은 당황했다. 납치한 여자를 구출하기 위해서도 아니라면 도대체 이 녀석은 뭣 때문에 온 것인가? 그때 갑자기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천령표국의 부탁을 받고 오셨소?”
“잘 아는군. 네 녀석이 훔친 걸 숨기기 위해 짐꾼까지 모두 다 죽였듯이 나 또한 예물을 주고 부탁하는 순서가 빠졌다는 것을 숨기기 위해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을 다 죽여야 해. 안 그러면 주변의 표국들에게 비웃음을 살 게 뻔하니까. 이제 소문은 이렇게 날 걸세. 천령표국에서 값비싼 예물을 올리고 자네에게 은자를 돌려달라 고 간청했지만 네 녀석이 거절해서 할 수 없이 산채를 토벌한 후 은자를 찾아왔다고…….?
묵향은 천천히 검을 들어 올렸다. 그의 얼굴과 분위기를 읽은 두목은 자신이 도저히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옆에 있는 이 계집들 역 시…….
“안 돼.”
그의 비명은 순간적으로 끊어졌다. 왜냐하면 허파에서 분리된 머리통은 더 이상 비명을 지를 수 없기 때문이다. 두목을 없애 버린 후 묵향은 나머지 계집들도 모두 다 죽였다. 알량한 자비심으로 계집들을 놓아 보낼 수는 없었다. 만에 하나 이들 중에 산적 패거리가 끼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혹시나 탈주자가 있을까 하여 묵향의 패거리는 날이 밝을 때까지 주변을 계속 감시했다.
아침이 되어 주위가 밝아지자 그들은 시체를 하나하나 뒤지며 혹시나 살아 있는 놈이 있는지 확인을 했다. 완벽히 처리되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산적들이 여태까지 약탈해서 모아 둔 모든 물건들을 밖으로 꺼내기 시작했다. 점심때가 가까워지자 표국에서 짐꾼들과 표사들이 도착했다. 묵향은 그들에게 모든 짐을 맡긴 후 산채를 불태웠다. 그러면서도 혹시나 숨은 놈이 있는지 감시의 눈길을 쉬지 않았다. 산채가 불바다가 된 후 일행은 떠났다. 하지만 묵향은 수하 다섯 명을 데리고 가다가 다 시 돌아와 기척을 숨기고 천천히 산채에 접근해서 기다렸다.
그날 저녁때가 되어 사방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자 벌거벗은 여자 하나를 베었던 그 통나무집이 있던 곳의 잿더미가 들썩거렸다. 좀 지나자 안에서 머리통 하나 가 약간 나오더니 조심스럽게 사방을 살폈다. 밖에서는 아무런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 보따리 하나가 밖으로 내던져지더니 한 거한이 안에서 기어 올라왔 다. 거한은 한숨을 쉬면서 나직이 말했다.
“정말 대단한 악귀들이군. 내가 10년에 걸쳐 이룩해 놓은 모든 것을 하룻밤 사이에 없애 버렸어. 먼저 큰형님께 찾아가 이 녀석들의 잔악상을 알리고 천령표국에 복수를 해야겠어.”
그는 두리번거리며 사방을 살펴보다가 아무런 이상이 없자 안심했다. 그가 투덜거리면서 고개를 숙여 보따리를 주워들고 막 걸음을 옮겨 놓으려고 하는데, 갑자기 눈앞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방금 전까지 아무도 없었는데 고개를 숙였다 들자 사람이 서 있는 것이다. 그 순간 그의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이 녀석은 어디서 나온 거지??”
하지만 그의 생각은 오랜 시간 이어지지 못했다. 눈앞이 번쩍하는 느낌과 동시에 의식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묵향은 그 괴한이 쓰러지자 남겨 놓은 보따리를 살펴봤다. 그 안에는 금과 보석이 들어 있었다. 묵향은 낮은 목소리로 수하들에게 명령했다.
“저자의 몸을 뒤져서 돈이 될 만한 건 모두 챙겨라. 그리고 자네는 저 보따리를 들어라. 검은 어떤가? 돈이 좀 될 것 같아?”
검을 약간 뽑아 살펴보던 사나이가 말했다.
“보도는 아니지만 상당히 좋은 도입니다. 꽤 비쌀 것 같은데요.”
“좋아. 이제 철수하자.”
“존명!”
사무실에서 이번에 약탈한 물품 내역에 대해 총관이 낭독하는 것을 묵향과 방 대인은 듣고 있었다. 묵향은 계산은 질색이었지만, 자신이 가져온 것을 방 대인에게 인수인계를 해야 했기 때문에 동석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되찾은 금액은 다음과 같습니다. 은화 8만 5천 냥, 금화 50냥, 금화 10냥에 맞먹는 금괴 열두 덩어리 그러니까 금화 120냥, 진주목걸이 두 개 합쳐 은화 1 천1백냥, 보석이 붙은 금반지 아홉 개 합쳐 은화 1천2백 냥, 보석이 붙은 금목걸이 두 개가 합계 은화 1천150냥, 그 외의 각종 패물을 몽땅 합하면 은화 8천430냥, 산적들의 무기 중 보검 한 자루 은화 5백 냥, 상급의 도(刀) 한 자루가 은화 40냥, 상급의 검 두 자루 합계 은화 1백 냥, 그러니까… 여기까지가 은화 10만920냥입 니다.”
“그 외에는?”
“그리고… 나머지 모든 무기류를 합해 계산하면 대략 1만 2천350냥, 시가 50냥인 상급 비단이 60필 그러니까 3천 냥, 시가 384문인 비단이 120필 그러니까 은화 4천608냥, 시가 25냥인 하급 비단이 1백 필 그러니까 2천5백 냥, 시가 12냥인 고급 무명이 240필 그러니까 2천880냥, 시가 10냥인 무명이 120필 그러니까 1천2 백 냥, 시가 8냥 정도의 하급 무명이 150필 그러니까 1천2백 냥, 그리고 쌀이 3백 석이니까 1만 1천520냥, 그 외 잡곡이나 육류 등 나머지 잡다한 것들을 몽땅 긁어 모아서 대충 4천750냥, 그리고 전체 산채에서 뒤져서 긁어모은 잔돈이 8만 3천456냥, 그래서 합하면 12만 7천464냥! 그러니까 은화 663냥하고 168냥……. 그러 니까 앞의 것과 뒤에 것을 합하면 총 긁어 들인 것이 은화 10만 1천583냥하고 168냥입니다.”
총관의 계산을 듣고 있던 묵향은 약간 안심이 되었다.
“휴, 그런대로 본전치기는 하신 것 같군요. 축하드립니다, 방 대인.”
“아니야! 관부와 군부에 무마하기 위해 사용한 뇌물들, 산채의 위치를 파악하는 데 들어간 비용, 그리고 지금 세 명이 각기 은화 5천 냥씩 들고 도망간 모양인데, 이들을 추적하는 데 들어갈 비용을 생각하면 이건 본전치기도 못 돼! 만약 놈들을 빨리 잡아서 은화의 일부를 회수한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상당히 밑지는 장사가 될 거야. 이보게, 유 표두!”
“예!”
“그자들은 은자 5천 냥씩 가지고 갔으니 아마도 말이나 나귀 등속에 짐을 싣고 있을 거야. 그놈들이 전장(錢場)에서 은표로 바꾸기 전에 잡아내야 해. 수하들에게 지시는 해 놨나?”
“예, 산채에서 없어진 은자를 파악하고 바로 지시를 했습니다. 전장부터 시작해서 거액의 은자를 바꾼 자들을 추적해 나갈 것입니다. 그 외에도 묵직한 물건을 실 은 자들을 포착하여 수색하라고 일렀습니다. 은자 5천 냥이면 50관이나 되는 무게니까 쉽게 꼬리가 잡힐 것입니다.”
“안 그럴지도 몰라. 어쩌면 어디 산속 깊이 묻어 두고 돌아다닐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그렇게 되면 난감해지는 거지.”
그렇게 묵향에게 대꾸한 방 대인이 총관에게 지시했다.
“빨리 돈을 만들어 오늘 내로 수송을 시작해라. 몽땅 다 팔아 버리고 빨리 팔리지 않는 물건에 대해서는 그 액수만큼 전장─물론 자신이 경영하는ᅳ에 가서 돈을 대출받아 와라. 그 외에 무기 종류는 표국과 호위 무사들에게 배급하고 쓸모없는 것들은 대장간에 팔아 버려. 자, 빨리빨리 움직여라!”
방 대인은 다시 묵향에게 정중히 말했다.
“이번에는 유 표두가 직접 열 명 정도를 이끌고 호위를 해 주게나.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원수(元帥府)에는 협조를 얻어 놨으니 별 문제는 없을 걸세. 그리고 총관에게 물어보면 좋은 술 스무 통을 줄 테니 그것도 같이 가져다주게나. 표물을 전하고 미안하다고 하면서 그걸 주라고.”
“알겠습니다, 그럼!”
이 사건 이후 천령표국의 신용도는 더욱 높아졌다. 천령표국은 표물을 빼앗겼지만, 예물을 가지고 산채로 갔는데도 찾을 수 없었던 것을 완전히 산적들을 토벌하 면서까지 되찾아 와서 운송해 줬던 것이다. 그 외에 운송이 두 달 이상이나 지체된 것에 대해 의뢰자에게 약소한 예물을 올리며 정중히 사과함으로써 모든 문제를 마무리 지었다. 여기까지가 강호에 퍼진 소문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산적한테 예물은 주지도 않았고, 순전히 기습적인 살육전이었는데다 위약금(약속을 어겼을 때의 비용으로 표물 운송 대금으로 받은 금액의 두 배 로 변상해야 함)을 내지 않기 위해 여기저기 20만 냥(은화 약 1천40냥)에 가까운 액수를 뇌물로 뿌린 것은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야 약간 지체되었다 하 더라도 대규모 운송을 깨끗하게 마무리 지었다는 점을 높이 사서 표물 의뢰가 쏟아지기 시작해 두 달도 안 되어 이때 입은 손해를 만회했다.
묵향이 낙양에 도착한 지 3년이 지나자 그도 표물 운송에 대해 상당히 많은 것들을 배우고 익힐 수 있었다. 천령표국의 경우 소극적으로 산적에 대해 방어만 한 것 이 아니라, 그 사건 이 후에는 일부 고수들을 동원해 산적의 본거지들을 소탕해 들어갔기 때문에 지금에 이르러서는 낙양 부근에 산적을 구경하기 힘들었다.
산적을 소탕함으로써 생기는 수익도 상당해서 북쪽에 대규모 산적들은 자취를 감추었고, 소수로 이루어진 가난한 산적들은 아직 남아 있었지만 이들의 힘으로는 표사들을 해치우고 표국의 표물을 뺏는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낙양분타의 표국 사업이 정상궤도에 오르자 방대한 양의 물품을 운송, 저장하는 능력을 바탕으로 낙양의 상권을 점차 잠식해 들어가 3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서는 상권의 6할을 주무르게 되었다.
묵향은 자신이 할 일이 거의 없어지자 무공수련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거의 밤낮을 가리지 않는 수련으로 소연도 묵향의 얼굴을 거의 못 볼 지경이었다. 물론 소연 의 어머니는 묵향이 소연이가 잠든 후 안마를 해 주러 올 때 오랫동안 볼 수 있었지만 소연이는 그 사실을 알 수 없었다.
소연이는 표사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열여섯 살의 건강하며 아름답고 귀여운 아가씨로 성장해 갔다. 거친 표사들이 소연이를 보고 아씨라고 존칭을 쓰며 공대 하는 데는 물론 묵향이 거의 자신의 수양딸처럼 보살펴 주고 있다는 사실이 크게 작용했다. 열다섯 살의 생일 때 묵향이 선물한 조랑말을 타고 소연이는 열심히 이 곳저곳을 돌아다녔다. 표사들이 앞다투어 무술을 가르쳐 주는 바람에 요즘 들어서는 소연이의 말에 따르면 자신의 몸은 스스로 지킬 수 있는 수준으로 올라서고 있 었다. 물론 묵향이 봤을 때는 어린애 장난 같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