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1권 16화 – 비무

비무

총단에 돌아온 후에는 단조로운 일상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원래가 마교의 주력(主力)이 되는 5대 단체의 구성원들이 하는 일은 언제나 같다. 훈련, 훈련, 훈 련… 그것이 혼자만의 수련이든 그렇지 않으면 집단으로 모여 진을 펼쳐 적을 상대하는 것이든 연속되는 훈련이다. 마교에서 위로 올라가려면 남보다 강한 무공 을 지녀야 하기에 모든 이들이 그것을 참고 견디는 것이다. 하루에 한 번씩 열 명이 펼치는 십절마검진(十絶魔劍陣), 일주일에 세 번씩 1백 명이 펼치는 백랑검진(百 狼劍陣), 일주일에 한 번씩 1천 명이 모여 펼치는 천랑검진(千狼劍陣)을 연습한다.

언제나 혼자서 무공을 수련해 왔던 묵향은 처음에는 배울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하지만 하루 이틀 지나면서 모든 것을 이해하자 그다음부터는 심드렁해졌다. 너 무 시시했던 것이다. 아예 이따위 시시한 검진 연습할 시간에 혼자서 수련을 좀 더 하는 것이 나으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유사시에 총력을 내기 위해서는 필 요 없는 훈련이라 하더라도 꾸준히 받아 두어야 했다. 그리고 잘할 수 있다고 자신이 빠지고 나면 자신이 이끌어야 할 1백 명의 대원들은 천랑검진에서 누굴 지휘자 로 움직여야 할지 답이 나오지 않으니 어쩔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부장(副長)을 불러 지시했다.

“다음부터는 자네가 본대를 이끌어 검진을 펼치도록 하게나. 그리고 평상시의 훈련도 자네가 이끌어 줬으면 좋겠어.”

그러자 그는 난색을 표하며 반대했다.

“하지만 대장, 그건 규칙에 어긋납니다. 제게 모든 지시를 받던 아이들이 실제 큰 전투가 벌어지면 대장과 손발이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괜찮아. 그때도 자네가 지휘하고 나는 뒤로 빠지면 되니까.”

“하지만…….”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자네가 해. 나는 이번에 떠오른 몇 가지 생각 때문에 머리가 터질 지경이니까!”

“알겠습니다, 지시대로 이행하겠습니다.”

하지만 그의 얄팍한 수단은 바로 들통이 났다. 모두 같은 복장이기에 표가 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천리독행(獨行) 철(鐵極光)의 예리한 눈이 그 것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그는 훈련이 끝나자마자 묵향을 호출했다. 묵향은 천리독행 근처에 가기도 전에 그가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그 래서 묵향은 조심스럽게 인사했다.

“대주(主)를 뵈옵니다.”

대주는 주위에 있는 수하들을 의식해서인지 극도로 화를 억누르며 말문을 열었다.

“네 녀석은 뭘 하고 있었나?”

“예?”

“정해진 훈련 시간에 뭘 하고 있었냔 말이다.”

“수련하고 있었습니다.”

“검진의 훈련보다도 중요한 일인가?”

“빨리 대답하라!”

“그렇습니다.”

“흥, 그렇다면 네놈의 그 알량한 수련이 어느 정도인지 노부가 심사해 주겠다. 따라오라.”

천리독행은 대천랑 검진이 펼쳐졌던 연무장으로 향했다. 묵향과 수하들도 그 뒤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저 영감이 화가 단단히 난 모양이군. 어떻게 하지??

연무장의 중간쯤에서 천리독행은 천천히 검을 뽑으며 싸늘하게 외쳤다.

“자, 빨리 검을 뽑아라.”

“삼가 묵향이 대주께 비무를 청합니다.”

“헛소리하지 말고 검이나 빨리 뽑아!”

천리독행은 독이 오를 대로 올랐는지 묵향의 의례적인 절차에 따른 인사에도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며 말했다. 묵향은 천천히 묵혼을 뽑았다.

“자! 어디 네 녀석이 익히고 있는 검초가 어느 정도 위력이 있는 것인지 한번 노부에게 보여 봐라. 그런대로 위력이 있는 거라면 노부가 용서해 주지.”

용서해 준다는 말을 듣고 묵향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진기를 끌어올렸다. 그러자 검이 용트림하듯 웅웅거리면서 주위에 푸르스름한 안개 같은 것이 퍼져 나가 기 시작했다. 그걸 보고 천리독행이 경악해서 외쳤다.

“맙소사, 검기인가? 아니 이것은 눈에 보일 정도의 유형(形)의 것이니 검강! 검강이로구나.”

이미 검강은 1장(약 3미터) 밖으로까지 천천히 뻗어 나가고 있었고, 그 푸르스름한 안개에 가려져 묵향의 모습은 희미하게밖에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근처까지 그 강기가 다가오자 천리독행은 놀라고 있을 수만도 없었다. 뭔가 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래도 내친걸음이니 어쩔 수 없었다. 그는 검을 들어 진기를 돋 우어 뻗어 나오는 검강을 후려쳤다. 불꽃이 번쩍거리며 힘들게 검강의 일부를 잘라 내는 데 성공했지만 곧 그것들은 다시 합쳐졌고 계속 밖으로 뻗어 나오고 있었 다. 그러자 천리독행은 훌쩍 2장 뒤로 도약해서 물러선 다음 모진 기합성과 함께 검초를 펼쳤다.

“이얍!”

그가 펼친 검초는 천강혈룡검법의 일초인 유운혈룡(流雲血龍)! 그것도 10성의 공력으로 펼쳐지며 붉은 혈룡 10여 마리가 묵향이 만들어 낸 강기들과 부딪쳤다. 강기들이 부딪치며 엄청난 굉음이 울려 펴지고 강기의 회오리가 일어났지만 끝내 천리독행의 혈룡들은 두터운 푸른 강기의 막을 뚫고 들어가지 못했다.

독이 오른 천리독행은 더욱 진기를 끌어올려 강기를 발사했다. 이번에는 전번보다 더욱 큰 혈룡들이 날아갔다. 그러자 갑자기 푸른 강기의 막 속에서 묵향이 앞으 로 달려 나오며 묵혼검으로 혈룡을 쳐 냈다. 이때 묵혼검은 푸른빛을 내고 있었는데, 그 검신은 두께가 5치(약 15센티미터) 정도 되는 푸른 기운이 이글거리며 뿜어 나오고 있었다. 뚫지 못하는 것이 없다는 붉은 강기들이 이글거리는 묵혼검과 부딪치자 폭음을 일으키며 튕겨나갔다. 그 모습을 보면서 천리독행은 눈을 더욱 크게 부릅떴다. 그러면서 힘 빠진 말이 새어 나왔다.

“어검술(御劍術)까지…….”

검강이란 검에서 유형의 강기를 응축시켜서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의 위력은 검기나 검풍에 비해 더욱 강력하다. 이 검강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같은 검강이나 아 니면 어검술을 쓰는 것이다. 어검술이란 검을 완전히 다스릴 수 있는 사람만이 펼칠 수 있는 기술로 자신의 진기를 이용하여 검이 가진 모든 능력을 뽑아내는 기술 이다. 그렇기에 일반 철검을 가지고도 강철을 두부 자르듯 할 수 있다는 전설적인 무예다.

어검술보다는 약간 질이 떨어지지만 어기충검술(御氣充劍術)이 있다. 이것은 기를 다스려(御氣) 검(劍)에 기를 충만히充] 채워 상대를 공격하는 기술術로 어검 술과 같은 이글거리는 광택은 없지만 시술자의 경지에 따라 여러 광택이 나며 그 위력은 어검술보다 떨어진다. 어검술을 펼치면 그 무엇도 자르지 못할 것이 없는 상태가 되는데, 이때 우수한 보검이나 신검이라면 어기충검술 정도로도 어검술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상대도 보검으로 어검술을 펼친다면 막기 힘들다. 그 이유는 어검술이 검이 가진 기운을 끌어내는 것이기에 보검일수록 위력이 강해지기 때문이다.

어검술에 더욱 능숙해지면 진기를 사용해 어검술을 펼친 검을 어검술을 유지한 채 날려 1백 장 밖의 고수들도 마음대로 공격할 수 있는데, 이것을 이기어검술(以 氣御劍術)이라 불렀고 검술에서도 최고의 위치를 차지한다. 이것은 심검(心劍)과 함께 검술의 최상승 경지였다. 일반 무림인들이 진기를 다스려(御氣) 검을 움직여 〔動劍] 사람을 해치는 어기동검술(御氣動劍術)과는 그 파괴력에서 차원이 다르다. 같은 어검술이나 검강이 아니면 이기어검으로 날아오는 검을 막을 수 없다. 하지 만 검강은 상대의 검과 맞부딪칠 뿐, 지속적인 힘이 없기에 실질적으로는 어검술이 아니면 어검술을 막을 수 없다는 말이 된다.

만약 어검술을 이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한 가지, 심검(心劍)뿐인데 이것은 전설에나 나오는 최고의 기술로 어검술보다 위 단계의 무공이다. 이것 또한 검강의 한 갈래이므로 막대한 내력이 필요하지만, 어검술은 검의 능력을 최대한 짜내는 것이므로 진기의 소모가 훨씬 적다.

묵향은 천리독행이 경악하건 말건 그대로 어검술로 천리독행을 향해 직선으로 찔러 들어갔다. 이제 천리독행이 할 수 있는 행위는 두 가지뿐이었다. 달려드는 검 을 막든지 아니면 마주 찔러 들어가 상대와 동귀어진(同歸御盡)하는 방법뿐이다. 하지만 신검(神劍)이 아닌 다음에야 어검술로서 들어오는 검을 막는다는 것은 불 가능하다. 그래서 천리독행은 이를 악물고 마주 찔러 들어갔다. 묵향은 천리독행의 검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급히 몸을 틀면서 순간적으로 몸의 탄력을 이용해 상대 의 하체를 향해 베어 나갔다. 그러자 천리독행도 순간적으로 몸을 옆으로 틀어 묵향의 단전을 찔러 갔다.

근접전이 시작되자 일초 일초가 모두 동귀어진의 초식이었다. 천리독행이 묵향의 어검술을 상대로 이만큼이라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무시무시한 경신법 덕 분이었다. 만약 그의 신법(身法)이 조금이라도 느렸다면 그는 벌써 패배를 자인했을 것이다. 하지만 천리독행은 입으로 말은 안 했어도 벌써 자신이 패했다는 것을 뼛속 깊이 느끼고 있었다. 식은땀을 흘리며 호흡이 가쁜 자신에 비해 묵향은 담담하게 일초 일초 그를 향한 공격에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근접전이 시작되고 30초가 지나자 묵향은 뒤로 도약해서 4장여를 떨어져 나와 검을 아래로 내려가게 잡고 포권하며 말했다.

“대주의 검술은 정말이지 대단합니다. 소인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가르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소인을 용서해 주실 수 없겠는지요?”

천리독행은 더 이상 근접전이 진행되면 둘 중 한 사람은 크게 다치거나 목숨을 잃으리라는 것과 또 그 사람이 십중팔구는 자신이 되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묵향의 몸은 어검술을 사용해서 검이 빛나는 와중에도 초식에 따른 예정된 움직임이 아닌 천리독행의 움직임에 따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유연하면서도 재빠르게 움직이 며 천리독행의 혼을 빼 놨던 것이다. 그런데 상대가 이렇게 숙이고 나오자 천리독행은 자신의 체면을 살려 주면서 묵향이 물러났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래서 그도 마지못해 검을 천천히 검집에 넣으며 그에 대해 답례를 했다.

“험험…, 자네의 검술이 이 정도로 진전을 봤는지는 노부가 몰랐군. 내 밑에 있을 정도의 실력이 아니라는 걸 노부가 미리 알아채지 못해 미안하구만. 이제부터는 모든 훈련에 참가할 필요가 없네.”

“대주, 신경을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만 가자…….”

그 말과 함께 천리독행은 수하들을 이끌고 자신의 숙소로 돌아갔다. 천리독행은 이 비무의 결과가 오늘 중으로 교주에게 알려질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마교 내 에는 수많은 교주의 눈과 귀가 숨어 있다. 이들의 보고가 교주의 귀로 들어간다면 묵향은 어쩌면 자신보다 더 높은 위치로 올라갈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그는 최대 한 부드러운 어조로써 양보했던 것이다. 사이가 안 좋은 상태에서 나중에 묵향이 그의 윗자리로 승진한다면 그것만큼 골치 아픈 것도 없으니까…….

그 사건이 있고 2주일이 지나 묵향은 교주의 부름을 받았다.

“교주님을 뵈옵니다.”

“오, 요즘 열심히 수련을 하고 있다는 말은 들었네. 이번에 자네를 부른 것은 한 가지 일을 맡기기 위해서야.”

“하명만 하십시오.”

“흠, 자네가 설명해 주게나.”

그러자 교주의 옆에 서 있던 적미살소(赤眉殺笑) 혁무상(赫武相)이 말을 시작했다. 혁무상 장로는 과거 적미염 왕자영이 은퇴한 후 등용된 인물이었다. 묘한 우연 으로 이 둘 다 적혈수라마공을 연성했기에 눈썹 끝이 붉은색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어쨌든 상대를 어떻게 요리할까 하는 속마음을 드러내는 듯한 그의 살 기 띤 미소 덕에 적미살소라는 명호를 얻은 혁무상은 마교가 낳은 최고의 두뇌라는 칭송을 받고 있었다.

“자네도 낙양에서 일을 해 봐서 잘 알고 있겠지만 본교에서는 요즘 들어 은밀하게 세력 확장을 꾀하고 있네. 쓸데없는 분타들을 많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 업을 확장 중에 있어. 그중에서도 낙양을 시작으로 꽤 효과가 좋았기에 세 개의 표국을 더 열었네. 그리고 각종 사업체들도 여러 사람의 이름으로 시작하고 있지. 그 런데 아주 우연한 기회에 우리들이 하는 사업장과 제령문(諸令門)이 충돌했어. 제령문의 경우 2백여 명의 식솔을 거느리는 작은 방파지만 그 문주가 대단한 사람이 지. 자네는 강호 사정에 어두워 잘 모르겠지만 3황5제에 들어가는 뇌전검황(雷電劍皇)이 이끄는 문파지. 아마 좀 더 시간이 지난다면 그 문파에서 그 부근에 뿌리를 내리려는 본교의 의도를 알아챌 가능성이 높아. 그래서 자네에게 부탁하는 거네.”

“뇌전검황을 없애란 말씀입니까?”

“그렇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그자를 한 달 내로 없애 버려. 문주가 없어지면 그들의 세력이 꺾일 거야. 그 문파에는 스무 명 정도의 대단한 고수들이 있다 고 하지만 문주가 없어지면 우두머리가 없으니 한풀 죽겠지.”

“하지만 그 정도의 고수를 암살하면 뒷감당을 하기가…….”

“자네는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어. 정파의 초고수들 가운데 파악하기 쉬운 위치에 있는 사람은 몇 안 돼. 그렇기에 본교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그자를 없 앨 필요가 있다구. 실로 무림은 너무나도 넓은 곳, 3황5제에 필적하는 고수가 숨어 지내고 있다고 해도 알기는 어렵지. 그들에 대한 경고 차원에서라도 이번의 임무 는 꼭 성사되어야 해. 알겠나?”

“존명!”

“자네의 퇴로를 지원하기 위해서 본교의 고수 네 명을 붙여 주겠네. 그들을 데리고 가게나.”

“필요 없습니다. 속하 혼자 가도 충분합니다. 그럼 이만 물러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