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1권 18화 – 비무의 결과

비무의 결과

묵향과 뇌전검황은 밤새워 얘기를 나눴다. 대부분은 무공에 대한 것이었지만 무공 외의 얘기도 많이 오갔다. 하지만 둘의 대화에 서로의 신상이나 주변 얘기는 일 체 없었다. 그들은 술을 조금씩 마시며 동이 틀 때까지 얘기를 나눴다.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그들의 대화는 대단히 높은 경지의 무공에 대한 것들이었고, 그들이 이해하기는 너무나도 힘든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뇌전검황과 묵향은 신이 나서 서로의 이론에 동조하기도 하고 반박하 기도 하면서 계속 이야기를 나누었다.

뇌전검황이 사는 곳에서 해지는 모습을 보기는 어렵지만 앞으로는 탁 트여 해뜨는 장관을 볼 수 있었다. 해가 떠오르자 모두 대화를 멈추고 그 장관을 넋이 나간 듯이 즐겼다. 해가 완전히 떠오르자 뇌전검황은 다시 물었다.

“자네는 좋은 검을 만들어 나가려면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갑자기 묵향의 표정이 약간 굳어졌다.

“그 질문의 대답은 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차선(次善)의 대답은 해 드릴 수 있죠. 모두 잊으면 됩니다. 완전히 잊으면 좋은 검이 만들어질 겁니다.”

“모두 잊는다? 보통 사람으로서는 실행이 불가능한 대답이군. 그럼 최선의 답은 뭔가?”

“그건 제가 구상 중에 있는 검법의 서문(序文)이기에 알려 드릴 수 없습니다. 그 검법은 아무에게도 알려 줄 생각이 없거든요.”

“다음에 받을 제자에게도 말인가?”

“저는 제자를 받을 생각은 없습니다. 그냥 무공의 끝이 어딘지 알고 싶을 뿐입니다. 계속 수련에 수련을 거듭하다가 늙어 죽을 생각입니다.”

“대단한 친구군. 그렇다면 구상 중인 검법의 이름을 좀 알려 줄 수 있겠나? 참 궁금하군.”

“무상검법(無上劍法)이라 지었습니다.”

“대단히 광오한 명칭이군. 무상(無上)이라, 더 이상의 검법이 없다는 말이니……. 어떤 것인지 더욱 궁금하네 그려.”

“좀 있다가 보시게 될 겁니다.”

“그 무상검법은 몇 가지 초식으로 만들어진 것인가?”

“고정된 초식은 없습니다.”

“초식이 없다구? 그렇다면 어찌 검법이랄 수 있나?”

“무초식의 초식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초식이 있다면 그걸 역이용한 대응 무공이 나오게 되어있죠. 하지만 초식이 없기에 그것이 무상이 될 수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 검법은 어떤 형태로 되어 있나?”

“지금까지는 총 네 개의 장(章)으로 만들었습니다. 나중에 더 늘려 갈 생각입니다.”

“그걸 간단히 알려 줄 수 있나?”

“어려울 것 없죠. 1장은 검기(劍氣), 2장은 검풍(劍風), 3장은 어검(御劍), 4장은 검강(劍剛)입니다. 실질적으로는 검을 이용했다 뿐이지 검법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게 이름 붙이고 싶어서 불렀을 뿐입니다.”

“전설적인 무공들이 모두 망라되어 있군. 더욱 구미가 당기는군. 자네도 여태껏 기다리느라 진이 빠졌을 테니……. 령아, 내 검을 다오.”

그러자 홍의 소녀는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검을 말씀입니까?”

“오냐.”

홍의 소녀는 안으로 들어가더니 고색창연(古色蒼然)한 고검(劍)한 자루를 가지고 나와 뇌전검황에게 건넸다. 그러자 뇌전검황은 검을 천천히 뽑아 묵향에게 보 여 주었다.

“이 녀석을 30여 년 전에 우연히 구해 아직도 애지중지하고 있다네. 아주 대단한 보검이야. 내 손에 들어온 것을 나는 아직도 감사한다네. 어떤가?”

“아주 훌륭한 검이군요. 검신이 곧은 것이 산악(山岳)의 기운을 담고 있으니 대단한 보검이라 생각됩니다. 그 검의 이름이 어떻게 되는지요?”

“패왕검(覇王劍)이라네. 일반적인 보검과 같은 예기가 없어 보통 검처럼 보여서, 나도 처음에는 이 녀석의 진면목을 알아보지 못했지. 하지만 날이 갈수록 마음에 드는 녀석이라 내가 그렇게 이름을 지었지. 자네의 검은 어떤 것인가?”

““제 것은 그냥 정강(精剛)으로 만든 보통 검입니다. 아주 오랜 세월 정이 들었기에 그냥 사용하고 있을 뿐이지 보검도 뭣도 아니죠. 하지만 아주 제 마음에 쏙 들게 잘 만들어진 검입니다.”

묵향은 묵혼을 꺼내어 보이며 말했다.

“짧은 검을 좋아하는 모양이군.”

“그렇지도 않습니다. 예전에는 검자루의 길이가 1척이나 되어 그걸로 사람의 눈을 현혹하길 즐겼지만, 지금은 그것도 귀찮아서 잘라 버려 보통 검보다 약간 긴 정 도일 뿐이죠.”

“1척이라, 대단하군. 확실히 자루가 1척이나 된다면 보통 고수가 아니고서는 간격을 잡기가 힘들지. 그럼 이제 자네의 실력을 보고 싶군. 이리 따라오게.”

두 사람이 일어서자 모두 따라 일어섰다. 그걸 본 뇌전검황이 그들에게 말했다.

“여기에서 구경하는 게 좋겠군. 우리는 저 밑에서 비무를 할 테니까. 정(靜)아, 너는 만약에 이 아비가 죽더라도 복수할 생각을 말아라. 이것은 비무일 뿐 그 무엇도 아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아버님.”

“서진(眞)아.”

“예, 사부님.”

“내가 죽으면 이 패왕은 네가 가졌으면 좋겠구나.”

“하지만 그것은 사부님의 신물(信物)인데 어찌 제자가 감히.”

“이건 장문인을 나타내는 신물이 아니다. 그냥 내가 애용하던 검일 뿐. 너는 아직 미숙하나 그 기상과 기운이 나의 젊은 시절을 생각나게 하기에 이걸 너에게 주고 자 하는 것이다. 이걸 가지고 정이를 도와주도록 해라.”

“예, 사부님.”

뇌전검황은 천천히 묵향의 뒤를 따라 내려와 오두막 밑에 있던 밭 가운데 섰다. 밭은 평평하고 제법 널찍해 20장 정도의 넓은 비무장이 되어 주었다. 뇌전검황은 성큼성큼 걸어가 묵향과 7장 거리까지 떨어져서 천천히 검을 뽑았다.

“이제 시작해 보자구.”

고수들의 강력한 무공은 거의 강기 계통을 사용하여 원거리에서 상대를 공격하기에 보통 약간 떨어진 거리에서 결투가 시작된다. 묵향도 검을 천천히 뽑아 정안으 로 겨누어 자세를 잡으며 말했다.

“예의는 필요 없이 처음부터 살수(殺手)를 쓰기로 하죠.”

실전이 아닌 비무에는 예의가 있다. 비무라는 말이 나오면 동년배끼리는 서로 3초를, 후배와 선배가 상대할 때는 선배가 3초를 양보한 다음에 본격적인 대결이 시 작된다. 말과 동시에 묵향의 몸 주위로 푸른색 구름 같기도 하고 안개 같기도 한 것이 뻗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걸 본 뇌전검황은 놀랍다는 듯이 말했다.

“검강! 대단하군. 이런 식으로 검강을 만들어 자신을 보호하는 것은 본 적이 없네. 이것도 무상검법인가?”

“예, 지금 것은 4장 3절, 망강(網剛 : 강기의 사슬)이라는 것입니다. 수비에 효과적이죠.”

그러자 뇌전검황은 앞으로 달려 나오며 우렁찬 목소리로 기합을 토했다.

“으얍!”

그와 동시에 강맹한 초식이 펼쳐졌고, 뇌전검황의 검에서 뿜어 나온 강기의 회오리가 곧장 묵향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날아갔다. 곧이어 그것과 묵향의 푸르스름 한 안개가 부딪치며 불꽃을 튕기며 큼직한 소음을 토해 냈다. 하지만 뇌전검황의 강기 세례에 밀려 약간 갈라지던 안개는 곧 원상태로 돌아갔다. 이걸 본 뇌전검황 은 짐짓 신음성을 흘렸다.

“대단한 보호력이군. 뚫고 들어가기는 힘들겠어.”

안개 저편에서 묵향의 말소리가 들렸다.

“노야(老也)의 능력이라면 그렇게 어렵지도 않을 겁니다. 괜히 투덜거리지 마십시오.”

뇌전검황은 상대에게로 달려 나가 더욱 거리를 좁히면서 동시에 검을 앞으로 쭉 뻗으며 외쳤다.

“묵룡세(墨龍勢)!”

뇌전검황의 검에서 10여 가닥의 강력한 강기가 뇌전처럼 뿜어져 나오며 안개를 찢어 놓기 시작했다. 강기와 강기가 부딪쳐 엄청난 폭발이 일어나며 검강, 검기의 회오리가 생겼다. 검강의 얇고 가는 사슬이 두텁게 연결되어 있기에 강력한 검기라 하지만 뚫고 들어가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강기의 사슬을 찢는 데 성 공하자 뇌전검황은 묵향에게 더욱 접근했다. 그런 후 즉시 묵향에게 검을 찔러 넣으며 외쳤다.

“용신세(龍身勢)!”

패왕검은 웅웅거리는 검음과 함께 푸르스름한 빛을 띠면서 묵향을 향해 덮쳐 왔다. 수십 마리의 용들이 자신을 덮쳐 오는 환각이 일어날 정도로 푸른빛을 띤 패왕 검이 묵향을 향해 순간적으로 10여 차례 전신 요혈을 찔러 왔다. 그와 동시에 엄청난 검기가 묵향의 전신을 덮쳐 왔다.

“3장 1절, 어검.”

묵향이 낭랑한 목소리로 말함과 동시에 평범하던 묵혼검에서 푸른빛이 쏟아져 나왔다. 그 상태로 묵향은 묵혼검을 들어 찔러 들어오는 패왕검의 검초를 막고 몸에 서 약간씩 빗나가게 흘려 보냈다.

이때 맞부딪친 것은 아니었지만 묵향의 어검술과 뇌전검황의 막강한 검기가 슬쩍 스치며 엄청난 폭음과 함께 회오리가 일어났다. 상대의 강력함에 뇌전검황은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어느 순간 묵혼검과의 사이에서 일어나는 회오리와 같은 반탄력을 이용해 몸을 뒤로 날리며 검을 상대에게 겨눈 채 외쳤다.

“비룡(飛龍勢)!”

빛이 나는 패왕검은 뇌전검황이 던진 것도 아닌데 스스로 그의 손을 떠나, 막 뇌전검황을 추격하려는 묵향을 향해 빛과 같은 속도로 찔러 들어갔다. 묵향은 패왕검 을 옆으로 쳐 내며 뇌전검황을 따라가려고 했다. 하지만 묵혼검에 튕겨 나간 패왕검은 타원을 그리며 다시 묵향을 덮쳤다. 묵향은 그것을 보고 묵혼검을 던지며 나 지막이 말했다.

“3장 2절, 이기어검.”

화려한 빛을 내뿜고 있는 묵혼검은 주인의 손을 벗어난 후 어기동검술(御氣動劍術)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패왕검과 공중에서 부딪쳤다. 묵향은 묵혼이 자신의 손 에서 떨어져 나간 그 순간 뇌전검황이 있는 곳으로 쏜살같이 달려들었다. 그러면서 상대를 향해 오른손을 들어 올리며 되뇌었다.

“4장 1절, 통강(通剛).”

묵향의 장심(心)에서 푸른색의 길쭉한 용과 같이 생긴 것이 뇌전검황을 향해 뻗어 나갔다. 그것을 본 뇌전검황은 대경해서 옆으로 피했다. 푸른 강기가 아슬아 슬하게 뇌전검황의 옆을 통과해서 비켜 나가는 것을 보고 묵향은 이번에는 손을 수평으로 그으면서 말했다.

“4장 2절, 절강(絶剛).”

그러자 그의 손에서 푸른색의 반월형과 비슷한 물체가 뇌전검황이 피해 나간 위치를 향해 광범위하게 날아왔다. 그것을 본 뇌전검황은 재빨리 위로 몸을 날렸다. 뇌전검황의 신발 아래쪽으로 아슬아슬하게 그 반월형의 물체가 날아갔고, 그것이 밭 가장자리에 있던 나무들에 맞자 일순간 아무런 이상이 없었지만 곧 나무들의 밑동이 잘려서 쓰러졌다. 수십 그루가 잘려 나가는 걸로 보아 그것의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었다.

뇌전검황이 반월형의 강기를 피한다고 위로 떠오르자 묵향은 기다렸다는 듯이 뇌전검황이 날아오르는 위치에 재빨리 양손을 뻗으면서 말했다.

“4장 1절, 통강.”

그러자 이번에도 길쭉한 푸른색 용이 각각 그의 양손에서 뇌전검황이 있는 위치로 쏘아져 나갔다. 뇌전검황은 그걸 보고 외쳤다.

“좋군! 부룡장(浮龍掌)!”

뇌전검황은 재빨리 오른쪽 상방을 향해 장풍을 발사했고, 그 장풍의 반탄력에 의지해서 옆으로 떨어져 내리며 묵향의 공격을 피했다. 화경의 고수라면 능공허보를 펼칠 수 있다. 공중을 걸어 다닐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공중에서 갑작스럽게 빠른 움직임은 불가능하므로 그런 동작이 필요할 때는 장법(掌法)을 써서 그 반동을 많이 이용한다. 뇌전검황은 땅에 착지하자마자 묵향을 향해 손가락을 뻗으며 외쳤다.

“탄령지(彈指)!”

뇌전검황의 열 손가락에서 각기 지풍이 뻗어 나오며 묵향을 덮쳤다. 그러자 묵향은 오른손을 들어 뇌전검황을 향하면서 말했다.

“2장 1절, 잠룡풍(潛龍風).”

묵향의 손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는데 곧 뇌전검황의 손에서 뻗친 열 줄기의 지풍이 공중에서 산산조각 나며 굉음이 울렸다. 뇌전검황은 옆으로 피하면서 외쳤 다.

“무형(無形)의 권풍(拳風)인가?”

“아닙니다, 그냥 검풍(劍風)일 뿐이죠.”

그러자 뇌전검황은 대경해서 외쳤다.

“그럼 여태까지 사용한 모든 것이 장법(掌法)이나 권법(拳法)이 아니라 검법이란 말인가?”

“일정 실력을 벗어나면 한낱 풀뿌리도 검이 될 수 있는 것인데 왜 사람 몸속의 뼈는 검이 되지 못한다는 겁니까?”

“오호라, 묘(妙)하군 묘해.”

그때 묵향은 저쪽에서 서로 아직도 패왕검과 싸우고 있는 묵혼을 불렀다. 뇌전검황과 묵향은 정신과 진기를 잘 조절해 사용했기에 두 검은 아직도 싸우며 서로의 주인에게 돌아가는 것을 견제하고 있었던 것이다. 묵혼검이 묵향이 있는 곳으로 날아오자 뒤따라서 패왕검도 다가왔다. 묵향은 묵혼을 쥐자마자 외쳤다.

“1장 1절, 탄(彈)!”

그와 동시에 묵향에게서 엄청난 기운이 밖으로 뿜어 나왔다. 거의 강풍과 같기도 했다. 그 강렬한 반탄력에 밀려 주위 3장 안의 밭에 심어져 있던 콩 줄기와 흙이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뇌전검황이 그 힘을 막기 위해 앞으로 자세를 잡으며 버티자 곧바로 묵향의 음성이 들려왔다.

“1장 2절, 흡().”

그와 동시에 뇌전검황은 엄청난 흡인력(吸引力)에 안 그래도 앞으로 쏠렸던 힘이 가세하자 순간적으로 중심을 잃고 묵향 쪽으로 다가갔다. 다시 묵향의 목소리가 들렸다.

“4장 1절, 통강.”

뇌전검황은 그 뜻이 뭔지 알고 있었기에 그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위로 뛰어올랐다. 뇌전검황의 발밑으로 묵향이 내뿜은 강기가 지나가는 걸 느끼고 식은땀을 흘 렸다. 비무가 아니었다면 이런 식으로 자신이 사용할 초식을 알려 주며 대결하지는 않는다. 만약 그걸 알려 주지 않고 구령과 실질적인 무공이 약간의 시간차를 두 지만 않았어도 뇌전검황은 이미 저세상에 갔을 것이다.

뇌전검황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며 수세에 몰리자 뇌전검황의 제어(制御)를 잃은 패왕검은 묵향의 옆에 떨어져 땅에 꽂혔다. 만약 뇌전검황이 이때 패왕검을 계속 사용하여 묵향을 밀어붙였으면 이 정도로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뇌전검황이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묵향의 음성이 다시 들려왔다.

“1장 3절, 파(破).”

묵향의 위로 솟아오른 뇌전검황의 복부 쪽으로 엄청난 검기의 회오리가 몰아쳤다. 뇌전검황은 순간적으로 손을 아래로 쭉 그어 내리며 외쳤다.

“비룡(飛龍破)!”

엄청난 굉음과 함께 뇌전검황이 뿜어낸 장풍과 묵향이 뿜어낸 검기가 부딪치면서 생긴 반탄력에 의해 몸이 더욱 높이 떠올랐다. 이때 뇌전검황의 애검 패왕검이 위로 떠올라 그의 손으로 돌아갔다. 뇌전검황은 검을 잡자마자 동시에 외쳤다.

“파룡세(破龍勢)!”

수십 가닥의 강기가 묵향의 머리 위로 날아왔다. 하지만 묵향은 옆으로 피하는 대신 그냥 가만히 있었다. 뇌전검황은 이때 묵향의 목소리를 들었다.

“1장 4절, 방(防).”

뇌전검황은 묵향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던 수많은 검강들이 묵향 주위 반 장 정도 거리에서 더 이상 뚫고 들어가지 못하고 막히는 것을 보았다. 뇌전검황의 강기 들은 묵향이 꼭 반원형의 보이지 않는 막을 친 것처럼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묵향의 주위에는 엄청난 양의 폭탄이 터지는 것처럼 강기들이 땅에 부딪치면서 일으 키는 폭발로 자욱한 먼지가 솟아올랐다. 묵향은 뇌전검황의 일격을 받은 후 천천히 검을 뇌전검황 쪽으로 올리며 말했다.

“2장 2절, 파황풍(破荒風). 3장 2절, 이기어검.”

그러자 묵혼이 묵향의 손에서 떨어져 나가며 맹렬한 기세로 뇌전검황을 향해 날아왔다. 뇌전검황은 묵향이 두 가지 초식을 사용한 것을 알았지만 새로운 초식은 그에게 아무런 느낌도 주지 않았다. 뇌전검황은 푸른빛을 발하며 덮쳐 오는 묵혼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2장은 검풍, 검기와 검풍은 검강과 달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 검강이 가장 강하나 눈에 보이기에 막을 시간적 여유가 있고, 검기는 그 위력이 약하기에 내 호신강 기를 뚫지 못한다. 하지만 검풍은 보이지도 않으면서 그 위력은 강기에 떨어진다고 하나 그래도 엄청나지……. 대신 검강보다 속도가 떨어진다는 데 약점이 있지. 이 녀석이 지금 뭘 하려는지 알겠다.’

생각이 정리되자 그는 지체 없이 몸을 오른편으로 꺾으며 왼손으로 장풍을 발사하며 그 반탄력으로 더욱 속도를 내어 사지(死地)라고 생각되는 지점에서 빠져나 왔다. 이때 묵혼이 따라오며 그를 괴롭히자 그는 다시 묵혼을 향해 검을 던지며 외쳤다.

““비룡세!”

뇌전검황은 땅에 내려서면서 옆의 풀줄기를 뽑아 들고 또 외쳤다.

“묵룡세!”

뇌전검황이 휘두른 풀줄기에서 수십 가닥의 강기들이 묵향을 향해 날아갔다. 묵향은 그 강기를 피해 옆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는 뇌전검황을 향해 오른손을 뻗 었다.

“1장 5절, 박(縛).”

곧이어 왼손을 뻗었다.

“2장 2절, 파황풍.”

뇌전검황은 묵향의 말을 듣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또다시 새로운 초식이 나왔군. 도대체 뭔지 모르지만 일단 피하고 보자.’

생각은 찰나. 뇌전검황은 옆으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생각만 옆으로 몸을 날렸을 뿐 어떤 끈적끈적한 아교 같은 것에 몸이 완전히 갇힌 것처럼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뇌전검황은 대경했다.

“이것이 1장 5절 박인 모양이군. 정말 사로잡힌 것처럼 움직이는 것이 불가능하군. 하지만 이제 곧 검풍이 닥칠 텐데…….?

뇌전검황은 사력을 다해 외쳤다.

“풍룡세(風龍勢)!”

그와 동시에 뇌전검황이 가진 풀줄기에서 초식에 따라 엄청난 검기가 뿜어져 나왔고, 그 검기들이 주위를 가득 채우고 있던 기운과 부딪치며 폭발을 일으켰다. 그 리고 뇌전검황은 잠시 몸이 자유스러워짐을 느꼈다. 이때를 이용해 뇌전검황은 옆으로 5장가량 도약해 움직인 다음 외쳤다.

“백룡세(白龍勢)!”

이걸 본 묵향이 나직이 말했다.

“대단하시군요. 박을 뚫을 수 있는 고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묵향도 한가하게 말할 처지가 못 되었다. 1백 마리는 안 되겠지만 거의 그 정도는 될 것 같은 수많은 강기들이 뇌전검황의 몸에서 뿜어져 나와 사방으로 뻗 어 나가면서 유선형으로 움직여 약속이나 한 듯이 묵향에게로 날아왔기 때문이다.

“대단한 초식입니다. 1장 4절, 방.”

이들의 대결을 위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은 모두 다 손에 땀을 쥐었다. 묵향과 뇌전검황이 뭐라고 말을 하는 것 같았지만 뇌전검황의 목소리와는 달리 묵향의 목소 리는 들리지 않았다. 다만 뇌전검황이 외치는 목소리만 쩌렁쩌렁 계곡을 울리고 있었다. 이들의 대결은 정말 대단했다. 그들이 사용하는 대부분의 초식들이 강호에 서는 찾아보기 힘든 높은 수준의 무학이었고, 서로의 검기와 검강이 부딪치며 튕겨 나오는 강기의 회오리에 주변의 숲과 땅이 초토화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걸 보 고 여정(呂靜)이 사제들에게 말했다.

“잘 봐 두거라. 아버님께서 목숨을 걸고 우리들에게 보여 주시는 보배와도 같은 무공들이다. 아버님도 대단하시지만 저 사람도 대단하군.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예, 사형. 사부님께서 저토록 고생하시는 상대는 처음 봅니다. 저자의 능력은 정말 대단하군요.”

“무상검법이라길래 무슨 이름이 그렇게 대단한가 했더니 정말 보기 드문 검법입니다. 사부님의 10성에 이르는 창룡검법(張龍劍法)에 저 정도로 대적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기적입니다.”

“하지만 창룡검법은 익히기가 너무나 힘든 검법이다. 초식의 대부분이 검기나 검강을 주축으로 상대를 공격하기에 엄청난 공력이 필요하기 때문이지. 그래서 대 부분이 시작도 못 해 볼 정도고, 여태까지 그 검법을 10성까지 익히신 분은 본문에서 두 분밖에 없으셨어. 너무나도 난해한 검법인데 그걸 막아 내다니……. 저자 의 검법도 대단하군.”

말을 나누면서도 초가 주위에 모인 사람들의 눈은 두 사람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들의 검법을 조금이라도 기억한다면 다음에 이 검법을 사용하는 사람들 과 만났을 때 대단한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둘의 검법은 일정한 틀을 가진 것이 아니라 강기의 발사를 주 무기로 하고 있었기에 근거리에 서 정신없이 공격하여 강기를 발사하지 못하도록 막는 외에 뾰족한 수가 없음을 모두 느끼고 있었다. 이때 두 사람의 비무는 끝을 향해 나가고 있었다.

묵향의 공격을 피한 뇌전검황은 묵향의 3장 거리로 순간적으로 다가가며 외쳤다.

“뇌룡세(雷龍勢)!”

뇌전검황의 검에서는 번개와 같은 강기가 뻗어 나오며 사방을 뒤덮었다. 묵향이 시전하는 망강(剛)과도 비슷했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좀 더 강기의 두께가 두껍 고 강력하지만 안개와 같이 촘촘하지는 않고 빈틈이 많은, 그러니까 방어 위주의 망강보다는 근거리에 다수의 적을 공격하기 위한 초식인 모양이었다. 묵향은 뇌전 과 같은 강기가 뇌전검황의 몸에서 뻗어 나오자 뒤로 후퇴하지 않고 뇌전검황의 몸으로 뛰어 들어갔다.

“4장 3절, 망강. 3장 1절, 어검.”

묵혼에서 뻗어 나온 망강과 패왕검에서 뻗어 나온 뇌전과 같은 강기가 부딪치며 엄청난 소음과 반탄력을 뿜어냈다. 하지만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묵향은 더욱 접 근해 들어가며 푸른색으로 이글거리는 묵혼으로 너무나 강해서 망강을 뚫고 들어오는 강기들을 잘라 내며 뇌전검황에게 접근했다. 그와 동시에 강기를 잘라 내기 위해 밑으로 내려갔던 검을 위로 쳐올렸다. 뇌전검황은 대경하며 외쳤다.

“묵룡세(墨龍勢)…….”

하지만 뇌전검황의 초식은 이어지지 못했다. 묵향의 검은 너무나도 빨리 뇌전검황의 몸 쪽으로 파고들었다. 뇌전검황은 초식을 펼칠 시간이 없자 최대한 검에 기 를 주입하여 묵혼을 막았다. 그와 묵혼과 패왕검이 부딪침과 동시에 묵향은 그 반탄력을 이용하여 뇌전검황의 다리를 베어 나갔다. 뇌전검황은 뒤로 물러나며 묵향 의 목을 찔러 왔다. 묵향은 피하며 뇌전검황의 팔을 베어 나갔다.

이런 식으로 물고 물리는 근접전이 펼쳐졌다. 이런 난투극이 벌어지면 뛰어난 감각과 시력, 순간적인 판단력, 빠른 검 놀림과 경공술이 필요하다. 이제 더 이상의 초식은 필요치 않았다. 하지만 뇌전검황은 초식을 사용하지 못함으로 인해서 어검술을 사용하는 묵향에 비해 상당한 불리함을 안고 있었다. 대신 뇌전검황의 패왕 검은 보검 중의 보검이라 기를 주입한 상태만으로 묵향의 어검술을 막아 내고 있는 것이다. 만약 이 검이 묵혼과 같은 일반적인 정강으로 만든 검이었다면 벌써 검 과 함께 몸이 두 토막이 났을 것이다.

“이 상태로는 내가 불리해. 약간의 기회만 주어진다면 몸을 뒤로 빼면서 비룡세를 펼칠 수 있는데…….?

그 약간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뇌전검황은 왼손을 이용해서 허리에 차고 있는 검집을 뽑아냈다. 이 검집으로는 어검술을 막을 수 없지만 패왕검으로 어검술을 막고 있는 사이 이걸로 상대의 몸에 치명타를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뇌전검황의 오른손과 왼손은 따로 놀기 시작했다. 오른손의 패왕검으로 묵 혼을 막고 왼손에 쥔 칼집을 움직이며 외쳤다.

“뇌룡세!”

그와 동시에 칼집에서 번개와 같은 강기가 뻗어 나오기 시작하자 묵향은 급히 왼손을 앞으로 들이밀었다.

“4장 4절, 수강(守剛).”

그러자 묵향의 왼손이 팔뚝까지 푸른 강기에 뒤덮였다. 그리고 왼손을 강기가 뻗어 나오는 뇌전검황의 검집을 향해 내밀었다. 묵향의 손과 뇌전의 검강이 부딪치 자 불꽃이 일어났다. 묵향은 더욱 손을 뻗어 검집을 움켜쥐었다. 검집이 잡히자 묵향은 나직이 말했다.

“2장 3절, 측파풍(側破風).”

그와 동시에 묵향이 쥐고 있던 검집에서 검풍이 일어나며 뇌전검황을 강타했다. 순간적으로 검집을 쥐고 있던 손이 팔목까지 터져 나갔다. 뇌전검황은 엄청난 충 격에서 중심을 잡으려고 노력했으나 허사였다. 검을 중심으로 측면으로 강렬하게 뻗은 검풍의 회오리가 뇌전검황의 왼손 손목까지 피 떡을 만들고도 모자라 호신 강기를 파괴하면서 너무나 강렬한 타격을 입혔던 것이다. 뇌전검황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튕겨 나가자 묵향도 따라서 튀어 오르며 쫓아갔다. 뇌전검황이 회전하며 중심을 잡기도 전에 번쩍하며 묵혼이 푸른빛을 토해 냈다.

그걸로 끝이었다. 쓰러진 뇌전검황의 옷은 아래에서 위로 완전히 찢어져 있었고, 바지는 동강이 나서 아래로 내려가 버려 성기(性器)까지 드러나 있었다. 자세히 보면 몸의 아래위로 붉은 선(線)이 그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뿐 그 외에는 거의 외상이 보이지 않았다. 뇌전검황이 쓰러지자 제자들이 아우성치며 위에서부터 달려 내려왔다. 그들은 검을 뽑아 묵향을 막으며 사부를 보호하려고 했다. 이때 뇌전검황이 그들을 제지하며 묵향에게 물었다.

“대단한 실력이군, 젊은이. 자네가 봐주지 않았다면…, 나는 내 실력을 제대로 펼쳐 보기도 힘들었을 거야……. 자네의 이름을 알려 줄 수 있나?”

“묵혼지주(墨魂之主)라 불러 주십시오.”

“이름을 알려 주기 싫다면 할 수 없지. 그렇다면 묵혼지주, 내 제자들을 해치지 말아 주게…….”

“알겠습니다.”

묵향으로부터 만족할 만한 답을 얻자 뇌전검황은 제자들에게 말했다.

“내 유언은 알고 있을 거다. 만약 너희들 중에서 복수하고 싶은 자가 있다면 나 정도의 고수가 다섯 명이 모이기 전에는 꿈도 꾸지 마라. 맹세할 수 있느냐?” “제자, 맹세하겠습니다.”

“문파를 잘 다스려 나가기를 바란다. 정아, 네게 문파를 맡기니 부탁한다.”

“명심하겠습니다, 아버님.”

“현경(玄境)의 고수와 겨뤄 보다니 정말… 영광…, 큭!”

그러면서 뇌전검황의 몸은 세로로 두 토막이 났다. 뇌전검황은 심후한 내력으로 두 토막이 나려는 몸뚱이를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죽음 직전 에 최대한 긁어모았던 내력이 고갈되자 몸이 두 토막이 나면서 그는 세상을 떠났다. 뇌전검황이 처참한 모습으로 죽자 제자들 중에서 가장 성질이 팔팔한 곽삼(郭 杉)이 검을 뽑아 들고 나서며 외쳤다.

“이런 죽일놈,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는데…….”

그와 동시에 그는 묵향을 향해 검을 찔러 들어왔다. 곽삼의 움직임에 네 명의 제자가 동조하며 나섰다. 그들도 곽삼의 움직임에 맞춰 검을 뽑으며 묵향을 향해 공 격을 가했다. 하지만 그들의 의욕만 앞섰을 뿐 묵향이 검을 휘두르자 검과 함께 토막이 나서 좌우로 쓰러졌다. 묵향에게 제자들이 죽임을 당하자 나머지 제자들도 이성을 잃고 검을 빼 들며 묵향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 모양을 지켜보던 여정(呂)이 서진(徐眞)에게 일렀다.

“너는 빨리 패왕검을 가지고 이곳을 벗어나서 사정을 동문들에게 알려라.”

“하지만 대사형…….”

“잔소리 말고 빨리 도망가라. 아버님을 격패시킨 현경의 고수다. 우리들이 덤빈다고 될 상대가 아니야. 이건 모두의 생사가 달린 일이다. 여민(呂敏)이를 나처럼 잘 도와주기 바란다. 빨리 가거라.”

그러자 서진은 최대한 공력을 돋우어 산 아래로 도망쳤다. 그걸 본 묵향이 외쳤다.

“죽여라.”

그러자 여태까지 묵묵히 위에서 지켜보던 흑의 복면인들 중에 두 명이 쏜살같이 쫓아 내려갔다. 서진이 도망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위에 올라왔던 모든 제자들은 죽임을 당했다. 마지막으로 죽은 것은 여정이었다. 그는 뇌전검황의 수제자답게 대단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묵향과 같은 초고수를 상대하기에는 미숙했던 것 이다. 묵향은 모두를 다 죽인 후 초가로 올라갔다. 그곳에는 청의 동자와 홍의 소녀가 떨며 서 있었다. 그것을 보고 묵향은 부드럽게 말했다.

“얘야, 너도 노인의 제자냐?”

“아뇨, 사손(師孫)입니다.”

청의 동자가 겁에 질렸으면서도 애써 당당히 말하는 모습을 보면서 묵향은 미소를 지었다.

“나중에 꽤 그럴듯한 녀석이 되겠군. 너는?”

그러자 홍의 소녀가 말했다.

“저는 시녑니다. 음식과 차를 장만해 드리죠.”

묵향은 이번에는 정량의 패거리에게 말했다.

“미안하군, 내가 죽어 줬어야 자네들이 현상금을 타는데…….”

그들은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하늘을 몰라 뵙고 헛소리를 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그건 그렇고 이 일을 어쩐다…….?”

이때 밑에서 두 명의 흑의 복면인이 달려 올라왔다. 그들을 보고 묵향이 싸늘하게 외쳤다.

“어떻게 되었느냐?”

“죄송합니다, 도망쳤습니다. 대단한 실력자였습니다. 처음에 기습당해 암기를 맞는 바람에 도저히 그를 없앨 수 없었습니다.”

“그 정도 실력을 가지고 나를 돕겠다고 오다니, 멍청한 자식들! 이만 돌아가자.”

“하지만 저들은?”

“닥쳐!”

묵향은 정량의 패거리를 향해 부드럽게 말했다.

“이번에는 내가 약속을 지키지 못해 자네들만 헛걸음을 했군. 하지만 나중에 혹시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니 너무 낙심하지 말게. 미안하지만 혹시 시간이 나거든 나에게 현상금을 건 사실에 대해 문책을 하러 무당파와 태진문에 언젠가 들를 것이라고 전해 주게나. 지금은 시간이 없어 그냥 가지만, 나중에 다시 강호에 나오면 꼭 한 번 갈 테니까 말이야. 전해 줄 수 있겠나?”

“전해 드립죠.”

“그럼 수고비로 이걸 받게. 은화 네 냥일세. 이 정도면 수고비로는 충분하겠지. 일부러 시간 내서 갈 필요는 없고, 시간이 얼마나 흐르든지 그 근처에 들를 일이 있 거든 전해 주게나. 만약 내가 먼저 가도 그 녀석들이 재수 없어 그런 거니 자네들 탓은 하지 않을 걸세.”

“명심합지요.”

묵향은 청의 동자에게로 돌아서서 말했다.

“다음에 훌륭한 고수가 되면 만나자꾸나. 그럼 잘 있거라.”

그리고는 흑의 복면인들을 바라보았다.

“돌아가자.”

묵향의 모습이 사라지자마자 정량이 한숨을 쉬면서 그 동료들에게 말했다.

“휴, 아까 그 젊은이가 도망쳤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여기서 목이 날아갈 뻔했군.”

그러자 뚱뚱한 남자가 물었다.

“그는 그렇게 부드럽게 말했는데, 왜 대형은 그런 말씀을 하시오?”

“뇌전검황만 죽였다면 상관없었겠지만, 그 제자들까지 죽여 놨으니 완전히 입을 막기 위해서 다 죽여야 하는 거야. 하지만 한 명이 살아서 도망쳤으니, 한 명이 살 아 있으나 일곱 명이 살아 있으나 매한가지지. 실지 우리들로서는 그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으니까, 그러니까 목숨을 건진 거야. 빨리 떠나자. 혹시나 마음이 변해 서 돌아올지도 모르니까.”

그 말과 동시에 그들은 오두막을 떠났다.

서진(徐眞)은 추격자들을 기습해 격퇴하고 급히 산을 내려갔다. 그가 낭패한 몰골로 경공을 최대한 전개하여 달려오자 문을 지키는 무사들이 놀라서 물었다. “공자님, 어쩐 일이십니까?”

“빨리 비상을 걸어라. 습격에 대비해, 빨리! 그리고 여민(呂) 사형은 돌아오셨냐?”

“예, 오늘 아침에 돌아오셨습니다. 금화당에 계실 겁니다.”

그러자 서진은 금화당으로 달려갔다. 금화당은 각 동문들 중의 고수들이 기거하는 곳으로 제법 큼직한 방들이 많이 있는 집이다. 이들보다 실력이 떨어지는 자들 이 은화당의 작은 방에서, 그보다 떨어지는 자들은 동화당의 큰 방에서 여러 명이 집단생활을 한다. 그는 금화당으로 뛰어 들어가 여민이 기거하는 방문을 급히 열 었다. 여민은 몰래 밖으로 나가 마신 술기운 때문인지 아직도 술 냄새를 풍기며 자고 있었다. 그는 급히 여민을 흔들어 깨웠다.

“사형, 큰일 났습니다. 사부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그 말을 들은 여민은 술이 완전히 깬 듯 벌떡 일어나 눈을 둥그렇게 떴다.

“몸이 안 좋으시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모두 오두막에 있나?”

그러면서 그는 일어나 급히 옷을 입기 시작했다.

“그게 아닙니다. 비무에 져서 돌아가셨습니다.”

“비무에 지셨다고? 상대는 누구냐?”

“묵혼지주라 칭하는 자입니다. 엄청난 고수였습니다. 사부님이 임종시에 ‘현경의 고수와 겨뤄서 영광’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부님은 어떤 일이 있어도 복수를 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복수를 하지 말라고? 어떻게 복수를 안 할 수 있단 말이냐!”

“모두 복수하겠다고 달려들었다가 죽었습니다. 그 한명한테요. 상상하기도 힘든 고수입니다. 어쨌건 전설로만 듣던 현경의 고숩니다. 우선 그자가 이리로 쳐들어 올 수도 있으니 대비부터 해야 합니다.”

“형님은?”

“대사형도 돌아가셨습니다.”

“형님까지? 음…….”

여민은 침울한 표정으로 한탄했다.

“예, 대사형께서 사형을 장문인으로 임명한다는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대사형이 돌아가시는 모습을 저는 보지 못했지만 대사형은 동문들과 묵혼지주의 싸움이 시 작되자 저보고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사부님께서 물려주신 패왕검을 적에게 넘겨줄 수는 없다고 하시면서요.”

“크흑…, 청량(晴 있느냐?”

그러자 밖에서 답하는 소리가 들렸다.

“예.”

“모든 동문들을 모아서 적의 내습에 대비하라고 일러라.”

“모두 대비하고 있습니다. 몇 명 추려서 산 쪽으로 보냈는데 아무런 동정이 없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자네가 열 명 정도 이끌고 산에 올라가 동정을 살펴보시게.”

“알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아버님의 유언과 이 일이 일어난 사정을 말해 봐라.”

“예, 어제 일이었습니다…….”

서진은 여민에게 모든 경과를 보고했다. 그의 말이 끝나자 여민이 말했다.

“아버님이 목숨을 걸고 싶을 정도로 높은 현경의 경지까지 올라간 고수다. 너는 바깥일에는 신경 쓰지 말고 기억나는 대로 아버님과 그 자가 나눈 대화를 기록해 라. 아버님이 본문의 무공에 한계가 있다고 언제나 말씀하셨는데, 그 대화가 그 돌파구를 제공할 가능성도 있다.”

“알겠습니다.”

두 시진 정도가 지나자 산 위로 올라갔던 정찰조가 돌아왔다. 그들은 차마 시체를 들고 올 생각은 못하고 문파로 돌아오고 있던 홍의 소녀 미령()과 청의 동자 이숙(李淑)만을 데려왔다. 그들의 이야기도 서진이 한 말과 일치했다. 여민은 미령과 이숙에게도 그들이 주고받은 대화를 기록하라고 일렀다. 미령과 이숙이 자신 의 방으로 가는 것을 보며 청량에게 말했다.

“자네는 빨리 가서 장의사와 의생들을 모셔 오게나. 모든 시신들이 그렇게 토막이 나 있다면 어쨌건 살들을 붙이고 꿰매야 할 것 아닌가? 그래야 어머님도 마지막 으로 가시는 아버님의 시신을 한 번이라도 뵐 수 있을 테니까 말일세. 자네가 수고해 주게나.”

“알겠습니다. 다녀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