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1권 2화 – 운명의 시작
운명의 시작
마교의 교주는 장로급 이상이 모두 모이는 1년에 한 번뿐인 정기집회(定期集會)에서 갑자기 특이한 안건을 내놨다. 현 마교 교주인 흑마대제(黑魔帝) 한중길(韓 中吉)은 마의 극한이라 부를 수 있는 극마의 경지에 이른 고수였기에 설핏 보아서는 겨우 2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신체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충분히 마기를 숨길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마기를 은은히 뿜어내는 것을 좋아했다. 그가 익힌 자전마공(紫電魔功)은 온몸에 은은한 보라색을 띠게 만들었기에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괴 기함을 느끼게 했다.
“본교는 사파 최대의 방파로서 2만 명에 가까운 고수를 보유하고 있소. 하지만 각 지단에 파견되어 있는 하수들을 제외하고 그런대로 쓸 만한 고수들만 든다면 1 만 명도 되지 않소. 그중에서도 정예를 가려 뽑는다면 5천 명이 될까 말까 하는 형편이니 현재 정파의 쓰레기들에 비했을 때 언제나 열세에 몰리는 것이오. 뭐 좋은 방법이 없겠소?”
그러자 삼면인마(三面人魔) 소무면(簫無面) 장로가 이의를 제기했다. 그는 마교 서열 15위의 노고수(高手)로서 마교의 5대 무력 단체라 할 수 있는 자성만마대 (紫星萬魔隊)를 책임지고 있었다. 그의 호가 말해 주듯 그는 세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다. 정파와의 싸움에서는 미친 듯한 광소(笑)와 잔인한 손속, 그리고 피에 굶주린 광기(狂氣)를 보여 주며, 무림인이 아닌 일반 백성들에게는 활불(活佛)과 같은 인자함을, 교내(敎內)에서는 엄격하고 치밀하며 자상한 면모를 보여 줬기에 붙은 명호였다. 그는 교내 많은 수하들에게 인기 있는 노고수였다.
“정파의 잡것들을 물리치는 데는 현재의 힘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왜 고수가 없다고 탓하십니까?”
소 장로의 말에 대해 교주를 대신해 적미염(赤眉艶) 왕자영影장로가 답을 했다. 늘씬하고도 고혹적인 다리를 보라는 듯이 드러낸 선정적인 옷차림을 즐기 는 그녀는 여자로서는 지극히 올라서기 힘든 위치인 장로 서열 3위, 마교 서열 6위에 올라선 여인이었다. 그녀는 오랜 시간 익혀 온 적혈수라마공(赤血修羅魔功) 탓 에 긴 눈썹의 끝부분이 약간 붉은빛을 띠고 있다. 그녀는 치밀한 두뇌의 소유자로서 무공도 뛰어났지만 그 심계(心界)가 깊어 교주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었다. 물 론 침실에서도 말이다. 그 엄청난 내공을 이용한 주안술(珠顔術) 덕분에 20대 중반 정도의 요염한 미모를 유지하고 있는 그녀는 현재 교내의 정보기관이라 할 수 있 는 삼비대(三秘隊)의 수장(首長)이다.
“험, 그 이유는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직 미미한 단계이지만 아수혈교(阿修血敎)의 움직임이 포착되었기 때문입니다.”
아수혈교라는 말은 모두 처음 들어 보는지라 수석장로인 마천검귀(魔劍鬼) 여절파(呂切破)가 물었다.
“아수혈교가 뭐요?”
왕자영 장로는 공손하게 대답했다.
“혈교(血敎)의 후신입니다. 이름만 바꾼 거지요.”
80년 전 혈교와의 치열했던 전투를 생각하며 좌중은 조용히 신음을 흘렸다.
“……”
그러자 왕자영 장로가 말을 이었다.
“정파와의 대결이라면 큰 문제가 없지만 거기에 아수혈교가 끼어든다면 만만치 않습니다. 저 옛날 아수혈교의 전신인 혈교(血敎)와의 전투를 잊으셨습니까? 그때 혈교와 정면충돌하여 본교 전력(戰力)의 4할이 무너졌었습니다. 본교는 그 타격을 회복하는 데 자그마치 50년이라는 세월을 허비했습니다. 그리고 암흑마교의 움 직임도 생각해야 합니다. 암흑마교의 움직임은 잡히는 것이 없지만 그래도 조심은 하는 것이 좋겠지요.”
혈교는 강시나 실혼인 등을 제작하여 상대에 비해 떨어지는 무공을 각종 사이(邪異)한 대법이나 기술로써 보완하는 무리들로서, 그 당시 먼저 이들의 움직임을 처 음 포착한 것은 정파의 첩보 기관이었다. 하지만 인간의 힘을 넘어서는 막강한 파괴력을 자랑하는 강시라든지 아니면 사이한 대법 등을 파해하려면 보통의 무사들 로는 힘에 부쳤다. 최소한 1갑자 이상의 내공을 갖춘 내가고수(內家高手)가 아니라면 강시와 대결을 벌여 그들에게 타격을 입힌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리고 적의 각종 대법에 걸리지 않으려면 웅후한 내력을 가지고 있어야 했으므로 정파가 꾀를 부렸던 것이다.
혈교와의 정면충돌을 견딜 수 있는 대량의 절정고수들을 보유한 정도 문파가 없었기에 무림맹 회의에서 슬쩍 마교에게 그물을 씌워 그들과 먼저 충돌하게 만들었 다. 그때 정파가 옆에서 인심 쓰는 척하며 도와줬지만 마교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아마 정파와 마교가 연합 전선을 펼친 것은 이때가 처음일 것이다. 이때 정파에서는 초절정고수들만을 파견해서 도왔다. 그 전투 후 정파에서는 참가자들에게 함 구령(緘令)을 내렸고, 마교에서도 그 일을 외부에 선전하지 않았으므로 마교와 정파의 연합 전선은 영원히 묻혀진 사건이었다. 만약 그때 정파가 도와주지 않았 다면 마교의 피해는 더욱 컸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마교의 사생아(私生兒)라고 볼 수 있는 암흑마교가 있는데, 이는 혈교와의 전투 후에 혈교에서 입수한 각종 서적들을 바탕으로 “우리도 이런 사이 한 대법을 사용합시다”하고 외쳤던 집단이다. 그만큼 혈교가 사용했던 각종 기술들은 마교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 줬던 것이다. 이 집단의 우두머리였던 부교 주 장인걸은 교주가 그들의 제안을 묵살하자 자신의 추종자들을 이끌고 노획한 서적들을 가지고 유유히 사라졌다. 그 후 그는 명호를 흑살마제(黑殺魔帝)로 바꾸고 암흑마교(暗黑魔敎)를 창단했다. 암흑마교는 마교의 무공과 혈교의 사이함이 합쳐진 특이한 단체가 되었다.
그녀의 말을 듣고 아수검인(阿修劍이 다.
장로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는 마교 서열 14위로 염왕대(閻王隊)의 대장이었기에 발언권이 꽤 강한 인물이었
“새로운 정예 고수들을 좀 더 키운다면 어떻겠습니까?”
그 말에 교주가 약간의 흥미를 보였다.
“고수를 키우고는 싶지만, 어떤 방법이 좋겠소?”
“각 지단에 연락하여 열 살이 되지 않은 기재들을 대량으로 납치하여 교육시키는 것이 좋겠습니다. 너무 많은 아이들이 없어지면 관(官)이나 정파에서 눈치를 챌 지도 모르니 3천 명 정도만 납치하면 어떻겠습니까?”
이 장로의 말에 정면으로 반대하며 이의를 제기한 사람은 삼면인마(三面人魔) 소무면(簫無面) 장로였다.
“여태까지 본교에서 태어나는 아이들 외에 보통 1년에 3백 명 정도를 납치해다가 전사로 만들어 쓰고 있는데, 갑자기 그 열 배인 3천 명이라니? 그 많은 수를 납치 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들을 어디서 교육시킨단 말입니까?”
그러자 왕자영 장로가 곱게 미소 지으며 이청 장로 대신 답했다.
“그건 제가 대답을 하도록 하죠. 실상 3천 명을 데려왔다 하더라도 초고수로 키운다면 초기 단계 내공을 쌓는 과정에서 최소한 1천 명 정도는 잃는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거기에 각종 무공을 수련시키다 보면 그중에서 잘해야 5백 명 정도 쓸 만한 인재를 뽑아 낼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 실상 3천 명이나 되는 식 구를 가르칠 훈련장은 필요 없습니다. 어린애 3천 명이 주거할 허름한 숙소를 만들어 그들에게 내공 훈련을 시키고, 그사이에 2천 명 정도가 훈련할 수 있는 수련장 을 만들면 됩니다. 거기서 키운 5백 명 정도는 현재 있는 수련장만으로도 상승무공의 교육이 충분할 겁니다.”
그녀의 말을 듣고 교주는 상당한 흥미를 느끼는 듯했다.
“듣고 보니 그 말에도 일리는 있소. 그렇다면 외총관, 아이들은 언제까지 준비될 수 있겠소?”
“그래도 좀 괜찮은 애들을 뽑아 와야 하니까 다섯 달은 걸립니다. 통보하여 납치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데… 이리로 쥐도 새도 모르게 데리고 오는 것이 문젭 니다.”
“그건 외총관이 알아서 처리하시오.”
“존명”
“이번 훈련을 진행할 훈련장 건설의 총감독은 소무면 장로가 수고해 주시오.”
“존명.”
“훈련은 이청 장로가 책임지고 해 주시오. 이번에 키울 고수들의 능력에 따라 본교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생각하고 힘써 주시오.”
“존명.”
“그리고…, 내 직속의 암살대는 있지만 이들로는 좀 모자란다는 생각이 드니까 새로운 암살자들을 추가로 50명 정도 만들었으면 좋겠소. 그들을 흑살대(黑殺隊) 라고 이름 짓고, 누구의 휘하에 두는 것이 좋을까…….”
그러자 모든 장로들의 눈에 조금씩 갈망과 희망이 떠올랐다. 교주가 직접 지휘해서 만든 단체는 최정예일 것이 분명했고, 그들이 자신의 밑에 배속된다면 그만큼 자신의 입지도 넓어지기 때문이었다. 좌중을 한번 둘러본 후에 교주는 입을 열었다.
“그렇군, 내총관이 이들을 지휘하는 것이 좋겠어. 그리고 나머지는 능력이나 그때의 상황을 봐서 결정하기로 하지.”
회의가 끝난 후 교주는 회의실에서 떠나가는 고수들 중에서 삼비대의 수장 왕자영 장로를 따로 불렀다.
“아수혈교의 총단은 알아냈나?”
“아직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세력이 점차적으로 잡히고 있습니다. 그들도 현재 세력을 키워 나가는 형편이기 때문에 아주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 어서 정보 수집이 힘듭니다.”
“그들의 준동은 언제쯤이라고 생각하시오?”
“빨라도 10년 후 정도?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암흑마교는?”
“그들의 움직임도 쫓고 있지만 아직까지 이렇다 할..
“아수혈교와 암흑마교가 연합할 가능성은 없나?”
“거의 없지만 혹시 모르는 일입니다. 그에 대비해서 연구 조사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큰 문제는 없다고? 참! 정파 녀석들은 그들의 움직임을 알고 있나?”
“아마 무림 최대의 정보 집단이라는 개방(쾬幇)이나 무영문(無影門)에서는 얼마간 알지도 모르지만, 글쎄요…, 저희도 아주 우연한 기회에 포착한 사실이 라……..”
“전에 정파 녀석들에게 당한 만큼 돌려주는 방법은 어때?”
“돌려준다 하심은?”
“아수혈교의 움직임을 자연스럽게 그들이 알게 해 주는 거야. 총단의 위치를 알려 주면 더욱 좋고.”
교주의 말에 그녀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흐음…, 어부지리(漁父之利)를 취하자는 말씀이십니까?”
“본교가 혈교와의 싸움에서 얼마나 큰 타격을 받았나? 우리끼리 싸울 것이 아니라 정파 녀석들에게도 사파의 무서움을 알게 해 줘야 한다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