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1권 25화 – 이상한 납치범과 인질

이상한 납치범과 인질

묵향이 길을 나선 후 5일째. 작은 마을이라 큰 식당은 한 곳밖에 없었다. 묵향이 그 식당으로 들어섰을 때 안에는 40여 명의 무림인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고, 여기 저기 빈 자리도 몇 개 있었다. 그는 살벌한 남자들을 피해 아름다운 네 명의 아가씨들이 식사를 하는 곳 옆에 자리를 잡았다. 두 명은 상전인 듯했고 두 명은 하녀들 인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가 들어오자 일제히 그를 바라보았다. 이때 점소이가 황급히 다가왔다.

“나으리, 이곳은 모두 예약됐으니 다른 식당을 이용해 주십시오.”

점소이는 사색이 되어 말했지만 묵향의 대답은 시큰둥했다.

“나는 간단히 식사만 하고 갈 거고, 빈 자리도 많은데 뭘 그렇게 호들갑을 떠나? 여기 만두 한 접시하고 고량주 한 병만 가져다주게.”

그러자 옆에 앉아 있던 덩치가 크고 키가 6척은 되어 보이는 사내가 묵향에게 다가오더니 시비를 걸었다.

“이봐, 밖으로 나가라는 말 못 들었어?”

“왜 자리가 있는데도 그러시오? 밥만 먹으면 나갈 텐데…….”

“이 녀석도 꼴에 검을 가진 무림인이라고 뻐기는 모양인데, 뼈다귀 몇 개 부러져 기어 나가고 싶지 않으면 지금 꺼지셔.”

““나가지 못하겠다면?”

“소원대로 해 주지.”

그러더니 그자는 묵향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묵향은 그자의 주먹을 손바닥을 이용해서 옆으로 살짝 흘리고 가까이 다가온 그의 단전으로 주먹을 되돌려 줬다. 사 내는 엄청난 충격을 단전에 받자 단전을 감싸 쥐며 주저앉더니 입에 거품을 물고 기절해 버렸다.

“내 소원은 이거야. 조용히 밥을 먹게 해 달라는 거다.”

그러자 옆에 있던 얼굴에 면사를 드리운 여자가 차가운 목소리를 내뱉었다.

“저 녀석을 끌어내!”

그러자 주위에 앉아 있던 무사들이 일제히 일어서면서 칼을 뽑았다. 그와 동시에 묵향은 그 여인에게 전광석화처럼 다가갔고 동시에 혈도를 짚었다. 그리고는 비 수(首)를 꺼내 그녀의 목에 가져다 대고는 나지막이 말했다.

“모두 자리에 앉아. 안 그러면……

모두 그 비수가 검은 광택을 띠고 있는 대단히 훌륭한 보검이란 걸 알고 묵향의 말을 순순히 들었다. 묵향은 비수를 흔들면서 유쾌한 듯이 말했다.

“이게 제법 쓸 만하군. 사슴 고기 자르려고 만들라고 한건데 이렇게 위협하는 데도 괜찮군.”

그러자 그녀의 분노를 억누른 음성이 들려왔다.

“고인을 몰라 봤군요. 그 신법은 정말 대단하군요. 점혈 수법도 그렇고……. 탄지신통 같던데 소림 문하인가요? 본녀한테 이렇게 무례하게 굴고 편할 줄 알아요?” “시비는 누가 먼저 걸었는데 내 탓을 하지?”

묵향은 한껏 비꼬아 말하며 그 여자의 몸을 더듬었다. 여인은 끓어오르는 분노에 떨었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묵향은 그녀의 품속에서 찾아낸 것들을 살펴 봤다. 그 속에는 재미있는 모양의 암기 몇 개와 작은 비수, 옥으로 정교하게 다듬은 봉황이 그려진 명패가 있었는데, 「武(무)」라고 쓰여 있었다. 그 외에 푸른색과 붉 은색의 옥병도 있었는데, 묵향은 냄새를 맡아 봤다. 하나는 지독한 독이었고 또 하나는 그 해약이었다. 묵향은 그것들을 자신의 품속에 집어넣고 다시 뒤져 지갑을 찾아냈다. 그 속에는 다섯 냥짜리 은표 일곱 장과 열 냥짜리 은표 다섯 장이 들어 있었다. 그 외에 은화 스무 냥 정도도 나왔다.

“흐흐흐, 오늘은 재수가 좋군…….”

묵향은 그것들을 몽땅 다 품속에 넣었다. 그리고는 비수를 왼손으로 바꿔 쥐어 그녀의 목에 대고 오른손으로 젓가락을 집어서 탁자 위의 음식들을 먹기 시작했다. “쩝쩝, 맛이 괜찮군. 이 요리는 뭐라고 부르지?”

“이런, 네 녀석의 뼈를 갈아서 마시지 않는다면 내 성을 갈겠다.”

“쩝쩝…, 아마 힘들 거외다. 그렇게 말한 사람이 몇 되는데 아무도 성공한 사람이 없거든. 쩝쩝, 이것도 맛이 괜찮군. 내가 떠나고 나서 혈도 풀려고 고생하지 말고 그냥 기다리면 내일 아침쯤 풀릴 테니 그때 쫓아오시구려…, 쩝쩝.”

“흥, 네 녀석이 내일 아침까지 살 수 있을 줄 알았더냐?”

“쩝쩝, 아마 살 수 있을 거야. 내가 떠나면 수하들이 많으니 몇 명은 너를 지키고 나머지는 나를 죽이라고 보내겠지?”

“잘 아는군.”

“하지만 세상일은 그렇게 쉽게 되는 게 아냐.”

묵향은 품속을 뒤적거리더니 작은 흰색 병을 꺼냈다. 그 안에서 빨간 환약을 하나 꺼내 짐짓 황홀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냄새를 한번 쓱 맡았다.

“이게 뭔지 아냐?”

“본녀가 알게 뭐냐?”

“이건 환희천락환(歡喜天樂丸)이라는 거지. 아주 약효가 뛰어난데, 이 향긋한 약을 먹으면 뱃속이 시원해지다가 반 시진 정도 지나면 뱃속에서 열화가 피어오르 지. 풀 수 있는 해약은 거의 없고… 있다고 하더라도 너무 고생이 되니까, 그냥 옆에 잘생긴 남자들도 많으니 눈 딱 감고 쾌락을 즐기면 모든 게 해소되지. 네가 쾌락 을 즐기는 사이 이 몸은 멀리멀리 도망갈 테니……?”

묵향이 느긋하게 조롱하는 투로 말하자 여인은 분노가 치솟는지 몸을 가볍게 떨었다. 묵향은 느긋하게 음식을 집어 먹으면서 말했다.

“설마하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세상은 언제나 편하고 좋은 게 아니라니깐…….”

그러면서 묵향은 그녀의 코를 막았다. 여인은 입을 벌리지 않으려고 용을 쓰고 호흡을 참았지만, 혈도가 막혔기에 오랫동안 숨을 참을 수는 없었다. 사람이 숨을 쉬어야 살 수 있다는 변함없는 진리에 따라 그녀는 입을 벌리고야 말았다. 그러자 묵향은 그때를 놓치지 않고 약을 입에 집어넣고 내공을 이용해서 입속 깊이 밀어 넣었다. 그녀의 이마를 탁 치자 여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약은 뱃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약을 삼킨 여인은 너무 놀라서 까무라칠 지경이었다.

“쩝쩝…, 이 약을 해독하는 방법이 하나 있기는 있지.”

묵향은 품속에서 붓과 종이를 꺼내 무언가를 쓱쓱 썼다.

“이걸 가져다가 약효가 발작하기 전에 꼭꼭 씹어서 삼키면 되는데, 이때 웅담(熊膽)도 같이 먹으면 더 좋지. 이때 주의할 것은 약의 양이 조금이라도 틀리면 안 된 다는 거야. 잘 씹어서 먹으면 8할은 해독이 될 거고, 완전히 해독시키려면 하루에 한 번씩 두 번 더 복용하면 된다구. 이 시골구석에서 이것들을 구하려고 뛰어다니 자면 나를 잡으러 다닐 생각은 애당초 말아야 할걸… 아참! 혈도를 짚어 놓으면 쾌락을 즐기는 데 방해가 될 텐데 내가 깜빡했어.”

묵향은 여인의 혈도를 몇 군데 쳤다.

“약효가 날 때쯤 되어 혈도가 풀릴 테니 잘 즐기도록 하시게나. 그리고 너는 영 차가워서 말동무가 되지 않겠고……..

그와 동시에 묵향은 여인의 옆에 앉아 있던 여자를 잡았고 순식간에 혈도를 제압해 버렸다. 모두 그 수법의 빠르고 정확함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이 아이가 그럴듯한 것 같으니 인질로 데려가겠다. 그 와중에도 나를 추격해 귀찮게 하면 안 되니까……. 나중에 보내 줄 테니 걱정하지 마. 만약 나를 추격하면 이년의 무공을 폐해 창녀굴에 팔아넘길 테니 알아서 하라구.”

묵향은 그 여자를 왼손으로 잡고는 오른손에 든 비수로 목을 겨누면서 일어서서 식당을 나섰다.

“식사 대접 고마웠어. 아주 맛있었어. 다음에 보자구, 하하하.”

묵향은 말에 올라타고는 쏜살같이 도망쳐 버렸다.

30리가량 죽자고 달리던 묵향은 이제 느긋하게 지친 말을 다독이면서 가기 시작했다. 앞쪽에 엎어 놨던 여자도 아혈은 풀어서 말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고 콧노 래를 흥얼거리며 길을 갔다. 아혈을 풀어주자 그 여자는 말했다.

“당신 정말 간이 크군요. 우리가 누군지 알아요?”

“누구긴, 지나가는 사람 등쳐먹는 칼잡이들이지. 정말이지 산적과 다를 바가 없다니까……. 그건 그렇고 너 이름은 뭐냐?”

“…..”

“이름을 말 안 하면 너도 그 약을 먹일 거야.”

그러자 그녀는 황급히 말했다.

“옥령인(玉零仁)이에요.”

“령인이라, 재미있는 이름이군. 이슬비 오는 날 태어난 모양이지?”

“예, 그래서 ‘零(령)’자를 붙이셨죠.”

3리 정도 더 가자 옥령인은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언니는 괜찮은 거예요?”

“언니라니?”

“아까 약을 먹였잖아요. 그 해독약은 확실한 거예요?”

묵향은 궁금하다는 듯이 물어보는 그녀의 얼굴을 한참 일그러진 얼굴로 바라보더니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박장대소했다.

“하하하, 해독이라구? 그 약은 춘약 같은 게 아냐. 내가 가지고 있던 내상을 고치는 약일뿐이지. 그냥 재미있을 거 같아서 먹였는데, 그녀가 진짜인 줄 아는 모양이 더군. 너도 알다시피 그 여자 성격이 아주 못된 것 같던데, 아니냐?”

“아니에요, 언니는 검술이 뛰어나서 남자를 좀 우습게 본다는 것 말고는 나무랄 데가 없죠. 그런데 그 약이 정말 내상약이에요?”

“하하하, 내상약이지.

좀 더 골려 주고 싶어서 쓰기로 이름난 한약재들을 골라서 적어 줬으니 그걸 꼭꼭 씹어서 먹으려면 혼백이 달아날걸. 지금쯤 약을 씹으면서 아예 쾌락을 즐기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겠지, 하하하.”

평소에 그렇게 냉정하고 침착한 언니가 그 지독하게 쓴 한약을 꼭꼭 씹어 먹으며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을 걸 생각하니 그녀의 얼굴에도 절로 미소가 어렸다. “그런 장난은 별로 좋지 않아요. 당신은 성격이 별로 좋지 않군요.”

“그럼, 그럼……. 나는 성격이 아주 안 좋지.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그런다구.”

“아무리 그래도 여자를 상대로 그렇게 치사한 장난을 칠 필요는 없잖아요.”

“나는 원래가 치사하니까 마음 쓰지 말라구. 그건 그렇고 너는 몇 살이냐?” “스물다섯이에요.”

“네 언니와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것 같던데?”

“고수의 눈은 못 속이겠군요. 언니는 서른여덟 살이에요.”

“그러면 결혼은 했을 텐데 왜 형부가 안 보이지? 덕분에 재미있게 놀았지만……. 형부가 있으면 같이 즐기면 그만이니 그걸 씹을 리가 있겠어?”

“언니는 아직 결혼하지 않았어요. 언니는 오직 검에만 뜻을 뒀고, 아버님에게 자신과 비무를 해서 이기는 상대와 결혼을 승낙하겠다고 했죠.”

“별로 무공이 대단한 것 같아 보이지 않던데?”

“언니를 그렇게 가볍게 다루는 분은 처음 봤어요. 여태까지 언니한테 청혼한 사람이 60명이 넘었는데, 모두 들것에 실려 나갔거든요.”

“그건 무공이 비슷한 상태에서 상대방은 신부로 맞아들일 생각이니까 살수를 쓰지 않았을 거고, 반대로 언니는 죽자고 살초를 펼쳤을 테니 자명한 사실이겠지. 여 자 하나 못 해치울 사람이 어디 있어?”

“당신은 그런 말 할 자격이 없어요. 비겁하게 암수를 써서 기선을 제압했잖아요.”

“나는 원래 비겁하다니까……. 그래도 비겁하다는 말은 듣기에 별로 좋지 않군.”

“그런 말을 들을 짓을 하니까 그렇죠.”

“아냐, 이왕이면 격조 높게 비열하다고 하라구. 하하하, 비겁이라든가, 치사하다든가……. 너무 격조가 떨어지는 것 같아.”

그녀는 쓴웃음을 지었다.

“정말 못 말릴 사람이군요.”

“흐흐, 그러고 보니 여자하고 함께 말 타는 것도 오랜만이군. 아주 기분이 좋은데…….”

그러면서 묵향은 노골적으로 옥령인의 가슴을 더듬었다.

“이러지 마세요.”

옥령인은 계속 부탁하다가 도저히 묵향이 들어주지 않자 급기야는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제야 묵향은 손을 뗐다.

“울지 마라. 손을 뗐는데도 계속 울면 아예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계속 만지겠다.”

그러자 옥령인은 황급히 울음을 멈췄다.

“제법 말을 잘 듣는군. 이제 화제를 바꿔서 같이 얘기나 나누면서 가자구. 긴 여행이 될 것 같으니까. 그리고 도망가지 않는다고 약속하면 혈도도 풀어 주지.” “약속해요.”

묵향이 혈도를 풀어 주자마자 옥령인은 공력을 있는 대로 끌어 모아 팔꿈치로 묵향의 명치에 한 대 먹인 후에 도망치려고 했다. 하지만 묵향의 명치는 돌덩어리마 냥 딱딱했고, 옥령인은 팔이 부서지는 듯한 아픔을 느끼며 비명을 질렀다.

“아악!”

“풀어 주자마자 도망칠 생각부터 하는군. 일단 첫 번째니 간단하게 벌을 주겠다. 혹시 들어 봤는지 모르겠군.”

“뭘요?”

“분근착골(粉筋鑿骨)이라고…….”

그 말과 동시에 묵향은 옥령인의 혈도 몇 군데를 쳤다. 옥령인의 몸속에서는 뚜둑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의지와 상관없이 비명이 터져 나왔다. 묵향은 잠시 후 분근 착골을 풀어 주었다.

“탈출을 시도할 때마다 시간은 두 배씩 늘어날 거야. 알아서 해.”

묵향이 빙글거리며 말하자 옥령인은 악에 받쳐서 소리 질렀다.

“비열한 자식!”

“하하하, 나한테는 더없이 좋은 찬사지. 난 원래 성격이 그렇다니까……. 좀 더 칭찬하라구!”

“…..”

납치범과 인질은 하루 이틀 지나자 점점 친숙해지며 급기야는 농담을 나누면서 길을 가게 되었다. 묵향은 첫 번째 마을에 묵으면서 그녀에게 말을 사 줬고, 그녀는 다음 날 아침 말을 타고 두 번째 탈출을 시도했다가 혼찌검이 나고는 아예 탈출을 포기했다. 묵향이 그녀에게 못되게 구는 것도 아니었고, 그녀 또한 계속해서 꽁할 정도로 성격이 여린 편도 아니었다. 묵향이 자주 농담을 걸면서 편하게 대하자 그녀도 자신의 처지를 망각하고 자연스레 동화되어 버린 것이다.

하루도 안 되어 옥령인은 묵향이 금을 잘 타고, 피리 또한 잘 불며 대단한 수준의 무공을 익힌 고수라는 걸 알게 되었다. 거기에 처음에 그녀의 가슴을 만지며 장난 을 좀 쳤을 뿐 그 후로는 그녀에게 무례한 짓을 하지 않았다. 도중에 여관에서 잠을 잘 때는 방 하나를 잡아 옥령인과 함께 잤지만, 그는 그녀의 혈도를 짚어 도망가 지 못하게 만든 후 운기조식을 하며 밤을 새웠다. 놀랍게도 이 납치범은 그녀가 봤을 때 1각도 잠을 자지 않았다. 이때 그녀는 그의 머리 위에 뿜어져 나온 기가 완전 히 뭉쳐 하나의 연꽃 형상이 되는 것을 보고 엄청난 고수라는 걸 알았던 것이다.

서로가 깔깔거리며 길을 가며 여러 가지 얘기를 나누다 보니 묵향은 이 옥령인이라는 여자가 대단히 총명하며, 각종 서적, 진법 등에 관련된 수많은 책을 읽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무식한 묵향으로서는 말발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

함께 길을 간 지 7일째 되는 날 옥령인이 여러 가지 얘기를 나누다가 묵향에게 갑자기 생각난 듯이 물었다.

“어디로 가는 길이에요?”

“친구 집에.”

“친구 집에 납치한 저를 데리고 가겠다는 거예요?”

잠시 생각하더니 묵향이 입을 열었다.

“이번엔 아주 골치 아픈 일 때문에 가는 거야. 그래서 한 가지 조언을 구하고자 하는데…, 네가 똑똑한 것 같아서 물어보는 거야.”

“뭔데요?”

“내 친구는 그런대로 재산도 많은 부자야. 하인들도 많지. 그런데 그 녀석이 사는 동네에는 또 다른 부잣집이 하나 더 있어. 이 둘은 서로 평소부터 사이가 좋지 못 했는데 급기야는 싸움이 벌어졌지. 일은 이쪽 집과 저쪽 집의 하인들이 서로 싸우면서 시작된 건데 그 일이 커지다 보니 나중에는 주인들이 각기 하인들을 거느리고 곡괭이를 들고 육박전을 벌인 거지.”

“정말 대단하군요. 그런 곳에 고수인 당신이 가면 한순간에 싸움이 끝나겠는데요? 그런데 뭘 물어봐요.”

“일이 그렇게 쉬운 게 아니라니까. 그래서 서로 싸우다가 이들은 각기 자신의 힘만 가지고는 상대를 완전히 항복시킬 수는 없다는 걸 알고 외부에 도움을 청했지.” “그래서 가는 게 당신인가요?”

“아니야, 먼저 간 사람들이 있다구. 그들은 서로 주변에 안면이 있는 지주들이나 무술 도장에 부탁해서 사람을 동원했고 정말 머리가 터지게 싸우고 있는데, 나는 이걸 중재해 주러 가는 거야.”

“당신이 한쪽 편을 들고 있다면 상대를 그 무공을 써서 단숨에 굴복시키면 되잖아요.”

“그런데 나를 보낸 사람은 서로가 체면을 세운 상태에서 서로서로 좋게 끝내라는 거였어.”

“그런 식으로 해결한다면 상당히 어렵겠군요. 그럼 당신은 어떻게 할 건지 생각해 봤어요?”

“내가 듣기로 그 상대방 집에 금지옥엽인 손녀가 하나 있는데, 그 애를 납치해서 그 애를 미끼로 협상을 하면…….”

“오히려 더욱 사태를 악화시킬 텐데요.”

“그게 문제라니까……. 저쪽에도 그렇게 많은 하인들의 머리가 깨졌으면 휴전을 하자고 나와야 하는데, 이 녀석들은 그럴 생각이 없는 모양이야.”

“좋은 방법이 없으면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먼저 그 지주와 그를 도와주는 지주들 집으로 몰래 들어가서 몽땅 목을 따 버릴 생각이야. 그러면 싸움이 종결되지 않을까 하는데…….”

“당신의 실력으로는 별로 어려울 것이 없겠지만, 그래도 모두 죽인다는 건 좀 심한 게 아닐까요? 갑자기 모두 살해당하면 그 아들들이 가만있지 않을 텐데요. 거기 에 관(官)에 신고라도 하면…….”

“그것도 문제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할 지경이야.”

“그들을 찾아가서 담판을 하는 건 어때요? 그러면서 실력을 보여 주는 거예요. 당신의 무예를 보면 상대의 생각이 달라질지도 모르죠.”

“상대방에게도 무예가 뛰어난 사람들이 많다구. 협공을 당하면 잘못하다간 내 목을 거기 두고 와야 할 판이야.”

“그래도 그 수밖에는 없잖아요. 중재자가 나서야지요. 당신이 도와줄 지주한테 하인을 보내어 ‘휴전하자’고 말하게 한다면, 당신이 도와줘야 할 지주가 자신의 체 면이 깎인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휴, 이래저래 내가 갈 수밖에 없나? 참, 네가 가면 안 될까? 예쁜 아가씨가 가서 중재를 해 주면 서로 좋아할 텐데…….”

“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걸요. 도중에 나설 명분이 없잖아요?”

“네 이름은 필요 없어. 너는 그런대로 말을 잘하니까, 내 이름을 빌려서 서로를 달래면 된다구. 내가 따라가서 너를 보호해 줄 테니 걱정 말고…….”

묵향이 산길로 접어들자 의아한 듯이 옥령인이 물었다.

“이 길로 가면 지주 집은 없는데요? 그 지주라는 사람이 산적을 겸업(業)하고 있나요?”

“아니야, 난 지금 절에 가는 길이야. 이리 가면 정량사라는 절이 있다고 아침에 여관 주인이 그러더군.”

묵향은 절에 도착하자 한 동자승을 불러 지석 스님을 만나 뵙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옥령인과 얘기를 나누며 잠시 기다리자 지석 스님이 나왔다. 놀랍게도 그는 20 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아름다운 여승(女僧)이었는데, 한창때는 대단한 미인이었을 것이 분명했다. 묵향은 그녀에게 합장을 했다. 그러자 지석 스님 도 함께 합장을 하며 물었다.

“중길(中)님이 보내서 오셨군요.”

“예, 이걸 전해 드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묵향은 교주에게서 받은 작은 꾸러미를 내밀었다.

“이걸 받을 이유는 없어요. 수고스러우시겠지만 돌려주세요.”

쌀쌀하게 말하고 그녀가 돌아서자 묵향이 여승에게 물었다.

“혹시 시주를 할 수 없을까요? 이건 한중길 님이 보내는 게 아니라 제가 시주를 하는 겁니다만….”

“시주야 안 받을 수 없죠.”

묵향은 품속에서 지갑을 꺼내어 그 안에 든 돈을 몽땅 다 지석 스님에게 전했다. 지석 스님은 그 액수에 약간 놀란 것 같았지만 다음순간 벌써 평정을 되찾고 있었 다. 오히려 안색이 변한 것은 옥령인이었다. 그녀가 다급히 말하려고 하자 묵향은 그녀의 아혈을 제압해서 말을 못하게 만들고는 능청스럽게 말했다.

“전해 드리는 물건은 그래도 성의가 있으니 좀 봐 주십시오.”

“아무리 시주를 많이 하셨다고 해도, 소승은 이미 받지 않겠다고 말씀 드렸는데요.”

“정녕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보시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지석 스님에게 이걸 보여드려야 한다는 지시를 받았으니까요. 만약 계속 거절하신다면 먼저 절을 불 태운 다음…….”

묵향이 악담을 시작하자 지석 스님의 안색이 핼쑥해졌다. 그와 동시에 묵향을 기습했다. 놀랍게도 그녀가 사용한 무공은 불문의 무학이 아니라 극성의 소수마공이 었다. 묵향은 그녀가 내력을 끌어 모으는 것을 느끼고 대비를 했지만 여승의 손에서 마공이 전개되자 상당히 놀랐다. 여승은 묵향이 교주가 특별히 보낸 만큼 상당 한 고수일 거라고 생각하고는 암암리에 진기를 끌어 모아 기습한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소수마공은 상대에게 치명타를 입힐 수 없었다. 그녀의 벽옥처럼 아련한 푸르스름한 광채를 내는 희디흰 손은 은은한 빛과 사이한 마기를 뿜어내며 묵향을 향해 뻗어 들어갔지만 묵향이 손으로 막자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묵향의 손에서는 푸르스름한 강기가 뻗어 나왔고, 그 강기의 막에 막혀 여승의 손 은 불꽃을 튕기며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었던 것이다. 여승은 묵향이 강기를 사용하자 의외라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떻게 현문의 강기를 익혔지?”

그녀는 소수마공을 응용하여 각종 권법과 장법을 사용했다. 그녀의 실력으로 보아 과거 마교에 있을 때는 대단한 수준의 고수였음에 틀림없었다. 그녀의 장법은 모두 다 소수마공을 통해 운용되었으므로 강력한 한기(氣)를 내포하고 있었다.

묵향은 본격적인 대결이 시작되자 바로 옥령인의 혈도를 찍어 뒤로 던져 버렸다. 옥령인은 갑자기 혈도가 잡혀 날아오르자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아혈까지 제 압된 상태라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그런데 자신의 몸이 땅에서 두 자 거리까지 맹렬하게 떨어져 내리다가 속도가 줄어들며 부드럽게 땅에 안착하자 속으로 한숨 을 쉬었다. 일단 위기가 지나자 옥령인은 두 고수의 대결을 열심히 지켜보았다.

그녀에게 그들이 사용하는 정밀한 무공의 뒤 수까지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은 없었지만, 한눈에도 여승은 마교의 상승무공을 사용하고 있었고, 또 자신을 납치하고 절에 불을 지르겠다고 협박하는 파렴치한 인간은 정파의 상승무공을 사용하는 걸 보고 온 정신이 뒤죽박죽 얽히기 시작했다. 저 둘의 신분이 무엇이기 에…….

옥령인은 파렴치한 납치범이 여승에게 지기를 간절히 염원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녀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여승의 무공은 가공할 만했으나 그 파렴치한 악당의 적수는 아니었다. 묵향은 강기를 제 마음대로 다루고 있었고, 시종 여승을 압도하다가 급기야는 여승의 혈도를 짚었다. 쓰러진 여승이 소리쳤다.

“날 죽여라.”

““당신은 이걸 보기만 하면 됩니다. 만약 안 보시겠다면 먼저 절에 불을 지르겠습니다. 그래도 안 보신다면 여기 있는 중들을 하나하나 고문을 하기 시작하겠습니 다. 그래도 안 된다면 한 명씩 죽이기 시작해서, 모두 다 죽이고 난 다음에도 안 된다면 또 다른 절을 한 군데 찾아갈 겁니다. 마침 저 옆 산에 절이 하나 더 있는 걸 봐 뒀거든요. 그쪽에서도 같은 일을 할 겁니다. 당신이 이걸 풀어서 보기 전까지 나는 계속 절을 불 지르고 중들을 고문한 다음 죽일 겁니다. 만약 스님께서 이걸 보 시지 않으시고 자살하신다면 저는 최소한 스무 군데 이상의 절을 완전히 박살 내 드리겠다고 약속하겠습니다. 누가 이기는지 한번 시작해 볼까요?”

하지만 지석 스님은 설마 불을 지르랴 싶었는지 그냥 가만히 있었다. 그런데 묵향이 절의 부엌으로 가서 불이 붙은 나무를 가지고 나오자 당황해서 소리쳤다. “이보게, 내가 졌네.”

“생각 잘하셨습니다. 여기 있습니다.”

묵향은 꾸러미를 내밀며 지석 스님의 혈도를 풀어 줬다. 묵향이 자신의 혈도를 완전히 풀어 줬다는 걸 안 지석 스님은 그의 자신감에 놀랐다.

“혈도를 완전히 다 풀었군.”

““예.”

“내가 다시 기습할 거라고는 생각해 보지 않았나?”

그러자 묵향은 싱긋 웃었다.

“그러면 다시 혈도를 제압하고 설득하면 되죠.”

지석 스님은 한숨을 쉬며 꾸러미를 풀었다.

“시주의 자신감과 무공은 정말 놀랍군. 한중길이라도 자네만큼은 안 될 걸세.”

“감사합니다.”

꾸러미 안에는 편지 하나와 몇 장의 은표가 들어 있었다. 여승은 편지를 다 읽고 나서 삼매진화(三昧眞火)로 편지를 불살랐다.

“그의 뜻은 잘 알겠다고 전해 주게. 여러 가지로 신경 써 줘서 고맙다는 말도 함께 전해 줬으면 고맙겠군.”

“소인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시주는 현경을 깨달은 모양이군. 축하하네.”

“현경이 아니라 탈마라고 하시는 것이 듣기에 좋습니다. 마인에게는……”

“시주는 마공보다는 현문의 정통 무공을 더욱 깊이 익힌 것 같은데, 그렇지 않나?”

“예, 제 신분상 할 수 없이 마공보다는 정파의 무공을 더 많이 배웠습니다.”

“그렇다면 현경이 맞군. 자네는 처음부터 마인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어. 물론 내공 자체는 마교의 정통 심법으로 익혔겠지만 그 무학의 근본은 정파의 것이 기 때문이지.”

“그럼 현경이라고 해 두죠.”

“참! 빨리 가서 동행의 혈도를 풀어 주게나. 뒤로 던진 것은 이해하겠는데, 혈도는 왜 짚었나?”

“소중한 인질이거든요. 도망가면 골치 아프기 때문입니다.”

지석 스님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반문했다.

“인질이라구?”

그녀가 보기에 도저히 인질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묵향이 혈도를 풀어 주자 옥령인은 옷을 털고 일어나며 날카롭게 쏘아 댔다.

“철두철미하군요. 그사이 내가 도망이라도 갈까 봐서 그랬어요?”

묵향은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그러엄, 여태까지 네 행동으로 봐서 너도 안 그렇다고는 못할걸.”

쓴웃음을 짓고 있는 지석 스님에게 작별을 고하고 두 사람은 돌아섰다.

“이제 여승에게 중길이란 분의 심부름을 해 준 모양이니 다음에는 어디로 갈 거예요?”

“내가 말 안 했던가? 친구 집에 볼일을 보러 간다구.”

“아, 그 화해 건이요? 당신은 해결사인가요?”

“그렇다고 볼 수 있지.”

“무슨 대답이 그래요?”

“골치 아픈 일은 모두 다 나한테 넘어오거든.”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말해 줄래요?”

“뭔데?”

“당신 사문(師門)은 어디에요? 그리고 사부님이 누구시죠?”

“그건 나중에 자연히 알게 될 거야.”

“그럼 내가 알아맞춰 볼게요.”

“좋을 대로…….”

“혹시 저 전설 속에 나오는 전진(專眞)의 제자가 아니세요?”

“왜 그렇게 생각했지?”

“우선 당신이 사용하는 무공은 모두 현문의 초상승무공이죠. 무당이나 점창, 청성, 종남 등 수많은 현문의 명가들이 있지만 당신만큼 강기를 다룰 수 있는 경지에 오른 사람은 없어요. 그리고 비뚤어진 성격에 한 번 한다면 물불을 가리지 않죠. 그건 정파의 성격에는 벗어나니…, 자연 떠오르는 문파는 전설의 전진 문파밖에 없 죠. 전진 문파는 무공에 있어 꼭 정파의 방식을 고집하지 않고 각종 사파 무공의 장단점을 파악하여 그중 장점을 채택하여 배워 나간 문파죠. 전진의 제자들이 나타 난 적이 거의 없어서 전설이 되었지만 어쩌다 한 번씩 나타난 그 제자들의 무예는 세상을 경악시킬 정도였잖아요?”

“네가 전진이라고 생각하고 싶다면 그렇게 알고 있으라구. 잠시 동안은 즐거울 테니까.”

묵향의 비꼬는 듯한 말투에도 옥령인은 지지 않고 말했다.

“이것도 인연인데 나한테 전진의 무공을 가르쳐 줘요, 예?”

“내가 왜 너한테 무공을 가르치는 수고를 해야 하냐?”

“에이, 그래도 납치범은 인질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잖아요. 인질이 이렇게 원하는데, 그러지 말고…….?

계속 옥령인이 응석을 부려 대며 끈질기게 조르자 나중에는 묵향이 두 손을 들었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어떤 수단을 쓰든 이 어처구니없는 사태에서 빠져나가야겠 다는 생각뿐이었다.

“좋아, 하지만 너도 나한테 무공을 가르쳐 줘야 서로가 공평하지.”

“하지만 제가 아는 무공은 당신에 비해 형편없는 것들뿐인데요.” 

“상관없어.”

“제가 가장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건 본문의 적하무류검법(赤霞舞柳劍法)이에요. 아직 실력이 별 볼일 없어서…….”

“괜찮으니 한번 보자구.”

“그러니까 구결은…….”

“구결 따위는 필요 없으니 초식을 한번 펼쳐 봐.”

“이 검법은 검무(劍舞)로 만들어져 있는 아주 부드러운 검법이에요. 36초로 이루어져 있고 변초가 각기 12가지씩 총 432초식으로 구성되어 있죠.”

옥령인은 허리에서 2척 5촌 길이의 검을 뽑았다. 묵향은 한 번씩 그녀의 혈도를 제압했을 뿐 그녀의 검을 빼앗지는 않았다. 옥령인이 검을 빼들고 덤벼 봤자 묵향 에게 별 타격을 주지도 못할 것이므로 일부러 그냥 둔 것이다. 그녀는 격식에 따라 검신이 아래로 향하게 하고 손잡이를 쥔 채로 가볍게 묵향에게 권했다.

“미숙한 실력이지만..

옥령인은 예법에 따라 각 무공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개문식(開門式)의 자세를 취해 그가 사용할 무공을 상대에게 알렸다. 그런 후 검초를 시작하며 외쳤다. “적하매장(赤霞每壯)! 적하유천(赤霞流)! 적하정심(赤霞靜沈)……!”

옥령인의 검법은 꽤 정심한 것이었고 부드러운 가운데 무서운 살초들이 감춰진 아주 뛰어난 것이었다. ‘적하(赤霞)’라 이름 붙였을 만큼 검무를 펼치는데 검에서 은은한 붉은색 광채를 띠는 검기가 배어 나왔고, 각 초식은 여러 방향으로 움직이며 상황에 따라 각종 변초를 사용하기 쉽게 안배가 되어 있었다. 묵향은 그녀가 4 백 32초식을 끝낼 때까지 기다렸다가 박수를 쳤다.

“움직임이 꽤 절도가 있고 막힘이 없으니 과연 명문의 검법이라고 부를 만도 하긴 한데, 이건 내가 알고 있는 적하마령검법(赤霞魔令劍法)을 훔쳐서 좀 고친 거 야.”

그러자 옥령인은 얼굴이 벌게져서 따지고 들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예요?”

“그럼 내가 보여 주지. 잘 보라구. 본 후에도 딴소리하지 말구.”

묵향은 천천히 묵혼검을 뽑아 예의나 개문식 따위는 생략하고 바로 초식을 전개했다.

“적하매장! 적하유천! 적하정심. ..!”

묵향은 일단 옥령인의 초식을 훔쳐서 뼈대로 삼은 후 그 상당 부분을 고쳐서 검초를 전개했다. 초식의 이름은 짓기도 귀찮고 힘들었기에 그냥 그대로 뒀다. 묵향의 검법은 검무의 형태가 아니었고 대단한 속도를 가진 쾌검의 형태였으며, 가공할 만큼 패도적인 기운과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옥령인은 자신의 초식과 상당히 비슷하면서도 어떤 면으로는 완전히 다른 검법을 보고 경악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묵향이 정해진 초식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 인물 이란 사실을 알지 못했기에 초식의 상당 부분을 어검술이나 검강, 그리고 붉은빛이 나오도록 가공할 만한 검기를 뿌려대자 정말 자신의 검법이 적하마령검법(赤霞 魔令劍法)을 훔쳐서 만든 검법이라고 착각하기 시작했다. 묵향은 4백 32초식이나 펼치는 수고를 생략하고 과감하게 필요 없는 부분은 없애 버려 1백 44초식만을 사용했다. 검법이 끝나자 부근의 나무들이 쓰러지고 날아가 버려 널찍한 공터가 만들어져 있었다.

“이래도 네가 알고 있는 무공이 적전(適傳)이라고 우길 거냐?”

묵향이 워낙 자신 있게 말하자 옥령인은 점점 자신이 없어져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변명했다.

“저는 잘 모르겠어요. 이건 할아버지께서 어느 날 저녁놀을 보시고 깨달음을 얻으셔서 3년에 걸쳐 완성하신 무공이라고 들었다구요.”

“흥! 그 영감탱이는 부끄러운지도 모르고 남의 무공을 훔쳐서는 자신의 것이라고 우기다니. 기분 나빠서 가르쳐 주지 못하겠어.”

“그러지 말고 가르쳐 주세요. 그걸 가르쳐 주시면 또 다른 무공도 알려 드릴게요.”

“그따위 무공 아무리 가르쳐 줘도 필요 없어.”

이때 묵향에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묵향은 자신의 속마음이 드러나지 않게 짐짓 정색하며 말했다.

“좋아. 적하마령검법을 가르쳐 줄 테니 내가 해결사 노릇 하러 가는데 함께 가서 날 도와줘야 해.”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데요?”

“아냐. 넌 말도 잘하고 설득력도 있고, 또 배운 것도 많으니 그 일에 적합할 것 같다. 거기에 당사자도 아닌 제삼자 입장이니 둘 다 네 말은 잘 듣겠지. 어때 허락하 겠냐? 물론 생명의 안전은 내가 책임지지.”

“좋아요. 빨리 가르쳐 줘요.”

“이걸 누구에게도 가르쳐 주지 않겠다고 맹세한다면..

“좋아요, 맹세할게요. 천지신명께 맹세합니다. 저 옥령인이.”

“아니, 따라하라구. 묵향에게서 배운 적하마령검법을 다른 사람에게 절대로 알려 주지 않겠습니다. 만약 알려 준다면 하늘에서 천벌이 떨어질 것입니다. 비명횡사 를 해도 원망하지 않을 것이니 굽어 살펴 주십시오.”

“묵향에게서 배운 적하마령검법을 다른 사람에게 절대로 알려 주지 않겠습니다. 만약 알려 준다면 하늘에서 천벌이 떨어질 것입니다. 비명횡사를 해도 원망하지 않을 것이니 굽어 살펴 주십시오. 당신 이름이 묵향이에요?”

“내가 말 안 해 줬던가?”

“그런데 맹세의 내용이 이상해요. 비명횡사를 한다니……. 설마 알려 준 게 당신 귀에 들어가면 나를 비명횡사시키겠다는 협박이에요?”

“그럼. 너도 알지? 나는 내뱉은 말은 책임을 지는 사람이야. 이제부터 구결을 부를 테니 잘 기억해라. 설마 네 할애비가 초식을 훔쳤다 하더라도 구결까지 훔친다 는 건 불가능하니까 말이야.”

“예.”

초식(招式)이란 무공의 외형이다. 몸을 움직이는 순서나 그 방법이 초식이라서 초식만 알아서는 진정한 그 무공의 파괴력이 나오지 않는다. 그 초식을 펼치는 순 간순간의 내공의 흐름을 자세히 설명한 것이 구결(口訣)이다. 이 구결에 따라 모든 초식을 연결해 나가야 하니 둘 중 하나라도 빠지면 진정한 위력을 가진 무공이 되기는 애당초 그른 노릇이다.

하지만 무공에 따라 약간씩 그 중요도가 바뀌기도 한다. 예를 들어 소수마공은 초식은 없고 구결뿐인 무공이다. 초식은 기타 여러 가지 장법이나 권법을 사용하되 그 구결만을 소수마공으로 사용하면 소수마공이 가진 그 엄청난 음기로 상대에게 치명타를 줄 수 있다.

묵향은 자신이 거짓으로 펼친 적하마령검법의 진기 이동을 기억하여 천천히 구결로 불렀다. 대부분의 무공구결은 일부러 비밀의 방지를 위해 어려운 말로 함축해 서 표현하거나 수많은 암호들을 나열해 암기하기가 대단히 까다롭다. 그에 비해 묵향은 각 구결을 함축할 단어들을 생각할 시간 여유도 없었을 뿐더러 그걸 함축할 만한 지식도 없었다. 그러기에 옥령인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다.

모든 말이 순서에 따라 이치에 맞았기에 옥령인으로서도 다른 무공의 비급을 익힐 때처럼 말도 안 되는 문자들을 무차별적으로 암기하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었 다. 묵향이 세 번 불러주자 옥령인은 모든 구결을 완전히 다 기억할 수 있었다. 옥령인은 한 자도 틀리지 않고 외운 후 생긋 웃었다.

“이 구결은 정말 쉬워요. 모든 구결이 이렇게 앞뒤가 잘 맞으면 한결 기억하기 쉬울 텐데…….?

“그럼, 훔쳐 배운 것 하고 정통은 이런 큰 차이점이 있지.”

묵향의 말에 옥령인이 발끈하며 항변했다.

“계속 그렇게 할아버지를 욕하지 마세요.”

묵향은 심심풀이 삼아 옥령인에게 검법을 가르치며 지령회(蜘逞會)를 향해 갔다. 며칠 더 가자 옥령인이 궁금한 듯 물었다.

“설마 우리가 가는 곳이 사천은 아니겠죠?”

“아니! 사천이야.”

“그럼 당문(唐門)의 당 아저씨 부탁을 받은 건가요?”

“너는 그런 건 몰라도 돼.”

“저도 관련이 있어요. 당문과 지령회 사이의 충돌은 무림에 쫙 소문이 나 있다구요. 모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는데요?”

한참 더 가서 갈림길로 들어서자 옥령인이 다급히 말했다.

“이 길이 아니라구요. 길을 잘못 들었어요.”

“아냐, 이 길이 맞아.”

묵향이 자신 있게 대답하자 옥령인이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혼잣말을 했다.

“그런가? 내가 잘못 기억하고 있었나? 하기야 워낙 오래전의 일이라…….”

“도착하면 너는 내 동행이라고 소개할 테니 잠자코 있어. 안 그러면 시끄러워지니까. 너를 장로의 망나니 딸이라고 소개할 테니 그렇게 알고 있으라구. 늘 갇혀 지 내다가 바깥바람을 쐬고 싶다고 앙탈을 부려 할 수 없이 데리고 왔다고 하면 아주 잘 해 줄 거야. 그리고 내 곁에서 떨어지지 말고. 안 그러면 꽁꽁 묶어서 처박 아 둘 거다.”

묵향의 으름장에도 옥령인 소저는 생글거리며 가만히 있었다. 그녀는 당문에 도착하기만 하면 반대로 묵향을 잡아 묶어 놓고 지금까지 당한 수모를 돌려줄 생각에 마음속까지 뿌듯하게 차오르는 쾌감을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그런 즐거움도 오래가지 않았다. 최종 종착점이 지령회라는 걸 알게 되었던 것이다. 10리 정도 더 말을 타고 가서 도착한 곳은 제법 그럴듯한 커다 란 장원이었고, 정문 위에는 커다란 현판이 붙어 있었다.

지령)」

현판을 읽은 옥령인 소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지금 자신과 함께 가는 인물이 사파적인 성격을 지닌 인물임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의 무공으로 보아 명문정 파의 제자라고 굳게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그런 속사정은 아는지 모르는지 묵향은 느긋하게 말을 타고 나가 지령회의 수문 무사들을 향해 품속에서 무엇인가 를 꺼내어 보였다. 그러자 그들은 호들갑을 떨며 반겼다. 옥령인은 묵향의 부탁에 따라 조용히 사태가 돌아가는 대로 가만히 있었다. 묵향 일행은 곧 안채로 안내되 었고 그곳에서 지령회주(蜘逞會主)의 환대를 받았다. 여기서 옥령인을 또 한 번 경악하게 만든 것은 묵향의 호칭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부교주님.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부교주님이라는 말이 나오자 옆에 서 있던 옥령인 낭자의 눈이 화등잔 만하게 커졌다가 다시 원상태로 복구되었다. 옥령인 낭자는 경악하기는 했지만 현명하게 그 냥 잠자코 있었다.

“오다가 교주님의 부탁이 있어 잠시 지체하는 바람에 늦었네. 사군자가 와 있을 텐데, 그들은 지금 어디 있나?”

“정보 수집차 밖에 나가셨습니다. 저녁때는 돌아오실 겁니다.”

“저 아가씨는 천리독행의 손녀로 원체 세상 구경이 하고 싶다고 앙탈을 부려서 데리고 왔네. 철 소저라고 부르면 될 거야.”

“예.”

“목욕부터 하세나. 오랜 여행을 했더니 먼지 때문에 말이 아니군.”

“예예…… 소화, 매화가 시중을 들어 드릴 겁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분부를 내려 주십시오.”

“오는 길에 봤더니 시체도 없고 조용하더군. 소강상태인가?”

“아닙니다. 3일 전에 또 심하게 붙었는데, 그 때문에 조용한 거죠. 각 분타주님들이 도와주셔서 그런대로 버티고 있습니다.”

“이번 일은 내가 확실히 마무리를 지어 줄 테니 걱정하지 말게나. 자네도 바쁠 텐데 내가 너무 잡고 있는 것 같군. 나중에 사군자가 오면 그때 같이 회의를 하기로 하세.”

“알겠습니다. 물러가겠습니다.”

목욕 후 산뜻한 향기가 나는 차를 마시며 시비(侍婢)들을 물리치자 옥령인은 나직한 소리로 싸늘히 말했다.

“그대가 천마신교의 부교주인 줄은 꿈에도 몰랐군요.”

“왜? 실망하셨나?”

“어떻게 정파의 무공을 익혔죠?”

“언제나 특수한 상황이 존재하기 마련이야. 그리고 너도 알아 둘 건 오랜 다툼으로 인해 마교의 서고(書庫)에는 엄청난 분량의 정파의 무공이 들어 있다는 점이지. 십만대산은 1천 년 동안 본교의 요새로서 단 한 번도 침략을 당하지 않았지. 그에 비해 정파의 대부분은 본교에게 한 번씩 털려 봤을 테니 그걸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을 텐데?”

“하지만 마교에서는 정파의 무공을 마공보다 많이 익히면 안 된다는 규정이 있을 텐데요?”

“있지. 하지만 예외라는 게 있어. 나는 원래 살수 출신이야. 살수란 직업상 본문의 무공을 익힐 수는 없어. 예를 들어 네가 정파의 인물이고 내가 너를 암습한다면 내가 마공을 사용해서 너를 죽일 것 같아? 아니지 정파의 무공을 사용할 거야. 그래야 표시가 안 나거든.”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 정파의 무공을 그렇게 깊이 익힐 필요는 없잖아요. 당신 실력의 반만으로도 기습할 경우 상대가 저항하지도 못할 텐데…….’

“아니지, 너의 할아버지가 상당한 고수라고 했으니 그 영감탱이를 기준으로 말해 보자구. 내가 만약 그 영감을 죽이려고 든다면 별로 어려울 게 없어.” “그럼 뭐가 문제라는 거예요?”

“죽이고 나서 탈출하는 게 문제지. 탈출하는 과정에서 그 영감이 기른 수많은 제자들이 덤빌 거고 나는 암습이 아닌 정식으로 검을 사용해 그들의 포위망을 돌파 하고 도망쳐야 하는 거야. 그때 마공을 사용하면 모든 게 끝장이지. 요컨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다 마공을 사용하면 안 되는 거야.”

“그래서 마공을 처음부터 배우지 않았나요?”

“배우지 않았다고는 하지 않았어. 나는 대단히 높은 수준의 마공을 배웠다구. 그걸 사용하지 않을 뿐이지. 단순히 마공만 사용해도 웬만한 고수들은 모두 저세상 으로 보낼 수 있어. 한번 보여 줄까?”

옥령인이 호기심을 느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이게 뭔지 알겠어?”

묵향의 손이 점차 약간 푸르스름하면서도 하얀 광채를 띠기 시작했다. 좀 시간이 지나자 묵향의 손은 완전히 하얀 광채를 띠며 살 속까지 무색투명해져 손의 혈관 까지 비쳐 보일 정도가 되었다. 이걸 본 옥령인은 한기(氣)와 사이한 마공에 몸을 떨었다.

“그때 그 여승이 펼친 소수마공이잖아요.”

그러자 이번에는 묵향의 손이 붉은빛으로 바뀌기 시작했으며 사방으로 열기와 강렬한 마기가 퍼져 나갔다. 팔목까지 투명한 붉은빛으로 은은하게 빛나는 걸 보고 옥령인이 말했다.

“이건 잘 모르겠지만 혈수마공 같은데요?”

“그래, 혈수마공이지. 나는 이 두 개를 같이 익혔기 때문에 소수마공이나 혈수마공을 익히면 나타나는 전형적인 증상이 손에 나타나지 않아. 내 손은 그런대로 곱 고 아름답긴 하지만 투명할 정도로 하얗지 않지. 그리고 손이 고우면서도 붉은빛도 띠지 않아. 그래서 본교 내에서도 내가 이걸 익힌 걸 아는 사람은 없어. 하기야 강기를 사용하면 이건 별 필요도 없지만…….”

옥령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참, 이번 일은 어떻게 할 거예요. 당 아저씨와 싸울 건가요? 아니면 전에 나한테 말한 대로 평화롭게 해결할 건가요.”

“일단은 너를 앞세워 평화롭게 처리해 나갈 거야. 상황을 보고 3일 이내에 당문에 들어가서 교섭을 해 봐야지.”

“만약 교섭이 안 된다면?”

“나는 귀찮은 건 딱 질색이야. 능력도 없는 것들이 까불어 대는 꼴을 느긋이 볼 정도로 마음이 좋지 못하거든.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 수라마참대를 데리고 왔지.” “수라마참대라구요?”

“왜 알고 있나? 본교의 일은 거의 밖에 알려진 게 없는 걸로 아는데.”

“할아버지한테 들었어요. 마교에는 여러 개의 무력 단체가 있지만 그중에 다섯 개가 가장 강하다고 했어요. 천마혈검대(天魔血劍隊), 수라마참대(修羅魔斬隊), 천 랑대(狼), 염왕대(閻王隊), 자성만마대(紫星萬魔隊)가 그들인데, 자성만마대는 자주 무림에 모습을 드러냈지만 나머지 넷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고 그러더군요.

특히나 천마혈검대나 수라마참대는 한 번도 무림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고 하셨어요.”

“아니야, 둘 다 무림에 몇 번 나왔지. 대신 그걸 알고 있는 사람이 없는 거야.”

“하지만 무림에는 개방이라든지 무영문 같은 정보에 능한 단체가 있는데요?”

“그들은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아. 이번에 수라마참대를 끌고 온 것도 나는 혼자서 싸우는 것은 자신 있지만 무리를 지휘할 줄은 몰라서야. 병서 따위를 읽은 적 도 없고, 진법 같은 것은 거의 백지나 다름없지. 그래서 통째로 데려온 거야. 도저히 안 되면 한마디만 하면 끝난다구. ‘이봐, 인도(人屠)한테 싹 쓸어버리라고 전해’ 그렇게 말이야.”

“그럼 사람 백정(人屠)이란 사람이 모든 걸 알아서 처리한단 말인가요?”

“그럼, 그 친구 아주 대단한 백정이거든. 그러니까 너는 그 사람들을 잘 설득하라구. 내가 최후의 수단을 쓰지 않게 말이야.”

“어떻게 하면 되죠?”

“우리가 양보할 수 있는 부분은 양보할 거야. 상대의 조건이 너무 건방지지만 않다면 말이야. 이쪽에서도 겨우 사천당문 따위와 씨름하는 것에 수라마참대를 오랜 시간 밖에 내놓을 수 없다구. 마교에는 언제나 많은 적들이 있고 그들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무력이 필요해. 지금 너는 잘 모르겠지만ᅳ사실은 묵향도 잘 모 름—드러나지 않은 단체들이 많아. 그들 때문에 마교는 지금 정파와 정면 격돌을 원하지 않는다구. 그렇지만 단기간에 분쟁이 종식된다면 어떤 수단을 써도 상관없 다는 허락이 있으니까 모든 게 틀어지면 먼저 상대의 우두머리들을 모두 다 암살한 다음 수라마참대를 풀어서 기습 공격으로 끝장을 내 버릴 생각이야. 어때, 나도 꽤 똑똑하지?”

묵향의 자신 있는 말투에 옥령인이 뾰루퉁한 표정으로 반박했다.

“어이가 없군요. 상대의 우두머리들이 호락호락 당할 것 같아요?”

“내가 직접 나선다면 충분히 가능하지. 그 때문에 교주도 나를 이리로 보낸 거고.”

그러자 옥령인은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말했다.

“대단한 자신감이군요.”

“나는 언제나 자신감이 넘치지. 난 지금 무림에서 무적이라구.”

옥령인은 비웃는 어조로 말했는데도 묵향이 한껏 우쭐대며 자화자찬을 하자 그만 말문이 막혔다.

“세상에…….”

‘정말 못 말릴 정도로 멍청한 자식이군. 저런 녀석이 어떻게 부교주가 되었지??

저녁이 되자 사군자가 돌아왔다. 사군자가 모두 인사를 올리자 옆에서 보고 있던 옥령인은 약간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 자신이 교육받은 대로 마교의 인물들은 모두 지령회주처럼 마기가 스산하게 풍겨 나오는 악당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사군자에게서는 전혀 그런 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정파의 인물들을 보는 것 같 이 그냥 높은 수준의 무예를 익혔다는 점만 신체상의 특징으로 짐작할 수 있을 뿐이었다. 이때 매가 입을 열었다.

“3일 전에도 치열한 다툼이 있었는데, 속하들이 조사해 본 결과 당문의 뒤에는 종리세가(鍾里世家)와 제갈세가(諸葛世家)가 있습니다. 그 두 가문의 가주는 의형 제를 맺은 사이로 먼저 종리세가가 끼어들자 제갈세가도 돕겠다고 들어온 거죠. 당문은 암기와 독극물로 유명한 문파라서 이쪽의 피해가 상당히 큽니다. 빨리 손을 쓰지 않으면 피해는 더욱 늘어날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조사한 보고서입니다. 상대방의 전력이 자세히 파악되어 있습니다.”

묵향은 그 보고서를 대강 들춰 보았다.

“인도에게도 보냈나?”

“예, 동방 장로께도 보냈습니다. 동방 장로께서는 명령만 내리시면 언제든지 출동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겠다고 전하라 하셨습니다.”

옆에 있던 난이 거들었다.

“속하가 비영대를 통해 알아본 바로는 부근의 정파 계열의 문파들도 참여하려고 주시하고 있으며, 무림맹에서도 이쪽으로 사람을 보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무림맹까지?”

“예, 그들의 목적은 아직 파악되지 않았으나 매화문검(梅花文劍)이 50여 명의 고수들과 함께 당문으로 출발한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무림맹까지 끼어들기 전에 조속히 종결을 지으라는 교주님의 분부가 계셨습니다.”

“국, 내가 준비해 두라고 한 소품은 준비해 뒀나?”

“예.”

“교주가 몇 권이나 주던가?”

“세 권입니다.”

“그 세 개 다 당문에는 실전된 게 확실한가?”

“예,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알겠다. 내일 아침에 당문에 가서 협상을 해 봐야겠군. 회주께서는 나중에 협상이 되면 가능하면 응해 주시오. 그래야 내가 수고한 보람이 있지.”

“예, 노력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일찌감치 쉬고 내일 출발하기로 하지. 죽!”

“예.”

“자네가 회주와 상의해서 간단하게 예물을 준비해라.”

“예.”

“그만 물러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