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1권 4화 – 아수혈교의 출현
아수혈교의 출현
장로급 이상만이 모인 임시 회의에 때 아닌 긴장감이 감돌았다. 부교주가 출석했기 때문이었다. 부교주는 웬만큼 중요한 일이 아니면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기에 모두 신경이 쓰였던 것이다. 적미염 왕자영의 설명으로 지금까지 진행된 작전들에 대해 설명을 들은 좌중은 일시 침묵을 지켰다.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교주였다. “이번 작전의 실패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시오? 비영대의 특급 요원이 두 명이나 죽었소. 원인을 알아야 그에 대처할 게 아니겠소?”
“교주님, 이번에 얻은 최신 정보에 따라 침투한 아수혈교의 대망산분타(大網山分肥)는 대단히 치밀한 방어선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진법과 많은 고수들이 지키고 있기 때문에 첩보요원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교주에게서 은은하게 흘러나오던 마기가 점점 강해지자 장내의 모든 고수들은 교주의 심기가 별로 편치 못하다는 것을 은연중에 느끼고 있었다. 극마의 고수인 교 주는 평상시에는 마기를 적절하게 다스렸기 때문이다. 교주는 침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되겠나?”
“정탐 등을 위해 키운 특수 요원들은 은잠, 공작 등에는 뛰어나지만 무공이 약한 것이 흠입니다. 이번에는 세 명 정도를 한 조로 만들어 투입할 계획입니다. 침투, 추격에 뛰어난 자 한 명과 침투, 진법에 뛰어난 자 한 명을 뽑았는데, 나머지 이들을 호위할 만한 뛰어난 실력을 지닌 무사가 없습니다. 물론 침투력도 뛰어나야 합 니다.”
그러자 교주는 잠시 생각하는 것 같더니 느닷없이 부교주에게 질문을 던졌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부교주인 벽안독군(碧眼毒君) 능비계(凌非癸)는 거의 틀에 박힌 공식 행사에는 잘 참석하지 않지만 상당한 실력자로 통했다. 매우 젊고 준수한 얼굴을 하고 있지 만 그는 마교 내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엄청난 극마의 고수였다. 그가 교주와 다른 점이 있다면 숨통을 조일 것 같은 마기를 전혀 숨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은잠과 무공이 뛰어나야 한다면 살수가 좋지 않을까요?”
부교주의 말을 받아 수석장로인 마천검귀 여절파가 말했다.
“특급 살수 한두 명 정도를 투입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자 대호법 혈(血影) 모진(毛辰)이 말했다. 그는 마교 서열 7위의 노고수로서 상당히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저는 반대입니다. 살수는 통상적인 기습 공격에 능하지만 변칙적인 상대의 공격에는 취약합니다. 저의 휘하에 있는 호법원의 초절정고수 두 명을 데려가는 편이 좋을 겁니다.”
그러자 긴 침묵을 깨고 천도왕(天刀王) 여지고(呂志高) 장로가 말했다. 교주의 신뢰를 받고 있는 그는 마교 서열 10위이긴 했지만 천마혈검대(天魔血劍隊)라는 마 교 최강의 단체를 책임지고 있는 만큼 그 발언권은 엄청난 무게를 지니는 것이었다. 거기다가 그는 수석장로 여절파의 하나뿐인 아들이라는 막강한 배경을 지니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자타가 인정하는 무시무시한 고수였다. 마교는 실력이 우선되는 단체, 최고의 최고에 올라가기 위해서 배경 따위는 필요 없었다.
“저는 대호법의 의견에 반대입니다. 호법원 호위 무사들은 은잠이나 매복과는 상관없는 정통적인 상승고수들입니다. 그들이 이번 임무에 적합하다고 볼 수 없습 니다. 호법원의 무사들보다는 천마혈검대의 고수 몇 명을 데려가는 편이 좋을 겁니다. 이 녀석들은 전장(戰場)에서 다져진 몸, 도움이 될 겁니다.”
여지고 장로의 단순 무식한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흑수귀영(黑手鬼影) 공량(孔) 장로가 말했다. 그의 명호가 말해 주듯 그는 광택이 나며 섬세하지만 비쩍 마른 검은 손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건 의수가 아니라 흑시마조(黑屍魔爪)라는 지독하게 사악한 마공을 익혔기 때문이었다. 그의 강력한 조법(法)과 귀신같은 신법이 그를 마교 서열 8위에까지 올려놓았다. 그는 무영대(無影隊)라는 30여 명 정도의 초절정고수들로 이루어진 암행감찰 단체의 수장이었다.
“그런 살인밖에 모르는 검귀들을 데리고 어떻게 첩보 활동을 한단 말이요? 아예 저의 무영대의 고수 몇 명을 보내는 것이 좋을 겁니다.” 교주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좋겠군. 원체 암행 감찰을 하는 집단이라 은잠, 침투는 뛰어날 것이고 무공도 높으니.”
그러자 마교 내 5대 무력 단체를 총괄 지휘하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내총관이자 흑살대(黑殺隊)까지 맡고 있는 묵염(墨炎) 마원(馬遠)이 말했다. 평범한 얼굴을 가 진 마원이란 무사는 묵룡혼원공(墨龍混元功)이라는 매우 패도적인 마공의 고수였다.
“저희 흑살대의 살수 한 명을 천거합니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두 명은 무영대의 고수로 하고, 살수도 한 명 데리고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자 교주가 말했다.
“내총관이 추천하는 인물은 어떤 인물이요?”
“예, 전에도 말씀드린 묵향이란 녀석입니다. 특급 살수는 아니지만 검술이 뛰어납니다. 오히려 정면 대결에서는 특급 살수보다 뛰어날 정돕니다. 살수답게 침투에 도 뛰어나지만 대단한 검귀로, 그의 검술 실력은 제가 보장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합시다. 비영대의 1급 요원 두 명과 무영대의 고수 두 명, 그리고 살수 한 명으로 하는 것이 어떻겠소?”
“그것이 가장 좋겠습니다.”
그러자 교주가 일어서서 나가면서 말했다.
“처음 작정한 것보다는 대 부대가 되어 버렸지만 그 나름대로 장점이 있는 자들이니까 아수혈교가 그만큼 조심하면서 꾸미는 일이 무엇인지 밝혀 보도록 하시오.” 그러자 일제히 일어나서 포권하며 외쳤다.
“존명!”
회의가 끝나고 부교주가 대호법에게 물었다.
“태상(太上)께서는 요즘 건강이 어떠신가?”
태상이란 은퇴한 전임 교주인 독수마제(毒手魔帝) 한석영(韓英)을 말하는 것이다. 교주보다 35세가 많으며 교주의 아버지다. 과거 그는 손속이 너무나 잔인해 서 독수(毒手)라는 칭호가 붙었다. 4마제(四魔帝)의 한 사람이며 극마의 고수다.
“아직 정정하십니다.”
“요즘 통 얼굴을 못 보겠으니, 원……. 원로원에도 한 번씩 와 주십사 하고 전해 주게. 그리고 자네가 그분에게 좀 더 각별히 신경을 써 드리게나.”
“알겠습니다. 지금도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원체 세상을 등지신 분이라… 요즘은 매화(梅花)를 벗 삼아서 지내시죠. 전에도 매화를 끔찍이 좋아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러자 부교주가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껄껄, 매화를 그렇게 좋아하시는 분의 명호가 독수마제(毒手魔帝)라니 예나 지금이나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모시는 저희들이야 취미가 그러시니 한결 편하죠. 거의 연공실이 아니면 정원에서만 지내시니까요.”
“그분께서도 아직 더 높이 올라갈 경지가 있다는 것인가?”
“혹시 압니까? 열심히 노력하면 최초로 탈마의 경지에 오르실지?”
“아! 옛날이 그립군. 4마제가 함께 생활하던 그때가…….”
“어쩔 수 있습니까? 운명이 그런 것을. ……. 태상께서도 그때 일에 약간 충격을 받으신 것 같았는데요.”
“그럴지도 모르지. 장인걸(張仁傑) 그 녀석 흑살마장(黑殺魔掌)이 일품이었는데…….?
흑살마제 장인걸(張仁傑)은 4마제(四魔帝)의 일원으로 부교주 직에 있다가 그의 추종자를 이끌고 탈교(脫敎)하여 암흑마교를 세웠다. 극마지체(極魔之體)에서 뿜 어 나오는 10성의 흑살마장은 공포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다.
“그럼 다음에 보기로 하지.”
대호법이 정중히 포권했다.
“예, 안녕히 가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