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10권 14화 – 변화하는 제국의 질서

변화하는 제국의 질서

코린트의 협상 사절이 도착한 다음 날, 코린트와 크라레스는 전쟁이 꽤나 오래 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던 타국들을 비웃기나 하듯 전격적으로 휴전 합의에 성공 한다. 코린트나 크라레스 양국 다 더 이상 전쟁을 지속한다는 것이 무의미한 일이라는 것에 서로 의견이 일치했던 것이다.

코린트로서는 크라레스와 계속 전쟁을 수행하려니 옆쪽의 크루마라는 존재가 찜찜했고, 크라레스로서는 더 이상 땅덩어리를 집어삼켰다가는 식중독에 걸릴 우려 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양국 다 조금만 더 군사력을 키운다면 서로를 잡아먹으려고 들기에 충분할 정도의 저력을 갖춘 국가들이었기에, 이 휴전 합의가 양국 간 의 영원한 평화를 가져올 거라고는 아무도 믿지 않았다.

하지만 이 평화는 예상외로 오래가게 된다. 만약 이게 두 국가만의 일이라면 어느 한쪽의 힘이 커지는 그 순간 전쟁이 발발하게 되겠지만, 크루마를 포함한 세 국 가 간의 일이었기 때문에 하나가 두 나라를 제압할 만한 힘이 생기지 않고서는 전쟁이 다시 재개되기 힘든 게 사실이다. 그 어느 쪽도 한쪽의 힘이 강해지기를 원치 않았기에 결과적으로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게 되고, 그 덕분에 평화를 지속시킬 수 있는 것이다.

양국 간의 전쟁이 종료되자마자 크라레스 황제는 승전을 기념하여 전 국민들에게 일주일간의 휴일을 선포했다. 크로나사 수복의 일등 공신으로 책정된 두 명의 공 작들은 각기 스바시에와 치레아를 공국(公國)으로 하사받고, 개인 기사단까지 가지게 되는 영예를 얻었다. 토지에르는 한 등급 작위가 올라가서 공작의 칭호를 받 게 되었다. 그리고 수도는 유성 공격으로 인해 흔적만 남아 버린 옛날의 수도였던 크라레인시로 천도하겠다는 것도 이때 발표되었다. 그 덕분에 새로운 크라레인시 를 건설하기 위한 대규모 토목 사업이 시작되었다.

기사단의 편제도 대대적으로 변경되었다. 가장 큰 변동을 보인 것은 역시 치레아와 스바시에에 있던 친위 기사단들이었다. 제1친위 기사단은 ‘스바시에 기사 단’으로 개명되었고, 10대의 카프록시아와 10대의 테세우스가 배당되었다. 물론 차후에 10대의 카프록시아를 더 생산하여 테세우스와 교체시킬 예정이었다.

제2친위 기사단은 ‘치레아 기사단’으로 개명되며, 10대의 미가엘과 10대의 로메로를 지급받았다. 물론 추후에 겉모양을 더욱 근사하게 개장시킨 카프록시아급의 타이탄 20대로 교체해 준다는 약속 하에서 말이다. 상당히 색다르게 생긴 카프로니아급 타이탄 두 대는 수거된 후 근위 기사단에 소속되어 황실의 전시용으로 사용 될 예정이었고, 유령 기사단은 대폭적으로 개편되어 국가의 주력 기사단으로서 위치를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10대씩을 1개 전대로 묶어서, 두 명의 공작에게 지급 하고 남은 모든 정규급 이상의 타이탄을 ‘유령 기사단’에 배치했다.

그리고 콜렌 기사단은 평상시에는 변방에 주둔하며 몬스터 토벌과 타국에 대한 전쟁 억지를, 전시에는 유령 기사단의 보조 기사단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하는 처지 로 격하되었다.

다크는 오히려 전쟁이 끝난 후에 엄청나게 바빠졌다. 오랜만에 전쟁터에서 돌아와 보니 자신의 영지에는 그녀가 처리해야 할 사안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서 기다리 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전까지 그녀의 영지는 말토리오 산맥 한 귀퉁이에 있는 아름다운 로니에르 마을이었고, 직책만이 치레아의 총독이었지만, 지금은 완전 히 바뀌었다. 그녀의 영지였던 로니에르 마을은 황제에게 반납되었고, 대신 치레아를 영지로 받았다.

하지만 그 영지는 크라레스라는 한 국가에 포함되는 영토가 아닌, 완전한 하나의 독립된 국가라고 볼 수 있는 공국(公國)이었다. 공국은 일종의 속국이라고 할 수 있는 형태였기에 너무나도 많은 것이 바뀌어야만 했다. 우선 새로운 법률도 만들어야 했고, 자신에게 주어진 공국의 각 지방을 다스릴 영주들도 뽑아야 했고, 공국 을 지킬 군사력도 독자적으로 새롭게 정비해야 하는 등 처리해야 할 일들이 한꺼번에 엄청나게 발생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이 일을 몽땅 다 자신이 처리하고 앉아 있을 멍청한 다크는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이 처리해야 할 일의 태반을 어거지로 그녀의 오른팔이 되어 버린 비운 의 사나이 카알 폰 카슬레이 백작에게 떠넘겼다. 그리고 그녀의 친구들이나 심지어는 그녀의 게으른 아버지에게까지 억지로 하나씩 일을 떠맡겨 버렸다. 하지만 그 렇게 분산을 시켰는데도 그녀는 하루하루를 바쁘게 보낼 수밖에 없었고, 그러는 사이에 가을이 깊어가고 있었다.

미네르바는 말토리오 산맥에 다녀온 후 오랜 시간 혼자서 사색에 잠기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날도 집무실의 책상 앞에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때 문득 옆에서 조금 가벼운 기침 소리가, 그러다가 좀 지나서는 조금 더 큰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미네르바는 흠칫 놀라면서 그쪽으로 재빨리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나이가 지긋한 두 명의 인물이 약간은 무안한 듯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무슨 일인가?”

미네르바는 부하들이 방 안으로 들어올 때까지도 그들의 인기척을 눈치 채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기에 자연히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튀어 나갔다. 그 때문에 두 인물은 더욱 쩔쩔매기 시작했다. 상대는 크루마 최고의 권력을 지닌 미네르바였으니까 말이다. 그중 한 사람이 미네르바의 마음을 딴 곳으로 돌리려는 듯 재빨리 용 무를 꺼냈다.

“예, 전하. 방금 코린트와 크라레스가 휴전했다는 정보를 입수했사옵니다.”

부하의 말에 미네르바는 크게 놀랐다. 그만큼 그 둘의 휴전은 의외의 정보였던 것이다. 미네르바로서는 그 둘이 좀 더 치고받아 줬으면 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뭣, 그게 사실인가?”

“예, 전하.”

“놀라운 일이군. 사력을 다해 한판 할 줄 알았는데…..”

“예, 갑작스레 시작되었다가 끝난 미투랑 전투에서 코린트가 저희들이 예상한 것 이상의 피해를 입은 것이 확실하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코린트가 얌전히 꼬리 를 내릴 리가 없다고 사료되기 때문이옵니다. 그리고 미투랑 전투 직후 코린트 남부집단군 사령관이었던 다리엔 후작이 공개 처형당했고, 로체스터 공작에게로 지

휘권이 넘어간 지 불과 며칠 만에 양국은 휴전했사옵니다. 그 때문에 베일에 싸인 미투랑 전투에 대해 아직 조사를 더 해 보고 있사오나 워낙 보안이 철저해서 그 피 해 규모를 정확히 입수할 수는 없었사옵니다. 피해 규모가 저희들의 예상대로라면 아마도 코린트의 전력은 본국보다 낮을 거라고……..

하지만 미네르바는 이블리스의 말을 막았다.

“아니, 괜히 그런 거 조사한다고 시간 낭비할 필요는 없다. 타이탄 전력이 이쪽보다 낮다고 해도 지금 코린트와 전쟁을 벌일 수도 없고, 또 벌여 봐야 이쪽이 상대 가 안 돼. 저쪽은 로체스터 공작을 위시하여, 뛰어난 기사들이 많기 때문이야. 결코 타이탄의 수만으로 서로의 전력을 비교할 수 없다는 말이다.”

미네르바는 패퇴하는 코린트군을 추격할 때 자신을 상대했던 그 붉은 타이탄 두 대를 기억에 떠올렸다. 만약 그중 하나라면 자신이 상대할 수 있을 듯했다. 하지만 그 둘을 한꺼번에 상대하는 것은 그녀로서도 무리였다. 그만큼 강한 기사들을 보유하고 있는 한 코린트의 힘은 크루마를 앞서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 명심하겠사옵니다, 전하.”

“그건 그렇고, 테시온 자네는 이블리스와 함께 웬일인가?”

그러자 테시온은 서류 뭉치를 미네르바에게 건네며 즉각 대답했다.

“예, 전하. 어제 지시하셨던 신형 타이탄의 생산 계획서를 가져왔사옵니다.”

미네르바는 그것을 받아 들며 치하했다. 미네르바는 테시온에게 앞으로 1년 동안 크루마가 생산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타이탄 생산량을 자신에게 보고하라고 지 시했던 것이다.

“으음, 수고했네.”

“예, 1개월 후 생산 시설이 좀 더 확충되면 전하께서 원하시는 만큼의 타이탄을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잘되었군.”

미네르바의 칭찬에 테시온은 슬쩍 미소를 지으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예, 그렇게 되면 내년 여름쯤에는 60대 정도를 추가로 보유, 코린트보다 우위에 설 수 있게 될 것이옵니다. 앞으로 6개월분의 타이탄 생산 계획은 전하의 분부대 로 안티고네 7대, 에프리온 30대, 카마리에 20대이옵니다. 그리고 일단 1차 생산이 완료된 시점에서 57대가 납품되고 나면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게 되기에 그다음 부터는 안티고네 30대, 에프리온 20대를 생산할 계획이옵니다. 2차 생산까지 끝내고 나면 본국은 헬 프로네 1대, 안티고네 40대, 에프리온 50대, 카마리에 70대, 골고디아 76대, 로투스 52대를 보유, 타이탄 총수 289대, 정규급 이상 237대로서 코린트를 압도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현재 회수 및 노획량을 기준으로 한다면 그 것보다 더 많이 생산할 수도 있겠지만, 아마도 2차 생산만 완료되어도 최강으로 군림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좋군. 계획을 수립하느라고 수고했네.”

미네르바는 테시온에게 치하한 후 이블리스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보게, 이블리스, 크라레스의 타이탄 생산 계획에 대해서는 조사 된 것이 있나?”

미네르바의 물음에 아무래도 정보 쪽으로 관련이 있는 듯 보이는 이블리스가 즉시 대답했다.

“예, 정보에 따르면 크라레스는 지금 대대적으로 카프록시아를 생산하고 있는 중이라고 하옵니다. 막대한 양의 노획품이 있으니까 당연한 결과겠지요. 아마도 노 획품을 대략적으로 추정해 봤을 때 놈들은 카프록시아 2백 대 정도를 추가로 보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사료되옵니다. 하지만 본국이 2차 생산을 완료했을 때, 크라 레스는 아무리 많이 만든다고 해 봐야 1백 대 내외일 것이옵니다. 애초에 상대가 안 된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현재 크라레스의 군사력에 대해서는 알아 봤나?”

“예, 알아 봤사옵니다.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사옵고, 아마도 그때 로니에르 공작이 사용하던 그 거대한 타이탄은 다섯 대 내외가 생산된 것으로 추정되옵니다. 지금 까지 그 타이탄이 사용된 것은 단 두 번. 가장 중요한 전투들뿐이었사옵니다. 그것도 모두 다 단독으로만 투입되었지요.”

“그리고?”

“예, 근위 기사단이 보유 중인 카프록시아가 10대. 대량 생산용 카프록시아 변형이 아마도 50대 내외. 총독용의 카프록시아 변형이 2대, 미가엘이 20대 내외, 로메 로가 10대 내외, 그다음 루시퍼 35대, 푸치니 33대이옵니다. 그래서 대략적인 추정 전력은 타이탄 총 165대 내외. 그중 정규급은 1백여 대 정도라고 추정되옵니 다.”

“1백 대라……. 그렇다면 거기에 1백 대를 생산할 수 있다면 2백 대로군.”

“그렇다고 봐야하겠지요. 물론 40대 정도밖에 차이가 안 난다는 것은 사실이오나 그 등급에서 차이가 엄청나게 나옵니다. 겨우 카프록시아 정도는 안티고네, 아니 카마리에와도 비교가 안 되옵니다.”

“으음…, 비교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

“예?”

이블리스가 의아한 듯 의문을 표시했지만, 미네르바는 그걸 무시하고 테시온을 향해 말했다.

“자네는 바쁠 테니 먼저 가 보게나.”

테시온은 자기들끼리 비밀스런 대화가 있으니 나가라는 미네르바의 은유적인 표현에 살짝 기분이 상했지만, 그것을 내색할 수는 없었다.

“예, 전하. 그럼 물러가겠사옵니다.”

테시온이 물러가고 난 후 미네르바는 이블리스를 향해 낮은 어조로 물었다.

“자네라면 말일세. 엄청나게 강력한 국가, 그러니까 상대가 도저히 이쪽에서 힘을 키운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을 정도로 강한 국가라면 어떤 작전을 쓰겠나?”

“예? 그렇게 강한 국가라면 코린트를 말씀하시는 것이옵니까?”

“그렇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네.”

“그야 전에 써먹었던 방법을 다시 써야겠죠. 이번에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그로체스 공작은 숙청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하옵니다. 하기야 그로체스 공작은 할 일을 다 했으니 이제 사라져 줘도 상관없사옵니다. 우리들의 기대대로 키에리를 없애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으니까 말이옵니다. 이제 또 다른 인물, 그러니까 로체스터 를 없애 줄 만한 실력과 야망을 겸비한 인물을 키워야 하옵니다. 원래가 욕심에 눈이 멀어 버리면 무슨 짓이라도 하는 것이 인간이 아니옵니까? 강대한 제국은 밖에 서 무너뜨릴 수가 없사옵니다. 하지만 안에서부터라면 얘기가 다르지요.”

“역시, 그 방법 외에는 도리가 없는가?”

“예, 코린트의 권력층에 대해서 조사해 둔 것이 있사옵니다. 그중에서 적임자가 세 명 있사온데 적당히 충동질을 하면 나머지는 자기들이 알아서 하게 되어 있사 옵니다. 작전을 시작해 볼까요?”

“아니, 그보다도 먼저 크라레스의 권력층이나 권력 구조에 대해서는 조사해 둔 것이 있나?”

미네르바의 말에 이블리스는 약간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여태까지 서로 대화한 줄거리를 생각한다면 미네르바는 크라레스를 코린트보다도 강한 상대로 보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예? 조사해 두긴 했사옵니다. 하지만 크라레스는 약간 이상한 구석이 있긴 하지만 별로 강력한 국가가…….”

“그건 자네가 아니라 내가 결정할 일이야.”

“옛, 송구스럽사옵니다, 전하.”

“크라레스 권력층을 뒤져 봐. 그렇다면 뭔가 허점이 나올 거야.”

“전하, 크라레스의 권력층은 꽤 재미난 구석이 있어서 상당 부분을 이미 파악하고 있사옵니다. 일단 최고 권력은 황제가 잡고 있사옵니다. 그리고 그 밑에 세 명이 있사옵니다. 첫째가 루빈스키 폰 스바시에 대공, 둘째가 다크 폰 치레아 대공, 세 번째가 토지에르 폰 케프라 공작이옵니다.

스바시에 대공이 총사령관으로서 크라레스의 밖에 드러나 있는 힘을 대표하는 최강자로 모든 권력을 다 쥐고 있다면, 치레아 대공은 부총사령관으로서 숨어 있는 힘이라고 할 수 있사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뭔가 어려운 일이 터졌을 때는 스바시에 대공보다는 치레아 대공이 전면으로 나선다는 점이지요. 치레아 대공의 능력이 뛰어나서 이기도 하 지만, 그녀가 설혹 실패한다고 해도 크라레스를 대표하는 강자인 스바시에 대공은 남아 있기에 군부에는 그 어떤 동요도 일어나지 않게 된다는 것을 감안한 체계인 것 같사옵니다.

그런데 더욱 재미있는 인물은 토지에르이옵니다. 실상 겉으로 드러난 그의 권력은 거의 없사옵니다. 그냥 뒤에서 모든 잡무를 처리하며 그들을 돕는 형식으로 존 재하는 인물이지요. 하지만 이상하게도 토지에르가 어떤 면에서는 앞의 두 사람을 제어하고 있다고까지 볼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발언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옵 니다.

총사령관인 루빈스키 공작이 뭔가를 지시했다고 하더라도, 토지에르의 허가가 있어야지만 그게 행해지는 식이죠.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토지에르는 불허한 적이 없었고, 그 때문에 루빈스키의 권력이 강대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숨은 권력자는 토지에르이옵니다. 하지만 그는 이상하게도 밖으로 드러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뒤에 숨어서 열심히 황제를 위해 충성하는 것만이 삶의 보람인 듯한 괴상한 녀석이옵니다.”

“그렇게 욕하지 말게. 진짜 충신이라고 불려도 아깝지 않은 인물이 아닌가? 그런 인물에게 경의를 표하지는 못할망정 욕을 해서는 안 되지.”

“옛, 전하. 송구스럽사옵니다. 하지만 적국의 입장에서는 아주 눈에 거슬리는 녀석임에는 사실이옵니다.”

“그건 그렇겠지. 토지에르? 처음 듣는 이름인데도 그렇게 권력이 막강하다는 말인가?”

“예, 전하. 열심히 뒷조사를 하는 것이 제 임무가 아니겠사옵니까? 거의 정확한 사실이옵니다. 토지에르는 마법사이기에 암살하기도 그렇게 어렵지 않사옵니다. 토지에르를 암살하든지, 아니면 토지에르를 밀어낼 새로운 인물을 키우든지, 그것도 아니면 토지에르와 두 명의 대공들 사이를 이간질하든지, 그 세 가지 모두가 가 능성을 안고 있사옵니다. 어떤 것을 택하시겠사옵니까?”

“그 세 가지를 한꺼번에 추진해 봐. 그것들 중에 하나만이라도 성공하면 좋은 것 아닌가? 그리고 전에 말했던 것은 시행했나?”

“예?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이온지…….”

“크라레스 황태자를 세뇌시키는 작업.”

“아, 예. 한밤중에 살짝 해 놨사옵니다. 지금은 표시가 나지 않겠지만 서서히 그 효과가 나타날 것이옵니다.”

“좋아. 우리 쪽에서 코린트를 칠 일은 없을 거야.”

“예? 그건 무슨 말씀?”

“코린트는 크라레스에 대한 방패야. 쓸데없이 코린트를 건드려서 방패를 약화시키지 말고 내 지시를 기다리도록 해. 지금 가장 위험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크라레 스니까 말이야.”

미네르바의 말에 이블리스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을 짓긴 했지만, 대답은 시원스럽게 했다. 자신은 지시하는 대로만 행동하면 되기 때문이다. “

“예.”

크라레스는 전쟁 후 대대적으로 전력을 증강시키기 시작했다. 우선 드넓은 대지를 방어하기 위한 병력을 모집하고, 군사 훈련을 시작했으며, 노획물자들을 동원하

여 테세우스를 대량 생산하기 시작했다. 다음에 벌어질 전쟁은 코린트나 크루마 같은 강대국만을 상대로 해야 하기에 출력이 약한 타이탄은 거의 필요가 없기 때문 이다. 그렇다고 드래곤 하트가 없으니 청기사를 제작할 수도 없었고, 남은 선택은 오로지 카프록시아뿐이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최고 출력의 엑스시온은 카프록 시아의 것이었고, 그 때문에 그들은 카프록시아의 변형들을 계속 생산하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크라레스에 비했을 때 크루마는 그래도 형편이 나은 편이었다. 새로운 엑스시온을 만드는 것은 엄청나게 어렵다는 것이 사실이었지만, 저 옛날 위대한 대마법사 안피로스에 의해 그 당시 대단히 많은 엑스시온들이 설계되었고, 그 설계도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그것에 의지하여 고출력을 자랑하는 안티고네나 에프리온, 그리고 카마리에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미네르바의 특명에 의해 에프리온의 생산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었다. 코린트에 비했을 때 기사들의 질이 떨어지는 크루마로서는 그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크루마가 이렇듯 군비 증강에 열심인데, 코린트라고 손놓고 있을 이유는 없었다. 코린트는 코린티아가 파괴된 지 한 달 만에 새로운 타이탄 생산 공장 시설을 갖추 는 놀라운 재주를 부렸다.

일단 타이탄 생산 시설이 갖춰진 후 로체스터 공작이 생산을 명령한 타이탄은 놀랍게도 발렌시아드 기사단이 보유하고 있는 미노바-P형과 흑기사였다. 물론 적기 사도 몇 대 더 생산할 예정이었지만 적기사의 형태상 특성에 따라 집단전에는 흑기사가 더 유리하다는 점이 작용했기에 생산이 재개된다고 해도 2~5대 정도일 것 은 확실했다.

그리고 미노바-P형의 경우 외장을 매우 아름답게 만들었기에 생산하기가 심히 까다로웠다. 그렇기에 미노바-P2형이라는 모델을 새롭게 설계했다. 미노바-P2형 의 외관은 크라레스의 주력 타이탄 테세우스처럼 아주 단순한 외관을 가진 대량 생산형 모델이었지만, 그 엑스시온은 미노바-P형과 같은 1.5라는 고출력을 뿜어내 는 타이탄의 심장이었다.

그리고 로체스터 공작의 명령에 의해 적기사를 흑기사와 같은 집단전용 형태로 개량하는 작업도 비밀리에 추진되고 있었다. 그렇게 해야만 크루마가 자랑하는 신 형 타이탄 안티고네를 상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일단 전쟁이 완전히 종료된 후 각국은 전쟁 때 노획, 또는 수거한 대량의 타이탄들을 이용해서 엄청난 양의 신형 타이탄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 은 주변의 아르곤 제국이나 마도 왕국 알카사스를 자극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들은 저마다 이 강력한 군비 경쟁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 신형 타이탄들을 개발, 또는 구입하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그다음의 전쟁은 어떤 형태로 벌어질지 아무도 모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