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10권 17화 – 아주 오랜 친구의 만남

아주 오랜 친구의 만남

“이봐, 가스톤! 황금 비축분은 얼마나 되지?”

“예? 어디에 쓰시려는지 용도를 말씀하셔야죠. 용병도 더 고용해야 하고, 기병대도 만들어야 하고, 아르곤 국경에 요새도 몇 개 건설해야 하고, 지금 돈 들어가는 곳이 얼마나 많은 줄 아십니까? 용도를 말씀하셔야 우선권을 정해서 금을 드리든 말든 할 거 아닙니까?”

갑작스런 질문에 가스톤은 얼떨떨한 표정을 짓기는 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볼 것도 없이 따지고 들었다. 그가 이렇듯 따지고 든 이유는 자신도 정확한 황금 비축량 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엄청난 양이 소모되고 또 들어오는데, 그걸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엉터리였다.

“으음, 이 궁의 겉을 완전히 황금으로 입히려면 금이 많이 들어갈까?”

가스톤은 순간 자신의 귀가 잘못되었는지 착각을 했다. 대답을 기다리는 듯한 다크의 표정으로 봤을 때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은 아닌 것 같았지만 그래도 확인은 필 요했다.

“궁의 겉을 황금으로 입힌다고 하셨습니까?”

“응.”

가스톤은 어이가 없었다. 이 궁이 작은 것도 아니고, 과거 부유한 상업 국가였던 치레아 왕국의 왕궁 아닌가? 그렇기에 왕궁의 크기도 엄청나게 컸다. 그 표면을 황 금으로 입힌다면 1톤이나 2톤 정도로 끝날 일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표면에 바르는 것인 만큼 약간은 두껍게 입혀야 비바람에 견딜 수 있을 것 아닌가? “지금 정신이 있으십니까? 그게 얼마나 많은 황금이 필요한데요. 그리고 금만 있다고 됩니까? 기술자들도 고용해야 하니까 노임도 생각해야 할 거 아닙니까? 지 금 할 일도 얼마나 많고, 또 돈이 필요한 곳도 얼마나 많은데, 그런 정신 나간 궁리나 하고 있으신 겁니까?”

“으음, 아마도 그렇겠지?”

“으으…, 조금 말이 심하게 나온 것은 용서하십쇼. 하지만 방금 전에 말씀하신 것은 절대로 안 됩니다.”

가스톤은 결사적으로 반대했지만 이 왕궁 주인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흐으으음, 그래도 나는 해야겠어. 그렇다고 세금을 더 거두자는 것은 아니야. 토지에르에게 연락해서 필요한 황금을 보내 달라고 해. 아마도 그 녀석은 보내 줄 거 야. 만약 토지에르가 안 보내 준다면 따로 구해 보기로 하지.”

다크는 만약에 토지에르가 구두쇠처럼 안 준다면 아르티어스의 금고를 털 생각이었다. 원래가 자신들이 기거할 궁의 겉을 황금으로 입히자는 의견을 낸 것은 다크 였지만, 아르티어스도 그 의견을 만족스런 표정으로 찬성한 죄(罪)가 있었다.

만약 그런 사태가 진짜 왔다면 아르티어스는 두말 않고 사랑하는 아들에게 금을 줬을 것이다. 그런 후 토지에르는 아르티어스 어르신에게 으슥한 곳으로 끌려가서 묵사발이 되겠지.

일단 가스톤이 토지에르에게 치레아 대공의 의견을 전하자 의외로 순순히 승낙해 줬기에 가스톤을 놀라게 했다. 토지에르로서야 다크에게 몇 톤이 되었든 황금을 보내 준다고 해도 별로 아까울 게 없다는 것을 가스톤은 미처 몰랐기 때문이다. 토지에르는 가스톤과 일단 의견 조정을 본 후, 다크를 불러 줄 것을 원했다. “안녕하셨습니까?”

“자네도……. 요즘 바쁠 텐데 웬일인가?”

“하하하, 그래도 대공(大公) 전하만 하겠습니까? 황금은 원하시는 대로 말씀하십시오. 즉각 보내드리겠습니다. 참, 연락이 된 김에 전에 설명해 주신 몇 가지 사항 을 확인해 보는 것이 좋겠군요.”

그러면서 토지에르는 서류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확인을 해?”

“예, 타이탄이란 것이 원래가 한 번 만들어지고 나면 다시 손을 본다는 것은 불가능하니까요. 우선, 주문하신 타이탄이 황금색이 맞죠?”

“그래, 될 수 있으면 누런 황금색으로 부탁하네.”

“누런… 황금색 말씀이십니까?”

토지에르의 얼굴이 구겨지는 것도 당연했다. 밝은 황금색이라면 미스릴이 있었다. 미스릴 입힌 타이탄의 표면에 페인트를 칠하지 않으면 밝은 황금색을 내기 싫어 도 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누런 황금색이라니……. 그렇게 되면 미스릴 위에 또다시 황금을 더 입히라는 말이 아닌가?

“응!”

토지에르는 또다시 막대한 추가 지출이 생겼다고 속으로 투덜거리면서 두 번째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머리 형태는 골드 드래곤과 최대한 유사하게 만들어 달라는 말씀이시죠?”

“그렇지.”

“예, 아마도 내일쯤 외장 설계도가 완성될 것입니다. 전체적인 파트의 제작이 꾸준히 되고는 있지만, 스바시에 대공 전하께서 개인 타이탄으로 선택하신 카프록시

아의 생산이 우선이기에 카프록시아 10대의 생산이 끝난 후에야 생산에 들어갈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아마도 내년 봄쯤 되어야 끝나겠군요.

그래도 거의 대부분의 파트들이 카프록시아와 동일하니까 이렇듯 생산 기간을 줄일 수 있는 거겠죠. 참, 카프록시아IV의 이름은 정하셨습니까?”

스바시에 대공 전하라는 것은 예전의 루빈스키 폰 크로아 공작을 말하는 것이었다. 루빈스키도 다크와 마찬가지로 스바시에를 공국으로 하사받았기에 지금은 루 빈스키 폰 스바시에 대공으로 불리우고 있었다.

“이름이라……. 아버지는 드라쿤(Drakoon)이라고 부르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하던데?”

“아, 예, 알겠습니다. 지금 타이탄을 생산한다고 저도 제정신이 아닌지라, 이만 통신을 끊겠습니다. 될 수 있으면 주문대로 만들죠. 시간이 나시면 크로돈으로 오셔 서 설계도도 보시고 마음에 안 드시는 부분을 말씀해 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일단 프로토타입이 제작된 후에는 새로이 변경하기가 아주 힘드니까 말입니다.”

“알겠네. 수고하게나.”

“예, 안녕히 계십시오.”

그라세리안 드 코타스, 아니 카드리안은 드디어 참지 못하고 밖으로 나왔다. 도대체가 자신의 레어 근처에서 떠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두 녀석 때문이었다. 일 도 바쁠 테니까 며칠 있다가 떠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참고 있었지만, 떠나기는커녕 사태가 장기화되자 아예 나무를 잘라서 볼품없는 통나무집까지 한 채 짓는 것을 보고 이들이 쉽사리 떠나지 않을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키에리 발렌시아드는 통나무집 앞의 자그마한 바위 위에 앉아 먼 산을 바라보다가 누군가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그가 천천히 고 개를 돌린 이유는 그 기척이 그라세리안의 것과 아주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왜 그토록 만나고 싶은 친구였는데도 고개를 천천히 돌렸을까? 그 이유는 상대가 그라세리안이 아니라면 실망감만 더 커질 것이기에 그것이 두려웠던 것 이다. 하지만 그곳에는 키에리의 예상대로 그라세리안이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었다.

키에리는 친구를 확인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섰다. 그의 몸은 이제 거의 완쾌된 상태였기에 동작이 민첩하기 그지없었다. 막 그라세리안을 향해 뛰어 들려는 순간 그라세리안의 냉랭한 목소리가 키에리의 행동을 저지했다.

“무슨 일로 왔나?”

키에리는 상대의 쌀쌀맞은 어투에 적이 당황했다.

“자네를 만나고 싶어서 왔네. 내 짐작대로 살아 있었군.”

생사를 모르던 친구를 만난 그 흥분된 표정을 조롱하듯 바라보며, 카드리안은 코웃음을 쳤다.

“훗, 누가 감히 나를 죽인다는 말인가? 그래,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여기까지 온 것인가?”

“그렇네.”

“이제 확인했으면 만족했을 테니 돌아가게. 자네는 언제나 바쁜 사람이었잖나? 나를 위해 이 정도 시간을 내준 것만 해도 감사한다네. 만약에 나를 데려갈 생각으 로 온 것이라면 단념하게나. 난 다시는 그곳에 돌아갈 생각이 없어.”

하지만 이번에는 키에리의 반응이 카드리안의 예상과 조금 달랐다. 그는 이미 그 정도는 예상이나 하고 있었다는 듯 말을 이었던 것이다.

“그런가? 그렇다고 해도 상관없네. 일단 들어가세나 술이라도 한잔해야지.”

“내가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은 자네도 잘 알지 않나?”

“그래도 자네는 포도주를 마셔야 할 의무가 있네. 리사가 죽었거든. 그게 우리들의 규칙이었잖은가?”

키에리의 말에 카드리안은 경악했다. 리사의 검술 실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를 죽일 사람은 없을 것이고, 혹시나 병에 걸린 것이 아닐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는 다급히 사인(死因)을 물어봤다.

“설마? 리사가……. 왜 죽었지? 건강했었는데. 내가 모르는 병에 걸렸었나?”

그라세리안의 물음에 키에리는 쓸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크루마와의 전쟁에서 전사했지.”

“자네들은 기어코 그 전쟁을 벌이고야 말았군. 하지만 크루마에 그녀를 죽일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검객이 있었나? 참, 그렇군. 미네르바라면 가능했을지 도..”

“미네르바는 아니었어. 미네르바는 로체스터가 상대하고 있었지. 루엔이라는 젊은이였네. 복수는 내가 해 줬지.”

이제 대충 상황이 어떻게 돌아간 것인지 감을 잡은 카드리안은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의 웃음소리에는 왠지 쓸쓸함이 묻어 있었다.

“하하핫, 그렇다면 자네가 원하는 대로 되었겠군. 크루마는 멸망했을 테고, 친구의 복수도 완성했고. 그런데 여기에는 왜 왔나? 새로운 점령지를 다스리기에도 시 간이 모자랄 텐데 말이야.”

그런 카드리안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바라보다가, 키에리는 뭔가 짚이는 부분이 있었는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자네는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 모양이군. 이번 전쟁에서 코린트는 패배했어.”

그라세리안은 그 말을 듣고 너무나도 놀라서 잠시 동안이지만 할 말을 잊을 정도였다.

“설마? 농담이겠지.”

“진짜일세. 자네가 한번 알아 보면 바로 들통 날 거짓말을 왜 하겠나? 크루마에게 쟈코니아 산맥 동쪽을 다 뺏겼고, 크라레스에게는 크로나사를 뺏겼지. 이제 더 이상 싸울 여력이 없어서 휴전했다고 하더군.”

“자네가 있는데도 그 모양이 되었나?”

“아니, 나는 죽은 걸로 되어 있네. 크루마 전쟁의 패전 책임으로 참수형을 당할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을 로체스터가 구해 준 것이지. 나는 크루마에서 전사한 것으로 되어 있어. 그 덕분에 크라레스 전쟁에는 참전해 보지도 못했지.”

“그럴 수가……. 아무리 적의 타이탄이 강하다고 하더라도 인간이 조종하는 이상 조종하는 사람의 실력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되어 있어. 코린트에는 다섯 명 의 마스터가 있었는데, 어떻게 크루마 따위에게 패전할 수 있다는 말인가?”

키에리는 쑥스러운 듯 미소 지으며 말했다.

“나보다 더 강한 고수가 있었지.”

“미네르바가 그렇게 강했다는 말인가?”

“아니, 미네르바가 아니라 금발을 길게 기른 소녀였네. 크라레스의 다크 폰 로니에르 공작이라고 하더군.”

“금발? 그렇다면..

카드리안에게 짚이는 사람이 있었다. 자신에게 도전했던 그 맹랑한 호비트 소녀. 그 소녀도 잡티 없는 금빛 머리카락을 길게 길렀었다. 자신의 브레스를 손쉽게 막 아 냈고, 골드 드래곤 아르티어스를 양아버지로 삼고 있는 불가사의한 소녀. 아마도 그녀라면 키에리와 싸워서 승리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자네는 이미 알고 있는 모양이군. 제임스는 자네가 행방불명되었을 때 조사해 본 후, 그녀가 자네를 죽인 것이 아닌가 추측했었네. 그러니까, 자네가 그 소녀와 만 나기는 만난 거였군.”

“쩝, 만났었지.”

“싸운 흔적이 있다고 들었는데, 사실인가?”

카드리안은 고개만 살짝 끄덕여 그것이 사실임을 증명해 주었다.

“자네가 은거한 것과 그 소녀가 관계가 있나?”

“아니, 나 혼자만의 결심이었네. 더 이상 있을 필요를 못 느꼈지.”

“한 번만 더 조국을 위해 일해 주지 않겠나? 이 상태라면 코린트는 멸망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네. 적은 너무나도 강하고 코린트의 힘은 쇠약해져 있어. 자네가 도 와준다면 또다시 우리들의 조국을 강대하게 탈바꿈시킬 수가 있어. 제발 도와주지 않겠나?”

카드리안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사양하겠어. 나는 이제 코린트의 일에는 손뗐어. 자네도 쓸데없이 나서지 말고 이 기회에 은퇴하게나.”

“그 소녀는 대단한 실력의 기사일세. 이렇게 혼자 있어서는 그 소녀에 대한 복수도 불가능해. 기사와 싸우는 데는 마법사보다는 기사가 좋다는 것을 자네도 잘 알 지 않나?”

“아까도 말했지만, 내 은퇴는 소녀와 무관하네. 소녀의 일과 코린트를 연관짓지 말게. 사실 전력을 다한다면 그 소녀쯤이야 그렇게 무섭지 않아. 정작 무서운 것은 그 소녀의 후견인(後見人)이지.”

후견인 키에리에게도 언뜻 짚이는 것이 있었다.

“후견인이라면 소녀와 함께 왔던 마법사 말인가?”

“그래 그 마법사 말일세. 그 사람을 봤나?”

카드리안의 질문에 키에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제임스의 보고서를 통해 그라세리안과 소녀의 뒤를 추격하듯 공간 이동해 들어간 마법사가 한 명 있다는 사 실만을 알고 있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얘기만 들었지.”

“그를 화나게 해서는 안 돼. 그는 사람이 아니라 골드 드래곤이야. 말토리오 산맥의 지배자지.”

카드리안의 말에 키에리는 경악했다.

“드래곤이라고?”

“그렇다네. 그리고 그녀의 양아버지이기도 하지. 그는 유희를 위해 인간 세상에 나온 것이 아니라 자신의 딸을 위해 나온 것일 뿐이야. 그렇기에 그에게는 유희의 규칙 따위는 중요하지 않아. 만약 소녀가 잘못된다면 사태는 겉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르게 되어 있어. 그 소녀가 소속된 나라가 적이라면 처음부터 손떼는 것이 좋아. 무슨 일이 있어도 승리는 불가능해.”

“자네가 하는 말의 뜻은 대충 이해하겠는데, 유희라는 것이 뭔가?”

카드리안은 잠시 망설이는 것 같았지만 이윽고 결심이 섰는지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드래곤은 엄청난 수명을 가진 종족이야. 거의 8천 년 가까이 살 수 있지. 그렇기에 그들은 그 오랜 삶에서 오는 권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른 생명체의 삶을 즐긴 다네. 예를 들어 용사로 변해서 세상을 호령하기도 하고, 오크가 되어 산적질을 하기도 하지. 그걸 보고 유희라고 부르는 거야. 단, 이 유희에도 드래곤들끼리 무언 중에 정해 놓은 규칙이 있지.

사실 이 규칙이 뭐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드래곤들은 자신의 생명에 지장이 없는 한 지키려고 노력한다네. 사실 자신이 처한 상황이 어렵다고 해서 번번이 드래곤으로 되돌아간다면 그 생물의 삶을 체험하는 자극적인 유희가 될 턱이 없잖은가? 하지만 아르티어스의 경우 유희를 위해 그 소녀를 따라 나온 것이 아니라는 말이지.”

이런 말은 듣기에도 처음인지라 키에리는 문득 혹시나 코타스가 드래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그만큼 드래곤들의 생활은 베일에 싸여 있었던 것 이다. 하지만 몇 억이 넘는 인구에 비했을 때 드래곤은 몇백 마리도 안 되었다. 그리고 그들 중에서 트랜스포메이션하여 세상을 떠도는 드래곤은 몇십 마리도 안 된 다. 이는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트랜스포메이션한 드래곤을 만날 가능성이 진짜 거의 없다는 것을 뜻했다.

그렇기에 키에리는 자신에게 그렇게 낮은 가능성이 찾아올 리는 없다는 이성적인 생각도 함께 들었던 것이다. 그는 애써 코타스가 드래곤일지도 모른다는 망상을 지워 버리며 자신이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을 질문했다.

“자네, 그걸 어디서 들었는가?”

“어디서냐고? 그러니까…….”

카드리안은 일부러 좀 뜸을 들이며 변명할 여유를 잡은 후 답변을 시작했다.

“여기 사는 블루드래곤 카드리안에게서 들었지. 자네도 알다시피 나는 카드리안의 영역 안에서 살고 있네. 서로가 이웃이니까 한 번씩 만나기도 하지.”

“그렇다면 자네, 드래곤과 친하다는 말인가?”

“아니, 친한 것은 아니고 서로 아는 척은 하는 사이라는 말이지. 어쩌다 한 번씩 만나기도 한다네. 운이 좋다면 같이 차 한 잔씩 하면서 얘기를 하기도 해. 원래가 드래곤은 그 오랜 삶에 염증을 느끼는 생명체니까 그런 파격적인 행동도 가능하지. 하지만 그것뿐, 더 이상 관계가 진척되지는 않더군. 왜냐하면 드래곤은 원래 사 람을 매우 하등한 족속 정도로 생각하고 있으니까 우정 따위가 싹틀 수가 없어. 그런데 아르티어스와 그 소녀는 매우 예외적인 경우지. 어떻게 그런 관계가 되었는 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일단 그녀는 아르티어스의 양녀고, 그녀를 건드리면 안 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야.”

“역시, 자네를 만나니까 모든 궁금증이 해결되는군. 자네는 정말 없어서는 안 될 친구야. 제발 나하고 함께 산을 내려가세. 조국 코린트는 지금 자네를 원하고 있 “어.”

“나는 사양하겠네. 그렇게 좋다면 자네나 가 봐. 나는 이 말을 하고 싶어서 온 거였어.”

카드리안은 그 말을 끝으로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어딘가로 공간 이동을 해 버린 것이다. 키에리는 오랜 친구의 결심이 확고하다는 것을 오늘의 대화로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다크라는 무서운 적의 존재에 대해서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