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10권 18화 – 다크의 실종
다크의 실종
키에리가 블루드래곤 카드리안을 만나고 있던 그때, 치레아 공국에서는 갑작스런 다크의 실종으로 난리가 나 있었다. 웬만한 직위에 있는 인물이 실종되었다고 해도 어떻게 된 것인지 철저히 조사하는데, 행방불명된 대상이 치레아 공국의 주인인 치레아 대공 전하이니 그것은 당연했다.
“아, 아르티어스 님! 대공 전하께서 갑자기 사라지셨습니다.”
장교의 보고에 아르티어스는 아들의 야속함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뭐야? 이 녀석이 애비를 놔두고 어디로 튀어 버린 것이지? 그래! 모든 일은 나한테 떠넘기고 튀어 버렸다 이거지. 자기 혼자만 어딘가를 여행하면서……. 에휴, 내 팔자야.”
원망스레 말하는 아르티어스에게 장교는 재빨리 자신의 말을 정정해서 보고했다. 아르티어스가 사건의 본질을 완전히 잘못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게 아닙니다. 실종되셨다는 말입니다. 그곳에 가 보십시오. 입고 계시던 옷가지만 남겨 두고 갑자기 사라지셨다니까요?”
“뭐라고 옷가지를 남겨 두고?”
그제야 사태의 중요성을 깨닫고 아르티어스는 그곳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아르티어스가 알고 있는 한 다크는 공간 이동 마법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르티어 스가 사건의 현장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시선을 압도할 정도로 거대한 강철 구조물이었다.
“이게 왜 나와 있는 거야?”
바로 그 강철 구조물은 다크가 사용하던 청기사였다. 아르티어스는 청기사의 흉부에 자신을 비꼬아 만든 골드 드래곤의 문장이 붙어 있는 것을 보고, 이게 다크가 사용하던 타이탄이라는 것을 재빨리 눈치 챘다. 아르티어스는 청기사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타이탄은 주인과 정신적으로 연결되어 있기에 어떻게 된 노릇인지 가 장 확실히 알고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너는 왜 나와 있는 거지? 주인하고 같이 간 것이 아니었냐?”
그러자 안드로메다는 굵직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원래 주인이 있는 타이탄이라면 주인 외의 인물과 대화할 수 없었지만, 그에게는 지금 주인이 없었다.
<갑자기 주인과의 맹약이 해지되었다.>
“그렇다면 다크가 그 맹약을 해지한 거야?”
<그것은 아니다. 만약 주인이 그런 말을 했더라도 나는 결코 들어주지 않았을 테니까. 주인의 존재가 갑자기 사라지면서 맹약이 깨진 것이다.>
아르티어스는 청기사가 하는 말의 의미를 파악하고는 놀라서 외쳤다.
“맹약이 깨졌다고? 골렘의 맹약은 그렇게 쉽게 깨질 수가 없는 것인데, 도대체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이냐? 거기 덩치! 너는 다크가 없어지는 것을 봤냐?” 갑자기 아들이 없어진 것으로 인해 누군가 걸리기만 하면 가루로 만들겠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내는, 광기를 머금은 아르티어스의 눈과 마주치자 팔시온은 ‘팔시 온’이라는 자신의 자랑스러운 이름을 놔두고 ‘덩치’라고 간단히 축약해서 말한 상대에게 항의할 말이 목구멍 밑으로 쑥 내려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아르티어스의 공포스러운 눈동자를 마주하면서 온몸이 쪼그라드는 것만 같은 위압감을 느꼈지만 사력을 다해 말했다. 만약 말하지 않으면 진짜 아르티어스 에게 찢겨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팔시온으로서는 그야말로 이렇게 무섭게 보이는 아르티어스의 모습은 맹세코 처음이었다. 도대체 입만 열지 않으 면 미녀와 혼동하기 쉬운 저 아름다운 얼굴에서 저런 광기와 살기가 어떻게 뿜어져 나오는 것일까? 또 아무리 미녀가 미치도록 화를 낸다고 해서 이렇듯 다리가 떨 릴 정도의 공포감을 느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어쨌든, 평상시에는 다크에게 끽소리도 못 하고 끌려 다니는 팔푼이 아빠쯤으로 인식되고 있었던 아르티어스였기에, 도대체가 저 사람이 그 사람이 맞는지 의문이 솟아오를 지경이었다. 이 세상에서 다크가 어리광을 부리는 유일한 존재가 아르티어스이듯, 평소에 팔시온이 대하는 얼빠진 아르티어스의 모습은 이 세상에서 단 한 사람뿐인 다크의 앞에서만 나타나는 것이라는 것을 팔시온은 여태까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대공 전하께선 제스터에게 검술을 가르치시던 도중에 갑자기 사라져 버리셨습니다. 그야말로 갑자기 몸통이 쓱 사라지면서 옷가지와 검이 땅바닥으로 투둑 떨어 졌습니다. 제가 미친 것이 아니라 정말이라구요. 저기 옷가지들이 그걸 증명하고 있잖아요. 안 그러냐, 제스터?”
우연히 그들 주위에서 검술을 연마하다가 증인이 되어 버린 팔시온은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옷가지와 검을 가리켜 보이며 그때 상황을 말했지만, 아르티어스가 자 신의 말을 믿는 것 같지 않자 식은땀을 흘리며 제스터에게 팔밀이를 했다.
로체스터 공작에게 지시받은 대로 제스터는 전쟁터에서 열과 성을 다해서 다크에게 봉사했고, 그것을 인정받아 이곳까지 왔다. 물론 치레아에는 다크를 시중드는 세린이 있었다. 그렇기에 제스터는 요즘 다크의 시중을 드는 대신 그의 간단한 심부름을 하면서 지내고 있었고, 다크는 검술에 대한 제스터의 비범한 재능을 눈치 채고는 요즘 그를 가르치는 데 조금씩 시간을 투자해 주고 있었다.
제법 검술을 익혔고, 키도 제법 크다고 하지만 제스터는 이제 겨우 열여섯 살 정도의 미숙한 청년이었기에, 저 격렬한 광기를 뿜어내고 있는 아르티어스의 눈빛에 질려서 꼼짝도 못 하고 있었다.
“사실이냐?”
아르티어스는 주눅이 들어서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 제스터를 잡아먹을 듯이 바라보다가, 드디어는 참지 못하고 고함을 질렀다.
“대답을 햇! 저 덩치가 한 말이 사실이냐니까?”
“저…, 그, 그러니까 아, 아, 아르티어스 님. 파, 팔시온 님의 말이 사, 사실이십니다.”
더듬더듬 주눅이 든 채 제스터가 말을 마치자 아르티어스는 그 광기 어린 눈동자를 하늘로 향했다. 갑자기 사라졌다면 공간 이동 마법이나 뭐 그런 것을 첫째로 생 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크는 공간 이동 마법을 할 줄도 몰랐고, 또 안다고 하더라도 남을 가르치다가 갑자기 공간 이동할 이유도 없었다. 그렇다면 둘째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이 다크를 강제로 공간 이동시켜서 끌고 간 경우이다.
아르티어스의 눈이 주위를 샅샅이 훑어나갔다. 하지만 패밀리어(Familier)를 찾을 수는 없었다. 마법사들은 필요에 의해 자신의 눈과 귀, 그리고 손과 발이 되어 줄 동물을 평생 동안 딱 한 마리만 패밀리어로 선택할 수 있었다. 물론 패밀리어는 선택된 후 교체가 불가능했고, 패밀리어가 무슨 이유인가로 사망했을 때 그 마법 사는 엄청난 정신적 충격에 바보가 되거나 심지어 사망하는 경우까지 있는 아주 위험도가 큰 마법이었다.
하지만 패밀리어를 가지고 있다면 정보 수집에 매우 효과적인 것은 사실이었기에 한 번씩 사용되기도 하는 마법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마법사는 패밀리어를 만 들지 않았다. 패밀리어를 만듦으로 인해 생기는 이점보다 위험도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패밀리어를 이용해서 다크가 있는 좌표를 잡고 강제로 공간 이동해서 끌고 간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문제였기에 아르티어스는 어떤 망할 놈의 마법사인지 모르 겠지만, 그의 패밀리어를 찾은 것이었다. 하지만 잠시기는 했지만 패밀리어를 찾다가 보니 뭔가 이상한 점을 느낄 수 있었다. 공간 이동을 한다고 해서 절대로 존재 감이 사라질 수는 없다는 사실이 불현듯 떠올랐던 것이다. 타이탄과의 맹약이 해지되었다는 말은 아예 다크라는 인물이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았 기 때문이다.
아르티어스는 생각을 정리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기에 그도 상당히 당황했고, 또 그 때문에 상황 판단이 흐려질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존재 자체를 없앨 수 있는 마법이 있던가? 맞아. 존재 자체를 없앤다면 차원 이동뿐이지. 이 세계에서는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니까 말이야. 그렇다면 왜 갑자기 차원 이동이 발생한 거지? 예전에 차원 이동해서 이리로 왔으니까 자연히 다시……. 아니야. 그것은 아니야. 어떤 망할 놈이 개입했다고 봐야 해. 그렇다면 다크를 향해 차원 이동 마법을 쓸 놈이 누가 있지?”
그러다가 아르티어스의 눈에 땅 위에 널브러져 있는 다크의 옷가지 사이로 뭔가 반짝이는 푸른 것이 눈에 띄었다. 바로 다크가 언제나 끼고 있던, 아니 뺄 수가 없 었기에 끼고 있을 수밖에 없던 반지였다.
“세상에, 아쿠아 룰러까지 그대로 있다니……. 그렇군! 딴 놈이 그녀에게 마법을 걸었다면 아쿠아 룰러가 막아 줬을 거야. 그런데도 아쿠아 룰러가 방관했다면 차 원 이동 마법을 쓴 놈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아르티어스는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나이아드!”
이런 행동을 할 놈은 나이아드 뿐이었다. 아르티어스는 나이아드를 떠올리면서 얼굴색이 핼쑥해졌다.
“자신이 만든 공간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라면 구태여 이런 방법을 쓸 이유가 없다. 꿈속에서 그 아이의 정신만을 끌어들여도 충분하기 때문이야. 이렇게 완전한 차 원 이동까지 사용해서 다크를 어디로 데려갔을까? 왜? 무슨 목적으로… 그게 이 사건을 푸는 열쇠야.’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아르티어스는 기겁을 하며 주문을 재빨리 외워 대기 시작했고, 곧이어 그의 몸은 사라져 버렸다.
무서운 얼굴로 혼자서 북 치고 장구치고 다 하던 아르티어스가 갑자기 사라져 버리자 남은 사람들은 멀뚱멀뚱한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훔쳐봤다. 하지만 그들 은 누구에게서도 그 해답을 얻어 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