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10권 22화 – 아르티어스의 바보스러운 모습

아르티어스의 바보스러운 모습

“여기는……”

“오오, 이제 정신이 드냐?”

다크는 자신을 향한 한없는 사랑을 가득 담고 있는 자애로운 아르티어스의 눈동자를 보며 피식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된 거죠? 이상한 밀림이 우거진 곳에서…….”

“아, 거기가 정령계일 게다. 5대 정령의 힘이 절대적으로 행사되는 미지의 세계지. 하기야 물, 불, 바람, 번개, 대지의 정령이 함께 어우러져 있을 테니 어떤 꼴을 하 고 있을지는 대충 감이 잡힌다마는……. 그래, 네가 건강하게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해 너무나도 감사하고 있다.”

아르티어스는 자신도 모르게 누워 있는 아들을 두 손으로 일으켜 꽉 껴안았다. 정말 그에게는 지금 아들의 건강과 행복 이상 아무것도 원하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 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처음에는 조용히 안겨 있던 다크의 얼굴빛이 핼쑥해지면서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으으…, 숨 막혀요.”

“으엑, 미안하구나. 내가 힘을 너무 줬나?”

아르티어스는 숨 막혀 하는 아들에게 미안한 감정을 품으며 뒤로 물러선 후에야, 아들이 어떤 꼴을 하고 누워 있는지 불현듯 깨달았다.

방금 상체를 일으킨 덕분에 새하얀 이불이 아래로 내려가고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친 뽀얀 상체가 드러나 있었기 때문이다. 정작 아들 녀석은 그런 것에 아무런 신경 도 안 쓰고 있는데, 오히려 아르티어스가 민망해졌다. 아르티어스는 오래전부터 오랜 시간 인간계를 떠돌았기에 인간들의 생활을 꽤 많은 부분 이해하고 있었기 때 문이다.

“잠깐만 기다려라. 옷을 장만해 올 테니…….”

아르티어스가 나가고 잠시 후 웬 녹색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아름다운 미녀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흔히 엘프들이 그러하듯 그녀는 짧은 치마를 입고 있었다. 엘프 들의 경우 숲에서 생활하기에 치마는 짧게, 그렇지 않으면 바지나 반바지를 애용했다. 그렇게 해야만 나뭇가지에 걸리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아르티어스와 격전을 치른 탓에 거의 걸레가 되어 버린 옷을 벗어 버린 후 화사한 새 옷으로 갈아입고 있었는데, 깜찍하게 생긴 작은 조끼가 그녀의 가냘픈 몸매에 아주 잘 어울렸다.

“이것을 입어요. 내가 입던 옷이기는 하지만 없는 것보다는 낫겠죠. 키가 나보다 좀 작긴 하지만 잘 어울릴 거예요.”

“당신은 누구지…요?”

다크는 상대의 몸에서 은근히 느껴지는 강렬한 마나를 통해 상대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저 크고 뾰족한 귀에다가 저 얼굴…, 어렴풋 이 기억에 있는 모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잠시 뒤 예전에 자신을 쫓아다니던 도둑 엘프의 모습이 떠올랐다.

“엘프?”

그녀는 살포시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엘프는 아니지만 키아드리아스라고 해요. 그 옷을 입고 나와요. 소개해 줄 사람이 있어요. 그도 당신이 깨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죠.”

키아드리아스라고 소개한 여인은 옷가지를 건네준 후 수수께끼 같은 말만을 남기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다크가 예쁘게 차려 입고 밖으로 나섰을 때, 그의 눈에는 아들의 예쁜 모습을 보고 자랑스러워하는 아르티어스와 방금 전에 봤던 수수께끼 같은 엘프 여인, 그리고 카렐이 탁자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카렐은 다크를 보고 빙긋이 미소 지으며 말을 건넸다.

“오랜만이야. 내가 선물한 아쿠아 룰러 때문에 그렇게 고생을 했다니 정말 미안해.”

그 말에 다크는 미소를 지었다.

“아니, 만약 그게 없었다면 아빠를 만나지 못했겠지.”

다크의 사랑이 듬뿍 배어 있는 눈길을 받은 아르티어스의 얼굴이 헤벌쭉 벌어졌다. 그것을 보며 키아드리아스는 자신이 카렐을 정말 사랑하듯, 아르티어스도 저 소녀를 엄청나게 아끼고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키아드리아스로서는 아르티어스의 저런 바보스러운 모습은 상상할 수도 없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