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10권 4화 – 아르티어스의 정체

아르티어스의 정체

미네르바는 부하의 보고에 매우 흥미를 느꼈다. 그녀의 앞에 서 있는 사내는 궁중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을 종합하여 체계적으로 정리한 후 그녀에게 밀고하는 것이 주 임무였다. 물론 이 같은 행위를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녀의 직위는 전군의 총사령관이었지만, 현실적으로는 군대에만 신경 쓸 수 없었던 것이다. 그녀의 정적들도 감시해야 했고, 또 그녀를 모략하는 따위의 엉뚱한 유언비어가 돌아다닐 수도 있기에 이런 부하의 존재는 거의 필수적이었던 것이다.

“호오, 아르티어스라는 이름을 가진 존재를 찾고 있다고?”

“옛, 전하.”

“그래, 찾기는 찾았느냐?”

“며칠간 찾았사오나 자료가 거의 없기에 그린레이크 공작 전하께서는 매우 당황하고 계신 눈치였사옵니다. 브로마네스가 쟈코니아 산맥에 거주하는 만큼 쟉센 평 원 주둔군에도 그 이름을 가진 주민이 없는지 찾아보라고 협조 공문을 띄웠사옵고, 혹시나 코린트 사람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에 첩자들이 그 이름을 지닌 사람 을 찾는다고 광분하고 있사옵니다.”

부하의 말에 미네르바는 웃음을 터뜨렸다.

“호홋! 재미있군. 그래 그 녀석은 이번 일을 어떻게 처리할까……. 참! 브로마네스가 준 기간이 1년이라고 했느냐?”

“예, 전하. 그 안에 완성하라고 했사옵니다.”

그녀는 부하의 대답에 매우 유쾌한 마음이 들었는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조금 더 기다려 보고 찾아낼 방도가 없다는 것이 알려지면 폐하께 천도하는 것이 어떻겠는지 여쭤 봐야겠군. 이만 가 보거라.”

“옛! 전하.”

젊은이가 사라지고 나자 미네르바는 호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황금 10톤과 거대한 레어를 짓는 데 들어가는 돈 따위야, 이 거대한 도시가 멸망하는 시간을 1년이 나 늦춰 준다면 아까울 것이 없었다.

코린트의 경우 수도가 하루아침에 날아간 결과로 지금 엉망진창이 아닌가? 하지만 1년이라는 시간 여유가 있다면 주민들을 새로운 도시로 이주시키고, 또 각종 공장들이라든지 모든 기반 시설들을 점차적으로 다른 도시로 옮기기에 충분했다. 거기에다가 더욱 기분 좋은 것은 그 꼴사나운 그린레이크의 얼굴을 이 도시가 잿 더미가 되는 그날부터 다시는 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다.

미네르바는 콧노래를 부르면서 흥겹게 말했다.

“그 녀석의 참수(斬首)는 내가 직접 해도 될지 폐하께 여쭤 볼까? 호호호.”

그날 그린레이크가 마법진을 이용하여 서둘러 도착한 곳은 자신의 고향 마을이었다. 자신의 고향 마을의 한 귀퉁이에는 엘프 여행자들을 위한 이동용 수신 마법진 이 그려져 있었고, 혹시나 그곳에 잡초 따위가 자라거나 나무토막 같은 것이 올라가지 않도록 세심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이동 마법시 이런 물체가 존재하는 곳으로 이동해 온다면 간섭 현상에 의해 치명적인 결과가 생길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희뿌연 빛이 번쩍거리다가 그린레이크가 순간적으로 마법진 위에 모습을 드러내자 그것을 가장 먼저 눈치 챈 엘프들이 그린레이크에게 다가와서 인사를 건넸다. 그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 그린레이크는 크루마에 사는 모든 엘프들 중에서 가장 출세한 몇 명되지 않은 엘프들 중의 한 명이었고, 또 그린레이크는 그 높은 직위를 이용해서 크루마에 살고 있는 엘프들의 권리 신장에 노력하고 있었기에 꽤 평이 좋았기 때문이다.

“어서 오십시오, 그린레이크.”

“잘 있었는가? 엘리노아.”

순식간에 엘프들이 그의 주위에 모여 들었기에 그린레이크는 하나하나 그들과 인사를 나눈다고 매우 바빠졌다. 그는 따로 할 일이 있기에 여기에 왔지만, 그렇다 고 오랜만에 만난 고향의 엘프들을 못 본 체 지나칠 수는 없었기에 잠시지만 시간을 할애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바로 이때 거의 10년은 보지 못했던 그리운 얼굴 이 그의 눈에 띄었다.

“어서 오거라.”

“안녕하셨습니까? 아버님.”

“그래, 우리들이야 안녕하지. 그런데 어쩐 일이냐? 설마 대 제국 코린트와 전쟁이 벌어졌다고 들었는데, 피신이라도 온 것이냐?”

“아닙니다, 아버님. 전쟁에서는 승리했습니다.”

“오오, 기쁜 소식이구나. 들어가서 축배를 들어야겠어. 어서 오거라. 마침 지난 가을에 담가 놓은 산딸기주가 남아 있지.”

오랜만에 만난 아들과 또 그 아들이 가져온 좋은 소식 때문에 기뻐하는 아버지를 보고, 그린레이크는 지금 자신이 어떤 처지에 놓여 있는지 말을 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그는 “이럴 시간이 없는데…’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마을의 엘프들과 아버지, 그리고 동생의 손에 이끌려 촌장인 아버지의 집으로 향할 수 밖에 없었다.

엘프들은 숲을 매우 사랑하는 종족이다. 왜냐하면 숲은 그들에게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외부의 족속들 과 별로 연락을 취하지 않는 상당히 폐쇄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엘프에 대해 잘못된 이야기들이 많이 전해져 있었다.

사실 엘프는 숲을 사랑하고 자연에 순응하는 종족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세간에 전해지듯이 육식도 안 하고 이슬만 먹고 사는 숲의 요정과 같은 종족은 절대로 아니었다. 그들의 허약하면서도 아름다운 외모를 봤을 때 파리 한 마리 죽일 수 없을 것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사실 그들은 매우 민첩하면서도 강인했다. 그리고 엘 프들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광대한 숲을 필요로 하는데, 그 안에 들어오는 침입자들을 살려 두는 예가 거의 없을 정도로 호전적이었다.

숲은 엘프들의 삶에 꼭 필요한 것이었기에 그들은 가급적 숲을 파괴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나무를 베거나 풀을 없애는 것을 꺼리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이들은 정착해서 살기 위한 좋은 곳을 발견하면 그곳에다가 진흙 벽돌을 이용하거나 돌을 깎아서 집을 짓는다.

물론 이때 가급적이면 숲에 해가 가지 않도록 노력하지만 어떤 나무를 잘라 내지 않고는 집을 세울 공간이 부족하다면 가차 없이 나무를 잘라 없애기도 한다. 엘프들은 농사를 짓지 않는다. 그렇다고 목축을 하지도 않는다. 그들의 식생활은 태곳적 호비트들이 이 땅에 태어났을 때 행해졌다고 생각되는 것, 즉 사냥과 채집 생활이었다. 숲에서 나오는 각종 열매나 버섯 따위가 그들의 주된 식량이 된다.

또 숲에서 생활하는 모든 동물들도 그들의 식량원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자신들의 삶에 있어서 모든 것을 제공해 주는 숲을 보존하기 위해 힘을 쏟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생활 방식은 숲을 개척하여 농경지나 목축지로 만들려는 호비트들과 정면으로 대치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예전에는 호비트들과 충돌도 심했었 다.

엘프들의 강력한 마법과 사냥을 통해 다져진 활솜씨는 호비트들에게 상당한 위협을 줬다. 하지만 호비트는 농경이나 축산을 통해 방대한 생산력과 그에 걸맞은 인 구를 보유하고 있었고, 엘프들은 그야말로 전투에서는 승리하면서도 뒤로 밀려들어 갈 수밖에 없었다.

엘프들이 호비트들과의 전쟁에서 밀리는 데는 그들이 하나의 국가를 구성하지 못하고 작은 부족 단위로 흩어져서 생활한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또 미모를 지닌 엘프들의 경우 매우 좋은 노옛감이었기에 엘프 사냥꾼들까지 등장해 어린 엘프들을 납치하면서 엘프들의 숫자는 급감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크루마 제국이 들어서면서 엘프들의 처지는 매우 개선되기 시작했다. 개국 공신들 안에 엘프가 끼여 있었기에 크루마는 엘프들에 대해 매우 관대한 국가 였다. 또 크루마는 엘프들에게 방대한 숲을 제공할 수 있을 정도로 넓은 국가였다.

크루마는 엘프들을 자신의 국가 안에 흡수함으로써 강력한 궁수와 뛰어난 마법사를 동시에 확보할 수 있었다. 지금처럼 마법 생물 타이탄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 는 시대에 강력한 마법사의 확보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했고, 지금에 이르러서야 엘프들을 우대하여 그들의 힘을 얻고자 하는 국가들도 생겨나고 있었다.

하지만 엘프들은 극한 상황이 닥치지 않는 한 자신들이 한 번 정착한 땅에서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기에, 엘프 마법사들을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는 크루마의 번성 이 계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소박하게 돌로 만든 집 안은 창문이 그렇게 크지 않았기에 어두컴컴할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집 내부는 생각만큼 어둡지 않았다. 빛의 정령 윌 오 위스프들을 불러 내어 빛을 밝힌 덕분에 집 안 곳곳에 작은 빛 무리가 떠다니고 있었고, 그에 따라 책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내부는 매우 밝았던 것이다.

오랜만에 매우 반가운 손님이 왔기에 월동을 위해 저장고에 놔뒀던 사슴 고기를 꺼내어 굽고, 각종 과일들을 풍성하게 내 왔다. 그리고 가죽 부대에 담겨져 있던 산딸기주가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갔다. 그들은 협동 생활을 했기에 그날그날 채집한 음식물은 일단 한 곳에 집산된 후 다시 각 사람들에게 골고루 배분되었다. 만약 그날 채집한 식량이 없었다면 마을 전체가 굶는 경우도 있었다. 하루 정도 굶는다고 죽는 것은 아니지만, 겨울을 날 식량이 없다면 마을 전체가 굶어 죽을 수밖에 없 었기에 겨울용 비축 식량을 꺼내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만큼 마을의 엘프들에게 그린레이크는 반가운 손님이었다.

하지만 그린레이크는 가족들과 마을 엘프들의 환대가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 왜냐하면 지금 그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었기에 마음은 급한 상태였고, 그들은 지금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방해하는 훼방꾼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축제도 끝나 버렸고, 엘프들은 하나 둘씩 자신의 집으로 흩어졌다. 그린레이크도 여러 엘프들이 권하는 술을 마시며 담소를 나누다가 오늘 목 적했던 일을 하기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피곤하다는 이유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 다음 먼동이 터 오는 새벽에 원래 자신이 목적했던 곳을 향해 출발 했다.

그린레이크의 고향 마을 근처에는 그린 드래곤이 한 마리 살고 있었다. 이제 겨우 1천4백 살 정도밖에 안 된 드래곤이었는데, 성체가 되어 아버지에게서 독립하게 되었을 때 그린레이크의 고향 마을 근처에 둥지를 틀었기에 지금껏 9백여 년간 이웃의 엘프들과 친분을 유지해 오고 있었다. 드래곤들 중에서는 비교적 성질이 유 순한 그린 드래곤답게 그 드래곤은 자신과 취향이 유사한 엘프들과 아주 사이좋게 지내 오고 있었기에, 그린레이크는 이 드래곤에게 감히 부탁할 생각을 했던 것이 다.

며칠 동안 그린레이크 밑에 있는 마법사들이 열심히 자료를 뒤졌고, 또 ‘아르티어스’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을 몇 명 찾아내기는 했지만, 부하들을 파견해 알아 본 결과 레드 드래곤 브로마네스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대답만을 듣고 돌아왔다.

물론 아직도 시간은 많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상대가 누군지를 알아야 그를 초대할 방법에 대해서도 궁리를 할 수 있을 텐데, 그 대상이 누군지조차 아직 파악하 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그를 점점 더 초조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린레이크는 일단 하나하나 가능성을 줄여 가기로 결정했다. 우선 드래곤 드래곤의 개체 수는 많지 않으니 조사하는 데도 그렇게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일단 드래곤들을 철저히 조사한 후 드래곤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면 그다음으로 오래 사는 종족인 엘프를 집중적으로 조사한다. 그런 다음 엘프도 아니라는 확신이 들면 드워프를 조사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물론 그 조사와 병행하여 확실하게 인구 조사가 되어 있는 호비트도 조사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드래곤에 대해서 조사하기에는 인간 세상에 쌓인 자료가 너무 적었다. 드래곤들 중에서 자신의 이름을 밝힌 드래곤보다 밝히지 않은 드래곤이 더 많았던 것이다. 즉, “내 이름은 아무개다. 내 영토에 얼씬거리는 것들은 몽땅 다 디저트로 먹어 버리겠다”하고 선포한 놈들은 거의 없었고 대부분이 그냥 레어에 처박혀서

죽은 듯이 지내고 있었다.

또 아주 심한 놈들의 경우 자신의 레어에 접근한 것들을 경고도 없이 몽땅 다 죽여 버림으로써 입을 틀어막아 버렸기에 그냥 ‘포악한 드래곤’이라고 불리기도 했 던 것이다.

그렇기에 그린레이크가 생각해 낸 것은 이것이다. 드래곤의 일은 드래곤에게 물어보는 것이 가장 빠르고 확실한 것이라는 점. 자신이 알고 있는 드래곤은 자신의 고향 마을 주변에 살고 있는 그린 드래곤이 유일했다. 물론 그린 드래곤이 다른 드래곤의 신상에 대해 알고 있을 가능성이 크지는 않았지만, 드래곤의 개체 수가 그 렇게 많지 않았기에 교양 과목으로 그들의 아버지에게 배웠을 가능성도 배제하기는 힘들었다.

“무슨 일로 여기까지 왔느냐?”

그린레이크는 돌 위에 우아한 자태로 앉아 있는 엘프가 그린 드래곤 갈렌시아임을 알아보고는 재빨리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위대하신 분을 뵙습니다. 여기까지 찾아온 것은 다름이 아니라 한 가지 여쭈어 볼 것이 있어서입니다.”

갈렌시아는 시선을 다시금 무릎 위에 놓여진 책 위로 돌리면서 낮은 어조로 허락했다. 그린 드래곤은 엘프들과 사이가 좋았기에, 특히 그린레이크의 할아버지와의 관계를 생각한다면 그 청을 거절하기는 힘들었다. 어디로 가서 뭘 해 달라는 부탁도 아니고 지식을 조금만 나눠 달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말해 보거라.”

“예, 아르티어스라는 인물을 찾습니다. 그게 드래곤일 수도 있고 엘프일 수도 있고 호비트나 혹은 다른 것일 수도 있는데, 저는 드래곤이 아닌가 싶습니다.”

갈렌시아는 잠시 책에서 시선을 돌려 그린레이크를 바라보며 자신의 의문점을 말했다.

“왜 드래곤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예, 웜급 레드 드래곤 브로마네스 님의 친구이기 때문입니다. 실은 브로마네스 님께서 그자를 1년 내에 찾아서, 자신이 새 레어로 입주할 때 초대하라고 명령했습 니다.”

“훗! 초대하고 싶으면 브로마네스 보고 직접 초대하라고 해야지, 왜 네가 나서서 초대해야 한다는 것이냐?”

“실은, 이번에 한 가지 실수한 것이 있어서 브로마네스 님의 분노를 산 것이 있습니다. 며칠 전에 하마터면 엘프리안시가 분노에 찬 그의 브레스에 날아갈 뻔했었 는데, 몇 가지 보물과 10톤의 황금, 그리고 커다란 새 레어를 제공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지요. 그런데 브로마네스 님께서는 자신이 새 레어로 입주하는 그날 초대 할 친구 이름을 가르쳐 주면서 그때 그를 데려오지 않으면 엘프리안을 계획대로 날려 버리겠다고 선포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묻는 겁니다.”

레드 일족이라면 충분히 그런 만행을 저지르고도 남을 거라고 생각하며 갈렌시아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르티어스를 찾는 것은 포기해라. 지금부터 천도할 곳을 물색해서 새로운 수도로 옮기는 게 좋을 거야. 아마도 아르티어스를 설득하는 것보다 그편이 더 쉽고 빠를 거다.”

갈렌시아의 확정적인 말에 그린레이크는 그가 아르티어스를 알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혹시 아르티어스를 알고 계십니까?”

“물론 알고 있지.”

“그는 누구인가요?”

“말토리오 산맥의 지배자를 모른다는 말인가? 드래곤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한 드래곤인데 말이야.”

갈렌시아의 말에 그린레이크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예? 말토리오 산맥에는 드래곤이 살지 않는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아니, 헤즐링 때부터 지금까지 거기에서 살고 있는 골드 드래곤이 있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대충 그의 나이는 4천3백 살쯤 되었겠지.”

4천3백 살이라는 말에 그린레이크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이 그린 드래곤의 경우 1천4백 살 정도쯤 된 녀석이다. 바로 이 드래곤이 여기에 자리 를 잡은 후부터 자신의 마을 사람들과 서로 우호 관계가 유지되어 오고 있었기에, 이 드래곤에 대해서는 비교적 소상하게 알고 있었다.

보통 드래곤들의 경우 분가하기 전이나 분가할 때 그 아버지로부터 막대한 지식을 전수받거나 또는 책 따위를 선물 받기도 한다. 드래곤의 기억력은 정말 대단했 기에, 그들이 처음부터 잘못된 사실을 전해 듣지 않았다면 결코 틀릴 리가 없었다.

초대해야 하는 드래곤이 거의 에인션트급을 바라보는 웜급 드래곤이라는 것이 조금 찔리기는 했지만, 그린레이크는 나중에 포기하더라도 일단 시도는 해 봐야겠 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에게 부탁을 해 보면 되지 않을까요? 설혹 거절당하더라도 시도는 해 보는 것이…….”

갈렌시아는 그린레이크를 바라보고 살짝 미소 띤 얼굴로, 하지만 책망하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너는 말토리오 산맥이 얼마나 넓은지 알고 있느냐?”

“예? 예, 그건 당연히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넓은 곳을 왜 아르티어스 혼자서 독차지하고 있을까?”

상대가 갑자기 이런 질문을 하는 의도를 알 수 없었기에 그린레이크는 어리둥절해서 대답했다.

“그, 글쎄요.”

“그건 성질이 더럽기 때문이야. 나도 잘 모르기는 하지만 내 아버지에게 듣기로 2천 년쯤 전에는 정말 대단했다고 하더군. 역사책을 뒤져 보면 나올 테니까 조사해

보거라. 그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자신의 영역 안으로 들어갔던 생명체들 중에서 살아남은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야. 그렇다면 이해가 되겠냐?

그런데 골드 드래곤과 레드 드래곤이 친구가 될 수 있다니 정말 놀랍군. 하기야 아르티어스의 그 포악한 성격은 레드 드레곤과 약간은 닮은 점이 있기도 하니까 그 것 때문에 그 둘이 통했는지도 모르지. 아마도 브로마네스는 너한테 모든 것을 다 받아 낸 후에 엘프리안을 잿더미로 만드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한 모양이지. 도저 히 불가능한 것을 하라고 명령한 것을 보면 말이야. 너희 나라가 코린트라는 강대국과 전쟁 중이라던데 사실이냐?”

“예, 그건 어디서 들으셨습니까? 하지만 전쟁은 얼마 전에 끝났습니다. 운 좋게도 약간 우세한 상황에서 종료할 수 있었습니다.”

“좋아. 너희가 그 강대한 코린트를 한 달 내로 멸망시키는 것이 아마도 아르티어스를 설득하는 것보다 쉬울 거다.”

“저, 그렇다면…….”

그린레이크는 어려운 부탁을 생각한 듯 쭈뼛쭈뼛 말문을 열기 시작했지만, 갈렌시아는 재빨리 그것을 봉쇄했다.

“나에게 아르티어스에게 가서 말 좀 해 달라는 부탁이라면 거절이야. 내가 그런 잘난 척하기 좋아하는 골드 드래곤을 만나러 갈 이유도 없고 말이지. 또 찾아가서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할 아무런 이유도, 책임도 없어. 더 이상 할 말 없으면 가 보거라.”

“예.”

풀이 죽은 모습으로 돌아가는 그린레이크가 안 되어 보였는지 갈렌시아는 그의 뒤통수에 대고 말했다.

“2천 년쯤 조용했으니까 어쩌면 성격이 좀 바뀌었는지도 모르지. 거기에 희망을 가지라구.”

그린레이크는 축 처진 어깨로 엘프리안으로 돌아갔다. 아르티어스의 정체를 알아낸 것은 커다란 수확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르티어스 애가 어쩌구 할 때 그 게 아르티어스의 소행이었다는 것을 눈치 챘어야 했다. 하지만 그때는 그것을 연관시킬 만한 자료가 없었기 때문에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건 그렇고 정체는 알아냈지만 그와 함께 더욱 난감한 정보까지 함께 들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아르티어스를 초대할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어라? 이건 또 뭔가?”

토지에르가 궁금하다는 듯 묻자 그 서류를 가져 왔던 마법사가 재빨리 대답했다.

“크루마에서 날아온 것입니다, 토지에르 후작 각하.”

“협조 공문이라고? 그런데 왜 우리가 ‘아르티어스’라는 드래곤을 찾아줘야 하는 거지?”

“그…, 글쎄 말입니다. 일단 지급으로 협조 공문이 도착하기는 했는데, 그를 찾는 이유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도 없었습니다.”

“아르티어스라. 어디서 들어 본 것 같은데? 어디서였더라……. 아르티어스…, ‘A’로 시작되니까 골드 드래곤인데, 내가 아는 골드 드래곤이 있었던가?”

바로 이때, 토지에르의 뇌리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우스꽝스럽게 생긴 황금색 드래곤의 문장.

“맞아, 바로 그거였어. 로니에르 전하와 함께 다니는 그 드래곤이 아르티어스였지. 그런데 왜 그놈들이 아르티어스를 찾는 거지? 이보게.”

“예”’

“일단 크루마에는 자료를 찾는 중이지만 시간을 좀 더 달라고 공문을 띄우게. 그리고 안티노스 경에게 크루마에서 왜 아르티어스라는 골드 드래곤을 찾고 있는지 조사해달라고 청하게.”

지그발트 폰 안티노스는 국내외의 모든 정보를 관장하는 위치에 있었기에 뭔가 조사할 것이 있다면 그에게 부탁하는 것이 가장 빠를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옛, 각하.”

“그리고 코린트의 수도가 박살 난 것 때문인데, 그 때문에 입은 손실에 대해서 직접적인 피해 외에도 간접적으로 발생하는 모든 피해에 대한 상세한 자료도 지급 으로 부탁한다고 전하게나. 코린트의 타격이 크면 클수록 이번 전쟁이 오래 가기는 힘들 거야. 그런 만큼 코린트의 손실이 가지는 의미는 아주 크다고 봐야 하겠지. 알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