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10권 6화 – 마법의 책
마법의 책
“으음…..”
블루 드래곤 카드리안은 요즘 들어 심기가 약간 불편했다. 그는 며칠 전 자신의 영토에 감히 호비트가 침입했다는 것을 자신의 영토 사방에 깔아 놓은 마법 트랙에 서 발신되는 경보를 통해 알아내고는 급히 그쪽으로 갔다. 처음에는 단단히 혼을 내줄 생각이었지만, 침입자들의 모습을 보는 순간 그 마음은 급속도로 사그라져 버 렸고, 그는 재빨리 자신의 레어로 되돌아오고 말았다.
카드리안의 레어 입구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 거대한 구멍이 뚫린 그런 형태가 아니라 흔히 볼 수 있는 오크 굴처럼 산비탈에 자그마한 구멍이 뚫려 있는 것과 같 은 형태였다. 그리고 동굴의 내부도 일부 호화롭고 사치스런 생활을 영위하는 드래곤들처럼 레어의 내부 장식을 대리석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그냥 동굴이 무너지 지 않는 지지대 정도로만 돌들을 쌓아 놓았다.
물론 그 공사는 드워프 부족 한 무리를 잡아다가 완성했기에 습기가 차지 않도록 잘 만들어져 있었다. 그렇지만 아르티어스 같은 드래곤의 레어를 따라가려면 한 참 멀었을 정도로 검소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 검소한 레어의 복도를 왔다 갔다 하면서 카드리안은 머리를 쥐어짜고 있었다. 오랜 생활 함께했던 동료를 죽이지 않고 이곳에서 내쫓을 방법은 쉽사리 떠오르 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가 그냥 제 풀에 지쳐서 포기하고 돌아가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몇 날 며칠이 지났지만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고 드래곤으 로 현신한 채 위협을 가할 수도 없었다.
전에 한 번 호비트 소녀에게 호비트가 무술을 수련하면 얼마나 강해질 수 있는지 톡톡히 맛을 본 것은 둘째 치고, 지금 찾아온 동료는 드래곤 한 마리가 어슬렁거 리면서 위협을 가한다고 곱게 물러갈 놈이 절대로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필연적으로 실력 행사에 들어가게 될 것이고, 카드리안이 대충 상대하고도 이길 수 있는 상대는 절대로 아니기에 나중에는 전력을 다해야 할 것이 분 명했고, 그렇게 되면 누군가 하나는 크게 다치거나 죽을 가능성이 컸다. 물론 그 대상은 카드리안이 아닌 카드리안을 찾아온 동료가 되겠지만.
“에휴…, 직접 손을 쓸 수밖에 없나? 아니면 한 두어 달 더 숨어 있으면 돌아갈까?”
왔다 갔다 하면서 궁리를 하고 있던 카드리안은 갑자기 멈춰서면서 딱 소리가 나도록 손가락을 튕기며 외쳤다.
“참! 그 녀석은 일이 바쁘니까 한참 더 숨바꼭질을 하면 돌아갈 수밖에 없겠지. 그래, 그거야. 일국의 총사령관이 자리를 그렇게 오랫동안 비울 수 없다는 것을 깜 빡 잊다니 내 머리도 다되었군. 흐흐흐……..
“안녕하셨습니까? 스승님.”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 다론을 향해 토지에르는 한껏 미소를 지으며 치하했다. 다론에게 몇 명의 그래듀에이트와 마법사들을 붙여 주어 모종의 임무를 맡겼는데, 그는 토지에르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어려운 임무를 완수해 내고 돌아왔던 것이다.
“그래, 먼 길에 수고했다. 갔던 일은 어떻게 되었느냐?”
스승의 물음에 다론은 자신감 넘치는 어조로 대답했다. 그의 표정에는 존경하는 스승이 맡긴 일을 완벽하게 완수해 냈다는 충족감이 어려 있었다.
“예, 그때 보고 드린 대로 찾아냈습니다. 그리고 증거는 철저하게 없앴습니다.”
“오오, 수고했다.”
입이 함지박만큼 벌어져 있는 토지에르를 보고, 다론은 오른손에 들고 있던 두터운 책자를 건넸다.
“여기 있습니다.”
토지에르는 제자가 내미는 책자를 서둘러 받아 들고는 읽어 보려다가 마음을 바꾼 듯, 재빨리 책장을 덮고 제자에게 건네줬다. 하지만 토지에르의 얼굴에는 아쉬 움이 잔뜩 남아 있었다. 마법사가 새로운 마법에 대해서 흥미가 없다면 거짓말이기에, 그걸 의지의 힘으로 억누르기는 했지만 그 아쉬운 감정까지 억제하기는 힘들 었던 것이다.
“아니, 이것은 네가 가지고 있는 것이 좋겠구나.”
다론으로서는 스승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매우 흥미로운 표정으로 책자를 열었는데, 곧이어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재빨리 책장을 덮은 후 자신에게 다시 건넸기 때문이다.
“예? 그건 왜?”
“그건 알 필요 없고, 너는 이것을 내가 절대로 알아낼 수 없는 곳에다가 숨겨라. 그리고 내가 나중에 혹시 이것의 출처를 묻더라도 절대로 모른다고 대답해야 한다. 알겠느냐?”
“예, 스승님.”
“그리고 그때가 바로 너와 나의 사제의 인연이 끊어지는 날이 될 것이야. 전에 내가 했던 말 기억하고 있느냐?”
“예, 스승님.”
“내가 악마에게 혼을 판 지도 벌써 20여 년이 흘러가고 있구나. 앞으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이성을 잃어버렸을 때 그 뒤처리는 너에게 일임 한다. 그때가 되면 나를 스승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악마라고 생각해라. 한 치의 실수라도 있으면 안 될 것이야. 만약 네 힘에 부칠 것 같으면 로니에르 전하께 부탁 하거라. 그분이라면 충분히 나에게 안식을 주실 수 있을 게다.”
토지에르는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지만 다론은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그 또한 스승이 흑마법을 익히면서 자신에게 해 준 말이 있었기에, 반박하지는 못하고 물 기 어린 눈으로 스승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스승님.”
“필요에 의해 흑마법을 몇 번 썼기에, 나도 얼마나 내 몸이 버텨 줄지 알 수가 없다. 너는 그날을 위해서 언제나 대비하고 또 대비해야 한다. 만약 본국이 좀 더 안 정되어 있다면 깨끗한 마무리를 위해 자결하는 것이 안전하겠지만, 현실은 그럴 여유조차 주지 않는구나.”
“하지만 스승님, 너무 나쁜 방향으로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흑마법사라고 꼭 악마에게 혼이 먹힌다고 정해진 것도 아니잖습니까? 흑마법사단의 정예들 중에서 여 태껏 미친 사람은 단 세 명뿐이었습니다.”
토지에르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물론 그것은 나도 잘 모른다. 하지만 가능성이 아무리 적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미쳤다면 나도 미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그에 대한 대비는 확실하게 해 둬야만 한다. 여태껏 미친 마법사들이 증명하듯 언제 어떻게 미칠지는 그 누구도 모르는 것이다. 알겠느냐?”
“예.”
“그리고 내가 너에게 그 책을 맡기는 것은, 만약 내 몸속의 악마가 깨어났을 때 그가 로니에르 공작과 힘을 합치는 것만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막아야 하기 때문이 다. 그 책은 네 생명을 걸고서라도 지켜 내야만 한다. 알겠느냐?”
“예, 기필코 마법책을 지켜 내겠습니다.”
“오냐, 나는 네가 지켜 내리라 믿는다. 그 책을 소유하고 있다면 상대가 악마라고 하더라도 로니에르 전하께서는 망설이지 않고 손을 잡으실 것임을 언제나 명심 해야 할 것이야. 언젠가는 로니에르 전하를 약속대로 돌려보내 드려야 하기에 그 책은 꼭 필요하다. 지금은 로니에르 전하의 힘이 필요하지만 제국에 안정기가 찾아 오고 나면 그분의 힘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아니 그때가 되면 그분의 존재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산처럼 위험한 것으로 변하게 되지.
혹시나 그분이 지루한 생활에 견디지 못해 모반이라도 일으키거나, 혹은 딴 녀석들에게 로니에르 전하께서 원하는 것이 뭔지 알려지기라도 하는 날에는 파멸이야. 그때를 대비해서 그 책을 소각해서도 안 된다.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지?”
다론 또한 그녀의 막강한 파괴력을 잘 알기에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예, 스승님.”
“만약 로니에르 전하께서 본국에 해가 될 것이라는 판단이 내려지면 그 책을 전하께 전하거라. 그러면 전하께서는 두말 않고 사라져 줄 것이다. 절대로 전하와 싸 우려고 들지 마라. 알겠느냐?”
“예, 명심하겠습니다. 참, 이것은 하렌 공이 스승님께 전해 드리라는 서류입니다.”
“그래? 어디 한번 보자.”
토지에르는 제자에게서 서류 뭉치를 받아 들고는 자세히 훑어보기 시작했다. 제자는 스승의 얼굴이 서류 몇 장을 넘기면서 곧장 밝아지더니, 다 읽고 나서는 한껏 미소까지 띠자 그 내용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무슨 좋은 소식이라도 쓰여 있습니까?”
“그래, 아주 좋은 소식이 쓰여 있구나. 이대로라면 아르티어스와 브로마네스만 서로 만나지 못하게 하면 된다는 것이군. 그렇게 되면 엘프리안이 박살 날 테고, 크 루마의 힘은 상당 부분 감소될 것이 분명하겠지? 흐흐흐.”
“예?”
제자는 토지에르가 무슨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지 도통 알 수 없다는 맹한 표정을 짓고 있었기에, 토지에르는 입 아프게 설명하는 대신 제자가 자신에게 건네줬던 서류를 제자에게 다시 돌려줬다. 제자는 그것을 열심히 읽으며 방금 스승이 뭣 때문에 음흉한 웃음을 흘렸는지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론!”
“예?”
“크루마에다가 통신을 보내라고 전하거라. 뭐라고 답하는 게 좋을까? 그러니까 본국도 성심껏 아르티어스라는 드래곤을 찾아봤으나 자료 부족으로 인해 발견 불 가능. 뭐 대충 이런 뜻을 좀 더 정중하게 해서 보내 주면 되겠지. 앞으로 아르티어스라는 이름이 들어가는 뭔가를 찾아 달라고 저쪽에서 협조를 구하면 1, 2주일 정 도 시간을 끌다가 찾을 수 없었다고 답을 보내라 일러라. 알겠느냐?”
“예, 스승님. 그런데 이 아르티어스라는 드래곤 꽤 귀에 익은 드래곤인데요?”
다론의 질문에 토지에르는 제자의 기억력이 형편없음을 탓하는 듯 한숨을 쉬었다.
“휴~ 그야 당연하겠지. 로니에르 전하와 함께 다니는 드래곤이 아르티어스 님이 아니냐?”
“아, 예, 그렇군요.”
“거기 쓰인 대로 그놈들이 아르티어스 님을 모르게 되면 본국에 막대한 이익이 되니까 혹시나 그 사실이 크루마 쪽에 새 나가지 않도록 함구령을 내리도록 해라.”
“명심하겠습니다.”
“좋아, 이만 가 보거라. 오랜 여행을 하느라 피곤할 텐데 통신실에 전갈을 준 후 숙소로 가서 한 며칠 푹 쉬도록 해라.”
“예, 스승님.”
다론은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스승께 정중하게 인사를 드린 후 밖으로 나왔다. 복도로 나오자 여태껏 참고 있던 물기가 두 눈 가득 차오르기 시작했기에 그는 행여 누가 볼세라 재빨리 닦아 냈다.
흑마법의 후유증에 대한 악질적인 소문 때문에 그는 스승이 어둠의 마왕 크로네티오와 계약을 맺는 것을 결사적으로 반대했었다. 하지만 스승은 국가를 위해 크로 네티오와 계약을 맺고야 말았고, 숨어 지내던 많은 흑마도사들을 크라레스의 깃발 아래 뭉치도록 유도했다.
그 흑마도사들은 지금 크라레스 제국의 숨겨진 힘이자, 타이탄 제작에 엄청난 보탬을 주고 있지만, 그들이 언제 터질지도 모르는 화산처럼 위험한 것 또한 사실이 었다. 크라레스 제국은 이렇듯 아슬아슬한 곡예를 너무 심하게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