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10권 8화 – 아르티어스 님의 목걸이

아르티어스 님의 목걸이

“다녀오셨습니까? 공작 전하.”

부하들의 인사를 대충 받으며 그린레이크는 서둘러 말했다.

“마법사 20명을 집합시키고 너는 지발틴 기사단장에게 연락해서 그래듀에이트 40명을 좀 지원해 달라고 전해라.”

부하는 그린레이크의 지시에 의아함을 느꼈다. 웬만한 국가하고 전쟁이라도 벌일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병력이었기 때문이다.

“예? 40명이나 지원해 달라고 한다면 이유를 밝혀야만 하옵니다. 알프레드 쟉센 후작 각하께 뭐라고 해명을 해야 할는지 하명해 주시옵소서.”

“그거야 당연히 아르티어스가 대충 어디쯤에 사는지 알아냈으니까 병력 지원을 요청하는 것 아니겠느냐?”

“예? 그런 정보를 어디서 입수하셨사옵니까?”

그린레이크가 자리를 비운 상황에서도 자료를 뒤지고 있던 부하는 어떻게 상관이 그 사실을 알아냈는지 궁금해했지만 그린레이크는 그런 것에 대답해 줄 마음은 하나도 없었다.

“잔말 말고 너는 통신실로 달려가거라.”

“옛, 전하.”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서 이리저리 뛰어가는 것을 보며 그린레이크는 마음속으로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아르티어스가 아무리 지독한 성질을 가진 골드 드래곤 이라고 하더라도, 또 그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그는 아르티어스를 엘프리안으로 불러들이기 위한 접촉을 계속해 나갈 작정이었다. 아르티어스를 불러들이지 못 한다면 최악의 경우 자신의 기반까지 위태로워질 가능성까지도 있었다.

그린레이크는 눈빛을 사악하게 빛내며 미네르바의 집무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미네르바는 이 기회를 이용해서 자신의 목을 벨 궁리까지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 이었다.

“호비트 계집 따위가 감히……”

그린레이크는 황궁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미네르바의 집무실을 바라보며 슬며시 미소 지었다. 하지만 그의 미소는 어떻게 보면 음흉한 듯했고, 어떻게 보면 사악함이 넘치고 있었다. 그린레이크는 이곳으로 돌아오면서 한 가지 기가 막힌 계획을 준비했던 것이다.

우선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아르티어스가 숨어 있는 곳을 찾아내는 것을 최선의 목표로 한다. 그런 후 황제께 상소하여 아르티어스를 설득하기 위해 보내는 사신을 미네르바로 임명할 작정이었다. 그게 성공한 후에는 아르티어스를 불러들이는 것이 실패해도 상관없었다. 그때 자신의 목을 베려고 드는 적 또한 함께 사라 질 것이므로…….

“어라?”

“식사하시다 마시고 왜 그러세요? 아버지.”

아들의 물음에는 대답도 하지 않고 아르티어스는 스푼을 내려놓은 후 갑자기 옷깃을 헤치고는 목걸이를 꺼냈다. 아르티어스의 목걸이는 매우 아름답게 세공된 것 이었는데, 그 목걸이에 붙어 있는 붉은빛의 보석이 미세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그 진동은 다크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강했기에 다크는 신기하다는 듯이 그것을 바라봤다. 저렇듯 미세한 진동을 일으키는 보석은 처음 봤기 때문이다.

“이야, 그거 희한하네요. 나 좀 보여 줘요.”

아르티어스는 아들에게 자상한 미소를 건네며 말했다.

“별로 희한한 것은 아니야. 마법일 뿐이니까.”

“마법 때문에 울리는 거라구요?”

“그래.”

“그렇다면 왜 움직이는 거죠? 지금까지 목걸이가 울린 적은 없었잖아요?”

“너는 못 봤지만 과거에는 울리는 일이 자주 있었지.”

아르티어스는 목걸이를 다시 옷 속으로 밀어 넣은 후 식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궁금점이 생겼는데도 그냥 넘어갈 다크가 아니었다.

“언제 울리는데요?”

아르티어스는 빙긋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내 영토에 침입자가 있을 때지. 보석의 울림으로 봤을 때 아마도 레어에서 20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겠지.”

“우와, 거리까지 알 수 있어요?”

웬만해서는 놀라지 않는 아들이었기에 아르티어스는 우쭐해져서 대답했다.

“헤헤…, 이건 아주 간단한 알람 마법이란다. 침입자가 있다면 목걸이가 울린다. 물론 레어에 가까워질수록 울림은 더욱 심해지도록 만들어 뒀지. 만약 소리가 좋 다면 요란한 종소리가 울리도록 조작할 수도 있지.

그건 그렇고 옛날 같았으면 당장 달려가서 모두 따끔한 맛을 보여 줬겠지만, 역시 나이가 들어가면서 우리 드래곤은 더욱 원만하고 부드러운 성격을 가지게 되는 것이 정석이지. 요즘은 레어에 도둑질하기 위해 침입하는 놈들이 아니라면 다 용서해 준단다.”

그 말을 듣고 다크는 일부러 비꼬며, 불신에 가득 찬 눈길을 아르티어스에게 마구 던져 댔다.

“호오, 원만하고 부드러운 성격이라구요?”

“에잉? 이 녀석이 애비를 바라보는 눈길이 왜 그 모양이야?”

“글쎄요, 그건 아버지가 더 잘 알 거 아니에요? 파이어해머를 다루는 모습에서 미루어 짐작하건대, 아버지는 결코 부드럽다고 하기는 힘들죠.”

삐딱한 아들의 말에 아르티어스 어르신은 화를 벌컥 냈다.

“내가 왜 신의 실패작까지 신경 쓴단 말이냐? 그 녀석들은 한평생 노예 노릇이나 하다가 죽으면 되는 거라구. 알겠어?”

아르티어스의 심기가 불편해지는 것을 느낀 다크는 재빨리 말을 돌렸다. 괜히 싸울 필요는 없었으니까.”

“으음, 스프 식겠어요. 음식이나 마저 먹자구요. 그래도 요즘은 보급 사정이 많이 좋아졌잖아요? 전에는 정말 사람이 먹기는 좀 힘든 거였는데……? 아들이 슬쩍 말을 돌리자 아르티어스도 그것을 기회로 다시금 식사에 열중했다. 괜히 아들 녀석하고 싸워 봐야 남는 것도 없는 데다가 서로가 단란하게 생활한다 해도 호비트의 수명은 너무나도 짧았기에 그는 될 수 있으면 아들과의 충돌을 피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아르티어스가 아들과의 식사에 정신이 팔려 있는 그때, 그린레이크는 신경을 곤두세우며 부하들의 보고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지금 있는 곳은 말토리오 산맥의 어느 봉우리에 급조해서 만들어진 전진 기지. 다섯 개의 천막이 만들어져 있고 그것들은 모두 나뭇가지와 풀잎으로 잘 위장되어 있었다.

그리고 기지의 주변에는 수많은 마법 트랙이 쫙 깔려 있어 혹시나 있을지도 모를 침입자를 경계했다. 이렇듯 세심하게 신경을 쓴 이유는 지금 그들이 있는 곳이 크 라레스의 영토였고, 그들은 크라레스에 정식 허가도 받지 않고 이곳에 기사단을 끌고 왔기 때문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던 그린레이크에게 마법사 한 명이 재빨리 다가와 보고를 올렸다.

“리가드 경께서 드래곤의 영토를 찾았다는 보고이옵니다, 전하.”

그린레이크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역시 그린 드래곤 갈렌시아의 말대로 이곳 말토리오 산맥에도 세간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드래곤이 서식하고 있었다.

“뭐? 대단히 빨리 찾았구나.”

“예, 수많은 마법 트랙들이 깔려 있었기에, 뷰 매직 포스의 주문으로 간단히 찾을 수 있었다고 하옵니다. 리가드 경께서는 전하의 다음 행동 지시를 원하고 계십니 다. 뭐라고 전할까요?”

“일단 사방에 퍼진 기사단 전력을 드래곤 영역에서 20킬로미터 외곽에 집결시켜라. 상대는 대단히 포악한 드래곤이다. 매사에 조심해야 한다. 알겠느냐?” “옛, 전하.”

“그리고 일단 우리들도 그곳으로 이동해서 합류하자.”

“옛!”

그린레이크가 그곳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지시한 일은 탈출용 이동 마법진을 그려 놓으라는 것이었다. 일단 유사시에는 중간 경유지로 코린트 서남부를 선택하여 공간 이동한 후, 그곳에서 다시 코린트 서북부로, 그런 후 또다시 코린트 북동부로, 그런 후 아르곤 서북부로 도망쳤다가, 그곳에서 아르곤 북동부로 이동해서 마지 막으로 라크비에 왕국까지 연속적으로 공간 이동할 예정이었다. 그런 다음 라크비에 왕국에서 육로로 크루마에 귀환할 생각이었다.

일단 드래곤의 영역으로 침입을 시도하기 전에 그린레이크는 자신이 세운 도주 루트에 각각 마법사 한 명씩을 두 명의 그래듀에이트와 함께 파견했다. 그들은 그 린레이크의 지시대로 수신용 이동 마법진과 다음 도주 루트로 도망칠 이동용 마법진을 그려 놓고 기다리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유사시에는 몇 분도 걸리지 않아 연속적으로 공간 이동하여 라크비에 왕국에 도착하게 될 것이다. 아무리 드래곤이 탐지 마법에 능하다고 해도 거기 까지 따라오기는 힘들지 않을까 하는 것이 그린레이크의 추측이었다.

일단 모든 지시를 다 마친 후, 탈출용 마법진을 그리기 위한 마법사들이 각자가 맡은 구역에 도착해서 충분히 마법진을 완성해 놨을 거라고 생각될 정도까지 기다 렸다가 그린레이크는 행동을 개시했다. 그린레이크는 남은 열네 명의 마법사와 스물여덟 명의 그래듀에이트를 거느리고 드래곤의 영역 부근에 도착했다.

“저기부터가 드래곤의 영역이옵니다. 매우 민감한 마법 트랙들이 저쪽에 보이는 나무에서부터 깔려 있사옵니다.”

그린레이크는 부하가 가리키는 쪽을 뷰 매직 포스의 주문을 사용한 상태로 둘러봤다.

“좋아. 이제 다시 사람을 나누기로 하지. 드래곤의 영역을 조사하러 가는 데는 인원이 적을수록 좋지. 너무 많은 사람이 들어가면 드래곤이 의심할 거야. 자네들 열 명은 각기 그래듀에이트 두 명씩을 거느리고 탈출용 마법진을 그려 둬라.”

그러면서 그린레이크는 손짓으로 각자가 마법진을 그릴 위치를 지시한 후 말을 이었다.

“나머지 나하고 함께 조사할 인원들은 만약의 사태가 벌어졌을 때 자신에게 가까운 마법진을 향해 사력을 다해 도망쳐라. 드래곤이 쫓아온다면 마법사는 동료가 도착함과 동시에 공간 이동하도록! 그리고 남은 인원들의 행동은 각자의 판단에 맡긴다. 알겠나?”

“옛!”

“자, 모두들 행동을 시작해라.”

그린레이크는 이번에도 부하들이 탈출용 마법진을 완전히 다 완성할 때까지 기다렸다. 물론 이들 중에는 탈출에 성공하지 못하고 드래곤에게 죽임을 당하는 사람 도 분명히 나올 것이다. 하지만 사람 수가 많을수록, 또 탈출로가 다양할수록 자신이 죽을 확률은 줄어드는 것이다.

“정말 대단하구나.”

그린레이크의 감탄 어린 말에 부하는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그의 눈으로 봤을 때 주변의 경치는 하나도 대단할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예? 뭐가 말씀이시옵니까? 전하.”

맹한 부하의 말에 그린레이크는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쯧쯧, 마법 트랙 말이다. 드래곤의 영토라면 몇 군데 가 봤지만 이렇게 많은 마법 트랙이 깔려 있는 곳은 처음 본다. 보통 사람들이 만드는 마법 트랙은 24시간을 지속시키기 힘들지. 원래가 대자연의 마나는 한 곳에 집중되지 않는 법이니까 말이다. 설혹 한 곳에 모아놨다고 하더라도 곧이어 분산되려고 하지. 그것 때문에 영 구적으로 지속되는 마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었는데, 내 상식이 깨지고 말았구나.”

“저, 혹시 드래곤이 날마다 돌아다니면서 마법을 갱신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럴 가능성도 있을까? 하면서 그린레이크는 생각을 다시 정리해 봤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없었다.

“그건 아닐 게다. 이렇게 많은 마법 트랙이라면 아무리 드래곤이라도 하나하나 갱신하는 데만 며칠이 걸릴 거야. 또 드래곤이란 족속들이 원래가 엄청나게 게으른 데, 그렇게 부지런을 떨 가능성이 없다고 봐야 하겠지. 모두들 조심해라. 드래곤은 벌써 우리들이 들어왔다는 것을 알고 있을 거고, 또 놈은 모든 마법을 마스터했다 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공작 전하, 그런데 도대체 드래곤의 레어는 어디에 있는 것이옵니까?”

“글쎄다. 이렇게 마법 트랙이 많이 깔려 있어서야, 뷰 매직 포스의 주문으로는 그곳이 그곳 같아서 도저히 찾기가 힘든데? 반경 수십 킬로미터에 걸쳐 마법 트랙을 듬뿍 깔아 놓는 미친 짓을 하는 녀석이 존재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으니, 뭔가 대책을 세워야만 하겠다.”

다크는 자신에게 소개된 소년을 찬찬히 살펴봤다. 붉은빛이 감도는 갈색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뒤로 묶은 침착해 보이는 표정을 지닌 소년이었다.

“이 아이가 새로운 내 시종이라고?”

“예, 그렇사옵니다. 전하.”

“그 전에 있던 밀로드는 어떻게 하고?”

다크의 말에 장교는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시종을 자신이 직접 뽑아서 데려오지 않는 한 언제라도 필요에 의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상관이 모르고 있기 때문이 었다.

“전하, 밀로드는 전하의 시종이 없었기에 배치되었을 뿐, 그의 실력이나 경험으로 미뤄 봤을 때 시종이나 하고 있을 위치가 아니옵니다.”

“그게 그렇게 되는 건가?”

“옛, 전하. 그리고 밀로드는 제8보병 사단으로 발령을 받았으니, 그 대신으로 제스터가 온 것이죠. 지금 전선에는 경험 있는 병사들이 부족하옵니다. 그 점을 헤아 려 주시옵소서.”

“뭐, 그렇게 말한다면 할 수 없지.”

“제스터, 앞으로 네가 모실 공작 전하시다. 인사 드려라.”

“처음 뵙겠사옵니다, 전하. 제스터 크로스란이라 하옵니다.”

소년은 또렷한 어조로 인사를 했다. 그 모습을 다크가 침착한 눈빛으로 무표정하게 바라보고 있자, 제스터를 데려온 장교가 재빨리 말했다.

“제스터가 마음에 안 드시옵니까? 마음에 안 드신다면 딴 아이로 바꿔 드리겠사옵니다. 이곳 전선에 다섯 명이 배치되었으니까요. 하지만 이 아이는 크로스란 백 작의 먼 친척이고 그 외모나 성품 등이 나무랄 데도 없는 데다가, 잭슨 폰 크로스란 백작의 친필 추천장을 가지고 있사옵니다만…

장교의 말은 이 소년에게 꽤 든든한 후원자가 있다는 것이었고, 그 후원자가 소년을 공작의 시종으로 강력하게 추천했기에 그것을 거절하기는 조금 어렵다는 것을 은연중에 풍기고 있었다.

“아니, 그냥 둬라. 제스터라고 했느냐?”

“예.”

“너는 밀로드가 임지로 가기 전에 그가 하던 일을 좀 보고 배워라.”

“예, 전하.”

“그만 나가 보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