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11권 17화 – 코린트와 크라레스의 충돌
코린트와 크라레스의 충돌
“폐하, 급보이옵니다.”
한 마법사가 달려 들어왔다. 그는 통신실에 배속되어 있던 마법사인데, 급한 전갈을 듣고 허겁지겁 달려온 것이다.
“무슨 일인데 그러느냐?”
“코린트가…, 코린트가 개입했사옵니다.”
황제는 이 뜻하지 않은 소식에 놀라 엉거주춤 일어서며 외쳤다.
“뭣이? 정확한 정보냐?”
“예, 지금 트루비아 왕실로부터 긴급 연락이 들어왔사옵니다. 적 타이탄은 50여 대, 문장으로 봤을 때 철십자 기사단 소속의 타이탄으로 추정된다 하옵니다.” 마법사의 보고를 듣고 있던 황제는 자신이 지금 체통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슬며시 자리에 앉으며 외쳤다.
“루빈스키! 루빈스키 대공을 불러와랏!”
루빈스키는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나타났다.
루빈스키는 제국 안에 퍼져 있던 친크루마의 세력을 완전히 소탕해 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의 처리는 매우 신속하면서도 잔인한 것이었기에 죄 없는 피해자 도 많이 나타났다. 황태자를 자주 만났다는 이유만으로 처형된 중신도 있었을 정도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들의 최고 괴수라고 할 수 있는 황태자는 나쁜 친구들을 사귀지 말라는 황제의 훈시 정도만 듣고 끝났다. 나중에는 그를 지하 감옥에 집어넣어야 하겠지 만 지금은 황제가 그걸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대신 그때부터 황태자의 주위에는 그를 감시하는 눈들이 번쩍이기 시작했다. 루빈스키는 황태자가 지하 감옥에 가기 전까지 도망치지 못하게 황궁에 잡아 둬야 한 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만약 황태자가 도망친다거나 또 다른 외부의 세력을 포섭해 들어오면 매우 골치 아파진다. 지금은 힘을 완전히 상실했지만, 그래도 엘리안은 황제의 아들인 황태자였기 때문이다.
황태자의 부하들을 싹 쓸어버리는 대규모 소탕전이 벌어진 후 루빈스키는 타이탄 연습장에 다시 나가기 시작했다. 그만큼 부하들을 훈련시키고, 또 청기사가 제대 로 된 위력을 내게 만드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황제의 명에 따라 그를 데려오기 위해 마법사들이 재빨리 움직였고, 그는 이동 마법진을 이용해서 도착했기에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아 황제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서 오게, 루빈스키 경. 그래 보고는 들었는가?”
“예, 폐하. 대충 보고는 들었사옵니다.”
“경의 의견은 어떻소? 구원군을 보내야 할까? 아니면 충돌을 피해야 할까?”
“폐하, 놈들이 50여 대나 되는 신형 타이탄을 투입했다는 것은 트루비아 전선에 대한 구원병의 차원을 넘어, 아예 뿌리를 뽑아 버리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담겨 있 다고 봐야 할 것이옵니다. 그리고 트루비아를 충동질한 본국에 대한 경고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고 봐야 하겠지요.”
“그야…, 그렇겠지. 그렇지 않다면 지금 트루비아가 가지고 있는 타이탄 총수가 20대를 넘지 못하는데, 50대나 밀어 넣었을 리가 없겠지.”
“폐하, 소신의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구원병을 파견해서는 안 된다고 사료되옵니다. 하지만…….”
“파견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말했으면 됐지 하지만은 또 뭔가?”
“그것은 어디까지나 소신의 판단이옵고, 폐하께서는 한 가지 더 생각하셔야 할 것이 있사옵니다. 물론 군사적인 입장에서는 강력한 코린트와의 충돌은 최대한 피 해야 할 것이옵니다. 하지만, 트루비아는 본국의 동맹국이옵니다. 그것도 본국의 부탁을 받아 타국을 침공한 맹방이옵니다. 그런 그들을 이번에 외면한다면 다음에 는 본국의 부탁을 들어줄 동맹국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을 것이옵니다.”
“그렇군. 경의 의견은 잘 알았네. 최후의 선택은 짐이 내리라는 것인가?”
“예, 하명을 하시옵소서!”
“으음, 어쩔 수 없구먼. 만약 구원군을 파병하지 않는다면 동맹국들은 등을 돌릴 것이 당연하겠지? 파병하는 것으로 하세. 코린트와 정면충돌을 일으키지 말고, 공 격을 격퇴하는 수준으로 끝내는 것이 좋겠지. 알겠나?”
“옛, 폐하.”
황제의 집무실에서 물러난 루빈스키 대공은 두 명의 기사를 호출했다. 그들은 중앙 기사단 7전대와 8전대를 책임지고 있는 쟈므란 백작과 라테민 백작이었다. 제 7, 8전대는 전방에 포진 중인 다른 전대들과 달리 수도에 주둔하는 예비 부대의 성격이 강했지만, 만일의 사태가 벌어지게 되면 이들이 우선적으로 투입되게 되어 있었다. 그들은 루빈스키의 호출에 급히 달려와서는 예를 올렸다.
“명을 받고 달려왔사옵니다, 전하.”
“오, 어서들 오게나. 자네들은 지금 탄벤스 공국(共國)으로 가야겠다. 부대원들을 소집하고, 준비가 되는 대로 이동 마법진으로 집합하도록.” “옛, 전하.”
“피터슨.”
공작의 호명에 피터슨 폰 라테민 백작이 즉각 답했다.
“옛!”
“자네는 다 거느리고 갈 필요 없이 30대만 가져가도록. 나머지 8대는 수도에 놔두고 가라.”
제8전대의 경우 아직 편성 중인 부대였기에 다른 부대들보다 수가 조금 더 많았다. 만약 8전대의 수가 정수인 30대를 훨씬 초과하여 40대를 넘어 버리면 그 초과 분 10대로 제9전대가 편성되는 것이다.
“옛!”
“자네들도 소식을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트루비아가 탄벤스를 침공하는 데 갑자기 코린트가 개입해 왔다. 적의 전투력은 확실하지 않지만 타이탄 50여 대 정도니 까 충분히 막아 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작전은 트루비아를 돕기 위해서 가는 것이다. 코린트의 기사단과 정면충돌을 할 필요 없이, 될 수 있으면 체면만 세워 주고 돌아오면 된다. 알겠나?”
“옛, 전하.”
그로부터 20분 후 그들은 마법진을 이용해서 탄벤스 공국으로 날아가, 탄벤스 공국의 군대와 대치 중인 트루비아 군대와 합류했다.
“전세는 어떻습니까?”
자므란의 물음에 시드미안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전세라고 할 것도 없습니다. 오늘 아침에 코린트의 타이탄을 발견하자마자, 전 군에 후퇴 명령을 내린 후 여기까지 도망쳤으니까 말이지요. 지금 제각기 후퇴하 여 이곳에 도착하고 있는 부대들을 재편성 중이지요.”
“그렇다면 적의 위치는 파악하고 계십니까?”
“그거야 당연하지요.”
시드미안은 그들을 지도가 있는 곳으로 안내한 후 설명을 시작했다.
“적은 세 방향에서 진격 중입니다. 중앙의 주력 부대, 그리고 주력 부대에서 40킬로미터 정도 떨어져서 좌우에서 이동 중인 좌익과 우익 부대입니다. 정보에 의하 면 코린트의 기사단은 주력 부대와 함께 이동 중이라고 합니다. 왜 그런지 잘 모르겠지만, 적들의 이동 속도는 아주 느리기 때문에 오늘 내일 오후쯤 되어야 만나 보 실 수 있을 겁니다.”
“후퇴하는 적을 추격하여 격멸하는 것이 전투의 정석인데, 왜 저들의 진격 속도가 그렇게 느린 것입니까?”
“글쎄요. 그것을 알 수는 없지만, 덕분에 별 피해 없이 후퇴하는데 성공했으니 다행이라고 봐야겠지요. 놈들의 움직이는 속도로 미루어 봤을 때, 내일 오후에 여기 에 도착하여 진형을 짜고 준비를 갖춘다면, 아마도 모레쯤 되어야 본격적인 전투가 벌어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휴식이나 좀 취해 두십시오.”
“알겠습니다, 시드미안 경.”
오랜 휴가를 끝낸 아르티어스는 또다시 분주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아들인지 웬수인지 요즘 들어서는 분간이 잘 가지 않지만, 하여튼 그 망나니의 마수에 걸려서 호된 경험을 치르고 있는 중이었다.
“수고했네. 이 정도면 어느 정도 잘되어 가는 거야.”
“감사합니다, 아르티어스 님.”
“그래, 파이프라인 공사는 언제 끝낼 수 있겠나?
여기저기 공사가 진행 중인 현장 설계 도면과 비교하면서 바라보던 아르티어스는 한쪽에서 길이 10미터는 넘어 보이는 아주 길면서도 두터운 파이프를 땅에 묻고 있는 것을 보고 말했다.
“예, 일주일 정도 시간을 더 주셔야겠습니다. 수도 전체에 거미줄같이 파이프들을 깔자니까 예상외로 시간이 많이 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뭐, 일주일이면 그렇게 늦는 것도 아니야. 고생 좀 했겠구먼.”
“천만에요.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아르티어스는 공사 현장을 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 상태대로 공사가 진행된다면 아마도 반 년 이내에 공사를 완료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완료 시기는 될 수 있다면 자신과 아들이 처음 만난 그날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아르티어스는 자신의 장기인 마법을 이용해서 아들과 자신의 나라를 발전시킬 장대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 때문에 치레아 곳곳에는 이동용 영구 마법진들이 설치되고 있었고, 수도 주위에는 거대한 방어 마법진과 함께 상하수도 망까지 마련되고 있었다. 그 덕분에 올해 겨울부터는 따뜻한 물을 하루 종일 수도 내의 각 가 정에 공급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수도에 사는 시민들은 난방비가 필요 없게 될 테고, 그때부터 수도세의 명목으로 세금을 조금 더 걷는다면 일석이조 가 될 것이 분명했다.
아르티어스는 이곳 치레아 공국이 아들의 영토가 되었을 때부터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아들의 영토를 돌보고 있었다. 지금 이대로라면 아마도 10년 이내에 마도 왕국 알카사스에 버금갈 정도로 마법에 의한 편의시설이 잘 갖춰진 나라로 거듭나게 될 것이 분명했다.
뭔가 새로이 만든다는 것은 확실히 재미있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그것이 거의 반영구적일 정도로 오랜 수명을 가지고 있고, 또 그것이 사용되는 것에 대해 모든 시 민들이 찬사를 늘어놓는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거기에다가 자신의 생활에 보탬까지 된다면 그야말로 더 말할 나위가 없어지는 것이다. 아르티어스는 그 때문에 재 정이 허락하는 한 틈틈이 여러 가지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과 자신의 아들이 여기에 있었다는 것을 기념할 뭔가를 말이다.
“아빠! 여기서 뭐 해요?”
“헤헤헤, 보면 모르겠냐? 너와 나의 소중한 기념품들을 만들고 있지.”
희희낙락하고 있는 아르티어스를 향해 다크는 기도 차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수도의 모든 사람들이 왕래하는 중앙로에 거대한 분수대를 만드는 것은 이해할 수 있어요. 여름에 물이 뿜어져 올라가면 아주 시원하게 보일 테니까……. 그런 데 거기에 만들어 놓은 거대한 동상은 또 뭐예요?”
“뭐긴 뭐겠니? 너와 나의 동상이지. 흐헤헤…….”
“그딴 거 만든다고 돈을 계속 낭비하실 거예요? 가스톤과 카알이 매일 나한테 와서 투덜거린단 말이에요. 국경에 요새를 건설해야 하는데 돈이 없다면서,
“헤헤헤, 뭐 그따위 걸 가지고 그러냐? 걱정하지 마라. 만약 쳐들어오면 내가 내쫓으면 되지. 그런 쓸데없는 것보다는 좀 더 우아하면서도 실용적인 것들을 많이 만드는 편이 좋아.”
“글쎄요…….”
“아, 평상시에는 그런데 신경도 안 썼으면서 오늘따라 왜 그러냐?”
다크는 새침스런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도 밑에서 투덜거리니까 신경이 쓰여서 그러지요.”
“그따위 것은 이 애비가 다 알아서 처리할 테니 신경 끄라구. 몇 년 만 더 지나면 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로 만들어 줄 테니 아무런 걱정을 하지 말란 말이야.”
“글쎄요…, 저는 그게 더 걱정이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