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12권 1화 – 고양이 옆에 있는 첩자

묵향 12권 1화 – 고양이 옆에 있는 첩자

고양이 옆에 있는 첩자

전쟁은 갑작스럽게 벌어졌다. 6년 전에 있었던 제1차 제국 전쟁이 대 제국 코린트, 크루마, 크라레스가 주축이 되어 대지를 피로 물들인 대규모 전쟁이라고 한다 면, 이제 그에 준하는 대규모의 전쟁이 다시 벌어지게 된 것이다. 거기에다가 이번 전쟁은 6년 전과는 달리 크루마가 빠졌지만, 여태껏 중립 노선을 지켜 오던 아르 곤과 알카사스가 가담했기에 그 규모에 있어서 제1차 제국 전쟁에 결코 뒤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모두들 이번에 벌어진 전쟁을 제2차 제국 전쟁이라고 불렀다. 제2차 제국 전쟁은 코린트를 주축으로 하는 연합군이 신흥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던 크라레스 제국을 기습함으로써 그 서막을 장식했다. 그 때문에 크라레스 제국 은 전쟁이 시작된 바로 그날 기사단 전력의 절반을 상실하는 뼈아픈 패배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크라레스의 패배가 너무나도 짧은 시간에, 그것도 기습에 의해 발생한 것이었기에 전쟁에 직접 관여하지 않은 타국들의 경우 아직까지도 크라레스가 어느 정도로 막대한 피해를 당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다.

여기저기 쓰러져서 신음하고 있는 병사들과 그들 사이를 열심히 뛰어다니며 치료하고 있는 마법사나 신관들의 모습이 보였고, 그들 사이로 생명을 마친 거대한 타 이탄들이 그 찬란했던 자신의 생을 자랑하듯 육중한 몸을 누이고 있었다. 다크는 천천히 걸어가다가 매우 눈에 익은 타이탄의 몸체를 발견하고는 얕은 신음성을 흘 렸다. 푸른색이 칠해진 거대한 타이탄은 몸체에 깊은 검상을 입은 채로 황궁의 한쪽 담벼락을 허물어뜨린 채 엎어져 있었다.

“청기사도 당했나?”

자그마한 그녀의 질책에 그녀를 뒤따르던 기사는 고개를 푹 수그렸다. 그 기사의 제복에는 금은색의 실을 많이 사용해서 그런지 크라레스 기사단의 복장치고는 매 우 화려해 보였다.

“예, 전하. 세 대가 파괴되었사옵니다.”

기사의 대답에 다크의 눈이 조금 커졌다. 매우 놀랐던 것이다.

“놀라운 일이군. 그렇다면, 적의 피해는?”

다크의 물음에 기사는 풀이 죽은 음성으로 답했다.

“적은 코린트의 최고 정예라고 할 수 있는 코란 근위 기사단이었사옵니다. 흑기사를 대체하여 새로이 배치된 거대한 붉은 타이탄의 파괴력은 거의 청기사에 버금 가는 것 같았사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놈들의 숫자가 30대나 되었기에…….”

“나는 적의 피해를 물었다.”

확정적인 다크의 말에 기사는 고개를 푹 숙이며 대답했다.

“한대도 파괴하지 못했사옵니다.”

“단 한 대도?”

상대의 변명은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다크는 무자비하게 요점만을 물었다. 그녀에게 있어 적 타이탄이 몇 대나 있었고, 또 그들 중에서 몇 대에 상처를 입혔는지 는 중요하지 않았다. 타이탄은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도 시간만 지나면 치료되기에 적 타이탄에게 상처를 얼마나 입혔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완벽 하게 파괴해 버린 숫자만이 중요했다.

청기사의 강인함과 크라레스 기사들의 실력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녀는 적을 한 대도 잡지 못했다는 사실 자체가 믿어지지 않았다. 그 기사는 모든 것이 자신의 책임인 양 고개를 더욱 깊이 숙이면서 보고했다. 사실 이 모든 것이 그 기사의 책임이었다. 바로 그가 근위 기사단장인 프로이엔 폰 론가르트 백작이었기 때문이다. “예, 전하. 원체 대단한 놈들이었기에 황궁을 지켜 내는 것도 벅찼을 정도이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들이 후퇴하기 시작했사옵니다. 기선을 제압하고 있던 적들 이 갑자기 후퇴하기 시작한 것이 아무래도 꺼림칙해서 머뭇거리는 사이에 놈들은 자취를 감췄사옵니다. 뒤늦게 그것이 함정이 아닌 진짜 후퇴라는 것을 깨닫고 놈 들을 추격해 본 결과 마법진을 이용해서 황급히 도주했다는 것을 밝혀냈사옵니다.”

“황궁 정원까지 밀고 들어왔을 정도였는데 갑자기 후퇴해 버렸다? 조금만 더 밀어붙였으면 황궁을 파괴할 수 있었을 텐데……?”

“예, 그러하옵니다, 전하. 그 때문에 저는 녀석들이 후퇴하는 것이 우리가 그들을 잘 막아 내고 있기에 본국의 방어 대형을 흩트리기 위해 일부러 후퇴하는 것처럼 꾸미는 계략이라고 판단했던 것이옵니다.”

“흐음……. 그런데 놈들은 진짜 후퇴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도착했다는 것이겠지?”

“예, 전하.”

자신의 의문에 론가르트 백작이 아주 간단하게 대답을 해 주자 다크는 이제야 모든 것이 머릿속에서 확 정리되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분통을 터뜨렸다.

“망할 자식들! 어쩐지 뭔가 수상하다고 생각했더니, 처음부터 모두 다 계획된 움직임이었어.”

“예?”

상관의 분노에 대해 확실한 이유를 모르는 론가르트 백작이 멍한 표정으로 의문을 던지자 그녀는 황급히 표정을 바로잡으며 딴청을 부렸다. 자신이 망신당한 것을 딴 사람에게 광고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아니다. 폐하는 지금 어디에 계시지?”

“집무실에서 대책 회의를 하고 계시옵니다.”

다크는 론가르트 백작을 뒤로하고 황제의 집무실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다크가 사라지자 론가르트 백작은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며 부하들에게 여러 가지 지 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어서 오게나. 그래, 갔던 일은 어떻게 되었나?”

황제의 물음에 다크는 약간 풀이 죽은 어조로 대답했다.

“놈들에게 철저하게 농락당했다고 봐야 하겠죠.”

“으음… 코린트가 그렇게 강했었나? 경이 당해 낼 수 없다니…….?”

황제가 약간의 오해를 하고 있는 듯하자 다크는 황급하게 덧붙여 말했다. 이번의 경우도 자신이 약했기에 패한 것은 절대로 아니었기 때문이다. 놈들이 자신과의 결전을 회피했을 뿐, 만약 제대로 한판 붙었다면 결코 이런 결과가 나왔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뜻이 아니죠, 폐하. 격전이 벌어지는 동안 저는 녀석들을 구경도 못했습니다. 제가 가면 어디론가 이미 도망쳐 버리고 없더군요. 놈들은 제가 어떻게 움직일 지 이미 눈치 채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녀가 하고자 하는 말의 속뜻을 이해한 황제가 약간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

“그렇다면 첩자가 있다는 말인가?”

다크는 고개를 살짝 까딱거렸다.

“그렇다고 봐야 하겠지요. 그래서 말인데…. 제 부하들의 신상을 다시 한 번 철저하게 조사해 주십시오. 그리고 그 외에도 치레아 기사단의 움직임을 대략이나 마 알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인물들도 점검해야만 할 것입니다.”

“알겠네. 노력은 해 보겠지만 인원이 원체 많다 보니 시간이 좀 걸릴 걸세.”

“예, 폐하.”

“이리저리 돌아다니느라고 피곤할 텐데, 우선 가서 쉬게나. 그리고 뒷일은 모든 보고서들이 집계된 후에 토론하기로 하지.”

“예, 폐하. 그럼 물러가겠습니다.”

다크는 황제를 만나 대략적인 보고를 한 후 황궁 내에 마련되어 있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자신의 영지는 치레아 공국이었지만, 그녀가 수도에 와 있을 때를 위해서 토지에르가 배려해 놓은 호화로운 방이었다. 오랜 시간 주인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방은 구석구석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었다. 다크는 푹신한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후우우, 피곤하군. 차라리 한판 붙기라도 했으면 이렇게 피곤하지는 않을 거야. 젠장! 어떻게 복수를 하지? 진짜 첩자가 붙어 있다면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잖 아? 그렇다면… 그렇다면……”

문득 뭔가 좋은 생각이 떠오른 다크는 큰 소리로 외쳤다.

“여봐라, 누구 없느냐?”

“예, 부르셨습니까, 주인님!”

다크의 부름에 응답한 것은 세린이었다. 뾰족한 귀를 귀엽게 까딱거리면서 그녀는 한쪽 방문을 열고 사뿐히 걸어왔다.

“어라? 네가 여기 왜 있는 거냐?”

생각지도 않은 인물이 갑자기 튀어나오자 다크는 약간 얼이 빠진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하지만 세린은 약간 과잉 반응을 보이는 주인이 재미있게 생각되었는지 미소를 지으며 상큼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주인님께서 오늘 여기에서 묵으실 거라고 연락이 와서요. 아무래도 딴 하녀보다는 제가 나을 것 같아서 서둘러서 이리로 왔지요.”

세린은 귀를 뒤로 한껏 붙이며 애교스럽게 자신을 칭찬해 달라는 듯 주인에게 말한 것이었는데, 오히려 돌아온 것은 칭찬이 아닌 의심이 가득한 눈길이었다. “그으래?”

약간 수상한 눈빛으로 자신을 흘끗 노려보는 다크를 보고 세린은 뭔지 모를 괴이한 공포를 느꼈다. 묘인족인 그녀의 섬세한 신경 가닥 하나하나가 그 순간 뭐라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위험 경보를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주인의 상태가 뭔가 이상하다고……. 세린은 자신도 모르게 뒤로 몇 걸음 물러서고 있었다.

다크로서는 지금 첩자 때문에 매우 신경이 쓰이고 있는 판에, 세린이 부르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이곳에 와 있었던 것이 매우 마음에 걸렸다.

“저것이 첩자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지금 요절을 내 버려??

처음에는 무턱대고 이런 궁리를 하는 도중 은연중에 그녀의 몸에서는 미세한 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세린은 매우 오래전부터 자신을 따르고 있었다. 그리고 다크는 세린에게 ‘자유’라는 커다란 선물까지 했었다. 그런데도 세린은 다크를 떠나지 않고 있었고, 그 사건 이후로 다크를 정말 살 뜰하게 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난번 전쟁 때도 세린이 있었지만, 자신에 대한 비밀이 밖으로 새 나간 적은 없었다.

다크는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며 잡생각을 흩어 버렸다. 설마하니 세린까지 의심해서야……. 만약에 진짜 첩자라고 해도 그것이 완전히 들통 나기 전까지는 의심 하지 않는 것이 주인된 도리. 다크는 언제 살기를 뿜어 올렸냐는 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빨리 가서 가스톤, 팔시온, 미디아, 미카엘을 불러와라.”

“예, 주인님.”

세린은 공손하게 대답한 후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밖으로 나갔다. 다크의 속마음을 모르는 세린으로서는 순간적으로 주인이 왜 그렇게 무섭게 느껴졌었는지 이해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고민은 그렇게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다크는 세린이 모셔 본 여러 명의 주인들 중에서 가장 지 독스러운 괴짜였기에 아주 오래전에 주인의 심리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포기해 버렸기 때문이다.

“전하, 긴급 정보이옵니다.”

자신의 꾀주머니라고 할 수 있는 이블리스가 달려 들어오자, 미네르바는 그가 무슨 소식 때문에 그렇게 당황하는지 대충 짐작이 갔다. 오늘 아침에 갑작스럽게 시 작된 제2차 제국 전쟁이 자신들이 예상하고 있던 것과는 조금 다르게 전개되고 있음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놈의 다크라는 인물이 개입된 이래 자신의 예상대로 전 쟁이 흘러가지 않고 있었기에 미네르바는 또다시 틀렸나?’하는 생각에 약간 골치가 아파지는 것을 느끼며 이블리스에게 물었다.

“그래? 크라레스와 코린트의 전쟁 소식인가?”

“옛, 전하.”

“그래, 전세는 어떻다고 하던가? 설마, 초전부터 크라레스가 압승을 거두고 있다는 것은 아니겠지?”

“그게 아니옵니다. 크라레스 쪽이 약간의 우세를 보일 거라는 예상과 달리 코린트 쪽의 압승으로 사태가 전개되고 있사옵니다.”

이블리스의 확정적인 말에 미네르바의 눈동자가 한껏 커졌다.

“뭣이? 그럴 리가…….?

한껏 의심스러워하는 미네르바와 달리 이블리스는 매우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그는 자신이 입수해 온 정보의 정확도에 대해 매우 자신 있어 하는 것 같았다. “사실이옵니다, 전하. 이번 전쟁에서 알카사스와 아르곤이 코린트의 손을 들어 준 것이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한 모양이옵니다. 크라레스의 3개 전대가 그들에게 발 목이 잡혀 있는 동안, 코린트의 기사단들이 인접 국경에 배치되어 있던 크라레스의 2개 전대를 순식간에 전멸시킨 후 크라레인시까지 쳐들어가서 격전을 벌인 다음 후퇴했다고 하옵니다.”

“…..”

이 놀라운 소식에 대한 대비책을 강구해 내기 위해 미네르바가 생각에 몰두하여 아무런 말이 없자, 이블리스는 신중하게 상관에게 건의했다.

“빨리 결정을 내려야만 하옵니다. 세부 사항은 확실하지 않지만, 정보부의 분석에 의하면 오늘 하루의 전투로 크라레스 기사단은 그 세력의 절반을 잃었다고 하옵 니다.”

이블리스의 채근에 미네르바는 신음성을 흘렸다. 겨우 하루 동안의 전투로 크라레스가 절반의 병력을 잃었다면, 그야말로 대규모로 치고받은 것은 확실한 모양이 었다. 초전에서 그렇게 승기를 잡았다면 코린트는 예전에 해 왔듯이 그 승기를 확실하게 다지고자 할 가능성이 컸다. 그렇다면 지금 뭔가 손을 조금 써 두는 것이 좋 을 것이다. 전쟁이 너무 일찍 끝이 나도 좋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야간에도 전투를 할 가능성은?”

“옛, 첩자들의 보고에 의하면 코린트의 기사단은 케락스시로 모두 철수했다고 하옵니다.”

미네르바는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기사단이 수도로 철수했다면 전장에 남겨진 병사들은 누가 보호한단 말인가? 그리고 초반에 잡은 승기를 굳히지 않고 왜 그 냥 철수했을까? 크라레스 기사단의 절반이 무너질 정도라면 그야말로 엄청난 대 승리를 거둔 것이 확실한데…….

“케락스시로? 그렇다면 전선의 군대에 대한 호위는 어떻게 하고?”

이블리스는 미네르바가 왜 이런 질문을 했는지 즉각 이해했다. 자신이 미처 보고하지 못한 점이 있었기에 미네르바가 조금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하게도 코린트는 이번 전쟁에 기사단만을 활용하고 있을 뿐, 군대가 이동하는 그 어떤 징후도 보이지 않고 있사옵니다. 국경선을 지키고 있던 크라레스의 2 개 전대를 완파하고, 요새 두 개를 쑥대밭으로 만들었기에, 진로를 저지할 방해물은 없을 텐데도 군대를 투입하지 않고 있는 것은 매우 특이하옵니다. 그 때문에 바 르데 후작에게 첩자들을 풀어 그것을 좀 더 상세히 조사해 두라고 일러뒀사옵니다. 아마도 야간 행군을 해서 국경을 돌파하려는 것은 아닐까하는 예상도 가능하기 때문이옵니다.”

“그건 잘 처리했군.”

미네르바가 고개를 조금씩 끄덕거리면서 중얼거리자, 이블리스는 상관이 뭔가 중요한 결심을 하려고 머리를 굴리고 있다고 판단했다. 크루마가 누구의 손을 들어 주느냐에 따라 이번 전쟁의 향방은 아주 크게 달라질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상관에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다. 아직 상관이 결정을 내린 상태는 아니었기에 지금 말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지금 그가 말하는 것은 ‘조언’이 되지만, 나중에 상관이 결정을 내린 후에 주절거리면 ‘항명’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 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보부의 분석에 따르면, 이런 속도로 전투가 진행된다면 전쟁은 예상외로 일찍 종결될지도 모른다고 하옵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본국의 태도를 확실 히 정해야만 하옵니다. 코린트와 연합하여 망해 가는 크라레스를 완전히 끝장내든지, 아니면 크라레스를 도와주든지 말이지요. 제 생각으로는 코린트가 크라레스 를 끝장내고 더욱 강성해지지 않도록 크라레스를 돕는 것이 좋지 않을까 사료되옵니다. 지금이라면 그들을 도와주는 것이 늦지 않았사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미네르바는 슬쩍 주위를 둘러봤다. 사실 자신의 집무실 안이었기에 주위를 둘러볼 필요도 없었지만, 그녀는 거의 습관적으로 둘러본 것이다. 그런 다음 미네르바 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훗, 크라레스가 그렇게 만만한 상대라면 내가 그렇게 고심하지 않았겠지. 치레아 대공이 크라레스를 돕는 한 그 나라는 망하지 않아. 지금은 뭔가 획기적인 방법 을 썼기에 코린트가 우세한 듯 보이는 것이겠지만, 그녀가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면 코린트는 막대한 피를 흘릴 수밖에 없을 거야.”

“전하께서는 그녀를 너무 과대평가하시는 것이 아니옵니까? 코린트에는 마스터가 세 명이나 있사옵니다. 그리고 신형의 적기사들까지 가담한다면, 아무리 청기

사가 있다고 하더라도…….

“물론 코린트가 전력을 기울인다면 치레아 대공을 잡을 수 있겠지. 그리고 그녀가 죽는 그날이 코린트가 멸망하는 날이야. 오호호호홋!”

미네르바는 다크의 뒤에 성질 더럽기로 소문난 골드 드래곤이 의붓아버지로 버티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터뜨린 웃음이었다. 그녀는 그 망할 드래곤을 레어까지 찾아가서 직접 만나 보지 않았던가? 여러 가지 정보에 따르면 그놈은 에인션트급에 근접하는 엄청난 괴물이었다. 그리고 더 안 좋은 점은, 가만 히 눈치를 보아하니 그 드래곤은 종족이 다르다는 엄청나게도 넓은 간격을 뛰어넘어 다크를 매우 아끼는 것 같았다. 보통의 드래곤과 인간 사이에는 도저히 성립하 기 힘든 관계였지만, 어쨌든 그게 그 둘 사이에는 성립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를 해치는 것은 곧 골드 드래곤의 분노와 직결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 던 것이다.

갑자기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리는 상관의 정신 상태를 의심하며 이블리스가 의문에 가득 찬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느끼고 미네르바는 웃음을 멈췄 다.

“당장 휘하 기사단장들을 모두 소집해라.”

“옛, 드디어 마음을 정하신 것이옵니까? 아무래도 코린트보다는 크라레스를 도와주는 것이 좋겠지요?”

부하의 물음에 미네르바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느긋하게, 그러면서도 매우 음흉한 어조로 대답했다.

“아니, 둘이서 싸우고 있는 동안 미란을 친다.”

미네르바의 엉뚱한 말에 이블리스는 말도 안 된다는 듯 항변했다.

“저, 미란은 크라레스의 동맹국이옵니다. 그리고 코린트와도 친분을 쌓고 있사옵니다. 미란을 친다면 둘 다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옵니다.”

이블리스의 조심스런 조언에도 불구하고, 미네르바는 자신 있게 말했다.

“그건 상관없지 않나? 미란을 도와줘야 할 그 둘이 치고받고 있으니까 말이야.”

이제야 미네르바의 계획을 눈치 챈 이블리스는 활달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옛, 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