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12권 10화 – 치레아 대공의 문장

치레아 대공의 문장

제일 앞에서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조심스럽게 나가는 기사. 그리고 그 기사의 뒤로 거의 20여 대의 타이탄이 약간 떨어진 상태로 따라가고 있다. 시야가 탁 트인 넓은 들판이라면 구태여 이런 방식을 취하지 않겠지만, 여기는 왕궁 안이었다. 위엄을 보이기 위해 최대한 넓게 복도를 설계해 뒀지만, 아무리 그래도 타이탄 세 대 가 딱 가로막으면 거의 빈틈이 없었다.

그리고 복도에 이어져 있는 작은 방들은 벽을 조금 허물지 않는다면 거대한 타이탄이 들어갈 수도 없었다. 거기에다가 가장 큰 문제점은 타이탄에 탑승한 기사들 의 경우 좁은 창틈으로만 밖을 보기에 시야가 아주 좁아진다는 최대의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그 때문에 이런 복잡한 곳에서 타이탄 전투를 하는 멍충이들은 거의 없었지만, 상대가 타이탄을 쓸 가능성이 있는 이상 이쪽도 대비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때문에 앞에 기사가 슬그머니 돌아다니며 정찰을 하고, 그 뒤를 타이탄들 이 어기적거리며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적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 알 수 없었기에, 전진 속도는 대단히 조심스러우면서도 느렸다. 상당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적이 나타나지 않자 저마다 나지막이 투덜대 면서, 샤트란 일행은 지하로 연결된 계단에 거의 접근해 있었다. 지하 감옥으로 들어가는 통로는 언제나 하나뿐이다. 도주나 침입을 막기에 그편이 훨씬 좋기 때문 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먼 거리를 이동해 왔음에도 적들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벌써 탈출해 버린 것 아니야?”

샤트란이 나지막이 투덜거리고 있을 때, 알이 복도를 가로막고 있는 문에 접근해서 뒤쪽에서 들리는 기척을 확인한 후 살짝 문을 열기 시작했다. 문 뒤에 누군가 숨어 있는지 슬쩍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문이 약간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갑자기 문을 관통하고 거대한 검이 튀어나왔다. 그 검은 문을 일(一) 자로 훑고 지 나갔고, 문에 바짝 붙어서 살며시 열고 있었던 알의 몸통은 피를 뿜으며 아래위로 분리되어 나뒹굴었다.

“적이닷!”

이제 누구도 사방에 막힌 벽 따위는 신경 쓰지도 않았다. 쌍방은 서로를 확인하는 그 순간 벽을 허물고, 걸리적거리는 것을 박살 내며 무조건 검과 방패를 휘두르 기 시작했다. 거대한 검과 검이 부딪치고, 검과 방패, 방패와 방패가 부딪치며 불꽃과 함께 굉음을 토해 냈다.

이렇듯 왕궁 내에서 쌍방이 본격적인 대결을 시작했을 때, 왕궁의 외곽에 마련되어 있는 영구 이동 마법진은 이제 세 번째의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번쩍하고 섬 광이 약하게 빛나는 그 순간, 다섯 명으로 이뤄진 단출한 손님들이 도착했다.

“어라? 저것들은 또 뭐야?”

거대한 타이탄들이 여기저기에서 왕궁을 향해 서 있는 모습을 보고 다크가 말했다. 보통 기사들이라면 자신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문제이기에 타국 타이탄들의 성능과 모습, 그리고 문장 등등을 열심히 외운다. 하지만 다크는 그런 것 따위를 외울 생각도 안 했기에 한 질문이었다. 그녀는 왕궁을 향해 왜 타이탄들이 늘어서 있는지 그것이 궁금할 뿐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동료들의 반응은 달랐다. 그들은 저 타이탄의 종류가 뭐고, 또 그 성능이 어떤지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크, 크루마의 타이탄이야. 역시 벌써 미란은 점령당했어.”

경악하는 동료들과 달리 다크는 여유롭게 주위를 빙 둘러보며 투덜거렸다.

“치레아 기사단은 어디 있지? 이리로 보냈다고 했잖아.”

“글쎄.. 보이지 않는데? 나는 여기서 한판 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이제 어쩔 거야?”

이렇게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저쪽에서 뭔가를 하고 있던 크루마의 마법사와 팔시온의 시선이 딱 마주치고 말았다. 마법사는 또다시 적들이 나타났다는 것을 알 고는 재빨리 소리 높여 외쳤다.

“적이다! 저쪽 마법진 쪽이얏!”

그제야 마법사의 주위에 서 있던 세대의 타이탄들이 허리를 뒤로 돌렸다. 현재 왕궁 안에서 격전이 벌어지고 있었기에, 타이탄들은 모두들 건물 안에서 적이 도망 쳐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문에 그들은 뒤를 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젠장! 타이탄을 불러!”

팔시온의 등 뒤에서 금색의 타이탄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이쪽을 알아본 적들은 이쪽에서 타이탄에 탑승할 기회를 줄 리가 없었다. 그들은 엄 청난 먼지를 일으키며 다크 일행이 있는 곳으로 달려들었다.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다크는 적의 움직임을 보고, 지금 타이탄을 꺼내는 것은 너무 늦다는 것을 알아 챘다. 그녀는 자신의 타이탄을 불러내는 것을 포기하고, 저쪽에서 달려드는 적의 타이탄들을 향해 정면으로 돌진해 들어간 후 그중 한 대를 향해 높이 몸을 날렸다. 자그마한 그녀의 신체는 놀랄 만큼 높은 점프력을 보이며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웬 계집애 하나가 날아오는(?) 것을 보고 선두에서 달려오던 타이탄이 그녀를 향해 방패를 후려쳤다. 하늘 위로 몸을 날린 이상 더 이상 궤도 수정이 불가능할 것 이기에 이것은 아주 적절한 공격인 듯 보였다. 하지만 그 타이탄의 육중한 방패는 공기를 가르는 엄청난 소리만을 냈을 뿐, 다크의 털끝 하나도 건드리지 못했다. 다 크는 상대가 방패를 휘두르는 그 순간 재빨리 사태를 파악하고 발 밑쪽을 향해 장풍을 쏘았다. 자그마한 그녀의 몸은 밑으로 뿜어져 나가는 장풍의 반동에 의해 그 궤적이 변화했던 것이다. 그녀의 몸은 이제 처음보다 훨씬 더 높은 위치로 올라섰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의 황금빛 검이 빛나며 엄청난 푸른 빛줄기가 타이탄의 머 리 쪽을 향해 작렬했고, 엄청난 굉음과 함께 빛과 연기가 뿜어 나왔다.

하지만 그것뿐, 옅은 연기가 걷혔을 때 드러난 타이탄의 피해는 그렇게 커 보이지 않았다. 원체 철갑이 두꺼워서 그런지 철판 위쪽이 움푹 파여 나가고 페인트들이 폭넓게 벗겨져 나갔을 뿐, 구멍이 뚫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상대의 생각을 바꾸기에는 충분한 공격이었는지, 타이탄은 주춤주춤 물러서며 방어 자세를 갖추기 시작 했다.

바로 그때 다크는 장풍을 하늘 위로 쏘아 올리며 그 반동을 이용해 재빠르게 땅에 착지했다. 그리고 검을 땅에 박아 넣으며 대지의 기운을 폭주시켰다. 그녀로서는 오늘만 두 번째로 쓰는 최강의 기술이었다. 이곳에 오기 전 그녀는 거의 대부분의 마나를 보충할 수 있었기에 그 위력은 변함없이 파괴적이었다.

쿠콰콰콰콰…….

그 순간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것이 방패가 되어 세대의 타이탄들은 뒤로 주춤거리면서 물러났다. 치솟아 오른 흙더미와 먼지로 앞이 하나도 안 보였 기 때문에 취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기다림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다크가 시간을 끄는 동안 타이탄에 탑승하는 데 성공한 팔시온, 미디아 그리고 미카엘 이 황금빛 찬란한 타이탄들을 이끌고 그 폭풍을 뚫고 공격해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동 마법진이 있는 곳을 기준으로 근방에서 합계 여섯 대의 타이탄들이 어우러져서 격전을 벌이기 시작하자, 그 소리를 듣고 왕궁을 포위하고 있던 타이탄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얼핏 보아 몇 대 되지 않았지만, 왕궁 뒤쪽에 가 있던 타이탄들까지 무슨 일인가 하고 몰려와 그 수가 30여 대에 달했다.

사방에서 모여 드는 타이탄들은 과거 크루마의 근위 타이탄이었던 에프리온들이었다. 에프리온은 전투 중량이 1백 톤 정도로서 드라쿤과 비슷했지만 출력은 월등 하게 높았다. 적 타이탄의 성능이 어떤지 이미 교육을 받아서 알고 있었던 팔시온 등은 그것들이 정확히 28대나 모여들기 시작했기에 기가 죽을 수밖에 없었다. “젠장! 엄청나게도 모여 있었군.”

하지만 적들은 이쪽에 나타난 타이탄들이 드라쿤 세 대인 것을 알고는 두 대를 제외하고는 모두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곳에 있는 적들을 처리하는 데는 그 정도로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어떻게 튀어나왔는지 모르지만, 여기서 드라쿤 세 대가 분탕질을 일으키는 동안 다른 적들은 비어 있는 딴 곳 으로 도망간다는 작전일 가능성도 있기에 취해진 조치였다.

바로 이때, 아직도 자욱하게 솟아올랐던 먼지를 헤치며 또 다른 거대한 타이탄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늘 벌써 세 번이나 모습을 드러낸 청기사 안드로메다로서는 아주 바쁜 하루임에 틀림없었다. 군데군데 페인트칠이 찢겨지듯 벗겨져 있었지만, 청기사라는 사실을 알아보기는 어렵지 않았다. 그 짙푸른 색의 위압적인 생김새 를 알고 있는 녀석들이 있는지 군데군데에서 경악스러운 외침이 터져 나왔다.

“청기사다!”

“빨리 가서 대장에게 보고해라. 저 문장… 치레아 대공의 문장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 보고하란 말이다.”

분명히 적들은 술렁거리고 있었다. 크루마의 기사들 중에서 6년 전 전쟁 때 중앙 집단에서 싸웠던 사람들은 청기사를 타고서 키에리를 해치운 영웅이 누군지를 알 고 있었다. 그들은 뒤로 주춤주춤 물러서며 대형을 정비했다. 그리고 사방으로 흩어지던 타이탄들도 한 곳으로 뭉쳐서 진형을 짜려고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적들 이 진형을 완전히 갖추기를 기다리고 앉아 있을 다크가 아니었다. 청기사는 그녀의 충실한 종인 듯 그녀의 생각대로 곧장 적들을 향해 돌진해 들어갔다.

수색하던 기사를 베는 것으로 불붙은 왕궁 내 전투는 이제 최고조를 달리고 있었다. 밑을 받치던 기둥이 무너지면서 위층이 아래로 무너져 내리건 말건 그들은 사 력을 다해서 치고받고 있었다. 상호 간의 타이탄 전투 중량은 비슷했다. 크루마 쪽의 엑스시온 출력이 0.4 정도 높았지만, 크라레스 쪽은 기사들의 실력이 뛰어났기 에 그 정도의 격차는 충분히 메울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적이 에프리온일 때 해당되는 말이었다. 크루마 기사단을 지휘하는 킬러 마크가 붙어 있는 두 대의 거대한 안티고네들. 드래곤 슬레이어인 만큼 기 사의 실력도 괜찮은 편이었지만 드라쿤에 비해 10톤은 더나가는 덩치와 월등한 출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것 때문에 안티고네들을 상대하고 있는 것은 가장 검술 실력이 뛰어난 카슬레이 백작과 파시르였다. 카슬레이 백작은 원체 뛰어난 실력자였기에 어느 정도 버티 고 있었지만, 파시르는 뒤로 밀리고 있었다. 그것을 본 카슬레이 백작이 자신의 적을 밀어붙이고는 파시르를 지원하기 위해 2대 1로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카슬레 이 백작의 공백을 다른 기사들이 메우며 수적으로 열세한 대결을 벌이자니, 전투는 쉽사리 끝나지 않고 있었다.

카슬레이 백작은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왕궁 밖에는 더 많은 적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밖에 있던 적들 중 다만 다섯 대라도 이쪽을 돕기 위해 합류한다면 박 살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지금도 간신히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시간은 흐르고 흘러 이제 후퇴해야 할 때가 지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적을 뒤로하고 후퇴할 수는 없었다. 적들이 이쪽을 순순히 놔 줄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뒤로 그냥 내뺀다고 모든 게 해결되는 것이 아니었다. 지하로 이어져 있는 계단을 내려가야만 하는 것이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타이탄이 지나갈 만 큼 넓지 못했다. 그렇다면 탈출하는 사람은 타이탄을 버리고 지하로 내려가야 한다. 그렇다면 남은 타이탄은 적들의 아주 좋은 먹잇감이 될 것이다. 공간 저편으로 사라지는 데도 조금은 시간이 필요하기에. 그 때문에 그들은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격전을 계속하고 있었다.

이때 복도를 가로질러 맹렬하게 뛰어오는 적 타이탄이 카슬레이 백작의 눈에 보였다. 자신들만으로 쉽게 제압하기 힘들자 추가로 지원군을 부른 것이 확실했다. 서서히 카슬레이 백작의 눈에 절망감이 어리기 시작했다. 저 두 대의 안티고네만 아니라면 어떻게든 적들을 밀어붙이고 튈 수 있을 것 같은데, 안티고네를 몰고 있 는 녀석들의 실력은 보통이 아니었다.

“밖에 큰일이 났습니다. 강적이 나타났다구요, 대장.”

그 기사의 말은 카슬레이 백작 일행에게 있어서 정말 천사의 구원의 음성과도 같이 들렸다. 그 말 한마디에 안티고네의 움직임이 약간 둔해진 것으로 보아, 적의 대장도 당황하는 듯했다. 적에게 안 좋은 일이라면, 어쩌면 이것이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카슬레이 백작은 생각했다.

“뭐라고? 젠장! 적의 응원군인가?”

스펜의 물음에, 달려온 기사는 다급하게 말하려니 상대의 이름이 잘 생각나지 않는지 생각나는 대로 풀어서 설명했다.

“옛, 미네르바 전하께서 누차 말씀하시던 그녀가 부하들과 함께 나타났습니다. 빨리 지시를 내려 주십시오.”

미네르바 전하가 누차 말하던 그녀……. 적으로서 전장에서 만나면 절대로 상대하지 말라던 다크 폰 치레아 대공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린 드래곤을 포획하던 작

전 때 입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휴양하던 와중에 전쟁이 터졌기에, 스펜은 그 사실을 뒤늦게 말로만 전해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 후 크라레스 황자가 결혼식을 올 리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미란에 파견되었을 때 멀리서 그녀의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그녀는 여자라고 믿기 힘든 우락부락한 근육질을 가진 검호였다. 그리고 그 근육에서 나오는 거대한 힘은 키에리에게 사망에 이르는 상처를 안겨 줬다고 하지 않던가?

스펜은 그 사실이 머릿속에 떠오르자 상대방 타이탄을 힘껏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적을 떼어 내고 이 격전지에서 이탈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스펜을 상대하고 있던 노련한 카슬레이 백작은 스펜의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카슬레이 백작도 적들이 나누는 말을 들었고, 그러니 당연히 스펜을 붙잡고 늘어진 것이 다. 그러자 자신의 초조함을 대변하는 듯 스펜의 검은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빨리 몸을 빼내야겠는데 뜻대로 되지 않으니 마음만 앞섰고, 그러다 보니 타이탄과의 동조가 잘 맞지 않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스펜을 향해 카슬레이 백작은 정말 얄밉도록 완벽하게 응수를 해 왔다. 검을 이용해서 그의 공격을 교묘하게 흘려버리고, 또 방패로 가로막으면서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스펜을 물고 늘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때 스펜의 시야에는 옆에서 싸우고 있던 샤트란이 자신의 상대들을 밀어내고는 뒤로 반전하여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뒤를 부탁해!”

샤트란의 가녀린 목소리가 스펜의 귀에 들려왔다. 어쨌든 둘 중 한 명은 이 난장판에서 이탈해서 외부에 있는 부하들을 지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스펜은 일단 정 신을 수습하고 상대의 공격을 방어하는 것에 온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스펜의 타이탄도 점차 안정적인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스펜의 타이탄이 슬슬 안정 상태를 찾아가고 있었지만, 전세는 서서히 뒤집히기 시작했다. 샤트란이 빠지고 나니까 샤트란이 상대하고 있던 크라레스 타이탄 둘이 여유를 가지게 된 것이다. 그들은 곧장 한 대씩 적을 골라서 달려들었다. 이제 바야흐로 숫자도 일대일로 딱 맞아 떨어졌기에 크라레스의 기사들은 용기백배하기 시 작했다.

모두들 힘을 내어 자신이 맡은 타이탄과 격전을 벌이기 시작하자, 전세는 금세 크루마 쪽이 불리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크라레스의 기사들은 여태껏 숫자와 성 능에서 밀리고 있었지만, 치레아 대공으로부터 직접 검술을 사사받은 최고의 정예들이었다. 몇 분간 팽팽한 대결이 펼쳐졌지만, 이윽고 한 대의 에프리온이 파괴되 는 것을 시작으로 사방에서 에프리온들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고 스펜은 완전히 일이 글러 버렸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그는 더 이상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외쳤다.

“후퇴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