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12권 2화 – 사악한 미소를 짓는 아들
사악한 미소를 짓는 아들
코린트는 크라레스와의 전쟁에서 불필요한 소모전을 치를 의향이 없었는지 아예 처음부터 군대를 투입하지 않고 기사단만을 투입했다. 그리고 그 기사단들은 크 라레스 영토 곳곳에 깊숙이 공간 이동해 와서 막대한 피해를 입힌 것만으로도 만족했는지 저녁쯤이 되자 재빨리 본국으로 모두 후퇴해 버렸다.
물론 이것은 다크라는 존재를 염두에 둔 작전이었다. 군대는 원체 인원수가 많기에 기동성에 있어서 한계를 지니고 있었고, 기사단은 소수 정예이기에 마법진을 이용해서 이동한다면 엄청난 기동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기사단도 군대를 보호한다는 굴레에 묶여 버린다면 뛰어난 기동성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 당 연했다. 다크를 피해서 재빨리 이동하려면 기동성을 최대한 간직하고 있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는 아르곤과 알카사스의 기사단들은 그날 저녁 늦게까지 자신들의 진격을 저지하고 있는 크라레스의 기사단들과 군대들을 상대로 드잡이를 벌였다. 코린트와 달리 아르곤과 알카사스의 경우 기사단과 함께 군대가 이동해 들어오고 있었다. 코린트는 단순히 크라레스 제국의 멸망만을 원하고 있 었지만, 그들의 경우 크라레스의 드넓은 대지를 차지하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그들은 여태껏 행해져 왔던 모든 전쟁이 그래 왔듯 조금씩 확실하게 적을 섬멸하면서, 군대를 이용하여 점령지를 착실하게 넓혀 나가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크라레스의 풍요로운 서부 지역을 탐욕스럽게 집어삼키기 시작한 레드 이글 기사단은 그날 밤 늦게까지 크라레스의 기사단과 접전을 벌이다가, 상대방이 꼬리를 말고 후퇴하자 더 이상 전투를 확대하지 않고, 진격을 멈춘 후 피로를 풀며 내일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법을 이용해서 밤을 대낮처럼 밝히면서 대판 전투를 벌일 수 도 있겠지만, 사실 그렇게 무리해서까지 전쟁을 할 이유는 양쪽 어디에도 없었다. 양쪽 다 낮에 있었던 전투의 피로를 푸는 것이 더욱 중요했다. 그리고 다음 날 있 을 피비린내 나는 전투에 대한 대책도 세워야 했고…….
“아직 그거 다 못 끝냈어. 조금만 더 시간을…
마법 구슬에 나타난 아르티어스는 다크의 얼굴을 보자마자 당황한 표정으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이런 멍청하기 그지없는 드래곤의 모습에 다크는 빙그레 미소 지은 후 다정한 어조로 말했다.
“아뇨. 그 일은 이제 됐어요. 지금 바로 이쪽으로 오세요. 급한 일이 생겼어요.”
“응? 일은 무슨 일?”
썩 내켜하지 않는 아르티어스의 표정으로 봤을 때, 요 근래 들어서 아들 녀석 덕분에 호된 경험을 치렀던 것이 분명했다. 그런 아르티어스의 물음을 묵살하며 다크 는 단호하게 외쳤다.
“당장 이리로 와욧!”
다크의 ‘명령’에 아르티어스의 얼굴은 금세 죽을상이 되는 듯싶더니, 곧 체념한 듯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 알았다. 조금만 기다려라.”
그와 동시에 아르티어스의 몸은 희뿌연 빛 무리에 감싸였다. 아르티어스가 사라지고 잠시 후, 다크의 옆에 또 다른 빛 무리가 생성되더니 그것이 사라졌을 때 거기 에는 아르티어스가 서 있었다.
“빨리 오라는데 왜 그렇게 잔말이 많아요?”
“그, 그거야…….”
다크는 어색한 대답만을 반복하고 있는 아르티어스를 더 이상 추궁하지 않고 언제 그랬냐는 듯 표정을 확 바꾸면서 친근하게 얘기하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놀라운 표정 변화요, 분위기의 반전이었다.
“아, 이왕에 오셨으니까 됐어요. 실은 아빠하고 연락하기 전에 부하들과 몇 가지 사소한 일을 의논 하던 도중에 아주 좋은 작전이 떠오른 것이 있는데요. 그것 때문 에 아빠한테 부탁드릴 일이 있어서요. 헤헤…….”
갑작스레 표정을 바꾸면서 미소 짓는 다크를 보며 아르티어스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저 사악한 미소를 짓고 있는 아들 녀석의 부탁이 무엇이든 간에 도저히 거절 할 수 없는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마도 밤하늘에 떠 있는 두 개의 달 중에서 하나가 가지고 싶다고 그녀가 ‘부탁한다고 하더라도, 아 르티어스는 뒷일은 생각해 보지도 않고 무조건 허락했을 것이다. 그리고 말도 안 되는 그 약속을 지켜 내기 위해 밤하늘로 날아올랐을 것이다.
아르티어스는 언제 자신이 한숨을 푹 내쉬었냐는 듯, 부드러운 눈길로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소녀를 바라보며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언제나처 럼…..
마도 왕국 알카사스는 마도 왕국이라는 그 이름에 걸맞게 최신형 타이탄들을 대량으로 보유, 주위의 약소국들을 긴장시켰던 강력한 대국이었다. 알카사스에는 총 5개의 기사단이 존재했다. 근위 기사단은 1.5의 카르마 50대를, 그 외의 4개 기사단은 1.32급의 가이아를 각각 50대씩 보유하고 있었다. 6년 전부터 불붙기 시작한 군비 경쟁 때문에 차세대 주력 타이탄인 가이아를 대량으로 생산하기는 했지만, 나중에 적이 될 가능성이 있는 국가들이 얼마나 강력한 타이탄을 차세대로 연구, 생 산하고 있는지 신경 쓰지 않은 어리석음을 범한 것이 알카사스의 가장 치명적인 실수였다.
알카사스가 카르마와 가이아를 생산하는 동안 상대국들은 최소 1.3급부터 시작하여 2.0을 상회하는 초강력 타이탄들을 생산하고 있었으니, 그것을 눈치 챘을 때
는 이미 너무 늦은 다음이었다. 알카사스의 원로원은 크라레스를 위험한 도박을 통해 성장한 ‘신흥 강국’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크라레스가 코 린트, 크루마, 알카사스, 아르곤의 4대 강국 체계에 끼어들 정도의 실력이 있다고 처음부터 믿지 않고 있었다. 6년 전의 전쟁에서 그들이 승자의 입장에 선 것도 크 루마라는 강국의 뒤에 줄을 잘 섰기에 얻어진 행운쯤으로 치부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에서야 그들은 왜 크라레스가 6년 전에 승자의 대열에 서게 되었는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국경을 지키고 있는 크라레스의 기사단은 겨우 제6전 대 하나뿐이었고, 그 타이탄의 숫자도 30대뿐이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그들이 지니고 있는 타이탄은 은빛 찬란한 겉모양만 화려한 것이 아니라 성능 또한 가이 아급에 필적할 정도로 뛰어났다. 그리고 그것을 조종하는 기사들의 능력은 알카사스의 기사들에 비해 월등하게 뛰어났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알카사스가 강대국과 전쟁을 치렀던 것은 거의 반세기 전. 그것도 그 당시 알카사스의 동진(東進)을 가로막고 있던 대 제국 크라레스 를 상대로 한 것이었다. 그 전쟁에서 알카사스는 대패를 당했고, 그 후로 크라레스와의 충돌을 두려워해서 엔테미어 공국까지 완충지대로 만들지 않았던가?
알카사스가 이렇듯 승리가 확실하지 않은 전투를 꺼렸던 것에 반하여 크라레스는 어떻게 보면 매우 호전적이기까지 한 제국이었다. 40년 전의 치욕을 씻어 내기 위해 국력을 비축했고, 또 그것을 6년 전에 실행에 옮겨 완수해 내는 놀라운 재주를 부렸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다크라는 변수의 도움도 있었지만, 크라레스 기 사들의 충분한 실전 경험과 실력도 당당하게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크라레스의 제6전대와 알카사스의 레드 이글 기사단이 격전을 벌인 그날 저녁, 레드 이글 기사단은 상대방이 예상외로 강력하다는 데 놀라고 있었다.
“겨우 적 타이탄 30대를 상대로 이렇게 고전을 면치 못하다니, 정말 치욕스런 일입니다, 각하.”
젊은 기사가 투덜거리자 5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노기사는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젊은 것들이 정말 뭘 몰라도 한참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쯧쯧, 어쩌면 이것은 당연한 일이니 그렇게 말할 것 없다.”
“예? 하지만.
“크라레스는 예로부터 뛰어난 기사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던 강력한 대국이었다. 그들의 실력은 결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야. 처음부터 적을 너무 가볍 게 생각하고 덤빈 이쪽의 실수야.”
그 노기사는 야전 천막의 천장에서 날아다니고 있는 나방들을 바라보며 회상에 잠긴 듯한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그렇군. 옛날에 내가 처음 참전했을 때도 그랬었지. 하지만 병영의 분위기는 지금과 완전히 달랐었다. 그때는 초강대국의 대열에 들어 있는 크라레스 제국을 상 대로 변방에서 힘을 키워 온 우리들이 과연 잘해 낼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과 기대감을 안고 전장으로 향했었지.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한 번 망하기 직전까지 갔다 가 다시 새롭게 세력을 키우는 크라레스 따위는 상대도 안 된다고 모두들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크라레스는 수백 년 전부터 당당하게 초강대국의 대열에 들어 있 던 대 제국이다. 근래에 조금 힘이 쇠약했다고 하나, 오늘 보니 과거의 그 전성기로 다시 돌아간 듯했다. 결코 얕볼 상대가 아니야.”
이번에는 또 다른 젊은 기사가 질문을 던졌다.
“이제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각하.”
“으음.”
노기사는 신음 소리를 흘린 후 나직한 어조로 말하기 시작했다.
“오늘 적을 기습하여 힘껏 밀어붙였다고 하나, 사실 얻은 것은 거의 없다. 적 타이탄 14대를 파괴했다고 하지만, 적들의 방해로 인해 노획한 수는 겨우 4대 정도다. 노획한 타이탄의 수가 적었던 것도, 전장을 이쪽에서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어. 그런데도 우리는 타이탄 23대를 잃었다. 기습이었는데도 적들이 그 정도 의 투혼을 발휘했다는 것은, 내일부터는 전세가 어떻게 바뀔지 도저히 알 수 없다는 말과 같은 것. 대책을 세워 두는 것이 좋겠지.”
“생각해 두신 것이 있으십니까? 각하.”
“으음, 전투 첫날부터 치욕스런 일이기는 하나, 본국에 증원을 요청하는 것이 좋겠다.”
이번에는 처음부터 노기사와 대화를 나누었던, 약간 붉은빛이 도는 갈색 머리의 청년이 다시 질문을 던졌다.
“예? 적들은 지금 여유가 없는 상태입니다. 코린트와 아르곤을 막기에 급급해서 더 이상의 증원은 어려울 것입니다. 그런데도 증원군까지 부른다면 폐하로부터 무 능하다는 질책을 받으실 우려가 있습니다. 설혹 폐하께서 아무 말씀이 없으시더라도 원로원에서 가만히 있을까요? 그 마법사 늙은이들은 어떻게 하면 폐하의 힘을 줄일 수 있을까 그것만 연구하는 것 같던데요.”
노기사는 갈색 머리 젊은이의 눈을 잠시 바라봤다. 젊은이의 눈에는 상관을 향한 우려의 감정만이 있을 뿐, 그 어떤 잔꾀 따위는 없어 보였다. 그것을 확인한 후 노 기사는 지그시 눈을 감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따위 질책 정도 받는 것은 하찮은 일이다. 또 원로원으로부터 무능하다고 손가락질을 받아도 상관없는 것이야. 본관에게는 폐하께 하사받은 이 침공군이 승리 를 얻을 수 있도록, 그리고 될 수 있으면 많은 병사들이 이 전쟁에서 살아서 고국에 돌아가도록 해 줘야 할 의무가 있다. 그리고 그것이 본관에게는 무엇보다도 우선 해야만 하는 과제인 것이야. 알겠는가?”
“옛, 각하.”
“그리고 솔직히 겁이 나는 것도 사실이다. 이 병력만으로 적에게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서지 않는군. 아마도 내가 너무 늙은 탓인 모양이야.”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각하. 각하께서는 과거에 있었던 엔테린 평원 전투에 참가하셨던 분들 중 몇 안 되는 생존자의 한 분이십니다. 하지만 저희들은 누구도 각하께서 늙으셨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늘도 가장 앞장서서 적들과 격투를 벌이셨지 않습니까?”
엔테린 평원은 크라레스와 엔테미어 공국의 국경 부근에 있었다. 그리고 그곳은 과거 알카사스와 크라레스의 양쪽 군대가 격전을 벌였던 곳이기도 했다. 그 전투 에서 대패했던 알카사스의 경우 많은 유능한 기사들을 잃었다. 그리고 그 전쟁이 벌어진 후 50여 년이 흘렀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때의 참전 용사들이 지금까지 생존해 있을 가능성이 별로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허허헛, 늙은이를 보고 늙지 않았다고 하다니……. 그건 좀 말이 심하군. 그건 그렇고 테네즈.”
“옛, 각하.”
“자네는 본국에 지원을 요청해라.”
“지원 규모는 어떻게 보고하면 되겠습니까?”
“브르세르,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예, 각하께서 지원을 요청하기로 결정하셨다면… 기왕에 요청하는 것, 약간 과하기는 하겠지만 1개 기사단 정도를 청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물론 지금 현 재라면 너무 과한 것이겠지만, 적들 쪽에도 지원군이 도착한다면……”
브르세르의 조심스런 답변이 썩 마음에 들었는지, 노기사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본관도 그게 걱정이야. 좋아, 브르세르 경의 말대로 1개 기사단을 청하기로 하세나.”
“옛, 각하.”
노기사는 이제 시선을 밤하늘로 돌렸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지만 그래도 수많은 곤충들이 등잔불빛을 보고 몰려들고 있었다. 이렇듯 곤충이 많이 살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이곳의 자연이 풍요롭다는 뜻.
“과연 멋진 대지로군. 마법이 없어도 이렇게나 아름다울 수 있다니……. 이 땅을 위해서라면 피를 흘릴 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어. 안 그런가? 브르세르.”
“맞습니다, 각하.”
알카사스의 침공군 총사령관인 클레멘스 후작은 테네즈를 시켜 대단히 사태가 어려우니 1개 기사단을 추가로 파병해 달라고 원로원에 정식으로 요청했다. 국왕파 인 클레멘스 후작은 이번 요청 건으로 인해 원로원 측에서 자신에게 뭔가 문책이 올 것을 각오하고 행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원로원은 그것을 이용해서 국왕파를 견제할 생각 따위는 처음부터 가지고 있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보고가 가지는 중요성을 그들은 벌써 알고 있었기 때 문이다. 그들은 클레멘스 후작의 요청이 날아오자마자 곧장 원로 회의를 소집했다. 첫날 전투가 예상외로 격렬했고, 또 피해도 크다는 것에 그들은 심각한 우려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반세기 전의 실패를 또다시 되풀이할 수는 없습니다. 빨리 용단을 내려야만 합니다, 의장님.”
“클레멘스 후작의 요청대로 빨리 1개 기사단을 파견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원로들 중에서 추가로 기사단을 파병하는 것을 반대하는 인물은 없었다. 그들 중에서 클레멘스 후작이 자신의 무능함을 감추기 위해 엉터리로 보고한다고 믿는 인 물은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번 크라레스 침공군을 이끌고 있는 클레멘스 후작의 능력은 원로파와 국왕파 양쪽에서 인정받고 있었다.
“1개 기사단만으로 사태가 호전될까?”
의장의 목소리에는 짙은 우려감이 감춰져 있었다. 1백 살이 넘은 최고위직의 마법사였지만, 마법을 이용해서 자신의 노화를 감추고 있었기에 30대 초반의 한창 나 이로 보였다.
“우선 급한 불은 끌 수 있을 겁니다.”
이윽고 의장은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힘차게 말했다.
“좋아, 그렇다면 콘도르 기사단을 그쪽으로 보내기로 하세.”
“이번에도 국왕파의 기사단을 파병한다면 반발이 있을 겁니다. 젊은 것들은 우리들이 국왕을 쓸데없이 견제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그러니 이번에는 팔콘(Falcon) 기사단을 파견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그렇게 쉽게 생각해서 될 일이 아니야. 적들을 코앞에 두고 국왕파와 원로파의 기사들 간에 다툼이 생길 우려가 있어. 서로 반목하게 된다면 일을 그르칠 수도 있 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지. 둘 다 국왕파로 하는 것이 문제가 없을 거야.”
“하지만…….”
“아, 내가 직접 국왕을 설득해서 처리할 테니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말게나.”
“예, 알겠습니다.”
“의장님, 꼭 크라레스와 사생결단을 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클레멘스 후작의 보고에 따르면 예상외로 적이 강하지 않습니까? 그런 적들과 정면 대결을 벌여서 좋을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만약 예전에 크라레스 제국과 전쟁을 벌이지만 않았어도 본국은 더욱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때 1백 명이 넘는 기사들을 잃었습니다. 그런 실수를 다시 되풀이한다면…..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보니, 뭔가 생각해 둔 것이 있는 모양이지?”
“예, 크라레스와 협상을 해 보는 겁니다.”
예상외의 의견에 의장은 미심쩍어 했다. 적을 상대로 선전 포고도 없이 전투를 시작한 지 겨우 하루밖에 안 되었는데, 벌써부터 협상을 들고 나왔으니 무리도 아니 었던 것이다.
“협상? 협상이라고?”
“예, 비밀리에 사신을 보내어 이쪽에서 원하는 것을 들어준다면, 기사단을 철수하겠다고 통보하는 것입니다. 그놈들도 적이 하나 준다는데 거절하지는 못할 것입 니다.”
“물밑 접촉을 해 본다. 그것도 괜찮군. 그래, 조건은 뭘 내걸 것인가?”
“이쪽이 아주 유리하니까 뭘 내걸어도 상관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본국의 오랜 숙원을 이룰 수만 있다면 더욱 좋겠지요. 타이탄은 재생산할 수 있지만 한 번 죽은 기사는 다시 되살릴 수 없습니다. 이점을 고려해 주십시오, 의장님.”
그의 의견은 승리를 하더라도 필연적으로 얻게 될 기사의 소모를 염려하고 있었다. 알카사스는 마법사의 수에 비했을 때 우수한 기사의 수가 너무나도 모자랐기 때문이다. 그런 기사들을 잃는다는 것은 장기적인 안목으로 봤을 때 별로 좋은 일이 아니었다.
“으음……. 자네 의견에도 타당성은 있군. 그래, 자네들의 생각은 어떤가?”
의장의 물음에 원탁에 앉아 있던 다른 원로들도 찬성을 표했다.
“저희들도 찬성입니다. 싸우지 않고 원하는 걸 얻어 낼 수 있다면 더욱 좋겠지요. 그리고 나중에 가서 코린트와 아르곤이 크라레스를 멸망 직전까지 밀어붙인다 면, 그때 다시 참전하여 스바시에를 획득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구요.”
“모두의 생각이 그렇다면, 좋네! 사신을 파견하기로 하지. 그리고 만일을 대비해서 내일 새벽에 콘도르 기사단을 추가로 파병하기로 하세나. 그편이 안전하지 않 겠나?”
“그게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