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12권 6화 – 벼룩의 보고에 따르면…
벼룩의 보고에 따르면…
“저기로 하자.”
여기저기를 한참 돌아다니다가 다크가 지목한 곳은 3킬로미터 정도나 떨어져 있는데도 엄청난 덩치로 압박해 오는 거대한 성이었다.
그 덕분에 다크의 손을 따라가던 팔시온의 눈동자가 화등잔만 하게 커지고야 말았다.
“뭐, 뭐……. 저 큰 성을 공격하자고? 타이탄을 이용한다고 하지만 겨우 네 명이서?”
팔시온의 의견에 미카엘도 고개를 끄덕이며 찬성했다.
“맞아, 저건 너무 커. 딴 거로 고르자구. 여태까지 지나오면서 요새를 두 개 정도 봤잖아? 그 정도가 알맞다구.”
“한 번 정했으면 그걸로 밀어붙이는 거야. 척 봐도 많이들 있을 것 같잖아.”
찬란한 황금빛을 뿜어내며 드라쿤이 공간을 가르고 튀어나오는 것을 힐끗 보고 다크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타이탄은 집어넣어. 여기서 타이탄을 꺼내면 놈들은 결코 안온다구.”
“그러면 어쩌자는 거야?”
“어쩌기는……. 이렇게 하지.”
다크는 자신의 짧은 검을 쭉 뽑아 들었다. 황금빛이 나는 검신의 끝이 성을 향하게 되었을 때 다크는 짤막하게 외쳤다.
“헬파이어(Hell Fire)!”
그와 동시에 검에서 진홍색의 거대한 화염 덩어리가 무시무시한 열기를 토해 내며 성을 향해 돌진해 들어갔다. 그 열기가 성에 부딪치자 엄청난 굉음과 함께 성의 태반이 박살 나 버렸다. 만약에 방어 마법진이 쳐져 있었다면 그 정도까지 피해를 당하지 않았을 테지만, 변방에 있는 성 하나하나에까지 강력한 방어 마법진을 설 치하고 있을 정도로 코린트의 마법사들이 할 일이 없지는 않았던 것이다.
“새로운 정보가 도착했사옵니다, 전하.”
“그래, 뭐냐?”
“벼룩의 보고로는 오늘 새벽에 작전 회의가 있었다고 하옵니다. 그 작전 회의를 주도한 것은 고양이었사옵니다. 사실상 토지에르와 루빈스키가 없어진 지금 크라 레스의 총사령관은 그녀가 될 수밖에 없을 테니까 말이옵니다.”
로체스터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귀찮게 되었군. 그래, 거기서 토의된 내용은?”
“벼룩은 그 회의에 참관할 수 있을 정도로 지위가 높지 않았기에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었다고 하옵니다. 하지만 회의가 끝난 후 스바시에 기사단이 제6전대를 돕기 위해 서쪽으로 공간 이동을 했고, 제7, 8전대 및 3, 4전대의 잔여 세력이 모두 아르곤 전선을 돕기 위해 이동했다고 하옵니다. 그리고 치레아 기사단은 미란을 돕기 위해 미란으로 갔다고 하옵니다.”
“그렇다면 수도의 방어력이 현저히 떨어질 텐데, 그때 만약 조금만 더 밀어붙였으면 수도 함락도 시간 문제였었는데…. 놈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는 것인 가?”
“예, 바로 거기에 문제가 있사옵니다. 부하들을 여기저기에 파견하여 급한 불을 끄면서도 고양이는 계속 수도에 남아 있다는 것이지요. 또 치레아 기사단 대신 제5 전대가 그녀와 함께 행동하기 위해 대기 태세에 들어갔다고 하옵니다.”
부하의 보고에 로체스터 공작의 표정이 확 찌푸려졌다.
“그렇다면 매우 귀찮게 되겠군. 어디도 건드릴 수 없지 않나? 어디를 치든 곧 그녀가 기사단을 이끌고 구원하러 올 건데…….”
난감한 표정으로 말하는 로체스터에게 해골 가면을 뒤집어쓰고 있는 기사가 툭 던지듯 말을 걸었다.
“그렇지 않아.”
“자네에게 뭐 좋은 생각이라도 있나?”
“국가라는 것은 말이지, 시민들에 대한 국가의 통제력이 무너지면 곧이어 망하는 거야. 그 통제력이 무너지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 군대가 무너진다든 지, 최상층부에 있는 귀족들이 모두 죽는다든지, 왕족들이 죽는다든지……. 하지만 꼭 그렇게 위로부터 무너지는 것만을 생각할 필요는 없겠지.”
“그렇다면?”
“광범위한 지역에 기사단을 투입하여 녀석들의 말단을 하나씩 파괴해 나가면 제국 전체는 오래지 않아 붕괴하게 되어 있어. 원래가 군대나 기사단의 임무가 그 속 살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감싸서 막는 데 있지만, 녀석들은 기사단의 보호에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속살을 완전히 드러내고 있지 않나? 그러니 기회는 지금이 라고 생각하네.”
“좋아, 쓸데없는 피를 많이 봐야 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녀석들이 원한 거니까 사양할 필요는 없겠지.”
로체스터 공작은 크라레스의 영토가 자세하게 그려져 있는 지도를 음흉스런 미소를 지으면서 훑어보기 시작했다. 꼭 상대방의 군대와 대결할 필요가 없다면 공격 할 목표는 얼마든지 있었다. 상업 도시, 군사 거점, 행정의 중심지,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곳들 중의 하나가 세금의 이동 통로 및 식량 저장고였다.
세금을 순전히 돈으로만 거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기에 추수에 맞춰 각종 식량들을 거둬들여 쌓아 둔 저장 창고들은 바로 세금의 이동 통로와 밀접한 연관 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지키기 위해 군대도 주둔하고 있겠지만, 그들은 도적 따위를 방비하기 위한 것이지 결코 기사단의 적수가 될 수는 없었다.
“좋아, 여기와 여기, 그리고 여기부터 시작하기로 하지. 모두들 가장 큰 식량 집적소들이니까 말이야.”
“식량 집적소뿐만 아니라 지방 행정을 담당하는 백작들의 저택이나 성들도 같이 뭉개 버리면 효과가 더욱 배가될 거야.”
“그렇군, 그편이 더욱 효과적이겠지.”
그들이 공격할 목표들과 그곳에 파견할 기사단 규모를 의논하고 있을 때 마법사 한 명이 헐레벌떡 달려와서 다급한 어조로 보고했다.
“전하, 밀티성이 공격당했다고 하옵니다. 시급히 원군을 청하고 있사옵니다.”
“그래? 규모는 얼마나 된다고 하던가?”
밀티성이라면 코린트 동남부의 군사 요충지였다. 코린트의 동쪽에는 아르곤이, 남쪽에는 크라레스가 포진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남쪽의 크라레스에서 코린트로 들어오는 통로야 매우 많은 것이 사실이었지만, 아르곤과 코린트 사이에는 거대한 쟈코니아 산맥이 가로막고 있다.
그렇기에 아르곤에서 코린트로 들어올 수 있는 통로는 몇 개 되지 않았기에 밀티성은 아르곤을 대비하기 위한 확실한 방어선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평상시에는 1 개 보병사단과 함께 두세 명의 기사들이 파견되어 지키고 있을 정도로 중요시되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물론 크라레스와의 전쟁이 터진 후, 아르곤이 침공해 들어올 가능성이 사라진 상태이기에 기사들은 철수한 상태였지만, 군대는 여전히 주둔하고 있었다.
“그게, 적의 규모를 짐작할 수 없사옵니다.”
“놈들이 공격을 가해 왔다고 하면서 적의 규모도 모른단 말이냐?”
“그것이 마법만으로 장거리 공격을 가해 왔기에 도저히 짐작할 수 없다고 하옵니다.”
“마법이라고? 마법사라면 밀티성에도 있을 것 아니냐? 그리고 대타이탄용 장거리 병기들도 많을 텐데…….?
“하지만 마법사의 등급이 너무 차이가 나는지라…….”
모든 질문과 대답이 핵심을 비껴가는 듯하자 로체스터 공작은 약간 짜증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도대체 어느 정도이기에 그러느냐?”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사오나 대단히 강력한 위력의 마법이 사용된 것 같사옵니다. 어쩌면 대마법사 정도 되는 인물이 끼어 있을 수도 있사옵니다. 한 방에 성을 반 쯤 박살 냈다고 하는 것을 보면 말이옵니다.”
“뭣이? 마법 한 방에 성이 부서지다니. 도대체 어떤 마법이기에?”
약간의 놀라움을 안고 있는 로체스터 공작의 질문에, 마법사는 약간은 난감한 듯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제가 직접 본 것이 아니기에 확실한 것은 알 수 없사옵니다. 그것이 혼자서 공격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여럿이서 한꺼번에 공격했을 수도 있기에 자세한 것까지 는 알 수 없사옵니다. 어쨌든 지금 밀티성은 성으로서의 기능을 거의 상실한 것이 확실한 모양이옵니다.”
“으음~ 놈들이 밀티성을 공격한 이유는 뭘까? 도대체가 영문을 모르겠군.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글쎄……. 일단 적이 누구냐에 따라 다르겠지. 크라레스에는 토지에르 이상 가는 뛰어난 마법사는 없어. 그렇다면 놈들은 상당수의 우수한 마법사들을 이번 기 습 작전에 동원했다고 봐야 하겠지. 하지만 그렇게 해서 얻어지는 것이 뭘까? 본국 동남쪽의 방어 거점 하나를 박살 낸다고 해서, 크라레스 쪽에 어떤 이익이 있지? 혹시 크라레스가 아니고 알카사스가 아닐까?”
“아니야, 그놈들이 그렇게 간덩이 크게 나올 수는 없겠지. 거기다가 지금은 크라레스라는 공동의 적이 앞에 있는데 말이야. 어쨌든 그냥 놔둘 수는 없으니 원군을 파병하기로 하지. 알파레인 후작을 불러라!”
“옛, 전하.”
잠시 후 알파레인 후작이 도착하자 로체스터 공작은 그를 지도 쪽으로 불러들인 후 말했다.
“금십자 기사단을 동원해서 여기에 표시된 지점들에 20대씩의 타이탄을 투입하게.”
“옛.”
“그리고 정체불명의 적들에게 공격을 받고 있는 밀티성에는 남은 40대를 투입하도록! 상대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지만 대단한 실력의 마법사, 또는 마법 사들이 함께 있는 것 같다. 그 점을 유의하도록!”
“옛, 전하.”
자신감 있게 알파레인 후작이 방을 나선 후, 로체스터 공작은 후작이 나가는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뭔가 떠오른 듯 레티안에게 물었다.
“참, 방금 전 치레아 기사단이 미란을 돕기 위해 움직였다고 했었나?”
“예, 전하.”
자신의 기억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받은 로체스터 공작은 음흉하게 웃으며 말했다.
“흐흐흐. 그렇다면 일이 재미있게 되겠군. 그 정보를 크루마 쪽으로 흘려라. 그렇게 해서 크라레스와 크루마의 기사단이 충돌한다면, 더 이상 크루마도 저울 질을 하며 참고 있기는 힘들겠지.”
“예, 전하. 즉시 시행하겠습니다.”
로체스터 공작의 명령을 받은 알파레인 후작은 부단장인 해리슨 드 윌리엄스 후작에게 40대의 타이탄과 보조 인력 10여 명을 주어 밀티성으로 급파했다. 그런 후 자신은 남은 전력들을 3등분하여 공작이 지시한 크라레스의 식량 집적소들을 공격하기 위해 출동했다.
윌리엄스 후작이 자신에게 할당된 기사단을 이끌고 밀티성에 도착했을 때, 그곳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성벽 한쪽이 완전히 박살 나 버렸고, 성 내부의 건물 들도 상당수 무너져서 화염이 치솟아 오르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 와중에 건물 곳곳에는 사상자들이 무너진 건물 더미에 깔린 채 비명을 질러 대고 있었다.
대략적인 설명만을 듣고 홀가분한 기분으로 온 윌리엄스 후작에게 이 모습은 분명히 충격이었다. 이 거대한 성에 이 정도의 타격을 주려면 얼마나 집중적인 마법 공격을 펼쳐야만 할까? 윌리엄스 후작도 여러 전장을 돌아다녔지만, 마법에 의해 이 정도로 처참하게 묵사발이 난 곳은 본 적도 없었던 것이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여기 지휘관은 어디 있나?”
성내에 설치된 영구 마법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건물 더미에 깔린 부상자를 구출하고 있던 병사의 팔목을 그러잡고 묻자 병사는 상대방이 대단히 높은 인물이라는 것을 알고는 즉시 인사를 건네오며 답했다.
“부상자 구출을 위한 일부 병력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사령관님을 따라 성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러니 밖에 나가셔서 찾으시면 될 것입니다.”
“그런가?”
하기야 이 정도로 맹렬한 마법 공격을 한 번 더 당한다면 전멸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이곳 성주는 그것을 알고 병력을 성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산개(散開)시킨 모양 이었다.
“브러스!”
윌리엄스 후작의 외침에 뒤쪽에 서 있던 나이 많은 마법사가 음침한 목소리로 답했다.
“옛, 각하.”
“너는 이 상황을 상부에 보고해라.”
“옛!”
바로 그때, 저 멀리 보이는 언덕 쪽에서 금빛 광채가 뿜어 나오기 시작했다. 윌리엄스 후작이 그곳을 자세히 살펴보니 그것은 금색을 칠해 놓은 타이탄들이었다. 후작이 전해 듣기로는 금빛 나는 타이탄들을 가지고 있는 국가는 단 한 곳뿐이었다. 크라레스의 속국인 치레아 공국이 보유하고 있는 드라쿤이라는 타이탄이었다. 정보에 의하면 드라쿤의 생산 대수는 20대 내외. 상대방이 치레아 대공의 개인 기사단이기에 실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이쪽이 두 배는 많았다. 놈들의 마법사가 뒤 에서 화력 지원을 해 준다고 해도 충분히 승산이 있는 전투였던 것이다.
윌리엄스 후작은 음침한 미소를 흘리면서 마법사에게 외쳤다.
“브러스, 너는 이 사실을 보고해라. 치레아 기사단의 드라쿤 세 대 발견. 격퇴하겠다고 말이야.”
“옛, 각하.”
“오너들은 타이탄을 꺼내랏.”
“옛, 각하.”
모두들 타이탄을 꺼내고 있을 때 작전관이 망원경으로 상대편 진영을 자세히 살펴보고 있다가 외쳤다.
“각하.”
“왜 그러는가? 작전관.”
“예, 적들과의 거리가 너무 멉니다. 이쪽에서 다수의 타이탄들이 돌격해 들어간다면 놈들이 지레 겁을 먹고 후퇴해 버릴 수도 있습니다.”
“딴은 그렇군. 그래, 뭐 좋은 의견이라도 있나?”
“예, 각하. 이 근처의 지형으로 봤을 때, 놈들이 저쪽으로 펼쳐진 평지에 탈출용 마법진을 갖춰 놓았다고 가정해도, 이쪽의 추격 속도가 빠르니까 공간 이동을 하기 힘들 겁니다. 물론 운이 좋다면 도망이야 칠 수 있겠지만, 상당한 피해를 받게 되겠지요. 대신, 저 뒤쪽에 있는 숲 쪽으로 도망친다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원체 고목 들이 많기에 아무리 덩치 좋은 타이탄이라도 숨기기 딱 좋지요. 놈들이 매복을 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고 말이지요. 그러니까… 제 생각으로는, 그 숲의 뒤편으로 열 명 정도를 공간 이동시켜서 적의 퇴로를 막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글쎄, 좋은 생각이기는 하지만……. 녀석들한테 상당한 실력의 마법사가 있는 것 같은데, 일이 잘못되면…..”
“그런 걱정은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리 강한 마법사라도 타이탄과 승부할 수는 없으니까요. 처음에 이동해 들어갔을 때만 조심하면 별 문제는 없을 겁니다.” “좋아, 매트 경!”
“옛, 각하.”
“경에게 아홉 명을 줄 테니 저 숲 뒤쪽으로 들어가라. 놈들에게 뛰어난 마법사가 있으니 조심하도록.”
“염려 마십시오, 각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