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13권 2화 – 다크의 탈출
다크의 탈출
“죄수가…, 죄수의 상태가 이상합니다, 나으리.”
실내에 울려 퍼지는 시녀의 다급한 외침 소리를 듣고, 기사는 뭔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그는 정신없이 문을 가로막고 있는 가구를 옆으로 밀쳐 낸 후 황급히 문을 열어젖혔다. 평상시에는 묵직하게 느껴졌던 가구가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이냐?”
시녀는 당황해서 침대 옆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외쳤다. 뭔가 이상이 생긴다면 그녀의 목으로 대가를 치러야 할 만큼 침대 위에 죽은 듯이 누워 있는 죄수의 안위 는 중요했던 것이다.
“아무래도 죽은 것 같습니다요.”
기사는 시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녀를 밀쳐 버리고는 죄수의 옆에 다가섰다. 과연 시녀의 말대로 창백하기 그지없는 안색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여기 에 잡혀 올 때나 별반 차이가 없는 듯도 보였다. 그가 처음에 이곳에서 죄수의 얼굴을 봤을 때도 이렇듯 창백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는 먼저 상대의 호흡을 살폈다. 역시 죄수는 숨을 쉬지 않고 있었다. 그것을 확인하는 순간 기사의 심장은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이런 제기랄! 이렇게 중요한 죄수가 하필이면 내가 당번일 때 죽어 버리다니……. 죽고 싶으면 아까 지오그네 경이 왔을 때 죽었으면 좋았을 거 아냐? 이 일을 어 떻게 처리하면 되지?”
그는 마지막으로 소녀의 경동맥 위에 살짝 손가락을 대고 상대의 맥박을 살폈다. 만약 맥박이 아직 희미하게나마 뛰고 있다면 손 쓸 길이 남아 있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아직 죽지 않았다. 희미하지만 맥이 살아 있어.”
기사는 이제 갓 자라나기 시작한 듯한 소담한 소녀의 가슴에 그 커다란 손을 대고 세차게 압박했다가 풀었다가 하기를 반복하며 황급히 시녀에게 외쳤다.
“너는 빨리…”
기사는 시녀를 보내 봐야 그녀의 걸음걸이로는 도저히 제시간에 닿을 가능성이 없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소녀는 죽어 가고 있었다. 아마도 약을 너무 과하게 쓴 탓일 것이다. 한시가 급했다.
“너는 여기에서 내가 돌아올 때까지 소녀의 심장이 뛰도록 도와라. 나는 가서 도움을 청하고 오겠다.”
“예, 나으리.”
기사는 정신없이 문을 박차고 달려 나갔다.
기사가 달려 나가고 난 후 3분쯤 지났을까? 콧등에 땀방울이 맺힐 정도로 열심히 가슴을 지압하고 있던 시녀는 문득 죽은 듯이 누워 있는 상대가 빤히 자신을 바라 보고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그 순간 죄수는 쏜살과도 같이 손을 뻗쳐 왔다. 상대의 턱과 뒤통수를 잡고 휙 돌리자마자 우두둑하는 기괴한 음향이 들려왔다. 그리고 죄수는 자신의 위에 쓰러져 있는 시녀를 옆으로 밀치면서 일어섰다.
“휴~”
소녀는 한숨을 내쉬며 침대 밑에 놓여 있는 자신의 작은 신발은 신을 생각도 안 하고 곧장 밖으로 달려 나갔다. 언제 기사가 돌아올지 모른다. 미네르바에게 직접 보고를 하러 달려갔을 수도 있고, 도중에 다른 기사를 만나 그에게 연락을 청하고는 다시 돌아올 수도 있었다.
소녀로서는 최대한 빨리 밖으로 도망쳐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바쁜 와중에도 소녀는 기사가 먹다가 놔둔 빵 한 덩어리와 큼직한 고기 조각 하나, 그리고 물병 을 챙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소녀가 달려 나가고 나서 한 5분 정도 지났을까? 마리아 지오그네가 사색이 다 되어 도착했다. 그녀는 마법사에게 이 기막힌 소식을 전달받은 즉시 이곳으로 공간 이동해 왔던 것이다. 소녀는 살아 있는 채로 코린트에 넘겨줘야만 했다. 그래야만 드래곤의 진노를 코린트에게로 떠넘길 수가 있는 것이다. 만약 여기에서 죽는다 면…, 그 뒤는 생각하기도 싫었다.
마리아 지오그네는 실내의 전경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시녀는 목이 휙 돌아간 채 엎어져 있었다. 정면으로 보이는 시녀의 얼굴 표정으로 보아 그녀는 자신 의 죽음을 최후의 순간까지도 모르고 있었던 것 같이 보였다.
바로 이때, 각 구획을 나누는 통로에 대기 중인 마법사에게 위급 사항을 전달하고 곧장 이곳으로 다시 돌아온 기사가 헐떡거리며 도착했다. 기사 역시 실내의 전경 을 보고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얼빠진 듯한 표정을 하고 있는 부하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던 지오그네는 음산하게 외쳤다.
“빨리 죄수를 찾아라. 각 통로는 막혀 있다. 그러니 이 구획 내의 어딘가에 숨어 있을 거다. 빨리 찾앗!”
“옛, 각하!”
후다닥 달려가는 기사의 뒤통수를 바라보던 지오그네는 인원을 좀 더 동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말이 좋아서 한 구획이지 이곳은 엄청나게 넓고 복잡했다. 결단 코 기사 한 사람이 이곳저곳 뒤져서 숨어 있는 쥐새끼를 찾아낼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멍청한 것! 죄수를 감시하는 일 하나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다니.”
지오그네는 곧장 당직실로 달려가서는 어젯밤을 새운 후 자고 있는 토린을 두들겨 깨워서 함께 통로 쪽으로 달려갔다. 통로에는 각 구획을 차단하는 방어 거점이 있었고, 거기에 가면 비밀리에 신속하게 투입할 수 있는 병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사단의 기사나 방어 사령부의 병사들을 추가로 뽑아서 수색작전에 투입하지 못할 것도 없었지만, 그렇게 하려면 사령관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쾅! 쾅!”
세차게 철문을 두들기자 작은 창이 열리며 두 개의 눈이 드러났다. 상대는 철문 앞에 씨근덕거리며 서 있는 사람이 누구라는 것을 알아보자마자 곧장 철문을 열었 다. 부하의 보고를 받고 서둘러 달려 나온 기사는 깍듯하게 인사를 건넨 후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런 한적한 곳에서 하루에 두 번씩이나 만나기에는 지오그네 의 신분이 너무나 높았던 것이다.
“어쩐 일이십니까? 각하.”
“빨리 병사들을 풀어라.”
“예? 하지만 보루의 병사들을 풀려면 그에 따른 절차와 허가서가 있어야만 합니다.”
기사의 말에 지오그네는 짜증스런 어조로 외쳤다.
“내가 그걸 모르는 줄 아나? 경도 들었겠지? 포로의 신상에 뭔가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말이야.”
“예, 각하. 저희 보루를 통해서 각하께 보고가 올라갔으니 그건 당연하지요.”
“그 포로가 탈출했다. 죽은 체한 것은 연극이었다 이 말이다. 알겠나?”
지오그네의 말에 기사는 기가 찬 듯 중얼거렸다.
“그럴 수가……”
“경도 포로가 탈출하는 데 일조를 한 이상, 전하의 귀에 이 사실이 들어가기 전에 일을 조용히 마무리 짓도록 도와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기사는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포로가 각 구획을 나누고 있는 보루를 파괴할 힘이 없는 한 탈출은 불가능했다. 또, 그 어떤 곳의 보루도 파괴되었다는 연락을 받은 적이 없으니 물론 이곳 어딘가에 숨어 있을 것이다. 병사들을 대량으로 투입한다면 금방 찾아내겠지만, 소수의 병사들로 못 찾을 것도 없었다. 그 말은 열심히 뒤진 다면 상급자들에게 보고가 들어가기 전에 지하에 남아 있는 인력만으로 포로를 찾아낼 수도 있다는 말이었고,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알겠습니다, 각하.”
“각 보루에서 기사 한 명과 견인족 열 마리씩 차출하여 수색 작전에 투입해라. 남은 인원만으로도 경비 태세는 충분히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곳 지하는 다섯 개 구획으로 나누어져 있었고, 그 다섯 구획은 여덟 개의 통로를 통해 연결되어 있었다. 따라서 이곳에는 여덟 개의 보루가 있다는 말이었고, 동 원 가능한 인력은 기사 여덟 명과 견인족 80마리였다. 그 정도면 구획 하나가 아무리 넓다고 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포로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다가 특히 나 견인족들은 후각이 뛰어나지 않던가?
“옛, 각하.”
지오그네는 자신과 함께 달려왔던 토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경은 보루에서 인력을 할당받는 즉시 로린스 경과 합류하여 수색을 시작하라.”
“옛!”
“두 시간의 여유를 주겠다. 그게 내가 경에게 줄 수 있는 최대의 시간 여유다. 그 안에 찾아낸다면 이번 일은 내 손에서 무마시킬 수 있다. 알겠는가?”
“옛, 각하.”
“이런 젠장!”
다크는 한 모금 가득 물을 들이켠 후 욕설을 내뱉었다. 병을 흔들어 보고는 속에 액체가 들어 있는 것만 확인하고 가져왔는데, 이게 물이 아니고 포도주였던 것이 다. 그 속에 뭐가 들어 있는지 확인할 겨를도 없었던 탓이었다.
“끄윽! 완전히 빈속에 마셨더니 술기운이 오르는데? 가만, 이럴 때가 아니지. 시간이 없어.”
다크는 고기를 한입 크게 베어 물고 우물거리면서 달려가기 시작했다. 발에는 아무것도 신지 않았기에 그녀의 발걸음 소리는 거의 들리지도 않았다.
“무슨 건물이 이렇게 커? 하기야 크루마의 황궁이니 클 만도 하겠지…….?”
한동안 달려왔는데도 불구하고 변한 것이 거의 없었다. 마차 두 대는 족히 지나갈 수 있을 만한 넓은 복도, 그리고 또 마차 한 대 정도 지나갈 만한 복도, 그리고 그 사이사이로 중무장한 병사 두세 명이 통과할 수 있는 복도들이 층층이 얽혀 있었다. 그리고 수많은 방들이 그 안에 있었다.
사람들이 거의 살지 않는지 넓은 복도들을 제외하고는 횃불이 놓여 있지 않았기에 전체적으로 컴컴했다. 오히려 그편이 다크를 안심시켰다. 몸을 숨기기에는 제격 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처음에는 횃불을 하나 뽑아 들고 달려가다가 어떤 방인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한 곳에서 묵직한 촛대 한 개를 주워 들었고, 촛대가 놓여 있던 가구의 서랍을 뒤져서 부싯돌도 찾아냈다. 그런 후 횃불은 버렸다. 횃불이 이런 곳에서 움직이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확실하지만 아무래도 들킬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다크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기를 끌어올릴 수가 없었고, 그로 인해 어둠 속에서 보통 사람보다 조금 더 나은 시력밖에 가질 수 없었다. 그래서 사용한
방법이 이것이다.
“탁!”
부싯돌이 섬광을 발하는 순간 주변의 지리를 머릿속에 기억한다. 그런 후 움직이는 것이다. 물론 다크는 한 번 요령이 생기자 그다음부터는 달려가면서 부싯돌을 한 번씩 탁탁 쳤다.
다크는 한참을 달려가다가 막다른 벽에 부딪쳤다. 여태까지는 연결되는 크고 작은 통로가 있었지만, 이 부분에서 단절되어 있었다.
“이건 또 뭐지? 아하……. 그렇군. 건물의 외벽이야.”
다크는 촛대로 벽면을 슬쩍 두들겨 봤다.
“툭툭.”
들려오는 소리는 아주 둔탁했다. 속이 꽉 차 있다는 증거였다. 그리고 이 벽의 두께가 매우 두껍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이거 1, 2미터 두께 정도가 아닌 것 같은데? 하기야 타이탄이 설쳐 대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어딘가에 통로가 있을 거야.”
다크는 벽을 따라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육중한 강철 문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는 힘껏 그것을 밀어 봤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다. 자신의 힘이 모자라거나, 아니면 문이 잠겨 있다는 증거였다.
“제기랄!”
그녀는 낮게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또 다른 통로를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혹시나 열려 있는 통로가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움직임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복도의 저편에서 불빛이 비쳐 왔던 것이다. 그 불빛은 움직이고 있었고, 두런두런 말소리까지 들려오고 있었다. 그녀는 재빨리 벽 쪽에 바싹 붙어서 숨었다. 횃불을 들고 있는 사람들, 아니 괴물들 같았다. 사람의 몸통이었지만 머리는 꼭 커다란 개대가리 같았으니까 말이다. 그들은 한 번씩 바닥에 엎드려 킁킁대기도 하면서 천천히 이동해 오고 있었다. 그러면서 통로 주변에 있는 모든 문을 열면서 철저하게 내부를 수색하고 있었다.
“최악의 사태군.”
다크는 서둘러서 빛이 없는 구석진 곳으로 슬그머니 달려가기 시작했다. 다크가 몸을 숨긴 후, 드디어 수색대가 지척에까지 도착했다. 잠시 바닥에 코를 대고 냄새 를 맡아 본 견인족은 고개를 들면서 말했다.
“냄새를 찾았습니다!”
“어느 쪽이냐?”
“이쪽으로 간 것 같습니다.”
견인족 사내가 가리킨 곳은 통로가 있는 방향이었다. 견인족의 보고를 들은 기사는 서두르지 않았다. 그쪽으로 가 봐야 통로가 굳게 잠겨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 기 때문이다.
“너, 이쪽을 수색해 봐. 그리고 너는 저쪽!”
기사는 양쪽에 있는 건물에 또다시 견인족을 한 마리씩 집어넣어 수색하게 하고는 냄새를 따라 추격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10여 미터쯤 전진했을까?
“깨갱!”
어디선가 뭔가에 두들겨 맞는 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물론 여기서 말한 개 소리는 아무렇게나 지껄이는 당치도 않은 말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개가 내는 소리를 말함이다.
“저쪽이닷!”
기사와 견인족들은 그쪽으로 잽싸게 달려갔다. 하지만 그들이 볼 수 있었던 것은 이마에 커다란 혹이 난 채 기절해 있는 견인족 한 마리뿐이었다. 그리고 그 견인 족이 가지고 있던 무기도 사라진 상태였다.
“이런 젠장할! 끝까지 말썽을 부리는군. 빨리 흩어져서 찾아라. 멀리는 가지 못했을 거다.”
“옛!”
기사는 재빨리 견인족들을 지휘하여 통로를 차단한 후 샅샅이 뒤졌지만 소녀를 찾을 수 없었다. 마나를 운용할 수도 없을 텐데 그 잠깐 사이에 어떻게 도망쳤을 까? 그 소녀의 가냘픈 체구를 생각했을 때, 도저히 상상할 수가 없었다. 여기저기서 소녀를 찾을 수 없다는 보고가 들려오는 가운데 기사는 처음부터 뭔가 실수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부터 그녀에 대한 예상이 잘못된 것일까? 가냘픈 소녀가 달리는 속도라면 절대로 포위망을 벗어날 수 없어. 그녀는 대단한 검객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도 얕잡아보고 시작을 했으니…….?
수색을 끝마치고 또 다른 지시를 받기 위해 모여든 견인족들에게 기사는 마음을 정한 듯 분명한 어조로 외쳤다.
“도망치는 상대를 소녀라고 생각하지 마라. 상대를 소녀가 아니라 매우 잘 단련된 검객이라고 생각해라. 그녀의 체력이나 속도, 근력 그 모든 것을 우수한 검객에 맞춰 행동하라는 말이다. 알겠느냐?”
“옛!”
“너희 둘은 딴 수색조들에게도 이 말을 전해라. 마나를 쓰지 못한다고 해서 그녀의 힘과 속도를 가냘픈 소녀쯤으로 지레짐작하지 말라고 말이다.”
“옛!”
견인족 둘이 달려가고 난 후, 기사는 또다시 수색을 시작했다. 이제는 한층 더 조심스럽게…….
“젠장할! 더럽게 무겁군.”
다크는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투덜거렸다. 약간의 위험을 감수하긴 했지만, 그래도 상대가 포위망을 갖추기 전에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검까지 빼앗은 것 이다. 자신의 손에 검이 들려 있는 이상 더 이상 겁나는 존재는 있을 수 없었다. 비록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 숨을 고른 후 다크는 왼손을 앞으로 쭉 뻗었다. 그리고 오른손으로는 검을 단단히 쥐었다. 검이 조금 무거워서 힘들기는 했지만, 그녀는 자신의 오랜 숙 련도를 믿고 있었다. 검을 높이 들어 올린 후 그녀는 망설이지 않고 내리찍었다.
“팡!”
검은 곧장 팔찌를 향해 떨어졌지만, 팔찌의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뭔가의 힘에 가로막혀 불꽃을 번쩍이며 튕겨 나갔다. 그리고 동시에 지독한 고통이 시작되었다. “으갸갸갹!”
한참동안 몸에 찌릿찌릿한 전기가 통하는 듯한 고통에 이를 악물었던 그녀는 곧이어 고통이 멈추자 한숨을 내쉬며 투덜거렸다. 검으로 힘껏 내리찍었는데도 흠집 도 없었을뿐더러, 온몸에 찌릿찌릿한 충격까지 안겨 주어 놀랐던 것이다.
“젠장! 사람 놀라게 하고 있어!”
하지만 이것은 다크였으니까 그냥 찌릿찌릿하고 끝난 것이었지, 보통 사람이었다면 감전에 의한 충격으로 기절에까지 이르게 하는 보호 장치였다. 그렇지만 그녀 는 과거 블루 드래곤 카드리안의 뇌전을 자신의 마나로 끌어 들여 흡수해 버린 전례가 있었다. 그 때문에 그녀에게 흘러들었던 강력한 전기 충격의 대부분은 상당 부분 뇌전의 기운이 모여 있는 단전으로 끌려 들어갔기에, 그녀가 직접적으로 받은 충격은 크지 않았던 것이다.
어쨌든 이놈의 구속 도구들을 풀어 버릴 수는 없다는 것이 명확해졌다. 있다면 길은 한 가지, 이곳을 탈출하여 아르티어스에게 부탁하는 것뿐이었다. 아르티어스 라면 손쉽게 이것을 풀어 줄 것이다.
“포위망은 어떻게 되어 가나?”
“워낙 쥐새끼처럼 잘 도망치기에 이번에는 아예 폭넓게 둘러쌌습니다.”
“포위망이 약하지 않을까?”
“방금 전에 마지막 병력이 합류했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아무리 넓은 지하 공간이라고 해도, 시간이 조금씩 흐르면서 각 보루에서 증원병들이 차례차례 도착하여 순차적으로 투입되었으므로 처음에는 잡기 힘들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말이었다.
이제 포위 인원이 완전히 다 도착한 지금, 기사 아홉 명과 그들의 지휘를 받는 견인족 80마리가 포위망을 구성하게 된 것이다.
“좋아. 마지막 병력까지 합류했다면 이제부터 포위망을 좁혀 들어가라고 이르게.”
“예.”
“독 안에 든 쥐이기는 하지만, 조심하라고 해! 언제 물지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