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13권 9화 – 신탁을 받은 수녀

신탁을 받은 수녀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대사제님.”

“까다로운 문제로군요. 지혜로우신 아데나 여신께서 신탁을 내리셨다면, 어떤 깊은 뜻이 숨어 있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이런 경우는 참 대답하기가 어렵군요.”

수녀의 질문을 받은 대사제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코린트의 상층부와 접촉하는 것은 대신관인 자신도 힘든데, 하물며 수녀 따위가 감히 먹혀 들어갈 리가 없었 기 때문이다. 거기에다가 이곳 코린트는 아데나신보다는 전쟁의 신 아레스를 열광적으로 받드는 나라였다. 아레스를 모시는 고위급 사제라면 어떻게 될지도 모르 지만, 지혜의 여신을 섬기는 그녀들은 파고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대신관님께서 알고 계신 한도 내에서 암흑의 세기가 도래했다는 사실을 전할 만한 인물은 없을까요?”

“글쎄요……. 참,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대신관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 활기찬 어조로 말했다.

“지금 전쟁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상황이기에 뛰어난 기사들 중에서 의료 시설에서 요양하고 있는 환자들이 많이 있지요.”

대사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즉각 이해한 수녀는 탄성을 질렀다. 건강한 기사들이라면 물론 미천한 자신들이 만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아파서 누워 있는 상태라면 치료할 자격만 얻는다면 아주 손쉽게 접촉할 수 있지 않겠는가?

“아! 그렇군요.”

대사제는 자신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케락스 황실 병원에 가면 될 거예요. 여기에 소개서를 써 주겠어요.”

대사제는 서랍에서 종이와 펜을 꺼내서는 소개장을 열심히 쓰면서 말했다.

“거기에 가면 고위급의 지위를 가진 환자들을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아무래도 황실 병원이다 보니까 그곳에 입원한 환자들은 고위급 관료들이나 기사들인 경우가 많지요. 그리고 전쟁 막판에는 크라레스의 기사단이 케락스시에까지 난입해 들어와서 격전을 벌였으니까요.”

이것은 수녀로서는 처음 듣는 말이었다.

“예?”

“크라레스의 기사단이 황궁에까지 침입해 들어가서 격전을 벌였었죠. 그렇게 엄청난 대 폭발을 일으켰으니까 나도 알고 있는 거예요. 물론 군 당국에서는 적의 침 입이 아니라고 하면서 유언비어를 유포하는 자를 처벌한다는 명목 하에 소문이 퍼지는 것을 막았지만 말이에요.”

“그랬었군요.”

“자, 여기 있어요. 이걸 가지고 가세요.”

“감사합니다, 대사제님.”

“뭘요. 신녀님의 명을 행하는 것을 돕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요.”

수녀가 자신의 제자와 함께 병원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별 어려움 없이 병원에 취직할 수 있었다. 몇 시간 전에 아르티어스 어르신이 한바탕 휘저어 놓고 갔기에 엄청나게 많은 부상자들이 발생해서 그야말로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을 지경으로 인력난이 극심했기 때문이었다.

“자, 여기 있는 환자들을 치료해 주세요.”

수녀는 아연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아주 커 보이는 병원은 이미 꽉 차버렸는지, 환자들을 병원 앞에 펼쳐져 있는 넓은 잔디밭 위에다가 쭉 늘어 놨던 것이 다. 신음하고 있는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수녀는 그 막대한 수의 환자들이 마법에 의해 상처를 입었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하지만 그녀는 놀라고 있을 틈이 없이 환자의 치료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목숨이 경각에 달렸을 정도로 아주 심한 상처를 입은 환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크리스틴, 포션하고 약초, 그리고 붕대 좀 더 가져오너라.”

수녀는 자신이 가지고 왔던 포션(환자 치료용 성수)을 환자들에게 다 써 버리자 그녀의 제자에게 부탁했다.

“예, 수녀님.”

크리스틴은 수녀의 부탁에 따라 병원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한참 지나서 그녀는 약초하고 붕대만 가지고 돌아왔다.

“포션은? 다 떨어졌니?”

“아뇨.”

“그럼?”

“천한 것들을 위해서 귀중한 포션을 줄 수 없대요.”

“뭐라고?”

시무룩한 표정의 제자의 대답을 듣고 수녀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상처 입은 병사들에게 그딴 소리를 내뱉을 수 있을까?

“너는 이 환자에게 약초를 바르고, 붕대를 감아 주거라.”

“예.”

수녀는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병원 내부는 밖에서 본 것보다 더욱 호화로웠다. 수녀는 병원 밖 경비실에서 소개장을 내보인 후 곧장 환자들에게 투입되었기에 아 직 실내에 들어와 보지 못했던 것이다. 실내는 대리석으로 번쩍이고 있었고, 각종 아름다운 화초들이 심어져 있는 화분들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수녀가 가장 충격 을 받은 사실은 실내에는 거의 환자가 없었다는 데 있었다. 그렇다면 왜 그 많은 환자들을 잔디밭 위에다가 눕혀 놨단 말인가?

수녀는 마법사의 복장을 하고 있는 젊은이를 보자마자 따지기 시작했다.

“이보세요. 환자들을 어떻게 저렇게 야외에 방치할 수 있단 말입니까? 여기에는 이렇게 넓은 공간이 있는데 말이에요. 그리고 위중한 환자들을 위해서 포션을 좀 “주세요.”

그 젊은이는 얼굴 가득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비웃었다.

“그런 천한 것들을 귀족들이 치료받는 이 병원에 입원시키란 말인가? 그리고 포션 한 병의 가격이 얼마나 비싼데 그런 데다 쓰라는 건가? 저기 눕혀 놓은 것들은 하급 병사들이란 말이야. 황궁에서 사고가 났기에 저것들을 우선 이리로 데려온 것이지, 천한 것들이 감히 이곳에서 치료받을 생각을 한단 말인가? 저것들은 여기 서 대충이나마 치료를 해 주는 것만도 황감히 여겨야 할 것이야. 곧 딴 곳으로 이송해서 치료할 거니까 그런 주제넘은 말은 하지 말게.”

거만한 마법사의 설명을 들은 수녀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되돌아 나왔다. 빈손으로 미간에 줄을 두 개 그은 채로 나오는 수녀를 보며, 크리스틴은 거보란 듯 어 깨를 으쓱했지만, 감히 그 이상의 표현은 하지 못했다. 수녀의 얼굴은 결코 화가 난 것처럼 보이지 않았지만, 크리스틴은 지난 1년간 그녀와 함께 지내면서 미간에 줄을 긋고 있는 것이 그녀 나름대로 화가 잔뜩 났음을 표시하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크리스틴!”

“예, 수녀님.”

“급히 가서 물병에 깨끗한 물 좀 길어 오너라.”

“예.”

크리스틴은 조르르 달려가서 물을 떠왔다. 과연 스승님이 이 물을 가져다가 뭐를 하려는 것인지 궁금하게 여기면서 말이다. 수녀는 제자가 떠온 물을 앞에 놓고 아 데나신께 성심껏 기도를 올렸다. 심한 부상으로 신음하면서도, 변변한 치료도 받지 못하고 있는 병사들을 위한 것이었다. 기도가 계속될수록 물병을 쥐고 있는 그녀 의 손에서는 푸르스름한 광채가 더해 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길고 긴 기도가 끝난 후 수녀는 힘없는 어조로 제자에게 말했다.

“저 포션을 신관과 무녀들께 나눠 드려라. 그리고 저기 있는 부상자들의 상처에도 발라 주고 말이다.”

“예, 수녀님.”

수녀는 잠시 쉰 후에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포션을 직접 만드느라 엄청난 신성력을 썼지만, 그래도 환자들이 신음하고 있는데 계속 쉬고 있을 수만은 없었기 때문 이었다. 그녀의 옆에서 환자를 치료하다가, 그녀가 포션을 직접 제작하는 것을 본 신관들과 무녀들은 그녀에게 존경심을 가득 담아 살짝 인사를 건넸다.

2리터는 족히 될 만한 큰 물병에 가득 들어 있는 물을 포션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웬만한 신성력으로는 되지 않는 것임을 그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병자들에 대한 응급 처치가 어느 정도 다 되었을 때, 수십 대의 짐마차들이 도착했다. 그리고 부상병들은 그 짐마차에 차곡차곡 실려 어딘가로 떠나갔다. 아마도 수도 내에 산재해 있는 작은 병원이나, 아니면 수도 외곽에 있는 수도 방위 사령부 예하의 각 연대 단위에 있는 야전 병원(野戰病院)으로 보내지는 것이리라. 

“이제야 끝났군요. 무녀님께서는…….?”

마지막 마차가 떠난 후에 한 신관이 다가와서 말을 건넸다. 그는 잠시 수녀의 로브를 살펴본 후 말을 이었다. 로브에 그려진 각종 문양을 통해 어떤 교단의 무녀인 지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데나 신전에서 나오셨군요. 저는 아레스 신전에서 나왔습니다. 믿음이 깊은 무녀님과 함께 일을 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상대의 말에 수녀는 살며시 미소 지으며 답했다.

“믿음이 깊은 무녀라니요,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저는 수녀일 뿐입니다.”

“수녀라구요?”

그 신관은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되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정도의 신성력을 지녔다면 고위급……. 그러니까 최소한 대사제는 될 것으로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그는 갑자기 예전에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아데나 교단은 독특한 진급 방식이 있었다. 다른 교단은 믿음이 강하면 그에 따라 직위도 함께 올라가지만, 그곳은 성공적으로 제자를 길러내야만 대사제의 직분 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제자 한 명을 길러 내는 데는 짧은 시간으로는 절대로 안 되는 것이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기억이 떠오르자, 신관은 미안한 듯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믿음이 짧아서 잠시 경망된 어조를 사용했었습니다.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아닙니다, 형제님.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조용히 미소 짓고 있는 수녀를 보며 신관은 궁금한 듯 물었다.

“지금 어디에서 봉사하고 계신지요? 저는 수도 방위대 제34연대에서 종군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이곳으로 파견되어 왔지요.”

“저는 어제 케락스시에 도착했기에…….”

“그러시다면 저와 함께 가시지 않으시겠습니까? 무녀님처럼 믿음이 깊으신 분이라면 언제든지 환영을 받으실 겁니다.”

이때, 병사 한 명이 다가오더니 수녀에게 인사를 건네며 말했다.

“드로아 대 신전에서 나오신 수녀님이십니까?”

“예.”

수녀가 고개를 살짝 숙이면서 대답하자, 병사는 상관에게서 받은 명령을 전달했다.

“병원장이신 에스키스 백작님께서 수녀님을 뵙고자 하십니다.”

수녀는 자신에게 친절을 베푼 신관에게 인사를 건네고는 병사를 따라 병원장실로 갔다. 황실 직속의 병원이라서 그런지 실내의 규모와 화려함은 이루 말할 수 없 었다. 제자인 크리스틴은 스승을 따라가면서도 연신 주위를 둘러보며 구경했다.

이윽고 병원장실에 도착했다. 수녀는 제자를 밖에다가 두고 혼자만 안으로 들어갔다. 병원장은 인사를 건네는 수녀를 보며 슬쩍 고개를 까딱여 대답을 한 후, 날카 로운 눈매로 그녀를 노려본 후 자신이 들고 있는 편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 다음 잠시 후 입을 열었다.

“케락스 신전의 레이 대사제의 소개장을 가지고 온 드로아 대 신전에서 수련을 했다는 수녀가 그대인가요?”

“예.”

“소개장을 가지고 온 것을 보아, 이 병원에서 일하고 싶소?”

“예.”

“여태껏 아데나 신전의 무녀들이 병원에서 일한 적은 거의 없기에 묻는 것이오. 대부분 아데나 신전의 무녀들은 세상을 떠돌면서 종교를 전파하고, 또 의술을 베 푸는 것으로 알고 있었소. 그런데 왜 그대는 딴 무녀들과 달리 병원에서 일하고자 하는 것이오? 그것도, 이 병원은 귀족들을 위해 황제께서 직접 설립하신 곳이라서 환자들도 많지 않은데…….”

병원장의 질문에 수녀는 담담한 어조로 대답했다.

“예, 신탁을 좇아 이리로 흘러왔을 뿐입니다.”

“신탁? 신탁이라……. 그렇지, 아데나 교단은 신탁에 따라 움직인다는 사실을 잠시 잊었었소. 신탁의 내용이 뭔지는 말해 줄 수 있겠소?”

“그것은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그으래요?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여기에 머물게 할 수는……

여기까지 말한 에스키스 백작은 콧수염을 슬쩍 쓰다듬으며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이곳에 들어오는 목적을 뚜렷이 알지 못하는데, 그녀를 쓰기는 조금 뒤가 찜 찜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션을 만들 수 있는 능력 있는 수녀를 그냥 내치기도 그랬다. 포션 한 병의 가격은 매우 비쌌기 때문이다.

그 소식을 부하들에게서 들은 후에 이리저리 그녀에 대한 정보를 수소문해서 몇 시간 전 소개장을 정문에 전달하고 들어왔다는 것을 알아내지 않았던가? 그런 후 케락스시에 있는 아데나 신전까지 사람을 보내어 그것이 가짜가 아님을 확인까지 받았다. 이런 모든 것을 다 해 본 후였기에, 그녀를 내치기는 아무래도 아쉬움이 있었다.

“잠깐, 그대의 신탁이 코린트에 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당신이 믿는 아데나신께 맹세한다면 그대를 써 주겠소.”

“물론이지요.”

상대가 아주 손쉽게 승낙을 했기에 백작은 조금 더 머리를 굴렸다. 그렇듯 쉽게 대답을 한다는 것은 진짜로 코린트에 해가 안 된다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아데 나신을 안 믿기 때문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자신이 믿는 대상이 아데나신이라는 것 또한 맹세해야만 하오.”

수녀는 병원장의 요청대로 맹세를 했다. 만약 신을 받드는 사도라면 거짓 맹세는 절대로 하지 않는다. 특히나 자신이 받드는 신의 이름을 걸고 말이다. 왜냐하면 그런 짓을 해서 신의 미움을 받으면 모든 신성력을 한꺼번에 잃게 되기 때문이었다.

수녀가 포션을 만드는 것으로 보아, 그녀는 어떤 신이 되었든 신을 받드는 인물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저런 맹세를 행할 수는 없는 것이다. 병원장은 싱긋이 미 소를 지었다.

“어떤 부서에서 일하고 싶으시오?”

“환자를 치료하는 곳이면 어디라도 상관없습니다.”

“좋소.”

병원장은 자신의 뒤쪽에 있는 줄을 슬쩍 당겼다. 그것이 누군가를 호출하는 신호인 듯 근엄하게 생긴 무녀 한 명이 곧바로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저 수녀님을 요양 환자 병동에 배치하도록 하시오.”

“예, 알겠습니다.”

그 무녀는 수녀를 향해 말했다.

“자, 따라오세요.”

백마법과 신성 마법이 발달한 후 환자를 치료함에 있어서 그렇게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병원장으로서는 아직까지도 수녀를 전적으로 신뢰

할 수 없었기에 그를 수많은 귀족들이 들락거리는 병실에 배치할 수 없었다.

대신 백마법이나 신성 마법이 통하지 않는 장기 요양 환자들을 돌보도록 배치한 것이다. 그곳은 환자의 수도 적을뿐더러, 사람의 왕래가 극히 적은 곳이기에 시간 을 두고 차근차근 감시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해서 수녀는 소기의 목적대로 병원에 들어오는 데 성공했다. 그녀는 그곳에서 환자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요양 병동이라고 해서 꽤 거창한 듯하지만 거대 한 병동에 환자라고 해 봐야 30명도 채 안 된다는 것이 그녀를 허탈하게 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이 침상에 누워 대부분의 시간을 잠만 자고 있는 반쯤은 식물인간들 이라고 할 수 있었다.

“수녀님, 왜 이 사람들은 깨어나지 않는 거예요?”

“글쎄다. 잘 모르겠구나.”

수척한 환자의 몸 구석구석을 젖은 수건으로 꼼꼼히 닦아 준 후, 다시금 옷을 입히면서 수녀는 대꾸했다. 신성 마법이 이렇듯 발달해 있는 상태에서 이런 중환자가 이 세상에 존재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그녀였다. 그렇기에 그녀는 이들에게 신성 마법을 써서 치료할 수 없는지 물어봤지만, 그곳에 근무하는 무녀들은 헛수고라고 답해 줬다. 그들은 신성 마법으로는 절대로 치료할 수 없는 병을 앓고 있었던 것이다.

“새로 오셔서 잘 모르시는 모양인데, 환자의 침대는 절대로 이 마법진 밖을 벗어나면 안 됩니다. 아시겠습니까? 수녀님.”

이 병실 환자들을 책임지고 있는 마법사는, 그녀가 환자를 일광욕시키기 위해 침대를 창가로 옮겨 놓은 것을 발견하자마자 주의를 주었다.

“예. 그런데 마법사님, 왜 환자를 저 마법진에서 벗어나게 하면 안 되는 것이지요? 또 저 환자들의 병명은 뭡니까? 저는 저렇게 오랜 시간 치료를 받는 환자들은 처 음 보기 때문입니다.”

마법사는 왜 그런 실수가 생겼는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아아, 여기에 새로 오신 모양이군요.”

“예, 어제저녁에 배치되었습니다.”

“저 환자들의 병의 원인은 마나의 고갈이죠.”

그런 병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한 적이 없기에 수녀는 놀랐다.

“예?”

“인체 내에서 사용되고 또 들어오는 마나의 밸런스가 깨졌기에 그냥 놔두면 생명을 지탱하기도 힘듭니다. 그 때문에 마나를 공급해 주는 마법진 위에 놔두는 것이 죠. 물론 대기에 떠도는 마나를 자연적으로 흡수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해서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죠. 그래서 개발한 것이 저 방법입니다. 저런 환자에게 있어 서는 유일한 치료법이죠. 그러니 될 수 있으면 환자를 저 마법진 위에 놔두세요.”

“알겠습니다.”

수녀는 한 번씩 병원장의 부탁에 따라 포션을 만들어 주기도 하면서 환자들을 돌봤다. 환자들의 치료에 신성력을 쓸 일이 없었던 그녀였기에 병원장의 부탁을 거 절할 이유가 없었다.

병원장은 일이 생겨서 포션이 내일쯤 도착하는데, 지금 쓸 것이 없다는 둥 그런 변명을 하면서 그녀에게 포션을 만들어 줄 것을 부탁했다. 물론 이런 고급 병원에 서 그런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었다. 병원장은 이런 식으로 여러 무녀들과 신관들을 꼬드겨서는 포션을 헌납받고 있었고, 그것을 시장에 내다 팔아서는 ‘꿀꺽’하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