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16권 12화 – 잔인한 해적들

잔인한 해적들

모든 병사들이 탱게르를 외쳐대며 소란을 떠는 동안 선단은 천천히 해안선을 따라서 동쪽으로 이동하다가 해안에 마을이 보이자 그쪽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가 기 시작했다. 겨우 50호(戶) 정도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작은 어촌을 목표로 1백여 척의 배가 돌진해 들어 간 것이다. 곧이어 앞서 가던 배의 선수 부분이 해안의 모 래사장에 걸리자, 그 배에 타고 있던 병사들은 모두들 탱게르를 외치며 앞 다투어 배에서 뛰어내렸다. 일부는 모래사장 위에 뛰어 내리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물 위 로 뛰어 내렸다. 하지만 그들은 옷이 물에 젖는 것 따위는 신경 쓰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들은 허리나 아니면 무릎까지 잠기는 바닷물을 박차고 괴성을 질러 대며 육지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우와와와와!”

묵향과 아르티어스가 뱃전에서 보니, 육지에 있던 사람들은 선단이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허둥지둥 도망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런데 그들이 하고 있는 모습이 또 가관이었다. 앞머리는 면도칼로 박박 밀어 버렸는지 반들반들 했고, 남은 머리카락을 괴상한 모양으로 위로 틀어 올려 상투를 만들어 놨다. 그리고 사내들은 웃통을 벗고 있었고, 아랫도리만을 꼭 어린아이 기저귀 차듯이 가리고 있는 놈도 있었다.

그들이 허둥대며 이리저리 뛰어 다니는 모습을 같잖다는 듯 바라보던 아르티어스가 도저히 참지 못하겠다는 듯 중얼거렸다.

“여기는 둥루젠보다 더 야만족들이 모여 사는 모양인데?”

그 말에 묵향은 창백한 안색으로 힘없이 대답했다. 그 지독한 고생을 해서 겨우 도착한 곳이 중원이 아니었기에 그의 얼굴에는 짙은 허탈감이 어려 있었다.

“그런 거 같네요.”

“아무리 날씨가 좀 따뜻하다고 해도 하고 다니는 꼴이 저게 뭐냐? 사내놈들은 완전히 벌거벗다시피 하고 있잖아. 그건 그렇고 아무리 신과 함께 하고 있다지만 야 만족들이라서 그런가? 거 상륙 한번 화끈하게 하는군. 이건 꼭 전쟁하러 온 것 같잖아.”

묵향은 아직도 속이 안 좋은지 아르티어스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일단 좀 내리자구요. 도무지 속이 울렁거려서 못 살겠어요.”

아르티어스는 깜빡 잊고 있었다는 듯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자꾸나. 내가 잠시 잊고 있었다. 자, 빨리 내리자.”

묵향은 배에서 뛰어내려 모래사장에 착지하자 그제서야 살 만한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혈색이 조금씩 돌아오고는 있었지만, 거의 며칠 동안 생고생을 하고 난 후 유증 탓인지 아직까지도 그의 안색은 창백하기 그지없었다.

“이제 좀 살 만하지?”

“예, 신기하게도 육지에 올라선 것뿐인데, 멀미가 그치는 것 같군요.”

묵향의 말에 아르티어스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신기해할 것도 없다. 원래 뱃멀미라는 것이 그래. 유독 멀미가 심해 고생하던 놈도 육지에 발만 올려놓으면 그 순간 멀미가 그치거든. 하지만 그 반대 경우인 희한 한 놈들도 있었지.”

“반대라구요?”

“응, 배만 타면 펄펄 나는데, 육지에만 올라가면 맥을 못 추는 거야. 그뿐만 아니라 꼭 뱃멀미 하듯이 뱃속도 울렁거린다나? 그걸 육지 멀미라고 하더군. 아주 오랜 시간 배를 탄 호비트들에게 일어나는 특이한 증상이지.”

묵향은 이제야 살 만한지 아르티어스의 말에 건성으로 대답해 주며, 주위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살고 있는 주민들이 하고 있는 꼴도 그렇지만, 여기저기 지어 져 있는 집들도 중원식이 아니었다.

“젠장! 홀딱 다 벗고 사는 것을 보면 여기가 남만(南蠻)인가? 아니지. 그렇게 해서는 도저히 설명이 안 돼. 중원의 서남쪽이 남만, 그리고 그보다 훨씬 더 서쪽으로 가면 색목인이 산다고 책에서 봤는데……. 어어? 그런데 저게 뭐죠? 여기는 평범한 마을이 아니었나요?”

묵향이 이상하게 생각할 만도 했다. 해적들이 상륙하자 마을에서는 일대 소란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해적선이 나타나는 그 순간, 요란한 타종 소리와 함께 노인들 과 여자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산 쪽으로 도망가는 것이었다. 그 중에는 일부 건장한 사내들도 보였다. 여기까지는 묵향의 예상대로였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70여 명의 어촌민들이 무기를 들고 쏟아져 나온 것이다. 그것도 아주 잘 만들어 놓은 진짜 무기를 가지고 말이다.

묵향은 순간 마교의 분타를 떠올렸다. 50여 호의 가옥에서 70여 명이 넘는 사내가 무장을 갖추고 있다는 말은, 마을에 있는 거의 대부분의 남자들이 무장을 갖추 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거 평범한 마을이 아니라 어딘가의 비밀 분타 같은 것이었나?”

묵향이 한눈에 척 봐도 잘 제련된 길고 늘씬하게 생긴 검을 가진 자들이 몇 명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검보다는 창을 가지고 있었다. 어부들은 마을 입구에 장애물 을 이용하여 수 명씩 짝을 이루어 대형을 유지하며 용맹스럽게 저항했다. 여기저기에서 피가 튀는 치열한 격전이 벌어졌다. 하지만 겨우 수십 명이 수백 명을 상대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해적선단의 또 다른 배들이 하나 둘 해안가에 정박하기 시작하자 해적들의 수는 급속히 불어나고 있었다.

해적들이 무기를 들고 반항하는 어부들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살육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해적들은 될 수 있으면 어부들을 생포하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한참 전투 광경을 보고 있던 묵향은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아르티어스에게 말했다.

“거참, 괴상한 마을이네요.”

“별로 괴상할 것도 없다. 내가 태어난 곳의 호비트들도 저 정도의 무장을 하고 있었거든. 너도 봤잖냐? 치안 상태가 허술한 곳일수록 자체적으로 무장을 하는 것을 말이다. 그쪽에서는 보통 트롤이나 오크 같은 몬스터들 때문에 무장을 했었는데, 아마도 여기서는 저놈의 해적들 때문에 무장을 하는 거겠지.”

묵향은 아르티어스의 말이 그럴 듯하다고 생각되었는지 쉽게 납득했다.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해적질은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일단 마을의 저항을 분쇄한 후, 병사들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약탈을 하기 시작했다. 마을과 그 주변을 샅샅이 수색하 며 먹을 것이나 사람들을 찾아내어 끌고 왔다.

“으아악!”

사방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으며, 뭐라고 하는 말인 줄은 모르겠지만 심하게 발악하는 소리도 들려왔다. 묵향은 그 비명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곧 알 수 있었 다. 멀찍이 떨어진 위치였지만, 묵향의 시야에 들어 오는 곳에서 원주민 병사들의 만행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병사들 몇 명이 높게 쌓인 짚단들을 뒤지다가 그곳에 숨은 사람들을 찾아냈다. 마을 처녀 하나가 서너 명의 아이들과 함께 숨어 있었던 것이다. 처녀는 한사코 아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발버둥을 쳤지만, 거친 병사들의 완력을 당해 낼 수는 없었다.

병사는 먼저 처녀를 끌어내고, 열세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도 끌어냈다. 그런 다음 병사들은 낄낄거리며 그들이 보는 앞에서 짚더미 속에 숨어 있던 남은 아이 들을 창으로 찔러 죽였다. 피가 튀었고, 아이들의 애처로운 비명이 들려왔다. 병사들은 아이들이 죽는 광경을 보고 기절해 버린 처녀와 아이 한 명을 등에 업고 의기 양양하게 해안가로 돌아왔다.

해안가에는 곧 열세 살 정도에서 4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남녀로 가득 찼다. 마을의 청년들은 방금 전까지만 해도 칼과 창을 들고 거칠게 저항했었음에도 불구하 고, 포로로 잡힌 후에는 의외로 고분고분하게 앉아 있었다. 그들의 우울한 눈빛은 이미 모든 것을 포기한 듯 공허하기만 했다.

묵향은 병사들의 만행에 치를 떨었다.

“이들이 해적인 것은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잔인할 수가!”

옆에 서 있던 아르티어스도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쯧쯧, 하여튼 호비트란 것들은……. 내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몬스터를 봤지만 자신들의 동족을 이토록 잔인하게 죽이는 놈들은 아마 호비트를 따를 것들이 없 을걸!”

노예로서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는 사람들은 가차 없이 쳐 죽이며 길길이 날뛰는 병사들의 피에 굶주린 듯한 얼굴에서 지금까지 엄격한 규율을 지키며 험한 파도를 헤치고 나온 뱃사람의 모습을 찾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들은 사방으로 뛰어다니며 숨어 있는 마을 사람들을 잡아들였다. 그러다가 발견한 사람이 힘없는 늙은이거나 아이들이면 가차 없이 죽여 버렸고, 건장한 젊은이라면 꽁꽁 묶어서 해변가 모래사장으로 끌고 왔다.

대족장 타르티는 만면에 미소를 띠우며 아르티어스에게로 다가왔다. 그는 함께 온 부하들과 땅바닥에 넙죽 엎드리며 뭐라고 외쳤다. 도중에 신을 뜻하는 ‘탱게 르’라는 말이 여러 차례 나왔지만, 묵향은 이제 더 이상 대족장의 꼴도 보기 싫은 상태였다.

싸움을 하다 보면 상대를 잔인하게 죽이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전장에서 적의 사기를 꺾기 위해 일부러 잔혹하게 적을 죽이기도 했다. 그 대상에 는 병사들뿐만 아니라 전장 근처에 살고 있는 일반 백성도 포함되었다.

옥영진 대장군의 휘하에서 몽고 침략전을 겪어 본 묵향은 패전한 쪽의 아녀자들이 어떤 꼴을 당하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물론 늙어서 노예로 쓸 수 없는 자들을 죽여 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아이들을 저렇게 처참하게 죽여 버릴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낄낄거리면서 말이다. 엎드려 있는 대족장의 뒤통수 를 노려보는 묵향의 눈빛이 심상치 않음을 눈치 챈 아르티어스는 황급히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허허헛, 저 녀석이 식사를 마련해 준다는구나. 뱃멀미도 심하게 했으니, 뭘 좀 먹어야 힘을 차릴 수 있을 것 아니냐?”

사실 대족장은 식사 준비 얘기를 한 것이 아니라, 천신의 도우심으로 오늘 두둑한 수확을 올리게 되었음을 감사한 것이었다. 그와 더불어 오늘의 수확을 축하할 겸 천신께 제사를 지내고 싶다며 허락을 구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곧이곧대로 말했다가는 묵향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일이었기에, 식사 준비를 한다고 둘러 댄 것 이다. 아르티어스는 묵향을 잡아끌며 말했다.

“자, 식사가 준비될 때까지 저기 앉아서 기다리자꾸나.”

무려 4천 명에 가까운 병사들이 상륙한 후라 그런지, 작은 어촌 마을에 대한 노략질은 순식간에 끝이 났다. 어촌 마을의 해변가 모래사장에는 2백 명에 가까운 포 로들이 잡혀 있었다. 하지만 모래사장에 모이기 시작한 것은 포로들만이 아니었다. 마을에서 약탈한 각종 물품들도 쌓이기 시작했다.

볏짚으로 만든 커다란 가마니들이 차곡차곡 쌓였는데, 그 속에는 대부분 쌀이 들어 있었다. 그 외에도 콩이나 수수, 보리 같은 곡식이 들어 있는 작은 자루도 있었 지만, 말린 생선 같은 어촌에서 흔히 장만할 수 있는 것도 있었다. 그리고 닭이나 소, 개 같은 가축들도 병사들의 손길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병사들은 일단 마을의 약탈이 끝나자 느긋하게 식사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먼저 가축들을 잡아서 가죽을 벗겨, 굽거나 삶았다. 곡식 종류는 장기간 보관할 수 있기에 문제될 것이 없었지만, 가축들은 보관하기도 어려웠고 배로 옮기기도 힘들었다. 사료를 공급하는 것도 문제였지만, 그 배설물을 처리하기도 귀찮았기 때 문이다. 그렇기에 병사들은 곡식은 배로 실어 나르고, 가축은 눈에 띄는 대로 잡아먹는 것이었다.

그런데 적개심을 가지고 병사들이 하고 있는 꼴을 노려보고 있던 묵향이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바로 여기서 나타났다. 사로잡힌 포로들 중 사내들 일부는 기회가 오면 도망치려는 듯한 저항의 뜻을 조금씩이나마 내포하고 있는 눈빛을 하고 있었지만, 여인들의 그것은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그녀들은 사로잡힌 지 얼마 나 지났다고 아예 모든 것을 포기한 듯 순순히 병사들의 지시에 따르고 있었다. 심지어 일부 여인들은 병사들의 지시에 따라 요리까지 하고 있었다.

병사들이 식사 준비에 여념이 없는 동안, 아르티어스는 묵향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만약 잘못하면 묵향이 병사들을 몽땅 다 죽여 없애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비록 병사들의 숫자가 4천이라고는 하지만 묵향이 마음만 먹는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아르티어스는 묵향이 저놈들을 다 죽여 버리도록 그냥 놔둘까? 하는 생각도 해 봤었다. 아마도 묵향은 매우 좋아할 것이다. 하지만 저런 쓰레기 같은 호비트들이 라도 아직까지는 아르티어스에게 충분한 이용 가치가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르티어스가 걱정하고 있는 것은 울컥하는 마음에 4천 명이나 되는 같은 종족을 죽 인 후, 묵향이 안아야 할 마음의 부담이었다.

“호비트들끼리 죽고, 죽이는 거다. 그런 것에 너무 신경 쓰지 말거라. 너하고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오늘 처음 본 호비트들이 아니냐?”

아르티어스의 말에 묵향은 발끈하며 소리쳤다.

“뭐라고요? 저게 안 보입니까? 도대체가 저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하세요? 물론 저항하는 무리들과 싸움이 벌어질 수도 있고, 또 그들을 죽일 수 도 있다고 생각해요. 또 다 늙은 노인들을 죽이는 것까지도 이해해 줄 수 있어요. 그런데 저런 아이들까지 죽이다니……. 방금 전에도 봤잖아요. 이제 겨우 젖먹이 인 애를 엄마의 품에서 뺏어내서는 목을 비틀어 버리는 광경을 말이에요. 도대체 저게 인간이 할 짓이라고 생각하세요?”

순간적으로 아르티어스의 얼굴에 당혹감이 흘렀다. 아르티어스도 그 광경을 묵향과 함께 봤지만, 아무런 느낌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몇천 년 전에 자신이 어 렸을 때는 저것들이 하던 짓보다 더한 짓도 수없이 해 본 경험까지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도 아르티어스를 탓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상 최강의 생명체인 위대한 드래곤인 그의 시각으로 보자면 호비트와 개미는 아무 런 차이점이 없었다. 그런 맥락에서 개미를 1백 마리 죽이는 것이나, 호비트를 1백 마리 죽이는 것이나 별반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아르티어스는 묵향보 다는 훨씬 더 객관적인 시각에서 병사들의 행위를 판단할 수 있었다.

아르티어스는 잠시 머리를 굴린 후 묵향에게 말했다.

“저것도 다 저들의 삶의 방식이 아니겠냐? 네게는 네가 태어나고 자라며 배우고 또 만들어진 삶의 방식이 있듯이, 저들에게도 그런 것이 있는 거야. 보통 해적들은 아이들을 잘 죽이지 않지만, 그게 아이들이 가엾어서 그런 것은 절대로 아니란다. 따지고 보면 아이들을 노예로 팔아먹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니겠냐? 만약 어린애를 노예로 팔아먹을 수 없다면 노인과 마찬가지로 쓸모없기는 마찬가지겠지. 겉으로 드러난 것만으로 사물을 판단하고, 또 감정에 휩쓸리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아르티어스의 말에 묵향은 잠시 생각해 봤다. 사실 자신의 경우도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아주 색다른 삶을 살아오지 않았던가. 철이 들면서 기억이 나는 것은 모두 다 마교에서 피를 토하며 했던 수련이 전부였다. 그다음은 암살자로서, 그리고 그다음은 검객으로서 키워졌다. 그런 특별한 삶 속에서 그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지금까지 죽여 왔던가.

그가 여태껏 죽인 사람들이나, 또 앞으로 살아가며 어쩔 수 없이 죽여야 될 사람들이 반드시 악인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지금까지 죽인 자 들은 최소한 아이들이나 노약자와 같이 나약한 인물들은 아니었다. 모두들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을 정도의 강력한 무공을 익힌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역시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흔들던 묵향은 뭔가를 생각했는지 곧 고개를 푹 숙였다. 생각해 보니 자신이 죽인 자들이 강력한 무공을 익히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다른 사람에 비해서 강력했다는 말이지, 묵향에 비해 강력했다는 말은 아니지 않은가. 묵향은 그런 이들을 파리 잡듯 몰살을 시킨 적도 있었다. 저 해적들이 노약자들을 학살한 것처럼 말이다. 그럼 자신과 저 해적들이 뭐가 다르단 말인가?

그리고 묵향이 여태까지 죽여 온 사람들이 모두 다 악인들이었나? 물론 만인으로부터 지탄을 받던 악인들도 있었다. 하지만 정파의 거목이라는 뇌전검황을 벤 것 도 자신이었다. 그리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던 많은 기사들도 자신의 검에 목숨을 잃어야 했다. 한참을 생각하던 묵향은 한숨을 푹 내쉬며 겨우 입을 열었다.

“아빠 말이 맞는 것 같네요. 난 저들을 심판할 권리가 없죠.”

아르티어스가 왠지 허탈해하는 묵향을 다독거리고 있을 때, 사로잡힌 원주민 여인 몇 명이 음식물들을 가져오기 시작했다. 그녀들은 병사들의 눈치를 힐끔힐끔 보 며 겁에 질린 표정으로 재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병사들이 만들어서인지 요리들은 약탈한 가축들을 통구이 해 놓은 것이 대부분이었다. 원주민 여인들은 열심히 음식들을 묵향과 아르티어스의 앞에다가 차려놓은 후 황급히 물러났다.

음식이 다 차려지고 나자, 대족장 타르티가 자신의 심복들과 함께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그는 예전에 묵향과 아르티어스가 자신의 성에 나타났을 때와 같이 그 앞 에서 절을 하고, 뭔가 중얼중얼 읊어 대기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간 흐르자 의식이 다 끝났는지 타르티는 납작 엎드려 아르티어스에게 경건한 표정으로 경배하고는 물러났다.

의식이 끝난 후, 아르티어스가 상 위에 놓여 있는 음식들을 집어먹기 시작하자 원주민 소녀 둘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주춤주춤 다가와 묵향과 아르티어스 옆에 자 리를 잡고 앉았다. 아마 대족장 타르티가 시중을 들라고 시킨 모양이었다.

그녀들은 따끈하게 데워 놓은 술을 잔에 따른다든지, 나름대로 열심히 시중을 들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출출했던 아르티어스는 차려져 있는 음식들을 먹으며 술 을 호쾌하게 마셔 대기 시작했다. 그 때문인지 아르티어스의 시중을 들고 있는 소녀의 표정은 눈에 띄게 안정을 되찾고 있었다. 하지만 묵향의 시중을 들고 있는 소 녀의 얼굴은 점점 더 창백해지고 있었다. 상대가 음식물은 물론이고 술에도 전혀 손을 대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녀 자신에게 뭔가 음탕스런 시선이라도 보내고 있었다면 혹 모르겠지만 상대는 다만 통째로 요리되어진 강아지 구이만을 슬픈 듯 멍한 시선으로 바라만 보 고 있을 뿐이었다.

이때였다. 멀찍이서 그녀들의 행동을 힐끔거리고 있던 병사들 중 한 명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는 조심스러운 태도로 묵향에게 다가와 뭐라고 정중하게 말

한 다음 소녀를 일으켜 세웠다. 소녀는 처음에는 잠시 반항하는 듯했지만, 이내 체념한 듯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 소녀가 끌려가고 난 후, 빈 자리는 또 다른 소녀 에 의해 다시 채워졌다.

“아아악!”

귀청을 찢는 듯한 비명에 묵향은 정신을 차린 듯 고개를 들어 그 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보았다. 이런저런 생각 때문에 정신이 없었던 그였지만, 그곳을 한 번 바 라본 것만으로도 방금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금방 알 수 있었다. 그곳에는 방금 전까지 자신의 시중을 들고 있던 소녀가 목이 없는 시체가 되어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피 묻은 도를 닦고 있는 병사가 보였고, 그의 발치에는 소녀의 목이 나뒹굴고 있었다.

“내 이놈들을!”

이제는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 살기에 찬 눈빛으로 묵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는 순간, 뒤에서 아르티어스의 냉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만약 저 녀석을 죽인다면, 그놈과 뭐가 다르냐? 그 소녀는 너의 시중을 제대로 들지 못했기에 불성실의 죄를 물어 그자에게 죽임을 당한 거야. 그렇다면 너 는 임무를 성실히 이행한 저 녀석을 무슨 이유로 죽이고자 하는 거냐? 잘못을 정확히 따진다면 그건 네 잘못이다. 네가 그녀의 시중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 지.”

묵향은 고개를 획 돌려 아르티어스를 바라보며 울부짖듯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는 울분을 참지 못하겠다는 듯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어떻게 그런 식으로 냉정하게 말씀하실 수가 있죠? 물론 제가 잘못하고 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아르티어스는 그런 묵향을 바라보며 심드렁한 말투로 대답했다.

“왜냐하면 저놈들은 아직 쓸모가 있거든.”

“어떤 쓸모 말이에요?”

아르티어스는 자신의 말을 묵향이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자 할 수없다는 듯 차분히 설명을 해 주었다.

“만약 이곳이 우리가 생각한 중원이 아닐 때를 대비해서 다시 돌아갈 배편을 준비해 둘 필요가 있거든. 물론 지금 여기서 저놈들을 쓸어버리면 네 속이야 편하겠 지만 그럼 돌아 갈 배편을 새로 구해야만 한단 말이야. 그러다 보면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일이고 말이다. 네가 정 저놈들을 없애고 싶다면, 나중에 쓸모 가 없어진 후에 해도 늦지는 않을 게다. 안 그러냐?”

“좋아요. 그럼 빨리 떠나자구요. 여기 조금만 더 있다가는 내가 무슨 짓을 할지 나도 모르겠다구요.”

“아, 알겠다. 그놈의 성질하구는. 아차, 잠시만 기다리거라.”

아르티어스는 한쪽에서 따로 자신의 심복 부하들과 식사를 하고 있는 대족장과 몇 마디 주고받은 후 돌아왔다.

“그럼 가도록 하자꾸나.”

하지만 묵향은 꼼짝도 하지 않고 대족장과 그 부하들이 모여 있는 곳을 노려보며 살기에 찬 음성으로 물었다.

“우리가 돌아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겠대요?”

“아니, 그렇게는 할 수 없다는구나. 아마 얼마 안 있으면 이곳 영지의 병사들이 몰려올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맞서 싸워봤자 피해만 생긴다고 하더군. 그래서 이 주변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다른 마을을 털며 시간을 보내다가 한 달쯤 후에 다시 이리로 돌아오겠다고 했다.”

아르티어스의 말에 그제서야 묵향은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흉흉한 눈빛으로 미루어 보아 한 달 뒤 대족장 타르티와 그의 부하들을 결코 가만 놔 둘 생각은 아닌 것 같았다.

“그래요? 잘되었군요. 그럼 빨리 가죠.”

“그러자꾸나.”

묵향은 더 이상 그들의 꼴도 보기 싫다는 듯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가기 시작했다. 전력을 다해서 경공술을 전개한 것이었기에 거의 눈 깜짝할 사이에 묵향의 몸 은 점점 작아져만 갔다. 그런 모습에 주위의 있던 병사들은 입이 쩍 벌어질 정도로 놀랐다. 하지만 정작 병사들보다 더 기겁한 인물은 따로 있었다.

아르티어스는 묵향이 이미 달려가 버린 지도 모르고, 서서히 허공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의 몸에서는 찬란한 광채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고, 은은한 서기가 어 린 그의 얼굴은 마치 신이 하강한 듯 장엄하게 보이기까지 했다. 아르티어스는 주위를 한번 쭈욱 훑어본 후 준엄한 어조로 말했다.

“모두 듣거라!”

이미 주위에 있던 모든 둥루젠 병사들은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며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는 상태였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예, 탱게르!”

“한 달 후에 이곳으로 오거라! 만약 내가 그때까지 오지 않는다면 3일간 기다린 후 돌아가도록 해라. 알겠느냐!”

“예, 명심하겠나이다, 탱게르!”

병사들의 대답이 마음에 든다는 듯, 아르티어스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뒤로 돌아보며 말했다. 내심 묵향이 자신의 이런 모습을 보며 존경하기를 바랐던 그였지만, 결과는……..

“역시 뒷마무리는 깔끔…, 허걱! 어, 어디 갔지?”

당황해서 이리저리 둘러보던 아르티어스의 눈에 저 멀리 달려가고 있는 묵향의 뒷모습이 보였다. 마치 새가 날아가는 듯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사라지는 그 모습 은 순식간에 하나의 점으로 보일 정도로 작아져 갔다.

“제, 젠장. 더럽게 빠르구먼. 저런 놈이 무슨 호비트야? 괴물이지.”

아르티어스는 투덜거리며 급히 대족장이 선물한 금이 든 궤짝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아들이 달려가고 있는 곳을 향해 재빨리 달려갔다. 마법을 이용하여 최대 한 몸의 무게를 가볍게 하고, 또 근력 증가의 마법에다가 빠른 속도로 달릴 수 있는 마법 등등 아르티어스는 일단 생각나는 대로 속도를 증가시킬 수 있는 모든 방법 들을 동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과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묵향의 뒤통수뿐이었다.

“같이 가자! 에구구구! 헥헥!”

서로 간의 거리는 너무나도 멀리 떨어져 있기에 아르티어스의 음성은 아예 들리지도 않을 것만 같았다. 아르티어스는 아예 달려가기를 포기하고 제자리에 서며 가 쁜 숨을 몰아쉬었다. 도무지 달려서는 쫓아 갈 수가 없다는 것을 그제서야 깨달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을 써야 할까?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던 아르티어스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투덜거리며 천천히 하늘로 날아 오른 후 급격히 가속하여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젠장! 땅바닥을 달려가는 놈을 쫓아가기 위해 날아가야만 하다니…….”

아르티어스와 묵향이 사라진 후 한참이 지나자 대족장은 살그머니 고개를 치켜들었다. 아르티어스의 장엄한 모습에 놀라 얼마나 세게 땅바닥에 처박았는지 그의 얼굴은 온통 흙투성이였다. 조심스럽게 곁눈질로 주위를 살펴 본 타르티는 방금 전까지 허공에 몸을 띄우고 있던 천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자신감을 얻은 듯 조금 더 고개를 들어 눈알을 굴려 대며 이리저리 살펴봤다. 물론 그 모든 행동은 혹시나 천신께서 아직 남아 계시다면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땅바닥을 향해 고개를 숙인 상태로 이뤄지고 있었다.

대족장은 상당한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천신이 사라졌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는 갑자기 몸을 일으켜 주위를 둘러보며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크하하하핫, 모두 듣거라! 탱게르의 명을 받들어 나 타르티가 명령하노라!”

그 말에 아직도 겁에 질려 있던 병사들은 목소리 높이 외치기 시작했다.

“탱게르! 탱게르! 탱게르!”

광기마저 느껴질 정도로 천신의 이름을 외쳐 대는 병사들을 둘러보며 타르티의 가슴은 야망으로 가득히 부풀어 올랐다.

‘흐흐흐, 저 두 분의 탱게르만 잘 모신다면 둥루젠의 일통만이 아니라 천하를 제패하는 것도 이제 시간문제야. 드디어 내 평생의 숙원인 진을 깨부수고 둥루젠의 천하를 열 때가 왔음이다. 크하하하핫.’

한참을 호탕하게 웃던 타르티는 천천히 두 손을 들어 병사들을 진정시켰다. 병사들의 외침 소리가 잦아들기 시작하자, 타르티는 근엄한 음성으로 외쳤다.

“자, 빨리 식사를 마치고 출발 준비를 하도록 하라. 탱게르께 선택받은 우리들 앞을 가로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우와와와와! 탱게르! 탱게르!”

탱게르를 연호하는 병사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그것을 보던 타르티는 웅심이 치솟는지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 탱게르와 함께 하는 우리를 막을 자가 감히 그 누가 있겠는가! 크하하하핫!”

연신 호쾌하게 웃고 있는 타르티의 눈에는 벌써 천하를 호령하는 자신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던 것이다. 한참 동안 통쾌하게 웃음을 터뜨리던 타르티는 뒤에 서 있 던 부하들을 바라보았다. 아르티어스 앞에만 서면 고양이 앞의 쥐와 같이 왜소해지는 타르티였지만 지금은 한 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대족장의 풍모가 물씬 풍겨 나 오고 있었다.

“해리바, 네게 선단을 통솔할 권한을 주겠다. 내가 본대를 이끌고 진격하면, 너는 해안선을 타고 본대를 따라 오도록 해라. 사로잡은 노예들과 식량을 배로 운반하 고 출항 준비를 서두르도록 해라.”

“옛, 알겠습니다. 그런데 어디로 행로를 잡으시겠습니까?”

타르티는 잠시 생각에 잠기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여기서 한 달 동안 죽치고 앉아서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일단 출발 준비를 시킨 것이다. 하지만 파도에 밀려 예상했던 목적지에서 많이 남하한 상태였기 때문에 처음에 계획했던 행로는 지금으로서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보통 대규모로 출정을 하게 되면 내륙지방 깊숙이까지 노략질을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통상의 경우 노략질은 해안을 따라가며 진행하게 된다. 그렇게 해야만 선 단과 함께 이동할 수 있어서 여러모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사로잡은 노예나 약탈한 것들을 배에 적재하여 이동 속도를 높일 수도 있었고, 대규모의 적군이 나타나면 도망치기에도 편했다. 아무리 적군이 대군으로 몰려온다 하더라도 정찰만 확실히 하여 미리 포착할 수만 있다면 잽싸게 배에 탄 후에 대해(大海)로 빠져나가 버리면 끝이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어느 쪽으로 가야 좀 더 많은 수확을 올릴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갈까? 아니면 남쪽으로 내려갈까……. 허, 참. 고민되는군. 이럴 줄 알았으면 주술사도 데려오는 건데 잘못했어.’

이렇게 택일을 해야만 하는 경우, 주술사에게 천신의 뜻이 어떤지 물어본 후 결정하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지금 주술사도 없고, 또 천신도 없다. 천신이 워낙 갑 작스레 떠나는 바람에 어디로 행보를 잡으면 될 것인지 물어볼 생각조차 못한 것이다.

타르티는 잠시 고민하더니 해리바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해리바! 자네는 어디로 진격했으면 좋겠나?”

타르티의 질문에 해리바는 잠시 대답을 못하고 우물쭈물거렸다. 이렇게 민감한 사안을 일개 부하에 불과한 자신이 말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 부담이 컸기 때문이 다. 사실 해적질이라는 것이 어느 방향으로 가느냐에 따라 소득과 피해가 결정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것이 아니던가. 만약 자신이 가자고 한 방향에 적의 대군이 기다리고 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사태가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 때문에 보통 이런 중요한 사안을 결정할 때는 주술사에게 조언을 청하는 것이 뒤탈이 없었다. 그렇기에 해리바는 잠시 고민한 후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 타 르티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대한, 점을 쳐 탱게르의 뜻을 따르는 것이 가장 좋을 듯합니다.”

해리바의 말이 그럴 듯한지 대족장 타르티는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을 했다. 그러자 해리바는 곧 부하 병사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가서 애 밴 여자 하나를 끌고 오너라.”

“옛!’

몇 명의 부하들이 포로들 중에서 임산부를 찾아내기 위해 떠난 후, 해리바는 은근한 어조로 타르티에게 말했다.

“배를 갈라서 아들이 나오면 북진, 딸이 나오면 남하…, 어떻습니까?”

대족장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는 듯 하더니, 곧이어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탱게르께 둘 중 하나를 물어보는 게 꽤 좋은 방법인 듯했기 때문이다.

“어~, 그거 좋은 생각이군. 아주 좋은 생각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