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16권 2화 – 신을 사칭한 사기 행각
신을 사칭한 사기 행각
묵향의 눈치를 보던 아르티어스는 화제를 돌릴 겸해서 호비트들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그건 그렇고, 저놈들은 어떻게 할 거냐?”
묵향이 야만인들을 바라보니, 그들은 아까보다 더욱 부들부들 떨면서 뒤로 주춤주춤 물러서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들은 방금 전에 자신의 옷이 마법으로 만들어지 는 것을 보고 대단히 놀란 듯했다.
“글쎄요. 아무래도 공격할 의사는 없는 듯한데, 어디 딴 데로 가 보죠. 설마 이 근처가 모두 다 이런 야만족들만 살고 있겠어요?”
아르티어스는 무슨 꿍꿍이속이 있는지 음흉스레 미소를 지으며, 묵향의 말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다. 오랜만에 너에게 이 애비의 실력을 보여 주지. 저런 야만인들은 어떻게 요리하는지 말이다, 흐흐흐.”
말을 마친 아르티어스는 슬그머니 주문을 외워 휘황찬란한 빛으로 몸을 감싸며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리고는 근엄한 표정으로, 목에 힘을 주어 소리쳤다. “듣거라! 이 미개한 놈들아! 아직도 내가 어떤 존재인 줄 모르겠느냐!”
마을 구석구석에까지 닿는 장중한 아르티어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깡마른 노인 하나가 다급한 표정으로 무기를 들고 서 있는 장정들을 헤치고 앞으로 나오 며 큰 소리로 떠들어 댔다.
그 노인의 복장은 다른 야만인들과는 사뭇 달랐다. 털가죽으로 옷을 해 입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그의 옷 위에는 갖가지 작은 동물들의 가죽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고, 또 머리 위에는 기다란 새의 깃털이 꽂혀 있었다.
“오오, 탱게르! 탱게르!”
노인의 외침에 다른 야만인들도 약속이라도 한 듯 땅바닥에 코를 처박고 엎드리며 탱게르를 목이 터져라 외쳐 대기 시작했다. 노인은 아르티어스가 떠 있는 공중 을 바라보며 뭐라고 계속 외치면서 천천히 다가왔다.
한참을 외치며 다가서던 그 노인은 어느 순간 입을 다물었다. 그 대신 그는 하늘과 땅을 손짓으로 가리키며 그 어떤 주문을 노래를 부르듯 박자를 맞춰 가며 큰 소 리로 외쳐 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는 발을 쿵쿵거리며 요란하게 춤을 췄다.
노인은 춤을 추는 와중에도 천천히 아르티어스와의 거리를 좁혀 왔다. 이윽고 노인이 허공에 떠 있는 아르티어스의 앞쪽에 다다르자, 머리를 땅바닥에 납작 붙이 며 절을 했다.
“이것들이 지금 뭐 하는 거예요?”
묵향의 말에 아르티어스는 씨익 웃으며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보면 모르냐! 이게 다 호비트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습성이지. 뭔가 불가사의한 일이 눈앞에서 일어나면 그것을 신(神)과 결부시켜서 생각하니까 말이다. 이 것도 호비트가 매우 이성적인 동물이기 때문에 가지게 된 습성일 수도 있지.”
노인은 한참 절을 한 뒤 살그머니 일어서서 조심스러운 손짓으로 어떤 방향을 가리켰다. 하지만 묵향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겁에 질린 표정으로 더욱 정중하고도 끈기 있게 그쪽 방향을 가리켰다.
“저쪽으로 가자는 말인 것 같은데요.”
묵향이 노인이 손짓하는 방향을 바라보며 아르티어스에게 말하자, 아르티어스는 내 실력이 어떠냐는 듯 으스댔다.
“하하하, 이것들이 이제야 신을 모시는 접대를 하려나 보군. 가보자. 뭐, 정신을 못 차리고 까불면 한 방에 날려 버리면 되지.”
“그것도 그러네요.”
노인을 선두로 해서 야만인들은 묵향과 아르티어스를 마을에서 가장 큰 천막으로 조심스럽게 안내했다.
가죽으로 된 문을 젖히고 들어선 천막 안은 노린내 같은 괴상한 냄새가 진동을 하고 있었다. 아르티어스가 그 냄새에 인상을 찡그리고 있는데, 노인은 그들을 천막 한쪽에 놓여 있는 비교적 깨끗한 털가죽 위에 앉도록 안내했다. 묵향이 그 위에 앉을 때, 밑에서 풀잎이 바스락거리는 듯한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천막 제일 밑 바닥에는 건초 같은 것을 깔아서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습기를 막는 모양이었다.
일단 그들이 자리에 앉자, 노인과 몇몇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늙은이 세 명이 들어와 꿇어앉아서는 한 번씩 고개를 깊숙이 조아리며 신성심 가득한 어조로 뭐라고 쉴 새 없이 떠들어 댔다.
한참을 그렇게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떠들어 대던 그들의 입이 다물어진 것은 음식들을 가득 담은 바구니를 든 여인들이 천막 안으로 들어왔을 때였다. 그 노인들 은 여인들이 벌벌 떨며 조심스럽게 음식을 아르티어스와 묵향 앞에 차려 놓기 시작하자 코가 바닥에 닿도록 절을 한 후 밖으로 나갔다.
뭔지 모를 액체가 담겨 있는 사발들, 그리고 잘 구운 고깃덩이, 처음 보는 새까맣고 자그마한 열매들이 가득 담긴 바구니가 묵향과 아르티어스의 앞에 가지런히 놓 여졌다.
“오, 안 그래도 시장하던 참이었는데 잘됐군.”
아르티어스는 넉살좋게 웃으며 먼저 사발에 담겨 있는 허연 액체의 냄새를 맡아본 후 곧바로 몇 모금 들이켰다.
“제법 먹을 만하네. 그런데 맛이 비릿한 게 양젖 같은데?”
“그런가요?”
묵향은 아르티어스가 들고 있던 사발을 받아들고 쭉 들이켰다.
아르티어스는 사발에 담긴 커다란 고깃덩이를 집어 먹기 시작했다. 겉은 노릿노릿 잘 구워진 듯했지만, 속은 하나도 안 익었는지 한 입 베어 물자 선홍빛 핏물이 배어나오는데도 아주 맛있게 먹었다.
“이거 고기가 신선해서인지 맛이 기가 막히군. 너도 어서 먹어라.”
드래곤이야 오크건 와이번이건 통째로 잡아먹는 경우도 많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르티어스는 오히려 신선하다고 좋아할지 모르겠지만, 묵향은 그렇 지 못했다.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고기를 바라보던 묵향은 비위가 상한다는 듯 미간을 찡그리며 고개를 돌려 새까맣고 작은 열매를 집어서 먹었다. 보기에는 조금 이상했지 만, 달콤한 것이 제법 맛이 괜찮았다.
묵향이 말린 열매를 한참 먹고 있을 때, 아르티어스는 커다란 고깃덩이를 먹다가 텁텁한 냄새가 나는 뿌연 액체를 쭈욱 들이키더니 떨떠름한 표정으로 투덜거렸 다.
“크! 이딴 것도 술이라고 마셔야만 하다니…….’
술이라는 말에 묵향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술이라구요?”
묵향이 반색을 하며 묻자 아르티어스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대답했다.
“그래, 뭔지는 모르겠지만 양젖 같은 걸로 만든 술 같구나. 젠장! 이런 걸 술이라고 만들고 있다니, 이건 술에 대한 모욕이야.”
“그런 말씀하실 거면 제가 마실 테니 주세요.”
아르티어스에게 빼앗듯 사발을 받아든 묵향은 단숨에 쭈욱 들이켰다. 목젖을 타고 넘어가는 텁텁하면서도 비릿한 술 맛은 옛날 몽고전 때 자주 마셨던 마유주를 떠올리게 했다.
중원에 대한 그리움이 되살아났는지 묵향의 얼굴이 일순 침울해졌다. 묵향의 표정을 살피던 아르티어스는 그것 보라는 듯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거봐! 내가 뭐랬어. 젠장, 어쩔 수 있냐! 딴 게 없으니 이거라도 마셔야지.”
그들이 식사를 마치고 나자 이번에는 머리카락을 10여 가닥으로 땋은 소녀 둘이 들어왔다. 방금 전에 음식을 천막 안으로 날랐던 나이가 조금 들어 보이는 여자들 이 머리카락을 네 가닥으로 땋은 것에 비해서는 꽤나 비교가 되는 모습이었다.
“저것들은 또 뭐 하려고 들어온 거지?”
“글쎄요……?”
그녀들은 천막 바닥에 깔려 있는 두툼한 가죽을 정성을 다하여 깔끔하게 정리했다. 그리고는 그 위에 또 다른 깨끗한 가죽을 한 장 깔았다. 아래에 깔려 있는 것보 다는 얇고 보드라운 것이었다.
“아하! 잠자리를 정리하는 모양인데요.”
“그런 모양이군.”
그녀들은 어느 정도 잠자리 정리가 되자 묵향과 아르티어스에게 경건한 어조로 뭐라고 말한 다음 그 옆에 조용히 무릎을 꿇고 앉았다.
“이것들이 뭐 하는 거죠?”
약간 당황한 듯한 묵향과는 달리 아르티어스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는 듯 음흉스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상황이야. 호비트라는 것들은 불가사의한 존재에게 여자를 바치는 습성이 있거든. 옛날에도 나한테 여자를 갖다 바친 정신 나간 놈들이 몇몇 있었지.”
“그건 아빠가 드래곤일 때 얘기잖아요.”
워낙 습관이 돼서 그런지 아무 생각 없이 묵향의 입에서 ‘아빠’라는 말이 그냥 튀어나왔다. 하지만 ‘아빠’라는 말에 아르티어스는 소름이 끼친다는 듯 부르르 몸을 떨며 투덜거렸다.
“참 나, 다 큰 사내자식이 ‘아빠’라니!”
“아, 아버지……. 이거 오랫동안 버릇이 돼서인지 잘 안 고쳐지네요. 그건 그렇고, 그때와 지금을 비교하는 것은 좀 문제가 있는 것 아닙니까?”
묵향이 왠지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질문을 했지만, 아르티어스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오히려 무슨 소리를 하느냐는 듯 의기양양하게 입을 열었다.
“전혀 문제가 안 되지. 저것들 표정을 보면 쉽게 알 수 있거든. 봐, 얼굴에 존경심이 가득하잖아. 하늘에서 떨어진 우리들을 아마 전지전능한 신쯤으로 생각하고 있 을 거야. 왜? 호비트가 나에게 굽실거리는 것을 보니 기분이 좀 그런가 보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을 왜 묻느냐는 듯한 아르티어스의 표정에 묵향도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 그럴까요?”
“당연하지. 내 말이 틀림없다. 흐흐흐, 어디 오랜만에 회포나 풀어 볼까.”
아르티어스는 묵향에게 보란 듯이 과장된 몸짓으로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소녀들 중 한 명을 가볍게 껴안았다. 하지만 그 소녀는 가만히 떨고만 있을 뿐, 반항조 차 하지 않았다.
아르티어스는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소녀의 얼굴로 입술을 대려다가 갑자기 인상을 확 일그러뜨렸다. 소녀의 목덜미 쪽으로 얼굴을 접근시키자 뭔가 표현하기 힘 든 기괴한 냄새가 그의 코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또한 자세히 보자 옷 밖으로 드러난 살갗에는 얼마나 씻지 않았던지 꼬질꼬질한 때가 잔뜩 끼어 있었다.
“우엑! 제, 젠장. 이것들이 엄청 불결하다는 것을 깜빡 잊고 있었군.”
“히히힛!”
낄낄거리고 웃고 있는 묵향을 얄밉다는 듯 잠시 노려본 아르티어스는 마법의 힘을 끌어올려 거칠게 외쳤다.
“슬립(Sleep)!”
그와 동시에 겁에 질려 벌벌 떨고 있던 두 소녀는 기절하듯 픽 쓰러졌다. 소녀들이 잠이 들자 아르티어스는 헛기침을 하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험험, 저런 단순한 놈들의 경우 이쪽에서 호의를 거절하면 곧장 우리가 자신들에게 적의를 가지고 있다고 오해하거든. 이런 경우에는 계집들을 천막 밖으로 내쫓 아서는 절대로 안 되지.”
묵향이 꼴좋다는 듯 빈정거렸다.
“그럼 잠을 재우는 것은 상관없고요?”
아르티어스는 짜증이 나는지 두 소녀를 천막의 한쪽 구석에다가 휙 집어던지면서 퉁명스럽게 말했다.
“저 계집들이 우리와 함께 자는지 구석에 찌그러져 자는지 그놈들이 알 게 뭐냐! 그건 그렇고 이만 자자. 아무리 나라도 차원 이동을 하고 나니 조금 피곤하구나.” 묵향은 한쪽 구석에 찌그러져 있는 두 소녀를 바라보며 나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에구, 성질 더러운 드래곤을 만나 너희들도 참 고생이다. 팔자려니 생각해야지, 뭐.”
묵향은 자려고 했지만 왠지 모를 불안감에 쉽사리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어쩌면 이곳이 자신이 찾고 있던 중원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거창한(?) 식사가 주어졌고, 묵향은 또다시 말린 열매로 배를 채워야 했다.
식사가 끝나자 머리에 기다란 깃털을 꽂은 노인이 들어와 한참 동안 절을 하며 뭐라고 중얼거리다가 아르티어스와 묵향을 마을 외진 곳에 위치한 천막으로 안내했 다.
그들이 천막 안으로 들어서자 지독한 악취가 확 풍겨져 나왔다.
“웁, 이게 뭐야?”
아르티어스는 질겁을 하며 코를 막고 뒤로 물러섰지만, 묵향은 천천히 천막 안을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저기 누워 있는 사람들에게서 나는 냄새 같은데요. 이마에 땀이 흥건하게 고여 있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고열에 시달리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자연히 정신 이 오락가락할 테고, 아무렇게나 용변을 싸댈 수밖에 없는 노릇이겠죠.”
“그 정도는 나도 알아. 그런데 왜 이리로 우리를 데려온 거지?”
말을 하던 아르티어스는 순간 뭘 생각해 냈는지 손가락을 탁 튕기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오호라, 그러니까 이놈들을 치료해 달라는 말이로군. 하늘에서 떨어진 신의 사도인 우리들에게 말이야.”
“그럴 수도 있겠죠.”
아르티어스는 못마땅하다는 듯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젠장, 밥값 한번 비싸군. 그나저나 별로 내키지는 않지만 해 줘야겠지. 또다시 차원 이동 하기 전까지 편안하게 지내려면 저놈들이 나를 신으로 떠받들게 하는 것 이 편할 테니까 말이야.”
아르티어스의 말에 묵향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랍다는 투로 물었다.
“정말 치료하실 수 있겠어요?”
“이 녀석이 나를 뭐로 보고……. 이래 봬도 위대한 골드일족의 후예란 말이다. 이 정도 허접한 증상 정도야 식후 디저트지.”
툴툴거리던 아르티어스는 슬며시 손을 들어 나직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그와 동시에 그의 손에서는 휘황찬란한 빛 무리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 아르티어스의 모습을 보자 안내를 해 온 노인뿐만 아니라 창백한 안색으로 누워 있던 병자들까지도 허겁지겁 무릎을 꿇고 엎드려서는 뭐라고 외쳐 대기 시작 했다.
“그건 무슨 마법이에요?”
저쪽 세상에서 치료 마법을 몇 번 보기는 했지만, 이렇듯 화려한 마법은 본 적이 없었기에 묵향이 물어본 것이다. 그러자 아르티어스는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뭐긴 뭐야. 이런 미개한 호비트들을 속이기 위해서는 화려한 연출 효과라는 게 필요한 것 아니겠냐?”
아르티어스는 무지개색 빛 무리를 뿜어내고 있는 손으로 자신을 향해 무릎 꿇고 있는 환자들 머리에 가볍게 댔다. 그러자 그들은 뭔가에 홀린 듯 자리에서 벌떡 일
어섰다. 아직까지는 힘이 없는 듯 비틀거렸지만 이미 완쾌된 것이 분명했다.
그들은 병이 낫자마자 존경심이 가득한 눈으로 아르티어스를 향해 머리가 땅에 닿을 정도로 연신 절을 하며 뭐라고 중얼거렸다.
“어떠냐? 효과 만점이지?”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아르티어스에게 묵향은 마지못해 대답했다.
“그런 것 같네요.”
“이제부터는 이놈들이 다 내 노예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지. 히히힛!”
잠시 혼자서 낄낄거리던 아르티어스는 뭔가에 생각이 미친 듯 중얼거렸다.
“그런데 노예라는 것들을 부리고 싶어도, 말이 통해야 부려먹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그 말에 묵향은 대수롭지 않은 듯 대답했다. 말을 배우는 것은 시간이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뭐, 자연히 이놈들과 함께 지내다 보면 말을 배울 수 있겠죠. 시간이야 좀 걸리겠지만……. 하기야 아버지 같은 경우 머리가 좋으시니까 몇 달이면 충분하겠네 요.”
“몇 달! 그동안 답답해서 어떻게 살겠냐. 가만있자…….?
잠시 궁리를 하던 아르티어스는 곧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 입을 열었다.
“옳지, 좋은 방법이 생각났다.”
“뭘 하시려구요?”
“가만히 보고만 있거라. 흐흐흐, 곧 이 애비의 능력에 감탄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
아르티어스는 자신의 앞에서 연신 절을 하고 있는 환자의 머리에다가 살짝 손을 올려놓았다. 그런 다음 마법을 사용해서 상대의 기억을 읽어 들이기 시작했다. 그 환자가 어렸을 때부터 사용했던 말들은 물론이고, 그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기억을 모두 말이다.
물론 상대의 기억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읽어 낸다고 해도 머릿속의 기억은 야만족 언어로 저장된 것이었기에 그다지 큰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머릿속에 저장된 것이 어디 언어뿐이겠는가? 수많은 영상도 함께 보관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아르티어스의 완벽한 기억력과 우수한 두뇌는 그 영상과 언어를 차근차근 합쳐 하나의 단어를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아르티어스는 30분 정도 시간이 흐른 다음 손을 뗐다. 그런 다음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별로 어려운 것도 아니었군. 으하하핫! 과연 나의 한계는 어디까지란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너무 위대해.”
호탕하게 웃으며 자화자찬을 하고 있는 아르티어스를 향해 뭔가 한마디 비꼬아 주려다가 묵향은 참기로 했다. 일단 아쉬운 쪽은 묵향이었기에 아르티어스의 신경 을 되도록 건드리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일단 여기가 어디인지부터 알아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그러고 나서야 어떻게 행동할지 결정짓는 것이 좋겠네요.”
아르티어스는 묵향의 반응이 자신의 생각보다 시큰둥하자 김이 샌다는 듯 힘없는 목소리로 허탈하게 대꾸했다.
“그러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