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16권 7화 – 고기를 굽는 데는 혈수마공이 최고
고기를 굽는 데는 혈수마공이 최고
묵향은 말 등에 실려 있는 주머니를 뒤적거려 잘 말린 육포 몇 개를 들고 돌아왔다. 불타오르는 듯한 그의 손이 한 번 쓱 훑었을 뿐이었는데도 육포는 노릇노릇하 게 잘 구워졌다. 묵향은 그것을 아르티어스에게 건네 준 후, 또다시 한 개를 구워서 입으로 가져가며 중얼거렸다.
“역시 고정관념이라는 것은 무서운 거야. 파괴력이 막강하다는 것만 알았지, 혈수마공에 이런 기가 막힌 용도가 있을 줄이야……. 아예 불이 필요 없구만.”
주의 깊게 묵향의 행동을 살피던 아르티어스는 호기심 어린 어조로 물었다.
“방금 쓴 그 마법이 혈수마공이라는 거냐? 거~참, 상당히 편리해 보이네. 그거 나도 좀 가르쳐 주라. 주문이 어떻게 되는 거냐?”
아르티어스의 말에 묵향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주문이라고요? 이건 마법이 아니라 무공인데요. 그리고 가르쳐 준다고 하더라도 곧바로 쓸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짜식 쫀쫀하기는……. 가르쳐 주기 싫으면 싫다고 할 것이지.”
대놓고 따지지는 못하고 작은 소리로 꿍얼거리고 있는 아르티어스를 향해 묵향은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알았어요. 에이~씨, 가르쳐 드리면 될 거 아니에요.”
“히히힛, 안 그래도 할 일도 없는데 그거라도 한번 배워 보자.”
“좋아요. 그럼 잘 새겨들으세요.”
천천히 묵향이 하는 말을 들으며 아르티어스의 안색은 점점 똥 씹은 듯 누렇게 바뀌어가기 시작했다. 묵향이 읊어 주는 그것은 혈수마공의 구결(口訣)이었다. 무 공을 익혀 본 무인이라면 다 알 것이다. 최상급 무공의 구결이라면 원래가 무공의 아주 근본적인 부분을 파고들게 되기에 매우 추상적인 정신세계를 다루게 된다. 특히나 혈수마공 같이 천하 5대 수공(功)에 들어갈 정도의 무공이라면 그 구결의 심오함은 거의 이해불능의 수준까지 올라가게 되는 것이다.
물론 묵향이 자신이 처음 배웠던 구결을 그대로 아르티어스에게 알려 준 것은 아니었다. 무공서적에 적힌 구결은 타인에게 유출되었을 때를 대비하여 거의 암호화 해 놨기에 그것을 그대로 일러 줘 봐야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묵향은 자신이 깨달은 부분을 포함하여 비교적 알기 쉽게 일러 줬다. 하지만 아르티어스는 뭔가에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한 표정으로 멍청히 앉아 있는 것이다. 그런 아르티어스의 얼굴을 보고 묵향은 그것 보라는 듯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거기까지가 총체적인 구결이구요, 그다음 각 부분에 따른 요결(要結)이 따로 있죠. 그러니까…….”
그다음에 이어진 것은 혈수마공의 구결을 이해함에 있어서 따라 다니는 요결이었다. 요결은 각 부분부분을 이해하기 쉽도록 풀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기에, 뛰 어난 고수가 들려주는 요결과 그렇지 못한 인물이 들려주는 요결에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왜냐하면 자신이 이해한 부분까지를 총체적으로 풀어서 설명하는 것이 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결 강의가 시작되자, 아르티어스의 안색은 더더욱 멍해지기 시작했다. 원래가 마법만 배운 그에게 있어서 요결은 더욱 혼란만을 가중시켰을 뿐, 그 어떤 도움도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윽고 요결을 모두 말한 묵향은 이해할 수 있겠냐는 듯 아르티어스에게 물었다.
“아시겠어요?”
하지만 아르티어스의 반응은 영 아니올시다’였다. 도대체 무슨 말을 들었는지조차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맹한 표정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곧 이어 벼락이라도 맞은 듯 확 뒤바뀌었다. 그다음에 이어진 묵향의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골드일족의 후예이시면서, 전지전능에 가깝다고 자화자찬하시는 아빠니까 그 정도는 금방 익히시겠죠?”
묵향의 비꼬는 듯한 그 말에 아르티어스는 곧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한 말이 있었기에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저렇듯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면, 그 에 따른 결과를 묵향에게 보여 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느껴졌던 것이다. 만약 이 난해한 마법을 익히지 못한다면, 아들이 자신을 뭐로 보겠는가 말이다.
한참을 고민하던 아르티어스는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 봐도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가 없자, 일단 시간을 벌기로 결심했다. 그러자면 뭔가 기대에 가득 찬 듯 자신을 바라보며 실실 웃고 있는 아들놈의 관심을 딴 곳으로 돌려놓을 필요성이 있었다.
“그건 그렇고, 이제 어떻게 할 거냐?”
“뭘 말이에요?”
“이런 미개하기 그지없는 놈들을 상대로 필요한 정보를 얻어 낼 뭔가 다른 방법이 있느냐는 것이다.”
“글쎄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아르티어스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하다가 뭔가가 떠올랐다는 듯 입을 열었다.
“아, 참! 왜 내가 미처 그것을 생각하지 못했지? 여기도 호비트가 사는 세상인 만큼 계급이 있을 것 아니냐. 여기까지 오면서 경험한 바에 의하면 비록 미개한 족속 이라고는 하지만 촌장도 있었고, 각 지역을 관할하는 족장도 있었잖니? 특히 여기는 대족장이라는 놈이 살고 있으니 그놈한테 물어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아르티어스의 말에 묵향은 환히 웃으며 좋은 방법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이곳에서 상인을 찾아다니느니 차라리 이 지역을 통치하는 대족장에게 물어보는 것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가 있을 것만 같았다.
“아, 맞다. 그런 방법이 있었네요.”
아르티어스는 씹고 있던 육포를 땅바닥에 던져 버리며 말했다.
“그곳에 가면 이것보다는 좋은 음식을 대접받을 수 있겠지. 그리고 따뜻한 잠자리도 말이야. 안 그러냐?”
“그럼요. 빨리 가죠.”
성은 야트막한 언덕 위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주변보다는 훨씬 높은 지대에 자리 잡고 있었기에, 시가지와 항구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말은 시 가지와 항구에서도 성을 어디서나 볼 수 있다는 말과 같았다. 그렇기에 아르티어스와 묵향은 원주민에게 길을 물어보는 수고를 생략하고 곧장 성을 찾아갈 수 있었 다.
성문을 지키고 서 있는 병사는 여섯 명가량이었는데, 그들의 복장은 거의 통일이라도 시킨 듯 흡사했다. 가죽으로 옷을 해 입고 있는 것은 지금껏 만난 촌락민과 똑같았지만, 한 가지 다른 것이 있다면 성문을 지키는 병사답게 완벽하게 무장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었다.
지금까지 만나온 모든 촌락민들은 무기를 다룰 줄 알고 있었고, 또 무기들을 집에 보관하고 있었지만 먹고 살 일이 바쁘다 보니 간편한 무장만을 하고 다니는 정도 였다. 하지만 이들은 방패를 등에 지고, 긴 창을 쥐고 서 있었다.
성문을 지키고 있던 원주민 병사들은 색다른 모습의 이방인이 나타나자 험악한 인상으로 창을 꼬나들고 앞을 가로막으며 뭐라고 지껄여댔다.
“저 녀석 뭐라고 지껄이는 거예요?”
병사들의 무례한 태도에 기분이 상한 묵향이 묻자, 아르티어스는 심드렁한 어조로 대답했다.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묻는 거야. 그냥 때려눕히고 들어갈까?”
“그러면 대판 싸우게 될 게 뻔하잖아요. 그러지 말고 아주 중요한 일로 대족장 타르티를 만나러 왔다고 해요.”
“그럴까? 쩝, 귀찮기는 하지만 네 말대로 하마.”
병사들 중의 한 명이 대족장을 만나러 왔다는 아르티어스의 말을 무시하지 못하고, 성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잠시 후 그 병사는 상관인 듯한 한 인물과 함께 걸어 나왔다. 그 또한 여태껏 보아 왔던 원주민들처럼 어깻죽지만 감싸고 있는 털가죽으로 된 옷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허리에는 병사들처럼 작은 단도만이 꼽혀 있지 않고, 반월형으로 휘어진 커다란 도(刀)를 차고 있었다.
그는 도의 손잡이에 손을 올린 채 거만한 표정으로 뭐라고 말했다. 그러자 곧장 아르티어스도 그의 말에 응수해 한동안 서로 원주민 언어로 지껄여댔다. 갈수록 서로 간의 말투가 거칠어지기 시작하는 것을 느낀 묵향이 아르티어스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물었다.
“도대체 무슨 얘기를 그렇게 오래 하는 거예요?”
“저놈이 대족장을 만나지 못한다고 하잖아.”
아르티어스가 투덜거리며 말했지만 묵향의 생각은 달랐다. 성을 경비하는 병사들로서는 그렇게 나와야 당연한 것이다. 상대가 주변 강대국에서 온 사신도 아니었 고, 또 대족장을 만나러 왔다면서 뭔가 대단한 선물을 가져온 것도 아니었다. 신분도 확실하지 않은 이방인 둘이, 그것도 그냥 맨손으로 와서는 대족장을 만나게 해 달라는데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묵향은 잠시 생각해 본 후 입을 열었다.
“병사들이야 당연히 그렇게 나오겠죠. 그럼 이렇게 하자구요. 여태까지 이리로 오면서 신으로서 많은 대접을 받았잖아요. 그러니까 신께서 왕림하셨다고 둘러대 면서 대족장을 만나게 해 달라고 하면 되잖아요. 그리고 설마 그 촌락에서 이쪽까지 20일간에 걸쳐 쉬엄쉬엄 왔는데, 신이 왕림한 사실을 대족장이 모를 리가 있겠 어요? 벌써 보고가 올라왔어도 예전에 올라왔을 걸요?”
“호오, 그럴듯한데. 그 방법도 괜찮겠군. 그러니까 내 전공을 살리자는 말인데…, 좋아! 한번 해 보자!”
아르티어스는 좋은 생각이라는 듯 감탄사를 연발한 후, 나직하게 목소리를 깔며 병사들에게 무언가 말을 건넸다. 하지만 아르티어스의 기대와는 달리 병사들의 얼 굴에 떠오른 것은 존경심이나 경외감 따위와는 거리가 먼 경멸감이었다.
병사들이 뭐라고 지껄여대자 아르티어스의 안색이 확 일그러졌다. 그것을 보고 묵향이 옆에서 아르티어스의 옷깃을 살며시 잡아끌며 물었다.
“도대체 저놈이 뭐라고 했길래 그래요?”
아르티어스는 사나운 눈빛으로 그 병사를 째려보며 투덜거렸다.
“저놈이 나를 보고 사기꾼이라고 하잖아. 씨쥬에서 온 장사치라는 것을 뻔히 아는데 감히 신의 이름을 사칭한다고 말이야. 목을 잘라 버리기 전에 꺼지라고 하는 데, 내가 가만히 있게 생겼냐?”
묵향은 아르티어스의 말에 좋은 정보를 얻었다는 듯 다급히 물었다.
“뭐라고요? 씨쥬에서 온 상인이라고요? 호오, 그렇다면 색목인(色目人)이 여기까지 들어오는 모양이군요. 그럼, 그들을 어디에 가면 만날 수 있는지 한번 물어봐 요.”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아르티어스가 퉁명스럽게 질문을 던지자 상대는 차가운 어조로 뭐라고 떠든 후 성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병사들도 빨리 꺼지 라는 듯 창을 들이밀며 아르티어스를 위협했다. 순간 아르티어스는 화가 머리끝까지 솟구쳤는지 얼굴이 시뻘겋게 변하며 거칠게 외쳤다.
“이것들이 감히 내가 누군 줄 알고, 어디 맛 좀 봐라.”
아르티어스는 허공을 향해 두 손을 뻗으며 뭐라고 중얼거렸다. 골드 드래곤은 바람의 정령력을 지니는 존재가 아닌가. 그는 바람의 정령들을 불러서 저 싸가지 없 는 놈을 날려 버리려고 했다. 하지만.
“어? 왜 이래?”
아르티어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령의 힘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상에…, 그렇다면 지금까지 불어오던 바람은 뭐였지? 여기서는 정령이 없어도 바람이 분다는 말인가? 에잇! 젠장, 그건 나중에 천천히 연구해 보면 알 수 있겠 지. 그렇다면 이것은 어떠냐?”
아르티어스는 본격적으로 마법을 사용했다. 강력한 마법이라면 마나가 희박하기에 구사하기 힘들지도 모르겠지만, 저런 야만족 병사 하나를 족치는 데 그렇게 고 급 마법은 필요도 없었다. 아르티어스가 주문을 외워 마법을 발동시키자, 퉁명스레 말하고 되돌아가던 도를 찬 병사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몸이 뒤로 확 끌려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던 것이다.
그는 비명을 질러대며 질질 끌려왔고, 곧이어 아르티어스의 손아귀에 잡혀 버렸다. 그제야 그는 아르티어스가 자신에게 뭔가를 했다는 것을 깨닫고 창백해진 안 색이기는 했지만, 큰 소리로 지껄여 대며 허리에 찬 도를 꺼내려고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곧이어 그의 반항도 잠잠해졌다. 아르티어스가 그의 뒤통수를 주먹으로 호되게 갈겨 버렸던 것이다.
그와 동시에 주변에 있던 모든 원주민 병사들이 벌 떼를 건드린 듯 웅성거리며 전투 대형을 갖췄다. 방패로 몸을 가리며 창을 꼬나쥐고 서서히 압박해 들어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것을 보자 아르티어스는 같잖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것들이, 정말 죽으려고 작정을 했군. 그래, 어디 한번 죽어 봐라.”
아르티어스가 주문을 외우며 슬쩍 손을 뻗자, 그의 손에서 엄청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곧장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던 병사 한 명에게 직격했고, 그는 괴 성을 질러대며 경련을 일으키더니 이윽고 잠잠해져 버렸다. 죽은 것이다. 그것을 보자 병사들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리더니 부들부들 떨며 뒤로 주춤주춤 물러서기 시작했다. 옆에서 보고 있던 묵향은 아르티어스가 마법을 이상한 방법으로 사용하자 궁금한 듯 물었다.
“왜 그렇게 한 거에요?”
아르티어스는 그 말에는 대답도 안 하고, 겁에 질린 병사들의 모습에 기고만장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흐흐흐, 이것들이 이제야 나를 알아 모시는 모양이군. 하등한 네놈들에 비하면 신에 가까운 이 몸을 말이야.”
아르티어스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성문 근처에 서 있는 커다란 나무 한 그루를 발견하자 음흉한 미소를 짓더니 뭔가 주문을 외워대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의 몸에서는 찬란한 서광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불가사의한 그 광경을 목격한 병사들은 하나 둘씩 무기를 버리고 땅에 꿇어앉은 채 절을 하며 외치기 시작했다. 그들의 외침은 조금씩 차이가 있었지만, 그 안에는 탱게르라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묵향은 알 수 있었다.
이윽고 모든 병사가 엎드려 절을 하자 아르티어스는 흡족한 표정으로 나무를 손짓으로 가리키며 뭐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엎드리고 있던 모든 병사들의 시선이 그 곳으로 집중되었다.
번쩍!
콰콰쾅.
이때 구름 한 점 없던 맑은 하늘에서 새하얀 번개가 내리꽂히며 나무를 수직으로 두 동강을 내 버렸다. 그 광경을 본 병사들은 공포와 경외감에 질린 얼굴로 아르 티어스에게 절을 해대며 연신 탱게르를 외쳐 대기 시작했다. 오직 그것만이 자신들이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듯. 그리고 그 외침은 점점 더 퍼져 나가기 시 작했다. 성문 주위에서 탱게르라는 커다란 함성이 들리자, 성 내부에 있던 병사들이 무슨 일인가하여 쏟아져 나왔다. 그들 역시 곧 상황을 인식하고 그 대열에 계속 합류했다.
수많은 병사들이 탱게르를 외쳐 대고 있는 가운데, 뒤에서 구경하고 있던 묵향이 슬그머니 다가와서 아르티어스에게 물었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에요? 뒤에서 보니까 시답잖은 전격 마법으로 한 명 구워 죽이고, 저 나무를 반쪽 낸 것밖에 없었잖아요. 그런데 왜 이 난리죠?”
묵향의 질문에 아르티어스는 씨익 웃으면서 대답했다.
“쯧쯧쯧, 그래서 네가 아직 멀었다는 말이다. 이렇게 호비트의 심리를 이해하지 못하다니. 그래서 내가 말했잖냐. 똑같은 마법을 쓰더라도 저런 무식한 것들 앞에서 쓸 때는 연출 효과가 아주 중요하다고 말이야.”
“연·출·효·과·요?”
“그래, 똑같은 마법이라도 어떤 방식으로 조합하느냐에 따라 그 효과는 엄청난 차이를 보이지. 라이팅 마법으로 몸을 감싸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전격 마법으로 초자연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내가 보여 주었잖니. 그랬더니 봐라, 저것들이 나를 탱게르, 즉 하늘에서 내려온 천신(天神)이라고 떠들어 대고 있잖아.” 으스대는 아르티어스를 묵향은 같잖다는 듯 바라봤다. 하지만 묵향의 두 눈이 휘둥그레지는 것은 잠시의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은은한 빛 무리로 몸을 감싼 아리 티어스는 평소의 주책 맞던 그의 모습을 연상하기 힘들 만큼 위엄과 신성에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잠시 자신의 두 눈을 의심하며 아르티어스를 바라보던 묵향은 나지한 소리로 중얼거렸다.
“폼이 나긴 난다만은 참 내, 별 같잖은 게 다 통하네.”
그것은 묵향이었기에 이해할 수 없는 일일 뿐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마법이 난무하는 세계에서 오랜 세월 살며 거기에 이미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묵향은 엄청난 파괴력을 자랑하는 거대한 강철 인형이나, 6사이클급 이상의 막강한 마법들, 그리고 마계의 발록은 물론이며 그보다도 월등한 불칸(Vulcan)과도 싸 워 보지 않았던가. 그런 묵향이었기에 아무리 연출이 좋다 하더라도 저런 간단한 라이팅 마법과 전격 마법에 속아 땅바닥에 꿇어앉아 천신이라 부르짖고 있는 병사 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