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17권 12화 – 도대체 어떤 놈이야

도대체 어떤 놈이야

중원 천지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를 꼽으라면 단연 소주(蘇州)가 그 수위를 차지한다. 태호변에 자리 잡은 소주는 도시 전체가 운하로 이루어져 있어, 아주 독특 한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소주에서도 유명한 주루인 태진루.

지금 이곳에선 강호에서 가장 뛰어난 후기지수들의 모임이라는 7룡4봉에 들어가는 젊은이 몇이 경치를 감상하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7룡4봉도 처음에는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가장 뛰어난 소수의 후기지수들을 칭하는 말이었을 것이다. 공식적인 단체도 아니었기에, 그 어떤 구속력도 없었 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7룡4봉도 조금씩 변모했다. 자의건 타의건 간에 하나의 단체에 소속되면 아무래도 서로 간에 조금씩이라도 유대 관계가 생기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다 보니 ‘도대체 저놈은 어떤 이유로 7룡4봉에 이름이 올랐지?’ 하는 마음에 서로 만나 보고 싶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러다가 친분이 깊어지면, 그 우정 이 먼 훗날까지도 연결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게다가 과거 7룡4봉에 들어갔었던 선배들의 후광도 맛볼 수 있었다. 그렇다 보니 7룡4봉은 세월이 흐르면서 무림 최 고의 사교 단체(私交團體)로 자리 잡고 있었다.

대화를 주도하는 것은 7룡 중의 하나인 매화검(梅花劍) 옥대진(玉振)이었다. 그의 증조부는 전임 무림맹주인 옥청학, 할아버지는 무림맹의 장로 옥진호였다. 그 렇다보니, 강호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흥미 있는 비사들을 남들보다 더 많이 알고 있었다.

그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은 두 명의 미녀였다. 4봉에 속해 있는 그녀들은 옥대진의 인솔로 이곳 소주에 유람차 온 것이었다. 물론, 이들 중의 한 명을 꼬 셔 보려는 옥대진의 음흉스런 마음도 함께 작용한 것이겠지만 말이다.

한참 얘기를 진행하던 옥대진은 황급히 주루에 들어서는 청년을 바라보고는 중얼거렸다.

“허참, 호랑이도 제 말 하면 나타난다고 하더니…, 저 친구가 바로 폭풍검(暴風劍) 서량(徐梁) 소협입니다.”

그와 동석하고 있던 미녀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다. 훤칠한 키에, 당당한 체구, 그리고 명문의 자제답게 교양이 배어 있는 절도 있는 몸놀림. 서량은 약간 쑥스 러운 듯한 표정으로 포권하며 사과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역시 가장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이 제일 늦게 나타나는군. 그래, 패력검제 대협께서는 평안하신가? 자네도 먼 소주까지 내려와서 고생이 많구만.”

제령문(諸令門)은 산서성에 둥지를 틀고 있었지만, 요가 침입해 오는 통에 터전을 잃고 남하했다. 그리하여 지금은 임시로 소주에 자리를 잡고 있는 상태였다. 아 무래도 낯선 곳에 새로운 터전을 마련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에 옥대진이 그런 인사를 건넨 것이다.

서량은 이미 옥대진과는 어느 정도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그에게 정중히 포권하며 화답했다.

“예, 감사합니다, 형님. 물론 아버님께서는 잘 계십니다.”

“이쪽은 초씨세가의 초미礎) 소저, 그리고 이쪽은 화산파의 능비화(花) 소저일세.”

옥대진의 소개에 따라 서로 간에 인사를 교환했다. 하지만 서량은 자리에 앉지 않고 정중히 사죄했다.

“이런 귀중한 자리에 소생을 불러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하지만 소생은 지금 급한 일이 생겨서 가 봐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전하려 고 이렇게 달려온 것입니다.”

옥대진은 혀를 차며 투덜거렸다.

“허~참, 멀리서 오신 귀한 손님들을 앞에 두고 할 말이 아니구만. 천하의 제령문에 무슨 그런 급한 일이 있다는 말인가? 무슨 일인지 말이나 좀 해 보게. 우리 모두 7룡4봉에 꼽힌 형제들이 아닌가? 급한 일이 있다면 도와야지.”

제령문은 문도 수는 적지만 대단히 힘 있는 문파였다. 강호상의 그 누구도 제령문을 깔볼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껏 화경의 고수를 셋이나 배 출한 최고의 명문이었던 것이다.

서량은 그 제안을 거절했다. 하지만 상대의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그의 말투는 아주 정중했다.

“말씀만이라도 고맙습니다. 하지만 도우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아버님께서 직접 나서실 테니까요.”

“문주님께서 직접?”

그 말에 모두들 경악감을 감출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제령문의 문주는 패력검제 서진(眞)이었다. 패력검제라는 명호가 말을 해 주듯 그는 화경의 고수였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화경의 고수가 직접 움직인다는 말인가?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러나?”

“오늘 아침에 무림맹에서 첩지가 날아왔습니다. 마교의 장로가 남궁세가 인근에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것 때문에 지금 그를 척살하기 위해 군웅들이 몰려들고 있 습니다. 아버님께서도 거기에 동참하시겠다고 하셔서…….”

무림맹은 무영신마를 추살하기 위해 맹의 주력 고수들을 동원하지는 않았다. 왠지 그가 혼자 나와 있다는 것이 음모가 아닌가하는 가정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 이다. 그들은 안휘성 인근에 포진하고 있는 분타의 고수들에게만 동원령을 내렸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는 절정고수들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게 된다. 무림맹은 그 문제를 주위 문파들에 도움을 청하는 것으로 해결했다.

물론 패력검제에게도 무림맹에서 보낸 첩지가 날아왔다. 그는 사파라면 자다가도 이빨을 갈 정도로 증오심이 대단했다. 그런 만큼 마교 장로의 목을 벨 수 있는 이 런 절호의 기회를 그냥 지나칠 리가 없었다.

서량의 얘기를 들으며 가만히 생각을 굴리던 옥대진이 서량에게 정중한 어조로 말했다.

“그런 일이 있었는가? 그렇다면 우리도 미약하나마 힘을 보태야 할 게 아니겠는가?”

패력검제의 그 패도적인 무공을 견식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생긴 것이다. 그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또, 그와 함께 동행한다면 자신들이 검을 들 일도 없을 게 뻔했다.

옥대진과 동행하고 있는 4봉의 경우, 무림명가의 여식들이기는 했지만, 무공이 매우 고강한 편은 아니었다. 원래가 7룡4봉의 가입 조건이 무공 수위와는 무관하다 는 점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엄청난 고수와 함께 동행할 수 있다는 것은 크나큰 혜택이 되는 것이다.

옥대진의 제안에 그녀들도 이구동성으로 찬성했다. 4봉은 말이 4봉이지 행동에 많은 제약이 따랐다. 모두들 명문가의 여식들인 만큼 수행원도 없이 외출할 생각 은 감히 할 수도 없을 정도였다. 그런 가운데, 이런 엄청난 사건을 직접 견식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어찌 찬성하지 않겠는가?

모두들 부탁을 하는데, 그것을 거절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기에 서량은 마지못해 대답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사양할 도리가 없군요.”

그 말에 옥대진과 두 미녀는 환호성을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천풍검 곡추가 요양하고 있는 장소에 남궁세가의 총관이 다급히 달려 들어왔다.

“총관 어르신, 어쩐 일이십니까?”

곡추의 물음에 총관은 다급히 말했다.

“아, 자네한테 물어볼 것이 있어서 들렀네.”

“예, 무슨 일이십니까?”

“자네와 싸웠다는 마인이 이자가 맞는가?”

총관이 건넨 종이에는 웬 인물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었다. 곡추는 초상화를 대충 훑어본 것만으로도 알 수 있었던지 곧장 대답했다.

“이자가 아닙니다.”

그 말에 총관은 기가 막힌다는 듯 대꾸했다.

“뭐라고? 좀 더 자세히 보라구. 그자가 바로 무영신마네. 마도10병 중의 하나인 천마구뢰의 주인이지. 자네는 그자가 사용한 암기가 천마구뢰일지도 모른다고 말 하지 않았나?”

하지만 곡추의 대답은 단호했다. 그 마인의 얼굴은 그의 뇌리에 생생하게 박혀 있었다. 그리고 초상화의 인물은 결코 그가 아니었다.

“물론 그렇게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합니다. 그자는 저와 싸웠던 마인이 아닙니다.”

“이런 제기랄. 그럼 어떻게 한다? 그렇지. 내가 화공을 보내 주겠네. 자네 수하들도 모두 불러들여서 초상화를 그려 보게. 그걸 무영문에 보내면 누군지 바로 알 수 있겠지.”

“예, 알겠습니다.”

당부를 끝낸 총관은 화공을 부르러 달려가며 투덜거렸다.

“빌어먹을. 모두들 무영신마를 잡기 위해 총력을 다하는 판국인데, 그가 아니라니……. 그럼 도대체 어떤 놈이야?”

“그런데, 너 혹시 약 먹었냐?”

아르티어스의 물음에 묵향은 짐짓 딴청을 부려 댔다.

“갑자기 그건 무슨 말씀이에요?”

“아니, 그렇지 않고서야 도저히 네가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잖아. 미쳤다고 보기에는 눈빛이 너무 생생하고…….”

“뭐가 이상하다는 거예요?”

“저 쓰레기들을 따라다닌 게 지금 며칠째냐?”

말로 만족하지 못하고, 아르티어스는 손짓으로 저 아래쪽 계곡을 가리켰다.

마사코는 아르티어스가 손짓한 방향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하지만 저 먼 지평선까지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도대체 뭘 가지고 저러는 거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묵향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대꾸했다.

“에이, 그거 때문이었어요? 그놈들이 좀 앞서 가고 있는 거지, 결코 따라가는 거 아니에요.”

“헷! 며칠째 계속 이 정도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데, 그게 우연이라고 우기는 거냐? 감히 나를 속이려고 들다니.”

아무리 해도 아르티어스를 속일 수 없다고 느낀 묵향은 오히려 될 대로 되라는 듯 배짱 있게 나갔다.

“좋아요, 따라가고 있어요. 됐어요?”

아르티어스는 묵향이 실토하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제야 실토하기 시작하는군. 그래, 왜 따라가는 거냐?”

“천지문은 본교와 아주 인연이 깊은 문파죠. 그들이 위험을 당하고 있는데, 그냥 놔둘 수는 없잖아요. 안전한 곳에 다다를 때까지 만이라도 뒤를 봐 주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 말에 아르티어스는 손가락질까지 하며 말했다. 그의 의문은 바로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거야.”

“뭐가요?”

“바로 그거라니까. 여태까지 네가 해 온 행동들을 생각해 봐라. 이게 비정상이라는 거야. 그딴 놈들 죽든지 살든지 그냥 내버려 두면 끝날 일인데, 왜 이렇게 신경 을 써 주는 거야?”

물론 그렇게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진팔이 놈은 딸의 사제였다. 그놈이 죽으면 딸아이가 아마도 슬퍼할 게 뻔했다. 묵향은 그것이 싫었던 것이다.

“에잇, 그만두자구요. 며칠 있으면 끝날 건데, 쓸데없이 아버지하고 싸우고 싶지 않아요. 그 얘기는 그만 두고, 식사나 하는 게 어때요?”

그 말에 단순하기 그지없는 아르티어스 어르신의 안색이 환해졌다. 이곳에서 먹은 음식이 꽤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저쪽에 있는 객잔이 괜찮을 듯하구나. 풍겨 나오는 냄새가 그럴듯하거든.”

아르티어스의 말에 마사코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객점은 일행들로부터 꽤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떻게 거기서 풍겨 나오는 냄새를 맡을 수 있단 말인가? 하긴, 가만히 생각해 보니 못할 것도 없지 않은가? 저건 사람이 아니라 황금빛 나는 괴물인데…….

아르티어스가 점소이에게 주문을 하고 있을 때, 옆 탁자에 앉아 있던 장한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은 술 몇 병을 시켜 놓고 담소를 나누고 있는 중이었다. “이보게, 봉황이 나타났다는 말 들었나?”

“아, 물론일세. 황금빛 찬란한 봉황이 나타났다고 하더군. 봉황이라면 상서로운 동물이 아닌가? 그걸 보면 이제 좀 살기가 좋아지려나……”

객잔에서 오가는 얘기를 흥미진진하게 듣고 있던 아르티어스가 묵향에게 물었다.

“도대체 봉황이라는 게 뭐냐?”

묵향은 시큰둥한 어조로 대답했다. 전설상의 영물 따위는 믿지도 않았기에.

“저도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는데요. 봉황이라는 새는 아주 좋은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상징하죠. 오색 무지갯빛을 띠고 있다고 들었는데…. 뭐, 전설에나 나오 는 소리들이니까 믿거나 말거나죠. 세상이 어수선할 때가 되면 꼭 어떤 놈이 봉황을 봤다느니, 뭐 그런 식으로 헛소문을 퍼뜨린단 말이에요.”

묵향의 얘기를 들은 장한이 벌떡 일어서서는 묵향이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그는 뭔가 모욕이라도 당한 듯 인상을 구기고 있었다. 그는 묵향 등이 앉아 있는 탁자 를 쾅 내리치며 으르렁거렸다.

“아니, 그럼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말이냐?”

“헛소문을 유포한다고 했을 뿐이오.”

장한은 커다랗게 콧김을 뿜어내더니 악을 써 댔다.

“헛소문? 이런 빌어먹을 놈을 봤나. 내가 직접 봤단 말이다. 나 말고도 수많은 사람이 봤다고 증언하는데, 감히 그것을 거짓말이라고?”

묵향도 장한에 못지않은 커다란 콧김을 거칠게 뿜어내며 말했다.

“흥. 그래, 그놈의 잘난 영물을 어디서 봤소?”

“태호(太湖) 근처에서 봤다. 저 멀리 황해 바다에서부터 날아왔으니, 그 인근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본 거지. 지금 소주나 항주 일대에는 봉황을 봤다는 사람이 부지기수야.”

“태호? 태호라고? 으하하핫!”

묵향은 배꼽이 빠져라 웃기 시작했다. 아르티어스가 날아가는 모습을 밑에서 보면 아마도 봉황으로 보이는 모양이었다. 황금빛 봉황으로…. 사실 봉황이라는 것을 본 사람이 없으니, 아무거나 거대한 게 날아가기만 한다면 봉황으로 생각하지 않을까? 어쨌건 그의 비행하는 모습을 봉황으로 착각했다는 것이 묵향으로서는 유쾌하기 그지없었다.

“이봐, 간만에 재미있는 얘기를 했으니 내 용서해 주마. 빨리 가서 술이나 마셔.”

으드득!

장한은 이빨을 갈더니, 곧장 주먹을 날려 왔다. 하지만 묵향은 가볍게 주먹을 낚아챘다. 손목을 쥔 손에 서서히 힘을 가하자 장한의 얼굴이 점점 더 붉게 달아올랐 다.

“이제 장난은 그만 치고 술이나 마시지?”

한순간 장한의 손목에 가해지던 힘이 사라졌다. 묵향이 풀어 줬기 때문이다. 장한은 떨리는 음성으로 다급히 말했다. 그의 얼굴에는 이미 짙은 공포가 어려 있었 다.

“하, 하늘을 몰라 뵙고 실례를 저질렀습니다. 이, 인정을 베풀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장한은 물러나자마자 일행과 함께 슬그머니 눈치를 보며 객점에서 도망쳐 버렸다. 괜히 무림인들을 건드렸다가 경을 칠 수 있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아르티어스는 묵향을 향해 장난기 어린 어조로 말했다.

“이런 너절한 놈들과 놀지 말고, 어서 봉황이나 잡으러 가자. 응? 영물이라고 하니까 뭔가 좋은 게 있을지도 모르잖아.”

그 말에 묵향의 표정은 묘하게 변했다. 묵향은 아르티어스를 향해 비비꼬인 어조로 질문을 던졌다.

“호오, 저보고 드·래·곤·슬·레·이·어가 되라는 말씀이세요?”

그 말에 아르티어스는 놀랍다는 듯 대꾸했다.

“뭐? 드, 드래곤? 설마, 여기도 내 동족이 살고 있단 말이냐?”

“아뇨, 저자들이 말하는 봉황을 잡는다면…, 어쩌면 저는 부친 살해의 죄를 저지른 패륜아가 될지도 모르는데요?”

묵향의 말에 아르티어스는 그제야 일이 어떻게 된 건지 깨달았다. 그놈의 봉황이라는 것이 자신을 뜻한다는 것을 말이다.

“제, 젠장.”

투덜거리는 아르티어스를 뒤로하고 묵향은 창밖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거리에는 어쩐 일인지 거지들이 떼거리로 이동하고 있었다. 물론 떼거리로 몰려다니는 것 이 이상한 건 아니다. 문제는 거지들의 눈빛이 하나같이 매우 맑고 깊다는 데 있었다. 무공을 익힌 자들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 개방의 거지들이다. “저…, 아버지.”

아르티어스는 점소이가 가지고 온 오리 다리를 신나게 뜯고 있다가 대꾸했다.

“왜 그러냐?”

“잠시 화장실 좀 갔다 올게요.”

그 말에 아르티어스는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빌어먹을! 그런 일은 그냥 슬그머니 갔다 와. 음식 맛 떨어지게 말하지 말고.”

묵향은 객점 밖으로 나서며 중얼거렸다.

“거지들을 족치는 것은 오랜만이군. 역시 정보 획득에는 개방의 떨거지들을 조지는 것이 최고지, 흐흐흐흐.”

묵향은 음흉스런 미소를 흘리며 어딘가로 바삐 걸어가는 개방도들을 따라갔다.

방금 전에 일어난 참상을 이야기해 주듯 현장은 비참하기 그지없었다. 세 명의 거지가 길게 뻗어 있었고, 나머지 거지들은 공포에 질린 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리고 몇몇은 오줌까지 지렸는지 아랫도리가 축축한 상태였다. 도대체 무슨 일을 당했길래?

“짜식들, 빨리빨리 털어놓을 일이지. 개기기는…….”

묵향은 손을 탈탈 털면서 이죽거렸다. 개방의 하급 요원들이라서 그런지 족쳐 봐야 아는 것도 별로 없었다. 역시 느긋하게 주리를 틀려면 분타주급은 되어야 제 맛 이 나는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주옥과도 같은 정보가 술술 튀어나오는 게, 고문하는 재미가 쏠쏠하다고나 해야 할까?

‘분타주를 찾아서 족쳐 볼까?”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것만으로도 꽤 쓸 만한 정보를 획득한 셈이다. 묵향은 객점으로 돌아가며 품속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방금 전에 개방도들에게 뺏은 것이다.

“사내답게 잘생겼군. 이놈 얼굴 보는 것도 오랜만인걸?”

장인걸을 제압한 후, 그의 수하였던 무영신마 장영길을 받아들일 때가 생각났다. “자네는 어찌할 생각인가?”하고 묵향이 질문을 던졌을 때, 장영길은 자신을 똑바 로 쳐다보며 분명한 어조로 대답했다. 그의 표정에는 결코 비굴함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장인걸 교주를 향한 의리는 충분히 지켰다고 생각합니다. 받아만 주신다면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대답이야 어떻든 간에, 묵향은 장영길의 사내다운 태도가 마음에 들어서 그의 목숨을 살려 줬다. 사실, 장인걸에게 충성을 맹세했던 고수들의 대부분이 그때 처형 당했었던 것을 생각하면, 그에 대한 사후 처우는 파격적이기까지 했었다. 왜냐하면 묵향은 그의 능력을 높이 사서 자성만마대를 맡겼기 때문이다.

“클클클, 아마 그때 무영신마 녀석, 속으로는 식은땀깨나 흘렸을 거야. 제법 마음에 드는 놈이라서 자성만마대를 맡긴 것이었는데, 그놈이 왜 무림에 튀어나온 거 지? 그것도 호위도 거의 없이.”

묵향이 객잔에 돌아왔을 때, 아르티어스는 아주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배를 쓰다듬고 있었다. 아르티어스는 이빨에 고기가 끼었는지 이쑤시개를 쑤셔 대며 말했 다.

“꺼억! 이쪽 음식은 정말 마음에 드는군.”

“정말이세요? 잘됐네요. 아무래도 이 근처에서 좀 더 돌아다녀야 될 것 같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