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17권 18화 – 교주가 돌아왔다!
교주가 돌아왔다!
“크, 큰일 났습니다.”
밖에서부터 소리치며 달려온 부하가 허겁지겁 실내로 들어서자, 천리독행 철영 부교주는 다급히 질문을 던졌다. “무슨 일인데 그러느냐? 관지 녀석이 무슨 일이라도 저질렀느나?”
“그, 그게 아니라 교, 교주께서 돌아왔습니다!”
그 말에 철영 부교주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사실이냐?”
“옛!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을 아뢰겠습니까? 교주를 알아보지 못한 경비 무사들이 경을 쳤다고 합니다.”
철영은 황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완전히 죽은 줄 알았는데, 어떻게 그가 살아서 돌아올 수 있다는 말인가?
“이럴 수가…, 분명히 그는 죽었다고 들었거늘.”
“혹시, 장인걸이 거짓 정보를 흘린 것이 아니겠습니까?”
철영은 수하에게 호통을 쳤다.
“본좌가 그것도 못 알아볼 줄 아느냐? 태상교주는 한사코 부인했지만, 장인걸이 보내온 것은 분명 교주의 애검이 틀림없었다. 본좌가 교주의 검도 못 알아볼 줄 알 았느냐?”
수하는 납작 엎드려서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요, 용서를……”
“검은 무인의 생명. 그것을 뺏긴 자가 아직도 살아 있다니..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구나.”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무인은 자신만의 애병(愛兵)을 생명과도 같이 아낀다. 왜냐하면, 세월이 지날수록 자신이 익힌 무공과 병기가 점차 조화를 이뤄 더욱 깊은 경지로 나아가게 되기 때문이다. 자신의 검이 부러졌다고 해서 도를 주워들었다면, 그가 자신이 지닌 실력을 완벽히 펼쳐 낼 수 있을까? 또, 3척 검을 쓰던 자가 2척 검을 제대로 다룰 수 있을까?
물론, 절대의 경지에 올라선 무인들에게 있어서 애병의 존재는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만큼의 경지를 개척할 때까지 자신과 함께 자라온 병기는 더 이 상 병기가 아니다. 생의 반려자로서 받아들여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 병기를 적이 가지고 왔다면, 응당 그 병기의 주인은 죽었다고 보는 것이 옳았다.
“교주에게로 가겠다. 준비를 갖춰라.”
“옛!”
묵향에게 반 강제로 끌려와 마교에 입교를 하게 된 비운의 사나이 초류빈. 그는 현재 팔자에도 없는 부교주 노릇을 하고 있었다. 묵향 실종 후에도 이렇다 할 직책 을 받지 못한 그는, 묵향이 내려 준 조언을 등대 삼아 끝없이 수련에만 매진했다. 그리고 그 결과 부교주라는 영광스러운(?)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젠장! 내가 마교의 부교주라니. 아마 돌아가신 아버지가 이 사실을 아신다면 무덤에서 벌떡 일어서실 거야.”
마교 내에 있는 거대한 소나무 숲. 이곳이 바로 초류빈의 수련장이었다. 그는 소나무 그늘에 앉아 식어 빠진 음식들을 우물거리면서 중얼거렸다. 혼잣말을 중얼거 리는 것은 그가 워낙 오랫동안 이 숲 속에서 혼자 생활하다 보니 붙은 자연스런 습관이었다. 이런 습관이라도 붙이지 않았다면 말하는 것조차 잊어버렸을지도 몰랐 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이 숲 속에 들어와서 홀로 무공수련을 하기 시작한 것이 벌써 3년째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고, 아무래도 뭔가 사기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한 번씩 든단 말이야. 솔잎을 헤아린다고 유언비어를 유포해서 주위 사람들을 안심시켜 놓은 후 뭔가 아 주 특별한 신공(神功)을 익혔음에 틀림없어. 그래, 어쩌면 교주만이 익힐 수 있다는 북명신공이나 천마신공, 혹은 뇌전신공을 숨어서 익히고 있었을 수도 있겠지.” 여기까지 중얼거리던 초류빈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중얼거렸다. 자신이 생각해도 조금 말이 안 된다고 느낀 것이다.
“쩝, 그건 아니겠지. 그 세 가지 무공은 교주만이 익힐 수 있는 건데 어떻게 그가 익힐 수 있었겠어? 아마도 그것보다는 정파에서 노획했던 무공들 중에서 가장 뛰 어난 것을 하나 우연히 발견해서 익혔을 가능성이 크지. 그런 다음 다른 사람들은 익히지 못하도록 파기해 증거를 인멸한 게 틀림없어. 그 인간의 치사함과 간악함 으로 미루어 봤을 때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거야.”
초류빈은 자신의 말이 틀림없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며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맞아. 그게 확실해. 그 치사한 녀석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놈이지.”
한참을 그렇게 투덜거리던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중얼거렸다.
“심마(心魔)야, 심마. 왜 이렇게 그에 대한 생각만 떠오르면 악담을 하게 되는지…. 이것도 문제라면 문제로군.”
초류빈은 벌떡 일어섰다.
“쓸데없이 주절거릴 시간이 어디 있어? 배를 채웠으니 다시 시작해 볼까?”
이때, 공기를 가르는 파공성을 울리며, 엄청난 속도로 접근해 오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도착하자마자 초류빈 앞에 부복하며 외쳤다.
“부교주님을 뵈옵니다.”
“무슨 일인데 그렇게 급히 오는 것이냐?”
“교주님께서 돌아오셨습니다.”
“뭣이?”
초류빈은 갑자기 머리가 띵해지며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그의 뇌리에는 과거의 그 지독한 기억들이 뒤죽박죽이 되어 교차하기 시작했다. 무공은 머리가 아닌 몸으로 먼저 깨달아야 한다는 묵향의 지론에 따라 그는 매일 묵향에게 죽지 않을 만큼 얻어터져야만 했다.
초류빈의 입장에서 그것은 무공수련이 아닌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의 시간이었다. 어쩌면 그때의 경험이 그를 화경으로 이끈 열쇠가 되었는지 모르지만, 초류빈에 게 있어서 그 지옥 같은 수련은 꿈에서조차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악몽일 뿐이었다.
“무, 무슨 헛소리냐? 그가 살아 있을 리가.
“어찌 감히 부교주님께 허언을 아뢰겠습니까? 지금 모든 장로들이 소집되었고, 본교의 주력 고수들이 대거 환영식을 위해 동원되고 있는 것을 속하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한 후에 달려오는 길입니다.”
수하의 말에 초류빈은 허탈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젠장, 이제 끝장이군.”
하지만 초류빈은 마음을 다잡으며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는 웅혼한 음성으로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을 설득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 맞아. 그가 옛날의 그가 아니듯, 나도 옛날의 내가 아니지. 그동안 나도 엄청난 수련에 수련을 거듭했어. 결코 옛날 같이는 되지 않을 거야.”
이리저리 서성이며 자신을 격려하던 초류빈. 하지만 잠시 후, 그는 인상을 찡그리며 수하에게 명령했다.
“아무래도 지금 인사를 가는 게 좋겠다. 초연대(楚戀隊)를 집합시켜라.”
“존명”
철영 부교주가 자신의 호위대를 이끌고 대 연무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그곳에는 수천 명에 달하는 마교의 정예 고수들이 교주의 귀환을 환영하기 위해 좌우편으 로 도열해 있었다.
으드득!
철영은 이빨을 갈지 않을 수 없었다. 관지 장로가 자신만 빼놓고 연락을 돌렸다는 사실을 눈치 챘기 때문이다.
서둘러 대 연무장에 도착한 철영이 주위를 둘러봤을 때, 초류빈 부교주의 모습 또한 보이지 않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철영이 의아해하고 있을 때, 관지가 그를 발견하고는 재빨리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천리독행 부교주님께서는 어쩐 일이십니까?”
“교주께서 돌아오셨다고 해서 나왔다네.”
“아, 예. 원래 환영식에는 부교주님들 이상의 원로고수 분들은 참석하지 않으셔도 될 것으로 판단했는데, 기왕에 오신 거 교주님을 만나 보고 가시지요.” 그 말에 철영의 인상은 일그러졌다. 오지 않아도 될 것을 온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물러가자니 모양새가 고약했다. 씁쓸한 입맛을 다시며 기다리고 있는 수밖에…….
좌우에 도열하고 있는 수천 명의 정예. 그들 하나하나가 엄청난 마기를 뿜고 있는 극강의 고수들이다. 그들을 보고 아르티어스의 두 눈은 휘둥그레졌다. 그가 살던 세계에서도 이 정도급의 고수들을 이렇게 많이 보유한 국가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우와, 이게 다 네 부하들이야? 정말 대단하구먼. 이 정도면 왕국을 세워도 되겠어.”
“촌스러운 말 그만 하시고 가만히 좀 계세요.”
묵향의 지적에 아르티어스는 그런대로 조용해졌지만, 그 뒤에서 얌전히 따라오고 있던 마사코의 안색은 점점 더 창백해지고 있었다. 이토록 괴이하면서도 강렬한 기운을 뿜어내는 자들의 사이를 걸어간다는 것이 보통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무런 무장도 하지 않은 묵향이 앞에서 걸어가고, 제일 뒤에 마사코가 주인의 검을 받쳐 들고 따라가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본 마교도들이 약간이기는 하지만 술 렁거리기 시작했다. 교주가 모습을 감춘 지 이미 23년. 단 한 번도 교주의 모습을 보지 못했던 자들도 많았기에 나타난 현상이었다.
그들은 문약한 서생처럼 생긴 새파란 젊은이의 모습을 보고 저자가 진짜 교주인지 강한 불신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장로들의 인사를 받으며, 묵향은 흡족한 듯 말했다.
“내가 없는 동안 그대들이 본교를 잘 관리했구나. 수고들 많았다.”
“감사합니다, 교주님.”
“그런데, 설무지는 어디 있느냐?”
그 말에 장로들의 옆쪽에 서 있던 늙은이가 대답했다. 그의 눈에는 물기가 어리고 있었다. 그가 바로 현재 마교의 군사로 있는 설무지의 아들 설민(雪旻)이었다. “아버님께서는 몇 달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교주님께서 돌아오시기를 그토록 학수고대하셨었는데…….”
그 말에 묵향의 안색은 급격하게 흐려졌다. 설무지의 소식을 들으니, 자신이 자리를 비운 시간이 더욱 길게 느껴졌던 것이다. 하지만 묵향은 정신을 다잡으며 중얼 거렸다.
“으음, 본좌도 그건 어쩔 수 없었구나.”
묵향은 군사 옆에 서 있는 관지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관지, 그의 장례는 잘 치러 줬겠지?”
잠시지만 묵향의 표정 변화에서 부하에 대한 사랑을 발견한 관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흐뭇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심려 놓으십시오. 군사의 예를 받들어 성대하게 치렀습니다.”
“오랜만에 자네들 얼굴을 보니 내 마음이 뿌듯하군. 자 들어가세.”
“옛.”
실내로 들어가려던 묵향이 뭔가를 발견했는지 환히 웃으며 입을 열었다.
“호~, 천랑대주, 그동안 극마를 깨달은 모양이군. 축하할 일이야.”
옆에서 관지가 조언했다.
“현재는 부교주가 되셨습니다. 현재 천랑대는 한중평 장로가 맡고 있습니다.”
원래가 장로의 임명은 교주의 고유 권한이다. 그렇다 보니, 교주가 실종된 상태에서는 장로들 간의 자리 이동이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 중에 한 명이 죽거나 승진 혹은 은퇴한다면 그 자리가 비게 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런 때는 새로운 장로를 한 명 뽑게 된다. 이때, 그 장로를 어디에다가 배치하느냐가 문제점으로 떠 오른다. 빈 자리에 바로 신참 장로를 집어넣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마교의 무력 단체는 그 지닌 바 능력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가장 강한 단체를 맡고 있던 장로가 빠진 자리를 신참 장로가 차지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장 로 개개인이 지닌 능력에 따라 대대적인 자리 이동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묵향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그렇게 되었나? 내가 없는 동안 자리 이동이 좀 있었겠군.”
“예, 태상교주님께서 인사이동을 하셨었습니다. 하지만 마음에 안 드신다면, 다시 바꾸셔도 됩니다. 장로들의 인사권은 교주님의 권한이시니까요.”
이때 저쪽에서 초류빈이 수하들을 이끌고 허겁지겁 나타났다. 그는 묵향을 확인한 후, 처음에는 인상이 확 찌그러드는 듯하더니 다음 순간에는 활짝 미소 짓고 있 었다. 초류빈은 묵향에게 포권하며 외쳤다.
“어서 돌아오십시오, 교주님! 귀환을 축하드립니다.”
“오오, 자네도 화경을 깨달았는가?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교주님.”
“그건 그렇고, 오늘은 이만하고 자네들과는 다음에 만나 담소를 나누는 것이 좋을 것 같군. 오늘은 장로들과 군사에게 본교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보고를 듣 는 게 순서인 것 같으니까 말일세.”
“예.”
자신의 처소에 돌아온 철영 부교주는 뿌드득 이빨을 갈며 투덜거렸다.
“젠장, 한눈에 내 경지를 알아보는 것을 보니, 교주의 실력이 전혀 녹슬지 않은 모양이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수하의 말에 철영은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쌓아 놓은 것이 너무나도 아까웠다. 몇 시진 전만 해도 교주의 자리는 바로 그의 코앞까지 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었다. 상대는 탈마의 고수. 도대체 몇십 년이나 더 기다려야 교주 자리가 자신에게 돌아올지 감도 안 잡혔다. 그때가 되면, 또 다른 극마의 고수들이 탄 생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또다시 그들과 다퉈야 하지 않겠는가.
“어쩔 수 없다. 기왕에 빼든 칼이다. 이제 와서 포기할 수는 없지.”
“결정은 빠를수록 좋을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교주의 자리는 탄탄해지지 않겠습니까? 고루혈마(枯血魔) 장로와 염왕적자(閻王笛子) 장로가 뒤를 밀 어 주고 있는 이때를 놓치시면 기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장로 서열 3위의 고루혈마 옥관패(玉冠覇)는 5백 명의 절정고수로 구성된 수라마참대(修羅魔斬隊)를 맡고 있었다. 그리고 장로 서열 4위의 염왕적자 한중평(重 平)은 1천 명의 절정고수로 이뤄진 천랑대(狼隊)를 맡고 있었다. 그들은 둘 다 매우 호전적인 인물들이다. 그렇기에 철영의 확장 노선을 적극 지지하고 있었다.
“좋다. 오늘 밤, 두 장로한테 이리 오라고 일러라.”
“옛.”
수하가 밖으로 사라지고 난 후, 철영은 자신의 검을 뽑아 들고 투명한 검신을 바라봤다. 섬뜩한 예기가 비춰지는 그의 검은 뛰어난 장인이 만든 마검(魔劍)이었다. 검의 검신은 그의 광폭한 마음을 반영하듯 검붉은 광택을 띠고 있었다. 철영은 검신을 바라보며 약해지려는 자신의 마음을 격려하고 있었다.
“암살당한 교주도 많았지. 자신감 넘치는 교주. 그는 옛날처럼 호위에 별 신경도 쓰지 않을 테니 바로 그 자신감을 역이용하는 거야. 그러면 나의 세상이 열리겠지. 피로 물든 마의 세상이 말이야. 크흐흐흐.”
살기 띤 어조로 중얼거리는 철영의 눈빛이 묘하게 번쩍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