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17권 22화 – 주화입마에 빠진 아르티어스
주화입마에 빠진 아르티어스
묵향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탁자 위에 올려져 있는 서류들을 대충 훑어보고 있었다. 누가 봐도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때 갑자기 문이 열리며 군사가 뛰어 들어왔다.
“큰일났습니다, 교주님.”
묵향은 짜증스런 어조로 외쳤다.
“뭐냐? 무슨 일인데 그러는 거야?”
군사는 다급한 어조로 보고했다.
“섬서성에 분타를 설립하던 중에 화산파와 충돌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군사는 이 보고를 하면 교주가 더욱 짜증을 내든지, 아니면 화를 낼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하지만 교주의 태도로 봤을 때, 오히려 그 사건을 반기는 듯하다는 것을 느끼고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오, 그러냐? 화산파라고 했어? 그래, 피해는 어느 정도나 되느냐?”
“20여 명이 사망하고 나머지는 부상을……. 거기에다가 화산파에 잡혀간 자도 50여 명에 이릅니다.”
그 말에 묵향은 다시금 시큰둥한 어조로 대꾸했다.
“에이, 뭐야. 그럼 전면전이 벌어진 것도 아니잖아.”
묵향이 이딴 서류들을 검토하고 있느니 아예 한판 붙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군사는 교주에게 안심하라는 듯 말했다.
“아, 예. 교주님이 걱정하실 만한 사태는 벌어지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현재 건설하던 것은 포기하고, 다른 장소를 물색해서 그곳에다가 섬서분타를 다 시 세워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교주님의 허락을 구하려고 찾아뵌 것입니다.”
“화산파와 가벼운 충돌 한 번 일으켰다고, 건설하던 분타를 포기한다니 말이 되는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섬서성에 교두보도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화산파와 다툼을 벌일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닙니까? 거기에다가 화산파의 뒤에는 무림맹이 있습 니다. 아직 중원 전역에 거점 확보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림맹과 충돌하는 것은 시기상조가 아닐는지요.”
가만히 듣고 보니 군사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그건 자네 말이 옳군.”
“예, 그리고 화산파에는 현천검제(玄天劍帝)라는 화경에 오른 무서운 고수가 있습니다. 그가 장문인이 된 후 화산파는 급성장하고 있습니다. 혹자들은 화산이 제2 의 전성기를 맞았다고 부러워할 정도니까 말입니다.”
군사는 자신이 행한 일에 더욱 설득력을 더하기 위해 꺼낸 말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묵향의 흥미를 끌었다. 묵향은 그 말을 아주 흥미롭게 들은 후, 호통을 쳤다.
“아니, 겨우 화경의 고수가 무서워서 일을 그렇게 처리한단 말인가?”
묵향이 갑자기 화를 내자 군사는 쥐꼬리만 한 목소리로 변명을 늘어놓았다.
“예? 그게… 화산파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있는 무림맹이 걸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묵향이 호기롭게 말했다.
“그건 말이 안 되지. 마도를 추구하는 우리가 뭐가 무서워서 움츠리고 있단 말이냐? 그 화경의 고수라는 놈은 내가 직접 처리해 주마.”
묵향이 화를 낸 것은 이 말을 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묵향에게 이번 사건은 마교를 빠져나가라는 하늘의 계시나 다름없이 느껴졌다. 그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군사의 입장에서는 조금 달랐다. 그런 일에 부교주를 보내는 것도 아니고, 교주께서 몸소 나서신다니, 당황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예? 하지만 교주님께서 직접 그러실 필요까지는…….”
“아, 괜찮아 괜찮아. 군사도 중원에 분타를 건설하느라고 바쁜데, 그런 작은 일 정도는 본좌가 처리해 줘야지. 그리고 가만히 들어 보니, 본좌가 그 일을 처리하는 것이 가장 좋겠구먼.”
묵향은 이놈의 따분한 일상사에서 탈출하고 싶어 그 일을 처리하겠다고 나선 것이었다.
하지만 군사는 묵향의 솔선수범에 감격하고 말았다. 하늘처럼 높으신 교주께서 이런 일을 친히 나서시겠다고 하니 감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군사는 얼마나 감격했는지 떨리는 어조로 말했다.
“그, 그렇게 하실 필요까지는……. 게다가 그를 죽인다면 무림맹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묵향은 퉁명스러운 어조로 대꾸했다.
“가만히 있지 않으면 어쩔 건데? 내가 마공을 써서 놈을 죽일 것 같아? 가만있자, 지금 무림맹주가 어느 파에서 나온 놈이라고 했지?”
“무당파입니다, 교주님.”
“좋아. 그럼 무당파가 자랑하는 태극혜검법(太極慧劍法)으로 두 조각을 내 버리면 되겠네. 본교에 태극혜검이 있는 것을 본좌가 기억하고 있으니까 말이야. 그런 다음 모든 죄를 홀딱 무당파에 뒤집어씌워 버리는 거야. 어때?”
묵향의 말에 군사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오오,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그리고 이 기회에 각 분타를 돌면서 본좌가 친히 그들의 노고를 치하해 주면 수하들의 사기도 높아질 테고, 그렇게 되면 공사 속도도 좀 더 빨라지지 않겠나?” “물론입니다, 교주님.”
“본좌가 없는 동안 밀무역에 관계된 일들은 마사코에게 물어봐. 참, 그러고 보니 절강성 해안에 건설하고 있는 비밀 분타도 한번 둘러봐야겠군. 앞으로 본교에 막 대한 수입을 제공해 줄 곳인데, 빠뜨리면 안 되겠지.”
“교, 교주님께서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아아, 괜찮아. 바야흐로 본교가 오랜 기다림을 끝내고 중원으로 진출하려는 이때에, 높은 자리에 있는 자가 솔선수범하는 자세를 보이는 것도 좋지 않겠나? 대신, 내가 없는 동안 군사가 모든 것을 잘 처리해 주리라 믿겠네.”
묵향의 믿음에 군사는 더욱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을 이렇게까지 믿어 주시다니……. 아마도 그런 믿음에 감격해서 아버지는 목숨이 다할 때까지 교주를 기다리며, 그 믿음에 보답하셨던 모양이라고 군사는 확신했다.
“교주님, 속하는 결코 교주님께서 보여 주신 믿음에 어긋나지 않도록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여태까지 그랬듯이 모든 일은 군사에게 떠넘기고 도망칠 궁리에 여념이 없었던 묵향은 군사가 감정에 북받친 목소리로 충성을 맹세하자, 아무래도 양심에 찔리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그가 계획하고 있는 것은 솔선수범하고 거리가 멀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오히려 묵향은 무뚝뚝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뭘 그런 거 가지고 감격하고 그러나, 윗사람으로서 부하를 믿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느냐.”
하지만 속으로는 강호로 나갈 생각에 부풀어 있었다.
“아버지하고 함께 가자고 해야겠군. 아버지도 아주 좋아할 거야.’
묵향은 아르티어스가 기거하는 곳으로 갔다. 하지만 그는 그곳에 없었다.
“아버지는 어디에 가셨느냐?”
교주의 물음에 시비는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며 공손히 대답했다.
“예, 나으리께서는 무공을 수련할 장소가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냉비화녀 부대주님께 연락을 드렸습니다. 부대주님께서는 나으리의 설명을 들으신 다음 연공실 하나를 비워 드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마화를 불러와라.”
“예.”
시녀가 물러간 후, 마화가 허겁지겁 달려왔다. 마화는 예를 올린 후, 질문을 던졌다.
“교주님, 무슨 일로 찾으셨어요?”
“아버지는 어디로 가셨지?”
“예, 오늘 저에게 무공수련을 할 넓고 조용한 장소를 마련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교주님 전용의 연공실을 쓰시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했죠. 교주님께서 는 지금껏 연공실을 한 번도 이용하지 않으셨으니까요. 수석장로님께서도 흔쾌히 허락을 하셨기에 그곳으로 안내해 드렸습니다.”
“젠장, 또 무슨 엉뚱한 짓을 벌이려고 하는 거지?”
교주 전용의 연공실은 천마대전 지하에 있었다. 연공실에서 수련을 할 때가 가장 취약할 때이므로, 이곳의 경비는 특별히 삼엄했다. 마교 내 고수들 중에서도 그 지닌 바 실력에 있어서 정점을 달리는 호법원의 고수들이 연공실의 경비를 담당했다.
평상시에도 그렇지만, 교주가 연공실에 들게 되면 경비의 규모는 더욱 강력해진다. 호법원에서 파견되는 고수의 수가 세 배 이상 늘어날뿐더러, 그 질에 있어서도 가장 뛰어난 고수들이 파견된다.
묵향은 천마대전 지하로 들어가는 어두운 통로를 따라 걸어 들어갔다. 통로 곳곳에는 기관 장치들이 설치되어 있을 뿐 아니라, 호법원의 고수들도 숨어 있었다. 이윽고 묵향의 앞을 가로막는 거대한 강철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묵향이 문을 열려고 했지만 안에서 잠겨 있는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쾅! 쾅!
문을 두드리자 뭔가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잠시 들리더니 문이 열렸다.
“무슨 일이냐?”
문 사이로 빼꼼히 얼굴만 드러내고 있는 아르티어스를 향해 묵향은 짜증스러운 어조로 질책했다.
“여기서 뭐 하시는 거예요?”
“무공수련한다, 왜?”
“그러지 말고 같이 유람이나 가시죠. 퀴퀴한 냄새나는 지하에서 빈둥거리는 것보다는 그게 훨씬 낫지 않겠어요?”
그 말에 아르티어스는 버럭 신경질을 냈다.
“뭣이! 빈둥거린다고? 유람은 혼자 다녀와라. 나는 지금 바쁘니까 말이다.”
그런 다음 아르티어스는 철문을 닫아 버렸다. 한참 동안 철문을 노려보며 기가 막혀서 서 있던 묵향은 이윽고 포기하고 지하 통로를 올라가며 중얼거렸다. “젠장, 기껏 생각해 주니까. 어쩔 수 없지. 심심한데 초류빈이나 끌고 갈까?”
엄청난 속도로 경공술을 전개하며 달려온 무사는, 소나무 숲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납죽 엎드리며 우렁차게 외쳤다.
“부교주님을 뵙습니다.”
잠시 후 퉁명스런 목소리가 무사의 앞에서 들려왔다.
“무슨 일이냐?”
“교주님께서 뵙자고 청하셨습니다.”
그 한마디에 초류빈은 모골이 송연해짐을 느끼며 재빨리 물었다.
“교주가? 무슨 일이냐?”
“예, 화산파의 일도 처리할 겸 함께 강호에 나가시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전갈이 계셨습니다.”
그 말에 초류빈의 안색이 의아하게 바뀌었다.
“화산파의 일? 그게 무슨 말이냐?”
무사는 고개를 숙인 채, 화산파와 있었던 일을 상세히 아뢰었다. 그 말을 듣는 초류빈의 안색은 점점 찌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교주가 지금 화산파를 박살내러 가는 모양이군. 그런 데는 혼자 가지, 왜 나를 끌고 가려는 거지?”
순간 초류빈의 뇌리에 묵향과 함께 화산파의 문도들을 도륙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래도 거기까지는 참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살육을 피해 도망치던 화산파의 제자 중 하나가 자신을 몰래 훔쳐보며 말한다.
“저놈은 초씨세가의 초류빈이 아닌가? 저놈이 마교와 결탁했었다니! 이 사실을 빨리 무림맹에 알려야겠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초류빈의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 물론 오랜 세월이 흘렀기에 자신을 알아볼 사람이 아무도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약간 이라도 있다면,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복면을 쓴다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해봤지만, 만약 자신이 쓰는 도법을 알아보는 놈이 있을 수도 있었다.
‘저 마두가 쓰는 무공은 분명히 초씨세가의 것이야. 초씨세가가 마교와 결탁했다는 말인가?”
이런 식으로 전개될 가능성도 있었다. 화산의 장문인은 화경의 고수. 거의 자신과 동급일 것이 분명했다. 묵향이 그를 처치해 준다면 문제될 것이 없겠지만, 그는 그런 귀찮은 일은 자신에게 시킬 것이 뻔했다. 그와 맞서 싸운다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밑천을 다 꺼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초류빈이 지닌 무공의 원천이 초씨세가의 도법임을 몰라볼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런 젠장! 빠져나갈 길이 없다는 말인가?”
“예? 무슨 말씀이시온지…….”
어리둥절해하는 무사의 대답에 초류빈은 아차 했다. 그는 짐짓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말했다.
“교, 교주님께는 내가 몸이 안 좋아서 따라갈 수 없으니 그리 아시라고 전해 드리거라. 노부 대신 철영 부교주가 있지 않느냐? 그와 함께 가시라고 하면 되겠군.” “저… 천리독행 부교주님께서는 지금 중상을 당하셔서, 함께 가실 수가 없는 처지입니다.”
그 말을 들은 초류빈은 갑자기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혹시 천리독행이 동행하기 싫다고 했다가 그 꼴이 된 것은 아닐까?
“중상을 당했다고? 그게 무슨 말이냐? 혹시 교주가 그를……?”
“그게 아니옵니다.”
무사는 마교의 중심부에서 벌어졌던 일을 상세히 아뢰었다. 그 말을 들은 초류빈의 안색은 더욱 찌그러들었다. 교주도 괴물임에 틀림없지만, 그 교주의 아버지라 는 작자도 그에 못지않은 게 틀림없었다. 극마의 고수를 그토록 박살을 내 놓다니 말이다.
“그래, 철영 부교주는 지금 어떻게 되었느냐? 생명에는 지장이 없느냐?”
“예, 의원의 말로는 초기 치료가 잘되었기에 두어 달 몸조리 잘하시면 쾌차하실 거라고 하셨습니다.”
무사의 보고를 받고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던 초류빈은 갑자기 무사를 향해 기습을 가했다. 엎드린 상태에서 당한 갑작스런 공격이었기에, 무사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혈도를 제압당한 채 눈만 되록거리고 있는 무사를 향해 초류빈은 씁쓸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미안하지만 어쩔 수가 없구나.”
초류빈은 축 늘어져 있는 무사를 어깨에 걸머지고 어디론가 모습을 감춰 버렸다.
교주와 함께 강호에 나가 자신이 마교도가 된 것을 광고하고 싶지 않았던 초류빈은 도주를 결심했다. 물론, 평생 도망다니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교주는 아마도 몇 번 자신을 찾다가 열 받으면 혼자 강호로 나갈 것이 분명했다. 그때까지만 숨바꼭질을 하면 되는 것이다.
묵향이 아르티어스를 제외한 상태에서 유람을 떠날 결심을 하고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아르티어스는 신이 나 있었다. 그의 곁에는 마존무고에서 고르고 골라 가져 온 엽기적인 무공비급들이 무려 여덟 권이나 쌓여 있었다.
“역시 처음은 흡성대법부터 시작하는 게 좋겠지. 으흐흐흐.”
철영의 기억을 흡수한 것이 과연 큰 효과가 있었는지, 아르티어스는 비급에 기록된 내용을 곧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이렇게 쉬운 걸 가지고 그렇게 헤매고 있었다니……. 자, 어디 시작해 보실까? 흐흐흐.”
아르티어스는 몸속의 마나를 끌어올렸다. 물론, 호비트의 경우 단전에서 마나를 빼내야 하겠지만, 드래곤은 목에 있는 드래곤 하트에서 꺼내야 한다. 하지만 그 정 도 융통성도 없는 아르티어스 어르신은 아니었다.
그런데 사고는 흡성대법의 구결에 따라 마나를 온몸의 혈도를 따라 움직인 직후에 벌어졌다.
물론 처음부터 조심스럽게 마나를 약간씩 흘려보내 괜찮으면 조금씩 그 양을 증대시키는 신중함만 보였더라도 이런 사태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르 티어스는 급한 마음에 구결대로 대량의 마나를 한꺼번에 밀어 넣었다. 뭔가 잘못된 것을 느꼈을 때는 이미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후였다.
갑자기 온몸이 산산조각 날 것 같은 극심한 고통이 느껴지자 아르티어스는 기절할 지경이었다.
“끄어어억!?”
갑자기 왜 이런 고통이 찾아온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 본 그의 뇌리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마공을 익히던 철영이 가장 무서워했던 것.
“으윽! 이 이것이 설마 주, 주화입마?”
아르티어스는 흡성대법을 익힐 수 있다는 기쁨에 미처 생각하지 못했지만, 아무리 드래곤이 사람으로 변신했다 하더라도 그 내부까지 변화하는 것은 아니었다. 사 람에게 단전이 있다면 드래곤에게는 드래곤 하트가 있다. 기를 저장하는 위치가 다른 만큼, 그 기가 움직이는 통로인 혈도 또한 위치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원 초적인 부분도 생각하지 않은 채 무리하게 기를 일주천시켰으니 당연히 주화입마에 빠지게 된 것이다.
아르티어스는 사력을 다해 정신을 집중했다. 온몸이 산산조각 날 것 같은 고통 속에서도 정신을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인간보다는 훨씬 차원이 높은 정신 체계를 지닌 드래곤이었기 때문이다.
아르티어스의 손에 희뿌연 빛이 감도는 순간, 고통은 서서히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이어 그 고통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대신, 아르티어스는 후들거리 는 다리를 간신히 유지하며 일어섰다.
“제, 젠장, 죽을 뻔했네.”
몸속에 들끓던 마나를 완전히 소멸시켜 위기를 모면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아직 드래곤 하트에 남아 있는 마나가 약간은 있었기에, 그 는 천천히 연공실의 중앙으로 걸어갔다. 한 걸음 한 걸음 옮겨 놓기가 보통 힘든 것이 아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연공실의 중앙까지 온 아르티어스는 본체로 현신했다. 그러자 연공실 안은 거대한 골드 드래곤에 의해 꽉 채워졌다. 아르티어스는 한껏 고개를 틀어 한쪽으로 돌 돌 말고, 또 꼬리도 그런 식으로 처리해서 간신히 자리를 잡았다.
교주 전용의 연공실은 파괴적이기 그지없는 마공을 연성하는 장소인 만큼, 대단히 튼튼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그렇기에 골드 드래곤이 약간 비벼 댄다고 해서 무 너질 염려는 없었다.
“제, 제기랄. 일단 한숨 자면서 마나를 보충한 다음에 생각하자.”
거대한 골드 드래곤은 천천히, 하지만 끊임없이 대지로부터 마나를 흡수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