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18권 6화 – 무림맹? 까불어 봤자야
무림맹? 까불어 봤자야
“이상하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요?”
보고서를 보던 부문주 매영인의 질문에 대외 정보를 담당하고 있는 상관운(上官雲) 장로는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개방에 침투해 있는 첩자들의 보고가 한결같은 점으로 미루어,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매영인은 상관운 장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상관운 장로께서는 개방의 속셈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무래도 무림맹 내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좀 더 강화하고자 하는 속셈이 아닐까요? 사실, 태상문주께서 무림맹의 봉공이 되신 후부터, 거의 모든 중요한 정보 는 무영문에서 처리해 오고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본문의 영향력이 커진 만큼 무림맹 내에서 개방의 세력은 급속도로 약화되고 말았지요. 그들로서는 뭔가 역전할 수 있는 기회를 노리는 것이 당연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렇기에 지금까지도 개방의 첩자들이 계속해서 은밀하게 본문 주위를 맴돌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상관운장로의 말이 일리가 있다는 듯 부문주 매영인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지만 그냥 납득하고 넘겨 버리기엔 사안이 너무 컸다.
“그건 그래요. 하지만 개방이 이렇듯 본문의 비리를 파헤치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 온 적은 지금까지 없었지요. 아무래도 이건 어머님께 보고를 드리는 것이 좋겠 군요.”
“문주님께서는 지금 사천분타에 계시지 않습니까? 그러지 마시고 태상문주님과 상의하시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상관운장로의 말에 매영인은 그럴 필요가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할머니께서는 여러 가지 일로 바쁘시잖아요. 이런 쓸데없는 일을 가지고 상의할 필요는 없을 듯한데…….”
이때,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상관운 장로는 회의를 하다 방해를 받자 살짝 눈살을 찡그리면서도 문 쪽을 향해 입을 열었다.
“들어오너라.”
안으로 들어온 문사 차림의 사내는 매영인과 상관운 장로에게 공손히 인사한 후, 몇 장의 문서를 건네준 다음 물러갔다. 문서로 눈길을 돌리던 상관운 장로의 눈이 일순 부릅떠졌다. 그는 지체 없이 문서를 매영인에게 건네며 말했다.
“문주님께서 보내신 겁니다.”
“어머님께서?”
문서의 맨 앞장에는 문주의 인장이 찍혀 있었다. 매영인은 서둘러 문서 내용을 살펴보았다. 맨 앞장을 넘기자 문주로부터 온 서신의 암호 해독문이 기록되어 있었 다. 특급 기밀문서의 경우 문주 이상만이 봐야 하기에 암호문인 채로 전달되어 오지만, 1급 이하의 기밀문서인 경우 이렇듯 해독되어 전해지는 것이다.
「1급 기밀
지옥혈귀 천진악이 직접 지휘하는 염왕대 5개 대 출동. 현재 그들의 출동 목적은 파악 불가능함. 그들은 대파산맥(大巴山脈)을 따라 이동 중. 그들이 보유한 전력 으로 추정하건대, 어쩌면 무림맹과 전면전을 시작하려는 것인지도 모르겠음. 이 사안에 대해 태상문주께 즉시 보고한 후 대책을 논의할 것.」
“할머니께서는 어디에 계시죠?”
“태상문주님께서는 지금 임청 원수를 만나기 위해 출타 중이십니다.”
매영인의 얼굴에 다급한 기색이 어렸다. 무림을 뒤흔들 수 있는 엄청난 일이 벌어질 것 같다는 냄새를 맡은 것이다.
“그렇다면 최대한 빨리 할머니께 기별을 넣으세요. 염왕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말이에요.”
“예, 부문주님. 그리고 제 생각으로는 최근 개방의 움직임에 대한 것도 알리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지금까지 수집된 정보만으로도 개방이 본문에 대해 적의를 드 러냈다는 게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알리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좋아요, 그렇게 하죠. 지금 당장 지급으로 할머니께 연락을 넣도록 하세요.” “옛, 부문주님.”
이곳은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은 대파산맥의 깊은 밀림 속. 아무리 달빛이 환한 밤이라고는 하지만 우람한 나무들에 가려 빛 한 점 새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 대파산맥의 밀림 속을 이동하는 수백 명의 인영이 있었다. 극도로 무공을 익힌 무인이라도 이렇게 코앞도 안 보일 정도로 짙은 어둠 속에 싸인 밀림을 통과하 려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나무 아래가 아닌 환한 나무 위를 초상비(草上飛)의 신법을 이용하여 이동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가장 앞에서 달려가던 인영 중 한 명이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그는 순간적으로 천근추의 신법을 응용, 밀림 아래쪽으로 떨어져 내린 것이다. 너무나도 순
식간에 벌어진 일이었기에 그 앞에서 자세히 보지 않았다면 그가 사라졌다는 사실조차 눈치 챌 수 없을 정도였다. 그것도 뒤따라가는 것만 해도 버거울 만큼 빠른 속도로 이동하던 무리였으니 더 말할 나위도 없었다.
그들이 통과하고 난 후, 1각 정도가 흐르자 두 명의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저 멀리 달빛 아래로 보이는 무인들의 뒤를 쫓고 있었다. 두 사람의 얼굴이 심 하게 일그러져 있는 것으로 보아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만큼 그들이 추격하는 무리의 경공술은 가공할 만큼 빨랐던 것이다.
그때, 갑자기 그들 뒤에서 한 인영이 불쑥 튀어나왔다. 아까 밀림 속으로 소리 없이 사라진 바로 그자였다. 그는 튀어나오기 무섭게 엄청난 속도로 가속하여 달려 가기 시작하며, 두 사람을 향해 품속에서 비도(飛刀) 두 자루를 꺼내 던지며 중얼거렸다.
“감히 염왕대를 추격할 생각을 하다니, 간덩이가 부은 놈들이군.”
그가 던진 비도들은 맹렬한 파공음을 흘리며 달빛을 뚫고 날아갔다.
“헉, 매복!?”
뒤에서 파공음이 들려오자, 추격하던 자들은 찰나의 순간에 자신들의 행동을 선택해야만 했다. 생사를 가르는 그 순간, 둘의 행동은 완전히 달랐다. 한 명은 본능 적으로 옆으로 방향을 꺾었다. 일직선으로 날아오는 암기라면 피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또 다른 한 명은 천근추의 신법을 이용하여 곧장 밀림 아래로 푹 꺼 져 버렸다.
순간의 선택이 목숨을 좌우하는 법이다. 황급히 옆으로 몸을 틀어 달려간 자는 유연한 곡선을 그리며 뒤따라 날아온 비도에 등판을 꿰뚫리고 말았다. “컥!”
처절한 비명이 고요한 대파산맥의 밀림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밀림 속으로 꺼지듯 몸을 피한 자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비도가 그의 몸 대신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갔던 것이다. 스치듯 지나간 암기는 밤하늘을 크게 한 바퀴 돈 다음 주인에게로 돌아갔다.
비도를 잡아채며 추격자가 사라진 지점에 도착한 인영은 분하다는 듯 짙은 어둠에 휩싸여 있는 밀림 속을 노려봤다. 그는 바로 염왕대의 책임자인 지옥혈귀 천진 악 장로였다.
“젠장, 이래서야 아무리 나라도 저놈을 잡을 방법이 없군. 뭐, 좋아. 또다시 쫓아온다면 그때는 반드시 목을 따줄 테다.”
말을 마친 그의 몸이 엄청난 속도로 수하들이 달려간 방향으로 사라져 버렸다.
임청 원수는 탐탁지 않은 시선으로 화사하게 미소를 짓고 있는 여인을 바라봤다. 부채로 살짝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그녀가 상당한 미모를 지니고 있음은 확연 히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은 이 여인이 자신을 만나고 싶다고 한 이유였다.
임청원수는 슬쩍 그녀가 데리고 온 시종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시종들은 정자 저 아래쪽에서 자신의 호위병들과 함께 서 있었다. 수는 몇 되지 않았으나 형형 한 눈빛을 뿜어내는 것이 모두들 뛰어난 고수인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이 여인은 무림인이라는 말인가? 그런데 왜 무림에 적을 두고 있는 여인이 자신을 만나자 고 했을까? 그것도 황상 폐하께서 총애하는 내시 동관을 통해서 말이다.
“노부를 청한 이유를 듣고 싶소이다.”
여인은 살포시 미소 지은 후, 옥이 굴러가는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선 제 소개부터 드리는 것이 좋겠군요. 원수께 철없는 어린 계집이 쓸데없는 소리를 늘어놓는다는 오해를 사기는 싫으니까요. 저는 무영문이라는 단체를 이끄 는 매향옥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말해도 상대가 잘 모르는 듯하자 옥화무제는 덧붙여 말했다.
“혹여 무림맹이라는 단체는 아십니까?”
이번에는 반응이 있었다.
“노부가 무림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나 무림맹이라는 단체가 있다는 말은 들어 본 것 같소이다.”
“외람되긴 하지만 무림맹에서 봉공이라는 직분을 맡고 있다고 하시면 아시겠습니까?”
아무리 무림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임청 원수였지만, 무림맹이라는 단체는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무림에서 가장 강력한 정파 세력이니 말이다. 군부에서도 9파1 방의 속가제자 출신인 무장들이 꽤 있었기에 그 정도는 아는 것이다. 그런데 그곳에서 봉공(捧公)이라는 직분이라니……. 보통 봉공이라 하면 원로들 중에서도 가 장 뛰어난 자들, 혹은 가장 존경받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칭호였다.
젊은 미녀가 봉공이라 칭하자 임청 원수는 당연히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의심을 하기에는 동관이 자신 있게 소개한 것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잠시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임청 원수의 뇌리 속에 뭔가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무림을 활보하는 여자들 중에 자신의 노화를 숨기기 위해서 주안술을 익히는 고수도 있다는 말을 떠올린 것이다. 그렇다면 저 미녀가 사실은 뭔가 요망한 술법을 부린 할망구라는 말인가?
그때는 그냥 흥밋거리로 들었는데, 진짜 그런 당사자를 만나게 될 줄이야. 황급히 자세를 바로 한 임청 원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허어, 노부가 몰라 뵙고 큰 실례를 저지를 뻔하였소이다. 매향옥 봉공이셨구려. 그런데 노부를 이곳으로 청한 이유가 무엇인지?”
“예, 제가 속한 단체는 정보력에 있어서는 무림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예로 일주일 전에 일어났던 요와 금의 전쟁을 들 수 있겠군요.”
옥화무제는 요와 금의 제2차 전쟁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물론 군부의 수장인 임청 원수도 첩자들의 보고를 통해 비교적 소상하게 그 경과를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자세함에 있어서 무영문을 따라올 수 있을까? 옥화무제가 이것을 상대에게 말하는 것은 무영문의 힘을 슬쩍 보여 주려는 의도가 있었기 때
문이다.
물론 그 효과는 있었다. 임청 원수가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의 입가에 감돌던 미소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물론 평범한 사람이 보기엔 표정의 변 화가 거의 없다고 느낄 정도의 미미한 변화였지만 노회한 옥화무제의 눈을 속이기는 어려웠다.
군부의 책임자보다 더 많은, 그리고 더욱 깊이 있는 정보를 일개 무림인이 알고 있으니 임청 원수가 느끼는 당혹감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랜 경륜을 지닌 무장답게 임청 원수는 곧 평정심을 회복했는지 다시금 옅은 미소를 지으며 별일 아니라는 듯 질문을 던졌다.
“호오, 정말 놀랍소이다. 그런데 귀하가 세외의 정세에 그토록 관심을 보이는 이유가 뭔지 묻고 싶소이다.”
“제가 무림에 몸담고는 있으나 오랑캐에게 중원이 짓밟히는 것을 그냥 지켜볼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미흡한 본문의 힘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하여 찾아뵌 것 입니다.”
“이토록 황실을 생각해 주시니 고마울 따름이오.”
고개를 주억거리는 임청 원수의 표정에서 옥화무제는 서서히 본론을 꺼낼 시기가 됐음을 느꼈다.
“지금 요의 조정은 금을 정벌할 대규모 원정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입수한 정보로는 최소한 60만은 넘을 것이 확실하다고 하더군요.”
최소 60만의 병력이라는 말에 임청 원수의 눈썹이 꿈틀했다. 만일 그녀의 정보가 사실이라면 송과의 국경선에 배치되어 있는 방어선은 대단히 약화될 것이 분명 했다. 그렇다면 대규모 원정군이 빠져나갔을 때가 요를 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 말에 책임을 지실 수 있겠소이까?”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을 아뢰겠습니까? 그리고 무림맹은 지금껏 나라에 큰일이 닥쳤을 때 최선을 다해 돕지 않았습니까? 저의 말을 믿으시는 것이 좋으실 것입 니다.”
자신만만한 옥화무제의 말에 임청 원수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임청 원수는 옛 송의 영토를 요로부터 탈환할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어 올랐다.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본 것이다.
옥화무제는 내심 자신의 계책대로 일이 잘 풀리자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원수께서는 조심하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잠시 이것을 보시겠습니까?”
옥화무제가 품속에서 꺼낸 것은 두툼한 종이 뭉치였다. 임청 원수는 그것을 받아 들며 궁금하다는 듯 질문을 던졌다.
“이것이 무엇이오?”
“요에서 본국에 침투시켜 놓은 첩자들의 명단입니다.”
“뭣이?”
임청 원수는 격동으로 인해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재빨리 서류를 읽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잘 모르는 이름들이었으나, 일부 눈에 띄는 이름도 간혹 보였다. “이, 이것을 어떻게 입수했소?”
“오래전부터 본문에서는 그들의 행적을 조사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이들 외에도 더 있을지도 모르니 조심하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내 이것들을 당장!”
옥화무제는 노화를 터뜨리며 벌떡 일어서는 임청 원수를 제지하며 말했다.
“고정하십시오, 원수. 지금 그들을 해치면 안 됩니다.”
그게 무슨 뜻이냐는 듯 자신을 바라보는 임청 원수에게 옥화무제는 살짝 미소를 지어 보인 후 말을 이었다.
“타초경사(打草驚蛇)라 했습니다. 힘들여 구축해 놓은 첩자망이 한순간에 괴멸당한다면 요 황제가 본국의 의도를 의심할 것이 뻔하지 않겠습니까? 그들을 척살하 는 시기는 요를 응징하기 직전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첩자들이 누군지 아니 원수께서 그들의 눈을 피해 작전을 수립하시기도 쉽고, 그들에게 슬쩍 역정보까지 흘릴 수도 있으니 금상첨화가 아니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노련한 장수답게 임청 원수는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즉각 이해했다. 첩자를 죽이지 말고 거짓 정보를 흘리는 데 이용하라는 말이 아닌가? 임청 원수는 감탄 스럽다는 듯 중얼거렸다.
“허어, 오늘 노부가 크게 개안(開眼)한 듯하오. 무림에 이토록 지략이 뛰어난 여걸이 있을 줄이야. 그대의 충정 어린 말은 감사하게 받아들이도록 하겠소이다.” 설혹 그것이 빈말일지라도 임청 원수를 움직이려는 옥화무제의 입장에서는 그게 아니었다. 임청 원수에게 잘 보여 놔야 대송 군부를 손쉽게 통제해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상대는 약간의 정보만 줘도 알아서 모든 것을 처리해 나갈 정도로 뛰어난 무장이었다. 물론 그 정보가 어떤 것일지는 옥화무제가 선택하면 되는 것이 다. 그렇기에 역으로 말하면 그 약간의 정보로도 대송의 군부를 마음대로 움직이게 만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옥화무제는 황망히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원수께서 저의 말을 좋게 받아주시니 감읍할 따름입니다. 혹 미천한 계집이 원수께 쓸데없는 말을 한다 하여 질책을 받을까 심히 두려웠는데, 이렇게 흔쾌히 믿 어 주시니 기쁘기 한량없습니다.”
“허허헛, 노부에게 이토록 귀중한 정보를 제공해 주었는데, 어떻게 그대를 질책할 수 있다는 말이오. 너무나도 감사할 따름이오.”
그 후로도 한참 동안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눈 후 옥화무제는 자리를 떠났다. 몇몇 호위를 이끌고 점차 멀어져 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아쉬운 듯 바라보던 임청 원 수는 뒤에 시립하고 있던 부관에게 지시했다.
“무림맹의 봉공들 중에서 무영문을 이끄는 매향옥이라는 여인에 대해 철저히 조사해 보도록 하라.”
“옛 원수.”
“그리고 내일 정군관에서 회의를 열 테니 모든 장군에게 기별을 넣도록 하거라.”
“옛, 명을 따르겠나이다.”
부관이 재빨리 말을 타고 사라지는 것을 보며 임청 원수는 미소를 지었다. 만약 매향옥이라는 여인이 건네주는 정보들이 모두 사실이라면 중원을 더럽히고 있는 오랑캐들을 몰아낼 수 있을 게 분명했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패라고 하지 않았던가. 게다가 요의 첩자 명단까지 쥐고 있으니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는 것 이다.
“으하하핫!”
정말이지 오랜만에 통쾌하게 웃어 보는 임청 원수였다.
옥화무제는 무영문에 돌아오는 즉시 부문주의 집무실로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어서 오십시오, 할머니, 가셨던 일은 잘되셨습니까?”
“오냐, 그건 그렇고 드디어 마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예, 염왕대 5개 대의 움직임이 포착되었습니다.”
“그래, 놈들의 위치는?”
“대파산맥을 따라 이동 중이라고 합니다. 어머님께서는 그들의 출동을 포착하는 즉시 비영단(秘影團) 소속 321조와 425조를 추가로 투입하여 그들을 추적하기 시작하셨습니다. 하지만 어제 들어온 서신에 따르면 그들의 종적을 놓쳤다고 하셨습니다.”
“거기가 어디냐?”
매영인은 중원 천지가 자세히 기록된 커다란 지도에서 한 지점을 짚으며 말했다.
“예, 바로 이곳입니다.”
옥화무제는 매영인이 가리킨 지점에서 약간 밑쪽인 삼협 부근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대로 대파산맥을 타고 내려온다면 삼협三峽) 인근에서 도하할 가능성이 크겠구나.”
“예, 그래서 어머님께서는 삼협과 무산(巫山) 일대에 13개 정찰대를 포진시키실 거라고 하셨습니다.”
“흠, 그런다고 그들의 꼬리를 잡을 수 있을까? 자성만마대나 흑풍대라면 몰라도 염왕대를 추적하기는 쉽지 않을 텐데.”
매영인은 옥화무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쉽지 않을 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비영단 소속 무사들이 그토록 빨리 발각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더 군다나 괜히 정보를 수집한다고 계속 무사를 파견하다가 마교의 심사를 건드릴 위험성도 있었다.
“무림맹에 연락을 넣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할머니?”
매영인의 말에 옥화무제는 고개를 가만히 흔들었다.
“흠, 그럴 필요가 있을까? 우리는 저들의 목적이 뭔지 알지 못한다. 괜히 일을 키웠다가 놈들이 그냥 슬그머니 돌아가 버리면 우리들만 우습게 될 우려가 있어.” “그럴 리가 없습니다. 염왕대 5개 대라면 웬만한 문파는 잡초 한 포기 남겨 두지 않고 쓸어버릴 만큼 막강한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만약 그들이 기습을 가한다면, 지금 가장 전성기를 달리고 있다는 서문세가라 할지라도 막대한 피해를 입을 게 자명하지 않습니까?”
“그럴지도 모르지.”
강 건너 불구경하듯 옥화무제가 심드렁하게 대답하자, 매영인은 할머니에게 뭔가 다른 속셈이 있음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혹시…, 개방을 염두에 두시고 계신 건가요?”
그제야 옥화무제는 싸늘하게 미소 지으며 중얼거렸다.
“당연하지. 지금 그들이 뭣 때문에 본문에 이빨을 드러내는 것인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네가 보내 준 정보를 분석해 봤을 때, 개방이 그런 간 큰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은 무림맹이 뒤를 봐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지 않겠느냐?”
옥화무제의 말에 매영인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그럴 리가……. 무림맹이 왜 그런 짓을 한단 말입니까?”
“그거야 아무리 나라도 알 도리가 없지. 정보가 너무나 부족하니까 말이다.”
그녀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설마 자신이 마교와 비밀리에 협약을 맺은 것이 들통 났다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기에 내린 결론이었다. 그 당시 완벽하게 무림맹의 이 목을 피해 마교와 비밀 협약을 맺었다고 생각하는 그녀였다.
옥화무제는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되어도 좋다. 염왕대 5개 대라면 어딘가를 쓸어버리고도 남을 전력이야. 그렇게 해서 무림맹의 힘이 약화된다면, 결국 그들은 본문에게 손을 벌리 지 않을 수 없을 게야. 떨어지는 전력을 정보의 힘에 의지할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그렇기에 이번 정보를 무림맹에 전달하지 말라는 것이다. 알겠느냐?”
“예, 할머니.”
명령을 내린 후, 지도에서 무림맹이 있는 쪽을 내려다보는 옥화무제의 두 눈에는 가소롭다는 눈빛이 떠올라 있었다. 탁월한 정보력과 명철한 분석력으로 대륙을 좌지우지하는 그녀로서는 무림맹이 자신을 향해 뭔가 수작을 부리려고 하는 것이 같잖게만 여겨졌던 것이다.